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210904]안양 민주둘레길 탐방 해설 심화과정 자료집

이야기보따리/자료

안양 민주둘레길 심화과정 자료(PDF).pdf
3.99MB

 

[20210902]안양예총 30년사(1990-2020) 귀한 책자를 받았습니다.

이야기보따리/자료

2021.09.02/ #안양 #책자 #안양예총30년사/ 오늘 이제옥 안양예총회장님으로부터 안양예총 30년사(1990-2020)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주기 위해 책이 나오자마자 저에게 연락도 하고 무거운걸 끌어안고 다녔다는데 이제서야 전달받았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안양예총 30년사에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안양예총과 소속 8개 협회의 활동사가 담겨 있습니다.
총 54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안양예총 30년의 역사와 함께 안양예술문화의 변천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지요.
안양예총의 오랜 숙원 사업이기도 했던 ‘안양예총 30년사’에는 사진으로 보는 안양예총 30년을 시작으로 제언과 논총을 통해 안양지역 예술문화의 현황과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글과 함께 안양예총 30주년을 기념해 지역 원로 예술인들과 진행한 특별 좌담회도 지면에 실려 있네요. 특히 좌담회에는 안양예총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원로 예술인들의 애환이 진솔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어 안양예총의 태동과 형성, 창립과 성장, 발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의 역사와 현황, 안양문인협회, 안양미술협회, 안양사진작가협회, 안양음악협회, 안양연예예술인협회, 안양연극협회, 안양무용협회, 안양국악협회 등 8개 협회의 역사와 현황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산수화로 유명한 오용길 화백을 비롯한 안양출신 예술인들의 활동상을 담은 안양을 빛낸 예술인 소개와 안양예총의 창립 주역인 故 김대규 시인을 비롯한 안양의 예술문화를 위해 헌신하시다 작고하신 예술인들을 조명했으며, 부록에는 안양시 문화예술단체 현황과 문화예술관련 조례 등을 담았네요.
발간사에서 이재옥 회장은 30년사 발간의 의미를 “단순한 사실 기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안양예총 30년사 발간을 통해 지역 예술가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나아가 안양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책]마을 아카이브, 이제 안녕 의왕 도룡마을

이야기보따리/자료

2021/ #의왕 #마을 #기록 #아카이브 #도룡마을 #사이다 #더페이퍼/

의왕시 도룡마을 300일간의 기록보고서 '이제 안녕, 도룡마을'이 출간됐다.
의왕시 월암동 도룡마을은 지난 2018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없어진 마을이다. 골목잡지 사이다는 지난 겨울부터 여름 내내 마을을 오가며 주민들이 기억하는 도룡마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제 안녕, 도룡마을'은 우리 삶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도권의 많은 마을이 개발 속에서 사라지는 요즘 기억을 통한 마을 아카이빙 활동은 현재를 기록하는 중요한 실천이다.

이제 안녕, 도룡마을(마을 아카이브 1)
저자 골목잡지 사이다
출판 더페이퍼
2020.12.17. 페이지수352
사이즈 180*260mm
판매가 서적 18,000원

책소개

우리 삶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과 실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수도권의 많은 마을들이 개발 속에 사라지고 있는 지금 기억을 통한 마을아카이빙 활동은 현재를 기록하는 중요한 실천 활동이다.
경기도 의왕시 월암동 도룡마을은 2018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어 사라지게 된 마을이다. 골목잡지 사이다는 지난 겨울부터 여름 내내 마을을 오가며 주민들이 기억하는 도룡마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왔다.
도룡마을은 대부분 주민이 농사를 짓고 살아온 도심 속 농촌마을이다. 서로 아끼고 돌보는 ‘함께’의 가치가 살아있는 마을, 바쁜 농사철에는 품앗이로 고된 농사 일손을 나누고 상을 당하면 함께 상여를 메었던 사람들. 《이제 안녕, 도룡마을》과 함께 마을주민들의 기억을 따라 가다보면 도룡마을의 흙냄새와 꽃이 피고 지는 풍경, 일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만날 골목잡지 사이다

목차

하나. 이제 안녕, 도룡마을
포토에세이
마을의 기억을 만나다
마음에 남긴 풍경

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우리가 도룡마을에서 살았어요
오래된 앨범
오래된 물건이야기

셋. 마지막 농사를 짓다
마지막 농사를 짓다

책 속으로

도룡마을 마을스케치
“여기 저기 산 있었는데 산소도 큰 게 많고 그랬었는데 거기 올라가면 도토리나무, 푸른 나무 하여튼 들꽃이 많았어. 꽃냄새가 아주 팍 나고 아주 그런 곳이 많았었어. 나는 산이 없는데서 시집을 와가지고 거기 올라가면 얼마나 풀냄새가 좋은지 국화 냄새나고. 옛날에 진짜 좋았었어. 이 동네.”- 안종희(79세, 월암 도룡마을 거주)

장승이 지켜주는 마을
의왕시 월암동 도룡마을은 덕성산이 아늑하게 품어주고, 주민에게 풍성한 농작물을 선물처럼 전해주는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덕성산을 지나는 등산객들과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농촌마을의 따뜻함을 보여주는, 도심에서 보기 드문 곳이다.덕영대로에서 마을로 들어서면 찾아오는 이를 제일 먼저 맞아주는 것은 돌장승들이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듬직한 모습으로 세워진 장승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본격적으로 도룡마을로 진입했다.아주 오랜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전해오는 마을, ‘도룡동(道龍洞)’이라 했다는 전설에 기대어 도룡마을이라 불리고 있는 이 마을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성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고,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과 집을 지키고 살아오는 농부들이 살고 있다.지금은 어린 아이와 젊은이를 찾아보기 쉽지 않고 60여 채가 안 되는 가구만 남아있어 저무는 노년의 모습 같은 마을이지만 이 마을에도 청. 장년기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마을 분들을 만나며 그들의 인생이야기 속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2년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당제를 지내고 마을입구에 세워진 장승에게 장승제를 지내는 도룡마을 사람들은 전통을 계승하고 지키는 소박한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다.

