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공지]안양탐사대 166차 탐방(20190720)안양 매곡지구와 비산체육공원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6차_안양 매곡지구와 비산체육공원

7월 20일(토) 오후 4시/ 집결_안양 종합운동장 정문옆 소공원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20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66차 여정은 안양종합운동장 북쪽 지역으로 도시공원 일몰제 적용으로 공원 부지를 해제해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매곡지구와 비산중학교 주변 동네 골목, 인라인경기장에 이어 축구구장 등이 들어선 비산체육공원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안양매곡지구 


안양 매곡 공공주택지구는 장기미집행 공원부지 111,202㎡로 한국토지주택공사 제안으로 지구 지정됐으며, 도시공원 및 공공주택 900여 세대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2026년까지 완료 예정이다.

2020년 7월 1일부로 실효되는 도시공원 일몰제는 정부·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주인의 재산권 행사를 위해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도록 한 제도다. 공원 부지에서 풀리면 그간 가로막혔던 건축행위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난개발과 녹지 훼손이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가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를 공공주택지구로 조성을 추진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7월 19일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택 공급의 한 묘책으로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 활용’ 카드를 꺼냈다.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이곳에 공원도 조성하고 주택도 짓기로 한 것인데 경기도에는 안양 매곡지구(900가구) 등 총 4곳이 선정됐다. 

사업 방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공원 땅주인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해 기존 미집행 공원 부지의 70% 이상을 공원으로 지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땅에 공공주택을 짓는 방식이다. 



모이는 장소: 안양종합운동장 정문옆 소공원(시내버스: 5625, 5626, 5713)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20190712]안양 석천로 삼성천변에 처박힌 오토바이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9.07.10/ #안양 #동네 #골목/ 삼성천 천변길에 놓여진 노란 오토바이(수쿠터). 천변 뚝방에서 굴러 떨어졌을까? 아니면 버려진 것일까? 위치는 석천로 212번길 60 도로 아래 하천변. 알수 있는 단서라고는 오토바이에 쓰여진 슬기산악회.

 

 

 

 

[공지]안양탐사대 165차 탐방(20190713)안양 융창 재개발지구 주변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5차_안양 융창 재개발지구 주변

7월 13일(토) 오후 4시/ 집결_한전.호계체육관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13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65차 여정은 재개발이 추진중인 호계 융창지구와 호계공원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이 동네는 2017년 9울 109차 탐사를 통해 찾아본 바 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골목에 활력이 넘쳤지만 지금은 정든 집을 떠난 주민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2년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호계2동이야기

 

안양 호계2동지역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말 과천군의 상서면사무소와 일제시대 초기인 1814년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현 호계도서관 자리- 1917년 서이면사무소는 안양1동으로 이전)해 관가가 자리했다.

또 호계2동에는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인 청감서원(호계서원)과 일제 강점기 초에는 낙영학교 등이 자리해 안양 교육의 기초가 된 곳이며 범계 주민들의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자리할 정도로 1900년도 초까지 옛 안양의 중심지였다.

이 동네는 1976년 11월 21일 서울-수원간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도로)가 뚫리면서 주변이 주거지로 변모한 안양의 신흥개발지역으로 수원방향 우측의 호계공원 야산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좌측의 평촌벌은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재건축이 거듭되면서 오밀조밀한 골목길은 볼 수 없으나 대형아파트와 빌라, 연립, 단독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안양 호계2동은 호계동에서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 제600호로 분동해 안말, 방죽말, 샛터말 등의 지역이 호계2동이 되었다. 동으로 신촌동, 서로 안양8동, 남으로 호계1동, 북으로 비산2동이 위치했으며 안양교육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효성(구 동양나이론), 신아화학 등이 운집했던 경공업 지역으로 강남, 경남, 대림, 덕원, 현대 등의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신흥개발지역이며 주민의 구성은 토박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죽을 쌓아 농경지에 유입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곳으로 안양면 이전에는 과천면 상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안양면의 전신인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한 곳으로 관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호계2동은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숙종 42년 1716년에 창건되어 대원군 집정 때 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창강서원(또는 호계서원)과 옛 범계주민들이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 초에 설립된 낙영학교는 비록 남아있지 않고 그 기록만 전해질 뿐이지만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안양교육의 발아지였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파연구소가 있고 호계체육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지명유래 - 방죽말(防築洞)

