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공지]안양탐사대 176차 탐방(20191214)2019년 종강 & 관양 부림마을 골목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6차_안양 관양동 부림마을 골목

12월 14일(토) 오후 4시/ 집결_관양사거리옆 관양중 버스정류장 앞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당초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탐사대원들의 바쁜 일정으로 내년으로 연기합니다.

 

2019년 탐사 일정을 종감하며 12월 4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76차 여정은 안양 관양동 부림마을을 찾아갑니다. 이 동네는 1970년대 이전 학의천 건너에 대한전선 안양공장이 있어 노동자들도 많이 살았고 인덕원과 가까워 오리조밀 골목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제법 많았던 동네이지요.

 

옛 지명

■ 부림말 (富林洞) <관양1동>가운데말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남평 문씨와 밀양 박씨가 배판했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 부 자가 많이 산다고하여 부림말 (富林洞)이라 칭한다. 부림말은 비산동- 인덕원간의 도로확장후 대도, 한미, 골드, 남광, 삼광, 원주 등의 연립 및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에 관양우체국 옆에 있던 박우물과 신 장로우물, 부림우물(윗우물)에서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井祭를 지내다가, 우물 주변에 민가가 건립되면서 샘물이 끊겨 폐정되자, 1988년 부터 祭를 지내지 않는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공지]안양탐사대 175차 탐방(2019107) 중촌마을과 관양시장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5차_안양 관양동 중촌마을과 관양시장 & 백범 김구선생 안양방문 흔적

12월 07일(토) 오후 3시/ 집결_관양사거리 노을어린이공원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당초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탐사대원들의 바쁜 일정으로 내년으로 연기합니다.

 

2019년 12월 07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5차 여정은 지난주 돌아보지 못한 안양 관양동 수촌마을과 옆 동내 중촌마을, 관양시장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 안양방문 기념비를 찾아갑니다.

중촌마을은 1970년대 이전 안양에서 과천-청계-말죽거리를 잇는 길이 있던 수촌마을과 동편마을 중간에 있던 마을로 이 동네에는 1970년대 이후 지어진 다세대 다가구들이 많지만 관악산 방향 북쪽 골목에 들어서면 연예인도 살았던 고급 타운하우스들이 있어 안양에도 이런곳이 있나 싶을 정도이지요. 

수촌마을 쪽으로는 전통시장인 관양시장이 있는데 중앙시장, 남부시장, 박달시장에 못지않은 다양한 품목의 물건들과 먹거리도 풍성해 시장을 찾는 이들의 많아 매우 활기를 띄고 있지요.

관양고에서 동편마을로 가는 우회도로옆 산자락에는 안동김씨 대종친회 문중땅이 있는데 문영공(휘 恂:충렬공 3째 아드님) 묘소가 있지요.

일동로 129-133 도로 도로 우측 삼거리에서 보면 산으로 오르는 샛길이 있지요. 산길을 한 60미터 정도 올라서면 좌측 나무 숲사이로 가족묘지가 보이는데 이는 문영공 후손으로 선산을 문중에 기증한 김정묵(定默) 전 경기도의원의 묘소입니다. 그는 초대 안양시의원으로 안양시의회의장을 역임하기도했지요. 산소 좌측으로 10여 미터 오르면 울창한 참나무 숲에 들러 싸인 넓찍한 공간에 혼유석과 망석, 망주석과 신도비에 둘러싸인 묘소가 있는데 이 묘소가 안동김씨 문영공의 묘소입니다.

이 곳이 관심을 받는 것은 1940년 중국 중경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에 선출됐던 백범김구 선생이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귀국한 후 1949년 4월 5일 청명일(한식)을 맞아 열린 종친회 행사에 다녀갔기 때문이지요.
종친회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전국 종친 100여 명이 모여 절사(節祀)를 올리고 난후 선생의 귀국 환영을 하는 자리도 열고 기념촬영을 했는데 당시 검은 두루마기에 안경을 쓰고 함께 사진을 찍은 기록도 남아 있는데 당시 김구 선생이 안양에 왔다는 소식에 관양동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종친들은 이날 선생의 정치활동을 위한 기금도 모았는데 선생께서는 '이 돈은 받을 수 없다' 하고 만류하여 문영공 종회에서는 회의를 통해 이 기금을 문영공파 종비(宗費)로 이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종친회에서는 김구 선생이 안양 관양동을 다녀간 것을 기념하여 2009년 5월에 문영공 묘소 앞에 기념 비석을 세웠는데 지난해 기년비가 안보인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을 하려 합니다.   

관련글: [안양]안양을 다녀간 백범 김구선생 기념비(2017.03.19) https://anyangbank.tistory.com/2286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공지]안양탐사대 174차 탐방(20191130) 관양 수촌마을 골목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4차_안양 관양동 수촌마을 골목

11월 30일(토) 오후 3시/ 집결_운동장사거리 정성담명가원 설렁탕 앞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당초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탐사대원들의 바쁜 일정으로 내년으로 연기합니다.

 

2019년 11월 30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4차 여정은 안양 관양동 수촌마을을 찾아갑니다. 이 동네는 1970년대 이전 안양에서 과천-청계-말죽거리를 잇는 길의 중간으로 길손들이 점시 쉬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던 주막집이 있던 동네로 지금도 옛길 양쪽으로는 많은 음식점과 술집들이 있지요. 이 동네 끝자락은 1900년에 지어진 현대아파트가 있는데 당시로서는 넓은 평수에 관악산 남쪽에 있는  명당자리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정부 부처 장관들과 별을 단 군 장성들도 많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아파트 노후화로 재개발이 추진중이지요. 