농사가 천직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
마을에 들어서니 싱그러움을 품은 너른 논과 밭들이 보인다. 과거엔 천수답으로 물이 귀했다던 논에는 어느덧 이삭이 달려 영글기 시작한 벼가 농부의 사랑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밭에는 상추, 참외, 고추, 토마토, 조선오이가 반가운 얼굴로 지나가는 손님에게 말을 건다. 월암오이(조선오이)는 갓이 얇고 아삭아삭 시원해서 인기가 많았다는 소문처럼 인터뷰로 만난 어르신이 정겹게 건네준 오이의 맛은 역시나 소문대로 시원하고 달큰하다.정성껏 키운 밭작물을 인근 부곡도깨비시장부터 수원 영동시장, 안양 남부시장까지 오가며 팔아 자녀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던 어렵던 그 시절의 거룩한 생계이야기, 수원 북중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했던 학창시절 이야기, 당제와 장승제 이야기들 속에서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공동체의 지난 추억이 방울방울 샘솟는다.

이웃사랑의 마음을 담다
마을의 중간인 갈림길에서 덕성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다 보면 월암쉼터가 보인다. 이웃과 나그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과 휴식을 제공해주는 쉼터는 맞은편에 있는 월암교회에서 마련한 공간이다. 십 여 년 전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손수 논에 물을 대어 논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던 장로님의 사랑 나눔 덕분에 논썰매장에서 신나..

저자 : 골목잡지 사이다
출판사 (주)더페이퍼는 지난 2012년 봄 수원 남수동을 시작으로 동네 문화의 부활과 소통을 위한 '골목잡지 사이다'를 발행하고 있다. 사이다는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그물코다
또 '피난민 이야기', '수여선', '도서관과 나' 경기도 메모리 작업을 진행하는 등 지역 아카이브 활동과 공공예술프로젝트 기획, 공공주택개발지구의 기록화 사업 및 지역 문화 콘텐츠 개발을 통해 사회적 공공서비스 영역을 확장하며 출판을 통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고 있다..

 

[최병렬]안양문화원 '안양5동 마을지 발간' 모처럼만에 제 역활(2021.03.09)

이야기보따리/자료

021.03.09/ #안양 #책 #도서 #자료집 #안양5동 #안양문화원/ 안양문화원에서 한권의 책이 배송되어왔습니다. 책 제목이 '수리산자락에앉은 냉천.교하마을 안양5동'입니다. 사진제공과 인터뷰 등으로 집필과 자료집 발간에 도움을 주었더니 책을 보내준 것이지요.
재개발로 사라지는 마을 냉천마을과 안양초교 주변 교하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마을자료집인데 안양문화원이 모처럼만에 책다운 책을 발간하고 문화원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 같아 기뻤습니다.
책을 받자마자 문화원에 전화를 걸어 마을지발간을 담당했던 학예사에게 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지요.

 

5동마을지를 살펴보니 안양5동의 자연마을인 냉천마을과 교하마을을 중심으로 안양5동 지역의 역사, 마을의 형성과 변화, 주민들의 삶과 문화 등을 문헌 조사, 현지 조사, 구술 조사 등을 바탕으로 역사, 지리, 민속 등 인문사회분야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집필되었으며, 특히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사라지는 냉천마을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제1부 안양5동의 도시 지리와 도시 공간
제1장 안양5동의 지리적 환경
제2장 도시 지표로 보는 안양5동
제3장 안양5동의 주거 건축
제4장 안양5동의 문화유산
제2부 교하마을의 형성과 변화
제1장 교하마을의 유래와 변화
제2장 교하마을 주민의 생활 문화
제3부 냉천마을의 형성과 변화
제1장 냉천마을의 유래와 변화
제2장 판우물의 쿨(cool)한 기운, 냉천마을 장미아파트
제3장 대형 아파트단지 주민의 생활과 문화
제4장 주거환경개선사업과 사라지는 마을 풍경
제4부 구획화된 공간과 주민 생활
제1장 토지구획정리사업과 1960~90년대 주거지 형성
제2장 안양5동 상업지구와 근린 상권
제5부 안양5동 사람들
제1장 안양5동 토박이 강세일
제2장 안양5동 원로들의 모임 동심회
제3장 안양 유아교욱의 선구자 벧엘유치원

 

즣은 자료집을 내기까지는 기획도 중요하고 휼륭한 집필진의 조사와 연구등이 무엇보다 큰몫을 했다고 봅니다.
아쉬운것은 기록의 중요성을 위해 사라지는 마을의 모습을 지도 또는 일러스트 이미지로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안양문화원은 지난 2020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향토사와 지역문화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주관 사업으로 마을지 발간 사업을 기획하고 그 첫 대상지로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철거가 시작된 냉천마을이 속한 안양5동을 선정하여 진행하였다네요.
안양문화원이 마을지 발간사업을 이번 한번으로 끝내지말고 재개잘, 재건축으로 사라지고 없어지는 마을과 동네가 많은 안양의 곳곳을 기록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술로 남기는 작업을 우선시하여 계속 이어가는 안양문화원의 활동을 기대합니다....

 

 

[20210216]삼남길, 조선물류의 대동맥

이야기보따리/자료

‘경기도 옛길 역사문화탐방로 사업’(이하 경기옛길)은 제주로(해남로)에 기반하여 조성된 삼남길로부터 시작된다. 경기도가 조선의 간선도로망을 기반으로 하여 옛 조선시대의 길을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걸어서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것이 경기도 옛길이다. 옛 선인의 발자취를 체험한다는 목표 아래 이름도 역사문화탐방로로 정했다. 이번 호에서는 경기옛길사업의 첫 단추인 삼남길을 먼저 소개한다. 참고로 지명에 관련한 이름들은 고유명칭의 혼동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한자를 병기한다.

1) 경기옛길 삼남길의 기반, 삼남대로(三南大路)의 개념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 이후 한양에서 삼남(三南;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통하는 대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경기옛길 사업에서는 조선시대의 간선도로망을 표현할 때 당시의 명칭을 살려 ‘삼남로(三南路)’(또는 삼남대로三南大路)로 표현하며 현재의 도보탐방로를 칭할때는 ‘삼남길’로 부른다. 이 두 노선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삼남로의 원형을 소개한 후 밝히도록 한다. 먼저 삼남길의 기반이 되는 삼남로의 노선을 살펴보자.

