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2006028]공공예술작품 즐비한 학운공원 B구역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2020.06.28/ #안양 #동네 #골목 #학운공원 #APAP새동네 #오픈스쿨/ 학의천변인 안양 부림동에 학운공원은 생각보다 꽤 넓지요. 구역만도 3개섹터로 나뉘어집니다. 축구,농구,족구등 운동시설과 화장실, 매점, 공영주차장이 있는 학운교와 내비산교 사이의 중앙부분이 메인 구역이라면 학운교와 비산인도교 사이 지역은 가칭 학운공원 A구역으로 휴게및 운동시설과 화장실 등이 있으며 내비산교에서 수촌교 사이 지역은 학운공원 B구역으로 2010년 APAP 새동네란 이름으로 개막식도 열리고 오픈스쿨, 오픈하우스, 파빌리온 등 다양한 공공예술 작품들이 설치된 곳이지요. 다소 외진듯 보이지만 이 구역에는 2019년 새로 정비한 운동시설, 휴게시설 등이 있지요. 하지만 오픈스쿨 등의 활용방안을 찾지못하고 있지요. 일각에서는  이 구역에 화장실 등 이용편의 시설이 마련되면 프로그램과 이용자도 늘면서 활력을 찾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제기됩니다. 또 가끔 타지역에서 이곳을 방문해 안양 공공예술의 개요와 작품 등에 대한 토론도 열리기도 하지만 다양한 정보를 알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와이파이의 사각지대로 공공와이파이 설치도 시급해 보인다.

 

 

 

 

 

 

 

 

 

 

 

 

 

[20200620]멋진 일몰을 볼 수 있는 의왕 내손동 언덕위 포일성당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공간]의왕 내손동 언덕위 포일성당
2020.06.20/ #포일성당 #내손동 #포일리 #평화의모후/ 모락산을 등지고 옛 포일리(내손동지역)부터 평촌과 인덕원까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예쁜 성당.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풍스런 외관으로 시선을 끄는 멋진 성당으로 1988년 지어졌는데 지금은 의왕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중 하나입니다. 성당을 처음 방문한 2020년 6월 17일 언덕길을 오르고 성당앞에서 계단을 올라서면 잔디밭 성모동산입니다. 수원교구장이셨던 김남수 주교님이 식수하신 소나무 한그루가 인사라도 하듯 휘어진 멋진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성모동산앞에 촛불을 키고 기도를 한후 성당 마당에 올라서면 안쪽 성모유치원에서는 코로나19를 쫒아버리기라도 하듯 아이들의 까르르 밝은 웃음소리가 들리네요. 성당 마당당 오른쪽 산으로 난 계단길을 오르면 십자가의 길 기도 코스입니다.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까이는 평촌시내 멀리는 수리산과 관악산도 한눈에 보일듯 싶네요. 성당 위치가 워낙 높아 성당 마당, 게단 등 어느곳에만 서 있어도 멋진 일몰을 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니 아담한 카페가 있네요. 이름하여 릴리안카페, 그 옆으로는 첼리나 성물방이 있고 밖으로 나오면 오른편에 우리농 나눔터가 있는데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의 일환으 생산자와의 직거래로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네요. .성당 뒷뜰을 산보하는 고양이 2마리도 발견했는데 천천히 느긋하게 어슬렁 거리는 폼이 성당에서 꽤나 대접받는듯 싶네요. 위치: 경기 의왕시 정우2길 8( 내손동 528-1)

 

 

 

[안양]인양일번가 40년 노포 안양감자탕 문 닫다(2020.04.21)

안양지역명소/동네맛집


#안양 #동네 #골목 #안양감자탕/ 안양1번가의 터줏대감격으로 비지감자탕으로 유명한 안양감자탕 1호점이 2020년 4월 20일 영업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어느 건설업자가 안양감자탕, 양화원, 서서갈비 등 안양일번가에서 오래된 집들(약 233평)을 매입했으며 새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예전에 음식점들이 즐비했던 안양 일번가에 그 자리를 지키며 수십여년 세월을 맛으로 승부하는 집을 잧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몇몇 집들이 있는데 1983년 개업해 30년 넘게   비지감자탕을 만들어내는 안양 감자탕이다. 

