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9202005120 (재)군포산업진흥원 제2대 원장 이재수 취임

안양지역얘기/사람



재단법인 군포산업진흥원 제2대 원장으로 군포도시공사 본부장을 역임한 이재수 원장이 지난 4일 취임했다.

이 자리에는 한대희 군포시장, 이학영 국회의원, 진흥원 임직원 등이 함께 했다.

이 날 행사는 코로나19와 관련,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간소하게 이루어졌다.

이재수 원장은 취임식에서 “산업진흥원의 본래 의무이자 업무의 기본인 시민과 기업인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직원들에게 “기업현장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 원장은 “군포시에서 자라고 줄곧 인연을 맺고 살아오면서 군포시 기업환경의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면서 “교통인프라 등 우수한 지역환경을 발판으로 관내 기업환경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20200209]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이억배 작가(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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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같은 존재로만 있다가 이번에 처음 호명을 받았어요. 무명의 활동에 이름을 붙여준 것에 감사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1980년대 수원지역 민중미술을 이끈 <포인트-시점時點ㆍ시점視點 >의 이억배 작가는 지난 3일 안성 그의 자택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경기도미술관이 1980년대 시대와 사회를 이끌어 온 소집단 미술그룹을 조명하는 전시를 3개월간 연 것에 대한 소회였다.

그의 말처럼 <포인트-시점ㆍ시점>을 비롯한 당시 소집단 미술집단 활동가들은 익명성을 대의로 여겨 시민과 지역과 사회에 몸을 던졌다. 1979년 12월 창립한 포인트는 그 중심이었다. 백종광, 장영국, 최춘일이 창립한 포인트는 수원 크로바백화점 전시실에서 창립 전시회를 열며 문을 열었다. 수원지역 고등학교 선후배들, 소위 ‘미술계 반항아’들이 몰렸다. 시대의 폭력과 불의의 맨몸으로 견뎌야 했던 시대, POINT는 이러한 시대적 고민과 사회에 대한 분노, 새로움에 대한 갈망 등을 현대미술의 실험적인 시도로 옮겼다.

이후 회원 대부분이 군 제대를 한 1984년, 진보적인 의식을 담은 예술활동으로 나아가고자 ‘시점시점’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포인트의 계승을 의미하는 볼 시(視)자와 새롭게 사회의식, 역사의식을 반영한다는 의미의 때 시(時)자를 결합했다.

이후 <군중 속으로>를 주제로 내걸고 수원지역뿐만 아니라 안양, 부천 등 경기지역 순회전을 열었다. 대중과 더 가깝게 소통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었다.

이 작가는 “작가의 지인과 수원미술인들을 비롯해 일반시민도 많은 관심을 가져 전시장 열기가 뜨거웠다”며 “1985년 순회 전시회를 끝으로 해산했지만, 포인트와 시점시점으로 이어지는 활동이 현대미술의 모태로 출발하며 이후 수원, 안양 등 경기남부 지역에 민중미술운동에 씨앗뿌리는 역할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간직했던 예술가의 삶이자 꿈이었지만, 시대를 마주한 이 작가의 머릿속엔 늘 회의와 의문이 일었다. “멋진 예술가가 되고 싶기도 했지만, 그 시대를 살면서 내가 이런 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민중에게 현실을 알리고 싶었고 미술을 통한 저항을 하고 싶었습니다.”

포인트-시점ㆍ시점이 해체된 이듬해 이 작가는 최춘일, 이득현과 함께 수원지역 목판모임 ‘판’을 결성한다. 민중미술 지향을 뚜렷이 시대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내 문제로 여기며 일치시키고자 분투했다. 미술인 두렁,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등 여러 지역의 소집단에서도 활동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예술로 시대와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우연히 찾아온 그림책은 “황무지에 단비가 내리듯” 그에게 생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줬다. 그림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심이 있은 후 1995년 명절 고향으로 향하는 <솔이의 추석이야기>를 펴냈다. 민중미술의 경험은 고스란히 그림책으로 옮겨졌다. 대중관과 화풍, 가치관, 미학이 반영됐다. 이후 민족성, 전통의 문제 등의 화풍이 담긴 <세상에서 제일 힘 센 수탉>,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모기와 황소> 등을 줄줄이 내며 대한민국 1세대 대표 그림책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적인 그림과 정서를 담은 특유의 풍속화적인 그의 그림책은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다.

