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공지]안양탐사대 186차 탐방(20200704) 안양 옛 담안마을(4.5동)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86차 여정- 과거 담안이라 불리우던 안양 원도심 4(장내동).5동(냉천동)

7월 04(토) 오후 4시 / 집결_안양 중앙성당(안양4동)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20년 전반기 마지막 탐사를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이번 186차 탐방은 과거 담안이라 불리우던 안양 원도심 지역인 안양4동(옛지명:장내동)과 안양5동(옛지명:냉천동)을 찾아가려 합니다.

이날 탐사에서는 마치 교황님의 모자를 연상케하는 중앙성당(안양성당-장내동성당-안양중앙성당)을 출발해 1969-2007년 근로자기숙사, 사회복지사업을 운영해왔던 근로자회관(sine 1969, 현 가톨릭회관)을 들러본후 도랑/실개천(공동묘지가 있던 성원 상떼빌-항아리골목)이 흐르던 물길과 70-80년대 주택들이 남아 있는  있는 골목길, 냉천어린이놀이터-실개천(냉천약수터-남부시장-안양천), 간만에 중고서점인 아단문고(sine 1984, 경향문고), 흥농종묘(sine 1956)도 둘러보고, 화단과 2층 양옥집들이 있던 냉천동을 돌아보고, 14년만에 진행되는 주거환경경선사업(재개발)이 본격 시작되면서 주민들이 떠나기 시작한 냉천마을의 아랫동네 골목도 살펴본후 안양6동 배터리골목(배이모포차)에서 전반기 탐사 종강 뒷풀이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안양4동
안양4동의 행정구역 변화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果川君 下西面 墻內里로 진주 강씨, 전주 이씨, 원주 원씨 등이 세거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졌으며 1914년 서이면 안양리, 1941년 안양면 안양리, 1964년 안양면 안양리가 된후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안양시 안양4동이 되었다. (장내동 명칭이 언제부터 언재까지 사용됐는지 기록을 못찾음) 
안양4동에는 과거 밤나무, 뽕나무 등이 많았던 곳인데, 울타리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담안(澹安) , 장내동(墻內洞) 이라 불리웠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밤나무가 무성한 밤동산이었는데 지금의 벽산쇼핑 일대는 ‘좌백율원’이라는 대단위 율원이 조성되어 밤을 주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삼왕제지였던 삼덕제지 앞에 안양변전소가 설치된 후 삼길양상 등의 공장과 천주교 장내동 성당 등이 건립되면서부터 개화하기 시작했다.
장내동의 중심은 천주교수원교구 장내동성당(현 안양 중앙성당)과 중앙시장이라 할 수 있다. 장내동성당은 서울교구가 1937년 밤나무밭 6,657평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후 1954년 24평을 구천우(具天祐)신부가 건축하고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져 시흥군 안양읍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 자리했다. 1956년 5월4일 성당에서 안양최초의 유치원을 개설했으며, 그 후 건물의 노후화로 재건축을 실시하여 1991년 김영섭 건축가의 설계로 1998년 새로운 성당이 준공되면서 옛 고딕식 성당은 사라졌다.
성당 맞은편에는 근로자회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독일여성이 관장으로 임명되었고 근로자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형편이 어려운 근로자에게는 숙박이나 식사를 제공했고 노숙자나 걸인, 홀로사시는 어르신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었다. 지금은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지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안양 중앙성당(옛 장내동성당)

안양 중앙성당(옛 장내동성당)은 서울교구가 1937년 밤나무밭 6,657평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후 1954년 9월 7일 초대 주임신부인 구천우(具天祐)신부가 안양읍내에서는 처음으로 24평의 목조건물 성당을 지어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안양성당' 축성식을 가졌다. 1956년 5월4일에는 안양 최초의 안양유치원이 개원한다. 1958년에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형 성당을 세멘트와 목조로 신축해 1959년 봉헌식을 갖고 안양지역사회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해 오는 과정에서 성당 명칭도 안양성당, 안양4동성당, 장내동성당, 중앙성당으로 변경된다. 성당은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의 노후화로 안전문제가 생기자 1991년 사진속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는 현대식 새 성당을 새로 지었다. 성당 주변은 1950-60년대 당시 밤나무, 뽕나무 등이 많았던 곳인데, 밤나무 울타리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내동 또는 담안이라 불렀다.

