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안양기억찾기탐사대 8월 탐사 방학으로 쉽니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기억찾기탐사대 8월 탐사는 탐사는 무더위와 휴가철을 맞아 쉽니다. 이후 탐사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한여름 잘 보내세요^^ 

[공지]안양탐사대 167차 탐방(20190727)안양 만안구청 주변 골목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7차_안양 만안구청 주변 골목

7월 27일(토) 오후 4시/ 집결_명학공원 분수대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27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67차 여정은 안양 만안구청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이 동네는 일제강점기에는 안양식림묘포장(경기도임업시험장), 1970년대 중반에는 안양시청에 있던 안양시청(현 만안구청)과 안양경찰서(현 보라오피스텔 신축), 정부의 공공기관들이 자리하고 더불어 음식점, 요정, 유흥, 숙박시설 등이 자리해 상거래가 많았던 곳이었으며 1990년 평촌신도시 건설 이후 안양시 행정기관의 이전, 2010년 이후에는 정부 공공기관들 마져 지방으로 떠나면서 인적이 뜸해지고 2018년 이후에는고층 오피스텔들이 신축중으로 지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는 곳이지요.   

 

이날 탐사는 2019년도 전반기 마지막 탐사로 8월 한달 정도 방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탐사후에는 밧데리골목 아지트에서 종강 파티가 있습니다. 

 

 

[만안구청]

현재의 만안구청은 평촌신도시가 들어서기전 안양시청이 있던 곳으로 건축가 나상기(1927∼1989)씨가 30대 젊은 시절에 설계한 건물이다. 1977년 안양대홍수로 안양시 전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때는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두차례나 안양시를 방문해 이 건물 3층 강당에서 브리핑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의 사진과 현재의 본관 건물 모습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만안구청 터는 과거 밤나무가 무성한 율원이었다. 일제강점기 현 만안구청부터 북쪽으로 국립농산물검사소(현 국립종자관리소)까지는 1937년 문을 연 안양식림묘포장(경기도임업시험장)이 처음 설치되었던 곳으로 1971년 묘포장이 오산으로 이전하기 까지 수리산에 임업시험림을 조성하고 우량묘목을 생산하고 시험하였으며 주변에는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농업 관련 연구와 행정시설들이 속속 세워졌던 곳이었다.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된후 경기도임업시험장 자리에 시청사 신축에 나서 1974년 기공식을 한후 1년후인 1975년 현재 모습의 건물이 완공됐다.
건축가 최승원 교수님 글에 의하면 나상기 선생은 1961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이구(李玖: 英王 李垠의 아들)의 도움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미술대학원 건축과에 입학하여 루이스 칸의 지도를 받으며 졸업한 후 그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1970년 귀국후 다시 홍익대학교 교수로 복직해 이 때부터 건축과 도시계획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많은 활동을 했는데 1984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로는 부산타워(1973), 부산구덕총합운동장을 비롯 아주대학교, 하와이대학교에 작품이 있으며 안산시, 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설계에도 참여했다.
한편 안양시청은 1990년대 평촌벌에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부림동에 새 청사를 짓고 1996년 11월11일 안양시청과 시의회 청사를 평촌으로 이전해 11월 15일 준공식을 가졌으며 안양6동에 자리한 옛 안양시청사 건물은 만안구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만안구청 건물 자료-안양시사에서]
이 건물의 설계자는 나상기 건축가였다. 이 건축물의 대지는 남쪽은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으나 북쪽의 도로가 상당히 급한 예각으로 꺾여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건축가는 이러한 대지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ㅅ자형으로 건물을 앉혔다. 서쪽의 정문으로부터 접근하여 주현관 으로 집입하도록 동선을 유도하는 데 중간에 저층의 민원실 출입구를 두어 주현관까지 굳이가지않아도되는민원인들의편의를고려하고있다.
민원실은 층고가 높으며 주건물과 축의 방향이 다름으로 인해 서류접수대의 방향이 꺾이는 등, 다양한 시각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어, 관청의 단조로운 분위기를 덜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주 건물의 동쪽 부분 2층에는 시장실이 있는데 이부분만 돌출되어 있다. 또한 그기둥이1층까지내려가 있어 그아래 1층 부분은 휴게공간으로 사용되고있다. 시장실은 이 부근의 도시 전체 축에 대하여 비스듬한 각을 이루고 있어, 남쪽으로 내다 보이는 전망이 조금은 다른 각도로 펼쳐져 색다른 느낌을 주고있다.
또한 이건물은 ‘ㅅ’자 본체로부터 민원실과 옥외비상계단이 마름모꼴로 돌출되어 있고, 중앙의 계단실과 옥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있다. 이러한 배치방법은 이건물이 세워지던 1975년경에는 관공서 건축에서 아직 채용하지 않던 방법이었다.
따라서 건물 외관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수평적인 띠창은 시로 승격되며 새로운 청사를 마련하는 시민들의 희망을 수직적 권위보다 시민사회의 수평적 연대를 표현하다고 볼수있다.
그리고 수평적인 요소만으로는 지루할수 있는 외관을 민원실의 수직기둥과 시장실 부분의 수직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보정하여 형태적으로 완벽함을 만들어 내고있다.
이러한 유추는 설계자가 나상기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것이다. 그는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루이스 칸을 비롯한 세계적 건축가들이 갓 펼쳐낸 작품의 현장에서 많은 감을 얻었으며, 도시의 문맥과 주변환경을 읽어내고 이것을 설계에 반하는 방법을 터득하던것으로 보인다.

