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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용소방대로 시작한 안양소방서 변천사

안양똑따기 2017. 3. 2. 12:36

[시흥,안양 의용소방대의 역사]
 
가. 최초 의용소방대(시흥군 안양의용소방대)

시흥·안양 의용소방대의 역사는 정부수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회적 여건과 상황은 행정공백 상태를 맞이하게 되어 지도자나 민중이 급격한 변화에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던 어수선한 정국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러지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국가적인 기간산업 및 중요업무는 피폐되고 국민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따라서 소방의 업무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전후복구와 수방 및 화재진압과 예방에 힘을 쓰는 중요한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행정공백 상태로 인해 소방서의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었는데, 이러한 소방의 업무를 대신할 만한 민간조직이 바로 의용소방대였던 것이다.

1948년 3월 1일 시흥군 안양면에 최초로 의용소방대가 창설하게 되었다.

당시 시흥군은 9개면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양은 9개면의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서 시흥군 연합 의용소방대를 이끄는 연합대장의 지위에 있었다. 초대 의용소방대의 운용은 대장 김동식씨가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이끌었으며 대원은 60명으로 구성되었다. 의용소방대 사무실은 안양역전 앞 안양 2동 680번지(현재는 건물 신축관계로 멸실)였으며 대원의 조직 구성은, 지역내에 거주하면서 생업에 종사하고 근명 성실한 자세와 의용봉공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서 선발했고 장비는 완용펌프 1대가 고작이었다.

당시 안양면의 민간인조직 단체로는 의용소방대가 유일한 사화 봉사단체로서 지역업무의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가지 않는 유일한 길이 의용소방대원이 되는 것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지원이 잇달았으나 인원이 한정된 관계로 모두 의소대원으로 충원되지 못했다.(1940년경)

한편 1950년 6·25 동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의용소방대는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대장 김동식씨는 대원 60여명을 이끌고 완전무장으로 대전까지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 의용소방대의 재조직(1950∼1973)

전후의 혼란 속에서 화재가 빈발하자 전국적으로 의용소방대 조직을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는 데 안양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안양 의용소방대도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게 되었다. 안양 의용소방대도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게 되었다. 안양 의용소방대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958년 소방법이 제정되면서 새로운 법적 제도적 규정 아래 운영하게 되었으며 조직 및 규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다.

 

1) 조직 및 정원

당시 경기도내 소방서는 인천소방서, 수원소방서 2곳에 불과 했으므로 소방서가 설치되지 않은 안양읍에서의 의용소방대는 중요한 소방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다음은 전후 조직 정비시의 안양의용소방대 현황이다.

2대 의용 소방대장 : 박경재(87세, 안양시 안양 4동 652 거주)

소 속 : 안양 경찰서

경비과청사위치 ; 안양 1동 639(안양 1번가. 현재 멸실)

구 성 : 60명 (대장, 부대장, 부장, 반장, 대원)

 

대원의 임용은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그 구역내에 거주하는 자 중에서 대장과 부대장은 안양경찰서장의 추천에 의하여 도지사가, 그 외 대원은 경찰서장이 임용하도록 하였으며 소방장비는 완용펌프와 미군 잉여차 G.M.C 1대가 전부였다. 부족한 장비로 화재진압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주로 인력으로 인한 진화가 대부분 이었으며 대형화재등이 발생 시에는 인근 의용소방대 연합대 소속 대원들이 함께 진압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의용소방대 조직체계는 다음과 같다. (1976년 의용소방대 설치등에 관한 시·군조례 시행 이전)

 

2) 복무 및복제

의용소방대원의 주요업무는 안양읍장이 지휘·감독하였으며 대원은 평상시 생업에 종사하면서 비상발령시 소집명령에 따라 출동하였으며 화재발생을 인지하였을 때에는 즉시 출동하여 화재진압에 임하였다. 의용소방대 사무실 옥상에서는 상근요원 2명이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감시초소 근무를 하였는데 근무중 연기나 화염을 보고 화재발생을 육안으로 확인후 사이렌을 취명함으로써 대원들에게 상황 전파를 하여 소집 하도록 하였다.

