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600

[조성현]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사업 제안(2023.02.07)

안양시 시 승격 50주년 기념사업 제안ㅡ ㅡ안양 1번가 등 지역명소화 사업 육성 방안ㅡ 안양 일번가내 옛 안양읍사무소 터 등 관아지에 청사사진을 곁들인 관공서 터 표석(안내판) 설치 방안 안양읍이 ㅡ시로 승격(1973) ㅡ 안양시 행정사(시청사)의 한축인 안양읍사무소 터 등에 표지석 설치(청사사진, 플러스) 방안 1905년 경부철도 개통 및 안양역 운영과 함께 시흥군청 등 곳곳의 다양한 공공건물(공공 건축) 입지는 안양역 인근 부지를 안양의 행정 중심인 안양ㅣ번가로서 자리 매김을 하는 기틀을 다진다 ㅡ 현재 안양 일번가는 그많은 공공시설물군이 역사의 뒤안길로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ㅡ 과거 안양 1번가에는 관제 안양행궁지(대궐터) 이외에 관제 안양읍사무소 터 시흥군청지, 안양경찰..

[최병렬]안양소방서 망루 근대문화유산 지정해야(2023.02.03)

2023.02.03/ #도시기록 #안양소방서 #안양6동 #소방망루/ 전국에 몇개 남지않은 소방망루중 하나. 근대문화유산깜.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에 있는 안양소방서 안양119치안센터에 있는 소방 망루입니다.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요즘과는 달리 예전에는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서면 시야가 넓게 트여 불이 나면 현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하루종일 화재를 감시하던 탑을 '소방 망루'라고 하는데 이제는 다 없어지고 경기도에 딱 하나 전국에 두개가 남아있다고 합니다.망루에는 망루 요원이 24시간 주·야로 파수꾼 역할을 하면서 화재를 감시하고 화재징후가 있으면 타종과 싸이렌을 통해 화재발생을 알리고 출동대원에게 이를 신속하게 알리는 역할을 했지요.기록을 보면 한국역사상 소방이라는..

[임희택]더이상 새벽에 듣기 힘든 추억의 소리(2022.11.24)

더 이상 새벽에 내 방에서 듣기 힘든 추억의 소리 셋. 망해암의 새벽 종소리...데~ㅇ 중앙성당의 정오 종소리 양명고 앞 철교 기차 지나는 소리. 새벽에는 유난히 크게 들려서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 걸까 상상을 하곤 했던... 이제는 소리를 가리는 건축물, 소음 등으로 듣기 힘들고 무엇보다 새벽에 깨어 있을 일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추가로 우리집 앞 골목에서 우다다다 뛰며 떠들던 꼬맹이들 소리... 이제는 꼬맹이들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아. 고령화, 다민족화? 노인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대다수.

[박찬응]둠벙을 찾아서 월암 표류기(2022.11.23)

둠벙을 찾아서 월암 표류기 월암마을과의 인연이 올해로 3년 차다. 월암벌에 펼쳐진 논과 밭과 왕송못에 반해 2020년 2월에 곳으로 이사를 왔다. 마지막 정착지라 여기고 그해 가을부터 이라는 노래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지인들에게 공공연히 이곳이 나의 마지막 거주지임을 공언하고 다녔다. 2021년 어느 날 뉴스를 통해 대규모 신도시개발에 월암마을이 포함 되는 걸 보았다. 동의도 없이 떠나 줄 것을 통보 받은 셈이다. 또다시 떠다니는 신세가 되어 유유히 달바위골에 깃들여 살고가 하는 꿈은 허망한 꿈이 되었다. 월암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밤과 낮, 과 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들어가서 보고 걸으면서 본 것들을 그렸다. 얼마후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떠나겠지만 사는 동안 만이라도 그림으로 된 노래'..

[최병렬]안양에 붕세권이 어디 있는지 알아볼까요(20221115)

붕어빵 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오래전에는 보통 5개에 1000원, 작년에는 5개에 2000원이었는데 올해는 보통 2개에 1000원 받습니다. 사실 식자재값 상승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저렴한 가격으로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었던 겨울철 대표 간식이었던 만큼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올 겨울이 많은 시민들에게 따뜻하길 바라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는 밤입니다. 붕세권 찾으러 떠나야할때가 온건가,,, 붕어빵의 계절입니다. 느티나무 잎새가 떨어져 찬바람에 날릴 때쯤 겨울의 입구에서 붕어빵은 필수 아이템이지요 집에 가는길 멀리 붕어빵을 굽는 모습이 보이면 그야말로 올림픽 성화같은 붕세권입니다...

