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안양]안양일번가 김석용의 방물장수(20210311)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안양 #동네 #골목 #방물장수 #김석용 #털보 #보물창고 #엔틱 #골동품 #안양일번가...

그림을 그리고 차를 타고 도자기를 만들고 내노라 하는 연예인들 주물럭주물럭 마사지하고 시간이나면 전국 벼룩시장을 돌며 장난감이며 세계각국 엔틱 물건을 수집해 오는 털보 김석용 작가의 안양일번가 방물장수 점방에 들어서면 벼룩시장에서 건져올린 온갖 보물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젊었을 때 유도와 권투를 하던 김석용은 디스크 이상으로 갑작스레 투병생활에 들어간다. 5년 동안의 연구와 자가치료 끝에 완전히 나은 그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건강원리와 기(氣)마사지술을 터득해 이제는 다른사람들의 아픔 몸을 만져준다. 그가 주장하는 가마사지는 물과 공기의 선순환(善循環), 음식의 섭취와 배설의 순리, 우리 몸과 자연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의 행위예술은 그의 기마사지를 받은 독일인이 홀딱 반해 독일 초청의사를 받을 정도다.

또 가수 김건모, 성시경 등이 그를 신의손이라 칭하며 호형호제하는 사이일만큼 연예계와 미술계에선 이미 소문난 솜씨로 그의 기마사지는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다. 김석용씨와 '신체접촉'을 가진 가수는 많다. 리아,임창정,이현우,박상민,김장훈,김광진,양파,SES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모두 한차례 이상 김씨의 '주물림'을 받았다. 탤런트,개그맨,PD,방송작가,코디네이터,분장사 등 스쳐지나간 사람들까지 합치면 '환자'는 수백명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경험을 통해 공기와 물,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좋은 차를 마시고 싶어 안양 일번가에 카페(갤러리 44)를 차려 운영을 했었고, 차와 음식을 담을 좋은 그릇을 직접 만들고 싶은 마음에 도자를 배우기 시작했고, 물고기 그림이 어느덧 경지에 오르다보니 작가 대접을 받아 들꽃항아리전 등 수차례 전시회도 열고 각종 프로젝트와 전시회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알뜰벼룩시장으로 달려간다. 먼지로 잔뜩 덮은 오랜 세월이 지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는 혜안이 있는 그는 손때 묻은 장난감부터 세계각국 엔틱까지 한보따리식을 가져와 분류하고 닦고 때빼고 광을 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해서 새단증을 함 물건들을 안양 일번가 방물장사를 통해 새주인을 만나게 하고 있다..

 

[경기일보]창작의산실-미술과 차, 그리고 안마…장르없는 작가 김석용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548381 

 

[스포츠조선/1989.04]연예인 '몸'만지는 '털보아저씨' 기사입력 1998년 04월 https://sports.chosun.com/news/news_o3.htm?name=/news/old/199804/19980421s293

 

[안양]잘 보전해야할 안양 수리산 변산바람꽃 자생지(20210303)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안양 #변산바람꽃 #변산아씨 #수리산 #담배촌 #자생지 #경기도립공원/

수리산 담배촌 끝자락 계곡이 매년 이른 봄이 오는 무렵이 되면 일부 몰상식한 사진 동호인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을 찍기 위해서 큼지막한 DSLR 카메라에 접사, 줌렌즈 등 고가의 장비들을 들고 몰려드는데 이제 봄이 왔어요 하고 인사를 할려고 낙엽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변산아씨들이 겨우 꽃봉오리 상태에서 짓밟히면서 지난 주에 있었던 자리에 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수난을 당하고 있답니다.

변산바람꽃은 전북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1993년 이름이 지어진 식물로 2~3월에 피며 산기슭과 습기가 있는 숲 그늘, 양지바른 바위 틈새 등을 좋아합니다.

변산바람꽃은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찬바람 속에서 면류관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추위 때문에 키가 5~10센치미터에 불과해 낙옆속에 있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변산바람꽃은 현재 전국 여러 지역에서도 발견되지만 수도권에서는 안양 수리산이 최북단 자생지로 입소문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초. 2014년 까지만 해도 꽃이 피는 장소를 감출 정도로 살짝들 다녀가는 덕분에 꽃 개체수도 늘고 여유롭개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부터 매년 방문객이 늘면서 자생지 곳곳이 훼손되고 꽃가루받이가 안되는 등 영향을 받으면서 개체수가 점차 줄어들고, 해마다 계곡이 사진찍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있다.

이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한몫을 하고 있지요. 변산바람꽃이 계곡 낙엽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미는데 이를 미쳐 보지 못한 이들이 짓밟거나, 이끼, 나무, 얼음 등을 이용한 연출 사진을 찍고는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게 무참히 훼손시키는 경우도 있지요. 어떤 이는 온몸을 뻗을수 있는 바닥 깔개까지 갖고와 사진을 찍어대 앙증맞은 꽃들이 짓밝히기도 하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바람꽃의 학명은 아네모네로 그리스어의 바람을 뜻하는 아네모스가 어원이네요. 그래서 언덕의 바람 부는 곳을 좋아해 영어로는 윈드 플러워로 불리우고 꽃말은 '속절없는 사랑'이라네요.

수리산 변산바람꽃 자생지는 안양역에서 병목안과 담배촌을 지나 수리산 공군부대 가는 길 끝자락에 있는 바람부는 계곡으로 경기도립공원안에 있지요.

이제 알려질대로 알려져 주말이면 3-400여명, 평일에도 100여명 이상이 찾아올 정도가 유명해졌습니다. 꽃구경 오는데 막을수야 없겠지만 꽃 사진을 연출해 찍으면서 꽃들을 훼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발 아끼고 사랑하며 보호해 주세요~~^^

 

수리산 변산바람꽃 지켜주세요!!

2016.03.11/ 수리산 변산바람꽃 자생지에 봄소식이 들려오면서 앙증맞은 변산아씨들이 고개를 내밀고 환하게 웃기 시작했는데 꽃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이들로 몸살을 앓고 있답니다.