2010년도에 펴낸 한·중·일 평화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은 그가 그동안 그림책 작가로서 골몰했던 주제를 응축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비무장지대에 봄이오면>의 마지막 장면에서 끝내 열지 못한 ‘마음속 철조망’을 지난해 출간한 <봄이의 여행>에서 열면서 완결편 작업을 마쳤다.

그는 “<비무장지대에 봄이오면>에서 DMZ 철문 앞에선 할아버지가 철문을 열고 들어가 북쪽 형제들과 상봉하는 판타지로 마무리했는데, DMZ의 철문만 열고 더 가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면서 “<봄이의 여행>은 휴전선에서 봄이와 할아버지가 전국의 장날을 순례하고, 사춘기가 된 봄이가 두만강역에서 혼자 대륙 횡단열차를 타며 두만강까지 여행하는 걸로 마무리하면서 철조망을 연 완결편을 마쳤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에 봄이오면>은 해외에서도 호평 받고 있다. 지난달 27일 전미도서관협회(ALA)가 주관하는 밀드레드 배첼더 어워드에서 어너리스트로 선정됐고, 미국 내 아시아교육협회가 주관하는 프리먼 북 어워드에서 어너리스트에도 뽑혔다. 또 지난달에는 1996년도에 출판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새롭게 작업한 <오누이 이야기>를 펴내며 ‘이억배표 호랑이’로 아동, 성인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그는 “그동안 10년간 나를 지배한 건 평화그림책이었는데,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 한 주제에 골몰하니 말랑말랑한 주제들이 다 날라가버렸다”면서 “어둡고 무거운 얘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작고 소소한 웃음과 행복을 주는 부드러운 주제들을 가지고 계속 그림책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자연 기자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20200215]‘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권윤덕 작가(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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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권윤덕 작가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대만큼 뜨거웠던 시대가 있을까. 부당한 권력과 억압에 적극적으로 맞섰고 노동자, 여성 해방을 꿈꿨다. 우리 것을 지키자는 정체성 찾기 운동도 일어났다. 경인지역에서 활동하던 소집단 미술그룹은 그 중심이었다. 특정 계층을 위한 예술이 아닌, 시민과 함께 삶을 변화시켰고,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 경기도미술관이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오는 2월 2일까지 선보이는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을 통해 이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격동의 시대, 1980년대 경인지역 민중미술 소집단 활동가들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경인지역 민중미술을 이끈 소집단 활동가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첫 번째는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의 권윤덕 작가다.

예순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생기 넘치고 환한 얼굴, 머리 위에 살포시 얹은 화려한 핀, 소녀감성이 물씬 나는 말투. 그 안에 담긴 많은 경험과 깊은 고민에서 나온 진실한 언어. 지난 13일 오후 군포시평생학습원에서 만난 그림책 작가 권순덕은 그녀의 작품처럼 담백하면서도 빛났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 제주 4ㆍ3 사건을 다룬 <나무도장>, 5ㆍ18 광주민주화 항쟁을 주제로 한 <씩스틴> 등 시대의 아픔을 그림책으로 담아온 권 작가는 지난 1987년 안양에서 창단한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의 창립멤버다.

그가 미술운동에 뛰어든 나이는 스물일곱. 권 작가는 “대학교 2학년 때 광주를 겪었고, 사회 변혁에 대한 갈망과 관심이 컸다. 변혁에 대한 갈망이 미술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권 작가를 비롯해 이억배, 정유정 등 중심멤버가 모여 이듬해 말 안양근로자회관 강당에서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을 창립했다. 사회변혁의 갈림길에서 화랑에서 작품이 소비되는 걸 거부한 예술가들이 현장으로 들어왔다. 시민, 노동자들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했다. 이들이 주창한 것은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 ‘그림은 특정인이 소유하고 누리는 게 아닌, 누구든지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우리그림은 ‘안양시민미술학교’를 개설하고, ‘안양독서회’, ‘민요연구회’, 노동자미술학교 등 지역 예술문화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안양 그린힐 섬유봉제공장 화재로 여성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자 이들을 위한 <영정도>를 제작했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조각 단위의 소그룹이 연합으로 뭉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그림은 해체됐다.

이후 눈길을 돌린 것은 그림책이었다. 작가의 생각을 담아서 복제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나누는 게, 민중미술의 또 다른 형태였다. 권 작가를 비롯해 이억배, 정유정 등 민중 미술가들이 대거 그림책으로 장을 옮겼다. 1995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권 작가의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이 나왔다.

