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2009023]안양 평촌을 대표하던 '국토연구원' 건축물 사라졌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9.23/ #안양 #평촌 #옛국토연구원 #건축물/ 안양시청앞 안양 동안구 시민대로 254(관양동 1591-6)에 있던  옛 국토연구원이 사라졌다. 1994년 4월 17일 준공한 국토연구원 건물은 지하 2층~지상 10층(연면적 1만9천961㎡) 규모로 정부의 공기업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매물로 내놨던 종전부동산이다. 총 10차례 유찰된 후 2014년 11월에 안양에서 병원사업을 하는 개인 K씨에게 710억원에 매각됐다. 연구시설 용도로 건물이 지어졌지만 유찰 과정에서 업무·숙박·의료시설용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규제가 완화돼 병원, 호텔, 오피스텔 등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예상됐으나 수년간 방치돼 오다가 1981년 설립된 부동산개발업체인 디벨로퍼 디에스네트웍스가 생활형 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1350억원에 매입한후 공사가 잔행중이다. 한편 안양에 존재해 온 오래된 연구시설(전파연구소-없어짐.수의과학검역원. 국토연구원-철거중. LG연구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20200924]코로나19 공원내 거리두기 모임 원천 봉쇄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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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4/ #안양 #동네 #골목 #코로나19 #원천봉쇄 #노송공원/ 안양시내 공원중에서 가장 강력한 원천봉쇄 조치를 보다. 안양6동 골목길에 있는 노송공원. 평소 노인들과 주변 주택가 어린이, 주부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 코로나19 거리두기 조치로 공원내 정자 출입을 못하게 안전차단 리본을 칭칭 감아놓았다.

[20200922]추억의 전기구이 통닭 지금도 맛볼 수 있다.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9.22./ #안양 #동네 #골목 #전기구이통닭 #중앙시장 #먹거리/ 얼마전 지인 페친들이 먹고파했던 전기구이통닭. 지금이야 치맥하면 다양함 종류의 치킨을 맛볼 수 있지만. 과거 통닭하면 1960대 시작된 중산층 문회로 일반 서민층이 먹기 힘들었다고 한다. 통닭은 지금처럼 튀기는 게 아니라 전기구이 방식이었다. 1960~70년대에 꼬챙이에 꿰인 채 빙빙 도는 전기통닭의 모습은 닭 요리의 대중화를 알리는 신호였다. 당시에는 퇴근후 술 한잔으로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전기구이 통닭 한 마리가 담긴 “누런 봉투”를 들고 한밤중에 귀가하면 집안은 닭냄새로 진동하며 행복했다. “요리칼럼니스트 김학민씨는 ‘요리 과정이 복잡한 백숙이나 삼계탕 같은 요리가 다였던 시절 간편한 조리법의 (전기구이) 통닭이 등장한 건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한다.” 또 전기구이를 탸ᅟᅢᆨ한 것 당시 시교ㅕ용유가 매우 비쌋기 때문에 전기를 이용했다 한다.
전기구이 통닭집은 1970년대 동네마다 제법 많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자취를 감춰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안양1번가 신도예식장옆 홍가네 닭매운탕 집동도 예전에는 전기구이 통닭으로로 유명한 곳으로 젊은이들이 생맥주를 마시며 데이트를 즐기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전기구이통닭은 이후 가마솥 기름에 튀기는 통닭과 양념 통닯, 숯불에 굽는 형태의 바베큐 통닭 등으로 진화한다. 안양의 경우 가마솥통닭은 인덕원의 유성 통닭, 바베큐통닭은 안양 일번가와 평촌 학원가 먹자골목의 꼬꼬바베큐에서 전기통닭은 안양중앙시장 7문(삼덕공원쪽)앞, 명학역앞 에서 구입 또는 맛볼 수 있다.

 

 

 

 

 

[20200914]1980년대 안양1번가의 LG패션몰 표지 판넬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0.09/ #안양 #동네 #골목 #안양일번가 #LG패션/ 안양일번가 골목(장내로 149번길)에 LG패션이 있던 건물. 안양일번가는 1950-1970년대 안양읍시절에는 관가의 중심지였으며 1970년대부터 평촌 신도시가 생기기 이전인 1990년대 초까지는 유흥가와 술집, 식당, 고급패션과 브랜드 대리점들이 밀집한 지역 경제의 중심지였다. 현재의 롯데리아, 맥도날드 등이 자리한 곳은 1950-60년대 안양읍사무소가 있었고, 1976년대에는 안영 최초의 안양벡화점이 들어섰으며 이후 LG패션, 닥스대리점 등이 있다가 퍙촌신도시 조성이후 일안양일번가가 침체되면서 청소년, 젊은츤 눈높이에 맞는 점포들이 입주하는 형테로 변했지요.

 

 

 

 

 

 

[20200910]태풍이 지나간후의 의왕 왕송호수와 바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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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 #의왕 #왕송호수 #바라산/ 의왕시 보도자료 사진 

