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13

1970년대 망해암의 오밀조밀했던 옛 모습

#안양 #망해암 #비봉산 #비보사찰 #미륵부처/ 안양 비봉산 중턱 암벽위에 세워진 망해암으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 들어선 현재의 모습과 달리 작은 면적의 대지위에 목조 골조에 기와를 얹은 아담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자리를 잡았던 1970년대 이전 당시의 옛 사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절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사진 왼쪽의 뒷편 건물을 빼고 나머지는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오랜 시간의 흔적들이 담겨있던 건물들이 사라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근래 들어 적지않은 절들이 대규모 불사를 하고난후 OO암을 OO사로 부르기도 하는데 안양시내에서 보였던 과거의 망해암은 커다란 암벽위에 아담한 건물이 올라앉아 새벽녘 예불시 종소리가 안양읍내에 전해지고 밤이되면 은은..

1960년 초반 안양 금성방직에서 일했던 얼굴들

#안양 #금성방직 #안양3동/ 1960년대 초반 금성방직에서 일했던 얼굴들 1960년대 당시 안양에서 가장 규모가 컷던 굴뚝공장인 금성방직의 의무실, 노동조합, 온실, 정문 안쪽 잔디밭 등에서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의 모습으로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옛 사진으로 보는 안양의 재발견' 두번째 자료집 사진첩 발간을 준비하며 주민들로 부터 수집한 사진으로 박영호님이 기증한 사진입니다. 사진속에 등장하는 금성방직 부지의 역사는 참으로 사연이 많은 곳입니다. 현재의 안양3동 국민은행 안양지점과 왕궁예식장 뒷편에서 박달동 우성아파트에 이르는 면적을 차지해 공장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돌려면 십리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안양 도심의 중심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금성방직은 경북 달성군 현..

1960년대 말 안양에서 가장 컷던 대농 안양공장

#안양 #금성방직 #대농단지 #안양3동/ 1960년대 말 대농 안양공장(금성방직) 1960-70년대 당시 안양에서 가장 규모가 컷던 굴뚝공장인 대농 안양공장 당시의 모습으로 현재의 안양3동 국민은행 안양지점과 왕궁예식장 뒷편에서 박달동 우성아파트에 이르는 면적을 차지해 공장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돌려면 십리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사진속 공장 부지의 역사는 참으로 사연이 많습니다. 안양은 안양천, 학의천, 수암천 등 곳곳의 하천으로 풍부한 수량과 맑고 깨끗한 물로 굴뚝공장 특히 섬유와 제지공장이 많았지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32년 안양3동 양짓말(현 안양공고 북쪽)에 조선직물주식회사가 들어섭니다. 환영(丸永)의 대리점인 궁림상점(宮林商店)과 이등충(伊藤忠) 계열의 공익사(共益社)..

1982년 안양 비산동과 평촌벌 항공사진

1982년 안양 비산동과 평촌벌 항공사진 #안양 #평촌벌 #학의천 #비산동 #미륭아파트 #희성촌 #안양비산주공1차아파트/ 평촌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인 1980년대 초반의 평촌 들녘의 초록 풍광과 비산2동 일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항공사진입니다. 안양 비산2동은 1960년대 말 농사를 짓던 학의천변에 집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동네로 사진 중앙의 고층 아파트는 지난 1979년 9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406번지 일원에 신축한 미륭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는 6개동(576세대)으로 지은지 40여년이 다 되어가는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건물 디자인이 예쁘고, 무엇보다 아주 튼튼하게 지었다는 평을 받아 왔지요. 특히 봄이 오면 아파트 신축 당시 주변에 심은 벚꽃나무가 오랜 연륜 만큼이나 ..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하던 날 안양시 개청

1973년 시 승격 당시 안양 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 #안양 #옛사진 #과거 #기억 #기록 #안양읍사무소 #안양시청/ 1973년 7월 1일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하며 안양시청 개청 행사가 열리던 날 당시 안양일번가에 있던 건물앞 풍경으로 도로 건너편에 있었던 안양경찰서 2층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의 안양은 경부선 철도 아래로 안양천이 흐르고 지역특산물인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인구 11만여 명의 작은 도시로 대부분의 관공서가 현재의 안양1번가(당시 중앙동 현 안양1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2017년 1월 31일 현재 안양에는 60만명(598,392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던 당시의 인구는 10,000명, 1949년 8월 15일 안..