4년전만 해도 꽃사진 찍는분들이 "쉬쉬 우리끼리만..." 소리없이 다녀가던 수리산 변산바람꽃 자생지 그때만 하더라도 변산아씨들이 무리지어 인사를 했었지요.

그런데 약 2년전 부터는 자생지가 알려지면서 꽃 사진들이 평일에는 2-300여명, 주말에는 5-600여명씩 몰려오고 꽃을 뽑아 연출사진을 찍거나, 돗자리 깔고 사진 찍느라 미처 보지 못한 변산아씨들은 압사당하는 등 자생지가 마구 훼손되면서 예전에 무리 지어 인사하던 변산바람꽃을 볼 수 없을 지경에 와 있답니다.

물론 일부 연출 사진을 찍는 등 몰상식한 행동 때문에 자생지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어느 분은 격년으로 휴식년제가 필요한 것 같다는 말로 심각성을 전하며 안타까움을 표하네요.

더욱이 이곳 자생지가 경기도립공원이기에 경기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호에 나서야 합니다.

 

<뉴시스>봄의 전령 '변산바람꽃'수리산 자생지 '신음'(2016.03.13)

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12_0013953175&cID=10803&pID=10800&fbclid=IwAR2sJGew3nOdbUr9yND_VUgxdCkGvn4_IcMUwf38MrFk1GyJsV1F49oVOFQ

 

 

[안양]전국 전통주부터 세계 맥주에 와인까지 술전문판매점 오렌지보틀(20210131)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2021.01.29/ #안양 #오렌지보틀 #술전문판매점 #비산동 #막걸리 #전통주 #증류주 #와인 #맥주 #중굴술 #일본사케/

세계맥주 전문점에 이어 전국 막걸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전문점(술집)이 생기더니 최근에는 우리 전통주와 국산와인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보틀숍이 생기는 등 술전문판매점의 트렌드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명동 막걸리학교에서 운영하는 ‘술술상점’과 힙하게 뜨고 있는 문래동에 양조장을 만들면서 우리 술을 팔고 있는 ‘현지날씨’, 비즈니스 중심지인 청계천에 최근 문을 연 ‘우리술한잔’, 유럽에서 편의점을 의미하는 단어로 옥호를 정한 ‘키오스크.이피(EP)’ 알파벳 이피는 은평의 약어로 은평에서 우리 술을 판매하는 상점이라는 뜻, 막걸리를 새롭게 해석해서 젊은 애주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디오케이(DOK)브루어리’ 등과 더불어 주류도매회사인 백산주류와 콜라보 형태도 운영되는 ‘오렌지보틀’(안양소재) 등 구매층이 탄탄하게 형성돼 있는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문점이 늘고 있다.

수입 와인과 맥주가 주류였던 보틀숍의 풍경이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에 맞춰 다양성을 갖추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2020년 말) 안양 비산동 학운교사거리에서 비산종합운동장 가는 길(동안로) 초입에 눈에 띄는 오렌지 색깔의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오렌지보틀(권진욱 대표)’ 간판을 내건 술 전문상점으로 이름부터 젊은 감각인 이곳은 우리 전통주와 수제맥주를 수입 내추럴와인과 함께 판매하는 술 전문판매점으로 오렌지보틀 1호점이다.

충무로에 있는 〈술술상점〉처럼 우리 술만을 취급하는 곳은 아니지만, 현재 180여종의 전통주와 막걸리, 전국에서 생산하는 수제맥주, 전셰계 맥주와 와인, 중국술과 일본 사케까지 취급하고 있어 마치 술 보물창고같은 그야말로 술꾼과 주당들의 눈이 확 뜨일만한 공간이다.

오렌지보틀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는 한강주조의 ‘#생나루’와 #죽향도가의 ‘#대대포’, 복순도가의 ‘#손막걸리’ 등 30종이며, 청약주는 ‘풍정사계’, ‘경주법주초특선’ 등 40종, 소주와 증류주는 문배주, 이강주. 안동소주, 사과브랜디인 ‘추사40’, ‘삼해소주’ 등 80종에 달하고 있다.

또한 맥파이와 플레이그라운드 등 30종의 국산 수제맥주와 로스트코스트 등 30여종의 수입맥주, 그리고 180종 정도의 수입와인을 같이 판매하고 있다.

특히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지역상권을 고려해 와인앤모아 같은 대형 술매장에 맞춰 가격을 설정해 가격도 저렴하다.

와인을 물론 전통주의 가격도 인터넷통신판매가격에 밀리지 않게 책정한 상황이다.

오렌지 보틀이 자리한 건물은 당초 백산주류(대표 조은혜)라고 술집과 식당 등에 술을 공급했던 도매점이 자리했던 곳으로 주류 유통업에 몸 담아온 사장님의 최신 트랜드를 읽는 감각과 도전 정신이 았었기에 오렌지보틀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오렌지보틀은 문을 연 개업기념으로 가격 할인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코젤과 필스너를 4캔에 6,900원(대형마트 9900원)에 판매하고 세계 와인을 20-30% 할인 또는 와인잔을 증정하는 등 행사가 푸짐하다.

오렌지보틀을 방문하면 젊은 청년이 맞이한다. 가양주연구소 출신의 전통주 소믈리에인 조원민 지점장으로 우리술은 물론 맥주와 와인 등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과 추천도 해준다.​

오렌지보틀 권진욱 대표는 “종목에 구애받지 않고 술을 고를 수 있고, 가성비를 확보해 최대한 보틀숍의 문턱을 낮춰 ‘동네 술가게’ 같은 편한 이미지를 만들 것”이라며 “술은 마트에서 사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전문상점에서 사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한편 오렌지보틀은 지난주 한남동에 2호점을 개설했다.

