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397

[20250218]조선총독부 1942년 조사한 안양 삼성산 사적 기록

2025.02.18/ #아카이브 #문화재 #안양 #삼성산 #조선총독부 #since1942/ 조선충독부가 1942년에 조사한 시흥군 삼성산의 사적 기록. 경기도 시흥군 삼성산 서남록(西南麓) 비‧귀부‧고분(제5호지), 암벽 조각(제6호지), 안양리 오층탑(제7호지)조선총독부가 1942년에 제작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고적유물에 석비귀부(현 안양사 귀부)와 고분(현 석수동), 석실귀부(石碑龜趺), 석등(石燈), 마애종 등이 수록돼 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https://www.museum.go.kr/modern-history/view.do?seq=20249&aseq=238&fbclid=IwY2xjawIhXQxleHRuA2FlbQIxMAABHQuMLAqUQqnTCXbyl1RrDV..

[20250218]안양영화촬영소 제작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전단지

2025.02.18./ #아카이브 #안양영화촹영소 #기록 #전단지 #since1959/명칭/영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전단지/ 1950년대 한국영화, 새로운 시대를 열다.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은 당시 국내 최고의 제작비인 7200만환을 투자하여, 당시 최대 규모의 세트장인 안양스튜디오에서 촬영하였다. 소장처/유물번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한박004014 1. 개요 전창근 감독이 연출하고 직접 안중근 역으로 출연한 1959년 개봉 영화.당시 한국 영화 3편을 제작할 수 있는 7,200만환 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다. 영화의 하일라이트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을 위해 안양 스튜디오에 300여평 규모의 하얼빈역 세트를 만들었고, 출연진과 스태프 총 300여명, 연 인원 ..

[20250216]안양기독보육원 설립과정 및 초창기 운영 기록

네이버 블로그(2008jsl)2014. 11. 15. 7:45출처: https://blog.naver.com/2008jsl/220181778497 경성보육원(안양기적보귝원-해관육원-좋은집)의 설립과 운영(1919-1945)  이 글은 광주대학교 한규무교수가 향토서울 79호 (2011.10월)에 게재한 내용으로 현재 안양에 있는 좋은집(경성보육원-안양기독보육원-해관육원-좋은집)의 총창기 설립과장과 운영실태는 물론 안양기독보육원이 분원 형태로 운영된 이야기. 농장을 운영하게 된 배경 등 귀중한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기록은  네이버 블로그(2008jsl)에서 발견했으며 소중한 기록을 연구차원에서 함께 나누고 공유한다.  경성보육원의 설립과 운영(1919-1945)  1. 머리말 경성보육원은 일제강..

[20250215]1983년 <사진으로 본 안양시의 어제와 오늘> 기록

2025.02.15/ #아카이브 #옛사진 #역사 #기록 #사진첩/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첩   1993년 발간된 안양시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안양시 발간 도서로 당시 시승격 20주년을 맞이하여 안양이 형성된 초기부터 평촌신도시가 막 조성되던 1993년 당시까지 안양시의 모습을 담은 일종의 화보집이다. 두툼한 누런 보호뚜겅에 보관된 책자를 갖고 있고 이를 공유할까 하는데 분량이 많고 화보집 사이즈가 커서 스캐너로 사진 파일로 만들기가 용이하지 않아 고민하던차에 누리꾼 쥰(jiwoon39)이라 분이 네이버 블로그에 각 지면을 상하권에 담아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 감사합니다.  상권  https://blog.naver.com/jiwoon39/223270839923 소장자료 리뷰 43편 - 사진으로 본 안양의..

[20250215]안양기독보육원장 오긍선박사 길러낸 존 A. 알렉산더

조선의 醫師 오긍선박사 발굴하고 길러낸 미국인  존 A.  알렉산더[출처]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409100057 월간조선: 양국주 서빙더네이션스 대표 : [역사발굴] 일제강점기 조선땅에 온 벽안의 선각자들 ⊙ 프린스턴·컬럼비아의대 나온 大부호의 아들… 1902년 來韓했으나 父親喪으로 두 달 만에 귀국⊙ 조선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지속 교제… 순천에 알렉산더 병원 등 교회당과 병원 건립⊙ 배재학당 졸업한 청년 吳兢善을 켄터키 루이빌로 데려가 朝鮮 최고의 의사로 키워⊙ 1929년 우드포드에서 향년 53세로 별세… 吳兢善 키우는 등 선교사 역할 톡톡히 해내 1902년 늦가을 11월, 그는 여느 선교사처럼 조선에 ..

