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수섭]가을의 문턱에서

안양똑딱이 2016. 6. 21. 16:29
[김수섭]가을의 문턱에서

[2004/10/08]나라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


 

경기회복이 더디어 손에 쥔 선물은 보잘 것 없어도 고향을 향하는 마음만은 느긋했던 추석연휴가 지나갔다. 연휴가 지나자마자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이 산 아래로 남쪽을 향한 긴 여행을 시작했다. 기온도 뚝 떨어져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라는 텔레비전 뉴스를 무시하고 딸들과 밤마실을 잠시 다닌 죄로 몸이 으슬으슬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언제나처럼 높고 맑은 하늘과 약간의 쌀쌀한 날씨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안양5동 ‘국민은행빌딩’, 아직도 택시를 타면 ‘주택은행’이라고 해야 이해가 더 쉬운 것을 보면, 인간은 과거와 연결된 현재에 사는가 보다.

가장 높은 층에 자리 잡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한번씩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볼 때가 있다. 창밖으로 높고 맑은 하늘이 햇살을 내리 비추는 것이 보이면 ‘바람난 처녀 야반도주’하듯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쪽 문을 열고 테라스에 나서게 된다.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수리산 자락은 어느 결에 짙푸른 녹음 사이로 드문드문 회색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여러 시(市)에 걸쳐 그 넓은 자리를 잡고 그 품 곳곳에 무수한 등산로와 사시사철 지저귀는 새와 수줍은 듯 숨어 있는 약수를 품고 있는 수리산의 음덕을 이기심 가득한 인간이 알 수는 없을 것이나, 눈앞에 펼쳐진 수리산의 모습은 시골집 뒤뜰에서 바라보던 칠보산 만큼이나 정겹다. 정겨운 마음은 어릴 적의 고향을 향하다가 문득 들어 앞을 보니 안양대학교와 충혼탑이 보인다.

안양대학교는 성결대학교와 더불어 지역사회와 동고동락을 하고 있는 대학교이다.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인재를 길러냄과 동시에 차츰 전국적인 대학교로 그 이름을 넓혀가고 있는 지역의 대학교를 바라보는 것은 즐겁다. 20년전 꿈 많은 청년으로 관악을 바라보며 공부하던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 젊은 대학생들도 경제난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때 학생처럼 많은 꿈을 꾸고 있으리라.

망상을 이어가다 바라보는 충혼탑, 6·25때 안양에서 특별한 전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고, 태조 왕건이 승전보를 기념해 지은 것이 아니라면, 저 충혼탑은 다른 지역의 많은 충혼탑처럼 군사정부 시절에 애국심을 강조하기 위해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후세들에게 강조하는 것에 지나침이란 없는 것이라면, 안양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야 나쁠 것이 없지 않을까에 이르게 된다.

젊음과 애국이 수리산의 넓은 자락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지만 하늘의 햇살을 맞는 회색빛 띄어가는 숲의 처연함과 맞닿아 추억과 망상을 한타래 풀어주는 가을 오후의 여유로움이 좋다.

IMF 시기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렵다는 요즘 안양을 에워싸고 있는 4개의 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어쩌다 한번씩은 안양9동의 병목안 길이나, 현대아파트 뒤에 있는 산림욕장으로 이르는 등산로에 올라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산을 인간사의 모든 어려움을 대신 할 수는 없지만 우울하고 힘든 마음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마력을 지녔으니까.

2004-10-08 15:5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