 

오렌지보틀 안양점 위치: 안양시 동안구 동안로 256"

 

 

 

 

 

 

 

 

 

 

 

 

 

 

 

 

 

 

[안양]새안양신협 인덕원 문화사랑방 지역주민과 함께(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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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안양신협 지역사회와 함께
2020.11.04/ #안양 #동네 #골목 #새안양신협 #인덕원지점 #문화사랑방/ 지난 3월 안양의 교통중심지인 인덕원에 신규 지점을 개설한 새안양신협(이사장 소명식)이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지역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건물 6층에 문화사랑방과 옥상정원을 만들어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힐링 문화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공간]새안양신협의 인덕원 문화사랑방 지역사회에 개방

지난 3월 안양의 교통중심지인 인덕원에 신규 지점을 개설한 새안양신협이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지역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건물 6층에 문화사랑방과 옥상정원을 만들어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힐링 문화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1978년 안양 중앙성당에서 창립한 새안양신협은 지난 2019년 천주교 단체 신협에서 지역신협으로 공동유대가 확대됨에 따라 지역신협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안양시민들이 신협 혜택을 폭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비산동에 이어 인덕원에 신규 지점을 개설했다.

새안양신협은 인덕원 지점 개점 준비에서부터 지역사회 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장학사업 및 대학생들에게 실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신규지점 인테리어 공모전’을 시행했다.

신협(신용협동조합)은 미국 메리가브리엘라 수녀님이 부산 성가병원에 부임하여 우리나라 선민들이 고리대금에 어려움이 있음을 보고, 돈 있는 분은 이자를 적게 받고 돈 없는 분은 이자를 덜 내어 서로 잘살기 위한 복지사회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 1960년 5월 1일 성가병원신협을 한국 최초로 창립하였고, 전세계 4위 규모로 성장한 한국 신협은 지난 60년 간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금융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지키며, 7대 포용금융을 비롯해 서민과 소외계층을 돕고 금융 혜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기여해 온 것을 인정 받아 지난 10월 22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축복장을 받는 경사를 맞았다.

 

 

 

 

 

[안양]공공예술작품 즐비한 학운공원 B구역(20200628)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2020.06.28/ #안양 #동네 #골목 #학운공원 #APAP새동네 #오픈스쿨/ 학의천변인 안양 부림동에 학운공원은 생각보다 꽤 넓지요. 구역만도 3개섹터로 나뉘어집니다. 축구,농구,족구등 운동시설과 화장실, 매점, 공영주차장이 있는 학운교와 내비산교 사이의 중앙부분이 메인 구역이라면 학운교와 비산인도교 사이 지역은 가칭 학운공원 A구역으로 휴게및 운동시설과 화장실 등이 있으며 내비산교에서 수촌교 사이 지역은 학운공원 B구역으로 2010년 APAP 새동네란 이름으로 개막식도 열리고 오픈스쿨, 오픈하우스, 파빌리온 등 다양한 공공예술 작품들이 설치된 곳이지요. 다소 외진듯 보이지만 이 구역에는 2019년 새로 정비한 운동시설, 휴게시설 등이 있지요. 하지만 오픈스쿨 등의 활용방안을 찾지못하고 있지요. 일각에서는  이 구역에 화장실 등 이용편의 시설이 마련되면 프로그램과 이용자도 늘면서 활력을 찾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제기됩니다. 또 가끔 타지역에서 이곳을 방문해 안양 공공예술의 개요와 작품 등에 대한 토론도 열리기도 하지만 다양한 정보를 알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와이파이의 사각지대로 공공와이파이 설치도 시급해 보인다.

 

 

 

 

 

 

 

 

 

 

 

 

 

[의왕]멋진 일몰을 볼 수 있는 의왕 내손동 언덕위 포일성당(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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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왕 내손동 언덕위 포일성당
2020.06.20/ #포일성당 #내손동 #포일리 #평화의모후/ 모락산을 등지고 옛 포일리(내손동지역)부터 평촌과 인덕원까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예쁜 성당.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런 외관으로 시선을 끄는 멋진 성당으로 1988년 지어졌는데 지금은 의왕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중 하나입니다. 성당을 처음 방문한 2020년 6월 17일 언덕길을 오르고 성당앞에서 계단을 올라서면 잔디밭 성모동산입니다. 수원교구장이셨던 김남수 주교님이 식수하신 소나무 한그루가 인사라도 하듯 휘어진 멋진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성모동산앞에 촛불을 키고 기도를 한후 성당 마당에 올라서면 안쪽 성모유치원에서는 코로나19를 쫒아버리기라도 하듯 아이들의 까르르 밝은 웃음소리가 들리네요. 성당 마당당 오른쪽 산으로 난 계단길을 오르면 십자가의 길 기도 코스입니다.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까이는 평촌시내 멀리는 수리산과 관악산도 한눈에 보일듯 싶네요. 성당 위치가 워낙 높아 성당 마당, 게단 등 어느곳에만 서 있어도 멋진 일몰을 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니 아담한 카페가 있네요. 이름하여 릴리안카페, 그 옆으로는 첼리나 성물방이 있고 밖으로 나오면 오른편에 우리농 나눔터가 있는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일환으 생산자와의 직거래로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네요. .성당 뒷뜰을 산보하는 고양이 2마리도 발견했는데 천천히 느긋하게 어슬렁 거리는 폼이 성당에서 꽤나 대접받는듯 싶네요. 위치: 경기 의왕시 정우2길 8( 내손동 528-1)

 

 

 

[안양]안양 수리산의 숨은 명소 '한증막'(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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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한증막 #한증원 #병목안 #창박골

세번째 경기도립공원인 수리산 경기도립공원 안양쪽 관문인 안양9동 병목안과 창박골에는 다른곳에는 없는 아주 톡특한 곳들이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한증막인데 나이드신 여성분들이 잘 알고 안양뿐 아니라서울과 수도권지역에서도 입소문난 곳으로 병목안한증막(병목안시민공원 옆), 창박골한증막(삼영.보영 시내버스 창박골 종점 아래), 안양한증막(병목안 안양시캠핑장 옆) 등 세곳이나 됩니다. 이들 한증막은 1970년대 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무려 50년이 넘는 오랜 기간 여성들의 휴식공간이자, 사랑방, 소통공간으로 사랑을 받아왔지요