지역민중 활동은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안양시민들과 수업을 하면서 <구름 가족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낸 경험도 있었다. 권 작가는 “미술운동을 했던 작가들은 작가 정신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정립돼 있어 이질감 없이 그림책으로 많은 호응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들은 직접적이지 않다. 폭력을 말하면서도 폭력적인 장면이 없고, 성폭력을 다루지만 선정적이지 않다. 아름다운 그림으로 담담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더 아프다. “대학교 때 사회문제로 관여하고 관심 가졌던 일들이 책 <꽃할머니>까지로 이어졌어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 논쟁 중인 아픔들이 많네요.”

그는 지금도 시민과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한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군포문화재단의 <말하는 그림책>에 1회부터 참여 중이다. 이 역시 30년 전 안양, 군포지역에서 시민 대상으로 했던 시민주도 참여 문화운동이 기반이 됐다. 그는 “지역 소집단 문화예술운동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그룹으로 모아져 한 번은 장을 펼쳐야 다음 단계로 이어지고, 큰 흐름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권 작가는 앞으로도 사회와 시대의 아픔을 대신 말하며, 대중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 올해엔 우리가 가해자이기도 한 ‘베트남전쟁’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준비 중이다. “여수에 가면 여순사건을, 광주에 가면 광주를, 아이들은 세월호를 담아달라고 해요. 사회에 아프고, 누군가 대신 얘기해달라고 하는 걸 하는 일,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특히 베트남, 세월호까지 이 두 권은 꼭 제가 그림책으로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자연기자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20181015]안양공립보통학교(안양초) 1회 졸업생 이경수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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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공립보통학교(안양초) 1회 졸업생… 이경수 옹

[안양시민신문]2007. 7. 26

손병학기자 블로그 http://upstart.blog.me/50020167892 

 

“90년의 세월도 나그네길일 뿐 아니겠나”

안양공립보통학교(안양초) 1회 졸업생… 이경수 옹

전쟁 뒤 손목시계 하나로 재기에 성공해
“나에게 남은 여생은 교회일 돕고 싶어”

 

“일본군으로 갔던 남양군도에서 1년9개월 만에 돌아오던 날이었어. 도쿄에서 하루를 묵고 요코하마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데 구명조끼를 하나씩 나눠주는 거야. 어쩐지 ‘여기까지 와서 죽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일본군으로 끌려가 2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던 스무 살이 갓 넘은 이 앳된 청년은 다행히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안양에서는 귀향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너무 슬프면 눈물이 안 나오지만, 너무 기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거야.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서 쏟아지는 눈물이 내 눈으로 보이더라구”


1928년 개교한 안양초등학교(당시 안양공립보통학교)는 안양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초등학교다. 이 학교 1회 졸업생으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경수 옹(1918년 3월17일 생)을 만나게 된 것은 스톤앤워터(관장 박찬응)의 ‘기억프로젝트’ 덕분이기도 했다. 이윤진 큐레이터는 친절하게 섭외까지 도와주었지만, 막상 이경수 옹을 만나려니 덜컥 겁이 났다. ‘90년 동안 살아온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감히 어떻게 써 낼 수 있을까’


안양공립보통학교가 생겼을 때 전교생은 45명에 불과했다. 11살 이상은 2학년으로 그 미만은 1학년으로 편입됐다. 시설이나 교사수도 부족했기 때문에 4학년까지만 다닐 수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자 긴 나뭇가지에 가마니를 묶어서 흙이나 돌 퍼 나르는 일을 했어. 운동장 만드는 일도 학생들 일이었거든. 온통 빨간 진흙이 묻어서 옷이니 몸새니 형편없었지 모야”


4학년을 마치고 교장의 추천서로 군포초등학교로 옮기면서 형편(?)은 조금 나아졌다. “안양에 통학생이 나밖에 없었어. 전교생 돈을 모아 안양우체국으로 저금하는 일을 맡으면서 풀 깎고 퇴비 만드는 잡일은 면제가 됐어. 허허” 군포초등학교 14회로 졸업한 이경수 옹은 수리산 끝자락 양짓말에 있는 한글서당에 2년을 더 다니게 됐다. “그때 왜 중학교로 가지 않았나 모르겠어. 아무튼 서당을 나온 뒤로 장사를 하고 싶더라구”


