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식]어수(御水)물

성결대학교 교수, 안양학연구소 소장

 

AD 900년 경 고려 태조 왕건이 삼성산 자락에 안양사(安養寺)를 창건한 이후, 세월이 가면서 안양사 아래 마을을 안양리(安養理)라 부르고, 이 안양리가 발전해서 오늘날 안양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극락정토를 일컫는 안양(安養)이란 말과 같은 멋진 지명을 우리 안양시가 갖게 된 데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인 바, 상식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이유 몇 가지를 들면 그것은 바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경관과 살기 좋은 인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남부지역의 대표적인 명산들인 관악산을 뒤로 두고, 좌우로 청계산과 몰악산 및 수리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 속을 학의천과 안양천이 합류하며 흘러나가는 형세를 취하고 있는 곳이 바로 안양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낙망한 사람이라도 안양에 가서 마음만 바로 쓰면 의식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예로부터 전래되는 말은 안양지역이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들의 인심이 넉넉하며 기질이 순박하였음을 역설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앞서 산세가 빼어나고 물이 맑다고 했는데, 산세가 아름다운 것은 지금도 알 수가 있을 것이나 물이 좋은 것은 최근에 안양에 이사 온 사람들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를 일인지라 그 실례를 하나 들어보고자 한다.

여기에 임금이 마신 물이라 해서 어수(御水)가 된 '어수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기로 하자.

약 200년 전 만안교를 넘어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가던 정조임금 일행의 갈증을 풀어준 물이 바로 어수물이었다는 것이다.

임금께 진상한 물이니 당연히 안양지역에서 가장 물맛이 좋았을 것이고, 6,100여 명의 사람과 1,400필이 넘는 말의 목을 축이자면 수량도 풍부한 샘이었을 것이라는 전제가 성립하는 바, 기록을 토대로 박달동 마을금고 김 대식 이사장의 도움을 받아 어수물의 행방을 추적해 보았다.

김 대식 이사장의 도움으로 이 마을 태생의 전 박달동 경노회장 김 학선(87세) 옹의 증언을 청취할 수 있었다.

김 옹에 의하면 어수를 그 동리 주민들은 '으수'라고 불렀고, 으수가 솟아나는 샘이 들 한가운데 있었던 연유로 들 이름을 '으수들'이라 불렀으며, 그 으수들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자신의 생가가 있어서 아침나절이면 항상 연무가 '어수정(御水井)'을 중심으로 자욱히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샘 주변에는 수초와 고기가 살지 않을 정도로 물이 맑고 찼으며,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어수가 마르는 법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1930년대 초 일제는 조선에 방직공장을 건설하기 위하여 전국에 걸친 수질검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중 안양 박달동에 있는 '어수(御水)물'을 샘플로 채취해서 검사해본 바, 방직공업에 가장 적합한 불순물이 없는 물로 평가가 나서 안양1동 구 대농 터에 조선직물주식회사를 설립했다고 안양시지(安養市誌)에 기록되어 있다.

이 조선직물주식회사는 안양지역 최초의 근대적 방직공장이고, 이 후의 안양의 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니 어수물은 안양의 공업화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금성방직 내에 가로 35미터 새로 50미터 이상의 저수지를 파서 물을 끌어가도 일대의 전답에 물을 대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어수정(御水井)은 60년대 이후 박달동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그냥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어수정이 원래 위치하고 있던 지점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금성방직 담밖 약 50미터 지점으로, 지금은 민가가 되어버린 박달동 68번지 43호와 45호 및 47호 주택의 중간 지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이 어수정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안양여고에서 청소용 허드렛물로 지하수를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물이 차고 맛이 좋아 학생들이 식수로 애용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지하수가 과거 박달동 어수의 물맛을 계승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하간 지금은 어수정의 흔적도 찾을 길 없지만, 안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안양천 살리기 10개년 계획'이 성공하게되어 과거 유난히 수량이 풍부하고 맑았던 안양천의 옛 모습을 되살려 '살고 싶은 도시, 안양'을 앞당겨 달성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3-06-07 13: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