서이면사무소 옆에 자리한 이 집은... 특이하게 콩비지와 감자, 살코기가 붙붙은 뼈가 수북히 나온다. 가격이 좀 쎄지만 국내산 고기를 사용하기에 고럭저럭. 

안양 일번가가 젊은이의 거리로 바뀌어 중장년들이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지만 이 집만큼은 20대 젊은이부터 60대 장년층까지 함께 감자탕과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맛으로 인정받고 유명해진 곳이다. 이 집의 또다른 맛은 파전이다, 입구에서 이모님이 맛있게 부쳐주는 파전... 비오는날 먹으면 더욱 맛있다. 비밀 한가지 메뉴에는 없지만 계란말이를 주문하면 이모님이 해주시는데 퓨전이 아닌 옛날식 계란말이를 맛볼 수 있다. 

주인 내외분이 하시는데 파전을 부치시는 이모님은 제 기억으로 15년 이상을 보았다. 인상도 좋고 마음씨도 좋으시다. 오랫만에 들려도 기억을 해주시고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한다. 이 잡앞에 감자탕(현대식) 하나가 또 있는데 여기는 결혼한 따님(?)이 운영한다. 가족들과 오는 분들은 깔끔한 여기를 가지만, 대부분은 허스름한 옛날부터 있던 집을 많이 찾는다. 

안양감자탕은 1970년대 중반 갈비집 안양옥(현 서이면사무소)옆에 개업했으며 현 주인장이 1983년 인수해 40년 가까이 운영을 해왔다. 콩비지가 들어가는 감자탕을 만드는 집은 안양에서 이 집과 석수시장의 또와 감자탕 등 몇곳 되지 않는다. 

안양 일번가가 젊은이의 거리로 바뀌어 중장년들이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지만 이 집만큼은 20대 젊은이부터 60대 장년층까지  어울려 감자탕과 파전에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으로 방송에 수차례 소개되기도 한곳이다.

나즈막한 천장밑에서 오손도손, 겨울에는 연탄난로에 손을 비벼가며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사라지니 아쉽다. 안양1번가의 노포 안양감자탕이 문을 닫았지만 이 집 따님이 문을 열었던 안양감자탕(현대식) 2호점에서 비지감지탕은 계속 맛을 볼 수 있다.











[안양]중식계 강자로 입소문난 만안초 후문앞 복무춘(2020.04.23)

안양지역명소/동네맛집

 

2020.04/ #안양 #동네 #골목 #복무춘 #노포 #안양2동 #중국집/ 안양 만안 초등학교 후문앞에 자리한 자그마한 중국집. 실내에 테이블 3개에 불과한 배달 전문점이지만 볶음밥, 짬뽕, 탕수육이 맛있다고 입소문 나면서 중식 매니어들이 일부러 찾아와 맛볼 정도로 중식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곳. 상호가 복무춘으로 특이하다 보니 주인장이 화교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확인결과 한국사람이다. 안양2동 만안초등학교 후문 골목에 있던  중국집을 인수해 한 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다고 한다. 50대 초중반의 부부가 운영하는데 아저씨가 주방, 아주머니는 홀을 맡아 영업하는데 홀 판매보다는 배달 비중이 큰듯 싶다.

처음 찾아간 날 고슬고슬하게 잘 볶아낸 볶음밥을 맛봤다. 베이스가 되는 볶음밥도 훌륭했고, 반숙 후라이가 반가웠으며, 짜장 소스도 준수하고, 케첩 뿌린 양배추가 기꺼웠던 맜있는 혼밥 한 끼였다..

그 이후 최근 들어 세번째 간 날은 경기도재난기금 들어왔다고 한턱 낸다는 동창과 함께 탕수육, 짜장면, 짬뽕 세트 메뉴를 주문해 선주후식을 했다.. 속이 보일 정도의 튀김옷과 바삭바삭학 소리와 식감에 찜먹으로 나오는 딜콤한 소스도 좋았던 탕수육. 장맛도 괜찮은 엣날식 짜장면, 푸짐한 홍합과 국물 뒷끝이 깔끔한 짬뽕도 좋았다. 가격도 저렴하다. 세트+소주.이과두주 각 1병씩 정말 푸짐하게 먹었는데 3만원이다. 가격이 저렴해(더욱이 짜장과 짬봉은 홀 가격이 더 싸다) 혼자 와 1인 2메뉴를 주문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나갈때 내가 쓴 마스크가 작다고 새 마스크를 서슴없이 꺼내주시는 주인아주머니... 주인장 내외가 선한 인상처럼 마음도 착하다!! 감사

