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공지]안양탐사대 160차 탐방(20190526)_안양2동 재개발 동네

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안양탐사대 160차_안양2동 재개발 동네(안양예술공원 주변지구/ 삼영아아파트 주변지구) 

5월 25일(토) 오후 3시/ 집결_안양예술공원 입구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5월 25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0차 여정은 재개발사업이 진행중인 안양예술공원 주변지구와 삼영아파트 주변지구를 찾아갑니다. 두 곳 모두 이미 건물들이 헐리고 있는 상태로 사라지는 동네와 골목의 마지막 모습을 담을 예정입니다.

특히 비산사회복지관 류승용 관장과 CS프리미어 호텔 김상교 대표의 협조로 안양예술공원 사거리에서 가장 높은 호텔 옥상에서 주변을 살펴보는 기회도 가질 예정이며,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안양예술공원 주변지구 뒷편 산자락에 안양에서 가장 멋진 단독주택들이 마치 별장처럼 들어서 있는 낙원마을도 찾아볼 계획입니다.

이날 탐방은 호텔 옥상 방문등으로 참석인원을 선착순 10명으로 제한하오니 일정을 검토해 페이스북(안양기억찾기탐사대 공지) 또는 전화(최병렬 016-311-1001)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6년(2013-2018) 발걸음

https://anyangbank.tistory.com/4628?category=757038

[20190520]병목안시민공원 오르는 계단 돌 하나가?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19.05.20/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 2019. 5.19일 병목안시민공원. 폭포광장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돌하나가 빠져 나와 있네요. 신속한 보수가 필요^^

군포, 시-소방서-가스안전공사-전기안전공사 '안전동맹' 구축

분류없음

 

군포시가 지역 내 재난취약계층의 안전지수 향상을 위해 지난 16일 군포소방서, 가스안전공사, 전기안전공사와 '재난취약계층 안전복지서비스 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안전동맹을 구축했다.

업무협약에 의하면 시와 3개 기관은 이달부터 10월 말까지 군포지역 내 재난취약가구를 대상으로 화재․가스․전기 안전점검, 화재감지기와 소화기 공급 및 사용법 안내, 가스안전장치(타이머콕) 설치, 전기 배선 점검 및 부적합 설비 교체 등을 시행한다.

이와 관련 시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지역 내 11개 동 주민센터와 산본보건지소, 사회복지과와 여성가족과 등을 통해 안전복지서비스가 필요한 가구를 공개 모집 및 추천 접수해 261가구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바 있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재난취약계층의 소방․가스․전기 안전을 점검하는 일은 각종 사건․사고를 예방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시가 예산 및 지원대상을 선별․관리하고, 유관기관이 실제 안전점검을 시행하는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이후에도 긴급하게 안전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가구가 발견 또는 발굴될 경우 사업예산의 범위 내에서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기타 이번 사업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알기 원하거나 서비스 지원에 대해 안내받기 원하면 재난안전과에 문의(031-390-0950)하면 된다.

[20190520]군포시 교통약자지원센터 임신부 전용 차량 운영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가 대중교통 이용 시 상대적으로 제약이 많고, 불편함과 위험도가 큰 임신부 등 교통약자를 위해 관련 지원 서비스를 강화했다.

교통약자들을 위한 이동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시는 이달부터 임신부 전용 차량 2대를 추가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시에 의하면 군포시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는 기존에 18대의 휠체어 장착 특수차량을 운영하며 임신부와 장애인 그리고 고령자 등 교통약자들의 병원 방문 및 다양한 목적의 이동(서울, 인천, 경기도 전역 대상)을 지원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시는 임신․출산율 제고 및 이용자들의 차량 이용 횟수 확대를 위해 임신부 전용 차량 2대를 추가로 확보, 이달 13일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또 임신부 전용 차량 이용 대상을 임신 5개월 이상자에서 산모수첩을 소지한 임신부로 확대했으며, 사전 등록 및 전화 예약을 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오전 9시~오후 6시) 이용할 수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기타 더 자세한 차량 이용 절차 및 관련 정보는 군포시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www.gunpocs.or.kr)의 공지사항을 참조하거나 군포시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로 문의(1899-4428)하면 알 수 있다.