 

근로자회관

안양시 원도심 한복판인 안양4동(안양시 만안구 장내로 113)에 있던  ‘안양근로자회관’(현 가톨릭복지회관)의 1984년 건물 모습으로 1969년부터 2007년까지 근로청소년, 노동조합, 노인, 외국인노동자 등 소외된 이웃과 시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던 공간이다.
안양은 1960년대 공업지대와 함께 급성장을 하던 때였다. 정부가 이끈 경제시책으로 안양 지역에는 섬유공장, 제지공장 등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다. 많은 공장이 생기자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근로자들이 살 곳을 찾자 안양 지역의 많은 집들이 남는 방을 하숙이나 자취방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많은 근로자들이 주거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섬유, 제지 등 경공업이 많았던 만큼 여성 근로자들이 주거지를 찾지 못해 지역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었다.
당시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주임신부였던 정원진(루까) 신부는 지역사회의 문제에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객지에서 저임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기숙사 시설을 만들자고 교구에 건의했다.
1960년대 말 수원교구는 갓 설정된 가난한 교구였다.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교구청도 외국의 원조를 받은 기금으로 건설비를 충당했을 정도다. 하지만 당시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기숙사 시설 신축사업에 나선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또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선교하는 것이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윤 대주교는 국제가톨릭형제회(AFI)에 협조를 요청해 AFI는 독일인 선교사 서말가리와 한성인(벨따)를 파견한다. 말가리다와 한 벨따는 성당 한귀퉁이에 살면서 일용노동자들에게 국수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에 지원을 요청한다. 이후 교구는 장내동성당 안양유치원이 있던 땅을 제공하고 외국 기관의 원조와 외국인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도착하면서 천주교 수원교구가 제공한 장내동성당 안양유치원이 있던 부지에 여자청소년기숙사와 강당을 갖춘 근로자회관을 신축해 1969년 9월 10일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독일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근로자회관 봉헌미시를 통해 개관식을 갖는다.
이후 1976년에는 증축을 통해 남성근로자를 위한 기숙사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근로자복지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근로청소년기숙사의 경우 10~20대 청소년·청년층이었던 만큼, 단순히 숙식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수 있는 가정의 역할을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는 청소년 근로자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인간적 성숙을 위한 공동체 생활교육과 사회적응에 필요한 교양교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노동교실, 신앙 교육 등을 제공하는 등 근로청소년 기숙사를 거쳐간 근로자 수만도 2000여명에 달한다.
또 근로자회관은 노둥자 및 일반시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도 나서 노동법 강좌 등 노동교육과 당시 국내에서는 상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노동관련 영화상영, 서예, 꽃꽂이, 포크댄스, 그림교실, 판화교실, 탈춤, 사뮬놀이 등 사회교육프로그램, 노조 창립, 워크셥 및 세미나, 교육 등 옥내외 행사가 수월치 않았던 시기에 지역사회 단체들에 공간 제공, 근로자가정 임대주택사업, 무료급식소 등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쳤다.