특히 이 동네에는1970년대 이후 지어진 다세대 다가구들이 많은데 그래도 다보란, 꽃동산, 수목, 해동, 수촌등 여러개의 어린이놀이터겸 쌈지공원들이 자리하고 있지요. 

 

 

■ 안날미(內飛山) <비산3동>안양종합운동장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上西面 內 飛山里라칭했다가, 1914년에 내비산리와 외비산리를 통합, 비산리로 통칭 되자 자연취락으로 전락되었다. 이곳에 처음 세거한 성씨는 전주 이씨 익안대군파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후 덕수 장씨, 문화 류씨, 보성 오씨 등이 살아와 현재는 전주 이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다. 비산동 골짜기 안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안날미 라 칭하고 있는데, 마 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따라 동쪽 지역은 웃말(또는 음짓말), 서남 쪽지역은 아랫말(또는 양짓말)이라 각각 부르고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길일을 태해 안양종합운동장 북쪽 柳德玉(1653 - 1711 안악군수 역임)묘소 위에 있는 노송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위해 산신제를 지내다가 외지인이 많이 입주하자 1970년대 말부 터 祭를 지내지 않고 있다. 이곳에는 류덕옥의 묘를 비롯하여 유탁 (1686- ?, 문과급제), 장언방(병조참판 역임) 등의 묘가 있다.

 

■ 말무덤이(馬音洞) <관양1동>뺌막(秀村)과 가운데말(中村)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로, 조선시대 마장골 (현 매곡동)에서 기르던 말이 죽으면 이곳에 매장했다고 하여, 말무덤이 (馬音洞)이라 부른다고 한다. 일설에는 큰 무덤이 있는 고싱라 하여 말 무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60년대만 해도 현 관양중학교 아래에서 말에게 편자했던 쇠 조각 등이 많이 출토되었다는 마을 촌로들의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말의 무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김해 김씨, 나주 정씨, 韋氏 등이 오래 살아 온 말무덤이 마을이 오늘 날처럼 크게 번창되기는 1978년에 시작된 안양7지구 구획정리 사업을 실시하면서부터 이다. 이후 1982년 현대식 건물이 간간히 신축되다가, 1985년에 이르러 농경지 (논)이었던 곳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선데 이어, 야산이었던 곳에 아리랑 아파트와 남광2차아파트가, 밭과 논이었던 곳에 태광아파트가 각각 신축되면 서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또 밭과 임야였던 관양동 538 일대는 1948년 관양국민학교가 세워졌는 데 이는 동안구청 관내에서는 최초의 현대식 교육기관인 동시에, 이 학교 校名으로 인해 1973년 시제가 실시되면서 이 일대를 冠陽洞으로 명명 하기까지 하였다. 그후 1977년에는 포도밭이었던 관양동 산 90-3에는 관양중학교가 세워져, 한낱 말의 매장지에 불과했던 불모지가 오늘날에는 교육의 요람지로 크게 탈바꿈 되었다. 마을에서는 뺌말, 가운데말 주민들과 함께 해마다 음력 10월 1일 뺌말 뒤에 있는 산에서 山神祭를 지내는 곳이 뺌말 지역이라는 연유로 1960년대 초부터 제를 지내지 않는다.


■ 망령골(亡靈谷) <관양1동>망령골 고개주변에 있다. 본래 동편에 속한 마을로 청주 한씨 등의 세 거지이며, 민가 7호의 작은 취락이다. 구전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나무를 팔고 과천을 거쳐 이곳을 지나가는데, 어느 여인 이 소복을 하고 나타나 하룻밤을 유숙하며 여인과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 후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나 하는말이 관악산 바위 틈에 아이가 있으니 가보시오 라고 한마디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여인이 일러준대로 현장에 띵가보니 과연 바위 틈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 데려다 정성껏 기르니, 이가 후에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라는 것이다. 망령골이란 亡靈, 즉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났다 해서 붙여진 지명인데, 일설에는 어느 여인이 이곳에서 3년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악산을 바라보며 기도했다고 하여 망령골(亡靈谷)이라 했다는 것이다.

 

■ 동편(東便) <관양1동>샌말(間村) 동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이 곳에 최초로 세거한 성씨는 조 선중기에 전주 이씨 익양군파인데, 현재(1991) 동편의 57가구 중 30여 가구가 전주 이씨일만큼 전주 이씨가 크게 번성했다. 후손 중에 李冕薰(작 고, 전매청장 역임), 李書九(1923 .대림콘크리트 상임고문)가 있다. 관양1동 28통에 속한 동편마을은 서남지역을 아랫말, 동북지역을 웃말 이라 각각 칭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인데다가 수도물도 안들어오는 도시속의 농촌이다.

■ 부림말 (富林洞) <관양1동>가운데말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남평 문씨와 밀양 박씨가 배판했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보다 부 자가 많이 산다고하여 부림말 (富林洞)이라 칭한다. 부림말은 비산동- 인덕원간의 도로확장후 대도, 한미, 골드, 남광, 삼광, 원주 등의 연립 및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7월 1일에 관양우체국 옆에 있던 박우물과 신 장로우물, 부림우물(윗우물)에서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井祭를 지내다가, 우물 주변에 민가가 건립되면서 샘물이 끊겨 폐정되자, 1988년 부터 祭를 지내지 않는다.

 

■ 오촌말(吳村洞) <관양1동>샌말 북쪽에 있다. 이곳에 최초로 산 사람은 조선 숙종때 承政院 左承 旨에 증직된 吳益瑞(자는 龍佰, 호는 三山散人)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후 그의 후손인 보성 오씨가 세거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져 오씨의 마을이란 뜻으로 오촌말 이라 칭하고 있다. 마을 뒤에는 그가 생존시에 암각한 三山洞天 이란 바위가 있다.