오숙 교통과장은 “저출산 시대에 임신부를 보호하고, 출산 전까지 대중교통 이용 불편을 일부 해소하기 위한 서비스 확대”라며 “임신부들이 전용 차량을 이용하면, 다른 교통약자들도 서비스 이용 편의가 증가할 수 있어 전반적인 만족도가 향상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90518]5.18민주화운동 39주년, 다시 꺼내 보는 옛 기록

이야기보따리/자료

 

2019.05.18/ #광주 #민주화 #39주년 #자료 #기록 #기억/ 광주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책장에서 꺼내본 5.18 자료들. 기억은 기록을 만들고 기록은 기억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광주 자료들을 잘 보관해 줄 만 한 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몇가지가 더 있네요.
1985년 광주교구 정의평화원회가 발간한 <광주의거자료집>, 1988년 광주의거자료집1.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1988년 발간한 광주의거자료집2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한국기독교학생총연맹, 대한가톨릭학생전국연합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이 펴낸 연도 미상의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빛바랜 책자에는 역사의 진실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기억합니다...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5.18.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20190519]제18회 안양사이버과학축제 6월 8-9일 이틀 열려요

안양지역뉴스/안양

 

행복한 사이버 세상, 신나는 디지털 축제’를 주제로 하는 제18회 안양사이버과학축제가 다음달 8일과 9일 이틀 동안 안양실내체육관 일원에서 열린다.

수도권 최대의 정보과학축제로 자리매김한 안양사이버과학축제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최신 트렌드의 정보통신기술을 느껴보고 디지털 세계 및 가상현실체험을 통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현재 각 종목별 참가신청을 받고있다.

특히 금년도 대회는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2019 경기과학축전을 유치하여 청소년은 물론 온 가족이 함께 최신 IT 트렌드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체험과 학습의 장이 되도록 다채롭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로 준비했다.
행사 첫날인 8일 오후2시 개막식은 축하공연, 개회사, 축사, 개회세레모니, 경품추첨, 식후행사 등과 함께 You Tube 크리에이터 'BJ섭이'가 출연해 어린이들과 과학 등을 주제로 토크콘서트 및 포토촬영이 진행 될 예정이다.

또한 이틀간 진행되는 주요 프로그램을 보면 로봇대회, 3D프린팅 해커톤 대회, 스토리텔링 발명대회, 드론 축구경기, 코딩대회 등 최신 트렌드에 맞는 대회를 마련하고 드론/코딩 아카데미, 로봇체험관, 코딩체험관, 3D프린팅체험관, 드론체험관, 과학탐구체험관, IoT체험관, 가상현실(VR)체험관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ICT를 반영한 다양한 체험관이 운영된다.

이 밖에도 소방 안전띠체험, 비눗방울체험, 네일아트, 페이스페인팅, 푸드투럭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안양시 사이버과학축제 사이트 http://cyber.anyang.go.kr/

[20190518]안양 새물공원 인공암벽장 19일 개장... 클라이밍대회 개최

안양지역뉴스/안양

 

안양시가 오는 19일 오전 10시 새물공원 인공암벽장 개장식과 이를 기념하는 2019 안양시장배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대회를 개최한다.

새물공원 인공암벽장은 16억원을 들여 기존 하수처리장의 굴뚝을 리모델링한 시설물로 마치 거대한 예술작품을 연상케 한다. 높이 18m에 벽면이 7백판(1m×1m)에 이르며 스피드 벽면이 있고 난이도에 따른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바닥은 안전과 미관을 고려해 칼라색상 고무 칩으로 깔렸다.

