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 삼동 괴말 연혁
의왕시는 전근대 시기에 광주군에 속한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 두입지(斗入地)라고도 한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군현(郡縣)의 경계가 서로 복잡하고 인구나 물산, 세력에 있어서 다른 곳과 편차가 매우 컸기에 영역이 약소한 소규모의 지역으로 세력이 강한 광주군에 속하였다.
의왕시 삼동은 조선시대에 광주군 왕륜면 삼리였다. 영조 때 작성된 관찬 전국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왕륜면은 일리, 이리, 삼리의 마을이 소속되어 있고, 이 가운데 삼리(三里)에는 편호(編戶)가 32호로 남자 45명, 여자 49명이 살았다. 이후 1789년(정조 13)의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도 왕륜면에는 일이와 이리, 삼리의 마을이 속해 있음이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으로 1914년 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원군 의왕면 삼리가 되었다가 1936년 10월 1일 일왕면 삼리로 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 8월 15일 화성군 일왕면 삼리로 되었고, 1963년 1월 1일 다시 시흥군 의왕면 삼리가 되었다. 이후 1980년 12월 1일 시흥군 의왕읍 삼리로 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의왕시 삼동으로 개칭되었다.
삼리에는 크게 상장의(上莊義), 하장의(下莊義), 괴동(槐洞)의 마을이 있었다. 상장의(윗장안말)와 하장의(아랫장안말)는 통칭 장안말이라고 불렸다. 장안말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현재 의왕역의 서쪽 편 금천과 신촌천 사이의 너른 벌판에 조선시대 중엽에 장이 섰던 곳이라 하여 장터들[장터벌]이 있는데, 이 장터의 동남쪽 안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장안말’이라 불렸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곳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의 집성촌으로, 그 후손 중에 생활 태도가 단정하고 의리가 강한 분이 살았다 하여 ‘장안말[莊義]’이라 했다는 것이다.
괴동은 일제강점기 이후 괴말이라 불렸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에 커다란 괴목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윗장안말에 살던 평산 신씨 후손들이 분가를 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순흥 안씨, 최씨 등이 대성을 이루고 살았다. 일제 강점 말기인 1943년경 현재의 의왕시 부곡동 중앙로 좌우로 철도관사가 들어서면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를 하여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동 괴말 두레농악
삼동의 괴말은 예로부터 윗장안말‧아랫장안말과 함께 대동회를 같이 해 왔다. 논매기가 끝나고 집집마다 보리쌀 한 말씩을 이장집에 가지고 가면 이장집에서 식사 대접을 하였다. 가을 농사가 끝나면 쌀 한 말을 마찬가지로 이장집에 가지고 갔는데, 이때 가지고 가는 쌀을 대동쌀이라고 했다. 대동회 때는 ‘산축’ 등 마을일에 들어간 비용을 결산하였다.
의왕시의 남부권에 해당되는 삼동, 월암동, 초평동의 대부분 마을에는 두레가 있었다고 전한다. 각 마을에서는 두레를 구성하여 논매기를 했다. 이들 두레는 인근의 수원지역의 입북리두레, 당수리두레와 함께 마을에 경사가 있거나 할 때 서로 방문하여 같이 놀기도 하였다. 특히 월암동 도룡말두레가 그중 최고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대를 전후하여 농사일 하는 사람들이 줄고 공장으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두레는 사라져갔다고 하다.
하지만 괴말에서는 2000년대까지 삼동 괴말두레의 농악이 이어져 왔다. 전통적인 농악 가락으로 일정한 내용을 갖춘 두레 농악가락이 사라지지 않고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까지도 상쇠 안광준(1947년생)을 중심으로 그의 친형인 안항(1941년생, 징), 최승근(1958년생, 장구), 신진균(1958년생, 북) 등이 농악을 이어오고 있다.
