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587

[주혁]과천과 군포에 울려 퍼진 3·1운동(2019.06.18)

중부일보 기사입력 2019.06.17 22:27 [그날의 흔적을 찾아서] 3·1운동은 근·현대 100년 관통한 역사의 큰 물결이었다 글 전문보기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1047 보편·중앙에서 비롯되어 특수·지방으로 확산 일제 식민통치에 맞서 국내외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저항운동은 운동의 지향점(이념), 보편과 특수, 중앙이란 명망성과 지방이란 구체성과 특수성, 그리고 현재 우리 삶에 미친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그 중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에 걸친 1919년 3·1운동은, 일제에 기생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전 계층과 집단 및 개인이 떨쳐 일어선 거대한 흐름으로 근현대사..

[최승원]안양 2동 변천과 건축물 이야기(2019.06.14)

최승원 건축사는 1945년생으로 서울(종로구)에서 태어나 5살때 안양으로 이사를 와 시대동(현 안양1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안양초교와 삼성초교(5회), 안양중학교(12회)를 다녔다. 교육부 실업계 교과서 심의위원, 국립중앙박물관회 평의원, 홍익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분과위원장, 앙가주망건축사무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최승원 건축도시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본백화점 갤러리에서 최승원건축전을 개최했으며, 1998년 아카시아arcasia건축상 골든메달(천안티센쿠루프)수상했다. 건축 현장에 돌아다니는 나무조각을 수집하여 조형물을 만들던 취미가 이제는 제2의 인생 작업이 되어 부인인 신영옥 섬유공예작가와 부부작품 전시회를 수차례 ..

[최승원]안양 옛 지명을 회복하자.(2019.02.11)

안양 옛 지명을 회복하자.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의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지명에 훼손이 시작 된다‘ 1905년 안양역 개통시는 安陽역으로 사용하다가 강점후에는 古名이지만 安養역으로 바꾸었다. 이는 일제의 지명 개명의 시작이다. 1890년대의 안양촌이 안양역에 작은 가계가 생기면서 安養里가 되었다. 볕양은 생육에 관계되는 한자어로 밤이나 포도등 생육에 관계되는 것이다. 1911년 일제강점기 안양의 아름다운 이름이 사라진다. 꽃뫼 갈산 (일동). 석길벌 -석길평 (군내동). 금배벌 黙庵坪 (군내동). 꽃창이벌 충坪(안양리) 욧벌 了坪 (박달리) 박뫼주막 博山酒幕(군내동). 범고개주막 虎峴酒幕 (박달리). 한우물 天井 (군내동). 돌팍재 石坡峴(군내동). 옹기 土器. (박달리) 벌말 坪村(一洞..

[최영일]안양의 옛지명은 되돌아와야한다.(2006.06.07)

안양의 옛지명은 되돌아와야한다. 최영일 | 2006.06.07 안양광역신문 기고에서( http://anyangnews.net/bbs/bbs.asp?exe=view&group_name=317&section=9&category=3&idx_num=6407&page=1&search_category=&search_word=&order_c=strWriter&order_da=asc)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법이나 제도의 개정이 우리나라처럼 심하게 이루어지는 나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이루어진 법제도의 개정은 어떤 형태의 논리에서인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시행해 왔으며 이런 개정문화에 우리는 상당히 익숙해있다. 법제도가 있으면 정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얇팍한 논리에 의해 쉽게 쉽게 잘도 바꾼다. 이렇게 쉽게..

[최승원]서이면사무소 이전의 비극(2019.04.07)

이전의 비극 서이면사무소 안양리이전 비극의 씨앗이다. 만안교이전 가치하락 안양사터 삼층탑이전 등급하락 적산도 보존시대 중국 일본침약사 지워지지 않는다. 공존을 연구로 항일정신 키우자. 베트남 침략시설보존 참고하자. 일번가 고층화는 일번가 파괴 차가 많이 다니게 되므로 도로확대가 어렵다. 상하수도 투자급증 주차장 없는 도심, 차없는 거리확대 만안은 균형발전이아니라 "만안답게"!! 일번가 상권 유지 필요 서이면사무소 친숙한 갤러리로 용도변경 야간조명강화로 "유일한 한옥" 공존을 모색해야한다. 2019.04.07 雲齋건축연구소 소장 최승원

[최승원]안양, 문화유산 위치 변경 가치 하락시켰다 (2019.03.02)

