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최승원]안양 옛 지명을 회복하자.(2019.02.11)

안양지역얘기/담론

안양 옛 지명을 회복하자.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의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지명에 훼손이 시작 된다‘
1905년 안양역 개통시는 安陽역으로 사용하다가 강점후에는 古名이지만 安養역으로 바꾸었다. 이는 일제의 지명 개명의 시작이다. 1890년대의 안양촌이 안양역에 작은 가계가 생기면서 安養里가 되었다. 볕양은 생육에 관계되는 한자어로 밤이나 포도등 생육에 관계되는 것이다.
1911년 일제강점기 안양의 아름다운 이름이 사라진다.
꽃뫼 갈산 (일동). 석길벌 -석길평 (군내동). 금배벌 黙庵坪 (군내동). 꽃창이벌 충坪(안양리) 욧벌 了坪 (박달리) 박뫼주막 博山酒幕(군내동). 범고개주막 虎峴酒幕 (박달리). 한우물 天井 (군내동). 돌팍재 石坡峴(군내동). 옹기 土器. (박달리) 벌말 坪村(一洞). 인덕원평(일동). 벌말 坪村 (봉성리) 벌말 2개소 평1개소합 3개소에 펼처 있다.
일본식 한자지명을 통치수단으로 주임시킨다. 그리고 일본식한자로 작명하고 기록해서 올리라는 지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대 초에는 양지촌이 양지동으로, 군포천은 군포장으로, 호계동은 호계리로 카타카나로 담안이라고 적혀있는 장내촌은 장내동으로 한자이름이 바꾸었으며, 때로는 점촌이 초막동으로, 구리점막이 당정리로, 덕현마을이 (道陽里)로 변경된 사례처럼 언 듯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려대 김종혁교수 과천시지138족)
안양시는 근현대에 와서 군사문화 등으로 마을이름을 1동~9동으로 개명하였는데 1동은 시대동, 2동은 안양동, 안양3동은 양지동, 6동은 수리동,,7동은 덕천동, 안양8동은 명학동(상록동), 석수1동은 삼막동, 석수2동은 신촌동, 석수3동은 충훈동, 박달1동은 필동, 비산1동은 임곡동 등으로 개명해야한다.
옛 지명을 회복하는 것이 마을 재생의 기본이다.

2019.02.11.월

최승원

[최영일]안양의 옛지명은 되돌아와야한다.(2006.06.07)

안양지역얘기/담론

안양의 옛지명은 되돌아와야한다.
최영일 | 2006.06.07 
안양광역신문 기고에서( http://anyangnews.net/bbs/bbs.asp?exe=view&group_name=317&section=9&category=3&idx_num=6407&page=1&search_category=&search_word=&order_c=strWriter&order_da=asc)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법이나 제도의 개정이 우리나라처럼 심하게 이루어지는 나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이루어진 법제도의 개정은 어떤 형태의 논리에서인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시행해 왔으며 이런 개정문화에 우리는 상당히 익숙해있다.

법제도가 있으면 정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얇팍한 논리에 의해 쉽게 쉽게 잘도 바꾼다. 이렇게 쉽게 고쳐진 새로운 법제도는 얼마가지 못해 또 다른 개정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주  새롭게 바뀐 틀 속에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하기가 쉽다"는 외국인의 지적대로 공무원이 하고 싶은것은 아무 저항없이 실행돼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렇다보니 전통이란 정말 낯선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통의 상실엔 행정공무원들의 무지는 그렇다치고 전통문화에 대한 시민의식의 결여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고급행정 공무원들이 일방통행을 하다 보니 사회전체에 전통이나 관습이 희석되어간다: 정당명의 변경이나 교육제도의 개정 등은 아마 기록이 있다면 기네스북에 올랐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제기가 법제도개정의 정당성으로 발전하면서 구제도나 구법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행태는 왜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심할까? 왜 우리는 선진외국에 비하여 법제도가 전통적으로 보존계승 되어지지 않을까? 구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아서? 그렇지가 않다.

우리에게는 정신문화에대한 인식의 부족에 큰 문제점이 있다. 전통문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전통의식이 사회전반에서 변두리로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전통의식이 희박하니 전통의 중요성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물질적 생활의 만족감이 그들에게 주관심사이지 전통은 귀찮기만 한 구시대의산물로 다가온 것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서울의 봉천동명칭을 바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유는 단지 동네이름이 "촌스럽다"는 것이다. 아마 동네이름이 촌스러우면 동네 땅값도 안 오르고 이래저래 경제적 손실을 입으니 새로운 세련된 이름이 그들에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동네의 유래나 전통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또다시 사라지는 순간  인것이다.