한증막에 대해 알아보니 옛부터 자연에서 생성되는 온천 또는 지열혈(地熱穴)에서 우리 조상들은만병을 치유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고유물이고 우리나라에만존재하는 재래식한증막을 인위적으로 지은것은 지금으로 부터약 500∼600년전이라 추정되는데, 옛 궁궐내에서도 토방한증을즐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막(幕)이란 DOME모양 또는 첨성대와 같은모양으로 내경 6.30m, 높이9.50m, 벽두께1.20m로된 황토와 구들돌과 소금과 견치석으로된 구조물로서 한단 한단 쌓아올린 구조물인데 높이와넓이를 가감한 계산에 의한열저장전도율이 효과적으로 발생한다네요.

‘불가마’로 불리는 한증막은 돌로만들어진 돔을 가열한것으로 두꺼운 가운이나 거적을쓰고 들어가지요

온도가 70∼130도에 달하기때문에 사우나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눈 피부 머리카락등이 손상 받을수 있답니다.

실내가 엄청난 고열이기 때문에 한번에 10분 이상 머무르지말고,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발에 통증이 느껴질때는 즉시 중단해야합니다.

한증막에는 한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습니다.특히 한증막은 모두 여성 전용이이라네요. 

어느분이 인터넷에 올린 수리산 한증막 이용에 대한 글을 보니 

힌증막은 입장료 만원을 내면 타월과 가운을준다. 타월도 넉넉하게 주니까 타월 안가져와도되지만, 오래 다닌 사람들은 개인타월과 가운, 슬리퍼까지다챙겨가지고 다니는사람도많단다.

여기까지는 찜질방과 별차이가없지만,여긴남성출입금지구역이란것이다르다. 모든 한증막이그렇단다. 여자들만을 위한 치료겸 휴식공간이란 곳.

방이 여러개가 있는데,각기 배정받은 방의 매트중 하나씩 차지하면 된다. 방마다 대형TV 한대씩 놓여있지만, 보는 사람은 거의없다.

한증실 안의 입구는 좁고낮다.허리를 숙이고들어가야한다.가마안은 그야말로 오래돼서시커먼 구들돌과 황토로된 울퉁불퉁한 바닥에 가마니를 깔아놓은 경사진 뜨거운동굴이고, 솔향기가 진동을 한다

나는 옷 입고,양말도 챙겨신고, 가마니 뒤집어 쓰고 들어갔는데, 그것도 오래 못버티고 2-3분정도 앉아있다 나오고 하는길 4번 정도 했다. 그후 가마문을 닫았다가 새로 불때고 난 직후에 마지막으로 들어갔는데,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자 마자 바로 뛰쳐나왔다.

여자들은 참 용감하다. 그 뜨거운 가마속을 가마니를 뒤집어 쓰지도 않고,가운 하나만 걸친맨몸으로 앉거나 드러누워있으니 다들 도닦는사람들로 보였다.

진짜 뜨거운걸 즐기는 마니아들이다.

한증원안에서는 별별걸 다판다.

준비물 하나없이 돈만 가져가면 필요한걸 다살수가 있는거다.이것말고도양품코너도있고, 샤워실에는 비누랑 기본스킨로숀등도 다비치되어있다.-수리산밑밭에서직접 재배한땅콩과 깨도 팔았다.

가마안의여자들한테 찜질방과 한증막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기본적인 시설이야찜질방쪽이 더넓고 깨끗해보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찜질방은 전기로 단숨에 사우나를덥히는거라서 나무를 때서 오랜시간 가마를 달구는 이전통한증막과는 비교가 안된다고들말한다.

거기다더중요한건 한증막이란 우리나라만의전통식사우나방법이고, 금남시설이란것. 오로지여자들만이다.난 한증막하면 나이든여자들만가는곳인줄알았는데, 의외로 젊은여자들이많았는데,게중에는 어린아이를 데려온엄마까지있었다

한증막 뒤로는 야외 휴게실이다. 비오는날 여기 앉아있으면 도심아파트에서는 들을수 없는, 지붕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을수있고 편하게 비를 바라볼수있어 너무 좋다.

예전에 한증막 한번가면 아침에 갔다가 밤중에야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10시간까지 허용이된단다. 그야말로 하루종일 한증을 할수있단 얘기다.

우리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한증막을 좋아하신걸까? 삶의 고단함을뜨거운열기로풀어내려던것이었을까. 한증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자주 찾는곳이 한증막이랍니다.

이런 전통한증막을 문화관광상픔으로 활성화시켜도 좋을듯 싶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술수리산 지락 깊숙한 곳 까지 원룸들이 들어서는등 개발의 바람이 블어닥치면서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네요. 

이미 수리산 세곳 한증막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연륜이 가장 오래된 수리산한증원(병목안시민공원 아래)이 언제부터인가 영업을 중단했더군요..




[군포]수리산의 술 주조하는 가양주작(2019.08.28)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군포 #동네 #마실 #골목 #가양주작 #술 #막걸리 #대야미역 #수리산막걸리 #수암주 #알로이/
가양주작은 우리의 술, 막걸리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직접 주조하는 곳, 그리고 막걸리를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막걸리 커뮤니티를 통하여 못다한 이야기를, 못다한 노래를 이곳에서 나눕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가양주작입니다.
가양주작을 주간 무인까페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5가지의 커피와 에이드 음료를 선택하실 수 있으며 50여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홀과 10여명이 함께 하실 수 있는 모임방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철역을 바라볼 수 있는 전면창이 있어 스카이라운지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또 마을청년들이 운영하는 갤러리도 함께하고 있어 매달 새로운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가양주작은 4호선 대야미역앞에 있습니다.

