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78

1970년대 안양 박달2동 삼봉마을과 박달로

이곳은 박달2동에 위치한 삼봉마을(三峯洞)과 박달로변 사진이다. 마을 뒷산에 조그만 산봉우리 세개가 솟아있어 옛부터 삼봉마을이라 부르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 비닐하우스를 설치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취락이 이루어졌다. 삼봉마을을 지나가는 박달로는 일제 강점기에 수암 소래 인천쪽으로 통행하기 위하여 개설한 도로로 주변에 1950~1970년대에 유한양행 동국물산 삼화제면 등 크고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공업지역이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한 그 자리에 한라 비발디 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건설되고 공동주택들이 건축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70년대 비포장 도로였던 박달로가 넓게 포장되고 박달우회 도로가 개설되었다.

1969년 국민관광지였던 안양유원지와 임시기차역

#안양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관광지 #기차역 #임시역/ 지금의 안양예술공원은 조성 당시인 1930년대에는 안양풀이라 불렀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까지는 안양유원지라 부르던 관광지였다. 사진은 1969년 안양유원지 입구(현 안양교사거리)의 풍경으로 당시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안양유원지로 가던 길(현 예술공원로) 입구에 안양유원지 입구임을 표기한 아치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 오른쪽은 안양역 방향으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안양천이 흐르고 안양교와 안양철교가 있으며, 사진 왼쪽에는 만안교(1980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는 영화아파트가 들어섰다)와 고려석면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아치가 있는 곳에는 현재 예술공원지하차도가 놓여졌으며 도로 주변에는 상가..

[옛사진]981년 양명고 가는 길 안양천 나무다리

#응답하라 #1981년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안양2동 구도로에서 안양천 건너 망해암과 양명고쪽을 연결해 주던 나무다리로 양명고교 학생에게는 소중한 통학였습니다. 나무다리가 있는 곳은 현재 구도로(만안로)에서 청원지하도를 지나면 보이는 양명교가 놓여진 곳으로 안양천에 물이 많았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이후 임시 나무다리가 가설됐는데 안양2동 김귀연 전 주민위원장의 부친으로 안양 의용소방대에 소방대원으로 근무하셨던 고 김인섭 어르신께서 매년 사비를 들여 놓으셨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교 또는 안양유원지쪽으로 빙..

[안양]1976년 안양시내 가족계획 거리 캠페인

#안양 #가족계획 #출산 #산아제한 #만안 #안양로/ 1976년 안양시내에서 펼쳐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가족계획 거리캠페인 모습으로 사진속에 안양의 가장 변화가였던 안양 만안구 중앙 중앙시장앞, 우체국사거리, 안양목재소 등이 보여 안양5동 안양우체국 사거리에서 석수동 안양대교까지 거리 행진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년대에는 산아제한, 즉 가족계획사업은 무엇보다도 절실한 국가적 과제였다. 당시 가임기 여성(15∼49세) 한 명이 평균 6명의 자녀를 낳을 정도로 다산(多産)이 보편화 돼 개인·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60년대),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 기르자’(70년대). 당시 가족계획 캠페인의 대표적인 슬로건이었다. 1962년 수태..

1960년대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 재직 당시 영화배우 최은희씨

#최은희 #영화배우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석수동/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영화배우 최은희씨 사진으로 각 교실에 액자로 걸렸던 사진이다. 후진 양성은 물론 생전 13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던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원로배우이자 대한민국 3번째 여성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최은희씨는는 지난 4월 16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 최은희씨는 1926년 경기 광주시에서 태어나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영화계에는 1947년 '새로운 맹서'(감독 신경균)로 발을 들였다. 1953년 영화 '코리아' 주연을 맡으며 연출자 신상옥(1926~2006) 감독과 열애를 시작해 1954년 결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성춘향'(1961), '..

안양영화예술학교(1967 개교)와 신필름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1967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 건물로 당시 신필름(현재의 현대아파트)과 연결돼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면 무림아파트(안양시 만안구 석천로197번길 52)이지요.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신필름이 1963년 ‘안양촬영소(1956년 설립)’를 인수한 이후 영화인력 양성을 위해 1967년 3월2일 개교한 국내 최초의 영화 학교로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교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론뿐 아니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은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부터 신인배우 양성을 위한 ‘연기실’을 설치해 신인연기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안양에 자리한..

1967년 안양 석수동에 개교했던 옛 안양영화예술학교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1967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 건물로 당시 신필름(현재의 현대아파트)과 연결돼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면 무림아파트(안양시 만안구 석천로197번길 52)이지요.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신필름이 1963년 ‘안양촬영소(1956년 설립)’를 인수한 이후 영화인력 양성을 위해 1967년 3월2일 개교한 국내 최초의 영화 학교로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교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론뿐 아니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은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부터 신인배우 양성을 위한 ‘연기실’을 설치해 신인연기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안양에 자리한..

1960년대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신필름 전경

1960년대 중반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영화촬영소 신필름의 전경으로 가장 번성했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이 자리에는 석수현대아파트(석수동 275번지) 들어서 과거 1960-70년대 동양 최대 규모였던 영화촬영소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으며 안양시가 지난 2016년 9월 7일 아파트 단지 정문앞에 부착한 안양영화촬영소 터 안내판을 통해서 나마 이곳이 과거 영화찰영소였음을 전하고 있다. 신필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1954년(1957년?) 수도영화사 홍찬 사장의 주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종합촬영시설인 안양촬영소가 안양시 석수동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당시 기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할 정도로 동양의 헐리우드를 꿈꾸며 3만평의 대지 위에 각각 500평과 350평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촬영, 현상,..

1970년대 중반의 안양역과 역전 풍경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응답하라 #안양 #안양역 #기차 #광장 #역전/ 1970년대 중반 무렵의 안양역사와 그 앞의 풍경으로 보이는데 역사 출입문 앞과 건물 주변에 대한 조경 공사가 한창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에 남여 한쌍이 걸아가는데 그 옆으로는 지붕을 씌운 형태의 휴게소가 있어 전화기가 귀했던 시절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 장소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사진 등 과거 기록을 보면 안양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더불어 기와를 얹은 형태의 자그마한 역사가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서너차례 중개축 및 신축을 통해 현재의 대형 역사를 갖추었지요. 안양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자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합니다. 부연하면 경부선 1구간 역 중 하서면 안양리에 개설된 역사의..

1970년대 초 안양8동 명학바위에서 본 명학마을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1970년대 #명학마을 #안양8동/ 안양 명학초등학교 정문에서 바라볼때 좌측 산자락에 있는 명학바위에서 찍은 1970년대 초 무렵의 명학마을 모습으로 2017년 11월4일 열린 두루미 명학마을축제 마을투어 리플렛에 실린 사진으로 명학향우회 신성철 회장이 제공했다. 사진에는 10여호 정도의 주택들이 논밭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70년대 초 유행했던 시멘트판넬의 담장으로 집 안과 밖을 경계를 구분했다. 사진 우측으로는 경부선 철길이 있고 그 뒷쪽으로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던 1번국도(현재의 엘에스로)가 보인다. 이동네에서 50년 이상을 살아온 토박이들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마을 집들과 철길, 1번국도 양 옆은 논과 밭들이었다. 현재의 미도아파트 근처에는 목장과 배밭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