 

 

[밧데리골목, 이젠 빠골목이라 불리운다]
안양에는 1970년대 부터 지금까지 밧데리골목이라 불리우는 곳이 두군데 있다. 한곳은 안양2동의 구도로(만안로)에서 수암천을 따라 우측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이 골목길은 1950-70년대 금성방직 공장으로 이어지던 철길이 놓여져 있던 곳이기도 하다. 또 한곳은 안양6동의 검역원사거리에서 주접지하차도쪽 구도로(만안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두 곳 부도 오래전 자동차 정비를 하던 업소들이 많았기에 밧데리골목이라 불리웠는데 안양 토박이들은 밧데리골목하면 일반적으로 안양6동의 골목으로 이해한다.
안양 6동 '밧데리골목'은 70년대 항아리 골목과 비슷한 연대에 각종 자동차 부품과 자전거용품 재료 등을 판매하면서, 부품을 교체하거나, 정비를 하는 가게가 하나, 둘 모여 들면서 골목이 형성됐다.. 그당시에 안양은 제조업체들이 많이 들어섰고, 이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렇게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동차가 늘어나게 되었고, 자연히 자동차에 관련 된 업체들이 생겨난 것으로 이곳에서는 자동차 정비와 수리에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
당시 이 골목에는 순대와 막걸리 등을 주로 파는 음식점과 술집들, 그리고 이웃 만안구청(당시 안양시청)과 검역원 주변에는 한정식집과 요정들이 밤이면 성황을 이룰 정도로 밧데리골목의 명성은 경제적으로도 아주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술과 여자가 그리고 돈이 돌면 주먹을 쓰는 이들도 꼬이는 법으로 밤이되면 주먹을 쓰는 이들의 패싸움이 자주 벌어져 싸움골목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그래도 200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10여곳의 자동차 정비업소와 자동차 부품가게들이 있었고, 주당들이 모여 먹걸리잔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선술집과 포차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3곳 정도의 정비업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뿐이다. 또 저렴한 술집들도 하나둘 없어져 지금은 시큰한 할머니 혼자 맛깔스러운 찬을 내놓는 호남식당과 새로생긴 서서갈비 등이 명백을 유지하고 있을뿐 사실 유흥주점 골목으로 바뀌고 말았다.
낮에는 죽은듯이 한산한 밧데리골목은 밤이 되면 서서히 깨어난다. 특히 유흥주점하면 일반적으로 지하실을 선호했고 이곳 역시 예전에는 대부분 지하에 있었는데 지금은 1층과 2층에도 노래빠들이 자리할 정도로 밤이되면 네온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면서 화려해지는 거리다.
한때 밧데리골목을 다시 활상화시키는 방안에 대한 의견과 제안도 있있으나 이미 유흥주점들이 거리를 점령해 버린 대세를 바꾸기란 사실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밧데리골목은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까지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을 손짓하여 부르듯 네온이 요란하게 번쩍이다가 동이 터오를 무렵에 사람들을 태운 택시들이 빠져나가면 그때서야 네온 불빛이 꺼지고 고요해진다.

 

[안양 경찰의 역사와 옛 안양경찰서-반도오피스텔]

명학공원앞 옛 안양경찰서 부지에는 중견건설업체인 반도건설이 매입해 짓고 있는 주상복합오피스텔  ‘안양명학역 유보라 더 스마트’(지하 3층~지상 26층, 3개동)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총 350세대(59㎡, 61㎡)가 입주할 예정이다.

옛 안양경찰서 부지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576-1 번지 일반상업지역으로 대지면적은 6372㎡(1,927평), 건물면적은 4008㎡으로 반도건설이 지난 2016년 9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576-1 외 1필지'의 옛 안양경찰서 대지 및 건물 입찰 경매에서 최저입찰가 294억 원보다 무려 3배 높은 408억 원을 써내 낙찰자로 선정돼 안양시와의 매매계약을 통해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

안양경찰서의 변천사를 보면 안양경찰서의 첫 관서는 1945년 10월 21일 당시 금성방직 자리(현 대농단지)에 개서했으며 이후 1950년대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등과 함께 안양읍 안양리 중앙동(현 안양1동. 안양1번가)에 신규 청사를 마련해 이전해 개서했다.
당시 안양경찰서는 2층 건물로 위치를 현재의 주소지로 보면 안양로 292번길 미엔미케익전문점 좌우가 해당된다. 또 경찰서 좌측으로는 의용소방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의 피자헛 안양점건물이 있는 자리로 뒷뜰에는 비상을 알리는 종탑이 세워져 있었다.
1970년대 말 안양 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이 안양6동(현 만안구청)으로, 시흥군청도 안양6동(현 만안평생교육센터)으로 이전하면서 안양경찰서도 안양6동(현 반도건설 매입부지)으로 이전한다.

안양경찰서는 평촌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1999년 11월 3일 다시금 평촌(현 동안경찰서)으로 이전한다.

