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74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4)/ 삼덕공원에 박두진 시비를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4) 삼덕공원에 박두진 시비를(2008.11.07) 삼덕공원 기반공사를 위해 설치됐던 가림막이 제거되고, 옮겨 심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니, 벌써 마음은 공원길을 걷게 된다. 안양시가 근래 펼친 사업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문화예술 부문이 아닐까 한다. 이들 대부분은 전임 신중대 시장의 재임시에 선포된 ‘아트 시티’ 만들기에 따른 일련의 사업들로서 도심 간판 교체, 공공예술 프로젝트, 만안구 디자인 사업, 예술공원 조성, 문화재단 설립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삼덕공원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한 가지도 이의 제기없이 진행된 일이 없다. 삼덕공원이 특히 그러했다. 공원부지 제공자와의 인간적인 갈등, 지하 주차장 설치를 둘러싼 시민단체들과의 불협화음, 주변..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3)/ 내가 생각하는 ‘안양사람’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3) 내가 생각하는 ‘안양사람’ (2008.11.28) ‘안양사람’ 이라는 말은 곧바로 ‘안양토박이론’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내가 여기 쓰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분법적인 얘기가 아니다. ‘안양사람’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겠다. 첫째는 법적으로 안양시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안양시민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가운데는 주민등록만 안양시에 되어 있고, 실제로는 타지에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주민등록은 타지에 되어 있고 거처는 안양시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법적인 안양시민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법적인 안양시민은 안양에 세금을 내고, 안양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선거때 불거지는 위장전입 문제도 투표권 때문이다. 명예시민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2)/ ‘대동문고’와 ‘전영선’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2) ‘대동문고’와 ‘전영선’ (2008.12.12) 1963년 대학 졸업반 때, 나는 안양여중고에서 아르바이트로 배구코치를 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 어느날, 교문을 들어서려는데 한 젊은이가 상자 판지에 책을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때나 그때나 책을 좋아 했던지라 몇 권을 골라 샀다. 며칠 후에 또 그가 왔다. 책을 또 샀다. 그러기를 몇 차례,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우리는 곧 친한 사이가 됐다. 그가 바로 오늘날 대동문고의 전영선 사장, 그와의 교우는 그렇게 시작됐던 것이다. 45년 전의 일이다. 전영선 사장은 ‘자수성가’보다 ‘입지전적’이라는 말에 더 합당한 사람이다. 전남 영광 출생으로 가정 형편상 중학교 이상의 학업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자, 고학 일념으로 무조건 가출..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1)/ 채만식의 ‘안양복거기(安養卜居記)’

김대규시인의 안양이야기(2008.12.29) 채만식의 ‘안양복거기(安養卜居記)’ 안양은 1960년대 이후부터 급속히 성장·발전한 후발 산업도시지만, 문학의 경우는 이보다 앞선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극작가 이서구(李瑞求), 소설가 이무영(李無影)·채만식(蔡萬植), 시인 박두진(朴斗鎭), 평론가 정귀영(鄭貴永) 등의 문인들이 작품활동을 한 관계로 일찍이 문학성이 높은 지명으로 알려져 왔다. 그들 가운데서 정귀영만 아직 생존해 있지만, 92세의 고령으로 인천의 한 노인병원에서 요양 중에 있다. 위의 네 선구자들이 안양에 남긴 업적 가운데서 문학적 유산으로 기릴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째는 정귀영·박두진 등이 1947년에 ‘안양문학동인회’를 결성하고, 안양 최초의 동인지 ..

[최병렬]안양 박달동 군용지(軍用地) 이야기

안양시 박달2동 삼봉천을 따라 수리산 골짜기 안쪽은 그야말로 산에 둘러싸인 분지같은 곳으로 이곳을 군용지라 부르는데 산악 분지형에 보안 및 방호에 유리하고 시설 배치에 필요한 공간 확보는 물론 주둔지로 적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 이곳에는 모두 12개의 자연 취락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평양육군병기차 안양분창' 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1941년 일본 육군성에 의해 군용지로 강제 수용 당하면서 모두 쫓겨납니다. 시흥현읍지(1899) 능묘조, 시흥군지, 영월엄씨세보(世譜) , 안양시지(安養市誌) 등의 기록을 보면 군용지는 묘자리로도 좋았던 모양입니다. 조선 태종(太宗)의 일곱째 서자(어머니 덕숙옹주 이씨(德淑翁主 李氏)인 후령군 이간(厚寧君 李衦, 1404∼1455)의 ..

