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조병무]수리산이 열리면

안양똑딱이 2016. 5. 9. 15:45
[조병무]수리산이 열리면

[09/25 군포시민신문]문학평론가


 

오랜 서울의 도심 시대를 마감하고 수도권 전원도시로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전철을 타고 지나가다 본 산본 신도시를 머리에 떠 올렸다. 수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마치 수리 산신령이 크게 두 손을 쫘아악 벌리고 가슴에 품고 있는 형상을 한 그 속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산본 신도시를 본 순간, 이곳이다. 서울을 떠나 살 곳이 이곳이다. 그리하여 마음먹은 대로 결정되었다. 이사하기로,

부동산을 찾았을 때의 대화 한 토막 “전철이 가까운 곳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마루에서 숲을 볼 수 있고, 수리산으로 바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면 좋아요.” “모두들 전철이 가까운 곳을 좋아하는데..” 말끝을 흐리는 중개인의 소개로 전철에서 떨어진 걷기에 알맞은 지금의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동쪽으로 창문이 있는 나의 서재에는 태양 빛이 떠오르는 환희를 받아 환하게 마음을 들뜨게 한다. 태양 빛이 이렇게 고와서 나의 서재의 모든 기물과 책들은 흠뻑 받아들인 햇빛을 받아먹기에 바쁘다.

마루에 놓인 포근한 소파에 파묻혀 창 밖을 내다보면 확 트인 수리산 자락의 숲이 가슴을 적셔주고, 수리산 흘러내린 끝 부분에서 알맞은 높이의 능선이 눈높이만큼 마음의 평정을 찾아 준다.

아침 저녁으로 가끔 건너편 숲 속 나무에 찾아와 노래하는 까치들의 소리,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는 부엉이의 소리,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들이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하여 나의 방에 가득 채워 놓는다. 그뿐인가.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숲 속 절 집이 그림이다.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우리 내외는 어둠이 지나가는 시간이면 수리산 문턱에 이른다. 8단지 삼림욕장 입구다. 벌써 산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우리는 그곳에서 새벽 운동을 한다. 시 당국이 파견한 사범따라 적당히 관절을 풀고 몸을 푸는 운동이다. 사범이 오지 않는 토 일요일, 김여사의 구령소리는 새벽 수리산의 잠을 깨우는 활력이 된다.

벌써 이 곳에 자리잡은 지 여섯 해 좀 지나고 있다. 그 동안 운동을 하는 우리들 일행들은 이웃사촌이 되어 가까워졌다. 서로가 통성명은 하지 않았으나 눈치로 서로를 이해하고 안다. 우리 내외는 그들에 대하여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화제로 삼을 때는 우리의 가까운 친구와 닮았거나 모양으로 적당한 이름을 부쳐 화제로 삼는다. <마산분><동갑내기><아, 시원해><일본 아주머니>등등 그 이름이 또한 재미있다. 당사자와 아무 관련 없는 이름들이라 그들이 만약에 듣는다면 얼마나 웃음이 나랴.

운동 이후의 산책 코스는 ‘산딸기 약수’에서 숲 속 성불사 쪽으로 올라 중간 산길에서 상연사 방향으로 가서 설악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며, 수리봉 쪽 능선까지 간다든가, 대야미 쪽으로 가는 코스와 ‘산딸기 약수터’에서 바로 황토흙 밟기터로 가기도 한다. 운동 이후 적당하게 그 날의 일정에 따라 산책하는 맛은 바로 수리산 맛이다.

수리산에 안긴 산본은 전원주택의 장점을 살리면서 현대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이다. 수리산에서 흘러 오는 기와 바람은 새벽부터 열리는 산본의 하루다.

2003-09-25 13: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