이날 인공암벽장 개장식과 함께 진행되는 2019 안양시장배 전국 스포츠 클라이밍대회에는 선수와 임원 220여명이 참여하며, 경기도 대표선발전도 겸한다. 특히 암벽등반 국가대표로서 ‘클라이밍 여제’라는 별칭이 있는 김자인 선수가 대회장을 찾아 시범등반을 벌일 예정이다.

한편 새물공원은 하수처리시설을 지하화 하고 지상에는 대규모 공원이 들어선 친환경 공간으로 인공암벽장 뿐 아니라 산책로, 축구장, 테니스장, 족구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영상]티브로드 abc방송 다큐 영상 원태우지사(2019.04.01)

도시영상기록/안양

 

태광그룹 케이블TV방송사 티브로드 abc방송이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특집기획으로 지난 3월 1일 방송한 다큐 ‘안양 사람 원태우(abc, 오전 10시) 영상입니다.

원태우지사는 1905년 열차를 타고 안양을 지나던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짱돌을 날려 부상을 입힌 안양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로 원 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는 처음입니다.

 

abc스페셜_5회 - 티브로드 지역채널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이토를 겨냥한 최초의 저격자(2019.04.01)

다큐 영상 http://ch1.tbroad.com/content/view?parent_no=25&content_no=71&p_no=77816

 

 

안양사람 원태우 지사는 누구인가?

 

원태우(元泰祐)/ 1882년(고종19년) 출생 - 1950년 사망

항일애국지사. 본관은 원주(原州). 원태성과 이호순 사이에서 2남으로 1882년 3월 4일 안양시 만안구 안양 1동 642(당시 행정지번 경기도 과천군 하서면. 현 농협중앙회 안양시지부 부근)에서 태어났다.

문헌에 따라 원태근, 김시근, .김태근등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호적에는 원태우로 되어 있다. 그의 형이 원영우인 것으로 보아 「우(祐)」가 항열로 보여진다. 그는 본래 농촌 출신으로 깊은 학식은 없지만 평소에 의기가 높고 바른 일에 앞장을 서는 정신과 기백이 있었다.

그가 23세 되던 해(1905)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였다. 일제는 이 조약을 맺기 위하여 광무8년(1904) 노일전쟁의 승리로 이끈 후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국에서 정치, 경제, 군사상 우월한 지위와 권익을 얻게 되자 침략의 첫 사업으로 먼저 외교권을 박탈을 꾀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광무9년(1905) 10월에는 포츠머스 회담의 일본측 대표인 고무라를 비롯하여, 주한공사 하야시, 총리대신 가찌라등이 조약을 체결할 모의를 하고, 동년 11월 9일에는 추밀원장(樞密院長) 이토 히로부미를 황제위문의 특파대사라는 구실로 한국에 파견, 한일협상안을 정부에 제출토록하고, 10일 서울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는 그 다음날 고종황제를 배알하여 일본 천황의 친서를 봉정(奉呈)하고, 15일 재차 배알하여 한일협약안을 보였는데, 그것이 중대한 내용이어서 조정의 반대가 심하였다. 16일에는 정동에 있는 손택호텔에서 참정대신 한규설 이하 여덟대신을 위협하여 헙약안의 가결을 강요하였다. 17일에는 일본공사가 우리 정부의 전각료를 일본공사관에 불러 한, 일 협약의 승인을 괴했으나 오후 3시까지 동의를 얻지 못하므로, 그 길로 궁중에 들어가 어전회의(御前會議)를 열기로 하였다. 이날 궁성의 주위 및 시내 요소에는 무장한 일본군이 경계하고 다른 부대는 쉴사이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궁중에는 거리낌없이 드나들면서 시위하였다. 이날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주한일군사령관 하세가와와 함께 세 번이나 고종황제를 배알하여 강제로 황제로 하여금 정부대신과 숙의하여 원만한 해결을 볼 것을 재촉하였다. 한편 어전회의는 고종황제가 병으로 인하여 참석치 못한 채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모지 못하자 일본공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불러왔다. 하세가와를 대동하고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이토 히로부미는 즉시 각료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협약에 대한 찬부(贊否)를 물었다.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병기, 법부대신 이하영이 반대하였을 따름이고 다른 대신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에 못이겨 약간의 수정을 조건으로 찬성하였다. 이날 밤 이토 히로부미는 조약체결에 찬성하는 대신들과 다시 회의를 역고 자필로 약간의 수정을 가한 후 위협적으로 조인을 받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탈취당하였다는 소식이 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동 조약체결 다음 날인 11월 18일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뒤집힌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국민들은 통곡과 격분속에서 한때나마 방향감각을 찾지 못하였다. 이에 서울 종로상인들은 철시한 채 통곡하는가 하면, 각급 학교는 폐문하고 스승과 제자가 손을 맞잡고 개탄과 비분에 빠졌다. 3일 후에는 사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장지연선생이 자신이 사장겸 주필로 있던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480여 자(字)의 논설을 실어 온 국민의 울분을 대신해서 풀어준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2천만 한국민을 항쟁의 대열로 끌어들이기에 족할 만큼 격동적이었다.