이런 단세포적 발상은 우리사회엔 이미 오랜 전 부터 만연돼 있다. 안양이 1973년 시로 승격되면서 양지동 장내동 냉천동 주접동 등등 주옥같은 이름들이 숫자로 탈바꿈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내 부모가 지워준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를테면 8번으로 불리우는 수모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안양은 결코 70년대 불도저시절 허허벌판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든 신도시가 아니다.123456789가 아니란 말이다.

안양은 원래 수리(음)와 관악(양)의 기가 안양천에  흘러 역학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져 우리지역을 "편안한"고을로 불렀을 것이다. 즉, 우리 선조들은 동네이름을 지을 때 사건이외에 지형지세의 모양을 보고 역학적으로 해석하여 불러왔다. 어느 동네이름도 아무 생각 없이 지은 것이 없다. 그렇기에 동네이름에 전설이 깃들여있으며 그 전설은 마을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규정짓기도 하였다.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듯이 동네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마을의 겉모습이 떠오르는 이치이다.

이런 정신적 보존가치가 있는 동네이름이 편한 행정의 희생물이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뿌리를 잃은 시멘트공간속에서 고향을 상실한 채 이방인으로서 표류하고 있다. 편한 생활을 위해 전통문화를 없앤 자리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그 위에 흙을 덮어 나무를 심고 있는데 정성을 다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술, 문화 운운한다. 시멘트위에 심은 나무는 오래가지 않아 죽는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오늘 당장 편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죽어가는 나무를 방치하고 있을 것인가? 

 

 

또 다른 글| 2007.05.13.

다음카페 동덕축구클럽에서( http://cafe.daum.net/ddscay/4OIb/671?q=%EC%95%88%EC%96%91%20%EC%98%9B%EC%A7%80%EB%AA%85 )

 

공무원,정치인들의 특성중의 하나가 사회제도를 바꾸는데 저마다 일가견을 갖고있는 사람들 같다. 바꾸는데대한 신중함과 고민이있는게 아니라 그냥 시대에 안맞는다고 쉽게쉽게 잘도 바꾼다. 그들에게 전통이란 관심도 없는것일까? 우리의 전통문화가 보존이 안된다. 실제로 정당명 변경과 교육제도변경등은 이미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다.

얼마전 서울의 봉천동을 다른이름으로 바꿀 계휙이라는 기사를 읽었다.이유는 "촌스럽다"는것이다. 촌스러우면 바꾸어도 되는것인지? 그리고 그 이름이 왜 촌스러운것인지? 이런 전통에대한 의식의 무지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고장 역시 이런 공무원들의 단세포적 발상으로 오래전부터 몸살을 앓고있다. 안양이 1973년 시로 승격되면서 우리동네의 옛지명들이 123456789숫자로 개칭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장내동 냉천동 주접동 양지동 등등.... 동네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우리의 이름들이 어처구니없는 일부공무원들의 발상에 의하여 사라진것이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조상대대로 내려오던(물론 부분적으로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이름도 있지만-그렇다고 전통에서 왜곡된 동네이름은 없다고 본다)옛 지명을 없애다니? 우리선조는 지명을 역사적사실을 기리거나 그 고장의 주변지형과 형세의 해석에서 따와 붙여서 그지명을 고을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어떤 지명도 아무렇게나 생겨난것은 없다.그래서 지명속엔 저마다의 전설이 깃들여있으며 이런전설은 두말할것도없이 정신문화의 밑바탕이됐다.

