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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안양초교 38회 졸업(1969년) 앨범속 얼굴들

안양똑딱이 2019. 1. 31. 16:26

 

 

 

 

 

 

 

 

 

 

 

 

안양초등학교 38회(1969년 졸업) 졸업앨범이다. 40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빛바랜 앨범은 표지와 속장에 이어 두번째 페이지에는 교훈, 교가, 교기와 함께 교장선생님 얼굴, 세번째 페이지에는 은사들 얼굴, 이어 다음장 페이지부터는 각 반별 사진 그리고 사진 뒷페이지에는 사진속 인물을 따라 이름 적은 별지 순으로 8반까지 한반에 평균 6-70명씩 500여명의 학생들이 한 교정에서 공부하고 뛰놀았던 얼굴들이 담겨져 있다.

안양의 오래된 모습과 사람 등 옛 사진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1977년 안양대수해로 인해 기관, 회사, 직장은 물론 각 가정의 책장 또는 장롱속에 보관하던 두툼한 앨범도 대부분 물에 젖거나 훼손, 분실, 망실되면서 과거의 수많은 기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잠깐 안양 대홍수를 살펴보면 1977년 7월 8일부터 9일까지 안양에 내린 비는 무려 467.2mm로 기상청 창설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는데 당시 안양 원도심은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듯한 물폭탄과 해일처럼 밀려드는 물살에 잠긴 수중도시 같았다. 당시 피해 규모는 수재민 9천4백39명, 사망.실종 257명, 재산피해 1백85억에 이르는 유래없는 참사를 빚었으며 안양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등의 제방이 유실되었고 안양과 서울을 연결하는 안양대교는 교각이 주저앉았고 안양시내와 비산동을 연결하는 수푸루지 다리는 끊기는 등 안양 최대의 사건으로 지금도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로 불리우고 있다. 

다시 안양초교 이야기이다.

안양초등학교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우체국사거리 중화한방원 뒤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로 1929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으며 2018년 86회 졸업생(162명)까지 그동안 38,979명을 배출한 안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다. 처음에는 4년제로 유지되다가 후에 6년제로 바뀌면서 안양 교육 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학교 정문이 당초에는 만안로변에 있었으나 현재는 서쪽에 정문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은 주접동과 남부동 사이에 있는 교하동(校下洞.敎化洞) <안양5동> 마을로, 구 한말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소나무가 무성했던 곳으로 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인 일제강점 후 왜병의 군사훈련장으로 이용되던 곳이라 한다.
교화동 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조선조 중엽에 이 마을에 어느 가난한 부부가 외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아들을 공부시킬 수 없게 되자, 그 아들이 서당 선생의 도움으로 무료로 글을 배워 노력 끝에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그에게 높은 관직을 제수하려 했으나 끝내 사양하고, 오직 이곳 마을에 향교를 짓고 우매한 백성을 가르칠 것을 임금에게 아뢰자, 이에 감탄한 임금이 이곳에 커다란 집을 지어주고 敎化堂으로 명명해 주었는데, 그 후부터 이 주변의 마을을 敎化洞으로 부르다가, 1927년 안양국 민학교가 세워지자 학교 밑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校下洞 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안양초교보다 더 오래된 학교는 과천초교(1912년 4월1일 개교)와 군포초교(1920년 4월 1일 개교)다. 안양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안양역사 개설 이후 역 주변 주거지가 점차 커지면서 마을을 형성해 점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1914년 호계동에 세워진 과천군 서이면면사무소 건물이 1917년 안양1동으로 이전해 안양면사무소 개설되고 관공서들이 자리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근대 도시(마을)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곳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군포장이 섰던 군포와 한양 초입인 과천이 더 컸으며 안양에 소학교가 없어 당시 학생들은 군포, 과천, 안산까지 등교했다.

사진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대부분 1957년에 태어나 닭띠생인 이들은 한국 사회의 상징적 아이콘인 '58년 개띠'와 더불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로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고, 숲을 푸르게 하기 위해 송충이를 잡기 위해 휘발유가.석유가 든 깡통을 들고 수리산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고, 겨울에는 난로 땔감(갈탄)으로 부족한 것을 솔방울로 보태기 위해 푸대자루를 들고 또다시 산으로 가야했던 이들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베이비붐 세대만이 인식하고 공유하는 몇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가난'이다. 낡은 교과서를 보따리에 싸맨 채 밑창 달은 고무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 등교하던 일, 원조 받은 분유로 허기를 달랬던 기억, TV있는 집을 찾아가서 박치기 왕(김일)이 나오는 프로레슬링 프로그램을 넋이 나간 듯 보던 일들이 동시에 공유된 경험 중의 하나다.

두 번째는 시대적 ‘다양한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했다는 점이다. 즉 한 반에 60-70명이상, 3부제로 돌아가는 ‘콩나물’ 교실에서 수많은 급우와 경쟁했지만, 결국 1974년 고교평준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른바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높은 인구비율 때문에 당시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로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지만('77학번), 97년 말에는 IMF사태가 터지면서 40대일 때 ‘사오정(45세 정년)’, 50대가 되자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라는 말의 당사자가 된 세대이다. 다소 서글픈 추억도 있지만 이런 동일한 기억과 체험을 공유하면서 또래라는 결속감을 갖는 것이 58년 개띠를 주축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의 아련한 추억이다.

 

1929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 개교 (설립인가 7월 4일, 2학급 편성)
1931년 3월 16일 제1회 졸업식
1938년 4월 1일 안양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
1941년 4월 1일 안양공립국민학교로 개칭
1985년 9월 10일 병설유치원 개원 (2학급 80명)
1994년 6월 27일 병설유치원 종일반 1학급 개설 (계 3학급)
1996년 3월 1일 안양초등학교로 학교명 변경
1996년 5월 25일 학교 체육관 준공
2017년 9월 1일 제29대 송화순 교장 취임

2018년 2월 13일 제86회 졸업식(162명) / 총 졸업생 누계 38,979명

2018년 3월 1일 36학급 편성(특수 2학급 포함)


[기억-조성원]안양초교 운동장의 추억 https://anyangbank.tistory.com/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