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78

[옛사진]1956년 미군과 외국원조단체에서 지어준 안양기독보육원 건물

2019.09.20/ #안양 #양명고 #기독보육원 #안양2동 #1956년/ 현재 양명고 뒷쪽에 있는 건물(수리 공구 창고 영선실)로 한국 전쟁이후 경제,사회, 정치적으로 어렵고 취약하고 혼란스러운시기였기에 외국원조단체의 자선구호활동에 의존할수 밖에 없었다. 미군도 보육원 신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기독보육원 신축 건물 준공식에도 참석했다. 사진은 1956년 4월 10일 준공식에서 오긍선 기독보육원 설립자와 후원자들이 건물앞에서 찍은 모습입니다.과거 사회복지법인 좋은집(기독보육원)에서 땅을 구입하여 설립한 안양 양명고 부지내에는 일제강점기 시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창고와 한국전쟁 이후 미군고 외국 후원자들이 지어준 건물들이 있는 등 안양으로서는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지요.학교 뒷쪽에 보면 돌..

[옛사진]1990년대 안양 호계2동 수령 250년 느티나무

[옛사진]1990년 호계2동 느티나무(현 육교옆) 주변 풍경 #안양 #느티나무 #호계2동 #호계육교 #느티나무버스정류장 #호계시외버스정류장/ 1990년 중반에 찍은 안양시 호계2동 풍경으로 동네의 정자나무이자 수호신으로 250년을 살다가 고사한 느티나무가 베어지기 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현재 호계2동 버스정류장앞에서 선 열린조각공방을 운영하는 김수선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입니다. 사진속 느티나무가 있는 위치는 현재 호계동시외버스정류장과 육교 중간(안양시 경수대로 717 건물 앞)으로 사진 좌측은 남쪽(호계신사거리 방향) 우측은(비산사거리 방향) 북쪽이며 도로는 서울과 수원을 잇는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대로/ 1번국도)이지요. 이 사진이 특별하고 의미있는 것은 사진속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때문입니다..

[옛사진]1973년 호계2동 느티나무(현 육교옆) 주변 풍경

2019.07.28/ #안양 #느티나무 #호계2동 #호계육교 #느티나무버스정류장 #호계시외버스정류장/ 1973년 5월에 찍은 안양시 호계2동 풍경으로 멀리 뒷쪽으로 수리산이 보이는 동네앞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이 담겨있는 흑백사진으로 현재 호계2동 버스정류장앞에서 선 열린조각공방을 운영하는 김수선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입니다. 사진 좌측은 남쪽(호계신사거리 방향) 우측은(비산사거리 방향)으로 현재 호계동시외버스정루장과 육교 앞 일대의 옛 모습으로 사진속 어린이들이 노는 앞쪽 하얀 부분이 도로인데 이 도로는 향후 서울과 수원을 잇는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대로/ 1번국도)가 놓여지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이 사진이 특별하고 의미있는 것은 사진 좌측 기와집 뒤로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때문입니다...

[옛사진]1960년대 호계2동 느티나무(현 육교옆) 주변 풍경

2019.07.06/ #안양 #느티나무 #호계2동 #호계육교 #느티나무버스정류장 #호계시외버스정류장/ 1960년대 중반 무렵의 안양시 호계2동 풍경으로 초가집과 기와집, 슬레이트 지붕, 시멘트블록 담장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담겨있는 동네의 흑백사진으로 호계2동에서 선 열린조각공방을 운영하는 김수선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입니다. 사진 좌측은 남쪽(호계신사거리 방향) 우측은(비산사거리 방향)으로 사진 좌측 끝 지점은 지금의 호계시외버스정류장, 사진 우측의 스레이트지붕 집 앞은 지금의 호계육교 지점으로 추정됩니다. 한옥 뒤로는 나즈막한 야산이 보이는데 이 곳은 현재 호계현대홈타운 1차아파트 주변 지역으로 오밀조밀한 골목들과 단독주택, 연립 등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을 볼수 있지요. 사진 앞쪽 넓은밭과 동네 ..

[옛사진]1960년대 말 안양 호계2동(호계도서관 주변)

1960년대 말 안양 호계2동(현 호계도서관 주변)  #안양 #기록 #기억 #호계2동 #호계도서관 #안양교육청 #호계서원 #청감서원 #방죽말/1960년대 말 무렵의 안양 호계2동  923-34 일대로 현 호계도서관 주변으로 호계2동 토박이인 인형수 전 안양시의원이 소장하고 사진입니다.사진은 현재의 귀인로 앞 흥화아파트에서 북쪽의 호계도서관을 향해 찍은 것으로 산자락 위쪽  무덤 있는 곳이 현 호계도서관(과거 안양교육청)이며 산자락을 깍아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호계도서관(1998년 3월 3일 개관)은 대지면적 5,220㎡, 건축면적 2,865㎡로 16만건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데 1980년대 안양시교육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1997년 인수해 도서관으로 용도 변경한 것으로 사실 오래된 건물이지요...

