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630

[자료]안양지역 연구자료 목록

안양연구자료목록/ 조사: 마애종사랑 『경기읍지』『경기지』『고려사』『고려사절요』『과천군양안』『과천군읍지』 『국조문과방목』『국조인물고』『국조인물지』『금양잡록』『기전읍지』『대동지지』 『동국여지승람』『부림지』『사마방목』『사찬읍지』『삼국사기』『승정원일기』 『시흥군민요재사안』『시흥군읍지』『시흥군전충훈부전친군영양둔내장사추수기』 『시흥양향둔급충훈부둔전답두락구별성책』『시흥양향둔급충훈부양둔도조성책』 『시흥직산안핵사주본』『신수읍지』『신증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 『원행을묘정리의궤』『원행정례』『유관악사북암기』『유관악산기』『임원경제지』 『조선사찰사료』『조선왕조실록』『호구총수』 『경기금석대관』 1~7(경기도) 『경기도 건조물 문화재』(경기도, 1995) 『경기도 건축문화유산』1~5(경기문화재단) 『경기..

[자료]안양권 도시의 변천과정(4)

[실업공간 구조] 안양지역은 전술한 바 있듯이 수도 서울과의 인접성 때문에 여러 가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기업활동 면에서 본다면 장점이 단점보다는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연코 안양지역의 입지조건이 다른 지역보다 우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특정지역의 입지조건을 판단하는 준거는 다양하다. 예컨대 지역연고에 의한 입지도 있을 수 있고, 원료 조달이 용이하기 때문에 입지할 수도 있고, 판매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입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을 다 고려하여 기업활동에 따른 필요·충분조건이 맞아서 입지할 수도 있다. 안양지역의 경우 원료조달 면에서 볼 때는 서울의 풍부한 노동력이 상존하고 있고 이는 다른 한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을 인접해 두고 있다는 의..

[자료]안양권 도시의 변천과정(3)

[토지이용] 공업지역 현황안양지역의 공업발달은 수도 서울의 공업기능분산으로 인한 1970년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영향은 안양지역 각 도시의 토지이용변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양지역은 인구와 산업시설 등이 급속하게 성장함으로써 주택용지와 공장용지의 수요가 증대하는 반면 농경지는 계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안양지역의 각 도시별 공장용지 현황은〈표Ⅱ-2-1〉과 같다. 1980년 안양지역의 공장용지는 1.36㎢에서 1997년도 기준 120% 증가한 2.99㎢이다. 특히 1990년에서 1995년 사이 53.1%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안양권의 공업지역 현황 중 각 시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안양시가 58.2%를 점하고 있으며 광명시와 의왕시가 각각 31.4%..

[자료]안양권 도시의 변천과정(2)

[주택현황] 주거기능의 공간적 변화는 1차적으로 주택지의 지리적 분포상태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다. 이러한 확산과정은 인구 및 가구의 변화와 주택건설의 동수 및 건축면적에 비례한다. 먼저 안양지역의 주 거용 건물건축동수와 건축면적을 살펴보면 아래의〈표Ⅱ-1-5〉와 같다. 〈표Ⅱ-1-5〉는 안양지역의 주거용 건물의 건축허가가 1970년대에서 1990년까지는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지 만 1995년 이후로는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평촌 신도시 건설시기인 1985-1990년 기간에는 안양시와 의왕시의 건축허가가 급격한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과천시는 증가율이 감소 추세 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정책적 충격이 없는 상태 즉 가구의 자연증가나 주택의 자연적 멸실로 인..

[자료]안양권 도시의 변천과정(1)

해방이전의 안양지역의 인구현황을 살펴보면, 1914년 소위 府令 제111호에 의한 전국적인 府郡面廢合이 이루어질 무렵, 시흥군은 舊 安山郡과 舊 果川郡이 합해져서 위치와 면적ㆍ인구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그 후 1931년 4월 1일 시흥군의 군청소재지인 永登浦面이 永登浦邑으로 승격되고, 5년 후(1936)에는 永登浦邑 중의 핵심 부분인 永登浦里 등 4개 리와 북면에 속하였던 鷺梁津理 등 6개 리가 京城府에 편입되자, 시흥군의 위치는 전보다 훨씬 남쪽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1941년에는 西二面이 安養面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부터 「안양」이란 지명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시흥군하면 으레 안양을 연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8.15광복 직전 1942년의 시흥군 관할구역은 8면 71개 里가 되었다. 당시 시..

