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630

[기억-정진원]읍내, 안양

지금은 경기도 안양시가 되었지만 전에는 시흥군 안양읍이었다. 시흥군에 딸린 하나의 읍이었다. 군에 딸린 면 소재지가 도시 모양을 갖춰가면서 인구수가 2~5만 명 정도가 되면 읍이 되었다. 당시 안양읍의 다운타운에 안양읍사무소,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서 시흥군청, 군청 맞은편 길 건너로 안양경찰서가 있었다. 그 길로 조금 나가면서 왼쪽으로 안양성당(지금 안양중앙성당)이 있었고, 거기서 성당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냉천동이었다. 언덕배기에 구세군 교회가 있었다. 읍사무소에서는 정오가 되면 사이렌이 울려서 정오를 알렸다. 시계가 드물던 시대의 관의 대민 서비스였다. 당시엔 교회들도 주일 오전 11시 예배를 알리기 위에서 30 분 전에 초종, 11 시에 재종을 쳤었는데, 그 종소리가 조용한 시골에서는 십리..

[기억-정진원]안양, 역전부락

먼저 경인선, 나중에 경부선 철로가 깔리고, 여기저기 역이 만들어지고, 철마(기차 汽車)가 놀라운 길이와 크기와 대단한 위세로 기적(汽笛)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었다. 시골 마을길에 소달구지가 고작이었던 시절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때가 어떤 세상이었다는 것과 그 철도, 철마, 역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였다고 하면 공연히 친일 사대주의자들을 추어주는 것이 될 것이므로 알 만한 이는 아는 것이므로 이만 해 둔다. 여하튼 그렇게 만들어진 역은 신문명·문물·인류가 이합집산하는 거점이 되었다. 60여 년 전 필자는 안양역에서 노량진역까지 기차로 통학했었다. 당시 안양역은 단층짜리 역사였다. 그땐 대단한 것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보잘 것 없는 건물이었다. 입구..

[기억-정진원]50년 전 안양의 다운타운

50년 전 안양의 다운타운 정진원/ 문학평론가/ 고향 의왕 청계동 50년 전 의왕의 덕장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안양의 고모님 댁에 얼마 동안 기숙한 적이 있었다.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던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전등불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에 불이 들어오고, 밤늦게 나갔다. 고모님 댁 길 건너에 바로 안양읍사무소가 있었다. 읍사무소를 중심으로 당시 안양의 다운타운(down town), 전문용어로 중심업무지구(CBD)가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도심지역에는 여러 행정기능이 집중되어 있어서 경관 상으로도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당시 안양읍사무소, 그 옆에 시흥군청, 군청에서 작은 길을 건너 맞은쪽에 안양경찰서가 가깝게 노른자위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안양..

[기사]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 반월저수지와 운크라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 반월저수지와 운크라 국제구호 손길 닿은 논밭의 젖줄 본오뜰 포함 안산 지역 가뭄해갈 6·25 전쟁후 '유엔한국재건단' 맹활약 농업용저수지등 경제기반시설 투자도 안산 반월지역에는 개교한 지 90년이 넘는 반월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남산 뜰이 나오고 그 위로 더 올라가면 호수같이 넓고 예쁘게 단장이 된 반월저수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넓은 저수지와 함께 어울려 우뚝 솟은 터미산성은 예전에 쌓았던 작은 산성이 있던 곳으로 역사적인 유래가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저수지 제방 동쪽 끝에 가면 돌판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半月水利組合 운크라 韓美合同事業地區 竣功 4290年 12月 15日'라고 적혀있습니다. 이것은 반월저수지가 1957년 ..

[기사]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 반월의 근대교육1- 둔대리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 반월의 근대교육1- 둔대리 지역유지 손주사랑이 낳은 '교육의 산실' 배재학당 출신 황삼봉 가정교사로 초빙 마을학생 가르칠수 있는 둔대교회 설립 안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반월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반월'이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주군 소속이었던 3개 면이 수원으로 통합되면서 처음 불리게 됐다. 그러니 올해는 '반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 102년이 된다. 반월은 본디 광주군 소속의 성곶면·북방면·월곡면이 1906년 안산군으로 이속됐다가 1914년에 반월면으로 통합돼 수원군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3개 면은 1906년까지는 광주군에, 이후 1914년까지는 안산군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수원군에 속하게 됐고, 시기마..

