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220107]안양시흥 근대인물-동아일보 신팔도기 132(1978.11.29일자)

이야기보따리/기사

신팔도기 132 안양시흥(4) 동아일보(1978.11.29) 연재

 

수암 담배촌 채석장으로

정재계 비해 문인 적은편

시흥군 수암면 담배촌.

 

이조때 수많은 천주교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몸을 숨겨 담배를 재배하면서 살았다는 마을이 바로 이곳. 그 비극의 옛마을은 지금 황폐한 채석장으로 변했다.

담배와 인연이 먼 기독교 가운데 유독 천주교 계통만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것도 이같은 인연 때문일까.

"담배촌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條理山수리산)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또 잃게도한 곳이에요.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울창한 숲속에 천주교도들이 재배했던 담배밭 흔적이여기저기 남아있었어요 "이곳출신 숙대박물관장 정병학씨(58)의 말이다.

 

6. 25격전지 수리산

이곳은 또 6.25때 국군장병들이 피를 흘린 격전지.

이 산중턱에는 나라를 지키려다 숨진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충혼탑이 있다.

정씨는 농업문제연구회장 숙대 문리대학장을 역임한 학계 원로, 서울 영등포연합병원장으로 있는 정병두씨(58)와는 4촌간, 영화배우황정순씨(53)秀岩面(수암면)이 고향, 그는 인천 박문여고를 중퇴한후 극단 호화선」 「신협등에서 연극생활을 해오다 영화계로 진출, 계속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고있다. 동아일보 교열부차장 최상목씨(44)도 이곳출신.

전국화학노조 위원장을 지낸 박영성씨(47) 나 기업은행 미아 지점장 손홍규씨(47) 기업은행검사역으로 있다가 올해 퇴직한 배정욱씨(51) 서울고검검사를 지낸후 변호사로 있는 이용훈씨(51) (이를 환 숙대교수(53) 등은 남면 출신들. 노기남 대주교(77)도 출생지는 이북平壤(평양)이지만 본적을 이곳으로 옮겨 의왕면이 고향이라고,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성호씨(52)나 인천 지방에서 이름이 알려 진 한염해운사장 문순모씨(67)도 같은 고장 출신.

"안양 시흥 지방에 재계나 정계인사들은 비교적 많지만 문인들은 없는 편입니다. 요즘 우리 또래 젊은 사람들이 창작활동을 해보려고 애는 쓰고 있습니다" 안양시가를 작사한 이곳 토박이 시인 김대규씨(38)의 말.

 

옛날 이고은 기개넘치는 문인들이 많기로 이름났던 곳.

폐수) 흐르는 安養山(안양천)

고려때 (강사상) 이조의 이원익 조석윤 등은 이 지방 사람들이 자랑하는 선인들, 특히 조석윤이 응교(應敎() 벼슬에 있을때 선조에게 상소문을 낸 것이 왕의 비위를 거슬리게해 조정에서 문장을 고치도록 어명을 내렸으나 그는 "죄를 받을지언정 문장을 고칠수는 없다"고 거절한 얘기는 지금도 이지방 문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일화.

안양 출신 국가대표 수영선수 남상남(31) 남상필(26) 남매도 신, 이를 남매는 2년전에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곳 유지들은 "(안양이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고 자랑이다. 서울의 공해 공장 지방이전권유에 따라 어제의 산은 하루아침에 공장부지로 변해가고 있다. 과연 자랑만 하고 있을때일까.

관악(청계 수리 삼성산의 울창한 숲으로 물이 마른적이 없다던 安養川(안양천)도 이젠 시커먼 공장 폐수로 죽은지 오래다. "죽어가는 안양천을 살리자"며 이고장 노장 유지 장배근씨 박경재 씨 등 20여명이 담수회를 만든것은 다행한일.

 

(장봉진 기자)

 

[20220107]안양시흥 근대인물-동아일보 신팔도기 131(1978.11.28일자)

이야기보따리/기사

신팔도기 131 안양시흥(3) 동아일보(1978.11.28) 연재

 

중초사 옛터에 돌기둥만 남아

알려진 벌족 坡平尹(파평윤)仁同張인동장)

 

 

이고장 인맥은 관악산과 수리산을 중심으로 나눠진다.

 

관악 수리산 인맥

관악산의 기상을 타고난 안양 과천 서면쪽은 인동장씨와 파평윤씨 집안이 비교적 크게 번창했고 수리산 정기를 받은 수암 군자 남면 등지는 전주이씨 한산이씨 문중들이 번창했다.