1970년대 안양권(안양 • 군포 • 의왕)은 서울 주변에 위치하면서  1980년 대 중반까지 민주화운동 또는 사회운동과 관련하여 활동이 거의 부재한 지역이었다. 대 학에서의 민주화 시위도 없었고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활동도 없었다. 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에서의 활동도 거의 없었다. 이러한 척박한 조건하에서 1982년부터 장내동성당의 근로자회관(현 전진상복지관)에서 JOC(가톨릭교회 노동청년회) 활동이 시작되었고,1983~1987년 사이에 노동법 강좌 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조용한 활동은 안양권 노동운동의 기초가 되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의 근로자 문제가 점차 해소되자 회관은 빈민청소년, 이주노동자, 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으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1980년에는 근로자 가정을 위한 임대용주택(10가구)과 상가를 신축해 청소년기숙사에 살았던기숙생이 결혼후 가정을 꾸린 후 살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 1990년도에는 노인과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룰 통해 매일 점심에 따뜻한 한끼를 제공했다.
이후 공간은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운영자의 결정에 따라 1998년 기숙사사업을 종료하고 ‘천주교 수원교구 전진상복지관’으로 이름을 바꿔 외국인노동자 상담소를 비롯 가정폭력상담소 및 여성쉼터 등의 사업 중심으로 변화를 꽤해 운영하다가  2007년 12월 31일을 기해 39년의 지역사회 및 노동사업을 마감하고 문을 닫고 수원교구의 요구에 의해 천주교 수원교구로 넘어간다.
근로자회관부터 전진상복지관까지 40여년 안양지역 사회속에서 펼쳐온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비롯 독일 십자훈장, ‘좋은 한국인 대상’, ‘아름다운 사람상’ 등을 복지관 대표를 통해 받기도 했다.
한편 근로자회관(전진상복지관)은 2009년 교구의 사회복지 중심지로 다시 태어난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이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2년여 진행한후 2009년 12월 16일 교구사회복지의 중심기관인 가톨릭복지회관으로 재개관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회관에는 교구 사회복지회·교정사목위원회·이주사목위원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교구 사회복지회는 산하 130여 곳의 사회복지시설을 관할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수형시설에 갇힌 수용자들을 돌보는 교정사목위원회와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이주사목위원회도 회관에 있다. 또한 회관은 단순히 교구 사회복지 지원을 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회관내에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과 안양자활센터를 갖췄고 교구 장애인선교회들의 각종 모임과 행사,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선데이아카데미, 이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소로 회관을 제공한다.
근로자회관과 전진상복지관이 그랬듯이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만나고 나눔을 실천하는 구심점이 되어주는 것이다.
또 회관에서는 교구 사회복지회 수익사업단 ‘착한 사마리아인’의 매장도 운영되고 있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화원), ‘엔젤마트’(슈퍼마켓), ‘사랑의 국수가게 2호점’, ‘두드림과 열림’(자활매장), ‘카페 뽀르트’ 등 회관에 입점한 매장들의 수익금은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가톨릭복지회관 축복식에서 “이 회관은 사회복지의 행정적 기능뿐 아니라 어려운 이들의 피신처 역할도 하는 행정과 사업 실천이 병행되는 공간”이라며 “회관을 통해 교구 내 지역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빛, 사랑이 전해지고 하느님의 정신이 널리 구현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항아리골목