대표 전화: 070-4117-7755
문자 주문: 010-8411-8958

 

 

가양주작의 출발
가양주작은 마을공동체의 텃밭인 대야미마을협동조합의 성인동아리로 출발해서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경제사업의 일환으로 양조장을 열게되었습니다.

01. 술술 풀리는 마을 공동체
가양주작은 마을공동체의 텃밭인 대야미마을협동조합의 성인동아리로 출발해서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경제사업의 일환으로 양조장을 열게되었습니다.
- 2014년 마을협동조합(조합원 90명)설립. 반찬사업, 교육나눔, 동아리활동 시작
- 이주민이 주도한 마을공동체 활동은 토착주민의 참여요인과 소통기회가 없었음
- 원주민 참여 없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냉소와 선입견을 해소할 방안으로 마을주막 선택
- 조합 수익사업인 반찬사업 실패 후 우리 마을에 적합한 대안적 경제사업 모색

02. 가양주작 사람들 소개
마을협동조합원 16명과 도시농부학교, 귀농운동본부, 생협활동가, 종이공예, 옷칠장인등 7명, 총23명의 출자에 의해 설립되어 졌습니다.

 

술&안주
가양주작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는 ’수리산 맑은물쌀’과 우리밀 누룩만으로 빚어냅니다. 7일간 발효하고 손으로 짜낸 술에 절반의 물만 가수하고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않아도 진하고 풍부한 맛을 냅니다.

 

막걸리주조
가양주작은 2016년 2월 주세법 개정을 통한 ‘하우스막걸리’ 제도화 이후 전국에서 처음 설립된 하우스막걸리 전문점입니다. 현재 탁주와 약주제조에 대한 면허를 취득하였고 리큐즈제품이 2019년중 면허취득을 받아 출시돼 시판되고 있습니다.

 

가양주작 홈페이지
http://가양주작.com/

 

가양주작 너구리쉐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gkatptkd

 

 

 

 

 

[안양]삼덕도서관(2017.03.30)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58에 위치한 삼덕도서관은 안양시의 10번째 공공도서관으로 시가 총 사업비 69억여만원을 투입, 2015년 4월 착공된지 1년 7개월만인 2016년 10월 31일 개관식을 갖고 문을 열었다.
삼덕도서관은 연면적 2,688.41㎡ (부지면적 1,050㎡/건축면적 556.82㎡)의 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총370석(열람실 144석 포함)의 좌석이 설치돼 있으며, 3만2000여권의 도서를 비롯 정기간행물 50종과 비도서자료 330점이 비치돼있다.
지상 4개층에는 열람실과 노트북실, 종합자료실, 어린이자료실, 시청각실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지하층은 주차장이다.
삼덕도서관은 주변에는 초.중고는 물론 연성대와 안양대 등 학교가 많아 청소년특화도서관이라 할 수 있어 비치된 도서 또한 청소년 관련 책들이 주류를 이룬다.

 

 

 

 

 

 

 

 

 

 

 

 

[의왕]100년 역사의 흔적이 있는 하우현성당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100년 역사의 흔적이 있는 하우현성당

 