[옛사진]1977년 안양 대수해_ 한국방송공사의 침수 텔레비젼(TV) 수리

국가기록원(www.archives.go.kr/)이 2012년 7월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을 맞이하여 「이달의 기록」으로 기록으로 본 ‘초복과 여름나기’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올린 사진(1950~1970년대의 다양한 여름나기 풍경 동영상 16건, 사진 14건 등 총 30건) 준 한장으로 1977년 안양 일대에서 발생한 대홍수 당시 모습을 담은 '안양천 수해지구 이동봉사반의 모습'으로 한국방송공사(KBS) 이동봉사 차량이 안양에 내려와 침수된 TV를 수리해 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되며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당시 기상청..

[옛사진]1946년 안양에 살며 기차 통학했던 이희호 여사

2019년 6월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께서 14일 각계 지도자와 시민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장으로 엄수된후 현충원 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으로 옮겨져 DJ옆에 묻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기 이전에 여성운동의 초석을 닦고 노인과 장애인, 빈곤층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여성 지도자였다. 이희호 여사께서 학생 시절 안양역 인근에 살며 서울로 기차 통학을 했다는 얘기를 오래전 들은 바 있어 혹시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옛 자료를 찾던 중 2015 한겨레신문에서 연재했던 [이희호 평전] ⑥ 제1부 학업시대-5회 연극배우 편에 나온 기록과 사진을 통해 안양에 살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둘째오빠가 의사로 개업을 해서 안양역 근처에 살았는데, 거기에 한동안 얹혀살면서..

[옛그림]우매한 조선인 행동으로 비하한 원태우 지사의 돌팔매질

2019.05.02/ #기록 #역사 #원태우 #일로전쟁사진호보 #일본 #기무라고타로/ 이 그림은 일본 搏文館(박문관)에서 1904~1905년 발행한 시리즈 화보책자인 《일로전쟁화보》 제39권(1905.12.8 발행)에 실린 삽화 자료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기록물이다. 그림에는 1905년 안양에서 일어난 원태우지사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돌팔매질을 일본인 화가가 삽화와 단신 기사로 묘사하고 있는데 원 지사의 행위를 “우매한 농민이 술에 취해 무의미하게 돌을 던진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을사조약’의 억지 체결을 강요한 후 5일째가 되는 1905년 11월 22일 아침,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特派大使 伊藤博文)는 짐짓 승자의 여유를 과시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의 숙소였던 ..

[옛그림]시흥환어행렬도에 그려진 의왕 사근행궁

조선 시대 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년)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서울 창덕궁에서 아버지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 현릉원까지 약 60㎞.의 길로 13번의 원행길에 나섰다. 원행길에는 임금이 잠시 들러 머물던 곳 행궁(行宮·임금이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 있었는데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은 화성행궁을 비롯 노량행궁, 과천행궁, 시흥행궁, 안양행궁, 사근행궁, 안산행궁 등이 있었다. 정조는 창덕궁을 출발해 숭례문, 노량진, 용양봉저정을 거쳐 남태령을 넘고 과천행궁에 머물렀다가 군포로 진입하는 '과천길'을 이용하다가 환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원행에 나섰던 1795년을 기점으로 창덕궁에서 시흥행궁과 대박산과 만안교를 건너고 안양행궁을 거쳐 군포로 들어..

[옛사진]안양초교 38회 졸업(1969년) 앨범속 얼굴들

안양초등학교 38회(1969년 졸업) 졸업앨범이다. 40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빛바랜 앨범은 표지와 속장에 이어 두번째 페이지에는 교훈, 교가, 교기와 함께 교장선생님 얼굴, 세번째 페이지에는 은사들 얼굴, 이어 다음장 페이지부터는 각 반별 사진 그리고 사진 뒷페이지에는 사진속 인물을 따라 이름 적은 별지 순으로 8반까지 한반에 평균 6-70명씩 500여명의 학생들이 한 교정에서 공부하고 뛰놀았던 얼굴들이 담겨져 있다. 안양의 오래된 모습과 사람 등 옛 사진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1977년 안양대수해로 인해 기관, 회사, 직장은 물론 각 가정의 책장 또는 장롱속에 보관하던 두툼한 앨범도 대부분 물에 젖거나 훼손, 분실, 망실되면서 과거의 수많은 기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잠깐 안양 대홍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