안양은 허허벌판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든 신도시가 아니다. 12345678이 아니란말이다.오랫동안 우리선조들이 지명에서 나와있듯이 자연을 벗삼아 살아 음양적 조화(수리-관악)가 가장 빼어나서 편안한 고을로 불러왔다.(편안하다라는 의미는 노자에서 조화롭다라는 말로 쓰임) 그 역학적의미가 각 동네이름에 구체적으로 깃들여있는것이다. 이런 정신적 중요성을 내팽겨친체, 1234...로 바꾼것이다. 생각없는 배부른 돼지가 되기싫다. 정신은 사라지고 편리와 슬럼화로 표류하는 안양. 우리에겐 전통을 중시하는 왜 일관된 철학이 없을까? 우울하기만하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제일먼저 다가오는 인상이  도시가 슬럼화되어가는 느낌이다. 왜 안양이 슬럼화 되어가지에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수도권도시의 특성인 인구과밀화 문제 이전에 "전통에대한 무관심"에서 파생되는 "전통건물의 소멸화"가 주 요인이라본다. 지명 변경 역시 이런 차원에서 발상된것이다. 우리에겐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안양은 시공무원들의 구호처럼 전국에서 가장살기좋은 도시(뭘갖고 얘기하는지는 몰라도...)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정신이 사라진 도시에 그냥 아파트나 올리고 시세수입만 많이 거치면 시관리하기 편할지 몰라도 문제는 정신이 있어야 할 것을 없애버린곳에서 생기는 문제들에 무관심하다는것이다. 다가오는 후세대들이 언젠가는 걷어내야 할 뼈아픈 그늘이 길어만 져가는것이다: 전통이 사라진 도시는 정서가 존재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유럽을 보면 알수있다. 왜 갈수록 안양이 범죄화 되어가고  특히 청소년문제가 다른도시에 비하여 유난히 심각해지는지 시공무원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청소년들에게 정조대왕행차를 맞이한다(주접동)는 사실을 가르칠 수없는 이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대를 이어 전통을 보존시킬수있단 말인가? 나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이를테면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이름 "영일"대신에 "5번"으로 호칭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싶지않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있다.  

 

[최승원]서이면사무소 이전의 비극(2019.04.07)

안양지역얘기/담론

이전의 비극
서이면사무소 안양리이전 비극의 씨앗이다.
만안교이전 가치하락
안양사터 삼층탑이전 등급하락
적산도 보존시대
중국 일본침약사 지워지지 않는다.
공존을 연구로 항일정신 키우자.
베트남 침략시설보존 참고하자.
일번가 고층화는 일번가 파괴
차가 많이 다니게 되므로
도로확대가 어렵다. 상하수도 투자급증
주차장 없는 도심, 차없는 거리확대
만안은 균형발전이아니라
"만안답게"!!
일번가 상권 유지 필요
서이면사무소 친숙한 갤러리로 용도변경
야간조명강화로
"유일한 한옥" 공존을 모색해야한다.

 

2019.04.07

雲齋건축연구소 소장 최승원

[최승원]안양, 문화유산 위치 변경 가치 하락시켰다 (2019.03.02)

안양지역얘기/담론

문화시설 기존 현대건축과 공존이 필요하다.

독립문이 고가도로 설치로 이전 되고 이미지가 떨어졌다.

안양시는

1) 중초사지 3층석탑 위치변경으로 등급하락.

2) 1914년 호계리에 조형된 서이면사무소 1917~49 년 이전

확대 재건축으로 문화가치 하락.

3) 튼튼하고 아름다운 만안교 이전으로 전문가 평가 하락.

4)만안도서관 옆 원태우조형물 이전 계획 발표.(설치 조각자 반대필요)

이전마다 주민 반대 없이 무의식적으로 지나친다. 위치변경 중병이다.

상황 따라 돌림 빵으로 이리저리 보내는 문화시설이 아니다.

설치되면 미우나 고우나 공존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수이다.

고대는 산지로 둘러싸인 盆地적 병폐, 현대는 위성도시 베드타운 병폐

안양의 문화의식의 한계를 벗어나 문화가 높은 도시를 만들자.

 

2019.03.02

雲齋건축연구소 소장 최승원

[최병일]군포장터와 원태우 지사 조형물, 안양시의회 5분 발언(2019.04.26)

안양지역얘기/담론

3․1만세운동 현장인 구 군포장터와 항일독립운동가 원태우 지사 조형물에 대하여

 

