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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7]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만안교

2026.07.07./ #아카이브 #안양 #만안교 #기록 #옛사진 #금천지/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 화보에 수록된 만안교. 1795년(정조19)년에 축조된 만안교는 당초 안양천에 세워졌었다. 1905년에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안양천 물길이 바뀌면서 만안교 다리 아래는 물이 없는 건천이 되고 다리위엔 1번국도 차량 통행 편의를 위해 아스팔트로 덮히고 콘크리트 난간 마져 설치된다. 또 만안교 아래 물이 흐르지 않자 1960-70년대 재건대(넝마주이)가 한동안 살았다. 그후 1980년 1번국도(현 만안로) 확장을 하면서 만안교를 철거해 석수동679번지 삼막천위로 이전 복원한것이 현재의 만안교다. 만안교가 당초 있던곳에는 표석 하나가 설치됐는데 현재의 흥화아파트 담장앞이..

[20260707]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안양경찰서

2026.07.07./ #아카이브 #안양 #안양경찰서 #기록 #옛사진 #금천지/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 화보에 수록된 안양경찰서(원내는 당시 장항정 서장) 안양경찰서는 1950-60년대에 안양읍 중앙동(현 안양1동. 안양 일번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위치는 현재의 용용선생 음식점 건물 티월드대리점 건물이 있는 곳으로 경찰서 왼쪽에는 의용소방대, 앞쪽에는 안양읍사무소와 시흥군청이 있었다. 자료를 보면 안양경찰서의 첫 관서는 1945년 10월 21일 당시 금성방직 자리(현 대농단지)에 개서했으며 이후 1950년대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등과 함께 안양읍 안양리 중앙동(현 안양1동. 안양시 안양1번가)로 이전해 개청한다..당시 안양 중앙동은 구시장(시대동)과 새시장(장내동)의..

[20260707]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시흥군청사

2026.07.07./ #아카이브 #안양 #시흥군청 #기록 #엣사진 #금천지/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 화보에 수록된 시흥군청사(원내 김건열 군수) 1950년대 안양일번가에 있던 시흥군청사청사 모습으로 군청 왼쪽에는 안양읍사무소, 군청 앞쪽에는 안양경찰서와 의용소방대가 있었다. 시흥군청은 영등포구에 있던 것을 인양읍으로 이전한 것으로 1946년 7월 준공됐으며, 설계는 군정시 경기도청 회계과 영선담임 홍광우洪寬祐(서울 흑석동 20의4)가 했으며 일본 강점기때 일반 풍조이던 절충주의적인 면모는 일소되고 고졸한 근대여명기의 성격이 표현되고 있다.(현대건축론 정인국 274p)\1950년 안양수복시 주변이 거의 파괘되었지만 군정기 시공된 안양중학교석조본관과 같이 안전히 보존된것은 일제..

[20260707]1950년 시흥군 금천지(衿川誌) 화보속 임업시험장

2026.07.07./ #아카이브 #안양 #임업시험장 #기록 #엣사진 #금천지/ 1950년 시흥군에서 발간된 군지(郡誌) 「금천지」 화보에 수록된 임업시험장.안양의 '임업시험장'은 일제강점기인 1937~1938년에 현재의 만안구청 자리에 설치되었던 '안양식림묘포장으로 1971년까지 경기도 임업시험장으로 존재했다. 이곳에서는 우량 묘목을 생산하고 수리산 일대에 임업시험림을 조성했다. 임업시험장이 1971년 오산으로 이전한 후, 해당 부지는 인양1동애 개청했던 안양시가 새청사를 신축해 1975년부터 1996년까지 안양시청으로 사용했으며, 현재는 만안구청으로 쓰이고 있다.

[20260430]안양중학교 안양3동 시절 1948년 지은 석조 교무실

2026.04.30/ #아카이브 #엣사진 #since1960년대/ 1987년까지 현 안양3동에서 안양공고와 함께 있던 안양중학교 교무실로 사용되던 석조 건물로 1940년대 미군정 시에 건축된 매우 우수한 건축물이었다. 사진출처:최승원 건축사 블로그기록을 보면 안양중학교는 이명섭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사재 출연으로 1947년 1월4일 재단법인 시흥학원 안양중학교(6년제)로 설립인가를 받아 1948년 3월 15일 공립학교로 개교한다. 안양3동에는 일제강점기시 아사이학교가 존재했었는데 안양중학교와 연관성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당시 사회는 실업자로 넘쳐나고, 일본인 2세들이 간간히 있었으나 천민으로 동화되었다. 부유층 일부는 처첩을 두었으며, 남아를 외부에서 낳아 데려오는 사례도 있었다. 해방 이후은 19..

[20260326]1960년대 군포(당정동)와 의왕(부곡동) 모습

2026.03.26/ #아카이브 #옛사진 #군포 #since1960/ 군포시(당정동)와 의왕시(부곡동) 경계 지역의 1970년개 초반의 모숩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면 1970년 당정동으로 소개되고 있으나 사진속 마을에서 태어난 이가 전해온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왼쪽 아래는 의왕역 (옛 부곡역) 확장으로 이전한 금천마을이고, 그 위에 자그만한 야산과 오른쪽 들판 사이 마을이 의왕시 이리 (창말)로 제가 태어난 곳 입니다.1980년초 용산 화물기지가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수용되어 현재 의왕 콘테이너 기지로 되면서 금천마을 바로위에 샛터마을로 이전되었고요. 그 다음이 오봉산, 맨뒷편에 있는 산이 모락산입니다. 지금 보이는 사진은 의왕임을 알려드립니다." 따라서 사진..

[20260227]1996년의 의왕시 내손2동 풍경

2025.02.2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의왕/ #since1996/ 의왕 내손2동 풍경/ 東으로는 모락산이 西쪽으로는 안양시와 군포시가 인접하고 南쪽으로는 오전동, 고천동으로 이어져 멀리 수원시로 연결되어있다.北쪽으로는 과천시와 서울특별시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내손지역에서 35년을 살았다는 최영기(67.남) 씨는 "대중교통도 사통팔달이라며, 산이 많아 공기가 너무 좋다"고 했다. "내손동은 도시중에서도 천혜의 살기 좋은 곳이라며, 기억으로는 내손동 옛 명칭이 포일리(浦一里)였다"고 했다.예전에는 서울 사당역에서 포일리하면 내손동이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안양시 평촌동이 벼농사만 짙는 절대농지(絶代農地) ‘논’바닥이었다. 유일하게 포일리에 포일 주공아파트가 서울에서도 이름이 났었다. 원주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