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정동수]안양천

안양똑딱이 2016. 5. 9. 15:48
[정동수]안양천

[10/17 안양시민신문]논설위원·소설가


 

얼마 전 그러니까. 연일 비가 내린 후의 맑게 갠 날이었다. 안양천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반가웠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보았으니까,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반갑다는 건 물론 사람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낚시는 누가 하던 낚시를 하는 그 행동, 아니 낚시를 드릴 수 있는 안양천의 달라진 모습이 반갑다는 것이다.

사사로운 일이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 꿈 중의 하나가 안양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산이 있고, 맑은 냇물이 흐르고, 어린 나이에도 사람 살기에 더 할 수 없는 생활환경이라 생각되었다.

외가가 안양인 덕에 여름 방학이면 거의 안양에서 보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엔 꿈이 있었다. 더우면 냇물에 가서 멱감고 물장구치고, 일하다 지치면 하루 날 잡아 천렵(川獵)하며 쉬고.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설레는 일은 달 밝은 밤에 처녀들 목욕하는데 몰래 숨어들어 모래 속에 옷 감추는 일이다. 철모르던 시절 나이든 청년들의 꼬임에 빠져 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 설렘은 무슨 까닭일까. 성희롱이니 뭐니 하는 말은 있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

맑고 깨끗하던 안양천이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냇물로 종이공장의 펄프 찌꺼기가 흘러 나와 쌓이기 시작하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후로 나일론 공장이 생기고 냇물을 오염시키는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안양천은 어느새 환경오염의 대명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꿈 중에 하나가 ‘안양에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1970년 초부터 안양에 거주하게 되었다. 하나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무렵만 해도 여름이면 책 한 권 들고 들어가 병목안 골짜기에 발 담그고 있으면 더위를 잊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삼복(三伏)을 보내고 나면 포도가 익어간다.

그러던 것이 차츰 포도밭에 집들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세워지고 냇물은 썩어 악취를 풍기고, 모처럼 이루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1970년대 후반 필자는 안양천 가까이에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정말 여름이면 썩는 냇물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안양천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태공이 낚시를 드릴 정도로. 그러니 반갑지 아니한가.

안양천이 살아나게 하는 데는 누군가의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안양천이 좀더 깨끗해지고 오래 살아 있게 하는데는 몇몇 뜻있는 사람이나 행정당국의 노력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시민 각자의 아낌과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앞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반가웠다고 했지만 사실 냇물에 고기가 논다고 해도 이젠 낚시를 하기보다는 고기조차 아끼고 잘 살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어항에 물고기를 기르는 심정으로.

아마 안양천에 낚시를 드리고 있던 그 분도 고기를 잡을 욕심보다는 고기가 노는 모습이 반가워서 옛 추억에 잠시 잠겨보고 싶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무리 물이 맑아지더라도 발가벗고 멱을 감을 형편도, 천렵을 할 조건도, 더구나 달밤에 여인들이 목욕을 할 입장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明鏡止水’ 맑은 냇물에 얼굴 한 번 비춰본다면 마음속에 쌓인 먼지가 씻기는 상쾌함이 있지 않겠는가.

2003-10-17 14:5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