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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정조의 화성을묘원행(花城乙卯園幸) 옛길 지금 어디인가

안양똑딱이 2019. 4. 2. 05:14

 

조선후기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방문을 비롯해 재위기간 동안 총66회의 궁궐밖 행차를 했다. 또한 현릉원 자리에 있었던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고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직할부대인 외장용을 설치하였다. 이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당시 기득권세력이었던 노론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는데, 당시 행렬에 동원되었던 6,000여명의 인원 중 절반이 정조의 친위부대이 장용영 군사였다. 이는 오늘날 ‘국군의 날’ 행사가 갖는 무력시위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일반백성들이 국왕의 행렬을 구경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백성들과 함께 하는 국왕의 모습을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정조의 재위기간 동안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방문은 상당히 많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화성행궁을 방문했던 을묘원행(乙卯園行)이 대표적이며, 당시의 모습을 대표적인 화가였던 김홍도에게 제작하게 하여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담았다. 이 그림을 참조하여 제작된 <화성능행도>에는 창덕궁을 출발하여, 화성행궁에서 열렸던 회갑잔치, 낙남헌에서 과거시험, 낙남헌에서 열렸던 노인들의 위한 양로연, 한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환어행렬도 등 당시 정조의 화성행차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왕실 최대의 사건이 일어나다

정조는 어느 임금보다도 궁궐 밖 나들이인 행행(幸行)을 자주했다. 재위 24년간 총66회의 행행을 했으며, 그 중에서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참배가 그 절반을 차지했다.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연민과 어머니 혜경궁에 대한 효성의 실천이다. 특히, 1795년에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과 사도세자의 구갑(舊甲)까지 경축하면서 자신의 재위 20년을 정리하는 뜻깊은 행사로 화성으로의 행차를 가졌는데 가장 잘 연구한 이의 블로그 글을 전하면서 그길을 따라가 본다.

 

정조대왕과 시흥행궁(始興幸宮)- 화성원행(華城園行) 길을 금천으로 변경하다

http://blog.daum.net/mindle49/18313886

 

정조대왕 화성을묘원행(花城乙卯園幸)(1), 한강에 배다리[舟橋]를 놓고 건너다

http://blog.daum.net/mindle49/18313850

 

정조대왕 화성을묘원행(華城乙卯園幸)⓶, 만안(萬安)고개를 넘다

http://blog.daum.net/mindle49/18313850

 

정조대왕 화성을묘원행(華城乙卯園幸)⓷, 시흥행궁(始興幸宮)에서 경숙(經宿)하다

http://blog.daum.net/mindle49/18313886

 

정조대왕 화성을묘원행(華城乙卯園幸)⓸, 시흥행궁(始興幸宮)에서 화성(수원)행궁으로

http://blog.daum.net/mindle49/18313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