당시 이경수 옹의 아버지는 과자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안양역 철길 조금 위에 다리가 있었어. 지금은 복개해놔서 모르지. 다리 못미처 둘째 집 과자공장이 우리 집이었어” 설탕배급을 맡기도 한 그의 집에서는 눈깔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는데, 그걸 받으려 늘어선 줄이 안양역 로터리까지 이어질 정도로 꽤 규모가 큰 공장이었다. “6.25전쟁을 치르고 돌아오니 그 공장은 폭격을 맞아 다 없어져 버린거야” 모든 가족들의 실의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경수 옹은 가지고 있던 손목시계를 팔아 자전거부터 샀다고 한다.

 

“영등포에 큰 과자도매상에 가서 조금씩 물건을 떼다가 우시장 인근에서 과자를 팔았어. 근데 그 도매상이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돈 걱정은 말고 많이 가져다 팔라’고 말하는 거야. 우리 가게를 본적도 없으면서 말이야. 그때부터 조금씩 가세가 일어나기 시작했지” 이후 이경수 옹은 과자도매점 3곳을 가진 것은 물론 롯데라면(현 농심) 대리점까지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게 됐다.


나이 60이 넘어서면서 그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게 됐다. “남부시장에 누가 중국음식점을 해보라고 해서 하게 됐지. 근데 영 술을 같이 판다는 일이 마음에 걸렸어. 교회에 몸담은 장로가 할 일은 다른데 있다고 생각 했어” 그는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 등에 개척교회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중국을 비롯해 사이판에도 교회 설립을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나그네 같은 인생 마치면 영원한 나라로 가는 것 아니겠나”


안양제일교회 임칠호 장로는 장학기금명감에서 “이경수 원로장로의 발자취를 찾기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크고 확실해서 한정된 지면에 옮겨 쓰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안양초 1~8회 졸업생은 35년 전 동창회를 만들어 지금도 2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다. 2005년에는 효행상을 만들어 100만원의 금액을 시상할 만큼 활동이 활발하다.


“(기억프로젝트)전시회를 하는데 안양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라면서 말을 하라고 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아나. 다만 새로운 문화 때문에 가정문화가 허물어져 가는데 효행이라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20181015]군포공립보통학교(現 군포초) 설립자 故 조중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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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017년 8월 28일 군포공립보통학교(現 군포초등학교) 설립자인 故 조중완(1879~1942)옹에게 국민교육 발전 유공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고인은 경기 시흥군 남면(現 군포시) 면장, 군포우체국장, 경기도 평의회원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교육 분야에 이바지했으며, 특히 교육 불모지였던 시흥군 남면에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세워 지역 및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이 인정됐다.

고인은 1879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한제국무관학교를 거쳐 조선육군연성학교 교관(참령)을 역임하던 중 일본군에 편입하라는 강권을 거부하고 경기 시흥군 남면(現 군포시)로 이주했다.

당시 초등학교조차 없어 교육 불모지와도 같았던 모습에 개탄하여 50% 이상의 사재를 출연하여 7개 교실, 11개 학급의 군포공립보통학교를 1920년 건립했고, 現 군포역사 옆에 사설 우체국을 설립해 지역주민들에게 정보문화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도 했다.

또한, 시흥시 남면 진흥회장을 거쳐 1916년 남면 면장으로 추대된 선생은 소득원이 빈약한 지역사회 현실을 개선하고자 농촌 생활환경 개선사업 및 소득 증대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속적인 계몽운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이외에도 남면 농촌개량연합회를 창립하여 조혼·미신 등의 폐풍을 일소하는 대신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농민들의 생활과 위생 향상을 위해 경진회 등 시상제를 도입해 농민들의 의식개혁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정태화]군포의 숨은 역사와 일꾼을 소개합니다

2015.01.06]군포신문/ 군포신문 자문위원장

                                                                            