 

 

 

 

 

 

 

 

 

 

 

 

 

 

 

[안양]화교 2세가 대를 잇는 안양 중화요리 전문점 소선(2020.04.04)

안양지역명소/동네맛집

 

#안양 #중국집 #중화요리 #청요리 #소선 # 燒仙 #안양6동 #명학역앞 #장인 #화상 #양윤의쉐프/
안양6동 명학역앞 골목에 중화요리 장인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중국집이 생겼다.
지난 3월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70년된 동흥관을 다녀와 안양에도 7-80년대 동춘관,순흥루,춘방각,순영관,영화관 등 중국 화교들이 운영하던 호떡집과 중국집 있었는데 다 없어져 노포 식당을 보면 아쉽다는 글을 올렸더니 힌의원을 운영하는 페친 한분께서 정보를 주셨다.
안양 명학역앞에 안양 출신의 화교 2세가 운영하는 중국집 소선(燒仙) 이 있디고..
기막힌 정보에 재빨리 찾아간 소선.
명학역 1번출구를 나와 육교를 건너 골목길로 100 m 들어서 사거리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맛있는 수입 생맥주를 팔던 곳이었는데
 주방과 4인 테이블 10여개 정도가 배치된 홀로 꾸며진 소선은 깔끔하고 깨끗한 인테리어와 더불어 메뉴도 현대식 청요리집을 연상케한다.
주방은 남편이, 홀과 카운터는 부인이 맡아 운영하는 듯 보인다, 주인장인자 주방장인 양윤의 쉐프는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과 제주 롯데호텔 리조트 그리고 롯데 시그네엘호텔에서 30년간 조리장으로 연회 조리를 담당했었고 청와대 만찬까지 담당했던 이로 다양한 요리경연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뿐 아니라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심사위원도 하고있는 중화요리계의 장인으로 알려져있다.
이집을 소개한 분과 7-80년대 안양 중국집 얘기를 부인을 통해 전해들은 양 쉐프께서 주방에서 나와 잠시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정리해 보니 화교이신 부친께서 70년대 안양9동 새마을 입구에서 중국집 복순장을 하시다가 안양6동 은혜와진리 교회앞으로 자리를 옮겨 용문각을 운영하다 문을 닫는다 부친께서는 4형제를 두셨는데 큰아들이 안양 박달동에서 띵호1호점(짬뽕 맛집), 막내아들인 네째가 안양4동골목에서 띵호2호점, 그리고 세째인 양윤의 쉐프가 안양 명학옆앞 골목에 중화요리집 소선을 지난 2019년 문을 열었으니 화교 2세 삼형제가 부친의 대를 이어 안양에 자리잡은 것이다.

 

 

 

 

 

 

 

 

 

 

2020.04.11/#안양 #동네 #골목 #맛집 #중화요리 #소선 #혼밥/ 2번째 찾아간날 흑후추소고기덮밥을 맛보았습니다. 처음 맛보는 메뉴인데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네요. 양이 약간 적은듯 하지만 맛났어요. 빼갈보다는 시원한 맥주가 어울릴것 같았습니다. 메뉴판에 코스 요리(봄 1인 3만원.여름 1인 5만원)도 추가됐네요. 이날 주인장인 양윤의 쉐프와 명함도 교환하고 오래전인 6-70년대 안양에서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답니다. 6-70년대에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은 6~7곳(안양역근처에 4, 구시장에1, 박달동에 2)이나 있었다네요. 놀라운 것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안양 박달동 근처(현 안양3동)에 화교소학교도 있었고 어릴적 다녔었다고 하네요. 이 집엘 가면 숨겨져 있던 안양지역사의 한부분을 들을 수 있어 너무나 기쁩니다^^

 

 

 

2020.05.14/ #안양 #동네 #골목 #소선 #중화요리 #맛집 #안양6동 #명학역 #장인 #화상 #양인쉐프/ 친구와 지역경제살리기. 재난기금 사용하기. 소고기고추집채/ 담백한 소고기와 신선한 야채, 매콤한 피망을 같이 볶은 대표적인 중화요리. 중국황제가 즐겨먹었다는 꽃빵을 곁들이면 금상첨화이지요.