○최병일 의원    존경하고 사랑하는 안양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갈산․귀인․범계․평안․평촌 지역구 출신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최병일입니다.
    먼저 저에게 5분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신 김선화 의장님께 감사드리며 의정활동의 동반자인 동료 의원님, ‘스마트 행복도시 안양’을 위해 애쓰시는 최대호 시장님을 비롯한 공직자 여러분, 정론직필에 애쓰시는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제 발언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신 황의형 광복회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 감사의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실버포럼 박종섭 단장님과 회원 여러분! 부흥초등학교 4학년 2반, 4학년 6반 학생들과 김춘화․김재화 선생님, 또 모니터를 통해 방청하시는 안양시민 여러분! 환영하고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100년 전 3․1만세운동 현장인 구 군포장터와 항일독립운동가 원태우 지사 조형물에 대하여 5분발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십니다. 100년 전 안양에는 만세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100년 전 3월 31일 호계동 666번지에서 시작되어 일본경찰관 주재소가 있던 군포역까지 독립을 열망하는 인근지역 현재의 안양․군포․의왕 거주민 2천여명이 모여 행진하며 만세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일제는 경찰 외에도 군 병력까지 동원해 폭력으로 군중들을 해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영상자료 제시)
    모니터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군포시는 조국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 2016년 5월 10일 군포역광장에 ‘군포항일 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을 세웠고 독립운동역사의 지도 표지판을 세웠고 만세시위지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의왕시도 만세운동이 전개된 고천동에 표지판을 세우고 매년 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양시는 100년 전 구 군포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임에도 이를 알리는 기념탑이나 조형물도 없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홍보활동조차 없었습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에서 표지판을 설치하였으나 시위지가 먼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안양시는 3․1운동의 정신과 그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안양시민들과 함께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는 일에 함께 뜻을 모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기념탑이나 표지석을 세울 것을 제안드립니다. 또한 안양에는 여섯 분의 원태우, 한항길, 이재천, 이재현, 이영래, 하영홍의 항일애국지사가 계십니다. 애국지사님들의 헌신으로 독립된 주권국가의 시민으로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이분들을 널리 알리고 올바른 기록으로 보존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23살의 청년 원태우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그로부터 닷새 후 안양에서 열차를 타고 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혼자 돌을 던져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 군데에 유리파편을 박는 일격을 가했습니다. 이 사건이 전보를 통해 알려지자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생전에 원태우 지사가 태어나고 자랐던 안양동에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태우 지사의거비’가 만안시립도서관 한쪽에, 안양역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평촌 자유공원에, 돌을 던졌던 의거지 자리에 각각의 조형물과 동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의거 당시 20대의 청년을 5, 60대의 장년으로 옷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의거 이후에 일본에서 발행한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라는 제하의 기록화에 그려진 일본인 화가의 그림으로 세워졌습니다.
    PPT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원태우 지사의 의거는 조선 말 특권계층이 아닌 일반 민중의 젊은이가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는 항일항쟁 증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때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면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하루속히 이미지를 수정할 것을 제안드립니다.
    제가 제안한 두 가지를 서면으로 답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역사는 미래 새로운 100년의 시작입니다. 애국선열의 피와 땀으로 이룬 숭고한 독립정신을 가슴깊이 새기며 5분발언을 마치겠습니다.

[심재민]국토부는 안양포도공원조성 말살 정책을 철회하고 종합계획 수립하라!

안양지역얘기/담론

안양시소상공인연합회 정책연구소 심재민소장 

 

2017년 3월경 필자는 ‘안양 명물포도 이대로 사라지는가?’ 라는 주제로 기고문과 시정질문을 통해 안양 포도의 우수성을 다시 알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 안양 포도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안양 명품포도를 관광 상품화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가 있다.


안양포도 보존•육성지원조례 제정

2017년 7월 안양시의회와 안양시는 명물포도 도시로서의 안양의 옛 명성을 되찾고, 안양포도의 보존․육성을 위하여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 ‘안양시 안양포도 보존•육성 및 지원에 관한조례’를 제정 공포한 바가 있다. 

 

매곡공원 內 포도단지 조성

2018년 7월 업무보고에 따르면 「안양포도 보존․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하여 포도단지 부지확보 및 일몰제 시행으로 2020년 7월 자동 실효됨에 따라 난개발 방지를 위한 공원조성을 통하여 ▲생태놀이터 도입 검토 ▲안양포도 육성 및 지원을 위한 포도단지 등 도시농업시설 조성(포도과원, 포도정원, 체험장, 관리사 등) ▲지역주민들의 소통 및 휴양을 위한 휴게공간 조성( 광장 및 휴게쉼터, 산책로, 주차장 등)을 보상비 69억원 공사비 등 16억원으로 총사업비 85억을 투입할 계획이며, 올 2월에 실시설계계획인가 및 용역을 완료할 계획이었으며, 2019년 예산서에 도시개발사업 특별회계로 매곡공원 조성사업을 위해 보상비 69억원을 편성한 바가 있다. 