군포의 숨은 역사와 일꾼을 소개합니다

군포시가 시 승격이 되기 전 전신은 시흥군이었다. 경기도 시흥군이 현재의 안양시, 과천시, 광명시, 안산시, 시흥시, 의왕시 그리고 군포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역사에서 없어져 버렸다.
군포시민으로 생활하고 있던 중 우연히 국가상훈편찬위원회에서 발간된 현대사의 주역들을 접하게 되었다. 동위원회 3034호 국가사회유공인 사편에 조중완(趙重完)옹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중완 선생은 본관(本貫)이 경기도 양주이고 출생지는 서울, 생년월일은 1879년 8월 20일이고 대한제국무관학교졸업 조선육군연성학교 참경(오늘의 군 계급으로 소령에 해당) 군포초등학교를 설립, 군포사설 우체국장, 시흥군 남면장, 시흥군 남면진흥회장을 역임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조중완 옹은 일제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은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여 자주독립의 실현을 위해 전 생애를 불사른 인사로 특히 농촌의 생활 환경개선 사업과 소득증대사업을 통해 개화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민족화합을 이끌었던 이 땅의 참 애국자이자 숨은 선각자라고 기록됨을 알게 되었다.
조중완 옹께서는 조선의 군인으로 부국강병이 곧 조국을 지키는 길이라는 신념아래 정예 강군육성에 혼신의 힘을 다하던 중 1910년 한일합병을 맞아 일본군에 편입하라는 강권을 거부하고 서울 종로구 가희방(지금의 계동)에서 사시다가 군포시로 이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의 뜻에 반하는 침략행위를 강행한 일본이 우리의 성(姓)과 이름까지 일본이름으로 바꾸는 잔학무도한 일들을 마구 휘두를 때 조옹께서는 일본군 편입에 동의하지 않고 군포로 낙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포에 배움의 터가 없음을 깨닫고 사재를 출연하여 6개 학급과 교무실을 갖춘 6년제 초등학교를 건립하였다. 또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신왕래마저도 자유롭지 못한 지역주민을 위하여 사설 우체국을 현 군포역 주변에 설립했다.
한편 시흥군 남면진흥회를 설립해 소득원이 빈약한 현실을 파악하고 농촌 환경 개선사업과 소득증대사업을 추진했다. 농기구인 삽, 호미, 쇠스랑, 갈퀴 등을 지원했으며 지속적으로 계몽사업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남면 농촌개량연합회를 창립해 조흔, 미신, 간식, 치주, 연초 등의 폐품을 일소하고 우리민족의 고유의 미풍양속을 계승발전 시켰으며 농민들의 생활과 위생의 향상을 위해 경진대회를 개최하여 시상제를 도입, 농민들의 생활의식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셨다.
평생을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1942.3.12.서거하시니 당시 시흥군 남면장인 양재호(지금의 대야동 거주 양덕부의 아버님)의 제안으로 남면민장(南面民葬)위원회를 구성, 양면장이 장례위원장이 되어 성대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포시의 적은 행정구역의 면적에서 조옹과 같은 지역인사가 있었다는 것은 오늘의 군포시민의 긍지와 군포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런데 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되면서 초대 군포민선시장을 역임한 조원극 전 시장이 조옹의 친손자임을 알게 됐다.
조옹의 개화 운동과 지역에 헌신한 그 군포에서 그 손자가 초대 민선시장이라는 역사가 만들어 졌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80327]文鄕 김대규 시인(1942-2018)

안양지역얘기/사람

 

文鄕 김대규 시인은 1942년 4월 20일 안양시 양지동 946번지에서 태어나 2018년 3월 24일 타계하여 26일 화장을 통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시흥시 논곡동 선영에 묻히기 전까지 살아 생전 70여 평생을 태어나신 곳 안양 양지마을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살아왔다.

시인의 아호인 “文鄕(문향)”은 삶과 문학의 고향인 안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학과 고향을 사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안양을 대표하는 시인하면 ‘김대규 시인’을 말하고, 김대규 시인하면 ‘안양’을 생각나게 할 만큼 文鄕 김대규 시인은 詩와 함께 안양사랑의 한길을 평생 걸어왔다.

김대규 시인은 1960년 첫 시집인 「靈의 流刑」을 상재하여 등단했으며, 1976년에 저술한 「흙의 사상」과 1985년에 발간한 「흙의 시법」을 통해 많은 독자들로부터 “흙의 시인” 이라 불리웠다.

