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118

[박중련]나의 외삼촌 이용경 전 KT사장(2009.02.27)

글 출처: 티스토리 박중련의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 없이 떠나라. https://worldonepercent.tistory.com/79 한 길만을 걸은 사람의 이야기(이용경 전 KT사장) 외삼촌인 KT의 이용경 사장은 만 16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최연소란 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정보통신업계에서는 60세의 최고령으로 한국재계 6번째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삼사십대 worldonepercent.tistory.com 외삼촌인 KT의 이용경 사장은 만 16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최연소란 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정보통신업계에서는 60세의 최고령으로 한국재계 6번째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삼사십대 사장들이 맹활약하는 이 업계에서 계속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용경사..

[플록스]고향 안양읍 주접동을 그리며.........(20180815)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주접동(지금의 안양6동)이었지요. 집 주변에는 수리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고 임업시험장이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했던 네 자매의 놀이터는 임업시험장이었고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은 흑백의 시절이었습니다. 임업 시험장 앞으로는 국도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기찻길이 있었지요. 우리는 낮은 동산에 않아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매일매일 보았습니다. 기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적을 울리며 우리들 앞으로 지나갑니다. 화물칸이 대부분이었던 기차는 길게는 삼십 량을 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기차구경을 하다가 심심하면 수영할 채비를 해가지고 냇가로 갑니다. 그 시절엔 검은 사각 빤쓰와 나닝구라고 부르는 것이 수영복의 전부였습니다. 갈아입을 옷 한 벌을 가지고 안양천으로 무리지어 달려..

[김인호]군포 욕골 출신 토박이의 1970년대 용호마을 기억

2023년 7월 16일 군포시생활문화센터 다목적스튜디오에서 군포문화재단과 군포문화도시지원센터가 주최한 ‘시민정책연구단 3차 연구모임’이 ‘나의 군포 이야기’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이야기 손님은 김인호씨(61세)다. 김인호씨는 경기 시흥군 남면 548번지에서 태어나 군포초, 안양동중(현 신성중), 안양동고(현 신성고), 한양공대를 졸업하기까지 한 곳에서 살아온 군포 토박이다. 2천년대 이후 용호마을 이편한세상아파트가 들어선 그곳에는 부모님이 여전히 살고 계신다. ㈜네오임플란트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그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 군포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욕골_나는 군포의 면소재지(당말)에서 조금 떨어진 ‘욕골’(용호동)이라는 시골마을 출신이다. 어릴 적 군포라고 하면 군포국민(초등)학교와 군포역, 당말..

[김태민]안양3동 대농단지와 안양월드의 기억(2023.07.11)

덕천마을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지만 대농단지와 안양월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한 번씩 댕리단길에서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할 때면 안양월드 앞을 지나게 된다. 26년 전 모습이 거의 대부분 남아있는 오래된 동네는 잊고 있었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온다. 당장이라도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골목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다. 매일 보면서 각인된 풍경은 때로는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남는다. 기억 속의 안양월드는 대농단지의 유일한 쇼핑센터로서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안양월드 앞에서 자주 만났다. 대농단지는 비슷하게 생긴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동네였으므로 눈에 띄는 건물은 안양월드 밖에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것도 좋았지만 쾌적한 점도 한 몫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

[서혜진]안양관내 고교 기독교연합동아리 찬양단 추억(2023.09.11)

안양 연합동아리 케륏소찬양단을 아십니까? 5년전 여름 인덕원성당과 새중앙교회 건물이 막 올라가던 시절 신앙생활을 인덕원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인덕원중학교이지만 내겐 관양여자중학교이던 시절 주일도 아닌 화요일 저녁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교회로 모여들었고 방학이 되면 안양관내 고등학교 기독교 동아리를 주축으로 찬양집회가 있었다. 안양 신성고등학교 하람찬양단과 양명고등학교 익투스 찬양단 그리고 양명여고 아비가일과 함께 연합동아리 케륏소찬양단이 그 중심에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케륏소 찬양단 단장으로 여고생으로는 유일하게 찬양집회를 인도했고 그렇게 시작된 집회의 열기는 여름 내내 곳곳에서 계속되었다.마치 안양권(안양, 군포, 의왕, 과천) 전체가 기독청소년 부흥회 기간인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

[임희택]안양 박달동 범고개 계단식논과 장마철의 기억

범고개 주막거리 문산옥 건너편에는 "부로꾸"공장이 있었다. 더푼물 고개 아래로부터 주욱 이어지는 계단식 논 제일 아랫 부분에 자리를 잡은건데 시기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때이고 보면 적절한 사업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만 사업에 대한 의지보다 사람 좋다는 주위 평판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며 납품하고 돈 못받고 흥미를 잃고 작업을 소홀히 하고 돈 못벌고 .... 반복하면서 같은 업종 경쟁자들이 나름 자본을 축적할 때 술로 허송세월을 하신 것이 부끄러워 술을 더 마셔댔던 분이 나의 아버지시다. 그시절 사실 돈이 있어도 시골에서는 그리 먹을 게 흔하지 않았는데 이런 장마철이면 나름 남의 살을 먹을 만한 기회가 오곤 하였다. 비가 논을 거치고 거쳐서 도살장 아래 개울로 흘러 가고 그게 조금 더 많이 내리면 공장..