인동장씨 문중의 대표적인 인물은 장배근씨(68). 그는 해방후 조선직물을 맡아 공장장으로 있으면서 숱한 고초를 무릅쓰고 공장을 이끌어온 우리나라 초창기의 산업전사. 조선직물은 그후 김성곤씨가 인수, 금성방직으로 이름을 바꿔 크게 번창했었다.

장씨는 지금 안양시 번영회장으로 지역 개발에 정열을 쏟고있다. 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있는 장배순씨(58)는 그의 아우.

 

이곳 파평 윤씨 집안에서는 윤학노씨(65)와 윤승두씨(55)를 친다. 윤학노씨는 자유당때 법관연임법 제정을 반대, 법조계에 화제를 던졌던 용감한 법조인, 그는 결국 한사코 반대하던 이법에 의해 서울지법 부장판사직을 불러나 변호사를 개업했었다.

일제때 안양양조장을 세워 주조계에 이름을 떨친 실업인 윤경섭씨(작고)는 그의 선친. 얼마전에 아버지의 유업인 양조장을 처분한 전안 양양조대표

윤필노씩(55)는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이며 이번에 공화당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게된 윤국노씨(43)는 막내 동생. 윤승두씨는 외환은행 전무, 제일은행장등을 거쳐 지금은 실업야구연맹회장직을 맡고 있다.

 

서면 온사리) (영회원)

파평윤씨 집안이 크게 성한곳은 서면, 이곳 동남쪽 노 온사리에 속칭 아왕릉(王陵)이라 불리는 영회원이 있다.

병자호란때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인 (인조를 친아버지처럼 받들었으나 간신들의 모함으로 사약을 받고 쓸쓸히 숨진 소현세자빈(昭世子)의 무덤이 바로 그것.

윤씨 가문에서 해마다 한두 사람의 효자효녀를 뽑아 표창하는것도 이같은 소현세자빈의 효심을 이어받기 위해서란다.

무송윤씨는 안양쪽에 많이 살고 있다. 서울 동신국민학교장을 지낸 윤경모씨(71)나 전 서울종로 은혜초등학교장 윤형모씨(68) 경희대학 경희여자중고교장을 지낸 윤량모씨(65)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들은 삼형제로 모두 교육계에 40여년 동안 근속, 67년도에 함께 소파상등을 탔던 화제의 주인공들.

이들은 어린시절의 꿈을 중초사(보물제4) 옛터에서 키웠다고, 신라 덕흥왕 원년에 세워진 중초사는 그동안 계속돼온 숱한 병화로 소실되고 지금은 불화(佛畵)를 걸던 두개의 돌기둥(竿支柱(당간지주) 만 외롭게 남아있다.

전주이씨도 이곳 명문

全州李(전주이씨 집안은 농어촌개발공사 사장으로 있는 이재현씨(52) 집안이 알려졌다.

동양화재 보험 중역을 지낸 이재명씨(70)는 그의 맏형. 둘째형 이재철씨(63)는 미국에 있는 아들집에 가있고 세째형 이재순씨(57)는 한때 대림산업 부사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경남 합천에서 목사로 재직중. 같은 전주이씨며 산본리가 고향인 이재형씨 집안과는 4촌간.

삼성물산 상임감사로 있다가 4년전에 대림산업 사장으로간 이서구씨(55)나 서울전매청장으로 있다가 퇴직, 풍림산업회장이된 이면훈씨(69), 대림산업 사장 이정익씨(58) 수원기독병원장 이정환씨(50) 등도 시흥 출신 전주이씨.

66년도까지 체신부차관을 지낸후 최근에는 신풍기업회장으로 있는 이진복씨(66)와 한국생산성본부 이사장 이은복씨(56)는 군자면이 고향인 한산이씨 문중의 인재를,

성모병원 윗과과장 이용각씨(54)도 안양이 고향, 그는 아버지 이형래씨(76)가 이북에서 피난와 이곳에서 삼성병원을 개업, 정착하면서 고향이 됐단다.

(장봉진 기자)

 

[20220107]안양시흥 근대인물-동아일보 신팔도기 130(1978.11.27일자)

이야기보따리/기사

신팔도기 130 안양시흥(2) 동아일보(1978.11.27) 연재

 

안양포도밭 점차 주택가로 변모

관악의 정기받아 따뜻한 성품

관악산은 안양과 시흥 지방의 상징, 숱한 전설이 얽혀있는 이 산은 악산이면서도 경기 5악중의 하나로 꼽히는 명산.

옛 사람들은 이산을 왕도남방지화산이라 일러 쳐다보기조차 꺼려했단다. 서울 광화문앞 양쪽에 놓여있는 해태석상도 이 산(관악산)의 불기를 제압한다는 뜻에서 만들어 세운 것.

