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13

1960년대 안양 호계동에 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

#안양 #기록 #기억 #금성통신 #1960/ 안양 호계동에 있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의 1960년대 모습이다. 사진 아래쪽의 도로는 1번국도로 왼쪽이 안양시내쪽, 오른쪽이 구군포(호계구사거리)방향으로 신작로라 불리우던 도롱로에는 포플러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지금도 이 도로의 대표적 가로수이다. 1번국도에서 공장쪽으로 담장안에는 녹색의 잔디밭이 마치 벨트처럼 넓게 이어져 있는데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멋진 휴식처였다. 금성통신 본관 뒤로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1970년대 중반인 76년 무렵 경수산업도로(경수대로)가 뚫리면서 금성통신 뒷편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사진 우측의 공장동 뒷쪽으로 고층의 LG연구소가 들어서고 후문쪽 언덕 주변으로는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

1970년 겨울 안양유원지 계곡(안양관광호텔 건너편)

1970년 겨울 안양유원지 계곡(안양관광호텔 건너편)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소풍 #마실 #안양유원지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겨울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사진으로 최근(2017년 3월) 구글+를 통해 처음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속 위치는 안양관광호텔(현 블루몬테)에서 계곡 건너편으로 사진 윗쪽 산 정상에 있는 통신용 안테나는 수도군단 통신대가 운영하는 것으로 지금도 있다. 사진 오른쪽으로는 폭포수상회, 호수 여관 등의 간판이 보인다. 당시에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물가였지만 지금은 계곡 윗쪽 염불암 삼거리까지 우회도로가 개통되고 다리까지 놓..

1968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풍경(현 벽천광장앞)

#안양 #기록 #기억 #역사 #피서 #안양유원지 #닐미샬로프/ 1968년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서 우편병(전령)으로 근무했던(1968년 3월-1969년 4월/ 1년 1개월)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속 위치는 현재의 벽면분수가 있는 벽천광장 끝자락으로 연주암, 불성사, 망월암, 천인암, 삼막사, 염불암 등의 사찰 이름이 적힌 화살표 팻말이 걸려있다. 삼성산과 관악산에 자리한 사찰들에 지금은 등산객이나 찾지만 당시에는 안양유원지로 소풍온 나들이객들이 평범한 옷차림에 운동화, 고무신을 신고 비포장 산길을 올라 사찰까지 들렸을 만큼 관광지나 다름없었다. 1960-70년대의 안양유원지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

1970년대 안양 호계동에 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

#안양 #기록 #기억 #금성통신 #1970/ 안양 호계동에 있었던 금성통신 안양공장의 1970년대 초반 모습으로 현재 대규모 공구상가인 안양 국제유통단지 디오벨리가 들어선 자리이다. 1965년부터 부산 온천동(溫泉洞) 공장에서 EMD식 자동교환기를 생산하던 금성사는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968년 안양(安養)에 통신기기 전용공장의 신축에 나선 데 이어 1969년 10월 기존 통신사업부를 주축으로 한 금성통신주식회사를 출범시키고 대표이사 회장에는 락희그룹회장 구인회(具仁會), 대표이사 사장에는 금성사 사장 구정회(具貞會)가 겸임했다. 금성통신 안양공장은 1992년 서울의 산업중기계 부품상 협동조합에 매각되는데 당시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토지는 3만7천평에 건물 등 장부가 1백58억원의 고정자산 ..

1968년 안양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 영내 풍경

#안양 #기록 #기억 #미군부대 #주한미군 #83병기대대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석수동 #닐미샬로프/ 1968년 무렵에 촬영한 안양 석수1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 영내의 풍경으로 1968년 3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이 부대에 '우편병'(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찍은 것으로 1970년 중반 부대가 철수한 후 주공아파트단지가 건립되었다가 노후화로 재건축되어 현재 대림아파트(이편한세상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사진속 주한미군 83병기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영내에는 PX는 물론 영화관, 소방대까지 있을 정도로 컸다. 당시 부대 주변 동네에는 양복점..

