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신정일]역사의 길 삼남대로를 걷는다

안양똑딱이 2016. 6. 21. 16:26
[신정일]역사의 길 삼남대로를 걷는다

[2004/10/08 시민연대]


 

역사의 길 삼남대로, 영남대로 관동대로 등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어 달라.
역사의 길 삼남대로를 걷는다(길 위의 역사 1)

현대인들은 곡선보다는 직선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모든 강들은 지금 적강 하천을 강요받고(?) 있고 모든 길들도 역시 곡선보다 직선화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경제개발과 속도를 전제로 할 때는 직선이 생활에 편리할 수도 있지만 그 직선 때문에 잃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강은 범람하기 일쑤이고 직선으로 만든 길들은 수많은 산들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역사의 길을 깡그리 변화시켜버렸다.

불과 1세기도 안 되는 시간 속에 사라져버린 조선시대의 중요한 길은 서울에서 해남을 거쳐 제주도로 이어지던 삼남대로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던 영남대로 그리고 서울에서 평해로 이어지던 관동대로 등 7대로가 있었다. 그러한 우리의 옛 길 7대로가 사라진 것은 한말의 개항 이후 모든 길들이 새롭게 닦여지고 철로가 개설되면서부터였다.

신경준의 산경표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자세히 나와 있는 길 그리고 옛 사람들의 길인 이 길들이 현대에 접어들면서 국도와 지방도로로 변화되면서 옛 사람들이 말을 타거나 걸어 다녔던 이 길들이 속도중심의 길로 변형되고 말았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보름 쯤 걸려서 도착했던 이 길들이 시속 10킬로미터의 자동차로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 쯤 밖에 안 걸리고 시속 300킬로미터의 고속철도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물론 교통이 발달되고 세계화라고 지칭되는 이 시대에 빠른 교통량은 필요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속도와 편리라는 이름으로 놓치고 있는 것 또한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듯 속도가 중시되는 그 길들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걸어간다. 우리국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개인의 건강이나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새만금, 동계올림픽 등) 또는 한가로움과 정신수양을 위해서 국도 또한 지방도로로 표기된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국도를 걸어갈 때는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을 위해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들(특히 화물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의해 쓰러질 듯 하면서 모자가 날아가 버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 위에서 죽음을 맞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걸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다니는 길이 없고 기계(자동차, 기차 등등)만이 다닐 수 있는 길 그 길들 위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과 물질이 공존해야 하고 거기에서 전통과 현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길들을 지금 되찾고 보존하지 않으면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것이다.(우리나라 산들과 일곱 개의 강을 걸으면서 느낀 소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길과 역사속의 길을 되찾고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옛 길의 보존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길들 즉〈세종실록지리지〉나 신경준의 산경표,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대동여지도〉에 나타나있는 몇 개의 중요한 길옆에다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보행자 전용도로를 설치해야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로마의 길들과 일본에서 에도시대의 길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듯 우리의 옛길을 역사와 함께하는 길 문화와 함께하는 길들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에서 700여 억을 들여 조성한 ‘걷고 싶은 거리’, ‘아름다운 거리’가 돈만 낭비한 무용지물의 거리가 되었다고 비판을 하고 있는데 역사 속에 실재했던 옛 사람들의 길을 복원하여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고 우리 국민들이 보행 권을 확보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우리 국토의 재발견과 우리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만드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자치단체들마다 스스로의 구역을 설정하여 보행자 전용도로와 자전거 길까지 함께 만든다면 그 길이 해남에서 의주까지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경을 지나 실크로드를 거쳐 파리로 이어질 것이고 또한 부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나진․선봉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길의 소통, 세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국도와 고속도로, 및 2004년 4월 개통된 고속철도, 그리고 하늘 길과 뱃길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옛길이나 강가의 길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한 그 길을 따라 걷는 발길 또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의 복원이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 덧 붙여 우리나라의 중요한 5대 강 즉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등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국토순례의 장으로 활용하고 그 강들을 지리산, 속리산, 설악산 등의 산과 한려수도, 다도해, 태안반도 등의 바다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듯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거나 여의치 못하면 변형된 박물관 개념으로 보존하는 것이 강을 살리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철학자 박이문은 “산과 들을 일직선으로 뚫은 고속도로에서 인간의 승리감을 느낀다면 들로 산골짜기로 꼬부라지는 철도에서 삶은 끈기를 맛본 다”고 표현하였다.

이에 우리나라 7개의 강을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한발한발 걷고, 수백 개의 산을 오르내렸으며 그 바탕으로〈한강 역사문화탐사〉〈낙동강 역사문화탐사〉〈금강〉〈섬진강〉등의 책을 발간하였고,〈다시 쓰는 택리지〉를 발간한 문화사학자이자 문화답사가인 황토현문화연구소 신정일 소장이 해남의 이진항에서 서울까지 413km를 열이틀 동안에 걸쳐 걸어갈 예정입니다.

“ 역사의 길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어 달라” “보행자 전용권을 되찾자 ” 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걸고 걸어갈 삼남대로는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사의 길이었습니다.

수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걸어갔던 길이고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돌아오던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은 길이며, 추사 김정희와 면암 최익현이 걸어갔던 길입니다. 또한 다산 정약용도 이 길을 걸어 강진에 유배를 갔었습니다. 누릿재와 장성의 갈재, 그리고 훈요십조에도 언급된 차령고개와 남태령고개 등 수많은 사람들의 족적이 서린 이 길을 따라 걸으며, 길 위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것입니다.

신정일 선생은 전주의 향토사학자이며, 옛길을 찾아 답사하고 알리는 일도 하며, 역사의 옛길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복원하라는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2004-10-08 05: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