옛 안양경찰서 건물과 부지의 이용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합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그 용도가 안양경찰서-아산시에 매각-안양시 매입- 신필림아트센터-만안경찰서-빈공간-매각-오피스텔로 바뀌는 과정을 거친다.

엣 안양경찰서는 지난 2000년 안양시가 평촌신도시 시대를 열면서 안양경찰서 또한 시청 등과 함께 평촌으로 이전하고 경찰청이 아산에 경찰대학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토지 대토에 따라 아산시가 소유한 것을 안양시가 매입했던 땅이다. 당시 안양시는 이 부지를 아파트 건립 등 난개발 방지를 주목적으로 2001년 12월 5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105억7천만원(2006년 소유권이전)에 매입했다.(2007년 공시지가로는 154억, 시세로는 300억 안팍)
안양시는 당시 토지주였던 충남 아산시와 매매계약을 체결한후 2001년 9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영화감독 고 신상옥과 최은희가 운영해 온 신필름예술센터로 임대한다.

당시 신상옥 감독은 안양시와 함께 안양영화촬영소 회고전을 시작으로 석산 일대의 '징기스칸 '촬영세트건설, 문예회관을 '셰익스피어극장'으로 운영계획, 영화박물관 건립 등을 꿈꾸었으나 특혜시비 논란속에 시민단체, 시의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학원으로 전락한 신필름예술센터는 운영난 마져 겹치며 2006년 2월 안양시에 반환하고 떠난다.

안양시는 1960-60년대 석수동에 자리했던 동양최대의 영화촬영소(수도영화사-안양영화사-신필림)의 역사와 흔적을 시의 정체성으로 살리는 '아트시티' 측면에서 과거의 영화도시적 후광을 되살리기 위해 신 감독 부부를 영입했으나 한국 영화시장의 시대적 변화와 장기적인 종합계획 수립 없이 섯부르게 사업을 벌렸다는 뒤늦은 지적을 받았다. 

이 공간은 안양시는 돌려받은 후 활용방안으로 방송영상센터를 모색한다. 이에 2007년 8월 방송영상산업 활용방안을 시의회에 상정했지만 부결되며 흐지부지되고는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채 장기간 문을 닫는다.
문이 닫혀있던 이 공간은 다시 경찰이 사용하게 된다. 2010년 7월 23일 만안경찰서가 개서했으나 공간이 없어 신청사 준공까지 임시청사로 사용한 것으로 경찰청은 이 건물을 안양시로 부터 무상임대받아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해 임시청사로 사용하게 된다.
만안경찰서는 교통사고 등 치안 여건의 증가로 인하여 지난 2006년 3월 '경찰서 관할 구역조정'에 따라 2010년 7월 23일 개서함에 따라 1945년에 개서한 안양경찰은 동안과 만안 2개 구로 나뉘어 경찰서가 생김으로 1개시 2개 경찰서 시대의 막을 열었다.

만안경찰서는 2010년 5월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578-8번지(냉천로 63번길)에 신 청사 신축공사에 착공한다. 총사업비는 310억 원에 대지면적 12,151㎡(3,676평), 연면적 15,549㎡(4,704평)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2013년 6월 23일 준공식을 갖는다.

만안경찰서가 새 청사로 이전한 이후 옛 안양경찰서는 또다시 뚜렷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채 방치된다.

이후 최대호 안양시장이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옛 안양경찰서 부지에 시외버스의 차고지가 아닌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할 수 있는 터미널을 짓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2016년 4.13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종걸(만안) 국회의원이 선거공약중 하나로 다시 안양경찰서 부지를 시외버스환승터미널로 활용하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4월 29일 열린 안양시의회 제221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옛 안양경찰서 부지 매각을 하는 내용의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이 상정되면서 더불어민주당 안양시의원들이 반대했으나 표결 끝에 전체 시의원 22명 가운데 반대 10명, 찬성 11명으로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 통과로 결국 매각돼 오피스텔이 건설중인데 명학육교를 통한 동안구, 군포시와의 관문격인 사거리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숨통이 막히는듯 답답함이 적지 않다. 
한편 그동안 안양시는 공공시설이나 공원 등을 새로 조성해 오면서 문화유산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시설들은 무조건, 몽땅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을 택해왔다.

삼덕제지의 오래된 굴뚝과 건물을 몽땅 허물고 조성한 삼덕공원, 옛 가축위생시험소의 흔적 한점 남기지 않고 조성한 명학공원, 안양일번가 일제강점기 면사무소였던 안양일번가의 서이면사무소, 일반에 매각돼 갈비집(안양옥)으로 사용하던 한옥을 시가 다시 매입해 완전 분해 해체한 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 면사무소 건물로 새로 만들고 문화재(경기도 문화재 자료 100호)로 지정을 받았다.

