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사람 70

[20221117]안양가축위생연구소(옛 검역원) 설계한 이광노 교수

이광노(李光魯) 교수는 1949년부터 1987년까지 ‘현역’ 시절 안양가축위생연구소를 비롯 남산 어린이회관, 국회의사당, 서울대 캠퍼스, 삼성빌딩, 서울대학병원, 주한중국대사관, 아산재단 중앙병원 등 170여 점에 달하는 내노라하는 건축물들을 설계한 인물로 한국 현대건축을 이끈 한국 건축학계의 원로이자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다. 그의 아호를 딴 무애(無涯)건축연구소(1955년 설립)는 ‘김수근(金壽根) 건축연구소’와 쌍벽을 이루면서 한국 현대건축을 선도했다. 1928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한 이광노는 경복중학을 거쳐 1945년 4월,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이광노는 1949년 21세의 나이에 대구시청사 현상설계를 시작으로, 6·25전쟁 기간 동안 국군충혼탑, 유엔전우탑..

[20221106]구 안양시청(현 만안구청) 설계자 건축가 나상기(1973년)

2022.11.06/ #기록 #자료 #인물 #나상기 #건축가 #1973년_모습 사진 및 자료 발굴: 만문누리 최승원 위원 구 안양시청(현 만안구청) 설계자 나상기 교수 (1927~1989) 나상기(1927년 5월 5일 - 1989년 4월 27일)는 평안남도 성천 출생으로 대한민국의 건축가이자 대학 교수 였으며 1984년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건축가 나상기는 1944년 평양공립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평양공업대학에 진학하여 정인국(鄭寅國)의 지도 하에 건축 수업을 받고 건축실무에 나섰다.평양공업대학(정인국 사사)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하하여 미 제5공군사령부 시설국에 들어가 건축기사장으로 일하면서 미국식 설계기법과 건축용어를 익혔다. 1956년부터..

[인물]건축가 최승원(1945~)

최승원 崔勝元 출생 1945. 서울 종로 국적 한국 건축사 주택을 주로 다루면서 티센쿠루프 천안공장을 통해 산업건축을 향상시키고 스틸건축의 일상화에 영향을 주었다. 5회의 개인전으로 건축의 전시지평을 넓이고 건축박물관을 개척하였다. 건축은 물론 조각가로도 활동하고, 사진에도 조예가 있다, 공예가판화가 유갈렬평전과 이중섭 김중업 강명구를 집필하였다. 서울 종로 필운동 출생 누하동207번지 입적 49년 초에 안양으로 이사 1969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김중업교수에게 배우고 졸업하였다. 1952~54년 수원세류초등학교를 다니고 ROTC 7기로 수원비행장남측에서 기동타격소대장과 화성시 송산면독지리에서 33사 100연대에서 우수소대 해안경비소대장으로 채명신 2군 사령관상을 받고, 이어 ‘70년 남양100연대1..

[20220115]군포시 '별 덕후' 강봉석 주무관

군포시 '별 덕후' 강봉석 주무관 너 나 우리 별 헤는 밤 이 사람의 진심이다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2942 기자명 임영근 기자 ‘별’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별 덕후’가 있다. 주인공은 군포시청 공직자로 17년간 누리천문대를 지키는 강봉석 주무관이다. 고교 시절 처음 본 은하수에 반해 하늘을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생활하는 강 주무관의 좌충우돌 인생 이야기를 조명해 봤다. 강봉석 주무관. # 당돌한 고교생의 천문학 입문 계기 강 주무관이 천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강화도에 놀러가 밤하늘 은하수를 보게 되면서다. 서울이 고향인 강 주무관이 평소 바..

[20210131]안양 지명과 안양사 찾기의 일등공신 정덕한 선생

안양사(安養寺)와 정덕한(鄭德漢) 2009년 10월 16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김대규 시인칼럼] 언론인, 시인 김대규전, 안양문화원사무국장전, 안양문화원 원로위원전, 안양예총회장 안양에 경사가 났다. 유유산업 부지에서 발굴된 매장유물 가운데 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것이다. 발굴조사단은 수습된 기와류, 전돌류, 도자 및 도기편 조각, 철제 동물 장식들의 유물과, 하천의 돌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중문→탑→금당(부처를 모신 공간)→강당→승방으로 연결되는 건출물터와, 좌우에 회랑(복도)이 있는 구조인 점에서 하부 초석층은 통일신라 시대의 중초사터이고 상부는 안양사의 초석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는 미확인의 설(說)로만 떠돌던 안양사 터가 유유산업부지라는 것이 공인된 것..