[최병렬]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안양9동 삼거리마트 간판 내리다(20221102)

2022.11.02/ #도시기록 #삼거리마트 #안양9동 #병목안 #SINE1930 #192년/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삼거리마트가 간판을 24시 체인점 CU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안양에서 역사 하나가 사라졌다. 안양9동 병목안삼거리에 자리한 삼거리마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문을 연 곳으로 기록상으로 192년 된 가게다. 2021년 만안구청에서 구청장과 함께 동네한바퀴를 추진하며 작성한 자료를 보면 100년전 처음엔 1층짜리 집에서 삼호상회라는 이름으로 구명가게를 시작했는데 막걸리, 식료품, 잡화 등을 팔았다고 한다. 아마 병목안 채석장에서 남포(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암반을 깨트리고 자갈을 만들던 노동자들이 주고객 아니었을까 싶다. 구멍가게 삼호상회가 있던 단층집은 1999년 집을 허물고 그 자리..

[최승원]안양 수리산 동편자락은 근현대 명당터(2022.09.12)

수리산동편자락 명당터 (근현대) 단사천집터 한국현금최고보유자였다. 현대정주영이 거래함 전한국특수제지사장 안치상 집터 안양지역부자 전부흥산업사사장 윤필노집터 안양부자 안양양조장소유 후에 신병원터 #수리산 #단사천 #안치상 #윤필노 #한국특수제지 #부흥산업사 #안양양조장 #안양양조장 - 둘러보기 explore #안양양조장 at Facebook www.facebook.com 정리자(글) 최승원 건축가 *교육부 실업계 교과서 심의위원 *국립중앙박물관회 평의원 *홍익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역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및 분과위원장역임 현; 전업건축가.. 최승원건축도시문화연구소 소장 수상; 아카시아건축상 골든메달 (아시아건축상) 천안티센쿠룹프공장(독일공장) 문화관광부장관상- 안양샘병원( 8동)..

[최승원]일제강점기 안양지역 토지소유 및 생산 & 토지희사(기증)관계(2022.09.13)

일본강점기안양지역토지소유및 생산종류& 토지희사(기증)관계 ***오끼-대농장-포도를 인분으로 재배시작 안양2동일대,안양역뒤(물이 많은 미나리밭) ***안상호-고종의 전의 희사 구시장일대, 남부시장일대 아들인 안정호 치과의사 안양중학교건립에 10만평 희사 **다카세세타로 1만평조선직물토지 희사. *애스에-배밭 중앙시장 근처 *나가끼-묘목-안양6동근처 *후지다-묘목 만안구청근처 *장기-묘목 배밭 극장앞 *다기사와지-산본리일대 크게 묘목사업 배재배 *산본리 이규응(이재형부친 부농) *안강-배밭.포도밭 *가제마-배밭 *고바야시-농장 *박성진박사-범계족 부농 *마쓰모도-안정원이 소작 출처:안양근혀대구술자료 성결대학교 안양학자료집6권'.안양시사'참조 #오끼농장 #안상호 #안정호 #조선직물 경성보육원 15만여평 포도 ..

[최승원]안양역광장 1953년 도시계획 서울시청 광장 규모였다(2022.10.08)

6.25전쟁이 휴전회담중인 1953년3월 안양도시계획안이 공포되었다. 역전광장이 폭약120mx길이약233m2 면적이 30,000여m2 너무 넓다고 7.29선거때 뽑힌 안양시 의회에서 안양역전 도시계획을 현재와 같이 줄였다. 삼창정미소가 로비하여 이리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정미소자리는 IMF여파로 부도 되어 30여년이 페허로 방치되었다. 안양로도 50m계획시 넓다고 해서 35m로 축소 되었다. 도시계획은 100년을 보고 해야하는데 소극적 생각으로 협소하게 되었다. 임시터미널이나 서울시청앞광장 같이 되는 것을 놓치었다. 근현대사구술 안양학연구소 문원식교수 구술자 :변원신 장석재 정덕환 정봉수 2006년 #안양시도시계획 정리자(글) 2015.9.5. 최승원 건축가 *교육부 실업계 교과서 심의위원 *국립중앙박..

[최승원]근대 안양서 활동한 시인.소설가.평론가(2022.10.)

나혜석 이무영 채만식 박두진 이서구 정귀영 한용운 근대 유명한 서양화가 나혜석은 불우한 처지에 빠지자 오긍선박사의 배려로 1940년대말 안양 경성보육원 농막에 거주한다. 이시기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원내있었다. 이시기 오긍선박사는 불우한 생활을 하던 김명순을 국내로 데려오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사진] 나혜석조카 나영균(이대교수역임 영어영문학자) 피난지 출처:일정치하의 나의가족 소설가 이무영은 1935년 5월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재직하다가 1939년 7월 퇴사하고 경기도 시흥군 군포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하였다. 이 시기 이무영의 대표작이자 농민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제1과 제1장」(1939), 「흙의 노예」(1940)를 발표하였다. 1940년 4월 안양 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