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6/ #도시기록 #안양 #골목 #동네/ 안양6동 골목을 지날때 마다 미소를 짓게합니다. 골목 한켠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 담벼락에서 안양포도가 구술알 맘큼 점점 커지고 익어가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안양시가 만안구 특화사업으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마다 포도묘목을 무료로 분양해 포도나무가 자라는 골목을 만들면 어떨까요.
교과서에도 실렸던 '안양포도' 를 아십니까.
'포도'하면 '안양'이라 말할 정도로 1970년대만 해도 9월이면 서울사람들이 포도를 맛보러 몰려왔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물론 호계동에는 포도원이란 지명이 있을 정도로 안양시내 잔역에 대규모 포도밭이 있었다.
'안양 포도’는 부천의 복숭아, 수원의 딸기와 함께 지난 70년대 '경기삼미(京機三味)로 불리며 교과서에도 실렸었고, 1967년 9월 15일 경기도 안양 경향포도조합에서 국내 최초 양조포도주를 생산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안양포도는 명물이었다.
엣기록인 1950년대 발간된 ‘금천지’에는 ‘구,안양유원지(현,안양예술공원)일원에 큰 포도밭들이 늘어져 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유원지일대에 안양포도가 명물로 사랑받으며 성가를 누리며 성황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 6월 5일 매일신보(수필문학 Essay)에 기고된 채만식(蔡萬植), 안양 복거기(安養 卜居記) 중에는 “여름 한철이면 푸울(pool)과 포도와 수박으로 그밖에도 관악산(冠岳山) 하이킹의 초입 처로 두루두루 서울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그 안양”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1940년대에도 이미 안양포도는 서울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우리시 특산 명품임을 알 수 있다.
안양의 명물, 안양포도는 일제 강점기 ‘오끼’, ‘야스에’와 같은 일본 영농인들이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묘목을 가져다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안양포도가 첫걸음을 내 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로 듣는 안양근대사 (안양학자료집 제6권, 성결대안양학연구소 2006, 발행일 2006.12.31. 편집인 문원식 성결대교수)’를 살펴보면 대 부농 ‘오끼’는 안양 2동지역에서 선진농법을 도입 안양 최초로 포도를 재배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야스에’농장은 안양중앙시장 뒤 4동 파출소 인근에 있던 것으로 안양원로들은 증언하고 있다.
고인이 되신 고,변원신 선생(1933~2015, 前안양읍 안양3리 이장)은 생전에 “일제 때 안양역세권을 중심으로 다수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농장과 회사가 운영됐는데 ‘오끼’라는 일본인이 안양 최초로 포도를 재배했다”고 밝힌 바 있다.
평촌지구에서 포도농사를 지은 최갑환(1924년생, 안양초교 7회졸업)선생 및 안양의 원로 김진행(안양초교 2회졸업) 선생은 당시에는 비료가 없어 인분으로 포도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안양시내 포도밭 주변에는 인분을모아 삭히는 웅덩이들이 곳곳에 있었으며 금성방직, 태평방직 등 대규모 회사들의 인분을 처리했다
안양의 포도밭은 한때 892㏊(27만평)에 달할 정도로 그 생산량이 많았다. 안양 포도가 맛있는 이유는 안양이 분지로 관악산과 수리산, 삼성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람이 적고 일교차가 큰 기후에다 석회암층 알카리성 토양이 최적의 재배 조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안양포도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같은 품종의 포도보다 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비결중 하나는 ‘포도 알 솎기’에 있다고 한다. 자연적인 포도송이는 120알 정도의 포도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만, 튼실한 60알 정도만 남기고 ‘알 솎기’를 해서 햇볕을 골고루 받게 하여 포도 알을 굵고, 단맛을 강하게 한다는데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실제 포도를 재배한지 세월이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부 생산되는 안양포도는 당도가 매우 높아 '캠벨'의 경우 보통 포도의 당도가 15~16도인데 비해 안양포도는 19도까지 나올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해 고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2000년대 초 안양시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의뢰하여 재배농가의 토양과 수질, 당도 측정 등 까다로운 검사를 실시한 결과 '품질인증'을 받을 정도로 안양포도는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과거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우수 품종들이다.
하지만 80년대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안양포도가 점차 자취를 감추자 안양시는 1995년 '안양포도'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품질인증과 고유의 디자인을 넣은 포도 박스 등을 지원했으나 안양 도심은 물론 변두리까지 급격한 도시화로 포도를 재배할 땅이 없는 상황으로 변하고 말았다.
안양 하면 포도가 연상될 정도로 성가를 누리며, 당시 손꼽히는 포도 주산지였지만 이제는 기성세대도 아련한 기억속에서 흐릿할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으며, 안양시민 대다수가 안양포도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래도 안양포도에 대한 추억을 간직이라도 하듯 안양시는 시 홈페이지에 '안양포도'를 안양명물로 소개하고, 시의 상징 마스코트로 ‘포동이를 아직 사용중이고, (사)한국미술협회 안양지부에서는 ‘포도미술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안양시 호계3동에는 옛 자연마을 ‘포도원’ 지명을 사용하고있다.
안양포도는 현재 인덕원사거리, 비산동 관악산둘레길 입구 등 2-3곳 정도의 농가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캠벨, 청포도, 힘노드씨드레스, 다크, 델라웨어 등을 소량 생산하고 있는데 면적이 적다보니 생산량도 아주 적다. 그렇기에 산지에서만 구입할 수 있어 농가에는 단골고객들의 발길과 주문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2024.09.10 안양시로부터 입수한 안양 포도 재배농가]
1. 유원지포도원(석수1동225-1)
2. 그린포도원(석수1동 389-23)
3. 비봉포도원(비산3동 140)
4. 인덕원포도원(관양1동 141-3/ 010-3765-9170)
5. 대양포도원(관양2동 155/ 031-423-5219)
2024년 9월9일 확인 결과 -문 닫거나 전화받지 않는곳이 많다는 정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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