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433

[자료]전국 최초의 코하우징 주택 '아카데미 테마타운'

코하우징(Co-Housing)을 아십니까? 2000년대 초부터 미디어를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해 수년전에는 광고에도 나오는 이른바 ‘땅콩 집’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형태의 공동체 주택을 말한다. 개인들의 독립된 생활 공간은 갖춰져 있지만 함께 사는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생활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을 설치해 이웃과 소통하기 쉬운 집이다. 경기 안양시 박달동에는 1992년에 건립한 전국 최초의 코하우징(Cohousing) 주택 단지인 '아카데미 테마타운'이 있다. 이 단지는 11동의 건물과 88세대, 분양면적은 17평에서 37평까지 다양하며 신축 당시 1동의 지하에는 놀이방, 7동 지하에는 공동 아카데미룸, 9동 지하에는 공동 문화체육시설 등 적극적인 공동생활시설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

[자료]신증동국여지승람 제10권/ 경기 금천현(衿川縣)

【신증동국여지승람】제10권 / 경기도(京畿道)/ 금천현(衿川縣) 동쪽으로 과천현 경계까지 11리이고, 남쪽으로 안산군 경계까지 16리이며, 서쪽으로 부평부 경계까지 17리이고, 북쪽으로 양천현 경계까지는 27리이며 노량까지는 23리인데 서울과의 거리는 31리이다. 건치연혁 본디 고구려 잉벌노현(仍伐奴縣)인데 신라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금주(衿州) -금을 금(黔)이라 한 곳도 있다. 로 고쳤고, 성종(成宗)이 단련사(團練使)를 두넊믐는데, 목종(穆宗)이 없앴다. 현종 9년에 수주(樹州)에 예속시켰고 명종이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본조 태종 14년에 과천과 합쳐 금과현(衿果縣)을 만들었다가 두어 달만에 도로 돌리고, 또 양천과 합쳐 금양현(衿陽縣)으로 ..

[자료]안양에 잠시 머물렀던 우리나라 최초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정월(晶月) 나혜석(1896~1948).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여권운동가, 문필가 등으로 활동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비운의 선각자인 그가 죽기 직전의 말년을 안양 경성기독보육원 양로원에서 보낸 시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안양에서의 삶을 찾아보기 전전에 우선 나혜석은 누구인가 알아본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 수원시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나기정은 대한제국 때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시흥군수를 지냈으며 일제 때는 용인군수를 지냈다.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둘째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 화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1914년 일본 유학생 동인지 에 '이상적 부인'이라는 ..

[자료]바위에 새겨진 천년의 울림 마애종

1천년 전 한 이름없는 석공이 거대한 암벽에 종을 치는 스님을 새겨 넣으면서 꿈꿨던 安養世界, 마애종 속 스님이 종을 치며 간절히 소망했던 '오로지 기쁨과 평화만이 있든 세상'. 천년 세월 잠자고 있던 마애종을 다시금 깨워 종을 울릴 수 있을까. 2008년 11월 12일 오후 2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양 마애종의 학술적·예술적 가치와 국가문화재 승격'을 주제로 개최된 '제3회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내에 유일한 마애종이 국가문화재로 승격돼야 마땅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회장 임종순)와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 황평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포럼에 참여한 8명의 문화재 전문가들은 발제와 토론을 통해 "국내 유일의 마애종..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3)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3)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마애종의 역사성과 지역공동체 엄기표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1. 머리말 안양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늦어도 청동기시대에는 하천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이후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중앙정부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는 불교가 폭넓게 성행한 시대였으므로 불교문화가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간지주와 石塔(석탑)이 남아있는 중초사지, 석조부도와 귀부 등이 남..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2)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2)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마애종/안양의 역사성과 마애종의 문화적 가치 엄기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2005년 「제2회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의 발제문입니다. Ⅰ. 머리말Ⅱ. 안양의 역사와 불가의 안양세계Ⅲ. 마애종의 양식과 조성 시기Ⅳ. 마애종이 갖는 과거와 현재의 의미Ⅴ. 맺음말 국문요약 안양 석수동 마애종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안양 지역에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던 중초사지(中初寺址)와 安養寺가 위치한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적으로 중요한..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1)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1)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우리는 세계유일의 마애종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포럼은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안양지역사회에서는 민예총을 중심으로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을 통해 마애종의 보물 격상 운동과 더불어 '종교 그 이상의 울림'을 지향으로 하는 영성운동이 잠사나마 전개됐었다. “마애종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이상향’의 마음은 어느 종교에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형식을..

[자료]콜롬비아로 시집간 동해급 마지막 함정 '안양함' 역사

안양시청사 1층 홀 국제·국내 자매도시 기념품 진열장 속에는 한 척의 배 모형이 있다. 해상초계 및 대공전투 임무를 띠고 1983년 취역해 28년간 바다를 지키다 2011년 9월 28일 전역식을 갖고 퇴역한 우리 해군의 동해급 마지막 초계함(PCC-755) '안양함'이다. 이 안양함이 2014년 7월30일 경남 창원시 진행군항 부두에서 양도 기념식을 갖고 콜롬비아로 시집을 갔다. 콜롬비아 해양에서 불법 마약거래 근절과 해상환경 보호 등 콜롬비아의 바다를 지키는 새 임무를 위해 우리 군이 해외에 양도하는 첫 초계함급 군함이 됐다. 이는 콜롬비아 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콜롬비아는 6·25전쟁 당시 호위함과 병력 5천100명을 파병한 중남미 유일의 6·25참전국으로 212명의 콜롬비아 장병들이 희생됐..

[자료]1919년 3월 군포에서도 3.1만세운동 있었다

1919년 3월 군포에서도 3.1만세운동 있었다 독립기념관 기록(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2056)에 의하면 1919년 3월 31일 군포.안양.의왕 경계지점이며 상업적 요충지였던 군포장(軍浦場, 현재 안양시 호계동 구군포사거리 인근)의 장터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군포장은 시흥군 일대에서 꽤 큰 장(5일장)이 열리던 곳으로 당시 군포장에 모인 2000여명의 시민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경찰관 주재소(현재 군포역앞)까지 약 1.8㎞를 행진했으며 4월 1일에도 군포장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했다. 만세시위지인 군포장 경찰관주재소 터 현 주소는 군포시 군포 1동 750-8(옛주소: 시흥군 남면 당리)로 당시 일본경찰은 군에 보병 출..

[자료]1963년 남한강에서 숨진 안양 흥안초교생들 이야기

50년전 남한강에서 숨진 안양 흥안초교생들 안양과 여주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교명이 바뀌었지만 현재의 안양 남초등학교는 1960년대 흥안국민학교로 불리웠다. 특히 노년의 졸업생들에게 여주하면 슬픈 추억이 서려 있다. 신륵사로 소풍갔다가 남한강에서 익사한 선후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63년 10월 23일 안양시 흥안초등학교 5·6학년 학생과 교사, 학부모 총 158명이 여주 신룩사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귀가하던 오후 2시 50분 무렵 여주읍 연양리에서 북내면 천송리 신륵사를 건너다니던 조포나루에서 일행을 태운 나룻배가 침몰하여 학생을 포함한 교사·학부모 등 49명(남학생 15명, 여학생 22명, 교장을 포함한 학부모 12명)이 익사하는 대형사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