 

지역브랜드를 탄압하는 국토부

2018년 12월 국토부는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를 활용해 중소규모의 택지를 매곡공원에 900호 정도로 조성하겠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바가 있다. 안양시는 이미 주민의 재산권보호 및 난개발 방지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안양지역의 브랜드인 안양포도를 매곡공원에 조성하여 생산, 제조, 가공을 통해 와인 판매와 관광, 체험 및 견학(3차 산업)으로 관광명소화로 변모시키면서 1차, 2차, 3차 산업을 아우르는 6차산업을 통해 지역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정책을 국토부에서는 상반되게 안양의 자존심을 짓밟고 탄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소규모 택지개발의 문제점

매곡공원이 지역여건상 중소규모의 택지개발이 가능한 지역인지 여부를 정확히 국토부에서 직접 확인한 바가 있는지가 궁금하다. 지면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국토부에서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지방정부에서 조례에 근거하여 도시공원을 활용한 고부가가치를 위한 지역브랜드 육성 차원과 난개발 방지 정책이라는 점. 

둘째, 매곡공원은 평촌대로 401번길(2차선)과 411번길(이면도로)에 접한 지역으로 향후 무분별한 택지개발로 발생되는 교통체증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셋째, 국토부는 실적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이 지역은 월판선으로 역세권이 조성이 된다는 된 점을 고려하여 매곡공원과 주변 주택밀집지역, 종합운동장을 포함한 종합적인 개발 정책수립이 필요하다는 점. 

위와 같은 상황을 참고하여 국토부는 좀 더 지역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즉각 중소규모 택지개발을 철회하고 ‘안양 명물포도단지’ 조성과 함께 멋진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종합계획 수립을 하여야 하며, 또한, 안양의 공직자, 시의원이라면 안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시 되어 쾌적하고 살기좋은 극락정토 안양을 만드는 초석이 되어 주시 길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한정규]정조대왕 능행차 참가자에게 정체성 심어야 한다

안양지역얘기/담론

정조대왕 능행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요원'
화성행궁에서 대황교까지…참가자에게 정체성 심어줘야
2018-10-08 16:48:55최종 업데이트 : 2018-10-08 17:06:4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정조대왕 능행차는 1975년 제12회 화홍문화제(현 수원화성문화제) 때 수성고등학교 이홍구 선생에 의해 최초로 복원됐다. 1976년부터 문화제가 열릴 때마다 수성고 한 학년 전체가 동원됐고 1978년에는 인천에서 열린 제59회 전국체전에서 정조대왕 능행차가 펼쳐져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1981년에는 2학년 학생 모두가 능행차 연시를 위해 팔자걸음 걷는 연습을 했었는데 나도 그때 깃발을 드는 역으로 능행차에 참여했다. 

'정조대왕 능행차'에 대한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송지대에서 만석거를 거쳐 장안문 팔달문까지 행차를 하던 기억이 난다. 기록영화를 만든 주체가 어디인지를 몰라 그때 찍은 기록영화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당시에는 타의에 의해 동원된 불편한 기억만 있지만 세월이 흐르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고 누구보다 정조대왕 능행차에 애착을 갖게 됐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의 효(孝)를 위한 행렬인 2018 정조대왕 능행차가 6일부터 2일간 성대하게 펼쳐졌다. 정조대왕이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양력 3월 29일 - 4월 5일) 아버지가 잠들어있는 현륭원을 방문하고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열기 위해 수원으로 대규모 행차한 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만 펼쳐졌었는데 2016년에는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까지, 2017년에는 창덕궁에서 수원을 거쳐 화성시 융릉까지 전 구간에서 재현됐다.

1795년 윤2월의 화성원행은 창덕궁을 출발해 배다리를 건너 시흥행궁에 도착해 1박을 하고 다음날 화성행궁까지 꼬박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현재 전 구간에서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려면 서울시, 안양시, 의왕시, 수원시, 화성시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 구간이 바뀔 때는 '정조대왕 표식기'를 교대하는 방식으로 행차를 이어간다. 한 팀이 전 구간을 1박 2일 재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재현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이번 정조대왕 능행차는 6일 첫째 날은 서울구간인 창덕궁을 출발해 한강 배다리를 건너 시흥행궁까지 21.2km 구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창덕궁에서 출궁의식만 가졌다. 비가 그친 오후가 되어서야 노들나루공원에서 시흥행궁까지 정조대왕 능행차가 펼쳐졌다.