도성에서 지방의 삼남지방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여러 갈래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숭례문(崇禮門)에서 출발, 이문동(里門洞)-주교(舟橋)-청파역(靑坡驛)-석우참(石隅站)[分岐]-와요현(瓦窯峴)-판전거리(飯廛巨里)-동작진(銅雀津)을 지나 과천방면을 거쳐 수원지역으로 연결되거나 석우참(石隅站)에서 분기(分岐)하여-둔지산(屯之山)-서빙고진(西氷庫津)-6리와 당현(堂峴)-만초천(蔓草川)-습진기(習陣基)-노량진(露梁津)을 통하여 시흥방면을 지나 수원지역에서 합류하여 삼남지방으로 가는 길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흥인문(興仁門)을 출발, 동묘(東廟)에서 분기하여 영도교(永渡橋)-왕십리(旺深里)-차현(車峴)-전곶(箭串) 제반교(濟礬橋)를 지나 신천, 송파를 거쳐 충청 일부를 통과하여 동래로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동래로는 또 한강진(漢江津)을 지나 신원점(新院店)-현천점(縣川店)-판교점(板橋店)-험천(險川)과 용인을 거쳐 충청지방 일부를 통과하여 동래로로 연결되는 도로를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숭례문을 출발, 동작진, 노량진을 건너 남태령과 과천을 지나 수원방면으로 향하는 해남로나 제주로를 소개한다. 기실 삼남지방으로 가는 모든 대로를 통칭하는 말이 삼남대로였으나 경기옛길 도보탐방로의 첫 노선을 제주로와 호남로로 정하면서 삼남대로의 명칭이 경기옛길 삼남길에 반영되어서 이와 같은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부산으로 향하는 동래로(또는 영남대로) 기반의 영남길이 별도로 도보탐방로 영남길로 조성되어 영남길은 차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경기옛길 사업에서 삼남길이라고 부르는 삼남대로 기반의 도로는 조선후기 『대동지지(大東地志)』나 『도로고(道路攷)』 등에 의하면 해남로(海南路) 또는 제주로(濟州路)로 불리는 노선 이다.

2) 삼남대로 노선과 길 위의 이야기들

삼남대로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으로 연결된 도로로서 제주로와 해남로가 이에 해당된다. 사실 제주로와 해남로의 노선은 거의 일치하는데 제주도까지 입도(入島)하는 노선은 제주로이며 전라도 해남을 목적지로 하는 경우가 해남로가 된다. 여기서는 삼남로(제주로, 해남로)의 노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길 위에 켜켜히 남아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이를 구간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경성-과천 구간 도로이다. 이 구간은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을 출발 돈령부敦寧府 전로前路-파자전把子廛 석교石橋-통운석교通雲石橋-종루鐘樓 전로前路-대광동大廣通 석교石橋-소광동小廣通 석교石橋 -동현병문銅峴屛門 전로前路-송현松峴-수각水閣 석교石橋 -숭례문崇禮門-이문동里門洞-청파靑坡 주교舟橋-청파역靑坡驛-석우참石隅站에서 분기하여 와요현瓦窯峴-반전거리飯廛巨里-동작진銅雀津을 건넌 다음 승방평僧房坪과 남태령南泰嶺을 넘어 과천果川에 이르는 길이다.
도성에서 한강을 건너는 방법은 한강의 나루(진도津渡) 설치 이후 여러 갈래였으며 그 중에서 과천 방향(과천로果川路)으로는 동작진(銅雀津)을 건너고, 시흥방면(시흥로始興路)으로는 노량진(露梁津)을 건너게 되었다.

 

이러한 삼남로의 노선은 누가 이용했을까? 평소에는 궁 밖이나 도성 외부로 나갈 일이 많지 않은 것이 조선의 많은 왕들이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도성 밖 행차를 할 때 삼남로의 노선을 이용했다. 선왕들의 능에 참배를 하기 위한 능행차(능행陵行)나 요양을 위한 온천 여행(온행溫行)에 주로 이용되었는데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도 특히 도성 밖 행차를 많이 한 인물로는 정조를 꼽을 수 있다. 과천로는 특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인 현륭원顯隆園 조성 이후 화성 능행차 때에 사용된 도로로서 남태령 개척과 더불어 중요한 삼남로의 한 갈래였던 것이다.

삼남로를 이용한 것은 비단 왕실의 행차뿐만이 아니었다. 삼남 대로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오가는 주요 간선도로였기 때문에 양반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 왔다. 민간 에서 삼남로를 이용한 기록은 판소리 「열녀춘향슈절가」(이하 춘향전) 에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후기부터 현재까지 사랑받는 판소리 작품인 춘향전에는 한양을 나서 삼남로를 이용해 남원까지 도 착하는 경로가 잘 드러난다. 춘향전에 해당 대목은 ‘이몽룡노정기’ 라는 명칭으로 별도로 자주 불리는 주요 대목이다.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집으로 돌아와 부모전에 뵈온 후에 선산에 소분하고 전라도로 내려올 제, 남대문 밖 썩 나서 청파역에 말 잡아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를 얼른 넘어 밥전거리를 지내어 동작강 얼른 건너 남태령을 바삐 넘어 과천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대판교 떡전거리 진개울 죽산 자고 천안 김계역 말 갈아타고, 역졸에게 분부하고 금강을 얼른 건너 높은 한길 여기로다. 소개 널 티 무덤이 경천 중화하고 노성 풋개 사다리 닥다리 황화정이 여산 숙소하고 서리 불러 분부하고 전라도 땅이로구나.
- 춘향전 중 이몽룡노정기-

춘향전에는 남대문-청파역-칠패-팔패-배다리-밥전거리-동 작강-남태령으로 남대문부터 현재 서울 지역의 한강 도강(渡江)까지 후 남태령까지의 지명이 상세히 열거된다. 남태령은 도성의 관문으로서 관악산의 영로(嶺路)의 하나이며 새로이 조성된 탐방로인 경기옛길 삼남길 1코스 남태령길의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경기도내 삼남대로 노선의 시작점인 남태령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남태령의 유래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언제부터 개척되었는지 상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한양천도 이후 삼남지방으로 통하기 위해서는 자연지형인 관악산을 넘어 과천방향으로 가는 길목인 남태령이 유력한 교통로로서 인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의하면 남태령은 “高麗稱葉戶峴 轉稱狐峴 通京大路 峴北七里 有牧場古址”라 하여 고려시대에 엽호현(葉戶峴)으로 불리다가 언젠가 호현(狐峴)으로 개칭되었으며 개경으로 통하는 대로였다고 전하고 있다. 또 고개로부터 7리 정도에 목장터가 있다고 하였다. 이 목장터는 『경기지(京畿誌)』 3책, 과천(果川) 고적조(古蹟條)에 의하면 “관악산 북쪽 산등성이에 둘레 10리 정도의 토성을 쌓고 여기에 목장을 설치했는데 호환이 자주 발생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고 아랫마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사복시 목장을 설치 하였던 것 같다. 따라서 남태령은 고려시대부터 개경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간선교통로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사복시 목장을 설치할 정도로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남태령은 정조시기 현륭원 조성과 화성축성 이후 원행에 따른 연로(輦路)로서 지역주민을 동원하여 길관리(치도治道)에 힘쓰는 등의 중요한 고갯길로서 기능하였다.

