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210131]안양 지명과 안양사 찾기의 일등공신 정덕한 선생

안양지역얘기/사람





안양사(安養寺)와 정덕한(鄭德漢) 

 2009년 10월 16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김대규 시인칼럼] 

 

언론인, 시인 김대규

전, 안양문화원사무국장

전, 안양문화원 원로위원

전, 안양예총회장


 안양에 경사가 났다.


유유산업 부지에서 발굴된 매장유물 가운데 <安養寺>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된 것이다.


발굴조사단은 수습된 기와류, 전돌류, 도자 및 도기편 조각, 철제 동물 장식들의 유물과, 하천의 돌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중문→탑→금당(부처를 모신 공간)→강당→승방으로 연결되는 건출물터와, 좌우에 회랑(복도)이 있는 구조인 점에서 하부 초석층은 통일신라 시대의 중초사터이고 상부는 안양사의 초석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는 미확인의 설(說)로만 떠돌던 안양사 터가 유유산업부지라는 것이 공인된 것이며, 이로써 ‘안양’이라는 지명의 유래도 그 생모(生母)가 공식 확인된 것이다.


그러하니 경사가 아니겠는가. 아니 그냥 경사가 아니라 안양시 유사 이래 최대의 경사인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의 표제에 ‘정덕한’이라는 개인명을 쓴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안양사 문제와 정덕한 선생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알 만한 분들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차제에 일단락된 발굴조사의 청원인 당사자로서의 비중을 생각해서 언급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정덕한 선생은 고대 북아시아의 기층언어 가운데 중세 만주어 연구를 통해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한반도의 지명을 고찰하는 ‘역사 제터잡이연구·우리 옛말 연구’의 재야 학자로서, 유유산업이 현 위치에 설립될 당시인 1960년에도 시흥군 청년학생단체 협의회장 자격으로 “해체된 삼층석탑은 중초사 당간지주 근처로 이전·복원하고, 추후 공장건축 과정에서 출토되는 역사 유물들은 철저하게 수집하여 시흥군이 지정하는 장소에 보존하기로 한다.


”는 이행각서를 받은 바 있다.


그 이후에도 안양사의 터가 유유산업부지라는 주장을 펴오다가, 지난해 1월에 매장문화재 발굴 청원서를 안양시에 제출했고, 안양시는 이에 따라 전문가들의 회의를 거쳐 (재)한울문화재연구원과 용역 체결을 하고, 금년 6월18일부터 10월6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앞에 약술한 바의 성과를 올린 것이다.


세계문화사에서 희귀한 문화유물이나 사적일수록 특정 전문가의 집요한 탐사와 연구의 결과인 것처럼, ‘안양사’의 경우도 ‘정덕한’이라는 향토인의 애정과 열정의 결실인 점이 다분하다는 뜻에서 우리는 그의 존재 자체를 기려야 할 것이다.


(여기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24쪽에 이르는 그의 청원서는 고려사·조선왕조실록·동국여지승람·안양사탑 중신기(重新記) 등에서 안양사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수록한 자료집이기도 하다.


) 문제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일 터이다.


사안의 중요성으로 볼 때,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는 안양시의 권한 밖으로 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안양시는 이에 대한 중·장기 계획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안양사 연구팀’을 별도로 구성할 필요성도 자연히 제기될 것이며, 이에는 안양문화원의 ‘향토문화연구소’나 성결대 부설의 ‘안양학연구소’가 필히 그 주체적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리모델링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코자 한 당초의 계획도 차후의 발굴 확대와 같은 문제와 연계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재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앞으로는 그 명칭의 비중이나 역사적 문화성에 비추어 ‘유유산업 부지’보다는 ‘안양사지’로 해야 되지 않을까. 또한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현재 유유산업 본사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들을 안양시가 인수하여, 금번 발굴될 문화재들과의 연관성을 검토하고, 차후 보관·전시할 공간도 마련해야 할 것이며, 더욱 어려운 것은 가능한 문화재의 복원 문제, ‘왕건로·능정로’라는 도로명 부여 문제, 홍보 영상물·책자, 또는 KBS 역사스페셜과 같은 TV프로 방영문제 등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인근 주민들의 재산권 문제도 만만치 않은 현안이다.


문화행위에는 사자들에 대한 생자들의 의례(儀禮) 의식도 담겨 있는 것이다.


안양사지의 확인과 함께 1천년이 넘는 역사의 요람에서 안양의 부활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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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유유부지서 안양사 7층 전탑 흔적 발견 

“문화재 발굴 계속해야” vs “근대건축물 보존해야” 

 

2010년 08월 23일(월) 01:01 [안양시민신문] 

 


옛 유유부지에서 안양 지명이 유래한 ‘안양사’의 흔적과 함께 고려 말까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7층 전탑의 흔적이 발견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매장문화재 발굴 작업에서 전탑이 무너진 흔적과 폐기된 전, 기와들을 발견, 7층 정탑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가칭)김중업박물관 및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려던 시의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옛 유유부지 내 건물들은 한국 현대건축계 1세대인 김중업 건축가가 남긴 작품 중 생산시설로 유일하며 근대 문화재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는 2011년까지 대지 1만6천243㎡에 걸쳐 104억2천500만 원의 예산을 투입, 리모델링을 거쳐 안양예술공원과 연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문화재 발굴 전문기관 한울문화재연구소 측은 “발굴 결과 안양사의 모습과 7층 전탑의 구조 및 축조방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연구소 측은 보완조사와 추가조사를 통해 안양사의 사역범위와 시기에 따른 변천 양상 등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중문지와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회랑 등의 위치도 확인됐다.


