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39

[최승원]안양8동 신&최 스트디오 보존하고 싶다(2024.10.15)

안양8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톡특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래된 군부대 막사를 재활용한듯한 이 건물은 1988년에 지어졌는데 1충은 임대용 상가로,  2층은 최승원 원로건축사의 부인이신 신영옥 섬유공예작가께서 오랫동안 아트작업실로 사용하다 지금은 신&최 스트디오로 내외분이 함께 사용하시는듯 싶다. 특히 임대를 히고 있는 1층은 오랫동안 지적장애인들이 직원으로 일하면서 맛있는 커피를 내기로 입소문났던 본 아미치(Boun Amici) 커피숍이 있다가 2016년 문을 닫았다. 이후 한동안 미용실, 옷가게. 고깃집 등으로 다양한품목의 가게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사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보니 상권으로 존재하기에는 외진탓 아닐까싶다. 그런데 최근 이 건물의 소유주인   최승원 원로건축사께서 SNS에..

[장민정]안양에서 울퉁불퉁하게 살아가기(20924.10.05)

평평한땅, 울통불퉁한이야기 전시 협력기확자 《Flat Land, Versatile People》은 안양을 기반으로 한 로컬 리서치 프로젝트 전시로 김귤이, 노태호, 송유경, 허호 네 명의 작가가 회화, 영상, 설치와 같은 방식으로 안양을 재조명한다. 협력기획자로서 안양 리서치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왜 우리는 안양을 기록하고 이야기해야 할까?'라는 핵심 물음 안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안양은 3살 때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도시이고, 28년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으로는 안양을 다층적이고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잘 구현된 대도시의 표본이 되는 평평한 땅으로 만드는 것 처럼 느껴졌다. 전시는 이처럼 평평해 보이는 안양을 다시금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수도권 남부..

[이하나]나의살던경기도_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2024.10.02)

경기마을공동체지원센터 소식지 나의 살던 경기도 3.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https://ggmaeul.or.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30&boardNo=9889&menuLevel=2&menuNo=56&fbclid=IwY2xjawFyh2tleHRuA2FlbQIxMAABHS224K1LJywiCzcutHHCggkbA8qzMmIdvnH5KoSXBdrP_rrelWkQAQ3WfA_aem_-AwSRn0D9QzQLgTt9PEUOg [수요일엔마프 #28] 나의 살던 경기도 3. - 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작성일 : 2024.10.02 16:37:19 안양의 안, 은 길게 발음해야 그 맛이 난다. 한국어의 장음과 단음이 있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도, 안양의 안은 안산의 안..

[20241006]안양이 놓친 국가무형문화재 이봉주 옹 백수(白壽, 99세)

국가무형문화재 77호(방짜유기)로 안양 박달동에 진유공사를 세워 양대유기를 제작했던 이봉주옹(명예유기장)이 국가무형유산 기능보유자 최초로 백수(白壽, 99세)를 맞이해 지난 6월 19일 (사)국가무형유산기능협회(이사장 이재순) 주최로 축하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이다. 이봉주옹이 태어난 곳은 평안북도 정주군 발산마을이다. 정주읍을 중심으로 발산마을은 5㎞, 유기로 유명한 납청은 10㎞ 떨어져 있다. 북한에서는 방짜를 `양대'라 한다. 납청은 양대의 대표고장으로 전국에서 방짜그릇을 그냥 `납청'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그의 출생부터가 방짜와 인연이 깊다.  이옹이 정주에서 살던 때 납청 양대 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다. 납청 공방에는 `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돈 안 받고 그냥 기술 배우러 들어가려고 해도..

[민긍기]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2017.09.07)

지금은 안양천으로 부르고, 그것이 공식 명칭이 되었지만 사실 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이었다. > 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대천(大川)이 금천현의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里)에 있다. 과천현(果川縣)의 관악(冠岳) 청계(淸溪) 등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陽川縣)의 철곶포(鐵串浦)로 들어간다. 읍치(邑治)는 고을의 수령이 정사를 펼치는 관아(官衙)가 있는 곳을 일컫는 말로금천현의 관아는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에 있었다.그리고 양천현에 있다는 철곶포는 양평교와 목동교 사이 양정고등학교 부근에 있던 포구(浦口)였다. 대천(大川)은 아마도 말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 것이다.말매미 말벌 말잠자리 등에서 보듯 말이 큰 것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민긍기]옛 금천현의 특산물 붕어.참게.꿩(2017.09.07)