대원의 복제는 표지장에 계급장, 표장, 가슴표장, 지휘장, 뺏지가 있었고 소방모로서는 작업모와 모장이 있었다. 복제는 정복과 작업복으로 구분 착용하였으며 복제의 착용기간은 소방관 복제 제 8조를 준용하며 유급 상비대원은 상시, 기타 대원은 출동 및 소집 시에 한하여 착용하도록 하였다. 1969년 10월 10일에는 내무부 예규 제 212호로 대원 신분증명서도 발급 하였다.

 

3) 교육훈련 및수당

교육은 월 1회 3시간씩 안양 경찰서 후정에서 실시토록 하였는데 조법, 소방관계 법규, 점검규칙, 방수훈련, 각종 소방펌프 조작법등 소방관 훈련에 준하는 교육을 하도록 하는 한편 교관 및 조교는 경찰서 경비과 소속 경찰관이 하도록 하였다.

수당은 1958년 8월 28일 내무부령 제 59호로 대원의 출동수당에 따라 관내 출동시는 1인당 1회 500환, 관외 출동시는 식비로 1인당 500환, 교육훈련 출동수당은 1인당 1회 300환 이었으며, 1960년 12월 27일 동령 제 69호로 관내출동 50원 관외출동 50원 교육출동수당은 30원으로 조정되었으며 1969년에는 출동수당 100원 교육수당 50원으로 인상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당지븍방법은 예산관계상 지급되지 못하는 횟수가 더 많았다.

 

다. 의용소방대 상비대원제도(1969. 4. 9)

1958년 소방법 제정시 의용소방대 유급상비대원 제도를 두어 상근화를 지역실정에 맞게끔 실시토록 규정지었지만 실질적인 운용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1969년에 가서야 비로소 안양 의소대원들에게 상근화 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였는데 이 제도가 바로 유급상비대원제도 였다. 유급상비대원은 의용소방대원과는 달리 일정액의 보수를 지급 하였다.

당시 유급상비대원의 수는 8명이었으며 안양읍장이 임용 및 지휘·감독을 하도록 하였으며 보수는 지방공무원 5급 을류 1호봉과 같이 하도록 하였고 후에는 지방 소방공무원인 소방원과 같이 하도록 하였으며 매년 승급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하였다. 의용소방대의 장비는 미군잉여차량 1대(G.M.C)와 네오인타 펌프차 1대로 운영 하였다.

 

라. 시 민방위과 소방계설치(1973∼1977)

1973년 7월 1일 안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소방서가 설치되지 않은 안양 지역으로서는 의용소방대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안양시는 인구 5만명이 넘어서면서 화재 및 각종 사고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던차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국민들의 향토 방위태세를 확립하기 위하여 1975년 7월 25일 민방위 기본법을 제정, 민방위 제도를 실시함에 따라 동년 8월 26일 대통령령 제 7767호로 도 경찰국의 소방계를 폐지하고 각도 민방위계를 설치하고 수원소방서에서 파견된 소방공무원 1명이 근무하면서 의용소방대조직 관리의 실무를 맡게되었다.

 

1) 조직 및정원

안양시 민방위계에 파견된 소방관은 유급 상비대원 및 의용소방대원이 관리와 소방에 관한 업무를 전담했으며 아울러 의용소방대원 교육을 시키는 교관의 역할까지도 하였다. 의용소방대원의 수당은 1976년에 교육훈련수당 50원을 폐지하고, 출동수당은 1인 1회 300원으로 현실화 하였으며, 1977년에 출동수당을 1인 500원까지를 시 예산에서 지급 하였다.

안양시로의 승격이 있던 1973년부터 1976년까지의 안양의용소방대의 인원 및 보유장비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 화재 진압활동

1973년 화재진압은 상비대원 8명이 주가 되었으며 의용소방대원이 그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면서 함께 화재를 진압하였다. 또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화재진압을 위해서 상비대원들은 수원 소방서에서 2주간의 위탁교육을 받고 근무에 임하였으며 교육의 주된 훈련은 9인이 한조가 되는 9인조법훈련과 인명 구조훈련 및 기본적인 직무교육과 소양교육을 실시 하였다.