 

 

 

 

 

 

[20191115]안양 수리산의 숨은 명소 '한증막'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안양 #한증막 #한증원 #병목안 #창박골

세번째 경기도립공원인 수리산 경기도립공원 안양쪽 관문인 안양9동 병목안과 창박골에는 다른곳에는 없는 아주 톡특한 곳들이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한증막인데 나이드신 여성분들이 잘 알고 안양뿐 아니라서울과 수도권지역에서도 입소문난 곳으로 병목안한증막(병목안시민공원 옆), 창박골한증막(삼영.보영 시내버스 창박골 종점 아래), 안양한증막(병목안 안양시캠핑장 옆) 등 세곳이나 됩니다. 이들 한증막은 1970년대 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무려 50년이 넘는 오랜 기간 여성들의 휴식공간이자, 사랑방, 소통공간으로 사랑을 받아왔지요

한증막에 대해 알아보니 옛부터 자연에서 생성되는 온천 또는 지열혈(地熱穴)에서 우리 조상들은만병을 치유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고유물이고 우리나라에만존재하는 재래식한증막을 인위적으로 지은것은 지금으로 부터약 500∼600년전이라 추정되는데, 옛 궁궐내에서도 토방한증을즐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막(幕)이란 DOME모양 또는 첨성대와 같은모양으로 내경 6.30m, 높이9.50m, 벽두께1.20m로된 황토와 구들돌과 소금과 견치석으로된 구조물로서 한단 한단 쌓아올린 구조물인데 높이와넓이를 가감한 계산에 의한열저장전도율이 효과적으로 발생한다네요.

‘불가마’로 불리는 한증막은 돌로만들어진 돔을 가열한것으로 두꺼운 가운이나 거적을쓰고 들어가지요

온도가 70∼130도에 달하기때문에 사우나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눈 피부 머리카락등이 손상 받을수 있답니다.

실내가 엄청난 고열이기 때문에 한번에 10분 이상 머무르지말고,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발에 통증이 느껴질때는 즉시 중단해야합니다.

한증막에는 한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습니다.특히 한증막은 모두 여성 전용이이라네요. 

어느분이 인터넷에 올린 수리산 한증막 이용에 대한 글을 보니 

힌증막은 입장료 만원을 내면 타월과 가운을준다. 타월도 넉넉하게 주니까 타월 안가져와도되지만, 오래 다닌 사람들은 개인타월과 가운, 슬리퍼까지다챙겨가지고 다니는사람도많단다.

여기까지는 찜질방과 별차이가없지만,여긴남성출입금지구역이란것이다르다. 모든 한증막이그렇단다. 여자들만을 위한 치료겸 휴식공간이란 곳.

방이 여러개가 있는데,각기 배정받은 방의 매트중 하나씩 차지하면 된다. 방마다 대형TV 한대씩 놓여있지만, 보는 사람은 거의없다.

한증실 안의 입구는 좁고낮다.허리를 숙이고들어가야한다.가마안은 그야말로 오래돼서시커먼 구들돌과 황토로된 울퉁불퉁한 바닥에 가마니를 깔아놓은 경사진 뜨거운동굴이고, 솔향기가 진동을 한다

나는 옷 입고,양말도 챙겨신고, 가마니 뒤집어 쓰고 들어갔는데, 그것도 오래 못버티고 2-3분정도 앉아있다 나오고 하는길 4번 정도 했다. 그후 가마문을 닫았다가 새로 불때고 난 직후에 마지막으로 들어갔는데,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자 마자 바로 뛰쳐나왔다.

여자들은 참 용감하다. 그 뜨거운 가마속을 가마니를 뒤집어 쓰지도 않고,가운 하나만 걸친맨몸으로 앉거나 드러누워있으니 다들 도닦는사람들로 보였다.

진짜 뜨거운걸 즐기는 마니아들이다.

한증원안에서는 별별걸 다판다.

