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827

[20261030]안양지역시민사회 등불이셨던 정상시 목사님 30일 소천

2026.10.30./ #소천 #인물 #정상시목사 #안양 #안민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의 목회자이자, 종교·사회 운동가로 한국 민중교회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해 오면서 80년대부터 안양지역 시민사회의 등불이자 큰 버팀목이셨던 정상시 목사께서 30일 오후5시 소천하셨다. 그는 한국전쟁 휴전 다음 해 1954년, 지리산 산줄기, 황매산 기슭 작은 마을(두메산골)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비기마을 980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인 황매산은 최후의 빨치산으로 유명한 ‘정순덕’의 활동 근거지이자 은신처였으며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억울한 희생들이 많이 발생한 곳이다. 거창고등학교교 졸업후 한국신학대학(한신대) 재학중 학생운동과 투옥 등으로 뒤늦게 늦깍기 대학 졸업후 1988년 목사 안수를 받는다. ..

[박찬응]안양 APAP8 예술의 대전환 무엇이 대전환되었나? 공개질의

제8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8)에 대한 비판적 공개질의서‘예술의 대전환 – 무릉도원’, 무엇이 대전환되었는가?이것이 진정 공공미술인가? 제8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예술의 대전환’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전환했으며, 안양이라는 도시와 시민에게 어떤 예술적 가치를 남기려 하는가?공공미술은 일회성 전시나 화려한 기술의 시연이 아니다. 도시의 역사와 장소의 기억, 시민의 삶에 개입하며 새로운 공공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예술적 실천이어야 한다.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과연 이러한 공공미술의 본질에 충실했는가? 아니면 ‘예술의 대전환’이라는 수사 아래 또 하나의 소비성 문화행사에 머문 것은 아닌가?이에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묻는다.첫째, 예술감독에게 묻는다.‘예술의 대전환’의 실..

[박남식]화윤 선생님 명상에세이, 안양 토닥토닥데이 "뜻밖의 행운"

여름도 막바지안듯 한데 더위가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지난 8월20일(목) 저녁에는 오랜만에 경기중부시민사회의 '토닥토닥데이'에 참석하였다. 토닥토닥데이는 경기중부지역에서 말없이 헌신을 다하는 민주시민운동가들을 서로 다독거리는 행사로 벌써 8년째 가지는 행사다. 경품추첨으로 안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양화가 무구(無垢) 이근병선생의 홍련화가 내 손에 들어왔다. 여러 인사들이 마음을 내어 많은 경품들을 준비하여 참가자라면 무엇이라도 경품 선물 하나를 안겨주었다. 물론 이 문인화가 바로 내게 온 것은 아니다. 그런 행운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은 편이니까. 경품추첨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번호는 호명되지 않자 진행측에서 나의 경품번호를 파악해서 그냥 그 번호를 불러서 참석자들이 마구 웃기도 하였다. 즐거운 시..

[양훈도]중초사, 안양사, 김중업과 유유산업(인천일보 2026.10.19)

[썰물밀물] 중초사, 안양사, 김중업과 유유산업기자명 양훈도 논설위원 입력 2026.10.19 15:17 수정 2026.10.19 15:29 지면 19면 댓글 0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4484&fbclid=IwY2xjawVEitRleHRuA2FlbQIxMQBwZG9mBXNydGMGYXBwX2lkEDIyMjAzOTE3ODgyMDA4OTIAAR6fM91zSJC9miNERvfK2DePOspNLciJSzECkEKMb8suORiMcNjKzgvw7bN66w_aem_GyPgpRcPKe_9pe6dUnhw3w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의 막냇동생 유특한은 1953년 유한양행을 떠나 독립적으로 제약회사 경영을 시작했다. 유특한은 1959년 안..

[김인봉]안양시민신문 폐업 有感(2000.05.21 페이스북 글)

김인봉님이 쓴글.2020년 5월 21일 #안양시민신문폐업有感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안양시민신문사 문닫은지 벌써 이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야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간 몹쓸 정때문에 안양시민신문이라는 제호를 반납하지 못하고 있다가 경기도가 신문도 안 내면서 제호를 갖고 있으면 안된다며 폐업신고를 독촉해서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니 정말 예술영화처럼 지루하게 끝없이 어려운 장면이 흘러갑니다. 15년 전, 박길용원장님이 지역에서 공론의 장을 열어보겠다며 어려움을 겪는 안양시민신문에 힘을 보태 함께 하자 하여 시작한 것이 열두 해나 넘기는 동안 내내 어려웠습니다. 돈이 없어서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서도 아닌데 말이지요.우리 안양시민신문사에 아무 사심없이 매달 ..

