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44

[20250420]성명/연현마을의 승리, 정의로운 판결을 환영한다

[성명서] 연현마을의 승리, 정의로운 판결을 환영한다 안양시 연현마을 아스콘공장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도시관리계획 변경이 타당하다고, 법원이 다시 한 번 안양시의 손을 들었습니다. 제일산업개발과 한일레미콘 등이 안양시를 상대로 제기한 ‘연현공원 도시관리계획 취소소송’ 2심 소송에서 지난 3월 14일 수원고법은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하면서 절차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절차의 하자가 있더라도 그러한 하자가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취소할 정도의 위법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로써 안양시는 아스콘공장 관련 4건의 행정소송에서 모두 승소했습니다. 연현마을 지역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2심 판결에 안양군포의왕..

[20250311]안양 출신 독립운동가 하영홍과 삼막골교회

기독교인항일투사. 본관은 진주(晋州) ​시흥현 군내면 안양리 263(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삼막골에서 출생하여 21세 때(1900년) 안양시 석수동 지역에서는 최초로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고, 이듬해 감리교회 지도자교육반을 수료한 후, 삼막골 마을을 그리스도의 마을로 만들기 위해 전도하였다. 이어 전답을 판 돈 180원으로 초가 3간 규모의 삼막골교회를 세워 이 교회의 속장이 되어 광무 5년(1901) 8월 6일 스웨어러(미국인) 선교사와 존스 장로사(현 감리사와 비슷한 직 책)와 각회 교회 형제·자매 70여명이 봉헌예배를 올렸다. 그 후 가세의 빈곤으로 짚신을 팔아 생활하던 중 25세가 되던 광무 8년(1904)9월 14일(음력 8월 5일) 하오 3시 시흥현 내의 한천교(현 광명시 입구의 안양천)에서..

[20250304]안양 출신 독립운동가 夢堂 한흥리(한항길)

2025.03.04/ #인물 #독립운동가 #한흥리 #몽당/ 안양 호계동 출신 독립운동가. 한흥리 韓興履본관: 청주(淸州)아호: 몽당(夢堂),이명 : 한항길(韓恒吉)출신지: 경기 시흥군 서이면 호계리(현재의 안양)생년월일 1900. 7. 18 ~ 1979. 5. 8운동계열: 3·1운동관련 사건: 1919년 서울 남대문역 만세운동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만세시위 참여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몽당(夢堂)이다.  용익(用翼)의 아들로 1900년 7월 18일 부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시절 안양으로 이전하여 동안구 호계동 289번지에서 성장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하던 1919년 3월 1일에 탑골공원 밖에서 동료들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고, 기차 통학생의 ..

[최병렬]군포장(軍浦場) 역사와 군포장 지도 변화(2025.03.01)

2025.02.28/ #아카이브 #엣지도 #역사 #기록 #군포장 도시의 지형을 기록한 역사속 지도를 보면 둥쪽과 북쭉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남쪽과 동쪽으로 청계산과 백운산과 모락산, 서쪽으로는 수리산에 들러쌓인  안양군포의왕과천지역의 경우 유독 군포장 제목의 지도들이 많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까지 군포장 지역이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양시 지명유래』등 역사적 기록을 들여다보면, 군포장(軍浦場)은 수원에서 지지대 고개를 넘어 안양을 거쳐 한양으로 가던 시흥로 역로(驛路)의 중간 지점인 현재의 안양천 (맑은내, 군포천) 군포교와 구군포교 중간 지역인 안양시 호계동 평촌두산위브(더프리임+리버뷰) 아파트 단지와 호계구사거리 주변으로 궁포..

[최병렬]안양사(安養寺)와 7층 전탑지 발굴 현장 기록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번지 옛 유유 안양공장이 세워진 중초사(中初寺) 터가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세운'안양사'(安養寺) 였다는 사실이 안양사 명문기와 발굴에 어어 문헌속 안양사 7층 전탑 터가 1100년 만에 발굴됨으로써 확인됐다. 재단법인  (재)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김홍식, 이하 한문연)이 2010년 8월 유유 안양공장 부지에 대한 1, 2차 발굴조사를 통해 고대가람 안양사 흔적을 찾고 문화재청이2020년 8월 4일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고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안양이란 지명이 고려시대 안양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안양(安養)'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安養寺)'는 '동국여지승람' 금천불우조(衿川佛宇條)에 삼성산에 '안양사(安養寺)가 있어 남쪽에 고려태조가..