준비물 하나없이 돈만 가져가면 필요한걸 다살수가 있는거다.이것말고도양품코너도있고, 샤워실에는 비누랑 기본스킨로숀등도 다비치되어있다.-수리산밑밭에서직접 재배한땅콩과 깨도 팔았다.

가마안의여자들한테 찜질방과 한증막의 차이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기본적인 시설이야찜질방쪽이 더넓고 깨끗해보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찜질방은 전기로 단숨에 사우나를덥히는거라서 나무를 때서 오랜시간 가마를 달구는 이전통한증막과는 비교가 안된다고들말한다.

거기다더중요한건 한증막이란 우리나라만의전통식사우나방법이고, 금남시설이란것. 오로지여자들만이다.난 한증막하면 나이든여자들만가는곳인줄알았는데, 의외로 젊은여자들이많았는데,게중에는 어린아이를 데려온엄마까지있었다

한증막 뒤로는 야외 휴게실이다. 비오는날 여기 앉아있으면 도심아파트에서는 들을수 없는, 지붕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을수있고 편하게 비를 바라볼수있어 너무 좋다.

예전에 한증막 한번가면 아침에 갔다가 밤중에야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10시간까지 허용이된단다. 그야말로 하루종일 한증을 할수있단 얘기다.

우리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한증막을 좋아하신걸까? 삶의 고단함을뜨거운열기로풀어내려던것이었을까. 한증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자주 찾는곳이 한증막이랍니다.

이런 전통한증막을 문화관광상픔으로 활성화시켜도 좋을듯 싶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술수리산 지락 깊숙한 곳 까지 원룸들이 들어서는등 개발의 바람이 블어닥치면서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네요. 

이미 수리산 세곳 한증막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연륜이 가장 오래된 수리산한증원(병목안시민공원 아래)이 언제부터인가 영업을 중단했더군요..




[20190903]안양 비봉산 자락에 자리한 망해암입니다

안양지역명소/문화관광


2019.09.01/ #안양 #망해암 #비봉산/ 안양2동 양명여고 운동장에서 본 모습./ 

망해암(望海庵)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241-54번지 관악산 끝자락인 비봉산 동남기슭에 자리한 조계종 사찰로 현재의 모습은 절벽위에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작은 면적의 대지위에 목조 골조에 기와를 얹은 아담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자리를 잡았었다.

근래 들어 적지않은 절들이 대규모 불사를 하고난후 OO암을 OO사로 부르기도 하는데 안양시내에서 보였던 과거의 망해암은 커다란 암벽위에 아담한 건물이 올라앉아 새벽녘 예불시 종소리가 안양읍내에 전해지고 밤이되면 은은한 불빛이 절을 밝혔던 그야말로 고즈녁했던 모습이었다. 

1986년에 새워진 <안양망해암사적비>에 따르면 망해암은 신라 문무왕5년(665)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것은 1940년대에 쓰여진 <봉은본말지>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원효 창건설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근거는 없다. 망해암이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조선 태종 때의 일이다. 태종은 한양의 풍수적 균형을 위해 사방에 절을 지었는데 이 때 망해암도 중수되었다. 망해암의 창건은 관악산의 연주암처럼 기암괴석 틈바구니에 옹색하게 지어진 지형적 특징으로 볼 때 드센 기를 누르고 취약한 부분을 치료하기 위한 비보사찰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내 <안양망해암사적비>에는 또 세종 때의 미륵불에 대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거두어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八尾島)를 지나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어 배들이 전복될 위기에 처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당황한 선원들이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할 때 홀연히 스님 한분이 뱃머리에 나타나 선원들을 안심시키고 스님의 인도로 무사히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풍랑도 잠잠해지고 안정되자 목숨을 건진 선원들은 ‘대사님은 어느 절에 사십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스님은 ‘관악산 망해암에 있노라’하고 또 홀연히 사라졌다. 선원일행은 한강까지 무사히 도착한 후 생명의 은인이요 신통자재했던 스님을 찾아 망해암에 올랐다. 하지만 스님은 보이지 않고 다만 스님과 용모가 비슷한 미륵부처님 만이 법당에 모셔져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크신 자비와 신통력으로 자신들이 살아났음을 깨닫고 곧 왕에게 상소하여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왕은 크게 탄복하여 매년 한 섬씩의 공양미를 불전에 올리도록 했으며 이것은 이후 400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전설은 미륵불의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이며 다만 전설을 통해 태종 이후 조선 왕실과 인연을 갖고 망해암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설이외에 조선중기 이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다만 순조3년(1803)에 홍대비(洪大妃)가 재물을 내어 중수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홍대비는 혜경궁 홍씨를 말하는 것으로 사도세자의 부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으로 꼽히는 혜경궁 홍씨가 절을 중창한 것은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달래기 위함이라고 보인다. 이후 철종14년(1863)에 대련(大蓮)주지스님이 중창하였고 1922년에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26년에 법당과 요사채를 중건했다. 1939년에는 용화전을 중건하고 1940년에는 대방을 중수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또다시 전소했다. 그래서 지금의 건물들은 6.25이후에 모두 새로 중창한 것들이다. 1973년에는 보경스님이 대방을 증축하고 도량을 일신해 암벽위에 콘크리트 건물로 대형 건물을 지었다.