 

■ 뺌말(秀村) <관양 1동>말무덤이 서편에 있다. 이곳에 사람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조 선 중기로 알려지고 있다. 경상도 김해에서 과거를 보러왔던 김해 김씨 金寧君派의 유생 한분이 과거를 본 뒤 귀향하다 인덕원 쯤에 이르러 관악산을 바라보니 서북쪽 언덕의 지세가 완만하고 남향받 이므로 살기 좋은 곳임을 간파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상주 김씨, 연안 차씨가 세거해 이들 세 성씨를 뺌말의 三大 姓氏 라 일컫는다. 뺌말 (秀村)이란 취락명은, 마을 내에 뺑대쑥(준말로 뺑쑥 이라함)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뺑말이라 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지금 의 지명으로 불리워 오고 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 2일이면 관악산 줄기 나즈막한 봉우리에 있는 당집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기 위해 冠岳山 山神祭를 올린다. 산신제에 있어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산신제를 주관할 堂主를 선정하는 일이다. 당주는 몸가짐이 바르고 집에 상을 당한는 등 부정타지 않은 사람중에서 선정된다. 당주로 선정된 사람은 제를 지날 때까지 바깥 출입을 삼가하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으며, 대문앞에 진흙(또는 황토)을 발라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예전에는 말무덤이, 가운데말과 함께 지내다가 부림말 등에 교회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뺌말 주민들만 지낸다.

 

■ 샌말(間村) <관양1동>동편과 부림말 사이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샌말 (間村)이라 부른다. 전주 이씨, 보성 오씨, 경주 이씨, 광주 이씨의 세거지로 전주 이씨가 대 성을 이룬 샌말은 안양일대에서는 오지에 속하며, 인근의 마을이 하나같이 하루가 다르게 급격한 도시화 추세로 변모되어 가고 있으나, 이 마을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곳에는 중종조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柳秀獐(1435-1515), 李義駿 (황해도 관찰사), 柳寧(1507-1583, 전주판관 역임), 吳炳善(1904-1979, 만 안.안양.관양국교장역임)의 묘가 있다.


■ 샘모루(泉隅) <비산2동>삼호아파트 및 희성촌과 임곡아파트 사이에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에 시흥시 능곡동 뒤일에 살던 안동 권씨 정승공파 후손 한 사람이 분가해서 살다가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이 모두 이 마을에 정착했으나 크게 번성하지 못해 5호의 작은 취락을 이루다가 그 중 2호가 외지로 떠났고, 현재는 3호가 남아있다. 샘모루란 마을명은 구름울(雲谷洞) 초입 산 모퉁이에 샘물이 있는데, 그 주변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소능골(小陵谷) <관양1동>본래 샛말에 속했던 마을로, 샛말에 살던 보성 오씨 후손들의 분가로 취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샛말과 동편 사이에 위치해 있는 소능골은 5 호 남짓한 작은 취락으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능 골 아래 작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소능골 이라 칭하는데, 이곳에 숙종 때 문종가로 이름이 높았던 吳文瑞의 묘가 있었다가 1985년 충남 조치원으로 천묘하였다


■ 수푸루지(林谷洞, 林川) <비산1동>비산사거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 이곳은 조선조 인조 때 좌의정을 역 임한 심기원이 그의 부친인 심간이 죽자 이 마을 뒷산에 예장한 후 그의 후손인 청송 심씨가묘하에 세거하기 시작하였고, 이어 수원 백씨, 고령 박씨, 곡부 공씨, 전주 이씨, 안동 김씨 등이 살기 시작하였다. 이 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나무와 숲으로 둘러쌓인 고을이라 하여 수 푸루지 (林谷洞)라 칭하였다. 또 마을 앞으로 큰 하천(안양천, 임곡천)이 흐른다 하여 수풀내 라 부르기도 하였다. 수푸루지는 1978년 대림전문 대(비산동 526-7)이 건립되고 이어 비산동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예전에는 수푸루지 내에서도 동쪽 지역을 건너말, 서쪽 지역을 아랫말, 북쪽지역을 웃말이라 칭했으며,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 2일에 평화보육원 동쪽에 위치한 당봉 정상에서 山神祭를 지냈다.