조선 후기 시흥현은 본래는 금천현이었는데 정조 때 이름을 그렇게 바꿨다.조선시대 금천현의 특산물은 안양천에서 나는 붕어와 참게였다.붕어는 한자로는 즉어(?魚)로 썼다. 즉(?)이 붕어를 뜻하는 한자이다.그리고 참게는 한자로는 해(蟹)로 썼다. 해(蟹)는 게를 뜻하는 한자이다.그런데 영참게는 기록에 따라서는 생자해(生雌蟹)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다.생자해는 산암케를 지칭하는 말이다.사실 게는 제철이면 참게 꽃게 할 것 없이 숫케보다는 암케가 더 맛있다그래서 특별히 산암케라고 기록했을 것이다. 요즈음 안양천의 물이 깨끗해지면서 안양천에서 다시 참게가 난다고 한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이 지역의 특산물이었던 참게를 안양천변의 갈대와 함께 영등포구의 상징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참게와 갈대는 서로 궁합이 안성맞..

[민긍기]삼막사 창건 유래의 오류(2017.09.07)

검지산이 금천현의 진산이 되기 전 금천현의 진산은 삼성산(三聖山)이었다.삼성산에는 많은 절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절은 왕건이 창건하고 조선시대 중기에 폐사가 된 안양사(安養寺)였다. 안양사가 있던 마을을 절이름을 따 안양리(安養里)라고 하였고, 안양리에서 지금의 안양시(安養市)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나저나 삼성산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절은 아마도 삼막사(三?寺)일 것이다. 삼막사는 삼막사(三幕寺)로도 쓰는데 사실 절이름으로 삼막사(三幕寺)를 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당연히 삼막사(三?寺)로 써야 하지만 지금은 절에서도 삼막사(三幕寺)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절에 가서 삼막사라는 절의 유래라고 적어 놓은 글을 보면 가관이다.글쎄 이 절이 원효(元曉) 의상(義湘)..

[김미경]역동하는 안양천 이야기(2011.05.12)

서울 구로구청 디지털콘텐츠에서https://www.grandculture.net/guro/toc/GC03001885 [개설]안양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경기도 과천시 소재의 청계산 남서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기도의 의왕시·군포시·안양시·광명시·부천시와 서울특별시의 구로구·양천구·영등포구 남서부 일대를 북류하여 한강에 합류하는 34.75㎞ 길이의 하천이다. 안양천의 주요 지류로는 목감천을 비롯해 마장천, 삼성천, 수암천, 산본천, 당정천, 임곡천, 오전천, 갈현천 등이 있다. 안양천은 또한 관악산, 청계산, 백운산, 오봉산, 수리산, 양지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전체적으로 타원형의 분지 형을 이룬다. 안양천 유역의 기반암은 대보화강암·화강암질·반상편마암 등이고, 토양은 사질양토로 비교적 비옥한 편이다.안양천은..

[20240915]2만2천평 땅 기증해 성결대학교 초석 놓은 홍대실 권사

성결대학교(총장 김상식)는 2024년 3월 12일 오후 12시 50분 성결대학교 학술 정보관 6층 야립국제회의실에서 故홍대실 권사의 53주기 추모 예배를 진행했다. 이날 추모 예배는 교목실장인 박정수 목사의 사회로 유족들과 성결대 학생 및 교직원, 교단 관계자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홍 권사를 기리는 추모예배가 교단 차원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다. 故홍대실 권사는 성결대학교 설립자인 故영암 김응조 목사를 도와 성결대의 전신인 성결교신학교를 세우는 데 공헌했으며, 이후 경기도 안양에 자신이 소유한 땅 73.481㎡(22,228평)를 학교 교지로 기증하며  성결교 신학교의 안양캠퍼스 시대를 열게 했으며 4년제 종합대학인 성결대학교의 초석을 마련한 공로자이기도 하다. 안양 성결대학교 설립의 초석..

[최병렬]안양 만안구 특화사업 "안양포도" 골목 만들자

2024.09.06/ #도시기록 #안양 #골목 #동네/ 안양6동 골목을 지날때 마다 미소를 짓게합니다. 골목 한켠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 담벼락에서 안양포도가 구술알 맘큼 점점 커지고 익어가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안양시가 만안구 특화사업으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마다 포도묘목을 무료로 분양해 포도나무가 자라는 골목을 만들면 어떨까요. 교과서에도 실렸던 '안양포도' 를 아십니까.  '포도'하면 '안양'이라 말할 정도로 1970년대만 해도 9월이면 서울사람들이 포도를 맛보러 몰려왔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물론 호계동에는 포도원이란 지명이 있을 정도로 안양시내 잔역에 대규모 포도밭이 있었다.  '안양 포도’는 부천의 복숭아, 수원의 딸기와 함께 지난 70년대 '경기삼미(京機三味)로 불리며 교과서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