절은 전체적으로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서향하고 있다. 현재는 차량으로 오르기 때문에 절 뒤쪽이라고 할 수 있는 동쪽에서 진입한다. 망해암의 주전은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다. 미륵전은 6.25 직후인 1952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인데 당시의 어려운 사정을 반영하듯 규모도 작고 부재의 쓰임도 열악하다. 전면에만 조각한 살미부재를 사용해 장식했으며 나머지 삼면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팔작지붕이지만 웅장함과 화려함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미륵석불입상을 모셨는데 가슴 이하는 마루 밑에 묻히고 그 이상만 나와 있다. 얼굴과 몸은 하얗게 회를 발랐는데 특히 얼굴은 두껍게 발라 석불의 느낌이 전혀 없고 미륵불의 소박하고 투박한 맛이 사라졌다. 머리에는 둥근 두관을 썼는데 검은색 칠을 했다. 석불의 높이는 223㎝인데 지금은 극히 일부분만 노출되어 있다. 장기적으로는 건물을 헐고 원래 모습처럼 야외에 노출된 미륵석불로 중창불사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용화전 바로 앞에는 3층으로 된 콘크리트 건물의 설법전을 두었다. 197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용도는 대방이었다고 한다. 대방은 경기도 사찰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왕실이나 귀족들의 원찰에서 왕실이나 귀족들이 절을 찾았을 때 기도하는 건물이다. 대개 불전 앞에 지으며 불전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미륵전 서북쪽으로는 정면3칸, 측면1칸의 맞배집으로 지은 삼성각이 있으며 그 앞에 석탑과 사적비가 놓였다. 미륵전 남쪽으로는 서향하여 정면3칸, 측면2칸의 규모가 작은 맞배건물로 관음전이 놓였으며 그 남쪽으로 인접하여 사방 단칸의 범종각이 있다. 관음전과 범종각 앞쪽, 즉 서쪽으로는 민가풍의 선실과 객실이 놓여 선방과 요사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건물들은 대개 바위 암반을 활용해 경사지에 옹기종기 놓였으며 건물들 앞으로는 최근에 마당을 만들고 마당 앞쪽에 정면8칸, 측면2칸의 우람한 누각을 새로 지었다. 이곳은 현재 종무소로 쓰고 있는데 규모가 절을 압도한다. 중창불사 계획도를 보면 앞으로 설법전과 관음전, 요사채 등을 헐고 정면3칸, 측면3칸의 대형불전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중창불사의 일환으로 대형 누각건물을 근래에 지은 것이다. 

망해암은 1950-70년초 놀러갈만한 곳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당시에 안양사람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산보 코스로 구시장에서 안양천 가운데 삼각주으의 미루나무숲길을 지나 또는 안양역에서 철길을 넘고 안양천을 건너(줄배 또는 나무다리) 지금의 양명여고 뒷쪽으로 해서 매점에서 과자, 사이다 등 간식을 구입해 올라갔는데 이 코스는 현재 산업도로옆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또 다른 코스는 비산사거리에서 임곡마을 지나 아스팔트가 깔린 1차선 길을 오르면 되는데 대림대학 정문을 지나 마을길을 따라 계속 가다가 마을이 끝 날 때 쯤 부터 산길로 약 2㎞정도 오르면 된다. 소형차는 망해암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산행삼아 관악산의 수려한 경관을 즐기며 2㎞ 정도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망해암에 오르면 안양원도심과(만안구) 서을 금천구와 더불어 예전에는 멀리 인천 앞바다가 보였는데 요즈음에는 인천 송도 신도시의 초고층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인다.

