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739

[20260808]1970년대 안양유원지 입구(지하차도)에 세워진 아치

2026.08.08.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since1960 #안양유원지 #유유산업 젊은 여성이 1960년대 안양유원지 가는 도로(현예술공원로) 길목에 설치된 아치 조형물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이 사진은 안양문화예술재단 등 안양시가 옛 안양유원지를 소개 리플렛 등 홍보자료로 많이 이용하는 기록물이다. 아치 조형물은 당시 안양유원지 초입에 있던 제약회사인 유유산업(현 안양박물관)에서 설치했음과 도로가 비포장에 아주 좁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듯 아치에는 '반공' '방첩'이란 글귀도 쓰여져 있다. 아치 조형물로 세워진 곳은 현 안양유원지 지하차도(경부선 철길) 인근으로 추정된다. 현재 안양예술공원 사거리 하면 아르테자이 아파트단지앞 교차로를 말하지만 과거 안양유윈지 사거리라 하면 1번국..

[20260807]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캠프 핸드리치'라 불리웠다

2026.08.0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 #since1969/ 안양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 83병기대대의 다른 이름 camp handrich로 표기된 부대 정문 모습으로 현재의 안양시 석수 e편한세상아파트 앞 골목인 경수대로 1201번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83병기대대가 camp handrich(캠프 핸드리치)로 명명된것은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육군 군인으로 명예훈장과 동성훈장을 받았던 멜빈 오스카 핸드리치(1919.01.26~1950.08.26)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1969년 8월 4일 명명했다. 한편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미 83병기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안양 박달 군용지라 불리우던 수리산자락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영하던 부..

[20260804]시흥공립보통학교 제7회 졸업기념 사진(since1919.03)

2026.08.04/ #아카이브 #시흥 #금천 #기록 #옛사진 #since1919/1919년 3월 25일자로 표기된 경기도 시흥공립보통학교 제7회 졸업기념 사진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집한 박찬호 소장 사료다. 사진에는 교사들이 제복을 입고 칼을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흥공립보통학교는 현재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시흥초등학교(개교 1911년 7월 1일)로 안양에 학교(안양보통학교)가 처음 생겼던 해인 1929년까지 안양에 거주하던 학생들이 통학하던 인근 학교(군포,과천,시흥,안산)중 한곳이다.일제강제기 초반에는 안양에 학교가 없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먼 거리에 위치한 군포, 과천, 시흥, 안산에 있던 보통학교로 등교해야 했다. 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안양 유지들과 주민들이 기성..

[20260801]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편찬위원들

2026.07.07./ #아카이브 #안양 #임업시험장 #기록 #엣사진 #금천지/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 화보에 수록된 평친위원들 모습.윗줄 왼쪽부터 양인섭 김한복 구연창 김병중 권중석 오형탁 이무영 장항장 김건열 조한구 순이다.이무영은 소설가이며, 장한정은 복장을 볼때 당시 안양경철서장, 김건열은 시흥군수, 조한구는 초대 안양면장과 안양읍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50년에 발행한 금천지(衿川誌)는 경기도 시흥군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시흥군지(始興郡誌)로 중요한 향토지 기록유산이다.. 금천지에는 옛 시흥군 지역(현재의 안양, 금천, 군포 등 포함)의 변천사와 옛 지도, 사진 등을 수록하고 있다.

[20260729]하루 5만 인파 몰렸던 1970년대 안양유원지 수영장들

2026.07.29/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유료 #since1970/ #대영풀장 #맘모스풀장 #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 1960-80년대 안양유원지(안양에술공원)에는 3개의 공짜풀장과 대영풀장, 맘모스풀장, 관광호텔수영장, 만안각수영장이라 불리우던 유료 수영장이 4개나 있엇으며 여름 피서철이 되면 하루 평균 5만 인파가 몰려들었다.1960-70년대의 안양유원지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였다. 1972년 발행된 중앙지 신문들을 보면 안양유원지에 한해 평균 100만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안양유원지에는 국립도서관 임간문고, 우표 간인까지 별도로 있는 임시 우체국, 임시 경찰서까지 있었다. 또 1번국도(현 만안로.구도로)에서 안양유원지로 들어오는 경부..