때문에 연구원 측은 안양사가 주변지역까지 넓게 조성됐을 것으로 보고 인근 지역까지 발굴 조사 확대의 필요성을 시에 건의했다.


지난 18일 옛 유유부지에서 실시된 ‘복합문화시설 건립 추진사항 설명회’와 ‘매장문화재 발굴용역 결과 현장설명회’에서도 추가 발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2008년 안양사 터 발굴을 청원한 정덕한 씨도 정밀한 추가 발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유부지 건축물 역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상반된 주장이 오갔다.


설명회에 참석한 최대호 시장은 “전문가와 충분히 논의한 후, 문화재도 보존하고 건축물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올해 11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2011년 12월 개관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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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부지, 올해 ‘시굴조사’착수 

 7천만원 예산 1달간… 결과 따라 발굴조사 검토 지역원로 청원 수용… 박물관 건립 계획도 병행 

 

2008년 03월 14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안양시의회와 안양시가 지역원로 역사학자가 제기한 ‘유유부지 유물발굴 청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당초 시의 계획이었던 해당부지의 박물관 건립계획도 함께 추진된다.


시의회 보사환경위원회(위원장 김웅준)는 3월10일 청원인 정덕한(65)씨를 비롯해 전문가, 공무원 등을 초청한 가운데 가진 ‘유유산업부지 매장유물 발굴 청원’에 대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결정하고, 12일 본회의에 상정해 정식 청원으로 채택됐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석수1동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위치한 구 유유부지에 보물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현존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시대를 추정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사찰이 소실된 부지로 인식되고 있고, 1959년 공장건립 당시 막새, 벽돌, 청동발, 토기 등이 출토돼 시굴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검토됐다.


하지만 청원인 정씨의 주장인 이곳이 안양사터이고 안양사 7층전탑이 있었을 가능성은 현재 상태에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는 오는 5월 1차 추경에서 조사에 필요한 7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7월경 경기도와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받은 후에 한 달간 유유부지 전체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또한 박물관 건립의 경우는 6월까지 현상공모를 실시해 내년 2월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한 후 착공에 들어가 2010년 상반기 중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사전에 실시되는 시굴조사에서 중요유물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발굴조사로 이어질 경우에는 박물관 건립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한편 당초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발굴청원이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정덕한씨는 “안양역사 찾기의 첫발을 내딛은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이뤄질 시굴조사 등이 안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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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의회 150회 임시회 6일 개원

각종 지역현안에 의원 6명 질문 나서 

 

2008년 03월 07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이번 시의회가 이필운 시장의 시정운영 첫 심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월에도 시의회가 열리기는 했었지만 이 시장의 취임직후라서 업무보고 등으로 특별한 쟁점이 도출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를 암시하듯 이번 회기 중에는 유유발굴조사, 문화재단 등 최근 지역현안이 다뤄지고, 6명의 시의원이 시정질문에 나서 주목되고 있다.


3월6일~12일까지 열리는 안양시의회 150회 임시회에는 먼저 조례안 등 16건의 안건이 심의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는 지난 임시회에 이재선 시의원이 제출했던 ‘아름다운마을만들기조례안’와 지역원로 역사학자 정덕한씨가 제출한 ‘유유산업부지 매장유물 발굴청원’ 등 4건의 계류안건을 비롯해 장사시설과 보육시설 등과 관련한 의원발의 조례안 3건 등을 심의한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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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부지 삼층석탑 ‘국가보물’로 되돌려야 

발굴조사 청원인 정덕한씨 ‘삼층석탑’ 가상 복원 

 

2008년 02월 29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유유산업부지 발굴조사 청원을 제기했던 역사학자 정덕한(65)씨가 해당부지에 있는 중초사지 삼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164호)을 당초 지정됐던 보물(5호)로 되돌려야 한다며 원형을 가상복원해 안양시의회에 추가자료로 제출했다.


정씨는 이 삼층석탑이 1934년(소화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될 당시 사진을 찾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과 진해, 전주도서관 등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약 12자(360㎝)’라는 해설만 발견했으나, 1938년(소화12년) 5월 경기도가 편찬한 ‘경기지방의 명승·사적 일람’에 “3층 석탑 가운데 1개 층이 굴러 떨어져 탑신과 옥개가 탑 밑에 흩어져 있고, 현재는 2층탑의 모습이 돼버렸는데, 1층의 높이는 2자9치, 2층은 4자2치로 전체 높이는 약 12자”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기재돼 있어 원형복원의 단서로 삼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 수치를 갖고 가상공간에서 원형복원 실험을 한 결과, 현재의 탑 높이 366㎝ 보다 97㎝ 높은 463㎝로 추정된다”며 “상부 1개 층이 떨어져 2개 층만 남았을 경우 높이를 364㎝로 볼 때 공장건축으로 옮겨질 때 유실된 것은 52㎝의 2층 탑신과 45㎝의 3층 탑신 등 두 부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씨는 발굴조사를 통해 2개 탑신을 찾는다면 원형복원을 통해 국가보물로 복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같은 자료를 접수한 안양시의회 보사환경위원회는 3월6일부터 열리는 임시회 기간에 정씨를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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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부지‘삼층석탑’ 가상 복원 

 

2008년 02월 29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유유산업부지 발굴조사 청원을 제기했던 지역원로학자 정덕한(65)씨가 해당부지의 중초사지 삼층석탑을 당초 국가보물로 되돌리기 위해 자료발굴과 실측작업 등으로 원형을 가상 복원했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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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養’ 찾기 청원서 

 

2008년 02월 01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김대규시인 칼럼

 


지난 1월24일 자로 안양시의회에 이색적인 청원서 하나가 제출됐다.