[지역]우리고을 명품점포를 소개합니다

안양권 명품점포들을 소개합니다 MBC 생방송 오늘 저녁 257회 (2015.11.24)에 소개된 안양 박달시장의 웰빙빵박사. 찐빵 하나에 5원 할때 부터 빵을 만들었다는 37년 베테랑 솜씨의 장인이 찐빵과 도넛, 꽈배기 등 옛 추억의 빵을 파는데 알고보니 경기도가 2015년 선정한 전통시장 명품점포다. 찐빵 하나도 건강한 빵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흑미, 단호박, 쑥을 넣어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맛있게 튀겨진 꽈배기와 도넛의 고소한 향기에 사람들 발길 사로잡으니~ 맛은 기본이요! 전통시장 특성상 가격도 착하다.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1동 60-4번지031-469-0049 경기도 명품점포 인증제는 명품점포를 찾는 고객의 증가는 물론 그 고객들이 해당 전통시장 내 다른 점포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시장 ..

[구술]김대규시인에게 듣는 내 고향 안양3동 이야기

문학과 고향을 사랑한 ‘사랑의 팡세’ 김대규 시인 “ 안양을 삶과 문학의 어머니의 고향이라 생각했다” “나의 고향은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곳. 친구야, 놀러 오려거든삼등객차를 타고 오렴.” - 김대규 시인의 엽서 - 이 시를 읽으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시인이 말하는 ‘나의 고향’은 그의 고향 안양이기도 하면서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영혼의 고향이기도 하다. 1960년 고교 재학시절 시집 ‘영의 유형’으로 등단해 고향인 안양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작품 활동을 해온 한국문단의 중견시인이자 안양지역 문화예술계 어른인 김대규(73) 시인의 아호는 ‘문향(文鄕)’이다. 여기엔 삶과 문학의 어머니인 고향 안양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생 안양을 사랑하고 흙의 문학, ..

[자료]1번국도 의왕구간에 대한 역사/의왕시사

1번국도의 연혁 현재 한국의 공설도로(公設道路)는 고속국도[고속도로], 일반국도, 특별·광역시도, 지방도, 시·군도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보통국도로 불리는 일반국도는 고속도로와 더불어 전국의 주요 도시와 항만·공항·관광지 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의 양대축이다. 2004년 말 총 56개 노선으로 짜여진 한국의 국도는 총 길이가 1만 4,264㎞에 달하고 포장율도 계속 증가되어 97.4%에 이른다. 국도는 전세계적으로 남북축으로 뻗은 노선에는 홀수번호를 동서축으로 가로놓인 노선에는 짝수번호를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에서도 남북을 종관하는 간선도로에 대해 서쪽에서부터 1·3·5·7번을 부여하였으며, 동서를 횡단하는 간선도로에 대해 남쪽에서부터 2·4·6번을 부여하였다. 이밖에 8·9·10번국도가 북한에 소..

[자료]1940년부터 시작된 안양지역 축구사

1940년부터 시작된 안양지역 축구사 이 자료는 2003년 안양시민신문과 안양시축구협회가 공동기획으로 정리한 안양축구사입니다. 현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권보형 사무국장이 당시 안양시민신문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지역체육계의 원로들을 만나고 인터뷰하여 10회에 걸쳐 연재를 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최병렬- “60년전에도 안양은 축구도시로 명성 높았다” 안양시민신문·안양시축구협회 공동기획 - 안양축구의 원류를 찾아서 안양 사랑하는 지역 유지들의 축구사랑 남달라 축구명문 전통속 축구 최강도시 자부심 갖게 돼 2003년 12월 26일(금) 01:01 [안양시민신문] 안양시축구협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안양시 축구역사를 정리할 필요성에 뜻을 모으고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안양지역..

[기억-정진원]장터(장대 場垈)

장(場)이 서던 곳이 장터이다. 대개는 오일장, 닷새에 한 번씩 장이 서는 정기시였다. 물건(상품)의 수요공급의 균형을 시간 차로 조절하던 전통시장 시스템이다. 그래서 정기시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돌림(장돌뱅이)이 있게 마련이었다. 전국 어디에나 그런 장터가 있었다. 이른바 전통시장으로 명맥을 지키고 있는 곳도 있지만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대개는 대규모 상업지역, 상가로 변화되면서 퇴색되어 버렸다. 안양에도 안양장이 열렸었다. 비산동에서 임곡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으로 소시장, 왼쪽으로 태평방직공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철도 길까지 좌우로 안양(시)장이 있었다. 새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그곳이 구시장이 되더니, 지금은 장터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장터에 얽힌 이야기는 다 말할 수 없이 많다.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