상쇠 안광준의 아버님 故안상현은 마을의 상쇠였는데, 안광준은 아버지가 늘 치던 게 귀에 익어서 커서도 설이나 추석 때 친구들과 모여 쳤던 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현재 안광준의 가락은 아버지가 쳤던 꽹과리를 이어서 치고 있다. 최승근은 아버지가 마을에서 장구를 쳤고, 그 기억을 가지고 안광준과 함께 농악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치던 장구를 이어서 치고 있다. 신진균 또한 아버지가 마을에서 북을 쳤고, 어렸을 때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농기를 들고 악기를 쳤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치던 북을 이어서 치고 있다.
특히 삼동 괴말 두레농악에는 농기가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노동요로 故안상현 상쇠의 ‘둘레소리’와 ‘상사소리’가 확인됨으로써 의왕농악의 전통적인 모습을 복원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하 의왕농악으로서 삼동 괴말 두레농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의왕농악학술조사연구보고서를 참조하여 정리하시면 됩니다.
▶의왕두레농악 유래
삼동의 괴말은 예로부터 윗장안말 ‧ 아랫장안말과 함께 대동회를 같이 해왔다.
논매기 때는 집마다 보리쌀 한 말을, 추수 때는 쌀 한 말(대동쌀)을 이장집에 가지고 가면 이장집에서 식사 대접을 하였다.
의왕시의 남부권에 해당하는 삼동, 월암동, 초평동 마을에서는 두레를 구성하여 논매기를 했는데, 월암동 도룡말 두레가 최고였다고 한다.
1960년대를 전후하여 두레는 점차 사라져 갔으나, 2000년대까지 삼동 괴말 두레농악이 이어져왔다.
의왕 지역에서 전통적인 농악 가락으로 일정한 내용을 갖춘 두레 농악 가락이 사라지지 않고 전해오는데, 최근까지도 상쇠 안상현(아들 안상준 계승-꽹과리), 안항(안상준 친형-징), 최승근(장구), 신진균(북)이 이어받았으며,
노동요로 故 안상현 상쇠의 ‘둘레소리’와 ‘상사소리’가 확인됨으로써 의왕 농악의 전통적인 모습을 복원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에 의왕문화원에서는 각 전통 마을의 농악 관계자들을 포함한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뵈어 구술 증언을 채록하고 체계적으로 기록으로 남겨 의왕 농악의 원형을 복원하였다.
▶의왕두레농악 고증
-김원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교수, 시흥 시립전통예술단 예술감독,
인천 연수구 구립예술단 운영위원)
▶의왕두레농악 고증 과정
2020년 12월 28일 : 의왕농악 발굴의 의미와 문화적 가치 학술 세미나
2021년 12월 30일 : 의왕농악 발굴 중간 보고회
2022년 04월 28일 : 의왕농악 학술 조사 연구보고서
2023년 01월 16일 : 의왕농악 재현 사업 시작(40명 연습 시작) ~ 진행 중
2023년 10월 03일 : 의왕농악 재현 발표 공연
2024년 11월 제26회 경기민속예술제 성인부 최우수상 수상
(2025년 9월 개최 ‘제66회 한국민속예술제’ 경기도 대표 출전자격)
2025년 05월 31일 : 의왕문화원 주관 ‘제22회 의왕단오축제’ 공연(왕송호수공원)
▶의왕두레농악 구성원(총 43명)
-악기 13명(꽹과리 3, 징 2, 장구 4, 북 3, 태평소 1), 영좌(마을 대장) 2명, 기수 6명, 농민 14명, 아낙 8명
제22회 의왕단오축제, 의왕두레농악 공연
의왕 예스왕 ・ 2025. 6. 19. 10:00
https://blog.naver.com/yesuw21/223904310166
제22회 의왕단오축제, 의왕두레농악 공연
제22회 의왕단오축제, 의왕두레농악 공연 안녕하세요, 의왕시 SNS 서포터즈 시민기자단 신은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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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박철하 선생은 의왕시 오전동 전주나미마을 345번지에서 태어난 의왕 토박이로 고천초, 안양중, 유신고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와 숭실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단체. 전국 군 이상 지방에서 활동했던 계급의식이 있는 청년들의 반일운동과 사회혁명운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역사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참여와 자치를 위한 의왕풀뿌리희망연대 공동대표, 의왕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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