하지만 갈비집이었던 안양옥에는 분명 조선 기와가 얹혀져 있었는데 새 건물로 지으면서 몽땅 없어지면서 고풍스러움은 사라졌으며, 부자재는 합판 투성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들여다보면 참 생뚱맞기만 하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166차 탐방(20190720)안양 매곡지구와 비산체육공원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6차_안양 매곡지구와 비산체육공원

7월 20일(토) 오후 4시/ 집결_안양 종합운동장 정문옆 소공원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20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66차 여정은 안양종합운동장 북쪽 지역으로 도시공원 일몰제 적용으로 공원 부지를 해제해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매곡지구와 비산중학교 주변 동네 골목, 인라인경기장에 이어 축구구장 등이 들어선 비산체육공원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안양매곡지구 


안양 매곡 공공주택지구는 장기미집행 공원부지 111,202㎡로 한국토지주택공사 제안으로 지구 지정됐으며, 도시공원 및 공공주택 900여 세대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2026년까지 완료 예정이다.

2020년 7월 1일부로 실효되는 도시공원 일몰제는 정부·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주인의 재산권 행사를 위해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도록 한 제도다. 공원 부지에서 풀리면 그간 가로막혔던 건축행위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난개발과 녹지 훼손이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가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를 공공주택지구로 조성을 추진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7월 19일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택 공급의 한 묘책으로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 활용’ 카드를 꺼냈다.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이곳에 공원도 조성하고 주택도 짓기로 한 것인데 경기도에는 안양 매곡지구(900가구) 등 총 4곳이 선정됐다. 

사업 방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원 땅주인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해 기존 미집행 공원 부지의 70% 이상을 공원으로 지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땅에 공공주택을 짓는 방식이다. 



모이는 장소: 안양종합운동장 정문옆 소공원(시내버스: 5625, 5626, 5713)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165차 탐방(20190713)안양 융창 재개발지구 주변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5차_안양 융창 재개발지구 주변

7월 13일(토) 오후 4시/ 집결_한전.호계체육관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13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65차 여정은 재개발이 추진중인 호계 융창지구와 호계공원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이 동네는 2017년 9울 109차 탐사를 통해 찾아본 바 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골목에 활력이 넘쳤지만 지금은 정든 집을 떠난 주민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2년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호계2동이야기

 

안양 호계2동지역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말 과천군의 상서면사무소와 일제시대 초기인 1814년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현 호계도서관 자리- 1917년 서이면사무소는 안양1동으로 이전)해 관가가 자리했다.

또 호계2동에는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인 청감서원(호계서원)과 일제 강점기 초에는 낙영학교 등이 자리해 안양 교육의 기초가 된 곳이며 범계 주민들의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자리할 정도로 1900년도 초까지 옛 안양의 중심지였다.

이 동네는 1976년 11월 21일 서울-수원간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도로)가 뚫리면서 주변이 주거지로 변모한 안양의 신흥개발지역으로 수원방향 우측의 호계공원 야산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좌측의 평촌벌은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재건축이 거듭되면서 오밀조밀한 골목길은 볼 수 없으나 대형아파트와 빌라, 연립, 단독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안양 호계2동은 호계동에서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 제600호로 분동해 안말, 방죽말, 샛터말 등의 지역이 호계2동이 되었다. 동으로 신촌동, 서로 안양8동, 남으로 호계1동, 북으로 비산2동이 위치했으며 안양교육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효성(구 동양나이론), 신아화학 등이 운집했던 경공업 지역으로 강남, 경남, 대림, 덕원, 현대 등의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신흥개발지역이며 주민의 구성은 토박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죽을 쌓아 농경지에 유입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곳으로 안양면 이전에는 과천면 상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안양면의 전신인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한 곳으로 관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호계2동은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숙종 42년 1716년에 창건되어 대원군 집정 때 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창강서원(또는 호계서원)과 옛 범계주민들이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 초에 설립된 낙영학교는 비록 남아있지 않고 그 기록만 전해질 뿐이지만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안양교육의 발아지였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파연구소가 있고 호계체육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지명유래 - 방죽말(防築洞)

<호계 2동>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下西面의 면사무소 가 있었고, 그 후 1914년 3월부터 1917년 7월까지 始興郡 西二面의 면사 무소가 있었던 유서깊은 고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물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취락이므로 방죽말 (房築洞)이라 칭했다. 그런데 이 방죽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숙종 때 (1699) 발간된 <<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방죽(제언)의 이름은 호계이고, 그 위치는 과천치소(현 과천시 중앙동사무소)에서 서남쪽으로 18리 지점에 있었다. 축조년대는 숙종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에 이미 방죽이있 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방죽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광무 3년(1899)에 발간된<<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하여 방 죽은 虎界에서 虎溪里競宇로 되었고, 이어 일제 때부터 범계방죽으로 불리우다가 1974년부터 실시된 안양6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초에 길일을 택해 방죽 앞에 있던 수령 300년 되는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群雄祭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나무가 죽자 祭를 지내지 않는다.

 

융창아파트 주변재개발

 

융창아파트 주변지구(융창지구)는 총 면적 107,767㎡ 이며, 건축계획상 총 세대수는 2,417세대(분양 2,221세대 임대 196세대) 로 총 22개동 최대 34층으로 건설 예정입니다. 해당 정비사업의 시공사는 현대건설,코오롱글로벌, sk건설사로 되어있네요.
사업진행현황을 살펴보면 2011년 5월18일에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고시가 되었으며, 현재는 사업계획인가 이후 감정평가가 나왔고 조합원 분양신청을 하였으며, 2019년 6월 말에 관리처분계획인가 예정있습니다. 계획대로 관리처분계획인가등이 이루어지면 올해 안으로 이주가 시작되고 2023년 8월경에 준공 및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동네 골목에 현수막 등이 내걸린 것을 볼때 반발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164차 탐방(20190706)안양온천 재개발지구 주변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4차_안양 호계 온천지구 재개발지역

7월 6일(토) 오후 3시/ 집결_효성 티앤티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6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4차 여정은 재개발이 추진중인 호계 온천지구를 비롯 범계성당, 호계도서관등이 주거지역 및 공업지역이 혼재된 동네를 돌아볼 계획입니다. 