1968년 안양 미군부대와 담장 밖 삼양펄프 안양공장

#안양 #기록 #기억 #미군부대 #주한미군 #83병기대대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석수동 #닐미샬로프/ 1969년 무렵에 촬영한 안양 석수1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 안과 밖의 풍경으로 1968년 3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이 부대에 '우편병'(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찍은 것이다. 차량들 뒷쪽의 담 너머는 안양유원지에서 안양천으로 연결되는 삼성천이 흐른다. 행정경계로 볼때는 부대쪽은 석수1동, 하천 건너는 안양2동이다. 부대 담장 너머로 굴뚝이 우뚝 서 있는 공장이 보이는데 1957년 설립해 골판지를 생산하던 삼양펄프 안양공장으로 회사명이 국제제지 이어 1987년 1월 1일부로 아세아제지로 상호가 변경되었다가 전국에 흩어진 공장들을 충북 청원으로 ..

1969년 안양에 있던 주한미군 83병기대대 정문 풍경

#안양 #기록 #기억 #미군부대 #주한미군 #83병기대대 #역사 #안양읍 #원도심 #동네 #골목 #석수동 #닐미샬로프/ 1969년 무렵에 촬영한 안양 석수1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의 정문 풍경으로 1968년 3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이 부대에 '우편병'(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씨가 찍은 것이다. 주한미군 83병기대대는 삼성천옆에 자리했던 대규모 부대(현재 석수 이편한세상아파트)로 1970년대 중반까지 있었다. 이 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부대내에는 PX는 물론 영화관, 소방대까지 있을 정도로 컸다. 당시 부대 주변 동네에는 양복점, 양화점, 잡화점, 병원, 여관(..

1970년 여름 안양유원지 풍경(아주머니들의 소풍)

1970년 여름 안양유원지 풍경(아주머니들의 소풍)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소풍 #마실 #안양유원지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사진으로 최근(2017년 3월) 구글+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1950-80년대 안양유원지는 수도권 여름철 피서지 역할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동네와 마을 주민들의 소풍장소이기도 했다. 사진에는 안양유원지 나무숲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낙네들이 덩실덩실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날 하루만은 남정네들 하여금 집을 보라하고 집안일은 모두 잊고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

1970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풍경(현 벽천광장앞)

#안양 #기록 #기억 #역사 #피서 #안양유원지 #밥아후어한/ 1970-72년 무렵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1969년 9월–1972년 6월/2년 10개월) 'Bob Auerhahn'씨가 찍은 사진으로 최근(2017년 3월) 구글+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1970년대의 안양유원지는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당시 신문들을 보면 100만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안양유원지에는 국립도서관 임간문고에 우표 간인까지 별도로 있는 임시 우체국에 임시 경찰서까지 있었다. 또 1번국도(현 만안로.구도로)에서 안양유원지로 들어오는 경부선 철길(현 굴다리)에는 안양유원지 임시역이 설치돼 완행 열차들이 이 곳에 정차해..

1992년 민중미술 펼쳤던 우리그림-우리들의 땅 회원들

1992년 6월 26-30일 안양문예회관에서 열렸던 우리들의 땅 3번째 작품전 리플렛에 실렸던 우리그림-우리들의 땅 회원들의 모습으로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 홍대봉 불성사 주지스님, 그림이야기 작가로 유명한 이억배, 권윤덕, 정유정, 도장과 전각.서예의 달인 진영근 등 젊었던 시절의 풋풋한 모습들이 담겨있다. 1980-90년대 경기 안양에는 우리그림(걸개그림,판화), 민요연구회(굿.민요.풍물), 안양문화운동연합(문화), 휘모리(사물), 안양독서회(문화) 등 다양한 모임과 동아리들이 결성돼 활동을 펼치는 등 그야말로 지역 문화운동의 전성기였다. 당시 안양을 중심으로 교류해 온 그림 작가들은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삶과 어우러진 미술문화를 위해 1986년 당시 안양근로자회관에서 미술교실 프로그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