[20250208]단군 이래 최대 비극 100년 전 <을축년 대홍수> 보고서

2025년 올해는 국내 ‘20세기 최대 자연재해’라고 불린 1925년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한지 100년째 되는 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는 단군 이래 최대 비극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의 그것보다 크다고 평가한다. 1925년 을축년에 발생해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라 불리우는 국내 역사상 가장 큰 훙수 당시 서울·경기 300~500mm, 파주엔 무려 650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한강이 넘쳐났다. 7~8월에만 전국 4곳에서 대홍수가 터졌다. 피해도 상당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사망자 647명, 피해액 1억300만원이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총독부 1년 예산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을축년 대홍수를 톺아보는 기획연구인 ‘을축년 대홍수 그 후 ..

[20250207]1937년 발행 <경기명승사적> 수록된 안양풀

202502.07/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안양풀 #경기명승사적 #시흥군/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지방행정학회에서 소화12년(1937년)에 발행한 경기명승사적 책자에 수록된 1930년 안양풀의 모습이다.  지금은 안양예술공원이라 부르는 이곳이 과거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유명했던 수도권주민들의 여름철 휴양지 였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까.안양예술공원(안양풀-안양유원지)에 대한 사진 기록으로는 현재까지 찾은 것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이 아닐까 싶다.현재의 안양예술공원. 과거 안양 풀 또는 안양유원지로 불리우던 이곳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계곡을 막아 풀장을 조성하고 하천 암반 초석에 한자와 일본어를 섞어 安養プ―ル(안양 풀 pool)'이라고 기록하고 일본 연호와 조성자 이름도 새겼다.기록을 보면 안양풀..

[20250203]과거 기록으로 보는 안양 망해암(望海庵)

망해암(望海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절에서 전하는 연혁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유물이나 문헌으로 고증된 사항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1407년(태종 7) 한양의 백호(白虎)에 해당하는 관악산의 산천기맥(山川氣脈)을 누르기 위해 왕명으로 몇몇 사찰을 중창할 때 함께 중건하였다고 한다. 1803년(순조 3) 홍대비(洪大妃)의 시주로 중창하였고 1863년(철종 14) 대연화상이 중수하였다. 1950년 6 · 25 전쟁으로 소실되었는데, 이후 현대식으로 신축하였다. 용화전 내에 조선 초기의 석불입상이 봉안된 점을 고려하면 망해암은 조선 전기에 건축된 사찰로 추정된다. 경내에는 근래에 건립한 법당과 범종루, 요사 등이 있다. 용화전에는 화강..

[20250130]박찬응 작가의 2025년 새봄맞이 입춘첩

"2월3일 23시10분! 단기4358년, 서기 2025년 새봄이 시작되는 시간이랍니다! 갑진에서 무진으로 바뀌는 그순간에 입춘첩을 현관이나 대문에 붙여서 ’푸른뱀의 기운으로 나라에 든 액을 꽁꽁 묶어서 멀리 보내버리고 우리내 살림살이 술술 풀리는‘ 새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 입춘첩은 1980년대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회원, 안양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관장, 군포문화예술재단 예술진흥본부장 등을 역임했던 문화예술기획자이자 그림 그리는 사람  박찬응 작가가 직접 쓰고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박찬응 작가는 오래전 부친께서 입춘첩을 일가친척과 동네지인들에게 나누어주셨는데 본인도 몇년째 아버지 흉내를 내고 있다고 한다. 금년에도 세월이 하 수상하고 뒤숭숭해서 새봄맞이 입춘절이라도 붙여서 액막이라도 ..

[20260125]우리나라 최초 우체국 연하엽서 1957년 발행

새해 집 책상 서랍과 오래된 박스속 물건을 정리하다 나오는 예전에 받았던 연하장을 보면 세월이 한참 지났자만 보낸 이의 고운 마음까지 느껴져 추억에 잠기게 한다. 연말 성탄절이 다가오면 요즘에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카톡, 메일과 SNS로 안부를 주고 받지만 오래 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를 빌려 축하 카드를 직접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을 앞두고는 다양한 연하장을 보냈다. 예전는 우체국에서 연하엽서를 판매했으며 문방구나 서점, 상점에서 인쇄된 카드를, 거리 간이좌판에서는 직접 그림을 그려 제작한 카드를 판매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 때문에 연말연시가 되면 문구점과 서점, 우체국이 북새통이었다. 깜찍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다양한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적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