안양 골목의 향수를 떠오르게 하며 아직도 정감있게 불리우는 골목이 여럿 있다. 밧데리골목. 변전소골목, 곱창골목, 한복골목 등등.. 1970년대 초반에 생긴 항아리골목도 그중 하나로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초까지 활기를 띠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안양에도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찾아 충청도, 경상도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며 인구도 늘어나고 당연히 생필품 가게가 줄지어 생겨나기 시작했다.1977년 중앙로가 개통되면서 안양4동의 새시장(현 중앙시장)은 인근 군포, 의왕, 과천은 물론 멀리 안산, 군자에서도 물건을 구입하러 오는 손님들로 항상 붐빌 정도로 호황이었다.
당시 그릇으로는 양은그릇과 함께 항아리 그릇들이 인기였는데 안양4동 중앙시장과 안양1동 남부시장 주변에는 항아리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과 벽산아파트 사이 골목에는 철조망 담벼락을 따라 항아리들을 쌓아놓은 가게가 있었고 이에 이 골목을 자연스럽게 항아리골목이라 부르면서 통상적인 지명이 생길 정도였다.
과거 주택에는 뒷뜰, 뜨락, 앞마당, 우물가, 대문위 등에 장독대가 있었고, 장을 담아 놓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말 그대로 그집의 장 맛을 보여주었지만, 현대화의 물결속에 가볍고 간편한 플라스틱에 이어 가전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항아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더구나 유약파동까지 겪게 되자 남부시장 주변에 있던 항아리 가게들이 하나 들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중앙시장 주변의 항아리 가게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는 성당 담벼락에 있던 신일항아리 단 한 곳만이 남아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신일항아리’는 안양5동 냉천로길(175-5)에 있다. 신일항아리 창업주는 신영철씨이다. 한동안 그의 둘째아들 신동윤씨가 가업을 이어 점방을 지키다 최근 공부에 매진하고자 부친이신 신영철씨가 다시 점방을 지키고 있다.신일항아리는 1990년대까지는 현 위치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장내동성당과 벽산아파트 사이 골목 담장 앞에 꽃집들과 있었다.
당시 장내동성당은 고딕양식의 성당이었는데 종탑이 위험해 지는 등 낡아 새로 신축에 들어가면서 시에서 도로를 새롭게 정비하자 현재의 장소로 옮긴 것이다.
신일항아리는 당초 있던 항아리골목에서 벗어나 주택가 골목길 인적이 드문 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군포나 의왕, 과천, 광명, 성남 등에서도 주문이 올 정도로 오랜 단골과 입소문으로 항아리하면 신일항아리를 찾는다.
안양중앙성당 뒷편 골목길로 점어들면 단독주택 앞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신일항아리 간판이 보이고 점포안에는 아기자기한 작은 항아리부터 화분, 컵, 장식품, 주전자 등 흙으로 빚은 그릇들이 진열돼 있고, 담벼락에는 커다란 항아리들이 유약을 반짝이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신일항아리는 전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종류의 옹기가 다 모여 있다. 그 옹기들은 주로 충청도나 전라도에 있는 동기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인데 그 곳의 흙이 옹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옹기는 물론, 약탕기, 떡시루, 콩나물시루, 옹기정수기 및 김칫독, 크고 작은 양념통들 그리고 요강까지.. 각종 항아리들이 있다. 또 옹기로 된 화분들도 즐비하다. 요즘에는 항아리 수요가 많지 않아서 옹기명장,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등 주로 장인들의 작품을 많이 가져온다고 한다.
한 집안의 장맛을 보면 음식 솜씨를 알고, 장맛은 장독에서 나온다고 해서 예전엔 집집마다 장독대를 두고 항아리에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가 고이 모셨지요. 항아리는 숨쉬는 쳔연용기로 장뿐 아니라 쌀독, 김치독으로도 사용되고 뒷간이 먼 집에서는 안방에서 오강으로도 쓰여지며 이사갈때는 깨질까봐 애지중지하며 가장 귀하게 모시던 거였지요.
시대는 흘러가고 현대화속에 단독주택들이 아파트와 연립, 다세대로 바뀌며 뒷마당의 장독대도 사리졌지요. 아파트문화에 김치냉장고까지 생기고 단순 간편한 것을 추구하면서 장 담그는 것고 잊혀져 가고, 이제 장독대도 사라지고, 집집에서 큼지막한 항아리 보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발효에도 좋고, 저장 기능이 탁월하고, 내용물을 정화해 주는 숨쉬는 항아리의 효율성으로 아파트에 둘 수 있는 자그마한 응기와 신세대형 항아리를 찾는단다.
예전에는 큰 독이 많이 팔렸는데 주거환경의 변화에 따라 요즈음에는 아파트에 둘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고, 자그마한 옹기 소품. 즉 신세대형 항아리가 잘 팔리고, 쌀독 용도의 항아리도 많이 나간다고 한다.
골목길 한쪽에 크고 작은 항아리를 보는 것도 옛 문화를 더듬는 하나의 추억이지요. 옛날 잠자기전 방 한쪽에 곱게 자리했던 오강도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는데 요즈음은 어떤 용도로 쓰일려나 궁금하네요. 어느 글에서 보니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 가정에 갔더니 이주 예쁜(어떤 것은 난초, 국화 등 그림까지 그려 있으니까여) 요강단지가 식탁위 스프 단지로 요긴하게 쓰여지고 있더란 믿거나 말거나 야그도 있고요.
신일항아리(☎ 447-1048. 만안구 안양 5동 707-77)