[군포]수리산의 술 주조하는 가양주작(2019.08.28)

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군포 #동네 #마실 #골목 #가양주작 #술 #막걸리 #대야미역 #수리산막걸리 #수암주 #알로이/
가양주작은 우리의 술, 막걸리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직접 주조하는 곳, 그리고 막걸리를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막걸리 커뮤니티를 통하여 못다한 이야기를, 못다한 노래를 이곳에서 나눕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가양주작입니다.
가양주작을 주간 무인까페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5가지의 커피와 에이드 음료를 선택하실 수 있으며 50여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홀과 10여명이 함께 하실 수 있는 모임방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철역을 바라볼 수 있는 전면창이 있어 스카이라운지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또 마을청년들이 운영하는 갤러리도 함께하고 있어 매달 새로운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가양주작은 4호선 대야미역앞에 있습니다.

대표 전화: 070-4117-7755
문자 주문: 010-8411-8958

 

 

가양주작의 출발
가양주작은 마을공동체의 텃밭인 대야미마을협동조합의 성인동아리로 출발해서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경제사업의 일환으로 양조장을 열게되었습니다.

01. 술술 풀리는 마을 공동체
가양주작은 마을공동체의 텃밭인 대야미마을협동조합의 성인동아리로 출발해서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경제사업의 일환으로 양조장을 열게되었습니다.
- 2014년 마을협동조합(조합원 90명)설립. 반찬사업, 교육나눔, 동아리활동 시작
- 이주민이 주도한 마을공동체 활동은 토착주민의 참여요인과 소통기회가 없었음
- 원주민 참여 없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냉소와 선입견을 해소할 방안으로 마을주막 선택
- 조합 수익사업인 반찬사업 실패 후 우리 마을에 적합한 대안적 경제사업 모색

02. 가양주작 사람들 소개
마을협동조합원 16명과 도시농부학교, 귀농운동본부, 생협활동가, 종이공예, 옷칠장인등 7명, 총23명의 출자에 의해 설립되어 졌습니다.

 

술&안주
가양주작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는 ’수리산 맑은물쌀’과 우리밀 누룩만으로 빚어냅니다. 7일간 발효하고 손으로 짜낸 술에 절반의 물만 가수하고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않아도 진하고 풍부한 맛을 냅니다.

 

막걸리주조
가양주작은 2016년 2월 주세법 개정을 통한 ‘하우스막걸리’ 제도화 이후 전국에서 처음 설립된 하우스막걸리 전문점입니다. 현재 탁주와 약주제조에 대한 면허를 취득하였고 리큐즈제품이 2019년중 면허취득을 받아 출시돼 시판되고 있습니다.

 

가양주작 홈페이지
http://가양주작.com/

 

가양주작 너구리쉐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gkatptkd

 

 

 

 

 

[20181107]천년역사공원 삼층석탑 보물 제5호에서 강등된 사연

안양지역명소/문화관광

 

2018.11.05/ #파노라마 #둥근원 #안양 #안양예술공원 #안양사지 #천년역사공원 #삼층석탑 #문화재/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안양사지이자 안양박물관&김중업건축박물관, 이른바 천년역사공원 정문옆에서 만나는 석탑. 2.3층의 탑신이 없어 한눈에 보아도 무언가 균형이 맞질 않는 모양새이지요. 이 석탑은 현재 이 탑이 서 있는 곳에서 동북쪽 80미터 지점(안양박물관 건물 동쪽 끝자락) 에 도굴된 채 무너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랍니다.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1934년 8월27일 조선총독부가 맨처음으로 조선의 보물 153건과 고적 13건, 천연기념물 3건을 지정할 때 ‘보물 제7호’의 지위를 얻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요.
광복후 우리 정부는 1963년 문화재 등급제도를 정비하면서 보물 제5호로 재조정함에 따라 국가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누렸으나 1997년 문화재관리국은 일제강점기 지정한 문화재 503건을 대상으로 명칭·등급·종별 등을 재검토했는데 이때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검토대상에 올랐지요.
당시 재평가에서 삼층석탑은 연대가 훨씬 떨어지는 고려 중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했지요. 게다가 탑신 일부가 없어 조형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물급’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지요. 결국 삼층석탑은 경기유형문화재 제164호로 격하되었지요. 이에 현재 국가문화제 보물 제5호는 영구 결번으로 비어 있답니다.