[최병렬]안양교도소 이전 추진 과정과 쟁점

안양교도소는 재판이 끝나 형이 확정된 수형자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을 동시에 수용관리하는 시설로써, 법질서 확립을 통하여 사회안정을 도모하고 수용자 자립 갱생을 위하여 보호 관리하는 국가 교정시설이다. 안양교도소의 역사를 보면 1912년 9월 경성감옥이 1946년 4월 마포형무소와 1961년 12월 마포교도소로 개칭되었다가 안양시 호계3동 458번지 일원 396,700㎡에 새 구치소를 짓고는 1963년 9월 3일 안양교도소로 개소했다. 안양교도소 이전 논란은 건축 45년이 지나면서 1995년과 1999년 구조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전체 89동 가운데 44동에서 중대 결점이 나타나자 법무부는 지난 1993년부터 인근 지역으로의 이전을 추진했다. 자료에 따르면 안양교도소는 주거지역 1만2700평,..

[안용승]그때 그 시절, 안양의 산업

경기 시흥군 안양읍 시절인 1950년대부터 1990년대 까지를 중심으로 현재의 안양 산업 변천사를 '그때 그 시절, 안양의 산업' 타이틀로 꼼꼼히 정리한 글입니다. 안양의 꽤 연륜있는 친목 모임인 '가로등회'에서 활동하는 안용승 님이 작성한 것으로 60-70년대 호황을 누렸던 안양의 산업사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그때 그 시절, 안양의 산업 . 예전 안양의 산업과 그에 관계된 일에 대하여 말하려 하면, 많은 시간 자료를 모으고, 이를 토대로 하여야 하나, 이전하거나 폐업하여 그 흔적도 알아보기 힘든 곳이 많고, 자료조차 찾아보기 어려워, 그리 할 형편이 못됨으로 기억에 의존하고, 부족하다 싶은 것은 알만 한 사람 등에게 물어가며 한 것이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년 지나면 아무도 아는 이..

[20170213]군포시장 상인 김용민씨 화재진압 표창

군포 소방서(서장 서석권)는 지난 31일 오전 발생한 군포시장 내 채소가게의 화재를 소화기로 초기 진압하여 시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크게 기여한 유공자 김용민(남/58세)씨에 대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김용민씨는 시장 내의 광명수산을 운영하는 상인으로서, 평소 화재예방에 관심이 많아 상점 앞 기둥에 눈에 잘 띄는 간이소화기함을 만들어 화재 발생 시 누구나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게 했다. 이 날 화재는 가게 내의 종이상자 등 가연물이 쌓여있어 초기 진압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대형화재로 번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으나, 상인의 남다른 화재예방의식이 초기대응의 큰 역할을 했다. 표창을 수상한 김용민씨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고, 소화기를 찾아 허둥댈 수도 있었는데 혹시 모를 화재에 대비해 만들어 둔 소화기함이..

[20170125]조용덕 전 안양시의원, 더민주 중앙당 부대변인 임명

안양시의회 3‧4대 시의원과 안양시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조용덕 한국평생교육중앙회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받음에 따라 중앙 정치 무대에 본격 데뷔했다. 조용덕 이사장은 25일 전화통화에서 “어제(24일) 중앙당 부대변인으로 임명장을 받았다"며 "조만간 있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통해 정권교체를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소통의 역활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한양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하고 경기도안양시의회3‧4대시의원, 열린우리당안양지역위원회위원장, 김진표 경기도지사후보 수행비서실장, 안양시 청소년육성재단대표이사, 경기도청소년재단협의회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평생교육중앙회 이사장과 한세대 사회복지행정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

[20170104]주택가 화재 막은 용감한 의왕시민 '김태원씨'

한 시민의 기지로 주택가에서 대형화재로 번질 뻔한 화재를 초기에 막아 화제다. 4일 의왕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3시경 의왕시 내손동에 있는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지하부터 옥상으로 올라오는 배연덕트에 연결한 벽난로에서 불을 지피다 연통 안쪽에 붙은 기름 찌꺼기에 불이 붙은 것. 화재가 발생하여 연기가 자욱해지자 옆 건물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던 김태원씨와 그의 부인 전령숙씨는 즉시 119에 신고를 하고, 소화기를 들었다. 연기 때문에 정확한 화재장소를 찾기 어려웠던 김씨는 건물로 들어가 각 층마다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옥상 배연덕트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 즉시 소화기를 사용하여 침착하게 화재를 진압했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완전 진화 되었다. 소방안전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