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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1946년, 안양에서 일본군 보관 포탄 50만톤 발견

2026.07.10/ #아카이브 #안양 #옛신문 #기록 #자유신문/ 광복후 안양에서 일본군이 보관한 포탄 50만톤 발견 및 처리 추진 이야기제목: 포탄 50만 톤 安養에서 발견발행년월일: 1946년 02월 18일1945년 광복이후 일본군이 안양비행장 인근(박달군용지 추정)에 보관한 포탄 50만톤을 발견. 이를 서해바다에 버리려고 추전중인데 트,럭으로 옮기는대만 6개월이 걸린다는 기사.

[20260710]1948년 안양 박달군용지에 서울시내 나병환자 이주 추진

옛 자료를 찾아본바 1948년 9월에 서울시내의 나병환자를 해방전 일본군이 탄약고 등으로 사용하던 안양 박달군용지로 이주시키려 시도하자 시흥군민들이 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거세게 반대해 막아낸 것으로 확인됏다.이같은 사실은 당시 발행된 서울신문(1948년 9월10일자)에 게제되엇으며 자료대한민국사 제8권에 수록돼있다. 대한민국사 관련자료(서울신문기사) 보기https://db.history.go.kr/contemp/level.do?levelId=dh_008_1948_09_10_0090 제목 서울시내의 나병환자 문제와 시흥군민의 나환자 이주반대 연월일 1948년 09월 10일출전 서울신문 1948년 09월 10일 서울시내의 나병환자 문제와 시흥군민의 나환자 이주반대문둥병환자의 대범람으로 방금 서울시민은 공..

[20260710]반민특위, 안양 조선비행기 설립 박흥식 조사보고서

[박흥식은 누구인가] 일제강점기에 상징적인 조선인 재벌로 꼽혔고 1960년대까지 한국 경제계를 주도했으며, 그후 여러 차례의 실패와 재기의 시도, 그리고 독특한 경영기법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고향에서 미곡상, 지류도매업과 인쇄소를 경영하다가 1926년 상경했다. 이때 지류도매상에서 시작하여 1931년 화신백화점을 설립하고 사은경품판매, 연쇄점 운영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경영방법을 통해 일본인 상업가를 능가하는 조선인 자본가로 성장했다. 1930년대 후반 화신무역을 설립하고 동남아와 멀리는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해외무역을 시도하기도 했다.6·25전쟁이 끝난 후 1955년 신신백화점, 1956년 화신백화점을 열었으며, 1957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대리점계약을 맺고, 1958년 정부에 원자력발전소 건립계..

[202260710]한국전쟁, 맥아더 총사령관 안양전선 시찰 영상

2026.07.10/ #아카이브 #안양 #기록 #영상 #since1961 #한국전쟁 #맥아더장군/ 한국전쟁, 맥아더장군 안양 전선 시찰 6·25전쟁 중 1961년 1월29일 경기 안양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이동하며 전투를 치르고 있다.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와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안양전선을 시철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또한, 민가 주변에서 발생한 전투로 사망한 시체와 불이 난 민가를 볼 수 있다. 16mm필림-디지털 작업한 영상 보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https://archive.much.go.kr/archive/userrecordimage/recordImageView.do?idnbr=2023006925&jobdirSeq..

[202260710]한국전쟁, 리지웨이 장군 안양전선 시찰 영상

2026.07.10/ #아카이브 #안양 #기록 #영상 #since1961 #리지웨이장군/ 한국전쟁, 리자웨이장 안양 전선 시찰 6·25전쟁 중 1951년 2월7일 미군들의 안양에서의 전투 장면이 담겨 있다. 미군들이 야포를 쏘고 고지를 오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와 미군 장성들이 작전 회의하며 안양 전선을 시찰하는 모습도 담겨있다. 16mm필림-디지털 작업한 영상 보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https://archive.much.go.kr/archive/userrecordimage/recordImageView.do 생산기관: 미육군통신대(Army Signal Corps)촬영장소: 경기도 안양시자료시기: 1951.02.07.영상길이: 6분 41..