요지는 안양사칠층전탑지(安養寺七層塼塔址)와 중초사지(中初寺址)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번지의 구 (주)유유산업 부지 일대의 동일 장소일 것으로 추정되니,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매장 유물들을 발굴하여 ‘安養’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安養寺’터를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청원의 주인공은 중세 만주어 연구를 통해 한반도 지명의 현재 위치를 규명하는 ‘역사 제터잡이’ 연구가 정덕한(鄭德漢)씨. 정덕한씨는 제출한 ‘청원이유서’에서 1960년 당시 시흥군 청년학생단체 협의회장 자격으로 유유산업(주) 안양공장 신축 허가와 관련하여, 삼층석탑을 해체하면서 착공한 유유산업의 신축허가 취소와 원상복구 요청을 하였던 바, 관계자들로부터 삼층석탑의 복원과 발굴되는 역사 유물들의 보관 이행각서를 받았음을 상기시키면서, 옛노인들의 “탑비(塔碑)가 땅 속에 묻혀 있다”는 주장이나, 고고학계의 “유유산업 부지에 安養이라는 지명의 원천이 되는 안양사칠층전탑이 자리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 그리고 회사 측에서 보관 중인 중초사지 출토물 중에는 칠층전탑의 탑전(塔塼)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매장 유물들의 발굴을 시도해서 이들을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유산업 이전 부지는 안양시가 지난 해 6월에 240억(3년 분할)에 매입하여, 그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인데, 그 위치가 안양예술공원 초입이라는 점, 특히 공장건물이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김중업의 근대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이를 기리는 박물관으로의 리모델링이 우선순위로 예상되고 있다.


정덕한씨의 청원에는 전래되어 오는 왕건과 능정스님과의 설화적인 차원을 넘어 고려사(高麗史)·조선왕조실록·한국중세사·한국의 전탑연구·조선의 전탑에 대하여·안양사탑 중신기 등의 역사기록과 연구서적에서 관계내용들을 발췌한 고증적 자료가 충실히 소개돼 있어, 청원의 타당성과 청원인의 학문적인 연구성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에 따라 안양사가 왕건의 고려 건국에서부터 최영의 마지막 화원전투에 이르기까지 승군(僧軍)의 요처였던 점, 이들이 거란군 침공 때 ‘관악산 초적(草賊)’의 신분으로 고려왕권을 수호하는 유력한 군사조직이었다는 점, 고종 때 최충헌 무신정권에 의해 파괴된 안양사가 최영에 의해 다시 제모습을 갖추게 된 점, 정인지가 안양사의 재건을 철저히 금지시킬 것을 상소한 점, 능정이 최초에 건립한 ‘安陽寺’가 ‘安養寺’로 개칭된 점, 왕건이 세운 칠층탑에 김부식의 비문(碑文)은 유실되고 이숭인의 중수기(重修記) 원문은 남아 있다는 점, 그 중수기에 왕건과 능정의 안양사 건립 배경이 소개된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더욱이나 청원서에는 ‘건물은 건드리지 않고 대지에 대해서만 발굴을 해보면 규명할 수 있는, 자기 고장의 역사적 참모습 찾기를 외면하고 서둘러 현대건축의 요람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시급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근 30쪽에 이르는 청원서를 읽는 동안, 나의 뇌리를 사로 잡은 것은 안양사람으로 이 문제를 소홀히 해 왔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감이었다.


安養이라는 지명 자체가 문화재이고, 그 역사적 사실성을 규명할 수 있는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왔는데도 이를 등한시했다는 것은 애향심에 있어 일종의 직무유기가 아니었던가. 나는 인근 주민들의 재산권 문제도 중요하고, 김중업기념 박물관 건립이나 이에 따른 국고지원 문제도 현실적으로 중요하지만, 매장 문화재 발굴을 통한 安養寺터의 확인은 더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청원인이 ‘청원이유서’의 말미에서 ‘다른 소견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필요에 따라 공개토론 또는 청문회를 통하여 중초사지 매장유물 발굴의 정당성에 대하여 성실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음을 아울러 밝히는 바입니다’라는 제안이 우선 수용되기를 희망한다.


아무래도 시의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김 대 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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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산업부지 유물발굴조사 청원 이후 

 ‘안 나와도 걱정… 나오면 더 걱정’ 시, 박물관 조성 차질… 주민, 개발제한 우려 시의회, 타당성 인정… 조사특위 구성 검토 

 

2008년 02월 01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안양시가 지난해 매입해 건축박물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유유산업부지에 대해 지역의 한 원로가 제기한 매장유물 발굴조사 청원이 타당성 여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점차 공론화되고 있다.


<본지 1월25일자 보도> 1월24일 지역원로 정덕한(65)씨가 제기한 청원에 대해 심규순 시의원은 “청원의 타당성이 인정된다”며 소개의원으로 나서 시의회에 접수했다.


심 의원은 소개의견서에서 “본 청원을 시의회에서 심도 있게 다뤄질 수 있도록 문화재전문가나 학자 등의 의견청취를 통해 안양의 귀중한 유물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상임위인 보사환경위원회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김웅준 위원장은 “만약 매장유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파봐야 할 것”이라며, 다음 회기에 청원을 상정하는 한편 발굴조사특위 구성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발굴조사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단 해당지역 시의원들은 구체적인 언급은 하고 있지 않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만약 유유산업부지에서 중요한 유물이 나올 경우 인근지역에 대한 개발제한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시 당국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발굴조사를 했는데 아무 것도 안 나올 경우 예산과 시간낭비에 대한 비난과 박물관조성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중요유물이 나올 경우에는 더 걱정이다.