<호계 2동>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下西面의 면사무소 가 있었고, 그 후 1914년 3월부터 1917년 7월까지 始興郡 西二面의 면사 무소가 있었던 유서깊은 고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물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취락이므로 방죽말 (房築洞)이라 칭했다. 그런데 이 방죽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숙종 때 (1699) 발간된 <<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방죽(제언)의 이름은 호계이고, 그 위치는 과천치소(현 과천시 중앙동사무소)에서 서남쪽으로 18리 지점에 있었다. 축조년대는 숙종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에 이미 방죽이있 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방죽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광무 3년(1899)에 발간된<<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하여 방 죽은 虎界에서 虎溪里競宇로 되었고, 이어 일제 때부터 범계방죽으로 불리우다가 1974년부터 실시된 안양6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초에 길일을 택해 방죽 앞에 있던 수령 300년 되는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群雄祭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나무가 죽자 祭를 지내지 않는다.

 

융창아파트 주변재개발

 

융창아파트 주변지구(융창지구)는 총 면적 107,767㎡ 이며, 건축계획상 총 세대수는 2,417세대(분양 2,221세대 임대 196세대) 로 총 22개동 최대 34층으로 건설 예정입니다. 해당 정비사업의 시공사는 현대건설,코오롱글로벌, sk건설사로 되어있네요.
사업진행현황을 살펴보면 2011년 5월18일에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고시가 되었으며, 현재는 사업계획인가 이후 감정평가가 나왔고 조합원 분양신청을 하였으며, 2019년 6월 말에 관리처분계획인가 예정있습니다. 계획대로 관리처분계획인가등이 이루어지면 올해 안으로 이주가 시작되고 2023년 8월경에 준공 및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동네 골목에 현수막 등이 내걸린 것을 볼때 반발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20190707]안양 평촌 도심에서 뱀딸기를 발견하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9.06.15/ #뱀딸기 #평촌 #도심 #동네 #골목/ 안양 평촌 도심 인도 한쪽에서 뱀딸기가 자라고 있다니. 안양기억찾기탐사대 161차 여정으로 떠난길, 안양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시작해 나무숲으로 걷고싶은 그늘길이 너무나 멋진 꿈건영 3.5단지 사이길에서 귀인동 민백공원과 민백초등학교 후문앞을 지나 귀인로에서 꿈우성아파트 담벼락을 끼고 지나던 인도 한쪽에 빨간옷을 입은 뱀딸기가 수줍은듯 잎사귀 뒤에서 인사를 건내네요. 

빨간 딸기 모양으로 겉면에 침같은 것이 돋아있는 뱀딸기는 중국에서 한자로 뱀 사, 딸기 매 사매(蛇苺)로 쓰고, 뱀이 많은 풀 숲에서 자라며 줄기가 뱀처럼 기면서 큰다고 뱀딸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네요.

이름이 뱀이란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사실 만지기를 싫어하지요. 혹시 먹어 보셨나요? 독이 없고 먹을 수는 있지만 맛이 없다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약재로는 효능이 아주 좋다고 하네요.

[20190707]안양6동 버스정류장 말끔하게 변신 "고맙습니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9.07.07/ #안양 #버스정류장 #안양6동 #만안평생교육센터 #버스베이 #승강장/ 안양6동 냉천로상에 있는 만안평생교육센터 버스정류장. 오랜기간 청소를 안한듯 보기에 흉할 정도이기에 지난 6월24일 "하루빨리 물청소 좀 해주세요!!!." 라고 글과 사진을 올렸더니 어느새 아주 깔끔하고 깨끗하게 대청소를 통해 말끔하게 변신했네요. 6동사무소? 만안구청? 안양시청? 관계자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참고로 이곳 버스 정류장은 안양6동 서쪽 끝자락으로 10-1, 10-2, 6번 버스가 오가는 간선도로이나 만안시립도서관, 만안평생교육센터,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안양시장애인지원센터, 안양시육아종합지원센터 등 복지시설 이용자들의 사랑방같은 교통시설이지요.