한편 화재현장에서는 소화전을 이용하기도 하였는데 소화전 위치는 현 만안초등학교 앞 급수탑 1개와 안양 1동 1번가 주변에 집중된 지하식 소화전 30여개가 있었다. 당시 가장 큰 화재로는 현 안양본백화점 옆에 위치한 서울 양재학원 2층 건물이 전소된 사고가 있었다.

 

3) 고용원 소방수제도(1976. 1. 1)

의용소방대원은 소방법 개정이후 계속된 신분 변천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변화했는데 1976년에 와서는 상근직의 유급상비 대원의 사기앙양과 신분보장을 위하여 1월 1일부로 고용원 소방수로 임명하여 정규직화 하였다. 당시 27명의 유급상비대원을 지방고용원 소방수로 임명하였다. 이후 계속되는 신분변천으로 1977년 3월 1일에는 고용된 소방수를 정식 소방공무원으로 특채하면서 안양소방서의 개서와 더불어 명실공히 소방공무원이 근무하면서 시민들에 대한 소방행정서비스를 새롭게 전개해 나가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안양소방서의 변천사]

 

가. 설치시기 안양소방서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76년 12월 31일 대통령령 제 8371호로 설치승인을 받았으며 1977년 3월 7일 경기도 규칙 제 983호 경기도 소방서 조직 규칙 공포와 아울러 동년 6월 18일 현재 위치인 만안구 안양 6동 472-2번지에서 개서하게 되었다.

이렇듯 개서하기 까지에는 1977년 2월 5일 개서준비요원으로 도내 소방서를 비롯 타시도에서도 차출된 장신회(현. 대한소방공제회 이사장 직무대리), 소방장 주순옥(현. 하남 신장소장), 소방사 송병일(현. 군포방호과장 소방령), 조병철, 김현기씨등 10여명이 당시 안양의용소방대(대장 박경재) 및 고용원신분 소방관들과 함께 신설 안양소방서의 싹을 틔우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 조직 및 구성

개서 당시 안양소방서는 소방공무원이 국비 13명, 지방비 60명등 총인원 73명 이었고 의용소방대는 동년 10월 26일 시 조례 정원 개정에 따라 60명으로 조직되었으며 직급별로는 소방총결(소방정) 1명, 소방경 2명, 소방위 2명, 소방장 6명, 소방교 2명, 소방사 63명등으로 구성되었다. 직제는 2과 4계, 1파출소를 두었으며 내근 부서로는 소방과와 방호과, 소방과에는 소방계, 장비계, 방호과에는 방호계, 예방계를 두었으며 파출소는 중부파출소(현 안양파출소) 1개대만 편제 되어 있었다.

초대서장은 소방총경(소방정) 고인환, 소방과장 소방경 장석규, 방호과장 소방경 장신회였으며 소방계장 및 중부파출소장은 소방위로 보하고 기타 계장은 소방장으로 보하였으며 내근직원은 계장 1명과 계원 1명으로 구성되어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한편, 시 민방위계에는 소방서에서 직원 1명이 파견되어 안양시의 소방에 관련된 인·허가업무와 건축동의 및 위험물에 관한 업무를 보았다. 소방장비로는 펌프차 7대, 탱크차 2대, 선전차 1대, 승용차 2대로 운영되었다.

 

다. 관할구역

안양소방서 개서 당시 안양시는 안양읍(1949)시절부터 시흥군의 중심시로서 행정관청, 교육시설, 공장 및 업무시설등 주요 관공서와 사회 문화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계로 시세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설치된 안양소방서는 안양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의 화재진압 및 예방까지 전담하게 되었다. 당시 시흥군내에서는 각 면마다 의용소방대가 설치되었으나 조직적인 소방업무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관계로 안양소방서에서 이를 관할하면서 의용소방대 교육이나 훈련 및 기타 소방에 관련된 주요업무를 대신해서 운영하였고 진두 지휘하면서 화재진압을 하도록 하였다. 주요 관할구역으로서는 시흥군 남면, 의왕면, 과천, 광명등이 있었으며 광명에는 광명파견소(소방펌프 1대)가 설치·운영되었다.