그럴 경우 사업차질이 아니라 지금까지 추진했던 계획과 국·도비지원 등이 모두 중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지역인사는 “시당국의 사업추진과 국·도비가 중요한지, 안양역사를 다시 쓰고 후세에 길이 남을 유산이 중요한지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원인 정씨는 “현재 경기도유형문화재 164호인 삼층석탑은 이전복원 과정에서 훼손 등으로 국가보물5호에서 강등됐다”면서 “이에 대한 원상회복을 위해서도 발굴조사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유산업부지에 복원돼 있는 삼층석탑은 1963년 보물 제5호로 지정됐었으나, 1996년 문화재청이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 503건을 대상으로 재평가한 결과 1997년 12월26일에 경기도문화재로 변경됨에 따라 현재 보물5호는 비어있는 상태다.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은 “문화재번호는 지정순서와 관리번호이지 가치별 번호가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국보와 보물, 문화재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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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역사가 지하에 묻혀있다” 

 


지역원로의 유유부지 발굴조사 청원근거는

문화계도 지명유래 ‘안양사’ 재조명 움직임 

 

2008년 01월 25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유유산업 이전부지를 근대건축박물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려던 안양시의 계획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지역의 한 원로가 이 부지 지하에 안양의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한 유물이 매장돼 있을 것이라며 발굴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당초 시당국은 유유공장의 설계자가 故 김중업 근대건축가라는 점에 착안해 이전부지 활용방안을 건축박물관 등 문화공간으로 가닥을 잡고 연구용역 발주와 국·도비를 확보하는 등 사업을 추진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에 청원을 제출한 지역원로를 비롯해 지역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안양과 김중업 및 근대건축과의 연관성에 의문이 제기돼왔으며, 지난해 시가 공장부지를 매입한 만큼 오랫동안 제기돼 왔던 안양사(寺)터라는 추정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매장유물을 발굴해 안양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 발굴조사 청원 왜 나왔나 1월24일 안양시의회에 유유부지 발굴조사 청원서를 제출한 안양지역의 원로 정덕한(65)씨는 언론인(조선일보)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만주어 등 우리옛말 및 역사제터잡이 등의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정씨는 본지를 통해 시당국이 유유산업 이전부지를 김중업박물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안양의 역사를 근대건축이 아니라 안양사(寺)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사실의 확인을 통해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며 이번에 청원을 제출하게 됐다.


특히 그가 유유산업 이전부지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지난 1960년 유유산업이 안양공장을 신축할 당시 시흥군 청년학생단체협의회 회장이었던 그는 현재 공장부지에 이전복원 돼 있는 고려시대 유물인 삼층석탑을 해체한 회사 측을 상대로 원상복구와 건축허가 취소를 진정했었다.


이에 따라 유유측은 삼층석탑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으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예전의 모습보다 축소됐다, 탑이 하나 더 있다’ 등의 주장이 제기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유유공장이 들어서 있어 지켜보고 있던 와중에 시당국이 공장부지를 매입함에 따라 오랫동안 역사학계 등에서 제기돼 왔던 안양사 터의 실체를 확인하자고 나선 것이다.


■ 7층전탑 매장주장의 근거는 정씨가 유유부지에 안양사 7층 전탑이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960년 유유산업 안양공장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문화재 훼손이 있었고 복원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탑이 하나 더 있었다고 주장한 부분이다.


두 번째는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동국여지승람」의 금천불우조(衿川佛宇條)에 ‘안양사(安養寺)가 있어 그 절 남쪽에 고려태조가 세운 7층 전탑이 있다’고 기록돼 있으며,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때 최영장군이 안양사 7층 전탑을 세우고 왕이 내시를 시켜 향을 보냈으며 승려 천명이 불사를 올렸다’는 기록 등이 옛 안양사의 규모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각원당의 부도와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93호)가 있으며, 귀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글을 짓고 명필 이원부가 쓴 비문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


■ 왜 ‘안양사’에 주목하는가 한편 이번 정씨의 청원에 앞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역의 문화예술계에서는 ‘안양(安養)’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安養寺)’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안양사를 주제로 한 지역최초의 오페라 제작을 음악계와 문학계 등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안양사는 신라 효공왕 3년(900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을 정벌하러 지나다 삼성산에 오색구름이 채색을 이루자 이를 이상히 여겨 가보던 중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세워진 사찰로 전해진다.


안양이란 불가에서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청정한 극락정토의 세계를 말하며 현세의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를 지나 있다는 즐거움만 있고 자유로운 이상향의 안양세계를 말한다고 한다.


우연찮게도 안양사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유유산업 공장부지 매입과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씨는 “역사기록의 행간을 보면 안양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고려태조의 군사세력의 근거지였던 거대한 규모였다”며 “현재 안양사의 위치상 옛 안양사지로 유유공장부지가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씨는 “시당국이 이러한 중요한 역사공간에 대한 활용문제를 문화재연구기관이 아닌 관광사업연구기관에 맡긴 것은 안양의 역사를 계속 땅 속에 묻어두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어 우려를 감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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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산업부지 ‘매장유물 발굴’ 청원 

지역 원로학자, 안양사 7층전탑 등 매장 주장 안양시,...김중업박물관 등 조성사업 차질 예상 

 


2008년 01월 25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안양시가 근대건축가 김중업박물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조성을 추진하고 있는 유유산업 이전부지와 관련, 활용방안에 앞서 안양의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매장유물부터 발굴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만안구 석수1동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는 유유산업 이전부지에는 현재 신라시대 유물인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4호)와 고려시대 유물인 삼층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122호)이 복원돼 있으며, 예전부터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고려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안양사(寺) 터일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됐었다.


1월24일 지역원로이자 역사학자인 정덕한(65)씨가 안양시의회에서 제출한 유유부지 매장유물 발굴 청원은 지금까지 제기돼 왔던 역사학자 등의 견해를 근거로 하고 있다.


