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대학교 교수, 안양학연구소 소장
1932년 현 대농단지에 일본인 자본에 의해 조선직물주식회사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안양의 산업화는 90년대 초 수도 서울의 배후 침상도시로 평촌 신도시가 건설되자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평촌 신도시가 건설되기 이전까지의 안양의 산업화과정은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단계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사가 개설된 1905년부터 조선직물주식회사가 들어선 1932년까지로 불과 십여 호에 불과하던 안양리에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고, 학교와 시장 및 교회 등 도시 기본시설들이 만들어지던 시기로 '도시형성기'라 부를 수 있다.
2단계는 1932년부터 1961년까지의 기간으로 '전기산업화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당시 안양을 대표했던 공장들은 조선직물주식회사, 조선견직주식회사, 삼덕제지, 금성방직, 제일방적안양공장 등인데, 1949년에는 14개 업체에 1,068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금천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싹이 트던 안양의 산업은 6.25동란으로 완전히 황폐해져 1961년에는 겨우 6개 업체만이 가동하고 있을 뿐이었으나, 금성방직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영향으로 종업원 수는 오히려 3,687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3단계는 1961년부터 평촌 신도시가 건설될 때까지로 안양의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로 '후기산업화단계'라고 할 수 있다. 5.16 후 정부의 대대적인 경제개발정책에 힘을 얻은 안양의 산업체는 60년 6개 업체에서 66년 32개, 71년 64개, 80년 374개에 이어 91년 743개 업체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업종도 섬유와 제지산업에 더하여 식료품, 화학, 고무, 기계, 금속업 및 전기, 전자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이 기간 중의 인구는 32년의 7천여 명에서 91년의 50만 명으로 70배나 늘어나고 있다.
안양시의 산업화가 순조롭게 진행됨으로 인하여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150만평에 달하는 평촌 벌에 신도시가 건설된 92년 이후에 안양에서 일어난 변화는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바, '탈공업화시기'로 분류하고, 그 내용을 추적해보자.
우선 인구변화를 보면 90년 48만이던 인구가 96년에는 약 60만 명으로 단기간에 12만 명이 늘어나고 있다. 이 시기에 늘어난 12만의 인구는 전과 같이 일자리를 찾아 안양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살집을 찾아 온 이주민이라는 것이 전과 다른 점이다.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의 유입은 행정조직에도 변화를 일으켜 90년의 21개 동(洞)에서 94년에는 지금과 같은 31개 동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92년에는 늘어난 행정수요를 효율적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동안구와 만안구로 시 전역을 두 개의 구로 나누고 있다.
안양시의 90년대 이후의 제조업체의 변화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91년 743개를 기록한 후 93년 879개, 96년 1,038개, 98년 1, 111개 업체에 31,509명의 종업원 수로 정점을 이루었으나 99년 말에는 976개 업체에 28,058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 살펴보아도 수도권 공업입지억제책의 영향으로 관내에 입주해 있던 만도기계, 동아제약, 동일방직, 금성통신, 삼화왕관 등 대기업들의 지역 이탈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제조업의 퇴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행히 99년부터는 벤처산업을 육성하는 시책을 세우고, 지원조례를 제정하며 자금을 확보하기 시작하자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로는 가장 많은 182개의 벤처기업이 현재 안양시에 입주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벤처산업이 안양시를 선호하게 된 것은 탈공업화시대의 안양에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고 있다.
과거 섬유와 기계 및 제지산업 등이 주도하던 안양의 산업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991개 관내기업의 약 43%가 전기, 전자, 정밀광학, 의료기기, 정보통신 등 첨단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향후 발전적인 안양시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안양시의 산업이 벤처산업을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것은 수도권 도시들 중 가장 편리한 교통·통신과 양호한 주거환경 및 수도 서울에 인접한 위치상의 강점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수도권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한 안양에 탈공업화현상이 일어나면서 침상도시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안양시가 장차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도시정체성을 확립하고, 주체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금년에 민간주도로 처음 개최된 시민축제는 여러 가지 모색을 통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는 안양시의 긍정적인 모습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바, 이와 같은 지역 문화행사 등을 통하여 문화와 지식과 산업이 어우러진 안양시의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한층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평촌 신도시가 건설되기 이전까지의 안양의 산업화과정은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단계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사가 개설된 1905년부터 조선직물주식회사가 들어선 1932년까지로 불과 십여 호에 불과하던 안양리에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고, 학교와 시장 및 교회 등 도시 기본시설들이 만들어지던 시기로 '도시형성기'라 부를 수 있다.