■ 시대동 (市垈洞, 舊市場) <안양1동>중앙동 동쪽으로 한국제지와 진흥아파트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안 양의 중심부인데다가 지리적으로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등이 인접해 있어 시장으로서는 최적지였다. 이곳에 시장이 開市되기는 1926 년 1월 28일이었고, 거래되는 품목은 농산물을 위시하여 축산물, 포목, 일 용잡화까지 다양했다. 開市한 1년후(1927)의 년간 매출액을 보면 농산물 이 15만 6천원, 잡화가 21만 2천원, 그밖에 직물, 축산물, 수산물 등 모두 50여 만원에 달했다. 상인들은 개시 12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7년 6월 4일 단오절을 기해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키로 했는데, <동아일보>1927년 6월 1일자에 安養市場 一週紀念 이란 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은 군의 중앙일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따라서 산물도 상당함으로 동면에서는 작년중에 안양시장을 설치한 후 유래 성적이 비상히 양호하던 바 더우기 안양번영의 일책으로 오는 6월 4일(단오일)을 기하여 全市場 일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리라 하며 여흥으로 예기의 가무와 烏山靑年의 素人劇 외 안양소년척후대 주최의 축구대회 및 동화동요회 등이 있어서 많은 흥미가 있으리라더라. 1주년 기념식은 예정대로 동년 6월 4일 오후 2시부터 안양시장 내 광장에서 수천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대 田代 발기인 대표의 식사와 조한구 서이면장의 경과보고, 神尾 시흥군수의 고사, 종문웅(안양금융조합 이사), 조희철(동아일보 시흥지국 기자), 엄기승(안양공보교 기성회장)의 축사에 이어 기녀들의 기무, 소인극등을 공연해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안양시장측에서는 이후로도 씨름대회.그네대회 등을 잇달아 개최하여 시장의 번영을 잇달아 개최하여 시장의 번영을 도모하였는데, 일례로 1933년 8월 25일, 8월30일, 9월 4일 등 장날을 기해 안양역 광장에서 안양씨름대회 를 개최했고, 같은해 음력 7월 30일 장날부터 추석날까지 매 장날마다 씨름대회를 개최해 1등에 황소1頭, 2등에 광목 1疋이 상품으로 수여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저지대로 홍수가 나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침수가 되기 일쑤였고, 더우기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으로 시장이 이전하자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가, 옛 태평방직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진흥아 파트)가 들어서자 번성되기 시작하였다. 1929년에 안양지방에서는 최초 로 전기가 送電된 곳이기도 하다. 市垈洞 이란 마을 명칭은 안양시장이 있었다는 연유에 기인한 것이며, 일명 舊市場 이라 부르기도 한다.

출처: https://anyangbank.tistory.com/525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이번주(11월 23일) 여정_쉽니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이번 주 토요일(11월 23일) 탐사는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독립.민주.인권을 만나는 역사탐방 일정으로 쉽니다. 다음 탐사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공지]안양탐사대 173차 탐방(20191116)_안양9동 담배촌과 천주교 성지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3차_안양9동 담배촌과 천주교 성지

11월 16일(토) 오후 3시/ 집결_병목안 삼거리 시내버스 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당초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탐사대원들의 바쁜 일정으로 내년으로 연기합니다.

 

2019년 11월 16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3차 여정은 안양9동 지역 세번째로 가을이 깊어가는 경기도립공원안에 자리한 담배촌과 돌석도예박물관, 수리산성당과 천주교 성지를 찾아갑니다. 담배촌에는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 살았고 그 이후에도 항아리와 숯을 만들어 살던 깊은 계곡으로 지금도 수리산 성당과 안양8경중 하나로 지정된 최경환 성지가 있지요. 또 가는길 중간에는 안양도예박물관, 담배촌 끝자락 공군부대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변산바람꽃 자생지 등이 있지요.

 

 

안양9동의 동네 지명 알기

 

담배촌

병목안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9동 11통에 속해 있다. 이 마을은 하동 정씨를 비롯하여 금녕 김씨, 원주 변씨, 청주 한씨 등의 세거지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崔京煥 1805.10.15-1839.9.12)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1837년 7월 이곳에 정착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담배를 경작했다고 하여 담배촌 이라 칭한다. 담배촌은 급경사진 곳이 많아 담배는 주로 저지대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 경작했는데,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담배촌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칠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담배촌 주민들은 담배 경작 외에 땔나무와 토종꿀을 채취해 이를 안산장(시흥시 수암동), 군포장(호계3동 구군포), 안양장(안양1동 시대동) 등에 팔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곳이 산간 오지의 마을이라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의 본부가 주둔하기도 했고, 근래에는 병목안에서 담배촌에 이르는 골짜기마다 연중무휴 휴양객으로 붐빈다. 성지에는 복자(福者) 최경환의 묘가 있으며, 성지입구 못미처에 잇는 복자강당은 1977년 대홍수 직후 중건 되었다. 참고:안양시지


새마을

병목안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농경지로 처음에는 신부골(新富谷)로 불리워 오다가 1969년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개칭되었다. 시흥군 안양읍 당시 이곳에 안양 공설운동장 설치 계획을 세웠다가 협소하다 하여 신안양리 신촌(현 석수동 럭키아파트 자리)에 조성되었다.1988년에 양지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참고:안양시지

 

창박골(蒼岩洞)

안양9동 10통에 속한 마을로 병목안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마을 유래는 첫째, 이곳에 많은 바위색이 유독 푸른 심청색(深靑色)이라 하여 창박골(蒼岩洞)이라 불렀고 골짜기를 창암곡(蒼岩谷)으로 칭했다. 둘째, 안양예비군 교육장 서쪽에 큰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어 흡사 창(窓)과 같다하여 “창바위(窓岩)”라 불렀고 이 바위 안쪽을 "창암골" 바깥 골짜기를 "창박골(蒼外谷)" 이라 각각 칭했는데, 이곳에 민가가 생기면서 마을 명칭도

창박골(蒼外谷)로 되었으나 현재와 같이 창박골(蒼岩洞)으로 쓰이기 시작한 연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산 골짜기에 위치한 이곳은 1970년대 병목안, 담배촌 일대가 시민의 휴양지가 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고 이어 1985년 석산연립과 이어 안양서여중이 들어서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마을에서는 음력 7월 1일이면 참박골 앞산(약수터입구)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참고:안양시지

안골(安谷, 內谷)

담배촌 북서쪽으로 안양9동 13통에 속해 있으며, 청주 한씨와 하동 정씨의 세거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도자기를 굽던 곳으로 마을의 지세가 아늑하고 물맛이 좋아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안골 이라 칭한다고 한다. 또 수리산 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므로 안골 이 라 칭한다는 설도 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서울대 국문과 장덕순(張德順1922- )교수가 이곳 윤모씨의 주택과토지를 매입해 요지(窯地)를 설치했다.참고:안양시지

