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587

[구봉산]의왕시 미술장식 심의위원회와 공공미술

[구봉산]의왕시 미술장식 심의위원회와 공공미술 [2004/09/10 의왕시홈피자유게시판] ‘건축물 부설 문화예술장식품’이란 게 있다. 즉, 일정규모(연면적 1만m², 층수 10층) 이상의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건축주가 건축비의 일정 비율(현행 0.7% 이상. 단 건물의 소재지, 종류, 규모에 따라 차등적용)만큼 돈을 들여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준공허가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미술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제도는 198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돼 전국 도시에 적용되고 있다. 설치 건수와 금액을 보면, 2002년의 경우 전국적으로 747점에 515억원 상당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작품당 평균 6900만원꼴이다. 우리 미술시장의 거래액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515억원이면..

[최승원]안양시 패션 산업의 시스템

[최승원]안양시 패션 산업의 시스템 [2004/09/07 시민연대]성균관대 교수.건축사 안양의 근대산업을 이야기 할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스포츠 레져 산업으로 안양 Pool 과 (포도), 금성방식 등 섬유산업이다. 물 좋은 청천(맑은 내)이던 안양지역은 1950년대 이후에도 섬유와 종이 같은 화이버 계열의 산업이 주종이었다. 그리고 안양에서는 국내 유일의 염색교육이 시작된 도시이며 효성 T&C(구 동양나일론), 대농, 동일 방직 한국 특수제지 삼덕제지등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패션 장식 비즈 계열로는 안양초자(문형렬)가 있었으나, 도시화와 노동운동격화로 격감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동양섬유 등이 남아있고 구 반도패션(평촌동)이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퇴조하는 과정은 이태리와 비슷하나 식민지 산..

[네티즌]주민자치 진정 요원 한 길인가?

[네티즌]주민자치 진정 요원 한 길인가? [2004/09/04 성남일보]지역유지와 동장의 커넥션 끝낼때 [네티즌칼럼] 풀뿌리 기초 자치 단위인 동 행정이 드려다 보면 볼 수록 한심하기가 짝이 없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역사는 2004년인 금년을 기준으로 10여 년이 조금 넘게 운영되어 왔다. 지난 1952년 최초로 지방자치가 시행되다, 여러 정략적 사정으로 중단 된지 30여 년 만인 1991년 다시 시작되어 운영 된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과 함께 다시 시작된 자치제도가 지금까지 십여 년이 넘도록 운영되었지만 아직 어설프고 한심한 절름발이의 모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지방자치제도의 실시 기간이 일천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옛말에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라 했다...

[김대규]‘신성학원’

[김대규]‘신성학원’ [2004/09/03 안양시민신문]발행인 요즘의 한국사회에서는 보수·진보간의 이념전쟁이 한창이지만, 이 세상에는 말만 꺼내면 곧바로 논쟁으로 이어지는 화제가 셋이 있으니 정치, 종교, 남녀 이야기가 그것이다. 사실 이데올로기도 정치에 속한 얘기다. 내가 이번에 쓰고자 하는 것은 최근에 우리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신성학원’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참 조심스럽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선은 지역내의 일이고, 학교재단 변동사안은 별개의 문제이며, 특히 교육기관의 현안은 그 속성상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는 것이 공익을 위한 관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극히 조심스럽다고 한 것은 ‘신성학원’ 재단변동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 위에서 말한 ‘종교’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

[박찬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박찬응]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2000년 7.8월 기전문화]스톤앤워터 관장 함민복 시인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라는 시구를 생각하며 현시대 미술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80년대 중후반 아주 짧은 한때, 대중들의 열망에 힘입어 미술이 생활 속에서 꽃피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거리에 깃발, 만장, 걸개그림이 내 걸리고 시민미술학교가 열리고 시민들의 참여와 창작욕구를 북돋으며 정체된 미술계에 물꼬가 터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각 지역에선 시민미술패가 생기고 공장에선 노동자미술패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한때는 그랬었습니다. 열망의 도가니탕이었습니다. 지금은 현대미술관 창고에서 ‘민중미술’이란 꼬리표가 붙은 박제가 되어 먼지 쌓인 채로 잠자고 있습니다. 거리에 깃발, 만장, 걸개그림이 내 걸리고 시..