하우현(下牛峴)성당은 본당 설립 100년이 넘는 역사에 안양지역 천주교 전파의 첫 머리를 차지하는 의미 있는 곳이다. 신도수 200여명에 성당 규모는 전국 본당 성당 중 가장 작은 성당이지만 이 곳은 한국천주교뿐 아니라 근대역사의 흔적뿐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 건축양식을 절충한 한옥 사제관을 통해 근대사적 건축양식까지 만날 수 있는 역사 깊은 성당이다.
현 의왕시 청계동, 과거 시흥군 의왕읍 청계리(始興郡 儀旺邑 淸溪里) 속칭 ‘하우고개’ 자락과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하우현은 서울에서 약 24㎞ 떨어져 있고 안양시와는 20리 거리로 근접해 있으며 조선시대 동양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던 곳으로 현재 원터라고도 불리운다.
역원이란 과거 중앙관청의 공문을 지방관청에 전달하고 사신의 왕래나 관리 부임시 마필을 공급하던 역(驛)과 숙식을 제공하던 국가운영 여관 원(院)을 합친 말이다. 하우현은 조선시대에 인천, 제물포, 이천, 여주를 잇는 간선로가 통과하면서 동양원(洞陽院) 이라는 역원이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언제부터 교우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로 인해 자연의 계곡과 울창한 수목이 있었던 이 일대는 19세기 초 조선시대 말 박해를 피해 산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피난처였음에 비추어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교 교우들은 때로는 땅을 파고 토굴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토굴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다. 하우현에서 국사봉을 넘어 5키로 정도 가면 둔토리성지가 대표적인 곳이다.
하우현에는 개화기인 1884년에 이미 공소가 시작되어 뮈텔 신부가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전교하였고, 1885년부터는 프와넬(Poisnel, 朴道行) 신부가 전교한 기록이 남아 있다. 1886년 한불조약의 성립으로 한국 천주교회에는 신교의 자유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이 조약이 비준된 이듬해인 1888년 7월 왕림(갓등이)이 최초로 본당으로 설정되자 그 관할공소로 편입되었다.
1894년 5월 왕림본당 2대 신부인 알릭스(Alix) 신부는 하우현 신자들이 공소 강당없이 교우 집에서 공소 예절을 행하는 것을 보고 알릭스 신부가 협조한 금액과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초가 목조 강당 10간이 건축되었으며, 이 건물이 명동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성당이었다.
그 뒤 왕림 본당 주임신부 대리인 이종국(李鍾國, 바오로) 신부는 1899년과 1900년에 걸쳐 자주 이곳에 체류하면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하우현이 본당으로 되고 샤플랭 신부가 부임하여 5년간 전교하였다.
하우현은 1900년에 왕림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독립하였다. 프랑스인 샤플랭(Chapelain, 蔡) 신부가 초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여 사제관을 신축하고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봉헌하였다. 이 때 내빈으로 참석한 주한(駐韓) 초대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프랑스 공사가 종을 기증했다.
1900년 본당창설 당시의 신자총수는 1,105명이고 16개 공소를 관할하였다. 이는 광주군(廣州郡)과 용인군(龍仁郡)의 일부지역, 그리고 과천현(果川縣), 금천현(衿川縣, 지금의 安養지구), 안산군(安山郡) 등 넓은 지역을 관할할 만큼 교세 규모가 매우 컸다. 2대 본당신부는 르각(Le Gae, 郭元良), 3대는 페랭(Perrin, 白文弼) 신부로, 모두 프랑스인 선교사였고, 1920년에 처음으로 한국인 주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부임하여 1927년까지 7년간 사목하였다. 그 동안에 ‘애경 강습소’를 개설,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1928년 프랑스인 부이수(Bouyssou, 孫以燮) 신부가 5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여 신개화사상(新開化思想)과 문맹퇴치에 많은 공을 세웠으나, 애경강습소는 운영이 어려워 끝내 폐쇄되고 말았다. 1930년 부이수 신부가 대신학교 교수로 전임된 뒤, 본당은 문을 닫게 되고, 수원 고등동 본당의 공소로 편입되었다. 1943년 황정수(黃貞秀,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이 부활되었는데 얼마 후에 6.25 전쟁을 겪게 되고, 1951년 황 신부가 떠나자, 본당은 다시 문을 닫고 영등포 본당 관할의 공소가 되었다.
1952년 구천우(具天佑,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다시 본당이 부활되었다. 하지만 구 신부는 안양 일대의 사목에 힘씀 결과 1953년 안양 본당이 설정되면서 1954년 안양읍에 장내동성당(현 안양중앙성당)이 설립되자 하우현 본당은 공소가 되었다. 그러나 성당과 사제관은 그대로 보존되어 신부들이 휴양처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목조성당이 낡아 붕괴 위험에 처하자 1965년 하우현에서 휴양하던 은퇴사제 김영근 베드로 신부님이 미군부대로부터 건축 자재를 원조받아 1,700평의 부지 위에 100평의 현 성당을 신축하였다. 이 사업은 벨기에인 레이몬드(Raymond Spies) 신부의 힘이 컸다.
하우현성당은 1975년에 군포(현 호계동) 본당 관할공소로 변경되었다가 1978년 다시 본당으로 부활되다. 이 과정에서도 레이몬드신부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그는 1980년에 하우현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1993년에는 하우현 공소 건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출처 : 가톨릭 대사전 - 교회사 연구소]
현재의 성당의 외형은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것 같은 하연 외벽에 연한 하늘색 지붕이 주위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경건하고 아담한 모습이다. 성당 내부는 지친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 편안하게 미사를 볼 수 있는 좌식이다. 아마도 동양의 정서에 맞춘 점도 있지만 작은 규모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불편하기 보다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하우현성당 본당 건물 오른쪽에 있는 한옥 건물은 하우현성당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다. 이 곳은 1906년에 신축한 사제관(신부님 숙소)으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건물의 몸체는 석조, 지붕은 골기와를 얹은 팔각지붕 형태로 한국과 프랑스의 건축양식을 절충했다. 20세기 초반 성당 건물에 한양 절충식을 쓴다는 건 당시에는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 평면 및 구조ㆍ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사제관 현관 지붕 아래에는 자그마한 종이 매달려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성당 건립후 프랑스 공사였던 골랭드 플랑시가 하우현성당 준공응 기념해 종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 건물은 지난 2001년 1월 22일 경기도 기념물 제 176호로 지정되엇으며 2005년 보수작업으로 새로이 단장했다.
성당 마당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성당 주변에는 작은 정원들이 조성되어 연초록빛 풀잎 위에 아기자자한 꽃들.이 피어있고 사제관 옆 돌담길에는 하우현성당의 터주대감으로 귀여움을 받고있는 고양이 두마리가 산책을 즐긴다.
성당 왼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에서 못박혀 죽을 때까지 중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보통 14가지인데 하우현 성당은 15가지로 표현해놓았다. 데크로 조성된 작은 산책길을 따라가면 하우현성당 카페다.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신자들이 직접 운영하며 수익금은 전액 성지개발에 사용된다. 이곳 역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친구 집같이 정겹다.
사제관 앞에는 주보 신부인 성 루도비코 볼리외(Beaulieu) 신부님의 동상이 서 있다. 조선 말기에 천주교의 전파를 위해 활동하던 12명의 선교사 중 가장 어린 나이인 25살에 조선에 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체포된 후 스물여섯의 꽃 같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그는 1968년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고 이어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려졌다.
하우현성당 인근에는 박해당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은신했던 동굴이 있다. 이 동굴성지를 가려면 성당 옆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국사봉(542)까지 1시간40분 정도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이수봉 방향이 아닌 오른쪽 길로 1km 정도를 내려가면 쉼터(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갈림길)이고 여기서 ‘성 루도비코 은신동굴‘ 안내판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등산에 자신 없으면 하우현성당 앞에서 분당 반향 버스(303번, 1550-3번)를 타고 운중동먹거리촌 정류장(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하차한 후 연구원 앞을 지나 순두집에서 다시 서울외곽순환도로 밑의 터널을 지나 오르면 국사봉 등성이로 1.2km(40분 소요)를 오르면 동굴성지에 도착한다. 교우촌의 생업이던 옹기 굽던 도요지(陶窯地)와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우현 성당 가는길은 인덕원사거리에서 청계를 지나 성남 판교가는 도로(57번국도)를 10여분 정도 가다 보면 우측으로 ‘원터마을 하우현성당’ 이정표가 보인다. 도로 아래쪽으로 난 굴다리를 지나 죄측으로 돌면 성당이 나온다. 성당앞 마당에는 주차공간이 있다.
대중교통도 비교적 편리하다. 인덕원사거리(지하철 4호선 2번 출구쪽) 버스정류장에서 성남행 303, 103, 1303, 1550-3번을 타고 청계원터마을 입구정류장에서 하차해 도로 밑 우회 터널(굴다리)을 건너면 된다. 의왕 마을버스 1-5은 성당입구까지 운행한다.
하우현성당 버스정류장에서 판교방향으로 약 200여미터 지근거리에는 2004년에 발견한 의왕의 도깨비도로가 있다. 도깨비도로란 경사가 낮은 곳이 높게 보이는 시각에 관해 생기는 착각이 주는 착시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이 도로는 판교쪽 방향 고갯길에 있는데 언덕으로 이어지는 판교로 탓일까요? 주변 환경이 만든 착시현상으로 인해 마치 내리막길 처럼 보인다. 도깨비도로 중간쯤 구간 양쪽에 도깨비도로 체험구간이 있다. 동그란 음료수병이나 공을 도로에 놓거나 물을 홀려 놓으면 왜 도깨비도로인지를 알 수 있다.
 
