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13

안양영화예술학교(1967 개교)와 신필름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1967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 건물로 당시 신필름(현재의 현대아파트)과 연결돼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면 무림아파트(안양시 만안구 석천로197번길 52)이지요.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신필름이 1963년 ‘안양촬영소(1956년 설립)’를 인수한 이후 영화인력 양성을 위해 1967년 3월2일 개교한 국내 최초의 영화 학교로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교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론뿐 아니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은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부터 신인배우 양성을 위한 ‘연기실’을 설치해 신인연기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안양에 자리한..

1967년 안양 석수동에 개교했던 옛 안양영화예술학교

#안양 #안양영화예술학교 #신필름 #1967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안양영화예술학교 건물로 당시 신필름(현재의 현대아파트)과 연결돼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보면 무림아파트(안양시 만안구 석천로197번길 52)이지요.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신필름이 1963년 ‘안양촬영소(1956년 설립)’를 인수한 이후 영화인력 양성을 위해 1967년 3월2일 개교한 국내 최초의 영화 학교로 신상옥 감독의 부인인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교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론뿐 아니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위주의 교육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신필름’은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때부터 신인배우 양성을 위한 ‘연기실’을 설치해 신인연기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안양에 자리한..

1960년대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신필름 전경

1960년대 중반 안양 석수동에 자리했던 영화촬영소 신필름의 전경으로 가장 번성했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이 자리에는 석수현대아파트(석수동 275번지) 들어서 과거 1960-70년대 동양 최대 규모였던 영화촬영소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으며 안양시가 지난 2016년 9월 7일 아파트 단지 정문앞에 부착한 안양영화촬영소 터 안내판을 통해서 나마 이곳이 과거 영화찰영소였음을 전하고 있다. 신필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1954년(1957년?) 수도영화사 홍찬 사장의 주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종합촬영시설인 안양촬영소가 안양시 석수동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당시 기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까지 참석할 정도로 동양의 헐리우드를 꿈꾸며 3만평의 대지 위에 각각 500평과 350평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촬영, 현상,..

1970년대 중반의 안양역과 역전 풍경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응답하라 #안양 #안양역 #기차 #광장 #역전/ 1970년대 중반 무렵의 안양역사와 그 앞의 풍경으로 보이는데 역사 출입문 앞과 건물 주변에 대한 조경 공사가 한창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에 남여 한쌍이 걸아가는데 그 옆으로는 지붕을 씌운 형태의 휴게소가 있어 전화기가 귀했던 시절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 장소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사진 등 과거 기록을 보면 안양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더불어 기와를 얹은 형태의 자그마한 역사가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서너차례 중개축 및 신축을 통해 현재의 대형 역사를 갖추었지요. 안양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자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합니다. 부연하면 경부선 1구간 역 중 하서면 안양리에 개설된 역사의..

1970년대 초 안양8동 명학바위에서 본 명학마을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1970년대 #명학마을 #안양8동/ 안양 명학초등학교 정문에서 바라볼때 좌측 산자락에 있는 명학바위에서 찍은 1970년대 초 무렵의 명학마을 모습으로 2017년 11월4일 열린 두루미 명학마을축제 마을투어 리플렛에 실린 사진으로 명학향우회 신성철 회장이 제공했다. 사진에는 10여호 정도의 주택들이 논밭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70년대 초 유행했던 시멘트판넬의 담장으로 집 안과 밖을 경계를 구분했다. 사진 우측으로는 경부선 철길이 있고 그 뒷쪽으로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던 1번국도(현재의 엘에스로)가 보인다. 이동네에서 50년 이상을 살아온 토박이들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마을 집들과 철길, 1번국도 양 옆은 논과 밭들이었다. 현재의 미도아파트 근처에는 목장과 배밭도 있었다...