안양 호계2동지역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말 과천군의 상서면사무소와 일제시대 초기인 1814년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현 호계도서관 자리- 1917년 서이면사무소는 안양1동으로 이전)해 관가가 자리했지요. 

또 호계2동에는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인 청감서원(호계서원)과 일제 강점기 초에는 낙영학교 등이 자리해 안양 교육의 기초가 된 곳이며 범계 주민들의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자리할 정도로 1900년도 초까지 옛 안양의 중심지라 할 수 있지요.


이 동네는 1976년 11월 21일 서울-수원간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도로)가 뚫리면서 주변이 주거지로 변모한 안양의 신흥개발지역으로 수원방향 우측의 호계공원 야산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좌측의 평촌벌은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재건축이 거듭되면서 오밀조밀한 골목길은 볼 수 없으나 대형아파트와 빌라, 연립, 단독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경수대로 685번길 51에는 아주 오래된 기와집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까 싶네요.


호계2동이야기


안양 호계2동은 호계동에서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 제600호로 분동해 안말, 방죽말, 샛터말 등의 지역이 호계2동이 되었다. 동으로 신촌동, 서로 안양8동, 남으로 호계1동, 북으로 비산2동이 위치했으며 안양교육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효성(구 동양나이론), 신아화학 등이 운집했던 경공업 지역으로 강남, 경남, 대림, 덕원, 현대 등의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신흥개발지역이며 주민의 구성은 토박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죽을 쌓아 농경지에 유입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곳으로 안양면 이전에는 과천면 상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안양면의 전신인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한 곳으로 관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호계2동은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숙종 42년 1716년에 창건되어 대원군 집정 때 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창강서원(또는 호계서원)과 옛 범계주민들이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 초에 설립된 낙영학교는 비록 남아있지 않고 그 기록만 전해질 뿐이지만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안양교육의 발아지였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파연구소가 있고 호계체육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지명유래 - 방죽말(防築洞)

<호계 2동>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下西面의 면사무소 가 있었고, 그 후 1914년 3월부터 1917년 7월까지 始興郡 西二面의 면사 무소가 있었던 유서깊은 고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물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취락이므로 방죽말 (房築洞)이라 칭했다. 그런데 이 방죽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숙종 때 (1699) 발간된 <<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방죽(제언)의 이름은 호계이고, 그 위치는 과천치소(현 과천시 중앙동사무소)에서 서남쪽으로 18리 지점에 있었다. 축조년대는 숙종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에 이미 방죽이있 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방죽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광무 3년(1899)에 발간된<<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하여 방 죽은 虎界에서 虎溪里競宇로 되었고, 이어 일제 때부터 범계방죽으로 불리우다가 1974년부터 실시된 안양6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초에 길일을 택해 방죽 앞에 있던 수령 300년 되는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群雄祭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나무가 죽자 祭를 지내지 않는다.


안양온천 재개발 지역


인양온천 재개발 사업의 정확한 정비사업명이 호계온천주변지구 재개발정비사업으로 위치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915번지 일원으로 총 사업 면적은 41,856㎡ 이며 건축계획으로는 최고 39층 높이의 아파트 9개동을 건설해 1,100세대(분양 942세대 , 임대 158세대)를 입주한다는 계획으로 2019년 3월에 사업시행계획인가가 났으며  4월부터 감정평가를 진행중으로 시공사는 대림산업으로 되어 있다.


 

안양온천(호계온천)


동네 골목을 거닐다 보면 아파트와 주택가 한복판 경수대로733번길 34(호계2동 915-3)에 수도권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온천 하나가 있다. 2003년에 아파트를 짓다가 고온의 온천수가 터지면서 온천과 대형찜질방으로 개장한 안양유황온천이다.(현재는 '유황'자를 뺀 안양온천),


2000년 5월 17일 유황(황화수소) 성분이 다량함유된 고온의 온천수가 발견돼 행정기관의 검사를 거친후 2001년 2월 23일 온천수 이용허가를 득해 온천과 대형찜질방으로 개장한 안양유황온천이다. 지하 804미터에서 끌어올린 물에 유황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아토피에 좋은 물이라고 입소문 나면서 타지에서까지 몰려드는 차량으로 주변이 몸살을 앓아 민원이 쇄도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황' 표기를 삭제했는데 유황성분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군요. 자료를 찾아보니 휘발성이 강한 유황성분의 특성상 2015년 유황성분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어 일반 온천으로 변경되었다.


한때 시설의 노후화, 높은 온도의 수온이 오히려 고객의 발길을 점차 되돌리는 등 경영난으로 부도나 경매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최근 리모델링을 했는데 온천 안에 불가마와 소금방 등을 갖춘 넓은 찜질방도 있는데 평일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게다가 추가비용 없이 찜질방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족단위, 직장동료, 동아리 등에서도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데 비오는 날 따근한 물속에서 비를 맞을 수 있는 폭포수 노천탕이 최고란다.