다시 삼남대로 노선 이야기로 돌아오면 숭례문에서 남태령까지의 노선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기도가 아닌 서울특별시에 속하기 때문에 경기옛길 사업의 대상지는 아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노선이 현 경기도 관내에 위치한 경기옛길 삼남길의 기반이 되는 삼남대로의 노선이 된다. 우선 경기 과천-수원까지의 경로이다.

 

 

경기학광장/

경기문화재단
삼남길, 조선물류의 대동맥 전문보기
경기학광장Vol.1 _ Information & news

ggc.ggcf.kr/p/5f48e5710c724d4130912421

[20201120]가로수에 대한 이야기, 'KBS스페셜' 서울나무 파리나무

이야기보따리/자료

'KBS스페셜' 서울나무, 파리나무

유튜브 영상보기:

KBS 스페셜 - 서울나무, 파리나무.20190613

https://youtu.be/zU2SDAnAZjM 

 

 

KBS 스페셜 - 너무 차이나는 서울나무, 파리나무.20190613

https://youtu.be/aJsBJyLc16Y

 

KBS 스페셜 - 알렉스 샤이고 박사, 전정의 원칙을 밝히다.20190613
https://youtu.be/gU_OPm_hBj0

 

KBS 스페셜 - 서울나무와 파리나무의 격차, 좁힐 수 있을까.20190613

https://youtu.be/ynuQZml6ULI

 

KBS 스페셜 - 미스터리, 왜 파리나무는 전정 상처가 사라지나.20190613

https://youtu.be/BPS4k5FqRK4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로 꽉 들어찬 삭막한 서울의 풍경, 이 도시에 기괴함을 더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도시 곳곳의 나무들이다. 참 볼품없고 측은하다.

반면 파리, 런던 등 선진국의 나무들은 품위 있고 건강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왜 수종이 같은데도, 유독 한국에 서 있는 나무들만 자신의 품위를 잃고 이리도 초라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걸까? 나아가 최고의 도시경쟁력을 꿈꾸는 서울, 그리고 온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는 것일까? 이제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나무의 삶과 비밀에 주목한다.

 

“한국에서 양버즘나무 봤을 때는 앙상하고 별로 이쁘단 생각을 못 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이게 같은 나무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이쁘고 자연스럽고 풍성해서 가로수 역할을 잘하는 거 같아요“ -류현심 (런던 거주)

프랑스 파리의 아름다운 양버즘나무와 서울의 양버즘나무.

같은 나무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한반도가 자생지인 벚나무조차 서울보다 파리가 더 건강하고 아름답다.

서울 나무는 자른 자리가 썩어들어 가 고통받고 있지만

놀랍게도 파리나무의 전정 상처는 아물어 새살로 덮여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스터리, 왜 파리나무는 전정 상처가 사라지나

 파리나무와 서울나무의 차이는 서로 다른 ‘전정법’의 당연한 결과다. 잘못된 전정은 나무를 추하게 만들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반면 올바른 전정은 나무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린다. 근대 수목관리학의 연구 성과를 공개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만들어낸 파리의 전정 비밀을 밝힌다.

 

알렉스 샤이고 박사, 전정의 원칙을 밝히다

근대 수목관리학의 아버지인 알렉스 샤이고(Alex Shigo, 1930-2006) 박사는 30여 년 동안 15,000본 이상의 나무를 절개해보며 올바른 전정법을 연구한 인물이다.

그는 동물의 경우 상처 부위를 치유할 수 있지만, 나무는 상처를 격리하고 살아갈 뿐이라는 CODIT(Compartmentalization Of Decay In Trees , 나무의 부후 구획화) 이론을 발표했다.

샤이고 박사가 이 이론을 통해 밝혀낸 정확한 전정의 위치는 어디일까?

“나무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은 이해를 의미한다.“ -알렉스 샤이고 -

서울나무와 파리나무의 격차, 좁힐 수 있을까

“만약 나무가 올바른 곳에 자연스럽게 원래 모습대로 커간다면 인간이 개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니콜라 쥬브네(아제르리도성 공원 관리자)-

최근, 프랑스는 올바른 전정을 넘어 전정이 필요 없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전문적 아보리스트(수목관리전문가)를 양성하고, 나무의 전생애관리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은 아직도 뒤틀린 수형의 묘목들을 전선주 밑에 생각 없이 심고 있다. 이대로라면 서울나무와 파리나무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KBS 스페셜 <서울나무, 파리나무>는 한국에 심어진 나무들의 절규를 듣고, 수십 년간의 논쟁과 연구 끝에 밝혀진 수목관리학의 과학적 성과를 통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국나무의 아름다움과 건강, 품위를 되찾고자 한다.

 

 

 

 

[이진복]100년전 조선지지자료에 산본(山本) 순우리말 지명 '산밋' 확인(20190607)

이야기보따리/자료

 


[군포 역사·문화기행] 산본(山本) 보다 '산밋'으로 
 100년전 조선지지자료에 순우리말 지명 '산밋' 확인 
 군포시민신문/ 이진복 기자  ㅣ   기사입력  2019/06/07 [08:15]  

기사보기 링크: https://www.mediagunpo.co.kr/sub_read.html?uid=8517&section=sc14
 

산본(山本)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1919년 3.1운동과 4.11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지난 100년에서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일제가 만든 지명도 청산하여 고유한 우리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지명(地名)은 특정 지역을 구별하고 인식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붙인 명칭으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신앙, 전통과 풍속, 연희와 물산(物産) 등의 실정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러므로 지명(地名)은 작게는 우리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국가까지 걸치는 가장 큰 표상(表象)인 것이다.