7일 둘째 날은 수원구간인 금천구청을 출발해 노송지대, 종합운동장, 연무대까지 26.4km 구간과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까지 5.9km 구간, 화성구간은 대황교동에서 융릉까지 7.4km 구간에서 열렸다. 서울 창덕궁에서 시흥행궁, 안양, 의왕, 수원을 거쳐 융릉까지 총 59.2km 구간 중 일부 구간은 취소된 상태로 진행돼 전체 구간에서 재현하지는 못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1795년 윤2월에 있었던 화성원행인 정조대왕 능행차를 전 구간에서 재현하려면 한강에는 배다리 310m가 설치돼야 하지만 제25호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배다리가 설치되지 못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일부 구간이 취소되는 등 어수선했지만 가을날씨 청명한 7일 오전에 수원구간인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까지의 정조대왕 능행차를 동행 취재했다.

7일 아침 9시 화성행궁 광장에는 말을 탄 장용영 군사들, 창과 깃발을 든 군사, 악기를 든 악대들이 정조대왕의 출궁의식을 대기하며 행렬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를 통해 입장하자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축시를 낭송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아아, 만세토록 왕업을 이어 조선이어 무궁하게 번창하소서. 성상께서는 자궁의 회갑 년을 맞이하여 아버지 능에서 수연을 베푸시도다. 그 효심을 보고 백성들은 감복하도다. 능 곁에 높은 성채를 세운 뜻은 능의 고장을 지켜 나라와 백성을 함께 지키려 도모하심이로다...'  

출궁의식은 9시에 예정돼 있었지만 15분에 정조대왕 입장, 18분에 축시 낭송을 했는데 20분에 스피커에서는 "정조대왕 께서는 행렬 위치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무엄한 말이 나왔다. 재현의 진정성이 있으려면 재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소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인물처럼 존중하고 언행을 삼가야 한다. 이 행렬의 목적지는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지점인 대황교동 다리까지 약 5.9km 구간이다. 10시 10분 경 상류천 표석을 통과했고 11시 6분경 대황교동에 도착했다. 다리에서 정조대왕 표식기를 화성시 팀에 인계하고 능행차를 마무리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지난해에는 정조대왕만 행렬에 참가해 단출했었는데 그나마 올해는 혜경궁홍씨, 청연군주와 청선군주도 합류해 볼거리가 있었지만 주구장창 걷기만 하는 행렬에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노송지대부터 종합운동장, 종합운동장부터 연무대까지의 메인 행렬에만 집중해서는 전체적인 정조대왕 능행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능행차 행렬에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끼어들어 물어보니 스텝이라고 했다. 말을 탄 사람 몇 명에게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다며 행렬 순서만 알고 있다. 능행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증에 충실 하는 게 우선이지만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이 능행차의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한다. 스텝도 능행차 행렬의 일원으로 복식을 갖추고 참여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1795년 윤 2월 12일 현륭원 행차시에는 화성행궁에서 새벽 4시 45분경에 출발했다. 행궁을 출발해 팔달문을 경유하고 매교, 상류천, 재간현, 하류천, 황교, 옹봉, 대황교, 능원소화소, 유첨현, 안녕리, 유근교, 만년제, 능원소동구, 능소까지 약 29리(1리는 360m, 약10.44km)의 거리였다. 

왕의 행차길을 필로(蹕路)라고 하는데 지지대고개부터 현륭원까지 길의 경계마다 표석을 세웠고 5리마다 이정표로 장승을 세워 표석은 20곳, 장승은 11곳에 세웠다. 현재 표석은 5개 남아있지만 장승은 모두 사라졌다. 필로에 대한 기록은 화성성역의궤(1801년), 화성지(1831년), 수원군읍지(1899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화성행궁에서 대황교동 구간 행렬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에는 상당수의 군 장병들이 동원된다. 동원에 앞서 군부대와 사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고 수원화성문화제와 정조대왕 능행차의 정체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군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소통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번기회에 능행차에 참여한 군 장병들에게 반드시 설문지를 받아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할 사항은 개선해야 한다.

대충 행사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 운영하는 사람, 참가하는 사람 모두가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완성도 높은 행사로 만들 수 있다. 대충 해놓고 '222년만의 완판 재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꿈꾸고 있다면 사고방식부터 바꾸고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하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해야한다. 