 

능골(陵谷)

현 안양서여자중학교(안양9동 1055-3) 뒷산이 흡사 陵의 활개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능골(陵谷)이라 칭한다. 일설에는 조선조 제21대 영조의 아들로, 속칭 뒤주대왕(사도세자)이 생전에 내가 죽으면 鳶을 띄워 떨어지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며 연을 띄웠는데, 그 후 신하들이 연 떨어진 곳을 살피니 그 곳이 바로 능골이었다는 것인데, 그 후부터 능 후보지였다는 연유로 능골 (陵谷)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능골은 원주 변씨가 배판한 이래 채씨, 김씨등이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일제 강점기만 해도 불과 15호 남짓한 작은 촌락이었으나, 삼영하드보드 (안양3동774, 1946년 설립, 선창산업주식회사로 개칭), 삼진알미늄, 한국 아트제지 등 유수의 공장이 들어서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어 안양서여자중학교, 신안국민학교(안양3동 730, 1977년에 설립), 신안중학교(안양3동 728, 1980년에 설립) 등 교육기관이 속속 들어섰다. 1986년에 는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 자리에 프라자아파트가 신축되어 마을이 일신되었다. 보통 병목안을 웃능골이라 부르는데 반하여 이 마을을 일컬어 박능골이라 칭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1979년 안양서여자중학교를 신축할 때 대리석으로 된 대형십자가가 출토된 것을 이 학교 화장실 부근에 묻었다고 한다. 참고:안양시지

 

율목동(栗木洞)

안양 3동 11통.12통에 속해 있는 마을로 노적봉 밑에 위치해 있다. 밤 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율목동(栗木洞) 이라 칭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인 1933년과 1934년에는 동아일보사와 그 자매지인 신가정新家(현재의 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전국부인 밤줍기대회가 열릴만큼 밤의 명산지로 유 명했던 마을이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밤줍기대회 관련기사 중 그 일부를 전재한다 -풍부한 상품 재미있는 경기- "신동아사 신가정부 주최로 제1회 부인습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하늘높고 바람맑은 요즈음 가을날 하루를 이용하여 우리 부녀들이 한 곳에 모여 유쾌한 시가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이번에 여는 이 습율대회는 다만 습율 그것을 목적함이 아니라 이렇게 부녀들만 여러 백만 모이는 가운데 서로 교제하고 친목하여 우리 부녀들의 기운을 돋우고 저 함에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날 하루를 유쾌히 놀게 하기 위하여 재미있는 유희도 있겠고, 또 습율기타 여러가지 쉬운 경기들이 있겠으며 그 위에 상품을 많이 준비하여 둔것만큼 이번 대회처럼 재미있는 모임이 없을 것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가정부인 되신이들은 이 대회에 참가하여 시원한 들판으로 나오셔서 집안에서 받은 오랜 동안의 피로를 이날 딱 하루에다 씻어버리시고 그리하여 다시 새 기운을 얻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래 대회의 날짜와 장소와 그밖에 여러가지 규정을 발표합니다" [ 대 회 규 정 ] - 날 짜 : 10월 1일(일요일) - 곳 : 안양 - 모일때: 용산역 - 모일시간 : 오전 8시 반 - 떠날시간 : 오전 9시 10분(안양에는 동 49분) -------- 이 하 생 략 ----------- 동아일보 1933.9.26 밤나무 숲이었던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2년 당시 시흥군 안양읍에서 강원도 평강(平康)등 난민들을 집단 이주 시키면서부터 이다. 1977년 7월 8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불과 4시간 동안 쏟아진 집중호우로 해발 110m의 노적봉이 산사태로 이 마을 주민 8가구 29명이 몰사(沒死)하였다. 참고:안양시지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공지]안양탐사대 172차 탐방(20191109)_안양예술공원& apap6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2차_안양에술공원 & apap6

11월 09일(토) 오후 3시/ 집결_안양박물관 앞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당초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탐사대원들의 바쁜 일정으로 내년으로 연기합니다.

2019년 11월 9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2 여정은 2019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6) 가 진행중인 안양예술공원을 찾아, 작품 구경뿐아니라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안양예술공원의 가을 정취도 느끼고 빈대떡에 막걸리도 한잔하며 간만에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apap6 알아보기: https://anyangbank.tistory.com/5393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공지]안양탐사대 171차 탐방(20191102)_안양9동 창박골과 담배촌1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1차_안양9동 창박골과 담배촌

11월 02일(토) 오후 3시/ 집결_창박골 시내버스 종점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당초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부 탐사대원들의 바쁜 일정으로 내년으로 연기합니다. 

 

2019년 11월 2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1차 여정은 안양9동 지역 두번째로 안양9동의 서쪽 끝자락으로 수리산 계곡에 있는 마을 창박골을 찾아갑니다. 안양탐사대가 창박골을 찾아가기는 3차 탐사(2013년 2월16일) 이후 처음이니 5년만이네요. 그만큼 관심도가 먼 지역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에도 옛 집들은 대부분 없어지고 속칭 원룸(도시생활형 주택) 주택들이 들어서 옛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깊어기는 가을 수리산의 풍광을 보면서 힐링하는 탐방길이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안양9동의 동네 지명 알기

 

창박골(蒼岩洞)