 

음기와 양기가 모여 신기가 센곳, 점집 많은 동네 안양4동

/ ‘안양(安養)’이란 지명은 불교의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 유래된 ‘즐거움이 가득하고 자유로운 이상향의 안양세계(安養世界)’를 뜻한다. 이같은 지명 탓일까. 안양은 예로부터 기와 영성이 강한 도시라고들 했다.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 신과의 소통이 잘 되기 때문일까. 안양 만안구 수리산 계곡에는 치성을 드리는 장소가 많았고, 굿당도 서너곳 자리할 만큼 기가 세다고 소문나기도 했다.. 자연환경 복구차원에서 계곡과 산 깊숙이 있던 치성을 드렸던 장소들은 사라지고, 굿당도 이젠 두곳 밖에 남지 않았지만 현재도 안양 만안구 4.5.6동을 중심으로 8.9동까지 만안구 원도심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무속인이 터를 잡고 있음을 알리는 빨간.하얀 깃발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또 안양4동 골목과 안양5동 충혼탑 뒷편 언덕위에는 무속용품을 파는 대형 전문매장이 있을 정도다.
안양 수리산에서 안양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속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태민안과 시민 안녕을 기원하는 신명나는 굿판이 자난 28일 펼쳐졌다.
한국무속연합회 안양본부 한상윤 본부장 말에 의하면 안양에는 1200여 명의 무속인이 활동하고 있으며 등록하지 않은 이들까지 합치면 2천여명은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인구 밀도로 따지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속인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들은 토속신앙인 무속을 전통문화로서 시민들에게 전파하고, 유. 무형의 가치를 계승·발전시키고자 한다는 뜻으로 지난 2003년 부터 수리산 자락 병목안시민공원에서 국태민안과 시민안녕을 기원하는 무예술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한상윤 본부장은 "무속인들이 사회에서 멸시, 천대를 받고있는 현실에서 신앙성과 예술성, 축제성을 지닌 무속문화를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리고 무속인들의 규합을 통해 권익 신장을 찾고자 매년 수천만원의 경비를 갹출해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4년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 뒷골목

https://anyangbank.tistory.com/2844

 

 

 

 

  

안양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0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잡이 최병렬(010-3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20200625]안양일번가, 오래된 가게들 사라졌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6.25/ #안양 #동네 #골목 #기록 #안양1번가 #안양1동/ 안양1번가에서 오랜기간 영업을 해왔던 업소 3곳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70-80년대  싸고 맛있는 돼지갈비, 소갈비와 삼겹살과 람께 톡특한 상호로 젊은이들한테 유명했던 원조 서서갈비, 비지감자탕으로 방송에도 소개됐던 안양감자탕,  안양1번가 연인들의 꽃다발을 책임졌던 양화원 등이 있던 건물이 철거돼 사라졌다. 면적이 233평 정도 되는 이 자리에는 8층짜리 새로운 빌딩이 들어선다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서이면서무소 때문에 상업지역임에도 원하는 층수와 면적만큼 짓지를 못해 재산상의 피해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민선2기 시절 안양시가 서이면사무소를 매입할 당시 3소곳의 건물이 있던곳도 맵입해 1번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공원계획안을 발표까지 했었는데 일제강점기 호계동에 있던 서이면사무소를 이전해 신축할 당시 올린 상량문에 천황을 칭송한 내용이 서이면사무소 복원 과정에서 뒤늦게 발견돼 이후  친일 논란으로 공원 계획은 백지화됐으나 서이면사무소는 경기지방문화재 100호로 지정함에 따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200619]안양 도심 옛검역원 정원에 뱀딸기가 지천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안양 도심에 뱀딸기가 지천(2020.06.19)

2020.06.19/ #안양 #동네 #골목 #뱀딸기
안양6동 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정원에 뱀딸기가 지천입니다.