 

부호 6대 박경재 씨

안양 부호로 알려진 박경재씨(58)의 고향이 이산 아래마을인 시흥군 과천면, 그는 고향사람들에 대한 성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冠岳山(관악산)의 정기를 받은 안양 시흥 사람들은 모두 어질고 부지런합니다. 특히 (과천) 사람들은 불처럼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고들 하지요"

 

 

안양과 시흥에서 삼원 화단 등 두개의 극장을 경영하고 있는 박씨는 어릴때부터 잡화상 화신연쇄점 운수업 등으로 아버지 박준업씨(작고)가 불려준 재산을 늘려 지금까지 6대째 이지방 토착 부호로 군림(?)하고 있다고,

숨은 재산가로 알려진 박윤재씨(56)나 정미소를 경영하면서 안양) 시흥 등지에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는 박완재씨(54) 등은 그의 4촌아우.

이 지방출신 실업가로는 대림그룹 회장 이재준씨(52)를 빼놓을수 없다. 이씨는 형 이재형 씨와 함께 해방후 대림산업을 일으켜 처음엔 부사장으로 있다가 63년에 사장으로 취임, 오늘의 대림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인.

대림통상 대표 이재우씨(50)는 그의 친동생, 럭키콘티넨탈 사장 이재연씨(49)는 그의 막내아우.

안양유원지에 풀장을 차려놓고 관광개발에 정성을 쏟고있는 권용식씨(57)도 이 고장 토박이 실업인,

 

재벌급인사 많아

"안양시흥 출신들중에 재벌급 인사들이 많은것은 수도권이라는 특수여건 때문에 기업 운영이 유리한 점도 있긴하지만 서울사람보다 잘 살아보겠다는 집념이 강하다는 이유도 있을겁니다"(권씨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서울 관악구 정도의 크기인 총면적 58.14평방km 밖에 안되는 비좁은 안양시내에 크고 작은 공장들이 184개나 있다.

더우기 이 작은면적 가운데 임야 농경지 등을 빼고나면 공장부지나 주거지역은 고작 9평방km.

 

만안교가 정조가 부왕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놓았다는 바로 (관악유원지 입구에 있다.

왕의 능행이 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만안)라고 이름 어졌다는 이 은 산업도로로 말끔히 포장돼 처음 찾는 사람들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지경.

시흥 출신 재벌급 인사로는 대연각호텔 사장 극동건설 회장 등을 겸하고있는 김용산씨(55) 도친다. 그는 소래면이 고향.

일제때 오키네농장을 경영,시흥 농토 절반 이상을 갖고 있었다는 안정호씨(작고)는 이고장에 신화를 남긴 만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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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하면 포도를 연상했고 포도,하면 오키네농장을 연상할이만큼 많은 포도밭과 목축업을 경영해 왔다는 그가 썩은 포도알 한개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는 얘기는 이지방 사람들의 좌우명으로 통한다.

 

오키 목장도 옛말

 

그처럼 넓고 크던 오키네목장도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공장부지나 주택지로 흡수돼 지금은 옛규모를 짐작조차 할길 없다.

군자면에서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는 전 시흥군 축협조합장 정규창씨(63)나 남면에서 역시 양조장을 하고있는 유지연씨(52)도 상당한 실력자. 유씨는 오랫동안 면장을 지냈고 마을금고 시흥군지부장, 반공연맹 지부장등을 지낸 이 지방 유지.

 

이밖에 안삼영씨(45·철산개발대표) 이송학씨(42·약사회장), 최승권씨(50.광명개발대표),한문복씨 (60- 광명시장 대표) 등은 광명출장소지방에서는 알려진 기업인들.

새한항공대표 김해경씨(42)는 과천면, 한국노총부위원장 김병룡씨(47)와 농협단위 조합장 원의송씨(43)는 서면), 재향군인회 시흥부회장 이준기씨(44)는 남면이 고향.

오랫동안 면장을 지낸 박흥용씨(51.수암면)나 역시 농협단위 조합장을 지낸 민찬기씨(57·군자면) 부천농협조합장을 지낸 구경회씨(43 소래면)등도 이 지방에서는 알려진 사업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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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택 기자)

 

[20220107]안양시흥 근대인물-동아일보 신팔도기 129(1978.11.22일자)

이야기보따리/기사

신팔도기 129 안양시흥(1) 동아일보(1978.11.22) 연재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서울생활권

외지인 늘어 토박이는 5%정도

 

노도처럼 밀려오는 오랑캐들. 이들에게 집과 세아들을 송두리째 잃은 [다지기] 할머니는 40리 한양길을 단숨에 달려가 신립장군에게 다음과 같이 아룀