 

관련글: [20190624]만안평생교육센터 버스정류장 "물청소 좀 해주세요!!!"

https://ngoanyang.or.kr/5145?category=733191

 

 

 

 

[20190703]100년(1901년) 넘는 안양 석수동 한옥 기와집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안양 #기록 #한옥 #골목 #석수동 #화창로 #꽃챙이 #신축년 #1901년 #박서신도비 /

안양시 석수동 화창초등학교 아랫길(안양시 화창로 92번길 10)에 자리한 한옥 한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천장 대들보에 쓰여진 상량문에 신축년(1901년) 2월로 기록돼 있어 지어진지 100년이 넘는 안양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가히 안양시의 문화유산감이라 할수 있다.
과거 안양읍내에 있던 옛날 집들은 도시 개발로 인해 모두 사라졌지만 이 집은 도심 변두리였기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집안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대문 위로 솟아 있는 나무틀을 볼때 1900년 당시 비교적 신분이 있던 사람이 살았던 집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이 한옥이 자리한 화창마을이 재개발 추진중으로 몇년 지나지 않아 철거될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안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이 집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듯 싶다.
한편 이 한옥 주택이 자리한 마을은 조선조 말엽까지만 해도 미곡을 저장하는 창고와 철쭉밭이 있던 곳이라 하여 꽃챙이(花倉洞)이라 불렀다. 조선지지자료 경기도 시흥군편에 申昌 이라고 기재된 것으로 보아 예전엔 이곳 일대가 안양천변에 위치한 곶(申, 바다에 뽀죽하게 내민 땅)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 인근 산자락(만안구 석수동 산168)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항복 문하에서 수학하고, 과거에 급제한 후 인조 때에는 황해도관찰사, 사간원 대사간, 의금부총관을, 효종 때에는 도승지, 공조판서, 예조펀서, 병조판서를 지낸 박서(1602-1653) 신도비와 무덤이 있다.
신도비는 종2품이상 관리를 지낸 사람의 묘 아래 길가에 세우는 석비인데 박서신도비는 1665년 만들어 졌는데 사각형의 받침돌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 형태의 옥개석을 얹은 형태인데, 받침돌과 옥개석은 화강암을, 비신은 대리석을 사용했으며 총고 3.82m에 달한다.
비문의 글은 낙정재(樂靜齋) 조석윤(趙錫胤)이 썼다. 박서가 병조판서를 지낼때 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군사력 증강에 힘쓰기도 하였으며, 5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효종이 매우 애통해 하였다고 한다.
신도비가 세워진 위치는 화창마을에서 똥골(현 안양천생태이야기관)로 넘어가는 화창로 우측으로 과거에는 높은 고개였으나 산자락을 깍아 도로가 놓여지면서 신도비는 길에서 잘 보이지 않은 도로변 담장 위 산자락에 자리하고 했으며 전혀 관리가 안되는듯 사람의 접근이 곤란할 정도로 수풀이 우거져 있어 도로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접근도 쉽지않다.
박서 묘소는 신도비로부터 북쪽 20m 지점 산자락에 있으며 묘소앞에 문인석이 서있고 묘비는 없다. 신도비에서 묘소 안내판 및 가는 길 이정표 조차 없어 무관심한 문화재 관리에 씁쓸하다. 안양에 있는 유일한 신도비라면 좀 더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박서 (朴 )1602(선조 35)∼1653(효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상지(尙之), 호는 현계(玄溪). 온양출신. 병조좌랑(兵曹佐郞) 효남(孝男)의 아들이다. 일찌기 부친을 여의고 백형(伯兄)에게 글을 배워 열살 때부터 시(詩)를 잘 썼다. 그 후 이항복(李恒福)문하에서 수학했다. 인조 2(162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3년 후 금화사별좌(禁火司別座)가 되었다가 곧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선공감주부(膳工監主簿)·종묘사직장(宗廟寺直長)을 역임했다. 1630년(인조 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 2등에 급제하여 1632년 정언(正言)이 되었고, 1634년 지평(持平)이 되었으며, 이듬해 《홍문록 弘文錄》에 올라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부교리(副校理)를 역임하였다. 1641년 수찬(修撰)이 된 뒤, 집의(執義)·교리(校理)를 차례로 거쳐, 1643년 사간(司諫)이 되었으며, 이어서 황해도관찰사에 재직중에 선정을 펴 칭송이 자자했다. 1647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임명되어 천추사(千秋使)로 연경으로 갔다가 돌아온 후 도승지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거쳐 한성부 좌윤 겸 의금부총관(義禁府摠管)으로 있을 때 대사간과 함께 차자(箚子)를 올려 의견을 말하자 왕이 차자에는 비유가 사리에 맞지 않으니 고쳐서 바칠 것을 명했으나 '차자를 고치라고 명하는 것은 왕의 잘못이므로 언론을 맡은 신하로서 어찌 할 말도 아니하고 묵묵히 있을 수 있겠으며 임금의 잘못을 간한 내용은 고칠 수 없다' 고 하여 왕의 비위를 건드려 경주부윤으로 좌천당하였다. 인조가 승하(1649년)하자 그해 겨울에 부총관(副摠管)으로 기용되었고 효종1(1650년)도승지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지경연(知經筵)과 지춘추관사를 겸하였고, 이듬해 진향부사(進香副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 대사헌·지의금부사·우참찬·예조판서 등을 거쳐, 다시 병조판서가 되었다. 1653년 병조판서로 병권확립에 진력하다가 병으로 휴가를 얻어 집에 있다가 갑자기 병세가 위독하여 52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왕은 매우 애통해 하며 해조(該曹)로 하여금 관재(棺材)와 상장(喪葬)에 필요한 여러가지 물자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묘는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데, 신도비의 비문은 조석윤(趙錫胤)이 찬(撰)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방목( 國朝榜目), 시흥군지, 경기인물지, 시흥인물고, 안양시지(安養市誌)