하오고개 또는 학현[鶴峴]
 경기도 성남시의 서남부 분당구 운중동의 서쪽에서 의왕시 청계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이다. 운중동에서는 하오개 · 하오고개 · 화의고개 등으로 불리고, 의왕시에서는 학고개 · 학현이라 부른다. 학현의 좌우 모두 조선 말기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숨어 살았던 곳이다. 고개 너머 청계동은 1801년 신유박해 때 한덕운(토마스) 등이 붙잡힌 곳이다. 그는 교우들의 이름을 대지 안다가 남한산성에서 순교하였다. 조선 시대 동양원(洞陽院)이라는 역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해동지도』에 학현이 기록되어 있다. 『중정남원지』에 "학현은 판교주막에서 서쪽으로 10리쯤에 있다. 서쪽으로 인덕원 · 과천 등지와 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학현이란 명칭은 이웃한 의왕시 청계동 점말에 있었던 김해김씨 종산이 풍수지리상 학이 거동하는 형국이며, 인근의 안동김씨 묘도 학의 혈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참고자료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일러두기 및 '우리나라의 지명' 총론 목차-
 

 

 

 

[의왕]100년 역사의 하우현성당

 

#의왕 #하우현성당 #100년 #천주교 #한옥사제관/ 작고 소박하지만 100년 역사와 근대건축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하우현성당

하우현(下牛峴)성당은 본당 설립 100년이 넘는 역사에 안양지역 천주교 전파의 첫 머리를 차지하는 의미 있는 곳이다. 신도수 200여명에 성당 규모는 전국 본당 성당 중 가장 작은 성당이지만 이 곳은 한국천주교뿐 아니라 근대역사의 흔적뿐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 건축양식을 절충한 한옥 사제관을 통해 근대사적 건축양식까지 만날 수 있는 역사 깊은 성당이다.

현 의왕시 청계동, 과거 시흥군 의왕읍 청계리(始興郡 儀旺邑 淸溪里) 속칭 ‘하우고개’ 자락과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하우현은 서울에서 약 24㎞ 떨어져 있고 안양시와는 20리 거리로 근접해 있으며 조선시대 동양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던 곳으로 현재 원터라고도 불리운다.

역원이란 과거 중앙관청의 공문을 지방관청에 전달하고 사신의 왕래나 관리 부임시 마필을 공급하던 역(驛)과 숙식을 제공하던 국가운영 여관 원(院)을 합친 말이다. 하우현은 조선시대에 인천, 제물포, 이천, 여주를 잇는 간선로가 통과하면서 동양원이라는 역원이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언제부터 교우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로 인해 자연의 계곡과 울창한 수목이 있었던 이 일대는 19세기 초 조선시대 말 박해를 피해 산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피난처였음에 비추어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교 교우들은 때로는 땅을 파고 토굴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토굴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다. 하우현에서 국사봉을 넘어 5키로 정도 가면 둔토리성지가 대표적인 곳이다.
하우현에는 개화기인 1884년에 이미 공소가 시작되어 뮈텔 신부가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전교하였고, 1885년부터는 프와넬(Poisnel, 朴道行) 신부가 전교한 기록이 남아 있다. 1886년 한불조약의 성립으로 한국 천주교회에는 신교의 자유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이 조약이 비준된 이듬해인 1888년 7월 왕림(갓등이)이 최초로 본당으로 설정되자 그 관할공소로 편입되었다.

1894년 5월 왕림본당 2대 신부인 알릭스(Alix) 신부는 하우현 신자들이 공소 강당없이 교우 집에서 공소 예절을 행하는 것을 보고 알릭스 신부가 협조한 금액과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초가 목조 강당 10간이 건축되었으며, 이 건물이 명동성당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성당이었다.

그 뒤 왕림 본당 주임신부 대리인 이종국(李鍾國, 바오로) 신부는 1899년과 1900년에 걸쳐 자주 이곳에 체류하면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하우현이 본당으로 되고 샤플랭 신부가 부임하여 5년간 전교하였다.

하우현은 1900년에 왕림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독립하였다. 프랑스인 샤플랭(Chapelain, 蔡) 신부가 초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여 사제관을 신축하고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봉헌하였다. 이 때 내빈으로 참석한 주한(駐韓) 초대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프랑스 공사가 종을 기증했다.

1900년 본당창설 당시의 신자총수는 1,105명이고 16개 공소를 관할하였다. 이는 광주군(廣州郡)과 용인군(龍仁郡)의 일부지역, 그리고 과천현(果川縣), 금천현(衿川縣, 지금의 安養지구), 안산군(安山郡) 등 넓은 지역을 관할할 만큼 교세 규모가 매우 컸다.

2대 본당신부는 르각(Le Gae, 郭元良), 3대는 페랭(Perrin, 白文弼) 신부로, 모두 프랑스인 선교사였고, 1920년에 처음으로 한국인 주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부임하여 1927년까지 7년간 사목하였다. 그 동안에 ‘애경 강습소’를 개설,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1928년 프랑스인 부이수(Bouyssou, 孫以燮) 신부가 5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하여 신개화사상(新開化思想)과 문맹퇴치에 많은 공을 세웠으나, 애경강습소는 운영이 어려워 끝내 폐쇄되고 말았다. 1930년 부이수 신부가 대신학교 교수로 전임된 뒤, 본당은 문을 닫게 되고, 수원 고등동 본당의 공소로 편입되었다. 1943년 황정수(黃貞秀,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이 부활되었는데 얼마 후에 6.25 전쟁을 겪게 되고, 1951년 황 신부가 떠나자, 본당은 다시 문을 닫고 영등포 본당 관할의 공소가 되었다.

