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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1960년대 말 안양 호계2동(호계도서관 주변)

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60년대 말 안양 호계2동(현 호계도서관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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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무렵의 안양 호계2동  923-34 일대로 현 호계도서관 주변으로 호계2동 토박이인 인형수 전 안양시의원이 소장하고 사진입니다.
사진은 현재의 귀인로 앞 흥화아파트에서 북쪽의 호계도서관을 향해 찍은 것으로 산자락 위쪽  무덤 있는 곳이 현 호계도서관(과거 안양교육청)이며 산자락을 깍아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호계도서관(1998년 3월 3일 개관)은 대지면적 5,220㎡, 건축면적 2,865㎡로 16만건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데 1980년대 안양시교육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1997년 인수해 도서관으로 용도 변경한 것으로 사실 오래된 건물이지요.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한옥이 자리한 곳은 현 주소지로 경수대로 685번길 51로 추정되는데 2014년 11월 28일 65차 탐사길에 고즈녁한 옛 한옥의 형태를 사진에 담을수 있었는데 2019년 7월 6일 165차 탐사길에 다시 가보니 도시생활형 원룸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사라져 아쉽기만 합니다. 
옛 지도(1872년 지방지도-규장각)를 보면 호계2동 주변에는 조선시대 사창(社倉- 조선 시대, 각 지방의 촌락에 설치한 곡물 대여 기관)이 있었으며 1910년 이전에는 과천군 하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이 서이면으로 통합되면서 서이면사무소가 설치되는 등 1900년대 초반까지 인덕원 남쪽의 민백리, 갈산, 당산미, 도양리, 군포장, 귀인, 신촌, 신기 등의 마을을 아우르는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인 청감서원(호계서원)과 일제 강점기 초에는 낙영학교 등이 자리해 안양 교육의 기초가 된 곳이기도 하지요.

 

고 변원신 선생이 들려준 안양이야기

호계동은 예전에 방죽말, 샛터말, 안말 일대가 범이 많은 곳이라 하여 범계 즉 호계(虎溪)라 칭한데서 유래되었다. 호계1동은 조선시대에는 과천현 상서면 도양리 지역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시흥군 서이면 호계리로 되었다. 1941년 10월 1일 안양면 호계리에서 1949년 8월 15일 대통령령 제162호에 따라 안양읍 호계리로 칭했다.

호계1동은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에 의해 호계동을 분동해 덕고개, 금성마을 지역을 호계1동으로 분리하게 되었다. 동으로는 갈산동, 서로 군포시 금정도, 남으로 호계3동, 북으로 호계2동이 각각 위치해있다.
덕고개는 현 호계신사거리에서 교도소로 향하는 고개를 일컬었으며 옛날 지방에서 인자하고 덕을 쌓은 사람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오고가던 고개라 하여 덕고개라 지칭하게 되었다.
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 만안로가 개설된 이래 1930년대에는 서울과 과천, 남양을 관통하는 도로 및 경수산업도로의 개설로 서울, 과천, 수원, 안산을 연결하는 교통이 발달해 아파트가 급속히 들어서면서 인구의 유입이 급증한 곳이다. 또 중앙제지, LG전선 등 60여 업체가 소재한 중소기업 밀집지역으로 평촌신도시의 배후 상가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호계1동은 안양지방 최초 개신교의 전래지로 알려지고 있다. 1895년 보고에 의하면 덕고개 출신 허대진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때 덕고개교회 즉 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하지만 그 위치는 알 수 없다. 문헌에 따르면 1909년 장로교회에서 인수하여 삼성리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전해진다.