[최재천]안양 도심속 정원 '왕개미' 제국 발견 이야기

안양지역얘기/담론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옛 부지에는 우리 고유의 거대 개미 군락이 살고 있다
2014년 잎꾼개미와 베짜기개미 등 열대 개미의 도입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당시 안양에 있던 농림 축산 검역 본부를 찾았을 때 나는 우연히 경내 작은 수풀 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왕개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이 개미는 그동안 애꿎게 일본왕개미로 불렸지만 최근 탁월한 개미학자 장용준이 고려대 석사 논문에서 그보다 선행된 이름이 왕개미였다는 사실을 문헌 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이 땅에서 제일 흔한 개미 중의 하나를 번번이 일본이라는 명칭을 붙여 불러야 하는 굴욕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쾌거였다.
그동안 국립 생태원의 개미 연구팀과 장용준 연구원의 연구로 국내에서 발견된 개미 군락으로는 최대 규모인 이 왕개미 군락 역시 여러 작은 소왕국들이 연합해 만들어진 제국인 게 분명해 보인다.
다행히 안양시는 이 왕개미 제국을 최대한 보전하고 바로 옆에 개미 생태 체험관도 만들어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이 잘 진행되면 수도권에도 드디어 멋진 개미 전시관이 생겨 흥미로운 볼거리와 함께 생태 교육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도 드디어 거대 군락에 관한 연구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 제국과 개미 제국에 관한 비교 연구를 하고 싶다.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제국을 구축해도 권력은 끝까지 단 한 사람이 움켜쥐려 하지만 개미 제국은 연합국들의 왕권을 확실히 보장해 주는 듯 보인다.
이 동맹이 인간들이 만든 그 어떤 제국보다 강력하고 영속적인 제국을 만든 것이다.
권력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누수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개미는 이미 터득했고 우리는 아직 못한 것 같다.
우리보다 훨씬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개미도 아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으리라.

 

사이언스북스-컬럼에서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059653&memberNo=27562621

 

 

최재천(崔在天)
서울대 동물학 학사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생태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학 생물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학 생물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학 전임강사
미국 미시간대학 조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한국생태학회 회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복길]‘안양’의 아이들

안양지역얘기/담론

 

"노래방 스피커로 나오는 고성의 한국 록 발라드가 전쟁의 시작을 알리면, 교복이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안양1번가에 모여 오직 사랑 때문에 전쟁을 하는 곳! 정태성과 반해원이 강동원과 조한선의 얼굴을 하고 학교 정문 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채 대기하는 곳! 안양, 그곳은 내 마음속에서 인소의 수도이자 인소 문명의 발상지나 다름없었다." (201803. GQ에서)

 

글 보기  http://www.gqkorea.co.kr/2018/03/07/%EC%95%88%EC%96%91%EC%9D%98-%EC%95%84%EC%9D%B4%EB%93%A4

 

CREDIT

에디터 이예지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글 복길(칼럼니스트)

[심재민]오피스텔 등 집합건물 입주자의 눈물 누가 닦아주나

안양지역얘기/담론

"오피스텔 등 집합건물 입주자의 눈물 누가 닦아주나"(20180224)

안양시의회 심재민 의원


요즘 오피스텔이나 주거와 상업공간이 복합된 주상복합 건물이 관리비를 둘러싼 분쟁, 관리인의 부정과 비리의혹, 담합에 의한 수의계약, 관리단대표의 부정으로 뒷돈이 오가는 횡령의심 등의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이유는 해당 건물들이 ‘1동의 건물 중 구조상 여러 개의 부분이 독립한 건물’을 가리키는 ‘집합건물’로 분류되어 민법인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다른 어느 법에서도 행정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대가 1000세대가 넘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일지라도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권한도 없으며 행정 지원할 근거도 없어, 모든 책임은 오로지 집합건물의 입주민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실정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집합건물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52조의2에 따라 각 시·도에 분쟁조정위원회를 두고 관리비 관리·사용에 관한 분쟁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조정은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 

오피스텔과 주상복합 건물 등의 입주민들의 주된 민원은 공개입찰방식인 아닌 특정업체에 계약을 주는 수의계약, 계약기간을 어기고 1년마다 계약금액 상향조정하여 재계약, 업무상 횡령, 업체에게 이중계약서 요구 등 다양한 문제점들로 드러나고 있다. 반면 15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의 경우에는‘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및 행정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오피스텔과 주상복합 건물의 관리 비리·횡령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감사인의 회계감사 도입과 분쟁조정위원회 권한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작업을 착수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