여전히 안양온천 온천수에는 칼슘, 마그네슘, 스트론튬, 중탄산염이온, 황산이온, 리튬 등 20여종의 총용존고형물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의 면역체계를 증가시켜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신경쇠약, 관절염, 피부질환 등에 좋아 지금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추가 정보로 온천옆(같은 주차장)에는 제주 고기 고깃집 제주돈사돈이 있는데 큼직한 깍두기를 연상케하는 두툼한 고기를 멸젓을 찍어먹는 맛이 기막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163차 탐방(20190629)안양 석수시장 예술난장 및 주변 동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3차_안양 석수시장 예술난장 및 주변 동네

6월 29일(토) 오후 3시/ 집결_석수전화국 사거리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6월 29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3차 여정은 오랫만에 예술가들의 서식지라 불려왔던 석수시장을 비롯 재개발과 도시재생사업이 공존하는 석수2동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석수시장은 2002년 대안공간의 시초를 만든 '스톤앤워터'가 둥지를 틀고 '안양천프로젝트', '석수아트프로젝트-블랙마켓' 다양하고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 한때 예술인들이 석수시장 주변에 공방과 작업실을 마련해 다양한 협업과 작품활동에 나서는 등 석수시장속 예술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듯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떠나고 석수시장과 주변 거주지 또한 재개발 붐으로 환경이 바뀌면서 문화예술 전시나 공연 등을 보기가 쉽지않은 상황으로 지금은 흐릿한 흔적들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지요.

그래도 사람은 바뀌었지만 명칭을 유지해왔던 스톤앤워터에서  때마침 2019 문화가 있는 날 <석수시장- 예술난장판> 두 번째 행사를 6월 29일 오후3시부터 9시까지 연다는 소식을 접해 어떤일이 있을까 궁금과 기대속에 당초 호계 온천 재개발지구를 돌아볼 일정을 긴급  변경해 찾아갑니다.

 

스톤앤워터 '석수시장- 예술난장판'

비영리문화예술단체 스톤앤워터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2019년 '문화의 날'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사업 운영단체로 선정돼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석수시장에서 개최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전시 및 공연 그리고 물물교환시장이다.

마을예술축제로 진행되는 '예술난장판' 6월 행사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물물교환난장 ▲다양한 전시·체험 프로그램 ▲전지의 만화방 '페이지 91' ▲허비의 '은밀한 상점' ▲'해달 정상회담' with 화가난 화가 ▲마을 사진관외 다수의 게스트가 참여한다.

또 오후 2시, 7시, 8시에는 특별공연도 마련해 행사장을 찾는 주민들에게 색다른 문화 감성을 전달하고 석수시장 상인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먹거리 부스도 운영한다는데 그대가 되면서도 지난 사업들을 돌아볼때 걱정 또한 적지않다.  

안양 석수2동 소개  

안양 석수2동은 동(東)으로 석수1동, 서(西)로 석수3동, 남(南)으로 박달동, 북(北)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동 및 광명시 일직동과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취락으로 꽃챙이(花倉洞). 벌터(坪洞), 신촌(新村), 연현(鳶峴) 등이 있습니다.
안양 서북단에 위치한 석수2동은 지금의 안양육교 일대가 예전에는 산세가 높고 후미진 곳이어서 서울로 가는 과객이나 보부상 등이 이곳을 지나치자면 산적이나 강도들에게 수난을 겪을만큼 험준한 곳이었으나 구 한말에 경부선의 철도부설로 고개가 낮추어졌고, 이어 신작로가 건설되면서 교통의 편리로 점차 취락이 발달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안양육교는 1905년 을사조약이 조인된 지 5일 후인 동년 11월22일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이 기고만장하여 수원지방에 유람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안양출신 원태우(元泰祐) 지사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아 치욕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광명시 일직동과 접경한 벌터마을은 1960년대 초에 경기도종축장이 들어서면서 폐동되었으나, 경기도종축장이 1970년대에 다시 경기도 광주로 이전되자 폐허화 되었으며, 안양천변과 만안로변에 자리잡은 신촌은 1956년 수도영화사에 의해 안양촬영소가 설치되어 한 때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본 고장으로 각광을 받던 곳입니다. 또 꽃 재배지로 유명했던 꽃챙이 마을은 아파트단지와 주택지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되었지요.
석수동(石水洞)은 관악산과 삼성산에 둘러쌓인 안양유원지 일대에 석 (石工)이 많아 石手洞이라 하였으나, 1932년 안양풀(과거 안양유원지 - 현 안양예술공원)에 개설된 수영장이 石水洞水泳場 으로 불리면서 石手가 石水로 바뀌게 됩니다.