"장군님, 삼천을 헤아리는 오랑캐들이 우리 고을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필시 피로에 지쳐 오늘밤 곤하게 잠들 것 같소이다. 이기회를 놓치지마시고 놈들을 몰살시켜 주십시오"

(호병 물리친 전승지)

 

한참동안 할머니의 말을 듣고있던 장군은 이렇게 명령했다. "그럼 오늘 자정에 늠들을 칠것이니 할멈이 오랑캐 진지로 들어가 그들이 잠들었는지를 알려주시모, 잠들었으면 다지기야, 그렇잖으면 더지기야라고 중얼거리시오"

 

다지기할머니는 명령대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 다지기야, 하고 암호를 보냈다. 신입 장군은 삼천 호병을 기습, 단칼에 쳐부쉈다.

 

1583(선조16) 니탕개(尼唐介)를 중심한 여진족들이 일으킨 니탕개란때의 이야기. 이곳이 바로 시흥군 수암면 조남리. 지금은 여기를 삼천병마골이라 한다.

여기서 남 산본리로 통하는 길목엔 피올리고개란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떼죽음당한 삼천병마에서 피가 홀러 이고개를 넘었다해서 붙여진이름.

아스팔트길로 확트인 이 고갯마루에는 피빛으로 붉게물든 도토리나무잎이 초겨울 햇빛에 타고있다.

 

안양 시흥을 통틀어 대표적인 인물로 통하는 이재형씨(64)의 고향이 바로 이곳.

"안양은 원래 시흥에서 떨어져 나갔어요. 그래서 안양사람과 시흥사람을 구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그리고 이고장 사람들의 기질은 좀 반골적인데가 있고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단결심이 약하다는 평을 간혹 듣기도 하죠"

 

저항적인 (기부) 지녀

일본중앙대 법과를 나와 고향 시흥에서 금융조합에 취직, 부장 참여 고문직을 지낸 그가 30대 초반에 제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2, 4. 5. 7대의 야당의원으로 신민당 부총재직까지 맡은 야당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것도 이같은 저항적인 반골 기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방후 이범석장군과의 친분으로 이고장에 족청세력을 심어 정계에 투신한 그는 자유당 정권때 상공부장관은 역임하기도 했으며 대림산업을 일으켜 우리나라 건설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자유당 공천을 받고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이영섭씨(80)도 피흘리고개 출신.

 

신민당 공천으로 8, 9대 국회에 진출한 이택돈씨(43)는 수암면 고기리 출신.

그는 인천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 스물다섯살에 판사로 임관된 후 서울고법에 근무하다 71년도에 정계에 투신, 신민당 대변인을 거친 소장 야당정치인.

공군참모장 대한중석 사장을지낸후 9대 국회의원이된 김창규씨(58·유정회)는 군자면 출신,

협동비닐 사장으로 있으면서 이번에 있을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공화당 공천 받은 윤국노씨 (43)는 안양1동이 고향이다.

 

안양은 10년전만 해도 인구 겨우 6만이던 것이 지금은 18만을 넘어섰고 시흥군은 해방후 많은 면적을 서울 안양 등지에 빼앗겨 한때 존폐설까지 나돌았던 곳. 그러나 요즘은 정부 제 2종합청사. 서울대공원.반월공단 등이 조성되어 하루하루 서울과의 그 거리가 좁혀져가고 있다.

또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교통 문화 교육 소득 등 서울과 별로 다른것이 없는게 특색,

서울 인천 수원으로 연결된 수도권전철과 산업도로는 이 지방을 서울생활권으로 흡수시키고 있다.

 

서울 충청 사람 많아

 

한가지 특기할것은 주민 80%가 서울 忠南(남북) 全南北(전남북) 등지 사람들이라는 것. 나머지 20%(경기)도내 다른 시군 출신들을 빼고나면 순수한 토박이는 5%정도.

시정 자문위원으로 지역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변원신씨(45)나 동양나이론 사장으로 있는 장석재씨(41) 서일주유소 대표 한근이씨(47), 동덕개발 전무 임정조씨(39) 시정자문위원을 지낸 이병도씨(61). 그리고 한남기업 대표 이한승씨(43), 신일건재 사장 김정묵씨(40) 등은 이고장에서 알려진 토박이 유지. 삼덕제지 총무과장으로 있는 이영우씨(37)나 약사회장직을 맡고있는 가재춘씨(35), 젊은 사업가로 통하는 반공연맹 지부장 권수창씨(35) 등은 청년층에 비교적 크게 알려진 인물.