안양9동 10통에 속한 마을로 병목안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마을 유래는 첫째, 이곳에 많은 바위색이 유독 푸른 심청색(深靑色)이라 하여 창박골(蒼岩洞)이라 불렀고 골짜기를 창암곡(蒼岩谷)으로 칭했다. 둘째, 안양예비군 교육장 서쪽에 큰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어 흡사 창(窓)과 같다하여 “창바위(窓岩)”라 불렀고 이 바위 안쪽을 "창암골" 바깥 골짜기를 "창박골(蒼外谷)" 이라 각각 칭했는데, 이곳에 민가가 생기면서 마을 명칭도 창박골(蒼外谷)로 되었으나 현재와 같이 창박골(蒼岩洞)으로 쓰이기 시작한 연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산 골짜기에 위치한 이곳은 1970년대 병목안, 담배촌 일대가 시민의 휴양지가 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고 이어 1985년 석산연립과 이어 안양서여중이 들어서며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마을에서는 음력 7월 1일이면 참박골 앞산(약수터입구)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참고:안양시지

담배촌

병목안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안양9동 11통에 속해 있다. 이 마을은 하동 정씨를 비롯하여 금녕 김씨, 원주 변씨, 청주 한씨 등의 세거지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崔京煥 1805.10.15-1839.9.12)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1837년 7월 이곳에 정착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담배를 경작했다고 하여 담배촌 이라 칭한다. 담배촌은 급경사진 곳이 많아 담배는 주로 저지대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서 경작했는데,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담배촌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칠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담배촌 주민들은 담배 경작 외에 땔나무와 토종꿀을 채취해 이를 안산장(시흥시 수암동), 군포장(호계3동 구군포), 안양장(안양1동 시대동) 등에 팔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곳이 산간 오지의 마을이라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의 본부가 주둔하기도 했고, 근래에는 병목안에서 담배촌에 이르는 골짜기마다 연중무휴 휴양객으로 붐빈다. 성지에는 복자(福者) 최경환의 묘가 있으며, 성지입구 못미처에 잇는 복자강당은 1977년 대홍수 직후 중건 되었다. 참고:안양시지

새마을

병목안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농경지로 처음에는 신부골(新富谷)로 불리워 오다가 1969년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개칭되었다. 시흥군 안양읍 당시 이곳에 안양 공설운동장 설치 계획을 세웠다가 협소하다 하여 신안양리 신촌(현 석수동 럭키아파트 자리)에 조성되었다.1988년에 양지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참고:안양시지

안골(安谷, 內谷)

담배촌 북서쪽으로 안양9동 13통에 속해 있으며, 청주 한씨와 하동 정씨의 세거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도자기를 굽던 곳으로 마을의 지세가 아늑하고 물맛이 좋아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안골 이라 칭한다고 한다. 또 수리산 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므로 안골 이 라 칭한다는 설도 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서울대 국문과 장덕순(張德順1922- )교수가 이곳 윤모씨의 주택과토지를 매입해 요지(窯地)를 설치했다.참고:안양시지

 

능골(陵谷)

현 안양서여자중학교(안양9동 1055-3) 뒷산이 흡사 陵의 활개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능골(陵谷)이라 칭한다. 일설에는 조선조 제21대 영조의 아들로, 속칭 뒤주대왕(사도세자)이 생전에 내가 죽으면 鳶을 띄워 떨어지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며 연을 띄웠는데, 그 후 신하들이 연 떨어진 곳을 살피니 그 곳이 바로 능골이었다는 것인데, 그 후부터 능 후보지였다는 연유로 능골 (陵谷)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능골은 원주 변씨가 배판한 이래 채씨, 김씨등이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일제 강점기만 해도 불과 15호 남짓한 작은 촌락이었으나, 삼영하드보드 (안양3동774, 1946년 설립, 선창산업주식회사로 개칭), 삼진알미늄, 한국 아트제지 등 유수의 공장이 들어서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어 안양서여자중학교, 신안국민학교(안양3동 730, 1977년에 설립), 신안중학교(안양3동 728, 1980년에 설립) 등 교육기관이 속속 들어섰다. 1986년에 는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 자리에 프라자아파트가 신축되어 마을이 일신되었다. 보통 병목안을 웃능골이라 부르는데 반하여 이 마을을 일컬어 박능골이라 칭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1979년 안양서여자중학교를 신축할 때 대리석으로 된 대형십자가가 출토된 것을 이 학교 화장실 부근에 묻었다고 한다. 참고:안양시지

 

율목동(栗木洞)