2단계는 1932년부터 1961년까지의 기간으로 '전기산업화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당시 안양을 대표했던 공장들은 조선직물주식회사, 조선견직주식회사, 삼덕제지, 금성방직, 제일방적안양공장 등인데, 1949년에는 14개 업체에 1,068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금천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싹이 트던 안양의 산업은 6.25동란으로 완전히 황폐해져 1961년에는 겨우 6개 업체만이 가동하고 있을 뿐이었으나, 금성방직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영향으로 종업원 수는 오히려 3,687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3단계는 1961년부터 평촌 신도시가 건설될 때까지로 안양의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로 '후기산업화단계'라고 할 수 있다. 5.16 후 정부의 대대적인 경제개발정책에 힘을 얻은 안양의 산업체는 60년 6개 업체에서 66년 32개, 71년 64개, 80년 374개에 이어 91년 743개 업체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업종도 섬유와 제지산업에 더하여 식료품, 화학, 고무, 기계, 금속업 및 전기, 전자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이 기간 중의 인구는 32년의 7천여 명에서 91년의 50만 명으로 70배나 늘어나고 있다.
안양시의 산업화가 순조롭게 진행됨으로 인하여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150만평에 달하는 평촌 벌에 신도시가 건설된 92년 이후에 안양에서 일어난 변화는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바, '탈공업화시기'로 분류하고, 그 내용을 추적해보자.
우선 인구변화를 보면 90년 48만이던 인구가 96년에는 약 60만 명으로 단기간에 12만 명이 늘어나고 있다. 이 시기에 늘어난 12만의 인구는 전과 같이 일자리를 찾아 안양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살집을 찾아 온 이주민이라는 것이 전과 다른 점이다.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의 유입은 행정조직에도 변화를 일으켜 90년의 21개 동(洞)에서 94년에는 지금과 같은 31개 동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92년에는 늘어난 행정수요를 효율적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동안구와 만안구로 시 전역을 두 개의 구로 나누고 있다.
안양시의 90년대 이후의 제조업체의 변화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91년 743개를 기록한 후 93년 879개, 96년 1,038개, 98년 1, 111개 업체에 31,509명의 종업원 수로 정점을 이루었으나 99년 말에는 976개 업체에 28,058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 살펴보아도 수도권 공업입지억제책의 영향으로 관내에 입주해 있던 만도기계, 동아제약, 동일방직, 금성통신, 삼화왕관 등 대기업들의 지역 이탈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제조업의 퇴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행히 99년부터는 벤처산업을 육성하는 시책을 세우고, 지원조례를 제정하며 자금을 확보하기 시작하자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로는 가장 많은 182개의 벤처기업이 현재 안양시에 입주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벤처산업이 안양시를 선호하게 된 것은 탈공업화시대의 안양에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고 있다.
과거 섬유와 기계 및 제지산업 등이 주도하던 안양의 산업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991개 관내기업의 약 43%가 전기, 전자, 정밀광학, 의료기기, 정보통신 등 첨단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향후 발전적인 안양시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렇게 안양시의 산업이 벤처산업을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것은 수도권 도시들 중 가장 편리한 교통·통신과 양호한 주거환경 및 수도 서울에 인접한 위치상의 강점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수도권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로 성장한 안양에 탈공업화현상이 일어나면서 침상도시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안양시가 장차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도시정체성을 확립하고, 주체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금년에 민간주도로 처음 개최된 시민축제는 여러 가지 모색을 통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는 안양시의 긍정적인 모습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바, 이와 같은 지역 문화행사 등을 통하여 문화와 지식과 산업이 어우러진 안양시의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한층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03-06-07 1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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