1972년 안양읍과 시흥군 남면 경계 표지판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안양읍 #시흥군 #남면 #경계 #동네 #골목 #1972년/ 사진은 1972년 3월에 찍은 것으로 시흥군 안양읍과 남면(현재의 군포)의 경계지점에 세워진 행정 경계임을 알리는 이정표로 위치상으로는 현재의 엘에스로 도로에 있는 안양위너스골프장 앞으로 보인다. 이정표 옆으로 버스가 달리는 길은 서울에서 부산을 연결하던 1번 국도로 중앙선 표시도 없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보기 드물었던 아스팔트 포장길이었다. 사진 왼쪽으로는 철길이 보인다. 이 또한 경부선 철길로 당시로서는 복선의 철길이 놓여져 있었다. 철길 넘어 보이는 집들은 현재의 안양8동 명학마을 초입이며 멀리 보이는 산 자락은 명학초교가 자리한 곳이다. 당시 이 마을에 갈려면 이정표 100여미터 앞쪽에서 철길밑로 놓여진 굴다리..

1968년 안양 시대동과 태평방직 주변

#안양 #도시 #마을 #동네 #골목 #옛사진 #안양1동 #태평방직 #구시장 #수푸루지 #임곡교 #안양천 #시대동 #닐미샬로프/ 안양3동의 금성방직과 함께 1950-70년대 굴뚝공장 산업단지 안양을 상징하던 안양1동의 태평방직과 주변 시대동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미샬로프가 1968-1969년 겨울에 헬기에서 찍은 사진이다.먼저 사진속에 안양 상공을 동시에 날고 있는 헬리곱터 한대를 설명한다. 이 헬기는 미국 보잉사가 개발한 대형수송헬기인 CH-47D 치누크 헬기(Chinook helicopter)로 1962년 실전 배치된 이후 50년이 지난 2012년까지 1,200여대가 생산됬고,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포함하여 16개국에서 운영중인데 기록에 의하면 1968-69년 당시 석수동..

1970년대 초 안양 중앙동 화진정 골목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1동 #안양일번가 #화진정 #유래정 #삼성집 #1970년/ 사진은 1970년대 초 안양읍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안양역앞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 안양로 304번길) 골목길의 풍경이다. 사진을 찍은 위치는 장내로 149번길의 현 식당-두끼(2층), 명랑핫도그가 있는 교차로에서 중앙시장쪽을 항한 곳으로 세게과자할인점, 식당-두끼(2층)찍은 것으로 사진속 뒷쪽 왼쪽에는 화진정, 오른쪽에는 유래정과 삼성집, 그 뒤로는 신영순의원 간판탑이 우뚝 서 있다. 화진정은 갈빗집으로 유명했다. 화진정 식당 출입문 왼쪽으로 유리로 둘러싸인 갈비를 굽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고소함은 골목으로 진동했다. 초창기에는 수원의 유명한 갈빗집 주방장을 거액을 주고 스카웃 해왔..

1960년대 안양3동 율목마을과 수암천 풍경

1960년대 안양3동 율목마을과 수암천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원도심 #동네 #골목#1960년대 #안양3동 #수암천 #율목마을 #율목동 #피난민촌 #철길 #채석장 #율목주공/ 1960년대 안양9동 새마을 올라가는 길 옆 개천(수암천)의 풍경으로 사진 오른쪽이 현재 율목2교와 한숲작은도서관과 주차장 주변이며 사진 중앙의 개천 건너 뒷쪽의 산자락 아래가 과거 율목동이라 불리오던 율목마을로 현재의 율목주공아파트가 줄어선 자리이다.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어린이들 왼쪽 뒷쪽으로는 안양역에서 병목안채석장까지 놓여진 철길이 있었고, 자동차가 한대 정도 다닐 정도의 도로 앞으로는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현재의 프라자아파트, 1986년 신축)가 있었다. 사진속 동네는 수암천변을 '피난민촌'이라 부른다. 피난..

1959년 유유산업 안양공장 준공식

#안양 #기록 #기억 #옛사진 #이야기 #유유제약 #유유산업 #석수동 #김중업건축물/ 사진은 현재의 안양박물관(구 김중업박물관)에 자리했던 (주)유유산업 안양공장(현 유유제약)의 1959년 5월 준공식 장면이다. 1941년 유한무역주식회사로 시작한 ㈜유유는 1941년 안양풀장(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 초입의 포도밭 등 나대지를 매입해 안양공장을 준공해 2007년 제천으로 이전하기까지 국민의 건강증진과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제약기업이었다. 유유산업 창립자는 유득한 씨였는데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김중업(金重業,1922∼1988)에게 건축을 의뢰한 결과 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건축물이 탄생하는데 어려운 시대에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했다는 것은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다. 특히 사무동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