5일 후인 11월 22일에는 조약체결의 장본인이자 우리민족의 불공대천지원수인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의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이날 오전 9시에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수원에서 하차, 수원의 주산인 팔달산 등 경치를 구경하고 수원에서 안양까지 사냥을 하며 안양에 도착, 안양역에서 오후 6시 15분 서울행 열차를 탔다.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지방을 구경한다는 소식을 접한 청년 원태우는 동료 이만려, 김장성, 남통봉 등과 함께 거사할 것을 맹세하고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지나가는 안양 서리재고개(현재 관악 전철역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400m지점 안양육교) 아래 철로변에 돌을 깔고 열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던 이만려가 돌을 치우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는데, 원태우는 혼자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향해 사방세치 크기의 돌맹이 수개를 던졌다. 이때 유리창이 박살나며 파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군데에 박혔다.

여기서 잠깐. 그럼 원태우는 어떻게 달리는 기차 그것도 열차안에 찬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속도가 느렸으며 돌팔매질을 한 장소는 당시 서릿재 고개라 부르던 곳으로 경사가 급하여 열차는 더욱 천천히 지나가야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로 서행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곳이다. 또 고개를 깍아 기찻길을 놓았기에 비탈진 위쪽에서 아래쪽을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내부를 보기가 쉬운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아시 장사라 불리우던 원 지사의 돌팔매질 실력과 천운을 더해서.

이 사건이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2일 후인 11월 24일 <대한매일신보>에 의해서였고, 일본에서는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신문에 보도되었다. 오사카에서 발행한 <대한매일신문> 11월23일자에는 원태근이란 이름으로 안양시장 「22통1호」라는 주소와 함께 보도했고, 도쿄에서 발행하는 <동경매일신문> 11월29일자에는 「이토 히로부미 조난전말」의 기사로 사건상황을 설명했으며, 일본 박물관 발행의 《일로전쟁화보》제29권(1905.12.8 발행)에는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란 제하의 기록화와 함께 보도했다.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그린 것으로 명기된 이 그림은,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남자(원태우)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이토에 대한 피격 사건이 전보를 통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의 증시가 한때 일시 폭락하고 일본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일본열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 사건 발생 이틀후에는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사좌서신을 보내고 사건 책임을 물어 시흥군수를 파면하고 경기 관찰사를 견책 처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원태우는 자리를 피하였으나 사이토 일본 헌병대장이 수명의 헌병과 경찰들을 이끌고 현장에 내려와 안양역의 철도노무자 였던 다니노와 야마사키의 도움으로 원테우를 포함한 4명을 체포하였다. 그중 이만려, 김장성, 남통봉은 곧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원태우는 철도방해죄로 감금되어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대를 맞고 이듬 해 1월 24일에 영등포감옥에 석방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민중 봉기 등으로 확대될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원태우의 처벌 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했기에 처벌의 수위가 아주 약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태우는 왜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온몸에 흉칙한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국부에까지 심한 고문을 당해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더욱이 생계를 꾸렸으나 여의치 못해 원 의사 형(영우)의 삼남인 계복(1910-?)씨가 원태우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수푸루지(임곡동)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타계해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709∼16 공동묘지에 장례를 치뤘는데, 그후 1982년 이곳에 화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화장되었다고 전해지나 그 처리 과정은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아 있지않다.