정씨는 “1960년 유유산업이 안양공장을 신축할 당시 현재 복원돼 있는 삼층석탑을 해체했다가 주민들에게 발각돼 원상 복구했고, 탑이 하나 더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면서 “학계에서도 이 부지에 고려태조가 창건한 안양사 터라는 추정이 제기돼 왔던 만큼 현재 문헌기록만 있고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안양사 7층 전탑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우선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또 유유측이 공장건설 과정에서 수집해 놓은 와전(瓦塼) 가운데 전탑(塼塔)의 탑전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포함돼 있다는 등 관련학자들의 주장을 20여 쪽으로 정리했으며, “시당국은 근대건축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에 앞서 안양의 역사를 바로세울 수 있는 매장유물 발굴부터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청원에 따라 시당국이 유유부지에 올해 9월 착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김중업박물관 등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에도 어느 정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본지 2007년 11월23일자 참조> 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주)유유와 240억원 3년 분할로 해당부지의 매입계약을 체결한 후 활용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조사를 지난해 말 완료했으며, 올해 1월 기본설계를 공모하고 6월 실시설계를 완료해 9월경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박물관건립을 위해 국·도비 62억원을 확보해 현재 각각 15억원을 배정받은 상태여서, 사업추진이 지연될 경우 지원받은 예산을 반납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당국은 만약 발굴조사를 하게 되더라도 국·도비지원 등 예산이 기수립된 사업인 점을 감안하면 기존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수적으로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유유부지 활용문제는 유물발굴과 이른바 건축박물관 건립 사이에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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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사 기와는 지역정체성 확보 ‘첫 단추’ 

발굴청원 없었더라면 영원히 묻혔을 것 

 안양의 정체성에 역사적 정당성 부여 완벽한 역사 복원위해 발굴 계속돼야 

 

2009년 10월 16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청원 통해 기와 발굴 이끌어낸 정덕한씨>

 


10월6일 끝난 유유산업부지 발굴 사업에서 ‘안양사(安養寺)’ 명문와편(이름이 새겨진 기와조작)이 발견된 것은 지역역사학자 정덕한(66)씨의 공이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양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유유산업부지에 김중업기념관 등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려 했지만, 사실 문화재 발굴 사업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집요한 연구와, 민간인 최초로 제기한 문화재 발굴 청원을 통해 이를 관철 시켜낸 이가 바로 정씨다.


정씨를 만나 이번 발굴의 의미와 이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이번 발굴에 큰 역할을 하셨는데. “10월6일 밤 11시에 이필운 시장으로부터 안양사 명문기와를 발견했다는 축하 전화를 받았다.


나 역시 안양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게 축하한다고 전했다.


두 사람 다 감격해 마지않았다.


까딱하면 땅속에 영원히 묻힐 뻔한 역사, 또 고스란히 묻혀 있던 역사적 유물들이 발굴됐다는 점에 너무나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안양사의 역사를 복원하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 이번 발굴의 의미는. “안양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고려 말, 조선 초 정치사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선 안양사가 문헌뿐 만 아니라 역사적인 실체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양의 정체성에 역사적인 정당성이 확인된 셈이다.


또 학문적으로는 우리나라 전통신앙, 불교, 유교 세 부류의 신앙이 맞부딪쳐서 충돌한 자리가 안양사란 점이 확인 됐다.


최영장군으로 발현되는 전통재래 신을 모신 지역결사, 김부식 이후 억불정책으로 파괴돼 땅속에 묻혔던 불교와 유교, 그 대립의 역사 현장이 밖으로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 - 이번 발굴에는 청원이 결정적이었다.


청원을 하게 된 배경은. “시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이라 처음에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이 기회가 아니면 발굴이 영영 이루어지지 못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김중업기념관 등이 조성되고 나면 안양사의 제 모습은 찾을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에 용기를 내 청원하게 됐다.


” - 이번 발굴이 완결이 아닐텐데. “기왕에 안양사 터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유유산업 기존시설을 처리하는 문제 등 발굴을 위해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열린 자세로 후속작업에 임해야 될 것으로 본다.


7층 전탑을 발견해 안양사의 완벽한 역사가 복원될 때 까지 발굴을 계속해야 한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도록 문화재청에 청원을 하는 방법도 있다.


” 박숭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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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부지 건설 강행 갈등 예고 

 시 “추가 발굴 더 이상 안 한다” 문화계 일각 “좌시하지 않을 것” 

 

2009년 12월 07일(월) 01:01 [안양시민신문] 

 


 

 

  안양시가 조만간 유유산업부지에 대한 복합문화공간 사업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안양시 신철 복지문화국장은 지난 12월2일 행정사무감사에서 천진철 의원의 질의에 대해 “지금 발굴하는 곳만 마무리 하고, 더 이상의 발굴은 하지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발굴 비용도 문제며, 현대건축거장 김중업 씨의 건축물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손을 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 국장은 이어 복원 방법으로 “안양사를 복구하는 방법, 현 상태로 보전하는 방법, 복토를 하는 방법” 3가지를 제시하고 “예산이나 사례로 볼 때 사적지 복원은 불가능하며, 박물관 겸 사적지로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과 관계자도 “발굴 뒤 복토한 후 안내판 설치와 미니어처를 박물관 내에 설치하는 안과, 발굴현장 위에 유리를 깔아 밑을 볼 수 있게 하는 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다.