기록적인 장마와 연 이은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백운호수 생태탐방로에서 바라본 바라산은 자연이 만들어 낸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의왕시 학의동 백운호수에 설치된 길이 3km의 생태탐방로를 걷다 보면 사시사철 달라지는 주변의 산과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20200831]그때그시절(1970-2010), 안양일번가 골목 건물 그대로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1973.10.1- 2020.08.31/ #안양 #1번가 #건물 #그때그자리 #사진비교 #제일양복졈 #디저트카페/ 1970년대 지어진 안양1번가 제일양복점 건물. 5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건축물인데 할아버지얼굴이 그려진 패스트 후드 체인점 KFC가 오랜기간 영업하다 문을 닫고 최근 몇달간 내부 공사를 하더니 멋드러진 디저트카페(카페더브릿지)로 재탄생했다.
현재 안양일번가는 안양의 대표적 젊음의 거리이지만 1970년대 안양읍시절의 안양1번가는 구시장(시대동)과 새시장(장내동)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으로 중앙동이라 불리우며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서가 중앙로 양쪽으로 쭈욱 있었고, 주변에는 제일양복점, 칠성제화 등 양화점과 다방, 중국집 등이 있던 행정타운이었다.
지역으로 중앙동이라 불리우며 시흥군청(삼원프라자호텔), 안양읍사무소(롯데리아일번가점 건물, 안양경찰서(미앤미케일), 의용소방대(KT 1번가직영점) 등 관공서가 중앙로 양쪽으로 쭈욱 있었고, 주변에는 제일양복점(카페더브릿지), 칠성제화(짬뽕파크) 등 양화점과 다방, 중국집 등이 있던 행정타운이었다.
당시 안양경찰서는 두번째 흑백사진 왼쪽에 2층 건물이었다. 이는 현재의 주소지로 보면 안양로 292번길로 미엔미케익전문점 좌우가 해당된다.. 또 경찰서 좌측으로는 의용소방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의 KT 1번가 직영점, 오렌즈, 붐케이스등이 입주한 건물이 있는 자리로 뒷뜰에는 비상을 알리는 종탑이 세워져 있었다.
흑백사진 윗쪽에 제일양복점이 보이는데 당시에 안양읍내에사  3층 건물은 많지 않았다. 제일양복점은 90년대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 KFC가 자라했다가 쵣근 다시 내부수리를 통해 디저트카펙라들어선 것으로 건물의 뼈대는 50년이 넘는다. 현재 안양1번가 건물들의 겉모습과 실내 상점 모습은 현대식이지만 실제는 50년전인 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적지않다.

 

 

 

 

[20200906]코로나19, 공원내 휴게시설 폐쇄했으나 풍선 효과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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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6/ #안양 #동네 #골목 #학운공원/ 코로나19 2.5강화 조치로 안양시 공원관리과에서 사람이 모이는것을 금하기 위해 공원내 쉼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폐쇄했다. 이 자리는 평소 노인들이 모여 장기와 바둑을 두는 장소. 그렇다고 못할소냐 노인들은 삼삼오오 작은 벤치로 이동해 결국 장기판을 펼치는 이른바 풍선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20200909]군포시청사 입구에 마련된 통합도시브랜드 조형물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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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가 새로운 통합도시브랜드를 홍보하고 시민들이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청사 앞에 조형물을 설치했다.

 


 

[20200830]안양일번가 불법주차 방치에 보행권 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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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안양 #동네 #골목 #안양1동 #안양1번가 #보행권 #불법주차/ 안양시에는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개선에 관한 조례'가 있습니다. 2001년 제정된 이 조례는 '모든 시민은 편안하고 안전한 보행 환경에서 생활한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시장은 보행약자를 포함한 모든 보행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책무가 있다'는 조항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조례가 무색할 지경입니다. 경찰은 몰론 시청과 구청에서 관리와 단속은 커녕 "나몰라라" 손 놓은지 오래이지요.

 

 

 

 

 

 

 

 

  

[20200831]안양일번가에 있는 안양행궁터 존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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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안양 #동네 #골목 #안양행궁터 #표지석 #안양1번가/
안양1번가에 자리한 안앙행궁터. 안양 만안구 장내로 139번길 골목 사거리 더존아카데미빌딩 앞(금은방에서 음료가게로 바뀜)귀퉁이 한쪽에 자그마한 표지석 하나가 달랑 놓여져 있다. 하지만 표지석 주변 환경을 보면 이곳이 안양행궁행터가 맞나 할 정도로 문화유산을 대하는 안양시 수준을 보는듯해 마음 아프다..

 

정조임금과 안양행궁

 

조선 시대 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년)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서울 창덕궁에서 아버지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 현릉원까지 약 60㎞.의 길로 13번의 원행길에 나섰다.
원행길에는 임금이 잠시 들러 머물던 곳 행궁(行宮·임금이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 있었는데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은 화성행궁을 비롯 노량행궁, 과천행궁, 시흥행궁, 안양행궁, 사근행궁, 안산행궁 등이 있었다.
정조는 창덕궁을 출발해 숭례문, 노량진, 용양봉저정을 거쳐 남태령을 넘고 과천행궁에 머물렀다가 군포로 진입하는 '과천길'을 이용하다가 환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원행에 나섰던 1795년을 기점으로 창덕궁에서 시흥행궁과 대박산과 만안교를 건너고 안양행궁을 거쳐 군포로 들어가는 '시흥길'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과천길은 연로한 어머니와 행렬이 지나가기에 지형이 협소하고 언덕이 많았다. 대신 넓고 평탄한 시흥길이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 길은 이후 1번국도이자 만안로이며 시흥대로이다.
정조는 시흥길을 지나며 시흥행궁과 안양행궁, 사근행궁 등에 머물다 간 것으로 전해지지만 아쉽게도 이들 행궁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만다.
금천구청이 발간한 '시흥행궁 복원 및 활용을 위한 학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사료가 거의 없다 보니 시흥행궁이 현재 금천구 시흥동 일대에 자리했을 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양행궁도 안양1번가 상가 건물앞에 '안양행궁지'라는 작은 표지석으로 있다.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표지석이 있는 곳에 큰 기와집이 있었고 '대궐터'라고 불렀다고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안양4동 담안(중앙성당 인근) 등을 얘기하는 등 안양행궁의 정확한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 안양행궁이 없어진 이유로는 시흥행궁에 불이 나서 이를 보수하는데 안양행궁 자재를 갖다 쓰면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 또한 기록이 없어 사실이라 말할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