 

동영상보기: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WweIe73Dv24

[20200624] 안양시, 평촌중앙공원에 경관조명 탑재 쿨링포그 설치.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안양시가 평촌중앙공원에 경관조명이 탑재된 쿨링포그를 설치했다.
 쿨링포그는 정수된 수돗물을 인공안개로 분사해 미세먼지와 오존발생을 줄이고, 주변온도를 낮춰 폭염에도 대비할 수 있는 시설이다.
 시가 도비 4천4백만 원을 지원받아 설치한 쿨링포그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당분간은 가동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신 기능이 탑재된 LED조명을 가동해 중앙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로 했다.
 LED 야간경관 가동시간은 오후7시30분부터 10시까지 심야시간대며, 더위가 가시는 가을과 추운 겨울철에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곡선형의 S자를 하고 있는 이 쿨링포그는 인공안개를 분사하는 노즐 옆에 설치된 경관 등에서 온갖 색상의 빛을 내며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특히 중간지점의 원형부분은 어느새 포토존으로 이미 인기를 독차지 했다.
 더위를 낮추는 본래의 기능을 미룬 상태지만 APAP작품과 함께 평촌중앙공원에 또 하나의 명물로 주목받을 것이 기대된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공원이용객과 주말마다‘차 없는 거리’에서 개장하는 알뜰나눔장터를 찾는 시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고자 설치했다. 쿨링포그는 두 개소 버스정류장에도 설치돼 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신중히 고려해 가동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공지]안양탐사대 185차 탐방(20200627) 산본신도시 초입 산본1동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85차 여정_맛집을 찾아가는 골목여행 산본1동 지역

6월 27일(토) 오후 4시 / 집결_금정역 6번 출구앞 쉼터


 

2020.6월 마지막 토요일 28일에 실시하는 185차 탐방은 맛집을 찾아가는 골목여행으로 군포시에서 가장 노후화된 주택과 상가가 밀집한 지역, 산본신도시 초입, 금정역세권 개발 붐과 함께 재개발이 추진중인 산본 1동을 찾아갑니다. 이날 골목 탐사후에는 가성비 최고로 살얼음 동동 뜬 냉모밀과 초밥을 맛볼 예정입니다. 
산본1동은 1970년대 중반이후 주거지로 자리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산본신도시 초입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신본 진입 도로가 개통되고 금정역 개통이후 군포를 대표하는 유흥가와 상업지역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2010년대 이후에는 골목 한쪽에는 중국 동포들이 밀집해 거주하면서 중국인촌을 연상케하며 제2의 차이나타운이라 불리우기도 하지요.
산본 1동은 다른 지역 골목길들과는 다르게 골목길은 다소 좁지만 이미 어느정도 획일화된 구조를 가진 동네입니다.
동네주민들이 아픈 애환을 달래주었던 민우약국은 50년 넘게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골목에서는 만성슈퍼, 개성슈퍼, 동우슈퍼, 텃밭마트, 모닝마트, 한아름마트, 부림세탁소 등 시간의 흐름에도 변치않고 존재하는 것들과 얼마전 새로 생긴 경기행복마을관리소 동 만날 수있지요.  조용한 동네엿던 산본1동에 증국 동포들이 들어온 이후 중국 본토 음식점들이 대거 생기는  등 골목에 활기가 넘칩니다. 문제는 인구 밀집도가 높아 항상 주차문제로 다툼이 잦지요.
그리고 최근에는 금정역 GTX 확정 발표이후 가파르게 집값이 상승하고 있고 여기에 발맞춰 재개발도 추진되고 있다네요.
군포시의 2020년 군포도시기본계획(안)을 보면 .산본1동 재개발과 산본천 복원D ㅣ우선순위입니다.
이에 현재 산본1동1지구 재개발추진현황과 관련 소유자분들이 지난 6월 2일 구역지정신청서(소유자동의율 72.8%, 면적동의율 51.2%)를 군포시청에 접수하였네요.
하지만 안양 의왕과 다르게 군포는 개발에 다소 미온적인 도시이기에 미지수로 재개발까지는 10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군포 지명유래

 