[20260728]안양초등학교 제27회 졸업생 입학기념(4286년)

2026.07.28/ #아카이브 #안양 #역사 #기록 #기억 #사람 #안양초 #1953년/ 경기 안양에서 가장 긴 학교 역사를 지닌 안양초등학교를 1959년 졸업한 제27회 졸업생들의 입합기념사진으로 그때는 한국전쟁 직후인 단기 4286년(1953년) 4월이다. 한국 나이로 81세(1946년생) 전후인 제27회 동창들은 지금도 이칠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갖는다. 소풍과 등산, 야유회, 송년회 등으로 친목을 나누며 인터넷에 동창 카페(https://cafe.daum.net/anyang27)는 물론 동창회 사무실도 운영하며 동창회보까지 발간하고 있다.사무실: 안양시 만안구 수리산로 59. 현대빌딩 2층 전화:031-469-351527회 졸업생으로는 현재 원로 동양화가이자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21세기판 겸재..

[20260727]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안양역

2026.07.27./#아카이브 #기록 #엣사진 #금천지 #안양역/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衿川誌)에 수록된 안양역 모습으로 책자에 수록된 사진이 너무 빛 바래 향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구글, 쳇지티티, 제미나이, 코파일럿 등 AI에게 원본을 그대로 선명도만 보정을 요청했더니 엉뚱한 사진들을 만들어 보여주기에 보정에 실패했다. 안양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옛 시흥의 작은 시골 동네였던 안양, 그러나 역과 함께 도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구 증가, 역사 노후에 따라 여러 차례 역사를 신축 준공하였다. 1974년에 지어진 옛 안양역은 191㎥규모의 슬레이트 단층 역사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어 전철역으로도 역할하였으며 20..

[20260725]한국전쟁 피난행렬(1950년 7월 안양~수원 국도)

2026.07.25/ #아카이브 #옛사진 #since1950.07 #한국전쟁/ 피난가는 사람들, 1950년 7월 안양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피난을 가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이다. 보따리를 이고 걷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일렬로 남하하고 있다.생산일자: 1950년 7월 당시 종군사진작가 林寅植 氏 촬영/ 전쟁기념사업회 소유 출처:국립중앙도서관https://www.koreanwar.or.kr:8443/searchDetail.do?archRfcd=2022-KR-03-PF-A-00476

[20260720]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안양풀 개설식

2026.07.20./#아카이브 #기록 #엣사진 #금천지 #안양풀개설식/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衿川誌)에 수록된 안양풀의 개설식 모습으로 사진에는 안양(安養) 풀 개설식(開設式)으로 표기돼 있으나 날짜는 없다. 이날 개설식에는 당시 경기도를 비롯 시흥군과 안양읍 관료둘과 유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듯 싶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지방행정학회에서 소화12년(1937년)에 발행한 경기명승사적 책자에 안양풀의 모습이 수록돼 있는데 위 사진에 사람들이 앉은 돌층계가 책자속 사진에는 없는것으로 볼때 안양풀이 1932뇬 8월 준공되고 개설식은 한참 이후에 이루어진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을 보면 안양풀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가 철도수입 증대..

[20260720]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안양읍 전경

2026.07.07./ #아카이브 #안양 #안양경찰서 #기록 #옛사진 #금천지/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 화보에 수록된 안양읍 전경. 과거 안양사람들이 춘부산이라 부로던 안양시 석수동 꽃메산에서 찍은 안양읍내 모습으로 흐릿한 부분을 ai로 보정했다. 사진 왼쪽위로 살짝 보이는 산이 망해암과 안양무선표지소가 있는 비봉산이다. 사진에 보이는 마을은 안양 원도심으로 왼쪽이 석수동과 안양2동, 가운데가 안양1동과 4동, 멀리 오른쪽이 안양3과 5동이다 사진 중앙 우측에 연기가 올라가는 굴뚝이 있는곳이 금성방직, 삼덕제지, 고려석면 공장 있던곳 아닐까 싶다. 1960년대 석수동에 사는 주민들은 석수동 꽃메산을 춘부산이라 불렀다. 기록을 찾아보니 춘부산은 충훈부산으로 불리웠다. 따라서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