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사람

[20170320]40여년 안양을 사진으로 기록한 이정범선생

안양똑딱이 2017. 3. 20. 14:00

 


40여년 안양을 사진으로 기록한 이정범선생
이 글은 2008년 7월 29일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기사입니다.
 
안양지역 40여년 기록사진 남긴 아키비스트 1960년대 안양읍 당시부터 기록한 흑백사진들 이제는 소중한 추억
 
1960년대 시흥군 안양읍 시절부터 현재의 안양시까지 이어지는 지역사회 풍물과 공직사회 현장 등 반세기 역사를 사진에 담아와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우던 안양시청 홍보실 이정범(60)씨가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22일 퇴직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안양시에 따르면 이필운 안양시장은 공직을 마감하고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이정범씨를 위해 지난 22일 시장 접견실에서 "젊음을 안양시를 위해 일하신 이정범씨가 있었기에 안양의 역사를 담을 수 있었다"고 치하한 뒤 공로패를 전하며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기록사진 분야(포토 르포르타주)에서 손꼽히는 작가들은 많이 있겠지만, 한 지역 내에서 그 지역을 주제로 삼아 40년간의 세월을 담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정범씨는 지난 1981년 9월 안양시 새마을과에서 일용직으로 공직을 시작해 안양시 사진을 찍어왔다. 안양의 흔적과 역사를 카메라 앵글로 바라보며 사진에 담아오기는 공직에 들어오기 훨씬 전인 1968년부터 시작하여 안양만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왔다.
사실 이씨는 2005년 6월 30일 지방 기계장으로 퇴임을 했다. 하지만 안양시 역사 사진자료 전산화 작업에 꼭 필요한 인물이기에 임시임용직으로 채용돼 3년을 더 근무하다 퇴임식을 가진 것으로 밝혀져 그가 남긴 흔적이 무척이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자네는 안양시정 홍보지 '우리안양'에서 가장 먼저 무엇부터 보는가?" "그야 맨 뒷면에 있는 안양의 과거를 담은 흑백사진이지. 옛날 어렸을 적 우리가 뛰어놀았던 마을과 동네 곳곳의 흔적과 추억들이 담겨있어 향수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어느 동창회 모임에서 오고가던 대화처럼 이정범씨가 찍어놓은 옛 사진들은 1999년부터 발행되는 시정홍보지 '우리안양' 뒷면에 연재되어 오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000년 그가 찍은 평촌신도시 개발 전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은 시선을 끌기도 했다.
자신은 사진작가가 아닌 '직업'이라고 말하지만 1974년 경기도 관광협회의 사진공모전부터 시작해 1998년 안양사진공모전, 2002년 도민포토제안공모전 등 수많은 대회에서 화려한 입상경력을 갖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진들이 안양의 정서가 담겨있는 작품들이다.
이정범씨 소망은 공직생활 이전인 60년대부터 찍어온 안양지역의 변화상과 끈끈한 사람들의 흔적들이 담긴 풍물 사진들을 추려 개인 전시회를 한 번 여는 것이었다. 전임시장 시절 잠시 추진되기도 했으나 결국 불발돼 아쉬움을 준 것으로 기억나고 있다.
 
안양시 김태영 홍보실장은 "그렇지 않아도 퇴임식에서 그같은 사연을 들은 시장님께서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검토를 지시해 내년도 안양시민축제 등을 통해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양유원지 사진사에서 공무원으로 사진인생
 
이정범씨가 안양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이씨는 3남 5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15살이 되던 해인 1963년에 홀홀 단신으로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1965년에는 큰 형이 일을 시작한 서울대 농대 수목원(당시 연습림) 쪽으로 이사를 와 안양과 첫 인연을 맺게 됐다.
 
"안양으로 내려오기 전 서울에 올라와 낮에는 사진관에서 조수생활을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어요. 나름대로 성실해 보였던지 3년 만에 사진기사로 일자리를 잡게 됐어요. "안양에서 시작한 일은 유원지 쪽에 사진관을 내고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거였어요. 당시 안양유원지에서 사진 찍는 일은 꽤 호황이었어요"
 
이정범씨가 쏠쏠하던 사업을 접게 된 계기는 안양유원지의 수해 때문이었다.
 
1977년 안양 대홍수로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던 천연 풀장이 집채만한 바윗돌과 흙으로 뒤덮이자 자연히 발길도 끊기고 이씨의 사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안양시청 새마을과에서 사진기사를 공채한다는 소식이 30년 공직생활의 시작이 됐다.
 
40여년 안양의 기록과 풍물 인터넷에 담아
 
"처음 사진을 배울 때만 해도 이 일이 내 평생 직업이 될 줄을 몰랐지요. 사진이 가장 고마운 것은 나한테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잊게 해줬다는 거예요. 사진 덕분에 가정도 이룰 수 있었고 많은 지인들도 사귈 수 있었으니까요."
 
2005년 6월로 공무원 생활을 정년퇴직한 후에도 그는 안양시청으로 매일 출근을 했다. 그가 찍어놓은 40년간의 사진들을 전자 자료화하는 이미지 작업을 맡았기 때문이다. 안양시 홈페이지 포토갤러리에 정리된 수만장의 사진들은 대부분 그가 남긴 기록들이다.
 
"공직을 마감했다는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네요. 앞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적도 없고요.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산에도 올라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카메라를 메고 계속 안양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것입니다. 사진은 내 평생 직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