1977년 평생의 스승이신 고 조병화 시인과 함께 출간한 「시인의 편지」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간 진솔한 편지글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큰 반항을 불러 일으켰으며, 1989년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발간한 「사랑의 팡세」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한 유명세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중앙문단의 다양한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안양에 남아 여러 문학동인회를 결성하고, 안양지역 문학 역량들을 모아 안양문인협회와 안양문화원, 안양예총 창립을 주도 하는 등 후진양성과 안양지역 문학의 토대를 만들고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안양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언론, 상공기업 시정발전 등 다양한 부문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등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김대규 시인이 고향인 안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문안 작품들은 안양시 곳곳에 퍼져 있다. 먼저 안양시청에 설치된 “안양시민헌장비”를 비롯 안양5동 현충탑에 새겨진 “현충탑 진혼시”, 자유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독립유공자 기념탑 헌시”, 평촌도서관 옆 공원에 설치된 “6·25 참전공적비 헌시“, 석수동 ”만안각기“, 안양예술공원 ”안양정기“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적품들이 있다.

또 ”안양시민의 노래“와 ”안양시 로고송“ 그리고 애향 동요인 ”여기가 안양이다“와 ”새처럼 별처럼“을 작사했으며 호성초를 비롯 안양시 초, 중, 고, 대학 등의 교가는 물론, 캐피코(주)를 비롯한 안양시의 대표적인 기업들의 사가(社歌)들도 작사했다. 또 김대규 시인의 대표시인 ”엽서“, ”가을의 노래“, ”사랑 잠언“등 다수의 작품들은 노래로 만들어져 불려지고 있다.

 

文鄕 김대규 시인 약력

○ 학력 및 경력

ㆍ경기도 안양 출생(1942. 4.20)

ㆍ1954. 2. 안양초등학교 졸업

ㆍ1957. 2. 안양중학교 졸업

ㆍ1960. 2. 안양공업고등학교 졸업

ㆍ1964. 2.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ㆍ1971. 2.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ㆍ시집 『靈의 流刑』으로 등단(1960. 3)

ㆍ안양여고 교사(1964∼1972)

ㆍ10대 시인에 선정(1972. 문학사상)

ㆍ연세대ㆍ덕성여대 강사(1972∼1976)

ㆍ안양상공회의소 사무국장(1976∼1993)

ㆍ(사)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 지부장(1971∼2008)

ㆍ예총안양시지부장(1990∼2000)

ㆍ중부일보 논설위원(1994∼1995)

ㆍ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장(1995∼1997)

ㆍ경기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강사(1996)

ㆍ경기문화재단 자문위원(1998∼2005)

ㆍ안양대학교 겸임교수(1998∼2001)

ㆍ안양예총·안양문인협회 명예회장(2008, 2009)

ㆍ안양시민신문 회장(2002∼2010)

ㆍ안양문화예술재단 이사(2008∼2014)

ㆍ(사)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2010∼ )

ㆍ안양예총 고문

 

○ 저서

 

시집

ㆍ『靈의 流刑』, 흑인사,1960. 3

ㆍ『이 어둠 속에서의 指向』,문예수첩사, 1966. 12

ㆍ『陽智洞 946番地』,문예수첩사, 1967. 7

ㆍ『見者에의 길』, 시인사, 1970. 12

ㆍ『흙의 思想』, 동서문화사, 1976. 5

ㆍ『흙의 詩法』, 문학세계사, 1985. 10

ㆍ『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 해냄출판사, 1986. 5

ㆍ『별이 별에게』, 영언문화사, 1990. 8

ㆍ『작은 사랑의 노래』, 한겨레, 1990. 9

ㆍ『하느님의 출석부』, 한겨레, 1991. 4

ㆍ『짧은 만남 오랜 이별』, 문학수첩, 1993. 7

ㆍ『누가 지상에 집이 있다 하랴』, 술래, 1994. 12

ㆍ『어찌 젖는 것이 풀잎뿐이랴』, 시와 시학사, 1995. 3

ㆍ『흙의 노래』, 해냄, 1995. 4

ㆍ『사랑의 노래』, 해냄, 1995. 4

ㆍ『가을 小作人』, 우인스, 2001. 5

ㆍ『외로움이 그리움에게』, 도서출판 시인, 2010. 9

ㆍ『나는 가을공부 중이다』, 도서출판 시인, 2010. 10

ㆍ『시인열전』, 토담미디어, 2016. 11

 