원태우 지사의 유품으로는 생존시 만든 돌절구 2개와 맷돌 1개가 있는데, 그중 맷돌 한 개는 1990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고, 또 한 개와 맷돌 1개는 원 지사 양자가 소장하고 있다가 안양시에 기증되어 안양시청 민원실 1층 홀에 전시되어 있다가 2018년에 안양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 의거 결행 85주년이자 원 지사 서거 40년만인 1990년 8월15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92년 11월 22일에는 안양의 자생단체인 「새안양회」에 의해 「원태우지사의거비」가 안양만안시립도서관 광장에 세워졌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형물, 평촌 자유공원에는 동상,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의거지 자리(관악역에서 서울 방향 300미터 안양자동차학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는 안양시에 세운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가 2018년 11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에 의해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 조형물이 새로 설치됐다. 또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원 지사가 태어나 자랐던 안양1동(현 농협 안양역지점)에도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 원태우 집터 표지석을 신규 설치했다.

원태우 지사의 의거는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맞선 최초의 공개적 저항 활동으로 역사적으로 대단히 값지고 의미가 있을뿐 아니라 과거 시흥군 당시에도 안양1동에서 태어난 안양이 낳은 인물임에도 안양에서는 그의 업적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원태우 지사의 조형물을 보면 의거 당시 20대 청년을 5-60대 장년으로 잘못 그린 일본인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인용해 표현하고 있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건 당시 원태우는 24살의 청년으로 농부이자 석공이었다.
그러나 자유공원의 동상, 안양역 계단 벽면의 부조에 이어 의거지에 새로 설치한 조형물 의 흉상과 얼굴 이미지를 보면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선비 모습에 턱수염이 더부룩한 5-60대의 장년의 얼굴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건 이후 일본에서 발행한 일로전쟁화보의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란 제하의 기록화(작가: 기무라 고타로/일본인)에 그려진 한복 도포에 갓을 쓴 선비 모습과 이를 밑그림 삼아 그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원태우 지사의 사진이 찾지 못했다는 이유와 무관심 등으로 지금까지 일본인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태우 지사의 의거는 조선 말 특권 계층이 아닌 일반 민중의 젊은이가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는 항일항쟁 증거 중 하나이기에 때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면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하루속히 신분을 정확히 묘사하고 조형물 이미지도 수정할 필요성이 크다.
또 안양시, 인터넷 자료 등에 쓰여진 표기는 물론 관내 설치된 기념 표지석을 보면 의사(義士), 지사(志士)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혼란을 주고 있기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참고로 국가보훈처에서는 일제강점기 열사(烈士) ・ 의사(義士) ・ 지사(志士)를 구분하지 않고 ‘독립유공자’로 통칭하지만 민간 학계에서는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성패에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무력적인 행동으로 항거하며 죽은 사람에게, 지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이란 뜻으로 대부분 광복 후에 돌아가신 분에게 호칭되고 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속음청사》,《대한계년사》,《독립운동사》,《안양문헌》,《시흥군지》,《경기인물지》,《일로전쟁화보》,《대한매일신보》

 

출처: https://ngoanyang.or.kr/4828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abc] 다큐멘터리로 부활한 원태우 의사
2019-02-27 18:18:08
[앵커멘트]
안중근 열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암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 보다 4년 먼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 했던 의거가
안양에서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원태우 지사의 의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방송됩니다.
이제문 기자 입니다.


[리포트]

안양역 입구에 만들어진 원태우 지사의 조형물.