시의 이런 방침에 대해 유유부지 발굴을 청원한 정덕한 씨는 “이런 방침은 시의 입장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며 “유적지를 덮고 복합문화공간으로 가려는 시도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최대한의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씨는 또 “그동안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고 정리가 마무리 단계”라며 “학계와 함께 상황을 반전시킬 방안도 마련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추경을 통해 마지막 예산을 편성, 유유부지 논란을 마무리하려는 시와 안양의 역사적 정체성의 복원을 요구하는 지역문화계의 논란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 시민들의 눈길이 쏠려있다. 


박숭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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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사 지속 발굴 VS 문화공간 조성 취사선택이냐, 절충이냐 안양시 고심 

 


지역문화계, 지속발굴 뒤 안양사 복원 검토 시·일부인사,


 발굴·문화공간 조성 절충 모색 

 


2009년 10월 23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올해 출범한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옛 유유부지에 추진 중인 복합문화공간 사업이 암초에 부닥쳤다.


이곳에서 지난 10월6일 안양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뒷받침해주는 안양사(安養寺) 기와조각(명문와편)이 발견됐기 때문.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안양사의 존재는 그동안 문헌(동국여지승람)에만 나와 있었을 뿐, 실재(實在)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은 이번 유유부지 발굴과정에서 나온 것이 최초다.


안양사의 존재는, 안양시의 역사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초 유유부지 발굴을 청원함으로써 발굴사업을 이끌어낸 정덕한씨<본지 356호, 2009년 10월16일자> 등 지역 문화계 인사들은 이를 계기로 ▲발굴 사업의 확대 및 연장 ▲안양사의 복원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부지에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마무리 한 뒤 2010년 11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 아래 세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안양시와 안양문화재단의 구상은, 이번 발굴로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 유유부지 문화재 발굴 어떻게 되나 유유부지가 안양사 터라는 주장을 줄곧 제기하면서 발굴을 청원한 정씨는 “추가적인 발굴을 통해 역시 문헌에만 나와 있는 안양사 7층 전탑도 발굴되기를 희망 한다”며 “안양의 역사적 정체성이 달려있는 사안이니, 궁극적으로 안양사 복원 등도 향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터의 유물 발굴을 맡고 있는 (재)한울문화연구원의 임정현 연구원은 “현재까지의 성과는 겉만 드러낸 상태”라며 “현재까지 발굴 과정을 보면 2개의 층위(層位)가 땅 속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런 경우 5~6년은 보통이고, 10년 이상 진행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안양시 입장 안양시 또한 ‘지속적 발굴’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필운 안양시장도 지난 10월19일 안양시의회 본회의에서 심규순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복합문화공간 조성 등 향후 계획은) 추가 발굴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문화예술과 관계자도 “(발굴 규모나 기존 건물에 손을 댈지 여부 등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로 “매장 문화재도 확인하고, (후대에 문화유산 될 수 도 있는) 지금의 건물도 보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복합문화 공간 리모델링과 발굴을 동시에 해야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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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민신문 칼럼>


 

 


안양사 명문와편 발굴이 준 교훈 

 


2009년 10월 16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옛 유유부지에서 ‘안양사’ 이름이 박힌 기와조각이 발굴된 것은 시민 모두가 반길 일이다.


안양시라는 명칭 자체가 안양사에서 비롯됐다는 측면에서 그 실체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와 함께 유유부지가 고려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안양사 터일 것이라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추정이 한층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번 안양사 명문와편 발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돌아볼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지만 60년대 당시 공장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적 자산들이 상당 부분 소멸되거나 묻히게 된 데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빵이 문화적 자산 보다 더 절박하고 절실했던 당시를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당시의 문화자산에 대한 일천한 인식과 부적절한 대응을 되돌아보고, 이제라도 이를 제대로 복원하거나 보존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침 옛 유적지를 깔고 앉아 있던 기업도 떠났고, 이 부지를 안양시가 확보한 터에 유유부지를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는 등의 새로운 무엇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급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이번 안양사 명문와편 발굴도, 복합문화예술공간 조성사업을 서둘러 진행했다면, 정덕한씨가 발굴청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칫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고 볼 때 우리의 서두름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하는 것인지 깊이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안양사 명문와편 발굴의 최대 공헌자인 정덕한씨는 기와조각 발굴이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과제가 많고, 또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 이번 일은 ‘안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첫 단추를 꿰었으니 이제는 후속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정덕한씨 또한 기왕 안양사 터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유유산업 기존시설을 처리하는 문제 등 발굴을 위해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바른 지적이며, 누구도 이를 마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양시는 정씨를 비롯한 시민 모두가 만족할 때까지, 그리고 이번에 실체적 존재가 인정된 안양사에 대한 완벽한 역사적 복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발굴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본다.


흘러간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유물들은 늘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한번 묻히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깊이 새겨야 한다.


거듭 정덕한씨의 열정에 기반한 안양사 명문와편 발굴을 크게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지역의 역사문화 유산들이 온전히 되살아나기를 시민들과 함께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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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와 함께하는 통합적 문화예술교육 

 


- 안양에서의 창의적 협업(Creative Partinership) 10 -


 


2013년 06월 03일(월) 11:24 [안양시민신문] 

 


 

 

  


안양, 땅속에 숨어있던 역사 점점 사실로


안양 예술공원 유유산업부지에서 ‘安養寺’ 새겨진 기와조각발견

 


이민선 안양뉴스  | 기사입력 2009/10/15 [05:29] 










 

    



  


















  

  

안양시 석수동 안양 예술 공원 안에 있는 ‘(주)유유산업 이전부지’ 에서 이곳이 고려시대 절 ‘안양사’ 였다는 것을 추정케 하는 기와 조각이 발견됐다. 기와조각 에는 ‘安養寺’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번에 발견된 기와 조각은 모두 4점으로, 32cm×25cm 크기며 글씨 크기는 7cm이고 안양시 지명유래의 근원지인 ‘안양사’ 실체를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안양시는 지난 6월18일부터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기와가 발견된 것은 지나 10월 6일, 발굴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점이다. 안양사가 새겨져 있는 기와조각은 승방지(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에서 발견됐다. 


