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59

[25250514]건축예술도시 안양을 꿈궈온 최승원 건축사

건축사뉴스에 실린 글입니다.[인터뷰] 안양의 원로 건축사 앙가주망 건축사사무소 최승원 건축사기자명 이일 기자 입력 2025.05.13 15:46 수정 2025.05.14 11:08 댓글 0https://www.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3175&fbclid=IwY2xjawKR46xleHRuA2FlbQIxMABicmlkETFXRHN0VTVSbEhEbGZ2a0g1AR56o6pc7nAt6YNssWTQFuME34Y8ytLpfr4uY9mCvjEpeGpp4hqpZyjfvBpeGw_aem_GlFB1CRPxJLjjHVi5q9UAQ [인터뷰] 앙가주망 건축사사무소 최승원 건축사 - 건축사뉴스경기도건축사회는 올해 60주년을 맞아 건축사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있다. 급격한 산업발전과..

[20250513]마지막 가축위생연구소 안양지소장 `이택주`

[한국수의인물사전 73] 마지막 가축위생연구소 안양지소장 `이택주`등록 2020.09.22 11:26:46 출처: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https://www.dailyvet.co.kr/news/college/136753 한국수의인물사전 73. 이택주(李澤柱, 1916~?). 서울 국립방역연구소(현 국립보건원) 독소항독소부장, 수의사 국가시험 출제위원, 대한수의학회 초대 부회장, 가축위생연구소 본소 소장 및 안양지소장. 1916년 10월 30일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면 승평리에서 출생하였다. 도쿄 아자부[麻布]수의전문학교 졸업(1940. 3.) 직후 도쿄 기타사토[北里] 연구소에 입소(1940. 4.)하였으며, 이후 중국 북경화북교통보건과학연구소 혐기성세균연구실 주임으로 근무(1942. 10.~1945. 10..

[20220613]이정범 전 안양시 공보실 사진기사(인천일보 기사)

앵글에 담긴 '안양의 기록' 과거·현재 잇다기자명 노성우 입력 2022.06.13 16:25 수정 2022.06.13 16:35지면 2022.06.14 16면 [이정범 전 안양시 공보실 사진기사]공직 시절 월간 소식지 사진·글 연재퇴직후에도 어제·오늘 모습 매달 기고카메라와 보낸 세월, 어느덧 60년 흘러“평생직업으로 일하게 한 고마운 업” “어려웠던 시절,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배운 사진기술이 천직이 됐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양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해오는 아주 특별한 이가 있다. 25년간 안양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양한 시책 현장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온 이정범(74·사진) 전 안양시 공보실 사진기사가 그 주인공이다. 10대 때부터 서울에서 사진기사로 일하던 그는 서울농대연습림(현 서울대관악수..

[최병렬]우리나라 단 하나뿐 안양 '마애종(磨崖鐘)' 보물 지정해야

바위에 새긴 마애불((磨崖佛)은 들어봤어도 '마애종(磨崖鐘)'이란 말은 처음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는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유일하게 바위에 새긴 종(鐘)이 있는 데 그것이 '마애종(磨崖鐘)'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이다. 현재의 안양시 석수동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 자리 주변 일대는 고려시대 중초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통일신라시대때 안양사가 있었다. 두절의 폐사되는 과정은 기록으로 남은것이 없지만, 현재 마애종이 있는 자리는 과거 중초사의 경내로 추정된다. 이 종의 형상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양식의 종모양으로 이를 바위 절벽에 그대로 새겨놓았는데 '조선종'의 양식을 온전하게 갖춘 동종의 모습과 이 종을 치고 있는 불승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

[20250403]안.군.의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소리여행> 소개

2021.11.02/ #군포 #작가 #일러스트 #소리여행. 군포애 이렇게 훌륭한 일러스트 작가가 있다니.,... 적품 하나하나가 너무 멋지다._소리여행삽화표지일러스트,캘리그리피helenhanmom@hanmail.net 작가소개 사이트: https://soundtravel.creatorlink.net/일러스트 작업 사이트: https://grafolio.ogq.me/search/projects?q=%EC%86%8C%EB%A6%AC%EC%97%AC%ED%96%89&align=POPULAR인스타크램: https://www.instagram.com/sound_travel2020/ 크리에이터를 위한 커뮤니티 | OGQ 그라폴리오다양한 크리에이터의 프로젝트, 배경화면을 만나보세요. 콘텐츠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OG..