산문집

ㆍ『詩人의 편지』(공저), 청조사, 1977. 10

ㆍ『詩人의 에세이』, 안양출판사, 1979. 9

ㆍ『젊은이여, 사랑을 이야기하자』, 중앙일보사, 1986. 12

ㆍ『사랑의 팡세』전 4권, 한겨레, 1989. 6

ㆍ『살고 쓰고 사랑했다』, 시인사, 1990. 9

ㆍ『나의 인생, 팡세』, 문학수첩, 1992. 5

ㆍ『사랑의 비밀구좌』, 술래, 1994. 1

ㆍ『사랑과 인생의 아포리즘 999』, 해냄, 1997. 9

ㆍ『늙은 시인으로부터의 편지』, 한강, 2012. 7

ㆍ『시는 내게 과분한 축복이었노라』, 도서출판 시인, 2016. 12

 

평론집

ㆍ『無意識의 修辭學』, 해냄, 1992. 12

ㆍ『안양문학사』, 우인스, 2005. 12

ㆍ『해설은 발견이다』, 종려나무, 2010. 7

 

○ 수상

ㆍ연세문학상(1963)

ㆍ흙의 문예상(1985)

ㆍ경기도 문학상(1987)

ㆍ안양시민대상(1988)

ㆍ경기도 예술대상(1988)

ㆍ경기도문화상(1990)

ㆍ경기도민대상(1992)

ㆍ편운문학상(1994)

ㆍ한글문학상(1996)

ㆍ후광문학상(1998)

ㆍ한국시인 정신상(2001)

 

文鄕 김대규 시인 안양지역 문예활동 내용
 

Ⅰ. 총괄

 

1941년(호적상 1942년) 안양에서 출생한 文鄕 김대규 시인은 고교(안양공고) 졸업기념 첫 시집인 『靈의 流刑』 (1960)을 간행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한 이래, 안양지역에서 다음과 같은 활동을 펼침.

 

「시와 시론」 동인회 주간 (1966~1972)

안양문인협회 창립, 회장 (1971~2009)

관악백일장주관, 주최 (1971~2009)

안양여성백일장 심사, 주관 (1978~2009)

안양여성문인회 창설, 지도 (1978~ )

글길문학회(구·근로문학) 창설, 지도 (1980~ )

안양문화원 이사 및 자문위원 (1980~ )

안양예총 창립, 회장 (1990~2000)

문향동인회 창설, 지도 (1996~ )

안양시민축제 집행위원장 (2001~2004)

「안양문학사」 집필 발간 (2005)

안양문화예술재단 이사 (2008~ )

안양예총, 안양문인협회 명예회장 (2008, 2009~ )

 

Ⅱ. 조형물 문안 부문

 

안양시민헌장비 (안양시청)

현충탑진혼시 (현충탑)

독립유공자 기념탑헌시 (자유공원)

고 윤국노의원 묘비추모시 (청계산)

6·25 참전공적비 헌시 (평촌도서관 옆 공원)

베트남참전용사 기념탑헌시 (운곡공원)

안양정기 (예술공원)

만안각기 (석수동)

노동교육원 준공 기념탑시 (여주)

 

Ⅲ. 작사 부문

 

1. 안양시민의 노래(김동진 작곡)

2. 안양시 로고송

3. 안양시 시승격 40주년기념 합창곡「안양판타지」작사(김준범 작곡)

4. 애향동요 ·여기가 안양이다

·새처럼 별처럼

 

5. 교가 ·안양과학대학교

·호성초등학교

·제일실업고등학교

·호암초등학교

·전진상좀머스쿨

 

6. 사가(社歌) ·풍강금속공업(주)

·캐피코(주)

·삼아약품공업(주)

·대영모방(주)

·광성기업(주)

·삼아알미늄(주)

·한진화학공업(주)

·협동화학(주)

·중앙제지(주)

 

7. 시노래 · ‘엽서’ (노용문 작곡)

· ‘가을의 노래’, ‘사랑잠언’ (최창남 작곡)

· ‘사랑의 무인도’ (조운파 작곡)

· ‘사랑잠언’ (이현섭 작곡)

· ‘구름에 바람에’ (이현섭 작곡)

· ‘사랑이란’ (이현섭 작곡)

· ‘나무’ (최창남 작곡)

· ‘두개의 짐’ (국현 작곡)

 

8. 기타 ·새안양회 회가

·대동문고의 노래

·신영순병원의 노래

[20171227]제68대 안양동안경찰서장에 강대일 총경 취임

안양지역얘기/사람

제68대 안양동안경찰서장에 강대일 총경이 취임했다.