안양시 ‘복합문화공간으로’...향토 사학자 ‘건물 철거하고 더 발굴해야’





 


▲ 안양사 가 새겨진 기와조각     © 이민선 

 


유유산업부지가 안양사 옛 터라는 주장을 제기, 발굴 작업을 해야 한다고 안양시에 청원한 사람은 원로 역사학자 정덕한(66) 씨다. 정씨는 지난 2008년 1월24일 안양 시의회에 ‘유유산업 부지가 안양사 옛 터 라며 매장 문화재를 발굴 해 줄 것’ 을 청원했다. 


이번에 발견된 기와조각 덕분에 정 씨 주장은 점점 사실이 되고 있다. 안양시장도 정씨 공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 씨에게 기와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이필운 안양시장이다. 


정 씨에 따르면 이 시장은 기와가 발견된 6일 밤 11시에 “기와 발견돼서 축하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잠들어 있는 문화재를 여지껏 몰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라며 그동안 노력을 치하 했다. 이에 정 씨도 “저도 축하 합니다. 시장님이 안양 정체성 찾는데 더 노력해 주십시오” 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안양시는 지난 2007년6월 (주) 유유산업 부지 와 건물을 240억원에 3년 분할 지급 조건으로 매입했다. 안양시는 이 부지를 기존 건물만을 리모델링하여 근대 건축가 김중업 박물관 과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 씨 생각은 안양시와 다르다. 정 씨는 “김중업 씨가 당초 지은 건물 외에는 모두 철거하고 좀 더 세밀하게 발굴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특히 ‘7층 전탑 잔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건물(김중업이 지은 건물 옆)은 빨리 철거하고 발굴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층 전탑은 옛 안양사 역사 와 실제 위치를 규명 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7층 전탑은 12각형 모양으로 지름이 약10m 높이가 약 50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시기는 고려 태조 대 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까지 그 탑 자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60년 유유산업 신축당시 출토된 기와나 벽돌 조각 중에 전탑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물이 다수 나왔다고 전한다. 


‘안양사’ 는 안양 정체성 찾는데 중요한 유적





 


▲ 향토 사학자 정덕한(66), 그동안 발굴한 유물     © 이민선 

 



‘안양사’ 는 안양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안양사 는 고려건국 초기에 수 천 명 이상의 많은 승병(僧兵)이 거주 했을 것이다. 때문에 굉장히 큰 규모로 지어졌을 것” 이라고 말했다. 승군은 사찰을 본거지로 유지되는 지역 결사체로서 지역 주민 시주와 왕실 지원 아래 운영 되었다고 전한다. 


안양지역 승군은 고려 건국초기 과정에서부터 고려 후기 최영 장군이 이성계와 마지막 전투를 벌인 ‘화원전투’ 에 까지 등장한다. 승군은 고려 왕권을 지키는 유력한 군사력 이었다. 건국당시에는 반 궁예 쿠데타 군으로 활동했다. 최충헌 무신 정권 때는 왕권 수호 전투를 벌였고 최영 의 개성수호 전투 때는 이성계 군과 맞섰다고 정 씨는 전한다. 


최충헌 무신정권 때 왕권 수호 전투에서 패한 뒤 안양사는 무신정권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 되었다. 그 후 최영 장군이 다시 복원했다. 


옛 안양사는 왕건 집권 후 4년 전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 씨는 왕건이 건국 과정에서 고려 건국에 뜻을 함께한 능정(能政)이란 스님 을 위해 ‘안양사’ 를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다. 60년 가을, 유유산업 신축당시 정 씨는 시흥군(당시 안양지명) 청년학생단체 협의 회장 자격으로 시흥군에 공장 신축허가 취소를 요구 한 적이 있다. 

  

국보급 유물이 두 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유물인 중추사지 당간지주(보물4호) 와 고려시대 유물인 삼층석탑(경기도 유형 문화재 122호)이다. 당시 시흥군수는 “한번 시행된 건축허가 취소는 불가능 하며 해체된 삼층석탑은 이전 복원하고 추후 공장 건축과정에서 출토되는 역사 유물들은 철저하게 수집 보존키로” 했다. 


유유산업이 들어선 후 에는 더 이상 유물 발굴을 요구 할 수 없었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지은 공장이었기 때문. 지난 2008년 매장유물 발굴을 요구 한 것은 유유산업 부지가 안양시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안양(安養), 안(安)양(陽)으로 바꿔야 한다"

원로 역사학자 정덕한(65)씨 안양 유유산업 부지 발굴 청원


08.02.04 15:18l최종 업데이트 08.02.04 15:18l

이민선(doule10) 



3층석탑(좌) 중초사 당간지주(우) 

 “安養(안양) 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2월2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 예술 공원내 ‘(주)유유산업 이전부지(이하 유유산업)’에서 안양지역 원로 역사학자 정덕한(65)씨를 만났다. 정씨는 안양 예술공원 내 ‘유유산업’에 매장되어 있는 유물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양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묻혀 있다는 것. 지난 1월24일 정씨는 안양시 의회에 유유산업 부지 매장 유물 발굴할 것을 청원했다. 


 


정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이다. 60년 가을, 유유산업 신축당시 정씨는 시흥군(당시 안양지명) 청년학생단체 협의 회장 자격으로 시흥군에 공장 신축허가 취소를 요구 한 적이 있다. 국보급 유물이 두 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유물인 중추사지 당간지주(보물4호)와 고려시대 유물인 삼층석탑(경기도 유형 문화재 122호)이다.  유물은 현재 유유산업 내에 전시되어 있다. 