[변원신]안양시민신문 그시절 안양이야기(4) 안양공립보통학교 개교

일제시대 때만 해도 안양에는 학교가 없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먼 거리에 위치한 군포보통학교나 과천, 안산까지 등교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안양 유지들과 주민들이 기성회를 조직하고 학교 설립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양산업사 엄기승 사장과 당시 초대 서이면장인 조한구 씨도 학교 건립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자금은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안 동아일보에서 전국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줬다. 전국에 있는 많은 국민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고, 일본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모금운동은 성공리에 이뤄졌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1927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현재 안양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4년제로 유지되다가 후에 6년제로 바뀌..

[변원신]안양시민신문 그시절 안양이야기(8) 박달동(博達洞)

박달동의 박달은 ‘밝다’, ‘밝은 산’ 또는 ‘밝은 땅’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 또 배우리 선생의 ‘우리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에 따르면 ‘높은 산’의 뜻도 가진다. 박달1동은 조선시대에는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 정조 때 만안교가 가설된 후 시흥현 현내면 박달리로 개청됐다. 후에 1973년 7월 안양시 박달동이 됐다. 박달1동사무소 일대는 ‘먹해이 들’이라고 불렀는데 박토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육군병기창 안양분창 건설로 마을이 폐동됐다. 박달2동은 자연취락지역으로 수리산 서쪽 끝 산에서 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산으로 이뤄졌다. 햇골, 선녀골, 곤두레미 고개와 남쪽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이밖에도 능골, 동수암, 막상골, 미름물, 범고개, 붓골, 삼봉마을 등의 부락이 있었다..

[변원신]안양시민신문 그시절 안양이야기(3) 호계동(虎溪洞)

2026.10.20/ #지명 #안양 #호계동 #변원신 고 변원신 선생이 들려준 안양이야기호계동은 예전에 방죽말, 샛터말, 안말 일대가 범이 많은 곳이라 하여 범계 즉 호계(虎溪)라 칭한데서 유래되었다. 호계1동은 조선시대에는 과천현 상서면 도양리 지역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시흥군 서이면 호계리로 되었다. 1941년 10월 1일 안양면 호계리에서 1949년 8월 15일 대통령령 제162호에 따라 안양읍 호계리로 칭했다. 호계1동은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에 의해 호계동을 분동해 덕고개, 금성마을 지역을 호계1동으로 분리하게 되었다. 동으로는 갈산동, 서로 군포시 금정도, 남으로 호계3동, 북으로 호계2동이 각각 위치해있다.덕고개는 현 호계신사거리에서 교도소로 향하는 고개를 일컬었으며 옛날 지..

[블로거]안양 석수시장 보충대리 공간 '스톤앤워터' 발자취

AB Project석수시장에서 예술하기, 보충대리 공간 '스톤앤워터'원문보기: https://blog.naver.com/fisherkino/224334428000fisherkino ・ 2026. 7. 2. 18:06 안양시 석수시장 프로젝트 (글 박찬응), 출처 : 안양시사(2025년 일부 발췌)*박찬응은 스톤앤워터 1대 대표임. 석수시장은 3,000여 평의 대지에 ㅁ자 형태로 지은 상가 건축물로, 상가는 140여 개 의 소형 점포로 구성되어 있다. 광장을 동서 방향으로 가르는 소방도로가 지나고 남북 방향으로 광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출입구가 형성되어 있다. 동편 진입로 방향에 포장마 차 촌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어 공터로 남아 있다. 석수시장은 개장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

[신현일]안양지역 첫 개원의 이형래 선생님 이야기(안양시의사회40년사)

여기가 우리집 대문이요 - 안양지역 첫개원의 이형래 선생님 이야기 2009. 3. 12. 17:54 년에 안양시의사회 회보 '좋은 이웃'에 실렸던 글> “그 원장님 도대체 무슨 빽이예요?” 어느 날 세무서 직원이 이형래 선생님 병원에서 오는 길이라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물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선생님이 70대 후반이셨을 때 이야기이다. 그 직원 말이 선생님 병원이 환자 진료비 수납한 실적도, 수입도 없는 것으로 신고 되어 현장 조사를 나가보니 하루 종일 교회 일만 열심히 하고 병원에서는 가끔 가끔 어려운 사람들만 돈도 안 받고 돌봐주고 계시더라고 했다. 그래서 ‘아니 그러러면 병원 문을 닫지 뭐 하러 열어놓고 세무서만 골 아프게 하느냐’고 했더니 ‘의사가 병원 열어 놓고 어려운 사람들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