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616

[박철하]모락산 정상에 있는 한성기 백제 <모락산성>

삼국시대모락산 정상에 있는 한성기 백제의 산성  의왕 모락산성(義王 慕洛山城)은 대한민국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2007년 9월 7일 경기도 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모락산성은 2002년 및 2005년 세종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 결과 자연지형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석축 또는 토석 혼축을 병용하여 축조된 길이 878m의 테뫼식 산성으로, 내부시설로는 문지, 망대지, 치성,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호, 옹, 완 등의 토기편류가 주로 채집되어 한성백제기에 초축된 성으로 확인되었다. 백제 석축성곽 축조의 시원양식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성곽이다. 현지 안내문의왕모락산성은 해발 385m 모락산 정상에 축조된 백제 한성기 시대 석축산성이다. 산 정상부..

[박철하]의왕시 이동 오봉산 청동기 마을 유적과 고인돌

의왕시 이동 오봉산 청동기 마을 유적은 오봉산 남쪽 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 끝자락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 유적은 청동기시대 집터인데, 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도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13동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성된 돌널무덤(석관묘) 4개도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고인돌보다 앞선 청동기시대의 무덤양식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 집터에서 오봉산 정산으로 오르는 중턱에 고인돌이 온전히 놓여 있다. 이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이곳 이동 지역에 작은 마을을 이루며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집터 이동 청동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집터의 형태로 보면, 오봉산 서쪽 끝자락 능선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좋고 관리와 통제가 쉬운 곳에 있는 가장 큰 ..

[박철하]의왕의 어제와 오늘: 역사와 지역정체성

박철하(의왕문하원 향토문화연구소장) 목차1.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2. 내고장 역사문화 인식이 부재한 현실3. 전통마을의 파괴, 역사문화 유적의 파괴4. 역사문화의식을 갖는 창조도시 건설5. 내고장 우리 역사 바로알기 1.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란 무엇일가? 역사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지난 일보다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과거의 어떤 사실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즉 우리가 얘기하는 역사란 과거의 사실들 가운데 일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판단 기준 아래 취사선택된 내용에 대하여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규명해서 우리에게 유용한 지식으로 전달된 것을 일컫는다고 하겠다. 우리는 역사가를 통해서 역사를 읽는다. 역사가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승언]安養의 由來_안양문화 제4호 글(1985.12.31)

1. 안양의 근원지1) 안양의 근원지에 대한 청설안양의 근원지 즉 뿌리는 필자(이승언)가 安養文化號에 「行政 域變쩔史」에서 언급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안양의 근원지는 금천현이었고, 금천현의 중심지는 안양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이러한 오류는 해방이후 향토사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없이 어느 한 책자가 발표한 용을 그대로 전재했기 때문인데,  살펴 본 바를 종합해 보연, 안양의 뿌리 즉 근원지는 삼성산에서 말원한 삼성천을 현계로 했고 뒤에서 언급을 하겠지만 안양의 영칭 유래가 삼성산.안양사에서 유래되었으니 염밀한 의미에서는 금천현이 안양의 근원지라는 것이 옳다고 보나 현 안양시의 인구 및 면적은 물론 안양 행정 중심지가 삼성천 이남의 지역으로  과거 과천현의 치역이었으니, 안양의 근원지는 과천현이라..

[최병렬]군포장(軍浦場) 역사와 군포장 지도 변화(2025.03.01)

2025.02.28/ #아카이브 #엣지도 #역사 #기록 #군포장 도시의 지형을 기록한 역사속 지도를 보면 둥쪽과 북쭉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남쪽과 동쪽으로 청계산과 백운산과 모락산, 서쪽으로는 수리산에 들러쌓인  안양군포의왕과천지역의 경우 유독 군포장 제목의 지도들이 많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까지 군포장 지역이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양시 지명유래』등 역사적 기록을 들여다보면, 군포장(軍浦場)은 수원에서 지지대 고개를 넘어 안양을 거쳐 한양으로 가던 시흥로 역로(驛路)의 중간 지점인 현재의 안양천 (맑은내, 군포천) 군포교와 구군포교 중간 지역인 안양시 호계동 평촌두산위브(더프리임+리버뷰) 아파트 단지와 호계구사거리 주변으로 궁포..