호계2동은 호계동에서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 제600호로 분동해 안말, 방죽말, 샛터말 등의 지역이 호계2동이 되었다. 동으로 신촌동, 서로 안양8동, 남으로 호계1동, 북으로 비산2동이 위치했으며 안양교육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동양나이론, 신아화학 등이 운집한 경공업 지역으로 강남, 경남, 대림, 덕원, 현대 등의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신흥개발지역이며 주민의 구성은 토박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죽을 쌓아 농경지에 유입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곳으로 안양면 이전에는 과천면 상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안양면의 전신인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한 곳으로 관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호계2동은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숙종 42년 1716년에 창건되어 대원군 집정 때 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창강서원(또는 호계서원)과 옛 범계주민들이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 초에 설립된 낙영학교는 비록 남아있지 않고 그 기록만 전해질 뿐이지만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안양교육의 발아지였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파연구소가 있고 호계체육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지명유래 - 방죽말(防築洞)
<호계 2동>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下西面의 면사무소 가 있었고, 그 후 1914년 3월부터 1917년 7월까지 始興郡 西二面의 면사 무소가 있었던 유서깊은 고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물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취락이므로 방죽말 (房築洞)이라 칭했다. 그런데 이 방죽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숙종 때 (1699) 발간된 <<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방죽(제언)의 이름은 호계이고, 그 위치는 과천치소(현 과천시 중앙동사무소)에서 서남쪽으로 18리 지점에 있었다. 축조년대는 숙종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에 이미 방죽이있 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방죽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광무 3년(1899)에 발간된<<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하여 방 죽은 虎界에서 虎溪里競宇로 되었고, 이어 일제 때부터 범계방죽으로 불리우다가 1974년부터 실시된 안양6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초에 길일을 택해 방죽 앞에 있던 수령 300년 되는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群雄祭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나무가 죽자 祭를 지내지 않는다.

 

 

행정구역 개편 과정


불국정토를 일컫는 안양이라는 말이 지명으로 처음 사용된 기록은 영조 35년(1759)에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금천현도(衿川縣圖)에 실려 있는데, 삼성산 자락 지금의 석수동 일대를 금천현에 속한 안양리(安養里)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과천 쪽에서는 여지도서 이후 30년이 지난 정조 13년(1789)의 호구조사 기록에서 처음으로 이 지역 리(里)의 명칭이 보인다. 즉, 과천군 하서면 6개리 중의 하나로 안양리(安陽里)를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의 안양역 인근으로 추정된다. 즉, 안양리는 현재의 안양대교를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펼쳐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지역에 나뉘어져 있었던 옛 안양리가 속했던 시흥군과 과천군의 경계는 안양유원지에서 발원해서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지금의 삼성천이었다. 역대로 삼성천 이북은 시흥에 속했고, 그 이남은 과천이 되는 것이다. 시흥에 속했던 안양리(현재의 석수동)가 안양에 속하게 되는 시기는 1963년 1월 1일에 시행된 행정구역개편을 통하여 박달동과 함께 광명에서 안양읍으로 편입되면서 부터이다. 따라서 안양의 뿌리에 관하여 논의한다면 시흥이 아니라 과천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것으로 인식된다. 
오늘날 안양시 행정구역의 90% 이상을 아울렀던 과천군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온 것일까. 고종 32년(1895)에 실시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과천군은 오늘날의 안양, 군포, 의왕의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동작동, 흑석동, 노량진까지 또 동쪽으로는 양재동, 포이동에 이르는 7개 면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서쪽의 2개 면이 오늘날의 안양이 된 상서면(오늘날의 동안구)과 하서면(오늘날의 만안구)이다. 

당시 과천군 현황은 7개면 55동지로 이루어졌다.

- 상서면(마을수 4개); 일동, 이동, 외비산동, 내비산동

- 하서면(마을수 9개); 일동, 이동, 도양리, 호계리, 후두미동, 장내동, 발사동, 석수동, 안양리

- 군내면(마을수 9개); 현재 과천 일대

- 동면 (마을수 7개); 현재 양재,서초,우면 일대

- 남면 (마을수 10개); 현재 군포 일대

- 상북면(마을수 8개); 사당,방배,동작,반포 일대

- 하북면(마을수 8개); 흑석동 일대

 

1914년 4월 1일 과천, 시흥, 안산군이 시흥군으로 통합되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흥군은 북면, 신동면, 동면, 서면, 과천면, 서이면, 남면, 수암면, 군자면으로 9면 83리를 편제하는 거대한 군이 된다. 이 과정에서 상서면과 하서면은 서쪽의 2개 면이 합쳤다고 해서 서이면(西二面)으로 변하게 된다. 당시 서이면은 5개리(호계리, 안양리, 일동리, 이동리, 비산리)를 관할하는데 면사무소를 지금의 호계동(현재의 호계도서관 인근)에 두었다. 3년 뒤인 1917년에 서이면 사무소는 오늘날 안양 1번가로 옮겨오게 되고, 이어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안양면, 1949년 8월 14일 시흥군 안양읍, 1973년 7월 1일 안양시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