1914년에 편찬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우리나라 전국의 지명과 지지(地誌) 사항을 조사하여 작성한 지리정보 자료이다. 거기에는 100년 전 사용되던 순우리말 지명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우리나라 전래의 지명과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지기 시작하는 1911년 당시의 지리정보 모두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선지지자료』에 의하면 산본(山本)의 순 우리말 명칭은 ‘산밋’으로 되어 있다. 즉 ‘수리산 아래(山底里)’라는 의미이다. ‘산밋’이라는 명칭은 이재 황윤석(黃胤錫:1729-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에서도 ‘山底里 산밋’이라는 명칭이 보이고,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총9책) 2책(경기도) 과천현 남면에 “금정리(衿井里), 당리(堂里), 봉성리(鳳城里), 당정리(堂井里), 장간리(章干里), ‘산저리(山底里)’, 부곡리(富谷里) 마을과 함께 호구수 460호, 인구수 1929명(남 807명, 여 1,122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따라서 ‘산밋’은 ‘수리산 아래’로 100여 전에 잃어버렸던 순수한 우리 마을의 고유명칭인 것이다. 더구나 수리산은 이중환(李重煥,1690-1752)의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수리산은 속리산, 칠장산, 청계산, 광교산, 관악산 등 한남정맥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산지 중의 하나로 태을봉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 북쪽으로는 관모봉, 북서쪽으로는 수암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리산은 산자락이 많아서 서울 재상들의 조상 묘소가 많이 있다”고 하면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수리산 자락에 있는 군포는 3대 문형(김만기, 김진규, 김양택)을 포함 7명의 문형을 배출한 ‘조선시대 최고의 명문 집안’인 광산김씨 사계 김장생의 증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김만기 묘역과 함께 문익공 정광필(영의정)을 비롯하여 후손에서 13명의 정승을 배출한 ‘조선시대 최고의 정승집안’인 동래부원군 정난종(정광필의 아버지), 문익공 정광필(영의정), 동평위 정재륜(효종의 부마)등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20201111]안양의 5-60년대 야사 "희미한기억의편린들"(김정기저)

이야기보따리/자료

 

2020/ #안양 #기록 #기억 #편린 #김정기 #안양초25회 귀중한 책 한권을 선물받았습니다. 제목이 희미한_기억의_편린(片隣)들-"집에 가는길"(발행: 2020.3.1)로 안양초등학교 25회  동창이신 김정기(한양대명예교수) 선생이 동창회 카페( http://cafe.daum.net/anyangkk25)에 올린 글들을 정리해 책자로 낸것인데  6.25 한국전쟁의 기억부터 초등학교시절의 추억,  50-60년이 지난 현재와 과거의 현장 풍경 비교 답사 소감, 한국 과학발전 과정에 대한 소고,  등 다양한 글이 실려있다.  책자를 펴낸 김정기 선생은  이승언의 "안양시 지명 유래집 : 이승언 저(李承彥)"이 안양의 "정사"라면, 내가 여기에 쓴 내용은 "야사"라고나 할까? 우리가 어린세월을 지내온 안양이 어떻게 생겨난지를 잠깐 살펴 보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기 선생 약력

1944.08 안양에서 출생.
1957.03 안양초등학교 졸업.
1960.03 안양중학교 졸업.
1964.02 안양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졸업.
1969.09 육군 병장 만기 제대.
1971.02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1979.02 연세대하교 대학원 졸업(이학박사).
1979.03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조교수 취임.
2009.08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정년퇴임.

 

 

 

 

 

[최병렬]안양(安養)권역 우체국 연혁(20200923)

이야기보따리/자료

 

 

[경인청] 안양(安養)우체국  우체국 연혁 / 사용필    

2018. 11. 30. 8:30


1905년 5월 29일 : 안산(安山)임시우체소 설치(省告442, 1905.8.10)

​1906년 12월 1일 : 안산(安山)우체소 설치 (統告106, 1906.9.26)

​1911년 5월 16일 : 안산(安山)우편소 설치 (總告133, 1911.5.11) 경기도시흥군 수암면 수암리

1915년 7월 1일 : 안양(安養)우편소로 이전 개칭 (總告148, 1915.6.15) ◈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1941년 2월 1일 : 안양(安養)우편국으로 개칭 (總告109, 1941.1.31) ◈

​1950년 1월 1일 : 안양(安養)우체국으로 개칭

2000년 5월 1일 : 서안양(西安養)우체국 개국 (情通部訓令200, 2000.4.17)

​1995년 9월 1일 : 안양평촌(安養坪村)우체국 개국 (서울廳公1995-111, 1995.8.31) 관인 등록

​2000년 5월 1일 : 안양(安養)우체국으로 국명 변경

1905년 5월 20일 : 과천(果川)임시우체소 설치(省告442, 1905.8.10)

​1906년 12월 1일 : 과천(果川)우체소 설치 (統告106, 1906.9.26)

​1911년 5월 31일 : 과천(果川)우체소 폐지 (總告157, 1911.5.26) ◈ 경기도 과천군 과천읍

1911년 6월 1일 : 과천(果川)우편소 설치 (總告156, 1911.5.26) ◈ 경기도 과천군 군내면 관문동

​1941년 2월 1일 : 과천(果川)우편국으로 개칭  (總告109, 1941.1.31) ◈

과천(果川)우체국


​1986년 12월 30일 : 과천문원단지(果川文原團地)우편취급소 개국

2008년 5월 6일 : 과천문원단지(果川文原團地)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86년 10월 2일 : 과천부림(果川富林)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20, 1986.9.20)

2008년 5월 6일 : 과천부림(果川富林)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1997년 11월 10일 : 과천우면(果川牛眠)우편취급소 개국 (서울廳告1997-47, 1997.11.10)

​                                (4270708) [과천우면] [KC. U-MYON]

2008년 5월 6일 : 과천우면(果川牛眠)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85년 12월 30일 : 과천중앙(果川中央)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89, 1985.12.18)

                                (171-11) [과천중앙] [KC. CHUNGANG]