[20181107]천년역사공원 보물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

안양지역명소/문화관광

 

2018.11.05/ #파노라마 #360도 #안양 #안양예술공원 #중초사 #안양사 #중초사지당간지주 #보물4호/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안양사지이자 안양박물관&김중업건축박물관 정문옆에서 만나는 돌기둥 2개. 국가보물 제4호로 1200년이란 시간의 깃든 중초사지 당간지주(통일신라)이지요. 당간지주라 불리는 이 돌기둥은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걸어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매다는 장대[竿]를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라 흥덕왕 1년(826년)에 만들어진 이 당간지주가 특별히 주목을 받는 까닭은 바로 두 개의 지주 가운데 서쪽 지주의 서쪽 면에 123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보력 2년(신라 흥덕왕 1년 826년) 병오년 8월 6일 신축일에 중초사 동쪽 승악(僧岳: 삼성산의 신라 때 이름으로 추정)에서 돌 하나를 나누어 둘을 얻었다. 같은 달 28일에 두 무리가 시작하여, 9월 1일에 함께 이곳에 이르고, 정미년(827년) 2월 30일에 모두 마쳤다. 절주통(節州統: 승려의 최고 직인 국통 다음의 지위)은 황룡사의 항창화상이다.”
이 명문을 통해 이 당간지주가 세워진 연대, 중초사라는 이 절의 이름, 경주 황룡사와의 관계, 황룡사의 항창화상이라는 당대 신라의 유명한 승려를 알 수 있다. 덧붙여 당간기에는 신라식 속한문을 혼용한 곳이 있어 고대국어사 연구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4년 8월27일 조선총독부가 맨처음으로 조선의 보물 153건과 고적 13건, 천연기념물 3건을 지정할 때 ‘보물 제6호’의 지위를 얻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요.

광복후 우리 정부는 1963년 문화재 등급제도를 정비하면서 보물 제4호(1963.01.21 지정)로 재조정해 국가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했으며 1997년 문화재관리국이 일제강점기 지정한 문화재 503건을 대상으로 명칭·등급·종별 등을 재검토했는데 이때도 당간지주로서는 아주 드물게 통일신라시대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국가 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먼저 보물로 지정된 것이랍니다.
한편 중초사지 당간지주 옆에는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2.3층의 탑신이 없어 한눈에 보아도 균형이 맞질 않는 모양새이지요. 이 석탑은 현재 이 탑이 서 있는 곳에서 동북쪽 80미터 지점(안양박물관 건물 동쪽 끝자락) 에 도굴된 채 무너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랍니다.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1934년 8월27일 조선총독부가 맨처음으로 조선의 보물 153건과 고적 13건, 천연기념물 3건을 지정할 때 ‘보물 제7호’의 지위를 얻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요.
광복후 우리 정부는 1963년 문화재 등급제도를 정비하면서 보물 제5호로 재조정함에 따라 국가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누렸으나 1997년 문화재관리국은 일제강점기 지정한 문화재 503건을 대상으로 명칭·등급·종별 등을 재검토했는데 이때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검토대상에 올랐지요.
당시 재평가에서 삼층석탑은 연대가 훨씬 떨어지는 고려 중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했지요. 게다가 탑신 일부가 없어 조형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물급’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지요. 결국 삼층석탑은 경기유형문화재 제164호로 격하되었지요. 이에 현재 국가문화제 보물 제5호는 영구 결번으로 비어 있답니다.

 

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28.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

http://www.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514400

경기일보(2018.08.30)

 

[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46> 중초사지 당간지주

https://news.v.daum.net/v/20100817210311961?f=o

한국일보(2018.08.17)

 

[탐방]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中初寺址 幢竿支柱), 삼층석탑 의 안양사지  

http://www.seoulpost.co.kr/news/28827
서울포스트 양기용 기자 (발행일: 2014/10/11 23: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