군포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대체로 군포천이나 군웅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군포의 지명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설로는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왜군에게 패하여 후퇴하던 승려, 의병과 관군이 군포지역에서 군장을 재정비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을사람들이 굶주린 병사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사기를 북돋워주어 이에 힘을 얻은 관군과 의병, 승병들이 왜병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지역을 굶주린 관군이 배불리 먹은 지역이라 하여 배부를 포(飽)자를 써서 군포(軍飽)라 하였고, 이후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 물가 포(浦)자로 바뀌어 군포(軍浦)가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군포시 옆을 흐르는 하천을 군포천(軍浦川)이라 하는데, 이 하천이 북쪽으로 흐르며 안양을 경유하여 한강으로 합류되므로 안양천의 상류인 군포천은 예부터 한강의 지류로 수운을 이용하는 군포의 포구로 널리 알려져 왔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인들이 군함을 타고 한강을 거쳐서 안양천을 경유하여 상류인 군포에 머물렀다고 하여 군포라고 했다고도 한다. 

또 지금의 안양시 호계3동의 구군포지역을 조선시대에는 시장으로 개설하여 군포장(軍浦場)이라 한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시흥군 남면 당리에 역사를 지으면서 역 이름을 군포장역(軍浦場驛)이라 하였고, 이후 역사 주변에 민가가 늘고 날로 번창하자, 안양시 호계3동의 군포장을 ‘구군포(舊軍浦)’라 하고 군포장역 인근을 군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안양시의) 호계파출소 앞 약 100m 지점에 있는 군웅산(軍雄山)이 1980년대 까지는 군웅제(軍雄祭)를 지내는 산이었으며 이 군웅산 아래에 있는 군포천의 물가(浦) 마을이므로 군웅산의 군(軍)자와 물가 포(浦)를 합쳐서 군포라 이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군포동과 산본동 

군포시에서 연원한 것이 군포동이다. 산본은 산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산 밑이라는 뜻이다. 


산본1동 지명유래

본래 과천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수리산 밑이라 하여 산밑 또는 산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궁안, 도장골, 둔전, 광정, 골안을 병합하여 산본이라 창하다가 이후 1989년 1월 1일 군포시 승격과 동시에 산본1동이 됨. 한편 산본은 일본 사람들의 성과 같은 이름이니 혹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에 의하여 지어진 이름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는 분들이 있으나 정조13년(1789년)에 발간된 과천현 읍지에 호구총수에 기록된 산저리가 산본리로 바뀌어 표기된 후 현재에 이루고 있으니 일제시대 그이전에 지어진 지명임이 확실하다.





안양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0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


 

 

[20200620]안양 왕개미군락지 보전지역 보호해주세요 현수막 걸렸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6.19/ #안양 #동네 #골목 #왕개미 #옛검역원/ 이 무더위에 안양 개미제국의 왕개미들은 잘 지내는가 보려고 간만에 안양6동 옛 검역원에 들렸더니 왕개미 군락지 보전지역임을 알리는 현수막과 안내문이 부착돼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너무 반가웠습니다. 2018년 10월 개미들이 주택가로 들어오고, 문다는 민원을 이유로 약을 뿌려 개미들이 1차 떼죽음을 당했지요. 안양시는 국립생태원의 왕개미 보전 건의를 받았으며 시는 옛 검역원을 개뱔해도 왕개미들이 사는 지역은 보전하기로 했음에도 발생한 일이라 큰 충격이었지요. 더욱이 최근까지도 주민 민원을 이유로 간간히 방역 또는 약을 뿌리는 일로 개미들이 죽는 일이 발생해 개미생태계 확인차 방문한 국립생태원 등 전문가와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는 옛 검역원과 관련한 시 부처, 구청, 동사무소 등 관할곳끼리 업무 교류및 소통이 안되는것도 원인중 하나로 보입니다. 다행인것은 개미들이 죽음를 당하는 일이 발생되자 더이상 묵과할수 없다고 판단한 안양시 환경보전과에서 현수막과 안내문을 내건 것이지요. "공격성 없는 개미이오니 개미와 개미집일 보하여 주세요" -왕개미 군락지 보전 지역입니다.- 왕개미들을 대신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명복 환경보전과장님과 직원여러분 고맙습니다"

 

 

 

 

 

 

 

 

 

 

 

 

 

 

 

 

 