1997년 1월 31일 : 과천중앙동(果川中央洞)우편취급소 위탁계약 해지 (서울廳告1997-1, 1997.1.27)

​2009년 4월 6일 : 수원지방법원안양지원(水原地方法院安養支院) 출장소 개소

 


1973년 5월 19일 : 안양4동(安養四洞)우체국 개국

 

1997년 4월 7일 : 안양6동(安養六洞)우편취급소 개국

2008년 5월 6일 : 안양6동(安養六洞)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85년 9월 16일 : 안양관양동(安養冠陽洞)우체국 개국 (서울廳公672, 1985.9.3) 관인 등록

 

1997년 11월 10일 : 안양(安養)새마을우편취급소 개국 (서울廳告1997-47, 1997.11.10)

​                                (4310628) [안양새마을] [AY. SAEMAUL]

 

2008년 5월 6일 : 안양(安養)새마을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안양새마을] [AY. SAEMAEUL]

2020년 8월 3일 : 안양관양2동(安養冠陽二洞)우편취급국으로 국명 변경 (京仁地廳告2020-14, 2020.7.9)

                            [안양관양2] [AY. GWANYANG2]

 

1992년 12월 30일 : 안양귀인동(安養貴仁洞)우체국 개국 (遞告1992-84, 1992.10.1)

                                6급 (4300701) [안양귀인] [AY. KWIIN]

 

 

1992년 11월 10일 : 안양교도소(安養矯導所)우편취급소 개소 (遞告1992-94, 1992.10.27)

 

                                (4300839) [안양교도소] [ANYANG CI.]

1996년 11월 1일 : 안양덕고개우편취급소로 국명 변경 (情通告1996-83, 1996.10.14)


​                           (4310839)  [안양덕고개] [AY.  TOKKOGAE] 이용자 불쾌감 고려

​2008년 5월 6일 : 안양덕고개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2014년 10월 16일 : 안양덕고개우편취급국 폐국 (京仁地廳告2014-16, 2015.9.15)

 

 

2012년 12월 29일 : 안양덕천(安養德泉)우편취급국 폐국 (京仁地廳告2012-10, 2013.1.3)

 


1994년 11월 26일 : 안양박달동(安養博達洞)우체국 개국 (安養郵遞局公1994-1, 1994.11.26)

 

2015년 6월 1일 : 안양박달동(安養博達洞)우체국 폐국

1992년 3월 30일 : 안양평촌동(安養坪村洞)우체국 (遞告1992-23, 1992.3.30)

 

                              6급 (4300706) [안양평촌] [AY. PYONGCHON]

1995년 9월 11일 : 안양부림동(安養富林洞)우체국으로 국명 변경 (情通告1995-113, 1995.9.13)

​                              6급 (4300656) [안양부림] [AY. PULIM]

 


​2001년 8월 20일 : 안양비산1동(安養飛山一洞)우편취급소 개소

2008년 5월 6일 : 안양비산1동(安養飛山一洞)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90년 1월 10일 : 안양비산삼호(安養飛山~)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13, 1989.12.14)

​                              (4300529) [안양비산삼호] [AY. BISAN SAMHO]

2008년 5월 6일 : 안양비산삼호(安養飛山~)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87년 9월 10일 : 안양석수동(安養石水洞)우체국 개국 (安養郵遞局公9, 1987.9.14) 관인 등록

 


1987년 12월 30일 : 안양석수아파트(安養石水-)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47, 1988.1.4)

                                (171) [안양석수아파트] [AY. SOKSU APT]

 

 


1986년 10월 2일 : 안양양지(安養)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20, 1986.9.20)

2008년 5월 6일 : 안양양지(安養)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안양우체국 역전(驛前)분국

1971년 1월 4일 : 안양역전(安養驛前)우체국으로 승격 (遞信部令535, 1974.12.28)

 

 

1990년 1월 10일 : 안양진흥(安養進興)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13, 1989.12.14)

​                              (4300118) [안양진흥] [ANYANG JINHUNG]

2008년 5월 6일 : 안양진흥(安養進興)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2013년 1월 31일 : 안양진흥(安養進興)우편취급국 계약해지 (京仁地廳告2012-9, 2012.12.7)

 

2013년 2월 1일 : 안양진흥(安養進興)우편취급국 재개국 (京仁地廳告2013-1, 2013.1.17)

 

 

​1990년 1월 10일 : 안양충훈부(安養忠勳府)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13, 1989.12.14)

​                              (4300429) [안양충훈부] [AY. CHUNGHUNBU]

2008년 5월 6일 : 안양충훈부(安養忠勳府)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2013년 1월 31일 : 안양충훈부(安養忠勳府)우편취급국 계약해지 (京仁地廳告2012-9, 2012.12.7)

​2013년 2월 1일 : 안양충훈부(安養忠勳府)우편취급국 폐국 (京仁地廳告2013-3, 2013.1.22)

 


2011년 12월 21일 : 안양호계동(安養虎溪洞)우체국 개국

 


1983년 12월 27일 : 안양호계1동(安養虎溪一洞)우편취급소 개소 (遞告213, 1983.12.31)


2008년 5월 6일 : 안양호계1동(安養虎溪一洞)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2013년 1월 31일 : 안양호계1동(安養虎溪一洞)우편취급국 계약해지 (京仁地廳告2012-9, 2012.12.7)

​2013년 2월 1일 : 안양호계1동(安養虎溪一洞)우편취급국 폐국 (京仁地廳告2013-3, 2013.1.22)

 


1987년 12월 30일 : 안양호계3동(安養虎溪三洞)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47, 1988.1.4)

                                (171) [안양호계3] [AY. HOGYE3]

2008년 5월 6일 : 안양호계3동(安養虎溪三洞)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90년 1월 10일 : 안양호계현대(安養虎溪現代)우편취급소 개국 (遞告113, 1989.12.14)

​                              (4300828) [안양호계현대] [AY. HOGYE HYUNDAI]

2008년 5월 6일 : 안양호계현대(安養虎溪現代)우편취급국으로 명칭 변경 (大統領令20601, 2008.2.5)


​1951년 12월 1일 : 중앙청내(中央廳內)우체국 당분간 일반사무취급 중지 (遞公61, 1951.11.24)

