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옛그림]우매한 조선인 행동으로 비하한 원태우 지사의 돌팔매질

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19.05.02/ #기록 #역사 #원태우 #일로전쟁사진호보 #일본 #기무라고타로/
이 그림은 일본 搏文館(박문관)에서 1904~1905년 발행한 시리즈 화보책자인 《일로전쟁화보》 제39권(1905.12.8 발행)에 실린 삽화 자료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기록물이다. 그림에는 1905년 안양에서 일어난 원태우지사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돌팔매질을 일본인 화가가 삽화와 단신 기사로 묘사하고 있는데 원 지사의 행위를 “우매한 농민이 술에 취해 무의미하게 돌을 던진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을사조약’의 억지 체결을 강요한 후 5일째가 되는 1905년 11월 22일 아침,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特派大使 伊藤博文)는 짐짓 승자의 여유를 과시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의 숙소였던 대관정(大觀亭, 소공동 하세가와 사령관 관저)을 나서 수원 방면으로 한가로이 사냥을 떠났다. 이날 많은 사냥감을 포획한 채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오후 6시 30분에 열차가 안양역(安養驛)을 출발하여 속도를 올리던 차에 오래지 않아 안양 서리재고개(현 안양시 석수동 안양육교 인근)에서 돌멩이 하나가 차창 밖에서 날아들면서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이토 특파대사는 유리파편에 의해 그의 뺨에 세 곳, 왼쪽 눈 위에 한 곳, 왼쪽 귀 아래에 한 곳을 합쳐 도합 다섯 군데에 상처가 나면서 약간의 피를 흘렸으나 경미한 부상을 입는 것에 그쳤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직후 열차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이토를 호위하던 헌병조장 1인과 헌병 2인이 즉각 하차하여 범인 체포에 나섰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오후 9시 반에 이르러 원태우 등 4명이 체포된다.
일본 박문사에서 펴낸 <일로전쟁 사진화보(日露戰爭 寫眞畫報)> 제39권 (1905년 12월 8일 발행)에는 이날의 상황을 묘사한 기무라 고타로(木村光太郞)의 삽화 하나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민소(憫笑, 가엽게 웃음)할 조선인의 폭행”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그림의 설명문에도 “폭한(暴漢)을 잡고 보니 이는 우매한 농민(農民)으로, 대사(大使)가 탄 기차라는 것도 모르고 술에 취하여 무의미하게 돌을 던진 것이라고 이른다”고 하여 항거의 의미를 축소하는 어투가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잡지의 본문에 게재된 「대사(大使)의 조난(遭難)」이라는 짧은 글에도 이와 동일한 맥락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그림에는 오류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림에는 머리에는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고 허리춤에는 칼을 찬 양반의 모습으로 표현한 중년의 남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열차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뒷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사건 당시 원태우 지사의 나이는 23살의 청년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독립기념관> 등의 기록과 자료를 보면 원 지사는 농사를 짓던 농부였고, 돌절구와 맷돌을 잘 다듬어 그가 만든 것이 현재 독립기념관과 안양박물관에 있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참고로《일로전쟁화보》는 1904~5년 일본 搏文館(박문관)에서 발행한 시리즈 책자로 구 한말인 대한제국 당시의 우리나라의 풍경, 풍습, 사건 등에 대한 사진과 삽화가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글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각 64~68p. 일어 표기. 소프트커버. 상태 양호. 세로 26.5cm, 가로 18.3cm.
문제는 원태우 지사가 1990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이후 안양 곳곳에 세워진 동상, 조형물 등을 보면 23살의 패기 넘치는 젊은 청년 대신 갓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적어도 40대 중년에서 60대 노인으로 표현해 젊은 청년의 항일투쟁 행동을 중장년의 어른이 한 것으로 호도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11월경 안양시 석수동 원태우 지사 돌팔매질 현장에 새롭게 세운 조형물은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그린 《일로전쟁화보》 화보집의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 제목의 그림을 그대로 복제하여 부착함으로 원태우 지사에 대한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없는 일이 진행되어 왔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조형물에는 작품 설명, 제작 시기, 작가 이름 등을 함께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이같은 기록도 없다. 이는 안양시 관내 적지않은 조형물에 해당되는 사안으로 자칫 잘못된 역사를 후세에 전하는 일로 이어질 수 시급히 보완이 필요하다.
한편 원태우지사 조형물로는 1992년 11월 22일에 안양의 자생단체인 「새안양회」에 의해 「원태우지사의거비」가 안양만안시립도서관 광장에 세워졌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원태우지사 얼굴의 부조상, 평촌 자유공원 자유총연맹 안양지회 정문앞에는 동상이 있다.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의거지 자리(관악역에서 서울 방향 300미터 안양자동차학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는 안양시가 설치한 자그마한 돌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가 2018년 가을 석수2동에서 새 조형물로 교체했는데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그린 《일로전쟁화보》 화보집의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 제목의 그림을 그대로 복제하여 부착한 것이다.
2018년 11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원 지사가 돌멩이를 던진 의거지와 원 지사가 태어나 자랐던 안양1동 생가터(안양1동 현 농협 안양역지점)에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 표지판과 원태우 집터 표지석을 신규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