[최승원]안양8동 신&최 스트디오 보존하고 싶다(2024.10.15)

안양8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톡특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래된 군부대 막사를 재활용한듯한 이 건물은 1988년에 지어졌는데 1충은 임대용 상가로,  2층은 최승원 원로건축사의 부인이신 신영옥 섬유공예작가께서 오랫동안 아트작업실로 사용하다 지금은 신&최 스트디오로 내외분이 함께 사용하시는듯 싶다. 특히 임대를 히고 있는 1층은 오랫동안 지적장애인들이 직원으로 일하면서 맛있는 커피를 내기로 입소문났던 본 아미치(Boun Amici) 커피숍이 있다가 2016년 문을 닫았다. 이후 한동안 미용실, 옷가게. 고깃집 등으로 다양한품목의 가게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사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보니 상권으로 존재하기에는 외진탓 아닐까싶다. 그런데 최근 이 건물의 소유주인   최승원 원로건축사께서 SNS에..

[장민정]안양에서 울퉁불퉁하게 살아가기(20924.10.05)

평평한땅, 울통불퉁한이야기 전시 협력기확자 《Flat Land, Versatile People》은 안양을 기반으로 한 로컬 리서치 프로젝트 전시로 김귤이, 노태호, 송유경, 허호 네 명의 작가가 회화, 영상, 설치와 같은 방식으로 안양을 재조명한다. 협력기획자로서 안양 리서치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왜 우리는 안양을 기록하고 이야기해야 할까?'라는 핵심 물음 안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안양은 3살 때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도시이고, 28년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으로는 안양을 다층적이고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잘 구현된 대도시의 표본이 되는 평평한 땅으로 만드는 것 처럼 느껴졌다. 전시는 이처럼 평평해 보이는 안양을 다시금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수도권 남부..

[이하나]나의살던경기도_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2024.10.02)

경기마을공동체지원센터 소식지 나의 살던 경기도 3.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https://ggmaeul.or.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30&boardNo=9889&menuLevel=2&menuNo=56&fbclid=IwY2xjawFyh2tleHRuA2FlbQIxMAABHS224K1LJywiCzcutHHCggkbA8qzMmIdvnH5KoSXBdrP_rrelWkQAQ3WfA_aem_-AwSRn0D9QzQLgTt9PEUOg [수요일엔마프 #28] 나의 살던 경기도 3. - 지금 여기, 안양에 삽니다작성일 : 2024.10.02 16:37:19 안양의 안, 은 길게 발음해야 그 맛이 난다. 한국어의 장음과 단음이 있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살았어도, 안양의 안은 안산의 안..

[20241006]안양이 놓친 국가무형문화재 이봉주 옹 백수(白壽, 99세)

국가무형문화재 77호(방짜유기)로 안양 박달동에 진유공사를 세워 양대유기를 제작했던 이봉주옹(명예유기장)이 국가무형유산 기능보유자 최초로 백수(白壽, 99세)를 맞이해 지난 6월 19일 (사)국가무형유산기능협회(이사장 이재순) 주최로 축하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이다. 이봉주옹이 태어난 곳은 평안북도 정주군 발산마을이다. 정주읍을 중심으로 발산마을은 5㎞, 유기로 유명한 납청은 10㎞ 떨어져 있다. 북한에서는 방짜를 `양대'라 한다. 납청은 양대의 대표고장으로 전국에서 방짜그릇을 그냥 `납청'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그의 출생부터가 방짜와 인연이 깊다.  이옹이 정주에서 살던 때 납청 양대 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다. 납청 공방에는 `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돈 안 받고 그냥 기술 배우러 들어가려고 해도..

[민긍기]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2017.09.07)

지금은 안양천으로 부르고, 그것이 공식 명칭이 되었지만 사실 안양천의 본래 이름은 대천(大川)이었다. > 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대천(大川)이 금천현의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里)에 있다. 과천현(果川縣)의 관악(冠岳) 청계(淸溪) 등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陽川縣)의 철곶포(鐵串浦)로 들어간다. 읍치(邑治)는 고을의 수령이 정사를 펼치는 관아(官衙)가 있는 곳을 일컫는 말로금천현의 관아는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에 있었다.그리고 양천현에 있다는 철곶포는 양평교와 목동교 사이 양정고등학교 부근에 있던 포구(浦口)였다. 대천(大川)은 아마도 말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 것이다.말매미 말벌 말잠자리 등에서 보듯 말이 큰 것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