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78

[ 옛사진]1961년 안양5동 골목에 있던 구세군 안양영문

2021.04.06./ #기록 #기억 #옛날사진 #구세군안양영문 #sine1961 #안양5동/ 연말이 되면 자선남비로 잘 알려진 구세군에는 '한 손에 빵을, 한 손에 복음을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윌리엄 부스 목사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의 한 교파다. '기독교선교회'란 이름으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내 교단 명칭을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란 뜻의 구세군으로 바꾸고 군대식 조직을 갖췄다. 실제 구세군에서는 군복, 군기, 계급 등 군대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구세군의 장점은 기동력, 헌신과 복종, 단결심, 추진력 등을 꼽는다. 외형적으로는 군대 조직을 빌려 왔지만, 구세군엔 늘 인격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정서가 있다". 구세군이 태동한 데는 거리에 노숙자가 넘쳐나고 사회적 ..

[옛사진]1968년, 안양근로자회관이 들어서기전 주변 모습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SINE1968 #근로자회관부지/ 안양4동 중앙성당 앞에 근로자회관(현 가톨릭관)을 짓기 이전 모습으로 사진 뒤 왼쪽에 종탑이 보이는 교회가 안양중앙교회의 옛 예배당이고 오른쪽 나무들 사이로 살짝 보이는 건물이 한국스레트 고려석면 안양공장이다. 사진 왼쪽에는 안양유치원 초창기 건물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안양 도심 대부분의 지역이 밤나무가 무성한 밤동산이었는데 지금의 중앙성당과 2001아울렛 주변은 ‘좌백율원’이라는 대단위 율원이 조성되어 밤을 주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2018-2019년에는 조선일보 주최의 전국 밤줍기 대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의 역사 기록을 보면 서울교구가 1937년에 밤나무 밭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

[옛사진]1987년 6월의 안양은 민주화운동 열기로 뜨거웠다

6월 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이와관련 안양군포의왕지역 현장에서는 민주화 열기가 보다 일찍 솟구쳤다. 이에 지난 200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 안양군포의왕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안양권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시점을 1987년 보다 2년 앞인 1985년 중반 이후로 정의했다. 사진은 1987년 6웧 어느날 안양 일번가(우측) 입구와 중앙시장 1문(좌축) 앞에서 거리행진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1987년 6월의 안양은 뜨거웠다. 당시는 전두환 독재체제를 타도를 위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던 시기로 1980년 초반 안양근로자회관(현 전진상복지관)에서의 JOC(가톨릭노동청년회) 교육과 노동상담..

[옛사진]통일호 열차 서던 1980년대 초 군포역

비둘기,통일호 열차 서던 1980년대의 군포역(軍浦驛) 모습으로 사진속 역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신축한 역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군포시민 심태섭님이 소장한 것으로 군포시민신문의 '군포옛삶터사진展-10회'를 통해 소개된 자료이다. 군포시 당동에 있는 군포역은 대한제구 당시인 광무 5년(1905년1월 1일) 경부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경부선의 철도역으로 1905년 군포장역으로 개업하였다가 1937년에 군포역으로 변경, 1974년 전철이 다니기 시작하였다. 전철이 운행하기 전에는 여객열차도 정차했었지만 현재는 수도권 1호선 완행과 서울-천안 급행열차가 정차한다. 한때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역이기에, 역사 남쪽으로 과거에 사용하던 저상 승강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세대라는 부역명이 있었으나 당정역이 개..

[옛사진]소외된 이읏을 위한 공간, 1984년의 안양근로자회관

안양시 원도심 한복판인 안양4동(안양시 만안구 장내로 113)에 있던 ‘안양근로자회관’(현 가톨릭복지회관)의 1984년 건물 모습으로 1969년부터 2007년까지 근로청소년, 노동조합, 노인, 외국인노동자 등 소외된 이웃과 시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던 공간이다. 안양은 1960년대 공업지대와 함께 급성장을 하던 때였다. 정부가 이끈 경제시책으로 안양 지역에는 섬유공장, 제지공장 등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다. 많은 공장이 생기자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근로자들이 살 곳을 찾자 안양 지역의 많은 집들이 남는 방을 하숙이나 자취방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많은 근로자들이 주거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섬유, 제지 등 경공업이..