안양 3동 11통.12통에 속해 있는 마을로 노적봉 밑에 위치해 있다. 밤 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율목동(栗木洞) 이라 칭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인 1933년과 1934년에는 동아일보사와 그 자매지인 신가정新家(현재의 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전국부인 밤줍기대회가 열릴만큼 밤의 명산지로 유 명했던 마을이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밤줍기대회 관련기사 중 그 일부를 전재한다 -풍부한 상품 재미있는 경기- "신동아사 신가정부 주최로 제1회 부인습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하늘높고 바람맑은 요즈음 가을날 하루를 이용하여 우리 부녀들이 한 곳에 모여 유쾌한 시가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이번에 여는 이 습율대회는 다만 습율 그것을 목적함이 아니라 이렇게 부녀들만 여러 백만 모이는 가운데 서로 교제하고 친목하여 우리 부녀들의 기운을 돋우고 저 함에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날 하루를 유쾌히 놀게 하기 위하여 재미있는 유희도 있겠고, 또 습율기타 여러가지 쉬운 경기들이 있겠으며 그 위에 상품을 많이 준비하여 둔것만큼 이번 대회처럼 재미있는 모임이 없을 것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가정부인 되신이들은 이 대회에 참가하여 시원한 들판으로 나오셔서 집안에서 받은 오랜 동안의 피로를 이날 딱 하루에다 씻어버리시고 그리하여 다시 새 기운을 얻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래 대회의 날짜와 장소와 그밖에 여러가지 규정을 발표합니다" [ 대 회 규 정 ] - 날 짜 : 10월 1일(일요일) - 곳 : 안양 - 모일때: 용산역 - 모일시간 : 오전 8시 반 - 떠날시간 : 오전 9시 10분(안양에는 동 49분) -------- 이 하 생 략 ----------- 동아일보 1933.9.26 밤나무 숲이었던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2년 당시 시흥군 안양읍에서 강원도 평강(平康)등 난민들을 집단 이주 시키면서부터 이다. 1977년 7월 8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불과 4시간 동안 쏟아진 집중호우로 해발 110m의 노적봉이 산사태로 이 마을 주민 8가구 29명이 몰사(沒死)하였다. 참고:안양시지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이번주(10월 19일) 여정_쉽니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이번 주 토요일(10월 26일)에는 길라잡이의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독립.민주.인권을 만나는 역사탐방 안내 관계로 한주 쉽니다. 다음 탐사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파란하늘과 선선한 바람,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풍성한 행사들이 펼쳐지는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이번주(10월 19일) 여정_쉽니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오는 토요일(10월 19일)에는 안양지속가능발전협의회 주최의 2019 안양시 지속가능발전 한마당(안양시청) 행사를 비롯 평생학습 한마당축제(안양시평생학습교육원 광장), 제1회청년축제(평촌로데오거리-범계역), 임산부의날 기념음악회(안양아트센터 수리홀) 등 그야말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립니다. 특히 길라잡이를 비롯 여러 멤버들이 지속가능발전 한마당 행사에 참석하는 관계로 부득이 한주 쉽니다. 다음 탐사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파란하늘과 선선한 바람,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풍성한 행사들이 펼쳐지는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공지]안양탐사대 170차 탐방(20191012)_채석장행 철길 흔적과 안양9동 새마을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70차_병목안 책석장 철길 흔적과 안양9동 새마을

9월 28일(토) 오후 3시/ 집결_병목안삼거리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하고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168차(2019.09.28)-안양8동 명학마을/도시재생-뉴딜사업지

169차(2019.10.05)-안양5동 냉천마을/재개발지역

170차(2019.10.12)-안양9동 후두미동과 안양3동 신안초교 일대/골목여행

171차(2019.10.19)-APAP7 맞이 예술공원 예술작품

172차(2019.10.26)-안양 원도심역사기행/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

173차(2019.11.01)-좋은집과 양명고일대/공원일몰 해제지역

174차(2019.11.08)-인덕원 및 관악고 주변/재개발

175차(2019.11.15)-대학탐방 1 성결대

176차(2019.11.22)-대학탐방 2 안양대

177차(2019.11.29)-대학탐방 3 연성대

178차(2019.12.06)-대학탐방 4 대림대

179차(2019.12.13)-대학탐방 5 경인교대

180차(2019.12.20)-대학탐방 6 계원예대

181차(2019.12.27)-2019년 탐사 마무리


2019년 10월 12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0차 여정은 병목안채석장 철길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곳과 과거 새마을이라 불리우던 안양9동을 찾아갑니다. 이 동네는 정부가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지정했다가 15년만에 해제된이후 노후화된 주택들이 도시생활형 임대주택들로 바뀌면서 옛 마을의 흔적들이 사라져 왠지 삭막하고 낯선듯한 풍경으로 바뀌었지요. 

 

 

새마을에 대한 이야기

 