1952년 구천우(具天佑, 요셉) 신부가 부임하여 다시 본당이 부활되었다. 하지만 구 신부는 안양 일대의 사목에 힘씀 결과 1953년 안양 본당이 설정되면서 1954년 안양읍에 장내동성당(현 안양중앙성당)이 설립되자 하우현 본당은 공소가 되었다. 그러나 성당과 사제관은 그대로 보존되어 신부들이 휴양처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목조성당이 낡아 붕괴 위험에 처하자 1965년 하우현에서 휴양하던 은퇴사제 김영근 베드로 신부님이 미군부대로부터 건축 자재를 원조받아 1,700평의 부지 위에 100평의 현 성당을 신축하였다. 이 사업은 벨기에인 레이몬드(Raymond Spies) 신부의 힘이 컸다.

하우현성당은 1975년에 군포(현 호계동) 본당 관할공소로 변경되었다가 1978년 다시 본당으로 부활되다. 이 과정에서도 레이몬드신부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그는 1980년에 하우현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1993년에는 하우현 공소 건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출처 : 가톨릭 대사전 - 교회사 연구소]

현재의 성당의 외형은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것 같은 하연 외벽에 연한 하늘색 지붕이 주위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경건하고 아담한 모습이다. 성당 내부는 지친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 편안하게 미사를 볼 수 있는 좌식이다. 아마도 동양의 정서에 맞춘 점도 있지만 작은 규모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불편하기 보다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하우현성당 본당 건물 오른쪽에 있는 한옥 건물은 하우현성당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다. 이 곳은 1906년에 신축한 사제관(신부님 숙소)으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건물의 몸체는 석조, 지붕은 골기와를 얹은 팔각지붕 형태로 한국과 프랑스의 건축양식을 절충했다. 20세기 초반 성당 건물에 한양 절충식을 쓴다는 건 당시에는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 평면 및 구조ㆍ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사제관 현관 지붕 아래에는 자그마한 종이 매달려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성당 건립후 프랑스 공사였던 골랭드 플랑시가 하우현성당 준공응 기념해 종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 건물은 지난 2001년 1월 22일 경기도 기념물 제 176호로 지정되엇으며 2005년 보수작업으로 새로이 단장했다.

성당 마당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성당 주변에는 작은 정원들이 조성되어 연초록빛 풀잎 위에 아기자자한 꽃들.이 피어있고 사제관 옆 돌담길에는 하우현성당의 터주대감으로 귀여움을 받고있는 고양이 두마리가 산책을 즐긴다.

성당 왼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에서 못박혀 죽을 때까지 중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보통 14가지인데 하우현 성당은 15가지로 표현해놓았다.

데크로 조성된 작은 산책길을 따라가면 하우현성당 카페다.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신자들이 직접 운영하며 수익금은 전액 성지개발에 사용된다. 이곳 역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친구 집같이 정겹다.

사제관 앞에는 주보 신부인 성 루도비코 볼리외(Beaulieu) 신부님의 동상이 서 있다. 조선 말기에 천주교의 전파를 위해 활동하던 12명의 선교사 중 가장 어린 나이인 25살에 조선에 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체포된 후 스물여섯의 꽃 같은 나이에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그는 1968년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고 이어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려졌다.

하우현성당 인근에는 박해당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은신했던 동굴이 있다. 이 동굴성지를 가려면 성당 옆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국사봉(542)까지 1시간40분 정도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이수봉 방향이 아닌 오른쪽 길로 1km 정도를 내려가면 쉼터(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갈림길)이고 여기서 ‘성 루도비코 은신동굴‘ 안내판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등산에 자신 없으면 하우현성당 앞에서 분당 반향 버스(303번, 1550-3번)를 타고 운중동먹거리촌 정류장(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하차한 후 연구원 앞을 지나 순두집에서 다시 서울외곽순환도로 밑의 터널을 지나 오르면 국사봉 등성이로 1.2km(40분 소요)를 오르면 동굴성지에 도착한다.

하우현 성당 가는길은 인덕원사거리에서 청계를 지나 성남 판교가는 도로(57번국도)를 10여분 정도 가다 보면 우측으로 ‘원터마을 하우현성당’ 이정표가 보인다. 도로 아래쪽으로 난 굴다리를 지나 죄측으로 돌면 성당이 나온다. 성당앞 마당에는 주차공간이 있다.

대중교통도 비교적 편리하다. 인덕원사거리(지하철 4호선 2번 출구쪽) 버스정류장에서 성남행 303, 103, 1303, 1550-3번을 타고 청계원터마을 입구정류장에서 하차해 도로 밑 우회 터널(굴다리)을 건너면 된다. 의왕 마을버스 1-5은 성당입구까지 운행한다.

하우현성당 버스정류장에서 판교방향으로 약 200여미터 지근거리에는 2004년에 발견한 의왕의 도깨비도로가 있다. 도깨비도로란 경사가 낮은 곳이 높게 보이는 시각에 관해 생기는 착각이 주는 착시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이 도로는 판교쪽 방향 고갯길에 있는데 언덕으로 이어지는 판교로 탓일까요? 주변 환경이 만든 착시현상으로 인해 마치 내리막길 처럼 보인다. 도깨비도로 중간쯤 구간 양쪽에 도깨비도로 체험구간이 있다. 동그란 음료수병이나 공을 도로에 놓거나 물을 홀려 놓으면 왜 도깨비도로인지를 알 수 있다.


사진첩 [풍경]100년 역사 의왕 하우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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