[자료]안양시 연표(20106.09.21)

안양시 관내 주요 사건 연표 ●선사삼국시대 475년 (고구려 장수왕 63년) 현재 박달동, 석수동을 제외한 안양지역은 율목군(栗木郡), 박달동, 석수동은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편성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잉벌노현을 곡양현(穀壤 懸)으로, 율목군을 율진군 (栗津郡)으로 개칭 827년 (신라 흥덕왕 2년) 중초사 당간지주 세움 900년 (신라 효공왕 4년) 왕건이 삼성산을 지나다가 노승 능정(能正)을 만남 구석기 시대 평촌동 귀인마을, 관양동, 비산동 등지에서 구석기인들이 타제석기 사용 청동기 시대 관양동 지역에 주거지 조성, 평촌 등지에 고인돌 조성 ●고려시대 1018년 (현종대) 5도양계제 실시에 따라 금주·과주가 양광도에 속함 금주가 안남도호부,과주가 광주목에 속함 1069년 (문종 23년)..

[자료]안양에는 정겨운 동네 이름 있었다

남부동 시대동 중앙동 석수동 양지동 장내동 교하동 냉천동 소골안 주접동 덕천마을 골안 명학동 능골 병목안 창박골 담배촌 구룡마을 삼막골 벌터 신촌 범고개 붓골 박달리 ..등 과거 안양에는 졍겨운 이름으로 불리우던 고유 명칭이 있었다. 동네 이름은 1973년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되면서 안양 1.2.3.---9동, 석수1.2.3동 등 멋없이 숫자로 일렬을 세워 획일화 시켜버렸고 3동은 9동으로 분동이 되면서 위치 또한 뒤죽박죽이다. 물론 순수 우리말로 불리우던 동네 지명을 일제강점기 당시 한자로 풀어내면서 그 의미가 적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옛 지명은 나름의 뜻과 고유의 이름을 지닌 특별한 것이고 독특한 특색대로 풍기는 맛 또한 제각각으로 그 시절 불렀던 동네 이름을 떠올리면 그 시절이 오물오물 되살아난다.

[기사]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기사]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2015.10.07]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서울에도 경기에도 있는 시흥, 왜? 조선시대 영등포까지 거느린 거대도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땅 일부 서울 편입 김범수 기자 발행일 2015-10-07 제37면 광명·안산 등 독립으로 해체 위기도 현재 42만 산업도시 제2 중흥기 맞아 ‘서울의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 어느 지역이 먼저일까’. 서울을 오가는 경기도민은 한 번씩 의문이 생기는 지역이 있다.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다. 심지어 한자어 역시 시흥(始興)으로 같다. 이처럼 다른 지자체에서 같은 지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쪼개지고 축소된 ‘시흥군’ 행정구역 변천사에 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경기도 시흥군은 오늘날의 서울 영..

[기사]길에서 뿌리를 찾다· 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기사]길에서 뿌리를 찾다·15·끝 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경인일보 [길에서 뿌리를 찾다·15·끝]안양 시흥로(현 만안로) 애민정신 다져진 능행 안양상권 '탄탄대로' 정조, 사도세자 6차 원행부터 시흥로 이용 조선시대 교육·과학·예술 '통신사 역할' 1930년대 섬유관련 공업지역 자리매김 행정구역·경계 변경 거듭 교통요충지로 ▲ 조선 후기만 해도 왕의 행차시에 이용되는 다리는 행차시에만 임의로 길을 닦고 나무로 된 다리를 놓았다가 행렬이 지난 이후에 다시 철거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돌로 만안교를 건립하면서 이같은 관례를 과감히 철폐했다. 조선 22대 정조(正祖·1776~1800년 재위)는 역대 누구보다도 궁궐 밖 행차가 많은 임금이었다. 이 가운데 아버지 사도세자가 모셔진 현륭원(顯隆園) ..

[기사]길, 그곳으로 가다·30 제주로-국도 1번의 모태

[기사]길, 그곳으로 가다· 제주로-국도 1번의 모태 [경인일보] 30. 제주로 >1< -국도 1번의 모태 조선후기 6대로(大路) 가운데 서울에서 제주까지 잇는 서부의 간선도로가 '제주로'이다. 이 길은 해남에서 바닷길을 통해 제주까지 닿았으므로 육지부의 종착점 지명을 따 '해남로'라고도 하고, 동래로의 별칭이 영남대로이듯 이 길은 '호남대로'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제주로는 경기도에서 과천~수원~진위~평택 등을 경유하며, 영화역·장족역·동화역·청호역·가천역 등이 본 도로를 관리했다. 제주로는 문헌에 따라 통영로의 분기로로 취급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수원로와 더불어 1번 국도의 모태가 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도이다. 1번 국도는 일제시기에 신작로로 정비된 제주로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으나, 산업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