(장봉진 기자)

 

[20210214]경인일보, 기후위기 빙산의 일각

이야기보따리/기사

[좋은 기사를 소개합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아주세요
한반도 덮친 북극의 비명

환경위기에 따른 위험도가 커질수록 12시에 가까워지는 '환경위기 시각'은 '오후 9시47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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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경인일보, 코로나가 바꾼 일상 '동네를 다시 보다'

이야기보따리/기사

[좋은 기사를 소개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멀리 있는 대형마트에 가기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거나 집 근처 가게를 찾았다. 여름 휴가도 가깝고 한적한 곳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도시에서 눈을 돌려 가까운 곳에 있던 우리 지역 명소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지자체 역할도 실감하게 됐다. 매일같이 울리는 재난문자, 각 자치단체마다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보건소와 공공의료원 등은 우리가 그간 잘 알지 못했던 로컬을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 재난이 닥치니 지원도 진료도 소비도 마을에서 이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로컬의 재발견'이다.

 

 

경인일보 : [코로나19-로컬의 재발견·(1)로컬의 변화]코로나가 바꾼 일상 '동네를 다시 보다' (kyeongin.com)

 

[코로나19-로컬의 재발견·(1)로컬의 변화]코로나가 바꾼 일상 `동네를 다시 보다`

멀리있는 마트대신 근처가게로주거기능 탈피 `생활터전` 주목지역 농산물 `로컬푸드`등 인기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멀리 있는 대형마트에 가기보다 온라인으로 물건..

www.kyeongin.com

 

경인일보 : [코로나19-로컬의 재발견·(2)로컬의 가치]위기때 더 빛났다 '지자체의 존재감' (kyeongin.com)

 

[코로나19-로컬의 재발견·(2)로컬의 가치]위기때 더 빛났다 `지자체의 존재감`

`정부 손길` 안닿는 극저신용 등 틈새지원사는 곳 따라 다른 기본소득 `소속감` 확인코로나 정책 대다수가 `지방정부 손` 거쳐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가 그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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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 [코로나19-로컬의 재발견·(3·끝)로컬의 미래]텅 빈 인천항크루즈터미널… '지역 인프라'에 주어진 숙제 (kyeongin.com)

 

[코로나19-로컬의 재발견·(3·끝)로컬의 미래]텅 빈 인천항크루즈터미널… `지역 인프라`에 주어

국내 최대 규모 불구 `개점휴업`"시스템 앞세운 위기 극복 관건"체육시설 등 전반적 논의 시급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역 공공인프라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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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광주MBC 특집다큐 건축의시간 8부작

이야기보따리/기사

좋은 건축이란 뭘까...
건축의 사회적역할에 대한 질문!
우리시대의 건축을 이야기한다!
광주MBC특집다큐멘터리 8부작
매주 목요일 밤 10시40분 방송

기획 김민호, 연출 이경찬, 촬영 이경섭, 정형배, 이성근, 윤요한, 조승우, 강상우, 심우일, 작가 박연숙, 박진희, 임현희

건축의 시간[광주MBC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광주MBC가 건축물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건축의 시간'을 방영했는데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의 반향 또한 뜨겁다.

‘건축의 시간’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건축물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시디자인의 구성 요소인 건축물은 그것이 좋은 건축이든 나쁜 건축이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건축의 시간’은 좋은 건축물이 가진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건축물 하나가 멋진 경관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주변의 분위기도 바꿀 뿐 만 아니라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던 삭막한 동네에서 왁자지껄한 모임이 벌어지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버려지고 방치된 작은 마을이 건축물 하나로 인해 지역 명소로 탈바꿈할 수 있다며 건축의 힘에 주목한다. 
팬데믹 시대에 달라진 건축물의 모습도 담았다. 설계 단계부터 동선을 고려해 지어진 건축물부터 언제든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가변형 건축물, 건물 내부에서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 갖춰진 건축물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축물에 대한 방향도 제시한다. 
1편인 ‘수직에서 수평으로’ 편은 수직으로 뻗은 랜드마크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2편 ‘동네를 바꾸는 작은 건축’ 편은 크지 않은 건축물이 바꾼 동네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3편 ‘공감이 사람을 움직인다’편은 기존의 딱딱한 공간에서 탈피해 사용자 중심으로 공간혁신을 한 학교, 사무실, 병원을 찾아가 본다. ‘오래된 미래’를 주제로 한 4편은 버려진 건축물을 문화자원으로 되살려 또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재생건축을 통해 건축물의 가치를 얘기한다. 5편인 ‘지루함과 센세이션’은 도시의 모습을 변주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소개하며, ‘미래건축’을 주제로 한 6편은 환경을 지키는 동시에 첨단 기능을 충족할 건축물과 경제적이고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안전까지 책임지는 미래형 건축에 대해 탐구한다. 7편 ‘건축이 기억하는 것’은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건축물과 함께해 온 사람들을 만나며, 8편 ‘사람을 잇다’ 편은 이웃과 함께 하는 공유공간이 있는 집을 찾아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은 MBC 손정은 아나운서와 배우 강신일이 맡았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이경찬 PD는 “코로나로 바뀐 일상에 맞춰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을 담는 건축물도 바뀌어야 한다”며 “이번 ‘건축의 시간’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건축물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 미래에 맞는 건축의 방향도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예고 [건축의 시간]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1부;수직에서 수평으로 [광주MBC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2부; 동네를 바꾸는 작은 건축 [광주MBC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3부;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광주MBC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 제4부 오래된 미래 광주MBC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5부; 건축이 기억하는 것 [광주MBC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6부; 진화하는 건축 [건축의 시간_광주MBC_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7부; 지루함과 센세이션 [건축의 시간_광주MBC_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2) 건축의 시간 제8부; 사람을 잇다 [건축의 시간_광주MBC_ UHD 특집 다큐멘터리 8부작] - YouTube