[202006020]나무숲 녹음이 예쁜 양명교 옆 안양천 뚝방길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6.19/ #안양 #동네 #골목 #가로수 #숲길/ 안양 만안구에 녹음이 우거진 길이 별로 없는데 안양2동에 멋진 길이  한곳있습니다. 만안로에서 양명고 가는 길 양명교 다리를 건너기전 왼쪽으로 경남아너스빌아파트와 안양천 중간에 있는 천변 뜩방위 길로 길이 200미터 구간 양쪽으로 제법 큰 나무들이 도열하면서 숲을 이루고 있어 따가운 햇빛을 가려줌은 물론 시원한 바람에 고즈녁하기까지 하지요.

 

 

 

[20200620]건천인 수암천 전구간에서 오랫만에 흐르는 물을 보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6.19/ #안양 3동네 #하천 #수암천/ 오랫동안 흐르는 물을 볼 수 없던 수암천. 안양9동 담배촌부터 안양2동 안양천과의 합류부까지 수암천 전구간에서 물이 흐르니 정말 보기도 좋고 가슴도 뻥 뚫린듯 아주 상괘합니다.
수암천은 수리산 정상과 수암봉에서 흘러내려 담배촌 계곡과 안양9동, 안양3동을 거쳐 안양2동에서 안양천과 만나는 총 길이 5.5㎞의 하천이지요. 수암천이 건천이 된 사유에 대해 1990년대 차집관로 공사를 하면서 수암천의 암반이 깨져 하천수가 가 암반밑으로 빠져 정작 하천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라 얘기들 하지요. 이에 안양시는 1단계로 안양하수종말처리장의 물을 정화해 안양3동 주민자치센터앞 양지2교에서 방류하는 한편, 2단계로 안양천의 물을 수암천 상류인 병목안시민공원 앞에서 방류하고 암반밑으로 물 빠짐이 심한 구간에서는 공무원이 황토 흙메우기 공법을 통해 한곳한곳 메꾸는 등 하천수의 침하를 방지하는 등 다양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요. 그 노고에 감사하합니다. 걱정과 문제는 수암천 전 구간에서의 물 흐르기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이지요. 또 물의 양은 더 많아져여하고요.

 

 

 

 

 

 

 





[20200612]안양 학운공원의 "아기 새집 제자리에 갖다주세요" 호소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6.12/ #안양 #동네 #학운공원 #새집 #호소

 

지난 12일 학의천 걷기를 하다 학운공원 B지구인 오픈스쿨 동쪽 끝자락에 있는 나무에 부착된 안내글이다.

까치가 나무위에 있던 새집을 훼손하여 아기새 3마리가 나무에서 도로위로 떨어진것을 코코넛 껍질로 집을 만들어 걸어주고 어미새가 들보는걸 확인하고 귀가했는데 애쓰게 묶어둔 새집과 아기새들이 사라졌다는 것.      

[공지]안양탐사대 184차 탐방(20200620) 의왕 내손2동 재개발지역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84차 여정_재개발로 주민 떠난 의왕 내손2동 지역

6월 20일(토) 오후 4시 / 집결_의왕 계원예술대학교 버스정류장(안양시내에서 51번 버스)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20년 전반기 탐사를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2020년도에는 재개발로 안양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과 사라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할까 합니다.


안양탐사대가 오는 6월 20일 184차 여정으로 찾아갈 곳은 의왕 내손2동 지역으로 재개발 추진이 본격시작된 곳으로 예전에 포일리라 불리던 곳이지요. 이 동네에 오래 살은 이종명씨는 "오래전부터 불리던 포일리 지명이 더 정겹고 도깨비 시장으로 유명했던 고향같은 곳이다. 하지만 재개발로 이주가 시작되었고, 조만간 철거를 앞두고 있다. 동네 아지트로 사랑방 역할 독특히 했던 우리집 김밥도,수미향도 사라진다. 20여년전 민주노동당 한다고 이쪽에 정착했고 의왕과천 당 사무실도 이곳에 있었다.아쉬움이 깊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일부는 재개발 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채 도시재생 사업으로 아트 거리등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안양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0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https://ngoanyang.or.kr/5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