[20260710]한국전쟁, 미군들의 1951년 안양전투 기록 영상

2026.07.10/ #아카이브 #안양 #기록 #영상 #since1951/ 한국전쟁 미군들의 안양전투 6·25전쟁 중인 1951년 2월 7일 안양에서의 미군들의 전투 장면이 담겨 있다. 미군들이 기관포와 곡사포를 발사하며 전투를 치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6mm필림-디지털 작업한 영상 보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https://archive.much.go.kr/archive/userrecordimage/recordImageView.do?idnbr=2023007055&jobdirSeq=2011 생산기관: 미육군통신대(Army Signal Corps)촬영장소: 경기도 안양시자료시기: 1951.02.07.영상길이: 5분 1초음향유무: 없음저작권처: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

[20260710]주한 미대사부인 1963년 안양기독보육원 방문 영상

2026.07.10/ #아카이브 #안양 #기록 #영상 #since1963/ 주한미국대사부인 안양기독보육원 방문 영상기록주한미대사 부인 루시 버나드 브릭스(Lucy Barnard Briggs)여사가 1953년 8월10일 안양의 기독보육원을 방문해 아이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16mm필림-디지털 작업한 영상 보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https://archive.much.go.kr/archive/userrecordimage/recordImageView.do?idnbr=2024006116&jobdirSeq=2013 자료생산: 주한 미 공보원촬영장소: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64촬영시기: 1953.08.10.영상길이: 01:12음향여부: 없음저작권처: 미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소장정보: ..

[20260710]조선총독부 1926년 발간 조선의 홍수(朝鮮の洪水)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여름 유사 이래 처음 겪는 엄청난 홍수가 네 차례나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다. 한반도 전역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강과 낙동강 일대가 특히 막심한 타격을 입었다. 단군 이래 최대 비극으로 국내 ‘20세기 최대 자연재해’라고 불리울 만큼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의 그것보다 크다고 평가받는 물난리를 '을축년 대홍수'라고 부른다. 1926년 조선총독부 『조선의 홍수(朝鮮の洪水)』 발간 조선총둑부는 1925년 조선을 덮친 을축년 대홍수 당시의 기상 상황, 피해 규모, 역대 홍수 정보 등을 집대성한 백서격인 『조선의 홍수(朝鮮の洪水)』라는 책을 1926년 발간했다. 책 속에는 「한강 하류부 범람구역도」(漢江下流部氾濫區域圖)가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한강 하류 일대의..

[20260709]1937년 안양 출생 수필가 음춘야(전 안양여고교사)

수팔가 음춘야 선생님은 1937년 안양애서 출생해 안양초둥학교 입학과 흥안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덕여중, 동덕여고, 서울대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안양여중고를 비롯 인천인성고, 사울사대부고애서 학생들을 가르쳤다.1997년 월간 수필문학> 천료로 등단해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이사, 서울 강남문인협회 이사, 운현수필동인회 회원, 수필문학작가회 수필뜨락 이사, 서리풀문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학여울문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외다리 안경』『해담뜰』『직박구리』『안과 밖』있다. 서울문예상(2001년 12월)과 강남문인협회 수필문학상(2013년 5월)을 수상했다 학업을 이어가기 쉽지 않던 시절에 신여성으로서 활약하신 역량이 존경스럽다. ..

[20260709]1977년 안양대홍수, 처참한 안양유원지 보트장

2026.07.09/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유원지 #since1977/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안양에서 발생한 역사속 가장 큰 사건으로 1977년 안양대홍수가 떠오른다. 이 사진은 서울역사박물관이 수집한 자료인데 한국일보, 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인 전민조 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기증 받은 것이으로 '근현대사아카이브'( https://archive.much.go.kr/index.do )에서 볼수 있다 사진속 장면은 당시 안양유원자 물놀이 보트장으로 사용되던 곳의 현장 모습으로 보트들과 주변이 처참하다. 보트장은 제3풀위 계곡(현 안양파빌리온앞)에서 봄~가을까지 운영됐다. 또 피서철이 끝나면 제1풀(무료)과 대영장수영장에서도 일시적으로 보트장을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