 

[기사]마라톤 손기정 1933.10.17 경성운동장-안양 코스에서 세계신기록 냈다(20201110)

이야기보따리/기사

 

마라톤 손기정 1933.10.17 경성운동장-안양 코스에서 세계신기록을 냈다. 1933년 10월 17일 제9회 조선신궁경기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은 처음으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성운동장을 반 바퀴 돌고 출발해 동대문~종로를 지나 경수가도 안양을 왕복하는 42.195㎞(26과 4분의1마일) 풀코스 마라톤에서 마치 중장거리 주자가 뛰는 것처럼 달렸다. 처음부터 이렇게 스피드를 내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했지만 손기정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2시간29분34초로 1위, 남승룡은 2시간31분36초로 2위. 모두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의 자바라가 수립한 2시간31분36초를 뛰어넘는 세계신기록이었다.

 

[마니아리프트]정태화기자
승인 | 2020-11-10 08:00
[대한민국 스포츠 100년](46)마라톤이야기⑦권태하 편지받고 중장거리에서 마라톤으로 바꾼 손기정

http://www.maniareport.com/view.php?ud=20201110075445570818e70538d2_19&fbclid=IwAR3K1UGZtVW46_PHj1HWd2b4a-YWUPBEEhfQXFJEScYojXxWrQH3-LslE8M

 

 

[기사]피로 물든 태극기 60여년 보관한 할머니의 감동 사연(20101226)

이야기보따리/기사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6.25전쟁때 남편이 건네준 태극기 고이 간직


<오마이뉴스>10.12.26 17:28l최종 업데이트 10.12.26 17:28l

최병렬(choipong)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6.25전쟁때 남편이 건네준 태극기 고이 간직

 

   
맹은순 할머니가 60여년 보관해 온 피로 물든 태극기 
  

6.25 한국전쟁 당시 전쟁에 나가는 남편과 생이별을 하면서 건네받은 태극기를 팬티 속에 감추어 오던 한 할머니가 반동가족으로 몰려 집단 처형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서 피로 물들었던 태극기를 보관해 왔던 사연이 60여 년만에 알려져 감동을 주고있다.

안양시는 만안구 박달2동에 '추억의 명화 거리'를 조성했다. 박달2동 주민자치센터가 3400여 만원의 예산으로 마련한 이곳은 안양고 앞과 아파트 주변에 흉물로 방치돼 왔던 150여 미터 옹벽 주변을 도시미관 차원에서 조성한 것으로 지난 24일 제막식을 가졌다.

이곳에는 동양화 8점과 세계명화 25점, 추억사진 9점 등 대형그림과 사진 등 42점이 옹벽과 담자락을 따라 '동양화의 거리', '추억의 거리', '명화의 거리' 등으로 구분지어 조성돼 지역주민들은 물론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특히 그림들을 따라 걷다 보면 안양고 정문 앞 옹벽에 내걸린 그림 속에 피로 얼룩지고, 찟겨져 나간 태극기를 들고 있는 한 헐머니의 사진과 글이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양시 박달2동 주민센터가 조성한 추억의 명화거리 
14살 때부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겪은 할머니의 애국심

 

사진 속 주인공은 강원도 철원이 고향으로 현재 박달2동 지역에 거주하는 맹은순(88세)할머니로 그림 속에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의 애국심이 담겨 있다.