강대일 신임 안양동안경찰서장은 1964년생으로 경문고교, 경찰대학(3기) 법학과를 졸업 후 지난 1987년 경찰에 입문했으며 경찰청 형사국·생활안전국, 제주청 서귀포서장, 주상파울루대한민국총영사, 경찰대 학생과장, 서울청 서대문경찰서장, 경찰청 장비담당관 등을 지냈다.  

 

[20171227]제7대 안양만안경찰서장에 권기섭 총경 취임

안양지역얘기/사람

제7대 안양시 안양만안경찰서장으로 임명받은 권기섭 총경이 12월 27일 만안경찰서 5층 누리마루 강당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권기섭 신임 안양만안서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경안고교와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경기 기획예산계장 △충남청 홍보담당관 △경기 양주경찰서장 △인천 생활안전과장 △경기 의왕경찰서장 △경기 112종합상황실장 △경기 3부 정보과장을 거쳐 등을 거쳤다. 

[20171223]안양소방서 제25대 정요안 서장 취임

안양지역얘기/사람

안양소방서 제25대 소방서장으로 정요안 前 화성소방서장이 취임했다.

 정요안 서장은 1964년 서울특별시 중구 출신으로 1989년 소방공무원 공채로 입문하여 광명소방서 119구조대장, 소방방재청 총무과, 남양주소방서 소방행정과장, 소방재난본부 소방혁신담당 ․ 기획담당, 구리소방서장, 화성소방서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쳐 안양소방서장에 부임했다.

 정요안 서장은 한성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소방행정에 대한 조예가 깊으며,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와 남다른 통찰력으로 예방행정뿐 아니라 현장실무에도 뛰어난 지휘역량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0625]안양을 사랑한 '사랑의 팡세' 김대규 시인

안양지역얘기/사람

 

2017.06.25/ #안양 #김대규 #시인 #문인/ 2017 안양문인협회 시화전이 열리고 있는 대동서점에 들렸더니 향토시인 김대규 선생님이 계시네요. 오랫만에 뵙는 선생님을 사진 틀속에 담아 똑딱이로 찰깍했지요.
"나의 고향은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곳. 친구야, 놀러 오려거든 삼등객차를 타고 오렴."-김대규 시인의 엽서-
이 시를 읽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시인이 말하는 '나의 고향'은 안양이기도 하면서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영혼의 고향이기도 할 것이다.
김대규 시인은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태어나 고향인 안양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다양한 문학 작품 활동을 왜 온 한국문단의 중견시인이다.
그는 1960년 '영의 유형'이라는 시집으로 문단에 등단해 '양지동 946번지', '흙의 사상', '흙의 노래', '흙의 시법' 등의 시를 발표하는 등 물질화 되어가는 현대문명에 경종을 울리고, 오염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양심선언적인 시들을 발표해 흙의 문학의 상징적인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특히 아호인 '문향(文鄕)'은 삶과 문학의 어머니인 고향 안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학과 고향을 사랑한다는 뜻을 의미할 정도로 결코 중앙에 휩쓸리지 않고 평생을 안양 사랑을 주창하며 지방 문단을 벗어나지 않고 올곧 지역에서만 활동해 왔다.
그러한 마음은 책뿐 아니라 지역사회 곳곳에 담겨 '안양시민의 노래' 작사, 안양시청의 '안양시민 헌장비', '현충탑 진혼시', 자유공원 '독립유공자 기념탑 헌시', 평촌공원 '6.25 참전 공적비 헌시', 운곡공원 '베트남참전용사 기념탐 헌시' 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김대규 시인은 "문학과 고향을 사랑한다는 뜻에서 스스로 '문향(文鄕)' 이라는 아호를 만들었는데 이런 나에 대해 안양은 그동안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 준 것 같다"고 말한바 있다.
약력
1942년 안양 출생
연세대 국문과,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시집 『영靈의 유형流刑』으로 등단(1960)
연세대 강사, 안양대 겸임교수 역임
한국문인협회 경기도 지회장 역임
중부일보 논설위원, 안양시민신문 회장
흙의 문예상, 경기도문학상, 경기도예술대상, 편운문학상, 한글문학상, 후광문학상, 한국시인정신상 외 다수 수상
시집으로 『흙의 사상』, 『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 『하느님의 출석부』, 『외로움이 그리움에게』 외 다수
산문집으로 『시인의 편지』(공저), 『사랑의 팡세』, 『당신의 묘비명에 뭐라고 쓸까요』 외 다수
평론집으로 『무의식의 수사학』, 『해설은 발견이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