[최병렬]안양사(安養寺)와 7층 전탑지 발굴 현장 기록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번지 옛 유유 안양공장이 세워진 중초사(中初寺) 터가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세운'안양사'(安養寺) 였다는 사실이 안양사 명문기와 발굴에 어어 문헌속 안양사 7층 전탑 터가 1100년 만에 발굴됨으로써 확인됐다. 재단법인  (재)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김홍식, 이하 한문연)이 2010년 8월 유유 안양공장 부지에 대한 1, 2차 발굴조사를 통해 고대가람 안양사 흔적을 찾고 문화재청이2020년 8월 4일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고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안양이란 지명이 고려시대 안양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안양(安養)'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安養寺)'는 '동국여지승람' 금천불우조(衿川佛宇條)에 삼성산에 '안양사(安養寺)가 있어 남쪽에 고려태조가..

[최승원]안양8동 신&최 스트디오 보존하고 싶다(2024.10.15)

안양8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톡특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래된 군부대 막사를 재활용한듯한 이 건물은 1988년에 지어졌는데 1충은 임대용 상가로,  2층은 최승원 원로건축사의 부인이신 신영옥 섬유공예작가께서 오랫동안 아트작업실로 사용하다 지금은 신&최 스트디오로 내외분이 함께 사용하시는듯 싶다. 특히 임대를 히고 있는 1층은 오랫동안 지적장애인들이 직원으로 일하면서 맛있는 커피를 내기로 입소문났던 본 아미치(Boun Amici) 커피숍이 있다가 2016년 문을 닫았다. 이후 한동안 미용실, 옷가게. 고깃집 등으로 다양한품목의 가게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사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보니 상권으로 존재하기에는 외진탓 아닐까싶다. 그런데 최근 이 건물의 소유주인   최승원 원로건축사께서 SNS에..

[장민정]안양에서 울퉁불퉁하게 살아가기(20924.10.05)

평평한땅, 울통불퉁한이야기 전시 협력기확자 《Flat Land, Versatile People》은 안양을 기반으로 한 로컬 리서치 프로젝트 전시로 김귤이, 노태호, 송유경, 허호 네 명의 작가가 회화, 영상, 설치와 같은 방식으로 안양을 재조명한다. 협력기획자로서 안양 리서치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왜 우리는 안양을 기록하고 이야기해야 할까?'라는 핵심 물음 안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안양은 3살 때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도시이고, 28년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으로는 안양을 다층적이고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잘 구현된 대도시의 표본이 되는 평평한 땅으로 만드는 것 처럼 느껴졌다. 전시는 이처럼 평평해 보이는 안양을 다시금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수도권 남부..

[이하나]나의살던경기도_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2024.10.02)

경기마을공동체지원센터 소식지 나의 살던 경기도 3.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https://ggmaeul.or.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30&boardNo=9889&menuLevel=2&menuNo=56&fbclid=IwY2xjawFyh2tleHRuA2FlbQIxMAABHS224K1LJywiCzcutHHCggkbA8qzMmIdvnH5KoSXBdrP_rrelWkQAQ3WfA_aem_-AwSRn0D9QzQLgTt9PEUOg [수요일엔마프 #28] 나의 살던 경기도 3. - 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작성일 : 2024.10.02 16:37:19 안양의 안, 은 길게 발음해야 그 맛이 난다. 한국어의 장음과 단음이 있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도, 안양의 안은 안산의 안..

[민긍기]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2017.09.07)

지금은 안양천으로 부르고, 그것이 공식 명칭이 되었지만 사실 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이었다. > 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대천(大川)이 금천현의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里)에 있다. 과천현(果川縣)의 관악(冠岳) 청계(淸溪) 등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陽川縣)의 철곶포(鐵串浦)로 들어간다. 읍치(邑治)는 고을의 수령이 정사를 펼치는 관아(官衙)가 있는 곳을 일컫는 말로금천현의 관아는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에 있었다.그리고 양천현에 있다는 철곶포는 양평교와 목동교 사이 양정고등학교 부근에 있던 포구(浦口)였다. 대천(大川)은 아마도 말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 것이다.말매미 말벌 말잠자리 등에서 보듯 말이 큰 것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