1970년대 안양유원지와 비봉산.수리산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유원지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유원지 계곡의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것이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한얀 눈이 내린 산은 수리산이며 왼쪽에 보이는 산은 안양8경중 제1경으로 망해암 일몰이 아름다운 비봉산으로 당시 안양유원지 계곡에 있던 수영장과 당시 산 중턱에 까지 자리하고 있던 집들의 모습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비봉산 정상에는 콘크리트로 축조한 둥근 시설물이 보이는데 많은 이들이 비상용 또는 군용헬기장일 것이라 말하고 있으나 사실 둥군시설물 중앙에는 흰색의 안테나 시설이 우뚝 서 있어 헬기가 착륙하지 못..

1970년대 안양유원지 초입의 삼성천 주변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석수동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 석수1동 삼성천과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초입의 풍경으로 당시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것이다. 사진속 중앙의 하천 변 주택이 위치한 자리는 지금의 경수대로 1196번길로 현재의 석수중앙교회 인근지역으로 뒤로 보이는 산이 삼성산이고, 하천은 서울농대 수목원 계곡에서 안양예술공원을 지나 삼막천과 합류하여 안양천으로 유입되는 삼성천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 하천에 뚝을 쌓은 곳 뒤로는 미군부대 담장이 시작되던 곳이다. 사진 왼쪽 아래 뚝방 밑 하천은 당시 동네 빨래터로 아주머니들이 빨래하는 모..

1970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골목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석수동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 석수1동 미군부대 가는 길목의 골목길 풍경으로 당시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것이다. 사진속에는 미군부대 담장밖 석수동 빌리지 골목길 모습으로 코카콜라 간판이 내걸린 구멍가게 앞에서 몸을 씻고 나온 듯한 한 아이가 비치파라솔 아래 테이블위에 올라 서 있다. 홀라당 벌거벗은 저 아이는 지금 50대 장년의 아저씨로 성장했을터이다. 최근 사이버공간에 용량이 큰 사진과 많은 사진들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생기면서 오래된 옛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 사진도 구글+에 올려진 'Bob Auerhahn'..

1970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골목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석수동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 석수1동 미군부대 가는 길목의 골목길 풍경으로 당시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것이다. 최근 사이버공간에 용량이 큰 사진과 많은 사진들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생기면서 오래된 옛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 사진도 구글+에 올려진 'Bob Auerhahn'씨의 앨범(https://plus.google.com/photos/... )속 200여장의 사진중 하나다. 사진속 골목길은 1970년대 당시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철도 건널목(현재의 경수대로 1273번길 육교 자리)을 지나 안양유원지(현 안..

축구도시 안양, 역사의 흔적들

축구도시 안양, 역사의 흔적들 #축구 #안양 #연고이전 #축구도시 FC 안양 vs FC 서울. 한국 축구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쓸 지도 모를 흥미진진한 매치 업이 13년만에 성사됐다. 2017년 3월 29일 저녁 8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7 KEB 하나은행 FA컵 3라운드(64강) 안양과 호남대의 경기에서 안양이 1-0 승리를 거두고 서울이 기다리고 있는 4라운드(32강전)에 진출함에 따라 오는 4월 19일 서울과 역사적인 대결에 나선다. 딱 13년전인 2004년 3월 29일. 이날은 안양을 연고지로 했던 안양LG가 서울시와 연고협약 조인식을 하면서 FC서울로 이름을 바꾼 날로 당시 허창수 구단주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협약서에 싸인을 함에 따라 안양 연고 구단이 사라진 가슴 쓰린 날이다. 럭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