할머니의 사연을 보면 1937년 일제 강점기 당시 14세였던 소녀는 한반도 문양의 자수를 몸속에 간직하다 일본 헌병에 발각돼 고초를 겪었으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모부에 보내져 24살까지 독립운동가들의 편지와 자금이송 등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이후 맹 할머니는 황해도 신천으로 돌아와 25세 되던 해에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이했다. 하지만 결혼 1개월 열이틀만에 6.25 전쟁이 반발했다. 이로 인해 옹진전투때 남편이 속해 있던 국군 부대가 남쪽으로 철수하면서 새벽에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때 할머니는 남편이 건네준 태극기를 팬티 속에 넣어 보관해 오던 중 어느날 반동가족으로 집단 사살현장으로 끌려갔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당시 죽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총검으로 엉덩이를 찔렀는데 그때 흐른 피가 태극기를 물들인 것이다.

맹 할머니는 38세때 안양 박달동에 정착했는데 아직도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태극기를 펼쳐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안양고교 정문앞 옹벽에 부착된 맹 할머니의 태극기 사연 
 

2010년 당시 박달2동주민자치센터 이엽 동장(51)은 "맹 할머니는 기초수급혜택자로 어렵게 사시면서도 애국심이 투철하시다"며 "주위로부터 태극기를 보관해 오고 있는 사연을 전해 듣고 이를 널리 알리는 방안으로 '추억의 명화 거리' 조성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동장은 "할머니의 사연이 청소년들에게는 나라 사랑 정신을 본받는 산 교육으로 전해지고, 50-60년대 박달동지역 주변의 추억의 사진들과 명화들이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되살리고, 도시 미관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사]대우건설 그들은 왜 의왕에 사원아파트를 지었을까(20200629)

이야기보따리/기사

대우건설 그들은 왜 의왕에 사원아파트를 지었을까
뉴스워커(http://www.newsworker.co.kr)

신대성 기자 승인 2011.08.22 12:16 
 
의왕시민은 89년 市로 승격한데는 대우건설이 큰 역할을 했다 믿는다
대우사원아파트 37개동 1138세대, 4~인 기준 5~6천명 인구 유입효과

※글에 도움주신 분들
신창현 전 민선1기 의왕시장(대우건설 OB), 김태희 송도복합단지개발(주)부사장(대우건설 OB), 김동화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대우건설 OB), 김주민 내손라재개발구역 이사, 임신택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대우건설 홍보실 외 다수

의왕시 정비사업현황을 취재(52페이지 참조)하던 중 가장 궁금하게 여겨지는 것이 포일대우사원아파트이었다. 이곳은 현재 대림산업이 재건축을 수주해 현재 의왕 내손 대림e편한세상이 들어선 곳이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사원아파트는 도심지에 건립한다. 출퇴근이 용이하여 업무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압구정동에 사원아파트를 지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 아파트는 지금 대림산업에 의해 리모델링되어 ‘압구정 아크로빌’이라는 고급아파트가 되어 있다.) 그런데 대우건설은 의왕면 포일리에 사원아파트를 지었다.(대우사원아파트가 건립된 때는 84년 4월이며, 의왕이 시로 승격한 때는 89년 1월이었다.) 그것도 1138세대라는 당시로는 메머드급 대형아파트였다. 일개 읍 따위에 이렇게 대단지 아파트를 짓게 된 것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우건설 그들은 왜 의왕읍에 대단지 아파트를 건립했는가

이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기 위해서는 대우건설 출신들을 만나봐야 했다. 이 때 연락이 가능했던 분들이 신창현 전 의왕시장(민선1기)이었으며, 김태희 송도복합단지개발(주)부사장 그리고 김동화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등이었다. 이들 중 신창현 전 시장과 김동화 대표는 의왕대우사원아파트에 직접 살고 있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건네 오는 답은 간단했다. “땅값이 쌌으니까 그곳에 아파트를 지었지” 신창현 전 시장의 말이다. 김동화 대표는 당시 신입사원 시절이어서 잘 모른다고 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내손 라구역의 김주민 이사가 알고 있었다. 당시 이곳은 포일택지개발지구로 1978년부터 개발계획이 나오고 택지개발공사가 이뤄졌다.

당시 포일동·내손동 일대는 배나무 밭이었다. 이곳에 땅을 깎고 평평하고 반듯하게 구획을 정리하는 사업이 이뤄졌다.

포일택지개발사업에 선두에 선 곳이 대우건설이었다. 대우건설은 1차 포일주공 터(지금의 포일자이)를 구획정리하고 2차로 대우사원아파트(지금의 포일 e-편한세상)터를 정리했다. 그 이후 대우건설 계열회사가 지금의 내손 가·나·다·라 지역의 구획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이 의왕 포일동에 대우사원아파트를 짓게 된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앞서 신창현 전 의왕시장이 말했던 것처럼 땅 값이 쌌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당시 택지개발사업이 완료되고 주택건립사업을 했어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곳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선 곳이 없었다. 주택공사에 1차부지인 포일주공은 짓게 했지만, 2차 부지까지 떠넘기기에는 부담이었던 것이다. 이에 택지구획정리를 맡은 대우건설이 총대를 메고 아파트를 이곳에 건립하게 됐다.