 


당시 시흥군수는 “한번 시행된 건축허가 취소는 불가능 하며 해체된 삼층석탑은 이전 복원하고 추후 공장 건축과정에서 출토되는 역사 유물들은 철저하게 수집 보존키로” 했었다. 


 


유유산업이 들어선 후 에는 더 이상 유물 발굴을 요구 할 수 없었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지은 공장이었기 때문. 이번에 매장유물 발굴을 요구한 것은 유유산업 부지가 안양시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2007년6월 안양시는 (주) 유유산업 부지 및 건물을 240억원에 3년 분할 지급 조건으로 매입했다. 


 


안양시는 이 부지에 있는 기존 건물만을 리모델링 하여 근대 건축가 김중업 박물관 등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정씨는 “안양 정체성 규명하는 데 중요한 매장유물을 발굴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정씨는 유유산업 부지에 안양사7층 전탑 잔해가 묻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7층 전탑은 옛 안양사 역사와 실제 위치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7층 전탑은 12각형 모양으로 지름이 약 10m 높이가 약 50m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시기는 고려 태조 때임이 분명하지만 현재까지 그 탑 자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60년 유유산업 신축당시 출토된 기와나 벽돌 조각 중에 전탑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물이 다수 나왔다. 


 


정씨는 현재 중초사지 터인 유유산업 부지가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는 ‘안양사(安陽寺) 터 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그동안 많은 역사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바로 안양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안양사 7층전탑이다. 


 


'7층 전탑' 은 안양 역사 밝히는데 중요한 유물 


 




유유산업 부지 앞 안양천 공원 조성 사업당시 나온 주춧돌 모양 바위 

 


 


‘안양사’는 안양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안양사에는 고려건국 초기에 수천명 이상의 많은 승병(僧兵)이 거주 했을 것이다. 때문에 굉장히 큰 규모로 지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승군은 사찰을 본거지로 유지되는 지역 결사체로서 지역 주민 시주와 왕실 지원 아래 운영 되었다고 전한다. 


 


안양지역 승군은 고려 건국초기 과정에서부터 고려 후기 최영 장군이 이성계와 마지막 저투를 벌인 ‘화원전투’에 까지 등장한다.  


 


안양지역 승군은 고려 왕권을 지키는 유력한 군사력이었다. 건국당시에는 반 궁예 쿠데타 군으로 활동했다. 같은 백제 출신인 개성 왕건 세력과 함께 고려를 세워야 한다는 건국이념으로 함께 뭉쳤기 때문이다. 최충헌 무신 정권 때는 왕권 수호 전투를 벌였고 최영의 개성수호 전투 때는 이성계 군과 맞섰다.


 


최충헌 무신정권 때 왕권 수호 전투에서 패한 뒤 안양사는 무신정권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최충헌 아들 최이가 안양산 에 있는 침엽수를 개성에 있는 자기 집으로 옮기면서 여기에 동원된 연도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전한다. 그 후 최영 장군에 의해 다시 제 모습을 갖춘다. 


 


옛 안양사는 왕건 집권 후 4년 전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는 왕건이 건국 과정에서 고려 건국에 뜻을 함께한 능정(能政)이란 스님 을 위해 ‘안양사’를 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능정을 위해 중초사 터를 넓혀서 대규모 사찰과 칠층 전탑을 세우고 ‘안양사’라 절 이름을 고쳤을 것이라는 것. 능정은 왕건과 함께 안양사를 세운 스님으로 전해진다. 


 


‘안양사’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산 27, 28번지, 삼성산에 위치하고 있다. 정씨는 현재 안양사 위치로 볼 때 옛 안양사지는 유유산업 부지가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옛 '안양사' 승군 본거지 였기 때문에 큰 규모 였을 것


 





정덕한(65세) 씨 

 



 


정씨는 安養(안양)의 본래 지명이 安陽(안양) 이라 생각한다. 기를 양(養) 이 아닌 볕 양(陽) 이라는 것. 안양사 창립 당시 볕 양자를 썼고 이후 천년 세월을  ‘安陽’으로 불리웠기 때문. 조선 말까지 지명이 안양(安陽)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안양(安陽) 이 안양(安養)으로 바뀐 것은 일제시대다. 일본인 토호 ‘오끼이’라는 사람이 최초 안양(安養)이란 지명을 사용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안양(安養)이라 표기되고 있다. 오끼이는 일제 강점기에 안양 땅을 많이 소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지명인 안(安)양(陽)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안(安)양(陽)을 300년 전에 사라진 만주어로 풀이 해 보면 ‘늘 나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다’라는 뜻이다. 안이 ‘늘’ 이라는 뜻이고 양 이 제사 지낼 때 쓰는 불(관솔불)을 의미한다. 정씨는 백제를 세웠던 선조들을 기리며 제사를 지냈던  장소였기에 ‘안양’이라는 지명이 붙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실례로 중국에 있는 ‘안양(安陽)’을 들었다. 은나라 조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제사 지내던 곳이 바로 안양이다. 안양이라는 지명은 ‘제사터’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씨는 지난 60년부터 만주어를 공부해 왔다. 만주어는 고대 북아시아 기층언어고 훈민정음도 만주어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원로 역사학자 정덕한(65)씨와의 대화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 듣는 것처럼 흥미 있었다. 또,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해박한 만주어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서 주장하는 바가 매우 설득력 있었다.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를 보는 거울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바로 세우는 일은 현재 우리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반듯한 거울을 만드는 작업이다. 반듯하고 투명한  오늘 과 내일을 위해 역사 제대로 규명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