시민들은 원태우 지사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인터뷰] 안양시민
"아니요. 몰라요." "원태우 지사라고 들어 보셨나요?
아니요." "못 들어 봤는데요."

안양에서 태어난 원태우 지사는
1905년 11월 22일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전복시키는 계획을 세웁니다.

수원으로 사냥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를
안양에서 전복시키는 거사 였습니다.

하지만 의거를 도모했던 동료들이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선로에 쌓았던 돌을 치워버리면서
거사는 물건너 가는 듯 했습니다.

뒤늦게 현장을 확인한 원태우 지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에 돌을 던졌고
깨진 유리파편에 이토 히로부미는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원태우 의사는
모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고
양자를 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안상길 / 원태우 지사 양손자
"양자가 된 동기까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기까지 고문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생산할 수도 없고..."

거사를 치른 곳은
현재 안양시 석수체육공원 입구에 위치한
안양육교 인근.

그곳에는 원태우 의사를 기억하는 작은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과 우리나라 신문에 보도될 만큼
큰 이슈가 됐습니다.

[인터뷰] 강진갑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일본에서 굉장히 충격을 받습니다.
이렇게 바로 을사조약에 대해서 반대하고
분노가 금방 표출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원태우 의사의 의거와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3월 1일,
티브로드 지역채널 1번을 통해 방송합니다.

티브로드 뉴스 이제문 입니다.
뉴스 영상 http://ch1.tbroad.com/content/view?parent_no=24&content_no=54&p_no=75702

[20190518]안양시의회, 시의원과 직원들 세금을 주머니돈 쌈짓돈 "짝자꿍"

안양지역뉴스/안양

 

안양시의회가 의정활동공통경비로 의원들에게 20만원짜리 신발 상품권을 주고, 사무처 직원에게는 오징어도 사주고, 옷도 사입고 조만간 살림도 차릴 태세입니다. 안양시민들의 세금으로 오징어 사먹고, 20만원짜리 신발 사신고, 옷도 사입고 좋으신가요? <인천일보>가 5월 17일자애서 보도했습니다.

 

 

세금으로 신발·오징어 샀다고?
허찬회
승인 2019.05.17

의원·직원에 제공 … 안양시의회 '의정운영공통경비' 부적절 사용 논란

안양시의회가 공적인 의정활동에 써야 할 '의정경비'로 시의원들에게 구두를 사 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안양시의회는 2017년에는 의원들에게는 등산화를, 사무국 직원들에게는 오징어를 사주기도 했다.

16일 안양시의회와 의원 등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해 12월 백화점에서 구두를 살 수 있는 20만원 상당의 교환권을 20명 의원 전원에게 나눠줬다.

시의회가 지급한 400만원 예산의 성격은 '의정운영공통경비'다.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보면 의정운영공통경비는 공적인 의정활동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공통적인 경비로 공청회, 세미나, 각종 회의 및 행사, 위탁교육 등의 소요경비로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도 의회나 상임위원회 명의의 공적인 의정활동 수행과 직접적 관련이 있을 때 집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의정활동비에 속한 공통경비가 남을 경우 예산을 반납하도록 돼 있다.

A 시의원은 "지난해 구두 교환권을 받았다. 그 전에는 등산화와 바람막이 등도 받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받았다"고 해명했다.

B 전 시의원은 "시민의 혈세로 의원들 개인에게 구두를 사줬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고 지적했다.

안양시의 의정운영공통경비는 지난해 1억2000만원이었다.

안양시의회는 2017년 11월 자매결연 한 강릉시의회와 합동연수회를 실시하면서 등산이나 하이킹 용도의 트랙킹화를 단체로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연수회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 몫까지 구매했고, 이와는 별도로 15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오징어까지 구매해 의원들과 사무국 직원들에게 나눠주면서 부적절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시의회는 2017년 11월, 1박2일 일정으로 강릉 라카이센트파인에서 강릉시의회와 합동연수회를 개최했다. 연수회에는 안양시 전체 의원 가운데 절반인 11명과 의회사무국장과 직원 26명 등 총 37명이 참석했고 예산만 1200만원을 넘게 사용했다.