 

시장 속 예술의 시작 ‘스톤앤워터’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재래시장에서 예술하기
비영리예술단체 ‘스톤앤워터’가 펼치는 ‘지역예술공동체 세상’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mi0904&logNo=220184249844

 

구도시와 신도시. 도시의 중심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한다. 엄마 세대엔 중심지였던 곳이 이젠 사람들이 찾지 않던 구도시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스톤앤워터'가 활동하는 안양 역시 마찬가지다.
'석수동'이란 동네가 위치한 ‘안양’은 크게 동안구와 만안구로 나뉜다. 이중 동안구는 1993 ‘평촌신도시’가 조성된 뒤 인근지역으로 교통, 산업, 교육 시설들이 밀집되면서 현재까지 ‘안양의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과거 중심지인 만안구는 그 기능을 동안구에 넘겨준 뒤, 자연스럽게 ‘구도시’가 되었다. 이젠 만안구는 수시로 바뀌고 번복되는 재개발 분위기 속에서 정체기를 겪고 있는데, ‘석수동’은 바로 이 ‘구도시’에 속한 지역이다.
이 석수동에 '시장'이 자리했다. 정확히 시장은 아니고, 시장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시장을 처음 찾는 외부인이라면 반드시 동네 주민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만큼 위치를 찾기 쉽지 않고, 공간을 알리는 시장간판도 없다. 최근 재래시장들이 경쟁력을 갖추고자 시설교체 뒤 새단장을 시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시장은 시간이 정지된 모습이다. 몇몇 공간은 닫히거나 비어 있었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손님을 맞는 상인들도 적었다. 시장이라 불리기엔 무색할 만큼 주변은 한산했고, 자세히 살펴보면 구조도 기존 전통시장과는 달랐다.

 

시장 속 예술의 시작 ‘스톤앤워터’
석수시장은 안양 중앙시장에 몰려 있던 지역 주민들을 안양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으로 생겨난 재래시장이었다. 시장은 1979년 정부정책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야채도매시장으로 출발하였다. 3천 여 평 면적의 대지에 자리한 시장은, 정방형 광장을 중심으로 120여 개의 소형 점포들이 광장을 둘러싼 구조였다. 기존 재래시장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운영권도 시가 아닌 민간업체인 ‘석수유통’이 맡아 왔다.
하지만 계획은 잘 실천되지 못했다. 이 시장은 시작부터 실패한 반쪽시장이었다. 이후 지역이 '구도시'로 변하고, 대형마트와 주변지역 전통시장들과 대형마트에게 밀리면서 시장은 존속 기로를 논하는 처지가 된다. 현재 시장은 30여 개만 남은 소 점포와 '우리마트'라는 중형마트가 축소된 시장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시장에 2002년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비영리예술단체가 들어온다. 바로 이 단체가 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생활 속 예술’ 추구하고, ‘대안공간의 시초’를 만든 '스톤앤워터'였다.

 

골목에 스며든 공공예술
‘석수’라는 시장이름에서 따온 ‘스톤앤워터’는 2002년부터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시장을 무대삼아 ‘석수아트프로젝트’라는 기획행사를 진행하였다.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쉽게 접하는 게 이 단체의 취지였다. 넓게는 예술의 '자율성'과 시민을 위한 '공공성'에 주력했다.
시장 속 유휴공간은 전시공간과 작가 창작스튜디오로 만들어 석수시장을 하나의 ‘예술촌’으로 만들었다. 시장 내 점포와 점포 사이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으나, 오히려 이 과정이 작가들에겐 예술 실험의 소재로 적용되었다.
또 스톤앤워터는 시장상인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리폼공작소' 프로그램, 지역학교와 연계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을 무대로 한 공공예술을 시도해왔다. 스톤앤워터가 추진하는 이 과정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통해 진행해왔다. 단, 적은 예산이어서 지역 기업들과 개인들의 기부금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많은 공공미술은 마치 게릴라처럼 한 지역에 들어와선 순식간에 작업하고 사라져버리고 현상이 많죠. 이렇게 그 지역에 대한 이해나 소통 없이 작품들만 남겨 놓는 공공미술 과정을 탈피하고자 스톤앤워터가 시도한 게 시장 내 창작스튜디오였어요.
스톤앤워터는 석수시장에서 다져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안구 다른 지역으로도 ‘생활 속 예술’을 넓히는 중이다. 지난 9월 29일 스톤앤워터는 만안구 박달동 소재의 박달시장에 복합문화공간인 ‘밥그릇’을 만들었다. 밥그릇은 8평 규모의 반찬가게 자리로, 소모임과 문화예술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재 단장했다. 이 공간은 시장을 찾은 지역주민과 상인, 예술가가 만나는 거점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뒤이어 10월 16일에는 안양역이 위치한 안양1동에 위치한 유흥업소 '목련'을 ‘안양 1, 2번가 문화발전소 _ 매그놀리아(Magnolia)'로 변신시켜 예술로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매그놀리아는 과거 안양의 최대 유흥가, 번화가였던 곳에 위치한 업소였으나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 이 빈 공간을 스톤앤워터가 전시, 워크숍, 창작작업실 등이 이뤄질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구도시 소재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공공미술운동을 펼쳐 온 ‘스톤앤워터’.
비영리예술단체가 도시변화와 시장경제에 의해 쇠퇴하는 재래시장을 예술가의 방식으로 지역문화를 조성하였고, 나아가 지역의 특성을 재발견하여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다. 스톤앤워터가 만드는 예술로 살아나고 하나되는 마을을 기대해본다.
글. 이나미 (사회적기업 기자단)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162차 탐방(20190622)안양 평촌중앙공원과 알뜰벼룩시장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2차_안양 평촌중앙공원과 알뜰벼룩시장