새마을은 안양역에서 삼덕공원을 지나 담배촌과 창박골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농경지로서 처음에는 신부골(新富谷)로 불리워 오다가 1969년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개칭되었지요.
1977년 안양 대홍수때는 산자락이 무너져 내리고, 수암천변의 주택들이 물살에 쉽쓸려 내려가면서 이곳에서만 수십여명의 주민들이 숨지는 아픔도 있었지요.
새마을 안쪽으로 서쪽 끝자락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1988년에 설립한 양지초등학교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시흥군 안양읍 당시 이곳에 안양공설운동장 설치 계획을 세웠다가 협소하다 하여 신안양리 신촌(현 석수동 럭키아파트 자리)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안양 비산동에 새로 조성되어 이전되었지요.
참고로 안양9동은 지형적으로 병목안을 기점으로 서쪽지역을 새마을, 서남쪽 지역을 창박골, 남쪽지역을 담배촌이라 칭합니다. (예전에 3동이었는데 분동이 되면서 쪼개졌지요. 그래서 9동이 1~8동 다음에 있는 줄 알고 8동의 성결대 인근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찾아가는 분도 가끔 있습니다- 장내동, 명학동, 냉천동, 교하동, 시대동.... 등 옛지명이 그립네요)
병목안은 안양3동 프라자아파트 끝인 새마을교에서 담배촌과 창박골로 갈라지는 삼거리의 슈퍼까지의 지역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뒤띠미(後頭尾洞)라 칭했고,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과천군 하서면 후두미동으로 불리웠습니다.
병목안은 말 그대로 병모가지 안쪽같다는 뜻에서 생긴 말로 정확히 말하면, 양지 초등학교 입구 새마을교부터 시작되어 통통한 병 모양으로 뻗어 오르다가 좌로는 채석장(병목안시민공원)에서 우로는 창박골 입구 삼거리수퍼까지로 마을에 들어서면 골(谷)이 깊고 넓다고 하여 불리워져 왔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삼거리슈퍼 앞 삼거리를 병목안 삼거리라고 하고, 보신탕 집이 쭈욱 있는 수리산 계곳을 병목안 골짜기라고 하지만 사실 담배촌계곡이라 해야 맞습니다.)
안양 토박이 임부성씨 기억에 의햐면 병 목에 해당하는 새마을 입구에는 사람과 우마차와 도라꾸가 다니던 나무 다리가 있다가 나중에 시멘트다리로 발전했는데 그 방향이 지금의 외환은행 간이점포 방향이었고, 또 다른 다리는 채석장행 철교(철길)로 그 위에 콘크리트 복개가 되면서 차와 사람이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담배촌은 창박골과 갈라지는 시민체육공원앞 삼거리수퍼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약 100여미터 가면 수리산 한증막이 있고 다시 10여미터 쯤 가면 오른쪽으로 돌아 다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산에 '문둥바위"가 있던 이곳부터 최경환성인 성지와 공군부대 앞까지 이어지는 수리산 계곡을 말하지요.
안양 토박이 임부성씨는 예전에는 담배촌도 안골, 굴뚝골, 햇골, 송챙이골, 담배촌, 작은골, 큰골, 웃말 등으로 나뉘어 부를만큼 그 골이 아주 깊었다고 합니다.
담배촌이라 불리운 유래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 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崔京煥 , 1805.10.15-1839.9.12)을 비롯한 천주교인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1837년 7월 이곳에 정착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담배를 경작했다고 하여 칭합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담배촌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칠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하는데요. 예전에 담배촌 주민들은 담배 경작 외에 땔나무와 토종꿀을 채취해 이를 안산장(시흥시 수암동), 군포장(호계3동 구 군포), 안양장(안양1동 시 대동) 등에 팔아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6.25한국전젱 당시 담배촌에는 인민군의 본부가 주둔했을 만큼 수리산지역은 중공군, 북한군과 유엔군사이에서 엄청난 결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2010년 5월부터 육군 51보병사단은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전쟁사]한국전쟁 수리산전투(1951.2.1-2)
한국전쟁 당시 수리산 전투는 서부전선의 미 제1군단이 1951년 1월 25일부터 재반격 작전을 전개하여 한강 남안으로 진출하고 있을 때, 미 제25사단 제35연대와 터키여단이 수원 서북방의 수리산을 공격하여 중공 제50군 예하의 제149사단을 격퇴하고 수리산으로 진출한 공격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미 제35연대와 터키여단은 미 제999포병대대와 미 제89전차대대의 지원하에 수리산을 양익 포위하여 중공 제149사단의 거점을 공격한 끝에 완강히 저항하는 증강된 연대규모의 적을 격퇴하고 목표를 탈취하였으며, 목표 탈취 직후 개시된 중공군의 역습도 물리쳤다.
이 전투의 결과로, 중공군은 수원 지역에서 물러나 안양 북방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유엔군은 한강선으로의 진격을 계속하게 되었다.

병목안채석장 철길 이야기

일제 강점기 경부선 복선화공사가 진행될 무렵인 1934년 안양역에서 병목안까지 철길이 놓이고 안양9동 수리산 자락의 커다란 산 하나가 파헤쳐졌다. 경부선을 놓으면서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해방 이후에도 철도청은 1980년대까지 수도권 일대에 건축용 골재로 제공하기 남포(다이나마이트)를 터트려 산을 깨트렸는데 이곳을 병목안 채석장이라 불렀다. 당시 병목안에는 전국에서 모인 돌 캐는 사람들이 살았음은 물론이다.
1주일에 두세 차례 철도운반 화물열차를 운행했는데 당시 안양9동과 새마을에 살던 중학생 정도의 녀석들은 열차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화물차 맨 뒷칸에 몰래 매달려 안양시내로 또는 집으로 가기도 했다. 개중에는 어른들도 있었음을 물론이다.
또 동네 아이들은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철도 레일에 못을 놓아 기차가 지나간 후 납작해진 못을 갈아 연필 깍는 칼로 쓰기고 했는데 학교에 가져가면 최고로 인기였다.
애환이 담겨 있던 열차 채취용 화물열차 운행은 80년 초반에 완전히 중단된다.
이후 대규모 골재 채취로 산 한쪽이 흉칙하게 깎여졌던 채석장 부지는 안양시가 2004년부터 사업비 260억 원을 투입해 인공폭포, 잔디광장, 사계절정원 등을 갖춘 가족단위 공원인 안양 병목안시민공원(총 면적 101,238㎡/30,624평) 으로 변신을 꾀해 휴식공간이 됐다.
철길에 놓여져 있던 레일은 철거되거나 도로가 확장되면서 아스팔트 아래에 파묻히면서 잊하져가는 기억속에 남아있었는데 2002년 무렵 모두 없어진 줄 알고 있던 병목안 철길 일부가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안양9동 창박로변 금용아파트 옆의 천변에 있는 단독주택가 뒤쪽의 약 100여미터 구간에 나무침목, 레일, 쇠못 등 당시 철길의 흔적이 남아 있던 것이다. 나무 침목은 이제 썩어가고 삭아가면서 구멍난 속에서는 들꽃들이 자리고 침목들에 박혔던 쇠못들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일부에는 남아 있는 모습들이 기나긴 세월에도 버텨왔음을 보여주고 있어 가히 안양에 현존하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2014년 무렵만 해도 나무침목은 물론 철도레일, 레일연결부위, 쇠못, 쇠판 등 1930년대 철길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꽤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누군가 뜯어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뒤늦게나마 이를 알게된 안양시가 2016년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해달라는 안내판을 현장에 세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