                              광화문우체국 승계

중앙청구내(中央廳構內)우체국

1983년 5월 1일 : 과천정부종합청사구내(果川政府綜合廳舍構內)우체국으로 이전 국명 변경

                           (서울廳公502, 1983.4.28) 관인 등록

 


1983년 5월 11일 : 과천정부제2청사(果川政府第二廳舍)우체국 개국

1998년 3월 2일 : 정부과천청사(政府果川廳舍)우체국으로 국명 변경 (情通告1998-17, 1998.2.16)

                            6급 [정부과천청사] [GOVT. KWACHON]

 

 

1977년 7월 1일 : 제132군사우체국 개국 (체기행151.1-20281, 1977.7.15)

2005년 2월 1일 : 안양우체국 제132군사우편출장소로 명칭 변경

[출처] [경인청] 안양(安養)우체국|작성자 강경원  https://blog.naver.com/400251/221409238383 

[최병렬]안양8경과 안양 자랑거리 49선(2020.08.27)

이야기보따리/자료

안양8경과 안양 자랑거리 49선

각 고장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있다. 안양시에도 8경이 있다. 문화, 역사 등을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안양8경이다. 수리산과 삼성산, 관악산으로 둘러싸인 안양시에는 도심 곳곳에 숨겨져 있는 명소가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안양시는 지난 2003년 안양을 대표하는 명소로 안양8경을 선정한 데 이어 안양시민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도시경쟁력과 이미지 제고를 위해 2007년 3월 안양의 자랑거리 49가지 선정에 나서 시민과 공무원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원로, 교수,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6차례 걸친 심사를 거쳐 2008년 1월 28일 개최한 '안양의 자랑거리 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자연환경 ▲문화유산 ▲문화체육분야 ▲산업경제분야 ▲조형·건축물분야 ▲안양시 우수시책 등 7개 분야에서 49가지를 안양의 자랑거리로 확정했다.

안양 8경중 제1경은 행운이 따르면 멀리 서해낙조도 가능한 관악산 '망해암 일몰', 제2경은 자연 형태의 모습이 이채로운 '삼막사 남녀근석', 제3경은 신도시에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 '평촌 중앙공원', 제4경은 사도세자 능참배 역사가 담긴 '삼막천 만안교'다.
제5경은 순교 성인의 정신이 담겨있는 수리산 최경환성지, 제6경은 안양유원지에서 예술작품의 보고로 변신한 '안양예술공원', 제7경은 돌을 한켜한켜 쌓아올린 '병목안삼림욕장 석탑', 제8경은 명실공히 안양중심이라는 할 수 있는 번화가인 '안양1번가'다.


제1경 - 망해암 일몰​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임곡로 245에 위치한 망해암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뜻[1]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視界)가 탁 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 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관악산의 한 지류인 비봉산 망해암 일몰을 보기 위해서는 대림대학교 옆의 관악산 오르는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망해암은 대림대학교 입구에서 임곡중학교를 거쳐 망해암까지 약 2km, 걸어서 30분, 자동차로는 7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나무가 울창하고 길이 좋아 차로 가도, 걸어서 가도 자연과 함께 하는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다. 간혹 내려가는 차와 올라가는 차가 서로 마주칠 때가 있지만 중간 중간 폭이 넓은 공간이 있어 차량 이용에 큰 어려움은 없다.
날 좋은 날 시야가 탁 트인 망해암에 올라 바라보는 시가지와 서해 일몰의 조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망해암은 동안구 비산동에 위치한 전통사찰로 봉은사말사지에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조선 순조3년(1803)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홍대비께서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가 탁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서해 너머로 붉게 물들어 가고, 갈 길을 재촉하는 도심의 차 소리와 어우러져 회상 속에 빠져들게 하는 곳, 서해의 붉은 바다와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린 안양 시내를 바라보는 야경은 망해암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위치 안양시 만안구 임곡로 245


제2경 - 삼막사 남녀근석​
삼막사 남녀근석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478 위치해있다.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男女根石)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으며,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풍화된 2개의 자연 암석인데 그 모양이 남녀 성기(性器)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근과 여근의 거리는 2m이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의 높이는 1.1m이다. 이러한 성기숭배 사상은 다산 및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으로 선사시대부터 행해져 왔는바,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 동남아 지역과 일본에도 많이 산재해 있다.
삼막사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 때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제3경 - 평촌중앙공원​
평촌중앙공원은 각종 조경수와 편의시설을 비롯하여 다목적운동장 등 체육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특히 4계절 테마(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를 부여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의 정서를 함양시키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심 공원의 미래상을 조명하며 공원내 수경시설은 207m의 계류와 다양한 형태의 분수 시설(상징분수, 스크린분수, 터널분수, 바닥분수)로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뿐 아니라 도심 속에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더 청량하게 해준다.

제4경 - 만안교​
만안교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천로211번길 5에 위치해 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生父)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1795년(정조 19)에 축조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이다. 만안교는 길이 약 30m, 폭 약 8m, 높이 약 6m에, 7개의 아치형 홍예문(무지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안교는 전체적으로 축조 기법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으며 경기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다. 멀리서 다리 전체를 바라보면 7개의 아치형 모양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당시 정조가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洲)에서 화산(華山)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한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노량진, 과천, 수원을 거치게 되어 있었으나, 그 노변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김상로의 형(兄) 약로(若魯)의 묘가 있으므로 불길하다 하여 시흥 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곳 만안교를 경유하게 되었다.
원래 위치는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만안로 입구 쪽 이었으나 1980년 8월 국도 확장을 위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되었다.
만안교는 만년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수원으로 남태령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행차로를 닦는데 어려움이 있어, 정조가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도록 명을 내려, 영국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만안교 남단에는 건립당시 세운 만안교비가 있는데, 뒷면에는 만안교비 축조 당시  경기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개성·강화 유수까지 동원되었다는 내용 등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큰 공사였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정조의 뜻대로 몇 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굳건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가 된 ‘만안교 다리 밟기’가 해마다 열린다. 