6월 22일(토) 오후 3시/ 집결_범계 우편물집중국 정문앞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6월 22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2차 여정은 지난주에 이어 평촌 도심을 찾아갑니다. 이날은 수도권 최대 규모의 알뜰벼룩시장으로 매주 차없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알뜰나눔장터를 구경하고 평촌의 기장 넓은 휴식공간인 평존중앙공원에는 무엇이 있나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특히 이날 오후 평촌중앙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안양군포의왕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준비한 6.10민주항쟁 32주년 기념식 및 시민문화제 행사가 열리기에 사진전과 체험부스 등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안양 알뜰나눔장터

 

현재 안양 알뜰나눔장터로 불리우는 반짝 중고물품 시장은 안양시가 지난 2001년 알뜰벼룩시장이란 이름으로 평촌 중앙공원 차 없는 거리에서 첫 선을 보이며 운영을 시작한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주말마다 열리고 있는 수도권최대의 알뜰장터이자 착한 소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촌 중앙공원 차없는 거리(평촌대로 212번길 ∼ 관평로 170번길)에서 열리는 알뜰나눔장터는 무더위 혹서기인 7.8월과 추석연휴(9.14일), 시민축제, 고농도 미세먼지 발령시, 우천 등의 기상악화 시에는 열리지 않으며, 동절기에는 오후 5시로 한 시간 앞당겨 폐장한다.

알뜰나눔장터의 취급물품은 각 가정에서 잠자고 있는 재활용 가능한 물품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의류, 도서, 완구류, 기타 소형 중고물품 등이며 판매 또는 교환할 수 있다. 반면 신제품, 동·식물이나 음식물은 취급대상에서 제외되고 품목당 5만원 이상의 고액 물품도 판매할수 없다.
알뜰나눔장터 물품 판매자는 안양시민(신분증 지참), 외국인(안양시 관내 거소자), 어린이 및 청소년(타 지역도 가능)로 당일 10시30분 현장에서 참가신청과 함께 신분 확인후 추첨을 통해 자리를 배정받게 된다.(신청서 배부 10시부터)

안양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의 경우 모두 16차례 열렸는데 직접 참여한 인원은 1만3천여 명에 이르고 알뜰나눔장터를 찾은 사람은 1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에는 19차례로 3회 더 운영돼 1만7천여 명이 참여했고 다녀간 인원은 20만 명이 넘었다. 안양시민 3명중 한명이 방문한 셈으로 첫 운영되던 초창기에 회당 6백여 명 참여하고 연간 다녀간 인원은 10만 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가 늘어났다.

2018년 부터는 청소년과 외국인들에게 까지 기회가 주어졌다. 2018년의 경우 청소년 1천백여명이 참여해 알뜰경제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으며, 자국의 중고물품을 들고 나온 외국인들로 인해 그들 간 만남의 장소이자 외국문화를 접하는 기회도 되고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161차 탐방(20190615)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과 귀인동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1차_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과 귀인동

6월 15일(토) 오후 3시/ 집결_도매시장 옆 한신아파트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6월 15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1차 여정은 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과 주변 동네로 아파트단지 사이로 민백초, 귀인초, 귀인중, 백영고 등 학교들이 밀집한 귀인동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
1. 개장일 : 1997. 9. 6

2. 소재지 :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934-1외 1

3. 목적

    -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신선한 농수산물 공급

    - 생산자,소비자 보호로 국민생활 향상   

4.농협직영 관리사무소 인력 : 3팀(관리,운영,시설팀) : 31명(직원 21,정원외 지원인력 10명)

5.영업시간 (휴일 : 1, 3주 일요일)

   - 청과부 ; 과일 08:00~20:00,          채소 08:00~19:00

   - 수산부 : 선어,패류 09:00~22 :00   활어 11:00~23:00

   - 관련상가 : 06:00 ~22:00               직판상가 : 06:00~19:00

 6. 대지 : 25,740평, 건물 : 24개동 21,262평

7. 공사비 : 73,373백만원

8, 상가현황 : 청과동,채소동,수산동,회센터,직판상가,관련상가등

   - 주차장: 무료 1,284면(지상 676, 지하608면)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공지]안양탐사대 이번주(20190608) 탐사 쉽니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이번주(6월 8일) 여정_쉽니다


이번주(6월 8일) 탐사는 안양체육관에서 8-9일 이틀간 진행되는 2019경기과학축전 및 제18회 안양시사이버과학축제에 길라잡이가 참석하는 관계로 부득이 한주 쉽니다. 다음주 탐사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체험거리가 있는 안양체육관으로 구경오세요! 

 

[공지]안양탐사대 이번주(20190601) 탐사 쉽니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이번주(6월 1일) 여정_쉽니다


이번주(6월 1일) 탐사는 길라잡이 및 탐사대원 대다수가 참여하고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최하는 '2019 안양시민 생물다양성 대탐사' ( https://anyangbank.tistory.com/5041 )참여 관계로 부득이 한주 쉽니다.  다음주 탐사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6년(2013-2018) 발걸음

https://anyangbank.tistory.com/4628?category=757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