[김준혁]백성을 위한 화성행차 그 길을 찾아서

[수원시자료]수원시 학예연구사 길에서 찾는 역사, 왕의 능행차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정조는 길 위의 군주라고….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깨우치듯 정조는 길에서 백성을 만나고 조선을 생각했다. 정조에게 길이란 단순히 걷기 위한 도로가 아닌 억조창생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현재 ‘이산’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세손의 길 떠남을 보았고 길 위에서의 흐느낌을 보았다. 그러나 진정 정조의 길 떠남은 사랑하는 연인 송연이를 만나기 위해서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고, 길 위에서 만난 여리고 슬픈 질곡의 백성들을 보듬기 위함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조는 능행차를 통해 국왕의 지위를 강화하고 백성들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조선 ..

[문원식]안양을 뒤흔든 폭발사고 셋

[문원식]안양을 뒤흔든 폭발사고 셋 [2006/09/22 안양시민신문]논설위원·성결대학교 교수·안양학연구소 소장 안양을 뒤흔든 폭발사고 셋 일제시대 말기인 1941년 천혜의 요새인 박달동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일제가 육군성 소속 탄약 저장시설을 설치하면서 안양과 폭발물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일제의 패망으로 탄약저장 시설과 탄약을 인수한 미군은 일본군 탄약을 안산 넘어가는 본드레미 고개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서 폭발시켜 폐기처리했다. 당시의 목격자 중의 한 분인 변원신씨는 주민대피령이 내린 가운데 지축을 울리는 폭발소리에 구도심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떨어졌고, 파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양짓말까지 날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두번째 폭발사고는 1·4후퇴 중인 1951년 초 대량의 폭발물을 수송하던 탄약열..

[문원식]‘안양’의 유래와 뿌리

안양학연구소장/ 행정학박사, 성결대교수 AD 900년 경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명을 받아 조공을 바치지 않던 광주, 충주, 청주 등 남쪽 3개 주를 정벌하기 위하여 삼성산 자락을 지나가던 중 산꼭대기에서 오색무지개가 어리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사람을 보내 살피게 하였더니 늙은 중 능정(能正)을 구름 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더불어 대화해 보니 뜻이 맞아 ‘안양사(安養寺)’를 세웠다는 기록이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등에 전해지고 있다. 이 안양사에 관한 기록은 고려와 조선시대 중엽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고, 현재 안양이란 지명의 유래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국정토를 일컫는 안양이라는 말이 지명으로 처음 사용된 기록은 영조..

[최남춘]납덕골을 다시 그린 주민들

[최남춘]납덕골을 다시 그린 주민들 [2009/12/07] 2008년 9월 대야동 속달4통 ‘납덕골’ 주민들이 ‘마을가꾸기 추진 위원회’를 조직했다. 주근동 대야동 주민자치위원장과 김형태 수리산갤러리 관장이 공동추진위원장인 마을가꾸기 추진위는 2008년 10월 22일부터 동네 담장 및 벽 30여곳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본지가 ‘납덕골’을 찾아간 11월에만 해도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일부 공간에만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벽화마을 납덕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변화된 납덕골을 찾아가 봤다. 대야동에서 갈치호수 방향으로 진행 후 삼거리에서 좌회전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속달4통 납덕골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하얀 담벽에 그려진 벽화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해에는 마을 입구에..

[소명식]자전거도시에 대한 환상

[소명식]자전거도시에 대한 환상 ② [2008/10/02]대림대건축과 겸임교수·건축사 도시만들기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하여 정보의 산속을 헤매이다가 아주 괜찮은 더덕밭을 발견하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더덕은 매우 특별한 향을 갖고 있어 그 근처에 가면 더덕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처럼 guam이라는 ID를 갖고있는 안양의 한 환경운동가의 잘 재배된 텃밭 블로그에서 발견한 “프랑스 자전거는 기자보다 힘셌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더덕처럼 독특한 향내를 풍기며 내 구미를 당기게 했다. 필자는 이전에도 “생태도시의 첫발 자전거거도시를 위하여”란 칼럼에서 안양시가 자전거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전국 도시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율은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