 

 

 

 

 

 

 

 

 

[공지]안양탐사대 164차 탐방(20190706)안양온천 재개발지구 주변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4차_안양 호계 온천지구 재개발지역

7월 6일(토) 오후 3시/ 집결_효성 티앤티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6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4차 여정은 재개발이 추진중인 호계 온천지구를 비롯 범계성당, 호계도서관등이 주거지역 및 공업지역이 혼재된 동네를 돌아볼 계획입니다. 


안양 호계2동지역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말 과천군의 상서면사무소와 일제시대 초기인 1814년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현 호계도서관 자리- 1917년 서이면사무소는 안양1동으로 이전)해 관가가 자리했지요. 

또 호계2동에는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인 청감서원(호계서원)과 일제 강점기 초에는 낙영학교 등이 자리해 안양 교육의 기초가 된 곳이며 범계 주민들의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자리할 정도로 1900년도 초까지 옛 안양의 중심지라 할 수 있지요.


이 동네는 1976년 11월 21일 서울-수원간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도로)가 뚫리면서 주변이 주거지로 변모한 안양의 신흥개발지역으로 수원방향 우측의 호계공원 야산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좌측의 평촌벌은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재건축이 거듭되면서 오밀조밀한 골목길은 볼 수 없으나 대형아파트와 빌라, 연립, 단독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경수대로 685번길 51에는 아주 오래된 기와집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까 싶네요.


호계2동이야기


안양 호계2동은 호계동에서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 제600호로 분동해 안말, 방죽말, 샛터말 등의 지역이 호계2동이 되었다. 동으로 신촌동, 서로 안양8동, 남으로 호계1동, 북으로 비산2동이 위치했으며 안양교육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효성(구 동양나이론), 신아화학 등이 운집했던 경공업 지역으로 강남, 경남, 대림, 덕원, 현대 등의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신흥개발지역이며 주민의 구성은 토박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죽을 쌓아 농경지에 유입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곳으로 안양면 이전에는 과천면 상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안양면의 전신인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한 곳으로 관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호계2동은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숙종 42년 1716년에 창건되어 대원군 집정 때 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창강서원(또는 호계서원)과 옛 범계주민들이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 초에 설립된 낙영학교는 비록 남아있지 않고 그 기록만 전해질 뿐이지만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안양교육의 발아지였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파연구소가 있고 호계체육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지명유래 - 방죽말(防築洞)