문화시설 기존 현대건축과 공존이 필요하다. 독립문이 고가도로 설치로 이전 되고 이미지가 떨어졌다. 안양시는 1) 중초사지 3층석탑 위치변경으로 등급하락. 2) 1914년 호계리에 조형된 서이면사무소 1917~49 년 이전 확대 재건축으로 문화가치 하락. 3) 튼튼하고 아름다운 만안교 이전으로 전문가 평가 하락. 4)만안도서관 옆 원태우조형물 이전 계획 발표.(설치 조각자 반대필요) 이전마다 주민 반대 없이 무의식적으로 지나친다. 위치변경 중병이다. 상황 따라 돌림 빵으로 이리저리 보내는 문화시설이 아니다. 설치되면 미우나 고우나 공존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수이다. 고대는 산지로 둘러싸인 盆地적 병폐, 현대는 위성도시 베드타운 병폐 안양의 문화의식의 한계를 벗어나 문화가 높은 도시를 만들자. 2019.03...

[최병일]군포장터와 원태우 지사 조형물, 안양시의회 5분 발언(2019.04.26)

3․1만세운동 현장인 구 군포장터와 항일독립운동가 원태우 지사 조형물에 대하여 ○최병일 의원 존경하고 사랑하는 안양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갈산․귀인․범계․평안․평촌 지역구 출신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최병일입니다. 먼저 저에게 5분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신 김선화 의장님께 감사드리며 의정활동의 동반자인 동료 의원님, ‘스마트 행복도시 안양’을 위해 애쓰시는 최대호 시장님을 비롯한 공직자 여러분, 정론직필에 애쓰시는 언론인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제 발언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신 황의형 광복회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 감사의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실버포럼 박종섭 단장님과 회원 여러분! 부흥초등학교 4학년 2반, 4학년 6반 학생들과 김춘화․김재화 선생님, 또 모니터를 통해 방청하시는 ..

[최승원]안양 6.8동 근현대 건축물 여행 자료(2019.04.13)

[ 최승원 건축사의 안양6동 소개글 ] 修理山 東便동편 마을 安養市 萬安區 안양8동 안양6동 답사 안양지역은 서남부 중심도시로 풍광이 좋은 도시입니다. 시흥군의 군청소재지 안양읍을 거치면서 근현대 공도(工都)로 형성 되면서 좋은 건축이 여럿 존재합니다. 건축사(建築史)에 나오는 김중업 나상기등 유명건축가들이 여러 명 설계 시공 감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방치되고 철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3.1 운동100주년기념을 기하여 건축문화를 지속적 답사문화로 이어나가 마을을 재생하고 풍성한 아트시티로 유토피아를 조영(造營)하고자 3.1독립만세 100주년을 기하여 안양 근 현대건축중심으로 ‘건축과 문화’ 답사를 시작합니다. 1차로 수리산 동편자락 안양6동 8동을..

[최승원]군포에 대한 조사(2019.04.16)

군포 이야기(건축사 최승원) 군포 軍浦 포浦는 강변 해안마을의 뜻이고 (예:永登浦읍) (서울시 지명사전에서) 당동堂洞 옛날산제를 지내던 당堂(집당)이 있던 데서 이름이 유래 堂山 新黨 舍堂 등은 무속과 관계되는 동리명 경부선 계획시 군포장역 계획이 현위치로 노선변경으로 군포역 형성. 1885년 대원군은 밤새 군포장경유 마산포(화성시 송산면 고포리)로 끌려가 하루를 묵고 청군군함 등영주 1258t 9.1 텐진 도착 수리 산의 위치는 동경 126°50″∼126°55″, 북위 37°20″∼37°24″이고 37도~38도 사이가 전쟁 시 공방이 치열한곳 터키군 수리 산 공격 높이는 469m이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의 명산으로 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며 산곡이 깊었다. 전체 면적 36.155㎢ 중 안양시가 1..

[최병렬]옛 군포장터(안양 호계동)에 항일운동 표지석 설치해야(2019.04.15)

옛 군포장터(안양 호계동 구사거리)에 항일운동 표지석 설치해야 한다 100년전 1919년 안양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된 것을 아시나요? 군포시가 군포장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만세운동을 적극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 이 만세운동은 당시 군포장이 자리했던 안양 호계동 호계구사거리에서 시작돼 경찰관주재소가 있던 군포역까지 행진하며 펼친 것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상 안양.군포.의왕으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 시흥군 주민들이 함께 벌인 만세운동이라 할수 있다. 군포시와 국가보훈처 및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1919년 3월 31일 열린 군포장(軍浦場, 5일장)에서는 독립을 열망하는 인근 지역(현재의 군포, 안양, 의왕) 거주민 2천여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펼쳤다. 당시 만세운동 참여자들은 군포장(현 안양시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