시의회는 공식 행사를 치른 뒤 남은 예산으로 한 켤레에 17만4500원짜리 트랙킹화 22켤레, 384만여원 어치를 구입해 의원들에게 나눠줬다. 연수회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 11명 몫까지 구입해 전달했다. 이들은 또 2만5000원짜리 오징어 62개, 총 155만원어치도 구입해 의원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말이 합동연수회지 전체 연수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자신들의 신발과 먹을거리에 사용한 것이다.

시의회 조례를 보면 '의원 국내연수에 관한 여비 규정'에는 숙박비와 교통비, 식대 등에 대한 규정은 명시돼 있으나 물품구입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

하지만 의원 윤리강령에는 의원은 여비, 업무추진비 등 공무활동을 위한 예산을 목적 외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 의원교류 증진이라는 목적으로 세운 예산 집행에 의회사무국 직원의 대부분인 26명이 동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C 의원은 "누가 봐도 비난받을 소지가 큰 이런 행사를 매년 강행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말이 합동연수회지 사실상 놀러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회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 신발 교환권을 지급한 것은 맞지만 의정운영공통경비 사용이 부적절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1월 지방의원의 부당지출을 환수하기 위해 교부세 감액 제도를 엄격히 적용하고, 지방의회 관련 경비 총액한도를 삭감하는 방안 등 지자체가 지방의회 관련 경비를 적정하게 편성·집행하도록 정보공개와 감시를 강화하기로 한 바 있다.

 /안양=허찬회 기자 hurch01@incheonilbo.com

[20190517]빼앗긴 내고장 지명 찾기 글 시리즈(경기포털)

안양지역뉴스/지역

 

최근 전국 방방곡곡에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일제강점기 시절 비롯된 친일의 잔재가 남아 있다.
경기도에서는 창씨개명과 더불어 대표적인 친일 잔재인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못 쓰게 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다. 아울러 우리 땅의 고유 명칭까지 일본식으로 변경함으로써 민족 정기를 말살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려 했다.
3.1운동 100주년이 된 지금, 일제강점기 때 쓰던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지만 창지개명(創地改名) 된 지명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오랜 세월 그 지역의 역사를 담아냈던 고유 지명은 창지개명 아래 하나둘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 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무관심 속에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사는 곳의 지명이 일본식 지명이고 고유 지명은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와 민족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사는 국민으로서의 기본 책무가 아닐까.

 


잃어버린 우리 땅 이름…‘창지개명’을 아시나요?

[내 고장 지명 되찾기 ①] 창씨개명과 함께 일제가 남긴 뼈아픈 역사

이주영 juyng91@gg.go.kr  |  2019.04.03 09:22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asp?number=201904021436218545C049&s_code=C049

 


자연 지명부터 행정구역 명칭까지…우리 지명 왜곡史

[내 고장 지명 되찾기 ②] 시흥 범배산, 용인 고매곡, 양평 지평면 등

이주영 juyng91@gg.go.kr  |  2019.04.08 09:13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asp?number=201904080928057055C049&s_code=C049

 


“창지개명 이대로 둬선 안 돼…바로잡기 캠페인 펼쳐야”

[내 고장 지명 되찾기 ③] 지역민들 관심이 해결 첫걸음

이주영 juyng91@gg.go.kr  |  2019.04.15 09:09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asp?number=201904150923217614C049&s_code=C049

 

 

“고유한 땅이름이 곧 우리의 역사!”
[내 고장 지명 되찾기 ④] 정찬모 한국땅이름학회 부회장 인터뷰

이주영 juyng91@gg.go.kr  |  2019.04.22 10:50

https://gnews.gg.go.kr/news/news_detail.asp?number=201903221104247055C049&s_code=C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