<호계 2동>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下西面의 면사무소 가 있었고, 그 후 1914년 3월부터 1917년 7월까지 始興郡 西二面의 면사 무소가 있었던 유서깊은 고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물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취락이므로 방죽말 (房築洞)이라 칭했다. 그런데 이 방죽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숙종 때 (1699) 발간된 <<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방죽(제언)의 이름은 호계이고, 그 위치는 과천치소(현 과천시 중앙동사무소)에서 서남쪽으로 18리 지점에 있었다. 축조년대는 숙종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에 이미 방죽이있 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방죽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광무 3년(1899)에 발간된<<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하여 방 죽은 虎界에서 虎溪里競宇로 되었고, 이어 일제 때부터 범계방죽으로 불리우다가 1974년부터 실시된 안양6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초에 길일을 택해 방죽 앞에 있던 수령 300년 되는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群雄祭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나무가 죽자 祭를 지내지 않는다.


안양온천 재개발 지역


인양온천 재개발 사업의 정확한 정비사업명이 호계온천주변지구 재개발정비사업으로 위치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915번지 일원으로 총 사업 면적은 41,856㎡ 이며 건축계획으로는 최고 39층 높이의 아파트 9개동을 건설해 1,100세대(분양 942세대 , 임대 158세대)를 입주한다는 계획으로 2019년 3월에 사업시행계획인가가 났으며  4월부터 감정평가를 진행중으로 시공사는 대림산업으로 되어 있다.


 

안양온천(호계온천)


동네 골목을 거닐다 보면 아파트와 주택가 한복판 경수대로733번길 34(호계2동 915-3)에 수도권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온천 하나가 있다. 2003년에 아파트를 짓다가 고온의 온천수가 터지면서 온천과 대형찜질방으로 개장한 안양유황온천이다.(현재는 '유황'자를 뺀 안양온천),


2000년 5월 17일 유황(황화수소) 성분이 다량함유된 고온의 온천수가 발견돼 행정기관의 검사를 거친후 2001년 2월 23일 온천수 이용허가를 득해 온천과 대형찜질방으로 개장한 안양유황온천이다. 지하 804미터에서 끌어올린 물에 유황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아토피에 좋은 물이라고 입소문 나면서 타지에서까지 몰려드는 차량으로 주변이 몸살을 앓아 민원이 쇄도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황' 표기를 삭제했는데 유황성분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군요. 자료를 찾아보니 휘발성이 강한 유황성분의 특성상 2015년 유황성분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어 일반 온천으로 변경되었다.


한때 시설의 노후화, 높은 온도의 수온이 오히려 고객의 발길을 점차 되돌리는 등 경영난으로 부도나 경매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최근 리모델링을 했는데 온천 안에 불가마와 소금방 등을 갖춘 넓은 찜질방도 있는데 평일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게다가 추가비용 없이 찜질방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족단위, 직장동료, 동아리 등에서도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데 비오는 날 따근한 물속에서 비를 맞을 수 있는 폭포수 노천탕이 최고란다.

여전히 안양온천 온천수에는 칼슘, 마그네슘, 스트론튬, 중탄산염이온, 황산이온, 리튬 등 20여종의 총용존고형물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의 면역체계를 증가시켜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신경쇠약, 관절염, 피부질환 등에 좋아 지금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추가 정보로 온천옆(같은 주차장)에는 제주 고기 고깃집 제주돈사돈이 있는데 큼직한 깍두기를 연상케하는 두툼한 고기를 멸젓을 찍어먹는 맛이 기막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20190701]안양 수리장애인복지관 뒤 산자락의 뜻모를 나무 전정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9.06.22/ #안양 #나무 #전정작업/ 안양6동 수리장애인복지관과 만안시립도서관 중간 산자락. 전선줄과 전깃줄도 없는 산자락 능선의 나무 가지와 윗둥이 싹둑.싹둑. 누가 그랫을까? 이유가 무얼까?