대우건설이 아파트를 건립하게 된 시기는 81년부터다. 대우사원아파트가 최초의 주택건립사업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미 81년 12월에 착공하여 83년 4월에 준공을 마친 개포고층아파트(대우라는 이름을 당시에는 쓰지 않았다.)가 최초였다.(자료, 대우건설 홍보실) 그 이후 세 번째로 준공한 아파트가 바로 이곳 포일대우사원아파트다.

사원아파트 개념으로 초대형 단지를 조성한 것은 대우건설이 최초였다. 압구정현대사원아파트는 1개동에 33㎡(10평 남짓) 정도로 800세대를 지은 것이었으니 대규모라 보기 어렵다. 또한 분양이 아닌 임대 형태였으니 이 또한 대우사원아파트와 다르다.

대우건설 직원 대우사원아파트로 이주하다

 

다음으로 당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한 일은 포일대우사원아파트에 임·직원을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신창현 전 시장이 의왕시와 인연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며, 김동화 대표도 이 때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됐다고 한다.

신 전 시장이 이곳으로 옮기게 된 이유는 자연경관이 풍부해 살기 좋았다는 것과 서울역(당시 대우건설 사옥은 서울역에 있었다.)에서 사원아파트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이면 총알택시를 잡아타고 포일리 가자고 해야 한 적도 많았다 한다.)

또 하나는 대우건설이 사원아파트에 들어오는 임·직원들에게는 저리로 융자를 해줘 적은 돈으로도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는 것이 김동화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당시의 아파트가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도 그랬을 것이 아직 젊은 나이에 부동산 가격에 민감해 지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기억하는 것이 입사한지 몇 해가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라 모아 둔 돈이 많지 않았을 것인데 집을 사서 이사한 것을 보니 김우중 회장이 많은 혜택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초저리 융자에 매달 월급받아 갚아가면 됐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그들은 회상했다.

이런 연유로 대우건설은 의왕과 특별한 정을 나누게 되었으며, 의왕시가 시로 승격하기 위한 필수요건인 인구수도 대우건설이 상당부분 역할을 했다고 의왕시민들은 보고 있다.

1980년 통계청 자료 가족당 구성원 기준을 보면 1가족 당 자녀수는 3~7명까지로 평균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포일대우사원아파트에 거주하는 대우건설 직원 또한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원아파트는 포일주공과 달리 큰 평형의 아파트가 건립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소 5천에서 6천~7천명의 대우건설 가족이 이곳에 거주했다는 의견이다. 신창현 전 시장이 민선1기로 당선된 것도 이러한 인연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후 대우건설은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을 겪게 되고 그 사이 2003년에 있은 포일대우사원아파트는 재건축사업의 동반자로 대림산업을 시공자로 선정하게 된다. 이에 대한 아픔으로 인해 2006년~2008년까지 3회 연속 시공능력평가 1위를 달성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대우건설 정창두 남부사업소 지사장).

건설회사가 가지는 일반적인 통념이 본사 주변에서 발생하는 공사수주는 반드시 해야 하며, 회사명이 걸린 건물을 재수주할 때 또한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림산업은 대림아파트 리모델링공사에서 반드시 수주해야 한다는 각오였으며(2006년 대림산업 리모델링 팀장의 말), 코오롱건설은 과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유로 과천본사 인근의 주공아파트 재건축은 기필코 수주해야 한다는 암묵적 목표를 잡고 있다.(코오롱건설 수주기획팀 부장의 말) 대우건설 또한 김우중 전 회장의 혼이 담겨있는 대우사원아파트 재건축사업을 수주하지 못했으니 얼마만큼의 자존심은 깎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우건설은 내손동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대우사원아파트가 있었던 그곳, 그리고 포일택지개발지구의 구획정리 또한 대우건설이 한 이곳에 대우건설의 브랜드 ‘푸르지오’를 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대우맨’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이 의왕시와 남다른 인연을 맺은 것만큼 이번 내손동 재개발구역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대우건설의 자존심이 이곳 의왕에 있기 때문에 2003년 잃은 자존심을 이번에 기필코 되찾겠다는 각오다.

대우건설 그들은 ‘대우맨’이라는 자존심을 가슴에 담고 있다. 우리에게 대우맨은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로 인식된다. 리비아의 악조건에서도 성공적으로 건설을 마무리했던 불굴의 의지처럼 그들 가슴에 ‘대우맨’을 담고 오늘도 현장을 누빈다.

 

출처 : http://www.newswor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