[임희택]안양 박달리 범고개 계곡 굿당 물당_물堂(2023.07.14)

안양 박달리 범고개 계곡에 있던 굿당 물당(물堂) 범고개 끝 집 윤호형네서 조금 더 올라가면, 그러니까 지금 쓰레기적환장 입구 건너편 산 쪽으로 작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었다. 애들 눈으로 계곡이지 어른 눈으로 봐도 계곡으로 보일까 싶은 '작은' 계곡에 어느날 시멘트 블럭으로 지은 집이 하나 들어 섰다. 집이라고 해봐야 한 쪽 벽이 애들 걸음으로 서너걸음 밖에 안되는 작고 좁은 집이었다. 모두 그 집을 물당이라고 불렀다. 까불까불하고 보고 싶은거 참지 못하는 친구들이 문틈으로 들여다보고는 귀신이 들었다. 무서운 할아버지가 있다 등등 머리칼이 솟는 얘기들을 했다. 등교길에 은근히 그 쪽을 넘겨다보면 사과나 배가 바위 틈 넓적한 곳에 올려져 있고 때로는 타다가 꺼진 초도 그대로 서있곤 하였다. 어느날 친구 둘..

[임희택]안양 박달리 더푼물앞 골짜기에 있던 굿당 물당(2022.02.24)

호현마을을 나 나기 전부터 그리고 나 살때도 그리고 떠난 후에도 당분간 더 범고개라고 불렀는데 범고개에서 더푼물쪽으로 고개를 올라가다 보면 우측으로 작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대략 쓰레기 선별장 정문 앞 쯤 되겠다. 한길(도로)에서 그 골짜기로 이십여미터 올라가면 작은 한칸짜리 건물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물당"이라고 불렀다. 문이 한길 쪽으로 나 있어서 가끔 문이 열려있으면 그 안이 보였는데 인상 고약한 귀신의 그림이 정면 벼름빡에 붙어 있고 그 앞 제법 큰 상에는 촛불과 사과 배 따위 제수가 늘어져 있었다. 동생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고 부랴부랴 범고개를 떠났기에 그 물당이 언제 없어졌는지 몰라도 지금은 어쨌거나 흔적도 없다. 계곡도 없어졌고 뽀얀 흙먼지 날리는 한길도 없어졌고 물당 앞..

[임희택]중2때 소풍가던날 안양영화예술학교로 일탈(2022.06.09)

구녕 2 중2때, 안양유원지로 소풍을 가는 날. 삼원극장 앞에서 모여 출발을 기다리며 난생 처음 야구르트를 맛봤다. 그렇게 달고 맛난 것을 일찌기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입안에 달콤함을 느끼며 안양유원지에서 하루를 잘 보내고 귀가를 하려는데 친구 몇이서 안양예고로 임예진 보러 가쟨다. 사실 그 무렵 나는 임예진이 누군지도 잘 몰랐고 그녀가 예쁜지도 잘 몰랐었지만 그냥 영화배우 만나러 간다니까 흥분해서 따라갔을 뿐이었다. 그 때 함께 간 친구들 이름조차 기억이 안날 정도로 임예진 여배우만 염두에 두고 갔었다. 지금 안양예고는 안양3동 산비탈에 있지만 그 때는 석수동 지금 현대아파트 자리 인근에 있었다.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내가 생각하던 학교도 임예진도 영화배우도 없었다. 다만 공장처럼 허..

[임희택]어릴적 열쇠를 찾아낸 행운과 네잎크로버(2023.04.24)

어농성지에서 행운의 네잎 크로버를... 두개를 따서 하나는 Cu.부단장에게. 하나는 여기. 찾으려 들면 영 안비는데 우연히 발 밑에 있곤 한다. 사진 찍힐라고 서다가 어, 하고 발견... 초4.5학년 무렵. 박달동 코카콜라 입구부근에 있던 이층집이 내 큰댁이었는데 하루는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은 남고 아이들은 범고개 우리집으로 한밤중에 이동했다. 집에 가서 보니 열쇠를 받아 들고 온 사촌 누나가 그걸 잃어 버렸다. 외투 주머니에 넣고는 풀썩거리다가 어디선가 빠뜨린거였다. 얼마전 도둑놈이 미닫이문을 비틀고 들어오려다가 우리 메리한테 걸려 달아난 기억이 있어서 우리도 문을 비틀고 들어가서 일단 잤다. 다음날 아침 먼지나는 행길에 사촌들과 횡으로 나란히 서서 그 잃은 열쇠를 찾으며 가자 했는데 거의 다 목적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