[공지]안양탐사대 163차 탐방(20190629)안양 석수시장 예술난장 및 주변 동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3차_안양 석수시장 예술난장 및 주변 동네

6월 29일(토) 오후 3시/ 집결_석수전화국 사거리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6월 29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3차 여정은 오랫만에 예술가들의 서식지라 불려왔던 석수시장을 비롯 재개발과 도시재생사업이 공존하는 석수2동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석수시장은 2002년 대안공간의 시초를 만든 '스톤앤워터'가 둥지를 틀고 '안양천프로젝트', '석수아트프로젝트-블랙마켓' 다양하고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 한때 예술인들이 석수시장 주변에 공방과 작업실을 마련해 다양한 협업과 작품활동에 나서는 등 석수시장속 예술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듯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떠나고 석수시장과 주변 거주지 또한 재개발 붐으로 환경이 바뀌면서 문화예술 전시나 공연 등을 보기가 쉽지않은 상황으로 지금은 흐릿한 흔적들만 남아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지요.

그래도 사람은 바뀌었지만 명칭을 유지해왔던 스톤앤워터에서  때마침 2019 문화가 있는 날 <석수시장- 예술난장판> 두 번째 행사를 6월 29일 오후3시부터 9시까지 연다는 소식을 접해 어떤일이 있을까 궁금과 기대속에 당초 호계 온천 재개발지구를 돌아볼 일정을 긴급  변경해 찾아갑니다.

 

스톤앤워터 '석수시장- 예술난장판'

비영리문화예술단체 스톤앤워터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2019년 '문화의 날'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사업 운영단체로 선정돼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석수시장에서 개최하는 지역주민을 위한 전시 및 공연 그리고 물물교환시장이다.

마을예술축제로 진행되는 '예술난장판' 6월 행사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물물교환난장 ▲다양한 전시·체험 프로그램 ▲전지의 만화방 '페이지 91' ▲허비의 '은밀한 상점' ▲'해달 정상회담' with 화가난 화가 ▲마을 사진관외 다수의 게스트가 참여한다.

또 오후 2시, 7시, 8시에는 특별공연도 마련해 행사장을 찾는 주민들에게 색다른 문화 감성을 전달하고 석수시장 상인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먹거리 부스도 운영한다는데 그대가 되면서도 지난 사업들을 돌아볼때 걱정 또한 적지않다.  

안양 석수2동 소개  

안양 석수2동은 동(東)으로 석수1동, 서(西)로 석수3동, 남(南)으로 박달동, 북(北)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동 및 광명시 일직동과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취락으로 꽃챙이(花倉洞). 벌터(坪洞), 신촌(新村), 연현(鳶峴) 등이 있습니다.
안양 서북단에 위치한 석수2동은 지금의 안양육교 일대가 예전에는 산세가 높고 후미진 곳이어서 서울로 가는 과객이나 보부상 등이 이곳을 지나치자면 산적이나 강도들에게 수난을 겪을만큼 험준한 곳이었으나 구 한말에 경부선의 철도부설로 고개가 낮추어졌고, 이어 신작로가 건설되면서 교통의 편리로 점차 취락이 발달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안양육교는 1905년 을사조약이 조인된 지 5일 후인 동년 11월22일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이 기고만장하여 수원지방에 유람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안양출신 원태우(元泰祐) 지사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아 치욕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광명시 일직동과 접경한 벌터마을은 1960년대 초에 경기도종축장이 들어서면서 폐동되었으나, 경기도종축장이 1970년대에 다시 경기도 광주로 이전되자 폐허화 되었으며, 안양천변과 만안로변에 자리잡은 신촌은 1956년 수도영화사에 의해 안양촬영소가 설치되어 한 때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본 고장으로 각광을 받던 곳입니다. 또 꽃 재배지로 유명했던 꽃챙이 마을은 아파트단지와 주택지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되었지요.
석수동(石水洞)은 관악산과 삼성산에 둘러쌓인 안양유원지 일대에 석 (石工)이 많아 石手洞이라 하였으나, 1932년 안양풀(과거 안양유원지 - 현 안양예술공원)에 개설된 수영장이 石水洞水泳場 으로 불리면서 石手가 石水로 바뀌게 됩니다.