[20200917]언론에 보도된 안양 똑딱이 사관 최병렬 기사

언론에 보도된 #똑딱이 #기록자 #안양인 #알퐁소 #피터팬  #사관 #최병렬 기사모음 https://peopleinfo.tistory.com/173[피플인포넷]_김용현이 만난 사람들 최병렬 안양지역시민연대 대표(2005.04.04.) https://news.v.daum.net/v/20070204112610712?f=o안양시민연대 최병렬 대표, 무료 전자신문 400호 발행(2007.02.04) https://blog.naver.com/allinda/20040064794[창간과운영실무]이런 신문도 있다 / 전자팩스신문 / 안양지역시민연대 최병렬 대표(2007.08.02.)  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232628[NSP통신]안양지역시민연대 최병렬 대표, 안..

9202005120 (재)군포산업진흥원 제2대 원장 이재수 취임

재단법인 군포산업진흥원 제2대 원장으로 군포도시공사 본부장을 역임한 이재수 원장이 지난 4일 취임했다.이 자리에는 한대희 군포시장, 이학영 국회의원, 진흥원 임직원 등이 함께 했다.이 날 행사는 코로나19와 관련,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간소하게 이루어졌다.이재수 원장은 취임식에서 “산업진흥원의 본래 의무이자 업무의 기본인 시민과 기업인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직원들에게 “기업현장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또한 이 원장은 “군포시에서 자라고 줄곧 인연을 맺고 살아오면서 군포시 기업환경의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면서 “교통인프라 등 우수한 지역환경을 발판으로 관내 기업환경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지원하..

[20200209]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이억배 작가(경기일보)

“유령 같은 존재로만 있다가 이번에 처음 호명을 받았어요. 무명의 활동에 이름을 붙여준 것에 감사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1980년대 수원지역 민중미술을 이끈 의 이억배 작가는 지난 3일 안성 그의 자택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경기도미술관이 1980년대 시대와 사회를 이끌어 온 소집단 미술그룹을 조명하는 전시를 3개월간 연 것에 대한 소회였다. 그의 말처럼 을 비롯한 당시 소집단 미술집단 활동가들은 익명성을 대의로 여겨 시민과 지역과 사회에 몸을 던졌다. 1979년 12월 창립한 포인트는 그 중심이었다. 백종광, 장영국, 최춘일이 창립한 포인트는 수원 크로바백화점 전시실에서 창립 전시회를 열며 문을 열었다. 수원지역 고등학교 선후배들, 소위 ‘미술계 반항아’들이 몰렸다. 시대의 폭력과..

[20200215]‘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권윤덕 작가(경기일보)

1.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권윤덕 작가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대만큼 뜨거웠던 시대가 있을까. 부당한 권력과 억압에 적극적으로 맞섰고 노동자, 여성 해방을 꿈꿨다. 우리 것을 지키자는 정체성 찾기 운동도 일어났다. 경인지역에서 활동하던 소집단 미술그룹은 그 중심이었다. 특정 계층을 위한 예술이 아닌, 시민과 함께 삶을 변화시켰고,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 경기도미술관이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오는 2월 2일까지 선보이는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을 통해 이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격동의 시대, 1980년대 경인지역 민중미술 소집단 활동가들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경인지역 민중미술을 이끈 소집단 활동가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20181015]안양공립보통학교(안양초) 1회 졸업생 이경수 옹

안양공립보통학교(안양초) 1회 졸업생… 이경수 옹 [안양시민신문]2007. 7. 26 손병학기자 블로그 http://upstart.blog.me/50020167892 “90년의 세월도 나그네길일 뿐 아니겠나” 안양공립보통학교(안양초) 1회 졸업생… 이경수 옹 전쟁 뒤 손목시계 하나로 재기에 성공해 “나에게 남은 여생은 교회일 돕고 싶어” “일본군으로 갔던 남양군도에서 1년9개월 만에 돌아오던 날이었어. 도쿄에서 하루를 묵고 요코하마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데 구명조끼를 하나씩 나눠주는 거야. 어쩐지 ‘여기까지 와서 죽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일본군으로 끌려가 2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던 스무 살이 갓 넘은 이 앳된 청년은 다행히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안양에서는 귀향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