[박철하]의왕 출신 한글학자 이희승 선생 생애와 마을

이희승(李熙昇, 1896~1989). 호는 일석(一石)이다. 지금의 의왕시 포일동 출생이다.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의 대를 이은 2세대의 대표적인 한글학자의 한 사람이다. 어려서는 한문을 배웠으나 청년기에는 서울에서 열정적으로 근대적인 교육을 받고자 노력하였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회사를 다니며 스스로 돈을 벌면서 학업을 이어가 경성제국대학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했다.일제강점기 이희승의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연구는 조선어학회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표준어 제정, 사전 편찬 사업 전개 등 한글 정리와 통일 및 보급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일제 강점 말기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는 ‘조선어학회사건’이다. 학교 교육과 관공서에서 우리말의..

[최병렬]의왕시 한자 지명 표기(儀旺 -義王) 변경 과연 정답?

1. '의왕'이란 이름은 언제부터 불리웠나?  '의왕'이란 이름은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경기도령 제3호에 의거하여 지방행정구역 통폐합이 실시될 때 경기도 광주군의 의곡면(儀谷面)과 왕륜면(旺倫面)을 통합하여 수원군 의왕면으로 하면서 연유된 것이다. 의왕의 행정변천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에 의왕지역은 백제에 속했으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이 지역을 점령해 율목군(栗木郡)을 설치하였다. 그 뒤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율진군(栗津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인 940년(태조 23) 과주군(果州郡)으로 고쳐졌고, 990년(성종 9)∼994년에 다시 부림(富林)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광주목(廣州牧)에, 1284년(충렬왕 10)에는 부원현(富原縣)에 속하..

[박철하]빼앗긴 땅에 세워진 의왕 부곡철도관사

빼앗긴 땅에 세워진 부곡 철도관사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급격하게 세계 열강들과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대립에 휘말리게 되었다. 1941년 진주만 습격을 시작으로 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고 제2차 세계대전의 회오리가 몰려왔다. 그러한 와중인 1944년 2월 28일 조선총독부는 군포역과 수원역 사이에 새로이 간이 정거장을 설치하고 3월 1일부터 업무 취급을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때 세워진 것이 바로 지금의 부곡역의 시작이다(경기도 수원군 일왕면 삼리/수원-부곡 8㎞, 부곡-군포 3.8㎞). 당시 부곡역은 수원역과는 달리 간이 정거장으로써 역원만이 배치되었다. 역에서는 승객 수송 이외에 수하물을 비롯해 각종 가정 화물도 취급했다.  부곡 간이역의 설치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 역사 ..

[박철하]의왕 기독교역사 근원지 학현교회와 오전리교회

의왕 기독교역사 출발지 학현교회와 오전리교회  의왕지역에 개신교가 전래되어 교회가 설립된 것은 1900년대이다. 1928년에 간행된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 따르면, 1904년에 지금의 학현마을에 학현교회가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교세는 크지 않았으며 가정교회의 형태를 유지하다가 1941년경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한편, 문화유씨 집성촌인 오전동 오매기마을에는 성결교회가 자리잡았다. 이곳 문화유씨 집안의 며느리 홍길순은 수원성결교회로 예배를 보러 다녔다. 점차 신도가 늘어나고 1937년 6월 약 20명의 신도들이 오매기 유근풍의 사랑방에 기도처를 마련하고 오전리 신앙공동체를 시작했다. 1938년에는 유창희의 헌금을 기반으로 교회를 짓고 1939년 6월 오전리교회 헌당식을 가졌다. 1941년 ..

[박철하]1800년 전후 신자들 모였던 의왕 하우현성당 이야기

기독교 전래의 역사현장 - 하우현성당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때는 1700년대 후반이다. 200년이 훌쩍 넘었다. 정조 이후 천주교 교세가 확장되는 가운데 순조 때에 이르러 금지와 탄압이 강화되었다. 1800년대에 네 차례의 천주교 대탄압으로 1만 명 이상의 신자가 희생됐다. 이때 의왕지역에서도 순교자가 발생했다. 언제부터 의왕지역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록상으로는 충청도 홍주에 살던 한덕운(韓德運, 1751~1801)이라고 하는 천주교 신자가 광주 의일리(현 백운호수 주변 학의동지역)로 이주하여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했음을 알 수 있다. 1845년에는 하우현에 살던 신자 김준원이 광주 포교에 체포되어 12월에 남한산성에서 순교했다는 다는 증언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