 

시장 속 예술의 시작 ‘스톤앤워터’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재래시장에서 예술하기
비영리예술단체 ‘스톤앤워터’가 펼치는 ‘지역예술공동체 세상’
[출처]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mi0904&logNo=220184249844

 

구도시와 신도시. 도시의 중심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한다. 엄마 세대엔 중심지였던 곳이 이젠 사람들이 찾지 않던 구도시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스톤앤워터'가 활동하는 안양 역시 마찬가지다.
'석수동'이란 동네가 위치한 ‘안양’은 크게 동안구와 만안구로 나뉜다. 이중 동안구는 1993 ‘평촌신도시’가 조성된 뒤 인근지역으로 교통, 산업, 교육 시설들이 밀집되면서 현재까지 ‘안양의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과거 중심지인 만안구는 그 기능을 동안구에 넘겨준 뒤, 자연스럽게 ‘구도시’가 되었다. 이젠 만안구는 수시로 바뀌고 번복되는 재개발 분위기 속에서 정체기를 겪고 있는데, ‘석수동’은 바로 이 ‘구도시’에 속한 지역이다.
이 석수동에 '시장'이 자리했다. 정확히 시장은 아니고, 시장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시장을 처음 찾는 외부인이라면 반드시 동네 주민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만큼 위치를 찾기 쉽지 않고, 공간을 알리는 시장간판도 없다. 최근 재래시장들이 경쟁력을 갖추고자 시설교체 뒤 새단장을 시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시장은 시간이 정지된 모습이다. 몇몇 공간은 닫히거나 비어 있었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손님을 맞는 상인들도 적었다. 시장이라 불리기엔 무색할 만큼 주변은 한산했고, 자세히 살펴보면 구조도 기존 전통시장과는 달랐다.

 

시장 속 예술의 시작 ‘스톤앤워터’
석수시장은 안양 중앙시장에 몰려 있던 지역 주민들을 안양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으로 생겨난 재래시장이었다. 시장은 1979년 정부정책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야채도매시장으로 출발하였다. 3천 여 평 면적의 대지에 자리한 시장은, 정방형 광장을 중심으로 120여 개의 소형 점포들이 광장을 둘러싼 구조였다. 기존 재래시장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운영권도 시가 아닌 민간업체인 ‘석수유통’이 맡아 왔다.
하지만 계획은 잘 실천되지 못했다. 이 시장은 시작부터 실패한 반쪽시장이었다. 이후 지역이 '구도시'로 변하고, 대형마트와 주변지역 전통시장들과 대형마트에게 밀리면서 시장은 존속 기로를 논하는 처지가 된다. 현재 시장은 30여 개만 남은 소 점포와 '우리마트'라는 중형마트가 축소된 시장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시장에 2002년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비영리예술단체가 들어온다. 바로 이 단체가 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생활 속 예술’ 추구하고, ‘대안공간의 시초’를 만든 '스톤앤워터'였다.

 