[옛사진]1960년대 안양 사람들 결혼식장으로 인기였던 안양기독보육원 예배당

#안양 #예배당 #교회 #결혼식장 #안양기독보육원 #좋은집 #양명고/ 안양2동 안양천변에 위치한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 경내에 있던 예배당(교회)으로 현재 양명고교 테니스장 자리에 있던 건물로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나오는 모습을 담고 있는 1960년대 기록 사진이다. 이 예배당은 한국전쟁이후 미군이 안양기독보육원에 지어준 교회로 추정된다. 대형 건물이 별로 없던 시절인 1950-1960년대 안양읍민뿐 아니라 시흥군민들이 신식결혼식장으로 자주 애용하던 곳으로 실내가 원목 나무 벽면으로 장식되고 나무 의자가 놓여져 있는 등 분위기가 깔끔하고 좋아 종교 유무를 떠나 인기를 누렸던 공간이었다. 교회는 1978년 무렵까지도 있다가 안타깝게도 철거되어 사라졌는데 당시의 모습를 기억하는 6-70대 어르신들은 ..

[옛사진]1970년대 안양읍내 양지교 주변 풍경

1970년대 중반 안양읍내에서 수암천을 건너는 다리 양지교(현 양지4교) 부근의 풍경입니다. 양지교는 수리산에서 병목안과 안양9동, 안양3동, 안양역을 지나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수암천위에 놓여진 다리로 현재의 안양CGV에서 서울쪽으로 30여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80년대 하천을 복개하여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시가 다시 뜯어내 다리 왼쪽 상류는 철거됐고 오른쪽은 아직 복개돼 주차장 용도로 사용중인데 시는 복개된 남은 구간도 철거한다는 계획지요. 하천 따사로운 햇살이 드는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지요. 사진 위쪽은 안양2동으로 당시에는 북부동이라 불리우던 안양읍내 중심으로 골목에는 단독주택, 구도로(만안로)와 중앙로변에는 교회, 아아스케끼공공장, 제재소와 목재소, 철공소 등과 쌀창고와 정미소, 마부가 운행하는 마..

[옛사진]1968년 안양 다운타운이었던 구시장-시대동(안양1동)

2019.12.06 글씀/ #추억 #구시장 #시대동 #안양1동/ 사진속 풍경은 1930-60년대 안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갔던 안양 시대동(현 안양1동) 구시장의 1968-69년 모습입니다. 사진속에 담긴 기록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 땡땡땡 건널목(현 진흥육교자리)에서 비산동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 및 대림대쪽 방향으로 찍은 시장통의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사진 좌측에는 양산을 쓰고 포대기로 어린이를 둘러맨 아주머니, 장바구니를 든 원피스 차림의 소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웃통은 훌러덩 벗은채 신발은 한쪽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가는 어린이가 있고 사진 우측에는 비산동 방향으로 가는 마차 2대와 밀집모자를 쓰고 자전거 탄 남성이 보이고, 사진 중앙에는 군용트럭 한대가 달려오고 ..

[옛사진]안양 일번가에 있던 1972년 안양경찰서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1972년 #안양1동 #옛안양경찰서 #중앙동/ 1970년대 안양 원도심(현 안양일번가)에 있던 안양경찰서 건물의 모습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찾은 사진입니다. 1972년 당시 시흥군청과 안양사무소 경계 골목(현 옛 서이면사무소 들어가는 길) 초입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과거로 되돌아보는듯 한 안양경찰서 건물은 기와지붕을 얹은 2층으로 당시 도로 앞에 있던 안양읍사무소도 기와 지붕을 얹은 2층으로 기억하는데 같이 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60만 안양시민의 방범과 치안, 지역 교통을 책임지는 안양경찰서는 만안과 동안경찰서 2곳으로 1시 2경찰서 체계로 안양 토박이들 조차 안양 최초의 경찰서는 안양8동 명학역 옆에 있다 없어진 안양경찰서(..

[옛사진]1970년대 안양 망해암행 안양천 건너던 줄배

#응답하라 #1970 #안양 #줄배 #양명교 #안양천 #나무다리 =/ 1970년대 초 안양천을 건너던 줄배입니다. 당시 안양천에는 물이 많았답니다. 이 배가 운행되던 곳은 현재의 양명고앞 양명교가 놓여진 곳인데 하천을 건너 망해암, 기독보육원, 삼영농장 등을 가려면 먼길을 돌아다녀야 했던 주민들과 여름철에는 안양유원지로 지름길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이배를 타고 건너가기도 했지요. 1970년대 중반에는 안양2동 토박이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 부친께서 나무다리를 놓아 양명고 학생들의 통학을 위해 애쓰셨지요.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교 또는 안양유원지쪽으로 빙 돌아다녀야 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