제5경 - 수리산 성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394에 위치한 수리산 성지는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다. 수리산 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며, 전국 각지에서 연중 30,000여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양9동 병목안시민공원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담배촌이라고 쓰여진 팻말이 있다. 이곳은 하동 정씨를 비롯해 금녕 김씨, 원주 변씨, 청주 한씨 등의 거주지로 1830년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정착한 천주교인들이 담배를 경작하며 살던 곳이다. 1939년 최경환 성인이 옥에서 순교 후 매장된 지역으로 이후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성지성당에는 주일이면 미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성당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수리산성지가 있다. 수리산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으로 전국 각지에서 연중 3만 여 명의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최경환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 토마스의 아버지이다. 이성례 마리아와 담배촌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신앙을 전파하던 중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게 압송되었다. 최경환은 배교하라는 고문과 회유 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장렬히 순교하였다. 부인 이성례도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1925년 교황 성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위치 안양시 안양동 병목안로 394


제6경 - 안양예술공원​
안양예술공원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 일대에 위치해있다.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이름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주목을 받았으며, 안양의 명물로 이름을 떨쳤던 포도가 오가는 이의 미각을 돋우어 주던 곳이다.
안양예술공원은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주변에는 안양사, 염불암 등 고찰과 중초사지 당간지주, 석수동 마애종 등의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고 안양박물관과 김중업박물관, APAP(안양예술공공프로젝트) 예술작품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인공폭포, 야외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물이 맑아 물놀이하기에도 좋고 계곡 옆에는 수영장이 개설되어 있어 여름철 휴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안양예술공원의 중심도로인 예술로를 따라 올라가 산으로 진입하면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진행으로 설치된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다. 스탬프 투어도 가능하며 스탬프 리플렛은 주변에 있는 안양박물관이나 안양파빌리온, 김중업박물관에서 받을 수 있다.
이곳의 대표 예술작품인 전망대는 네덜란드 작가 MVRDV의 작품으로 삼성산의 등고선을 연장하여 산의 높이를 확장한 전망대로, 이곳에 올라가면 안양시를 비롯한 안양예술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다가오는 여름, 주말 나들이로도 제격인 안양예술공원에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예술작품 감상하면서 더위도 날리고 이색적인 분위기도 느껴보자.
위치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산22


제7경 -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
병목안 산림욕장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475에 위치해있다. 이 석탑은 병목안을 상징해 주면서도 수리산을 상징하는 징표이기도 한 병 모양의 석탑! 양쪽에 조화롭게 병모양으로 쌓아 올린 탑은 주변의 쓸모없는 돌무더기들을 이용해서 자연의 조화와 인공의 미를 살린 수리산 산림욕장의 명물이며 이정표이기도 하다. 석탑이 상징하듯 백영약수터 오르막길에는 돌무더기 곳곳마다 정성을 쌓아 올린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있다.

제8경 - 안양1번가​
안양1번가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139번길 7에 위치해있다. 안양1번가는 1996년부터 매년 10월에 젊음의 도시·패션의 거리 안양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번가 거리 대축제가 열려 시민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함께 자유와 멋과 낭만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안양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안양1번가’는 안양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안양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안양의 금융과 교통, 상권을 태동시키고, 지역 발전을 이끌었다하여 ‘안양1번가’라 부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평촌 신도시가 생기기 전까지 이곳은 안양의 대다수 젊은이가 모이는 번화가 중의 번화가였다. 안양1번가 입구는 약속장소의 대명사였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단연 일순위였다. 예전만 못하다고는 해도, 여전히 이곳은 많은 젊은이들이 쇼핑과 먹거리, 놀이를 위해 찾고 있다. 또, 3~40대 이상에서는 추억을 위해 찾기도 한다.안양1번가는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가지처럼 옆으로 길들이 나있다. 이 길에는 옷가게와 잡화점 등은 물론 다양한 즐길거리와 먹거리 등을 제공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 가게들은 한자리에서 몇 십 년째 영업해 온 곳도 있고, 맛집이나 명소로 소문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도 있다.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점들이 자리한 탓에 원스탑 쇼핑을 즐기러 오는 쇼핑족도 많다. 이들의 시선을 끌고자 유행의 변화도 빠른 편이다. 매년 10월에는 ‘일번가 거리 대축제’가 열려 지역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한다.뿐만 아니다. 안양1번가 주변은 재래시장인 중앙시장과 남부시장은 물론 안양역 등이 자리해 있어 쇼핑과 교통의 편리함까지 더해준다. 거기다 안양1번가 아래는 수많은 상점들이 밀집한 지하상가가 조성돼 있어 또 하나의 거대 상권을 즐길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안양1번가는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고, 안양 최대의 번화가로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위치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일원
시민이 뽑은 안양 자랑거리 49가지

 

'자연환경' 분야로는 안양을 병풍처럼 둘러싼 관악산, 수리산, 삼성산과 생태하천으로 돌아온 학의천, 서울대 관악수목원, 효성공장 진달래 동산, 병목안 시민공원, 석수체육공원, 석수동 염불암 보리수, 석수동 할아버지·할머니나무 등 10가지가 포함됐다.

'문화유산'으로는 경기도 유·무형문화재인 삼막사 삼층석탑, 생칠장, 북메우기, 삼막사 명부전, 안양사 귀부와 부도, 석수동 마애종, 구 서이면사무소와 비지정 기념물인 평촌 지석묘, 관양동 청동기 유적, 만안답교놀이, 안양날미농악, 안양시민의 소리북, 보물 제4호 증초사지 당간지주 등 14가지가 꼽혔다.

'문화체육' 분야는 안양의 대표적 축제인 안양시민축제를 비롯 예절교육의 메카인 안양예절교육관, 공연장인 평촌아트홀, 안양체육관, 세계대회를 훌륭히 치러낸 안양롤러경기장, 안양을 연고로 하는 프로구단인 안양KT&G 카이츠농구단과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 그리고 유명 예술인을 다수 배출한 안양예술고등학교 등 8가지가 자랑거리에 합류했다.

'산업경제' 분야에서는 명학역~평촌역~인덕원역으로 연결되는 안양벤처벨리, 대표적 재래시장이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중앙시장, 각종 산업기자재를 한데 모은 안양국제유통단지(호계3동), 안양 명품 농산물인 안양포도 등 4가지가 자랑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조형·건축물' 분야로는 안양예술공원의 대표적 건축물인 알바로시자홀, 안양전망대, 김중업 디자인 건축물 등 3가지와 '우수시책'에는 안양을 명품 예술도시로 디자인하기 위한 프로젝트인 안양아트시티 21과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등 2가지가 각각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