골목에 스며든 공공예술
‘석수’라는 시장이름에서 따온 ‘스톤앤워터’는 2002년부터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시장을 무대삼아 ‘석수아트프로젝트’라는 기획행사를 진행하였다.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쉽게 접하는 게 이 단체의 취지였다. 넓게는 예술의 '자율성'과 시민을 위한 '공공성'에 주력했다.
시장 속 유휴공간은 전시공간과 작가 창작스튜디오로 만들어 석수시장을 하나의 ‘예술촌’으로 만들었다. 시장 내 점포와 점포 사이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으나, 오히려 이 과정이 작가들에겐 예술 실험의 소재로 적용되었다.
또 스톤앤워터는 시장상인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리폼공작소' 프로그램, 지역학교와 연계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을 무대로 한 공공예술을 시도해왔다. 스톤앤워터가 추진하는 이 과정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통해 진행해왔다. 단, 적은 예산이어서 지역 기업들과 개인들의 기부금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많은 공공미술은 마치 게릴라처럼 한 지역에 들어와선 순식간에 작업하고 사라져버리고 현상이 많죠. 이렇게 그 지역에 대한 이해나 소통 없이 작품들만 남겨 놓는 공공미술 과정을 탈피하고자 스톤앤워터가 시도한 게 시장 내 창작스튜디오였어요.
스톤앤워터는 석수시장에서 다져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안구 다른 지역으로도 ‘생활 속 예술’을 넓히는 중이다. 지난 9월 29일 스톤앤워터는 만안구 박달동 소재의 박달시장에 복합문화공간인 ‘밥그릇’을 만들었다. 밥그릇은 8평 규모의 반찬가게 자리로, 소모임과 문화예술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재 단장했다. 이 공간은 시장을 찾은 지역주민과 상인, 예술가가 만나는 거점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뒤이어 10월 16일에는 안양역이 위치한 안양1동에 위치한 유흥업소 '목련'을 ‘안양 1, 2번가 문화발전소 _ 매그놀리아(Magnolia)'로 변신시켜 예술로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매그놀리아는 과거 안양의 최대 유흥가, 번화가였던 곳에 위치한 업소였으나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 이 빈 공간을 스톤앤워터가 전시, 워크숍, 창작작업실 등이 이뤄질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구도시 소재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공공미술운동을 펼쳐 온 ‘스톤앤워터’.
비영리예술단체가 도시변화와 시장경제에 의해 쇠퇴하는 재래시장을 예술가의 방식으로 지역문화를 조성하였고, 나아가 지역의 특성을 재발견하여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다. 스톤앤워터가 만드는 예술로 살아나고 하나되는 마을을 기대해본다.
글. 이나미 (사회적기업 기자단)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20190624]안양 평촌 도심 가로수 네모반듯 '깍두기' 연상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9.06.15/ #안양 #가로수 #도심 #평촌 #중앙공원 #각설탕 #깍두기 #가지치기 #전지작업 #전정작업/

안양 평촌 중앙공원과 한림대성심병원 사이에 놓인 도로변 가로수가 마치 깍두기, 각설탕을 연상케 한다.

어느 도시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도로변 가로수의 모양새도 그 도시의 품격을 말해준다. 손발 짜른듯 무지막지한 가지치기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마치 자로 잰든 깍두기 모양으로 만드는 도시도 있다.
도심의 가로수는 도심 속 콘크리트 숲속에 사는 시민들이 그래도 가까이에서 접하는 녹지대로 경관개선이나 대기오염 정화, 소음공해 감소, 열섬현상 완화 등 도시환경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녹지자원이다.
동시에 도시 영역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공디자인'이란 용어와도 접목시킬 수 있는 자연적인 시설물로 잘 조성된 가로수는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품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으로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약한가지만 잘라내는 약전정 작업 권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자체와 한전에서 실시하는 전지작업 대부분이 가로수의 모양과 성장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간판 가림과 전기선, 전화선, 케이블선과의 접촉 위험성 등 민원을 이유로 무분별하게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최근 각설탕 또는 깍두처럼 네모나게 가로수를 전지하는 곳은 최근 여러 지자체로 늘어나고 있는데 사각 전지란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사각형 모양으로 가지치기해 가로수가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도록 하는 정형식 가지치기 조경 방식으로 세계적로는 프랑스가 대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의 가로수 사각전지는 대전 동구가 2009년에 시작했으며 경기 군포시, 수원시, 안양시, 부천시, 서울 강동구, 관악구, 양천구, 잠실종합운동장 둥에서도 사각형 가지차기를 실시하며 가로수에 자기특성과 색깔을 입혀 변신을 꾀하는 등 타 지자체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깍두기 모양의 가로수 전지가 네모 반듯하게 정렬된 느낌으로 일단 보기에 톡특하다는 점과 태풍 피해와 전선줄과 얽히고 섥히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뿐 아니라 과도한 가지치기로 쏟아지는 비난으로 부터 벗어나지만 과연 나무 성장에 좋은지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튜브 영상: 티브로드 안양방송 [B컷뉴스]가로수의 네모의 꿈/ 이발을 한 가로수

https://youtu.be/09G-4V8Dk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