 

라. 소방활동

소방서의 주요활동 사항은 화재진압 및 예방활동과 소방검사가 주를 이루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원업무인 인·허가와 건축동의 등은 시청 민방위계에서 담당한 관계로 소방서에서는 화재와 관련된 업무로 일관되었다. 한편 소방서 내근부서에서의 예방활동 및 소방활동은 지금처럼 조직적이지 못하였고 단지 소방활동사항에 대한 결과를 상부기관에 보고하는 정도에 불과하였였다. 그러나 안양파출소에서는 소방검사 및 위험물 단속 등을 병행하면서 화재진압을 하는 체계로 운영되었다.

당시 안양에서의 소방활동중 대형화재로는 동화약품 공장에서의 화재로 2명이 사망하고 많은 재산피해를 냈으며 또한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 화재와 이듬해 삼영화학 스폰지 공장 화재로 5억원의 피해액을 발생시킨 화재도 있었다. 그 외 소규모 간이 공장이나 근린생활 시설등이 많은 대상물들이 건립되면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되었다.

특히 1977년 7월 8일 안양시 일원에 내린 집중폭우로 안양천의 범람과 안양 3동 병목안 뒷산 산사태로 인해 많은 피해가 속출하였는데 인명피해로는 사망 103명, 실종 17명, 이재민 9,439명 및 재산피해 총 185억원의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엄청난 재난으로 인해 당시 안양시는 전기가 끊기고 식수가 보족하고 생필품이 부족한 관계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수재로 인한 피해현장에 소방서 전직원이 투입되어 식수, 생필품 조달, 복구작업등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또한 소방서내 대기실 및 회의실을 이재민 임시 숙소로 사용토록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초창기 소방서가 설치되면서 많은 업무를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시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마. 교육훈련

1977년 6월 18일 개서와 더불어 안양소방서에서는 경기도 소방공무원공채 1기 27명이 전입되었으며 이들은 전입과 동시에 경기도 지방공무원 연수원에서 1주일간의 교육을 받고 근무지에 배치되었고 자체소양교육 및 직무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1973년 이전까지는 경찰전문학교에서 위탁교육을 실시하여 기본 교육을 받았으나 소방공무원이 민방위 본부로 흡수되고 신분도 단일화 되었지만 여건상 기본교육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임, 직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어졌음으로 이 기간은 교육부재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임직원의 교육은 각 도청 소방과 주관으로 강당 등을 빌려 소방간부들이 순회교육 형식으로 실시하였으며 1978년 9월 4일 내무부 소방학교가 설치되면서 소방공무원 교육훈련 규정도 제정하게 되었다.

 

바. 소방홍보 활동

소방홍보는 화재진압 못지 않게 중요한 소방서 업무중의 하나이다. 매년 11월 1일부터 15일 까지를 불조심 강조기간으로 설정하여 11월 1일 안양역전 광장에 모여 불조심 다짐대회를 열었고 아울러 같은 날 소방의 날 행사를 병행하면서 관내 유관기관단체 기관장과 공장의 업주들을 초청하여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였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소방관들은 소방차를 이용한 가두행진과 가장 행렬등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주요내용을 보면- 어린이 불조심 사생대회 및 웅변대회- 시험훈련 및 경연대회- 직장단위 불조심 행사- 불조시 좌담회 개최등 많은 행사들을 진행하였으며 이러한 대외적인 홍보활동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77년 6월 18일 경기도 규칙 제 983호에 의거 안양소방서가 설치되면서 1977년도부터 1994년까지 2과 4계의 조직체계로 있었으나 1995년 2월 21일부터 3과 6계(신설 : 구조구급과, 구조계, 구급계)의 부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 단위로 설치된 파출소의 현황은 개서 당시 1개 파출소였던 것이 소방 수요의 증가와 조직 개편에 따라 현재 6개소 파출소, 1개 구조대로 운영되고 있다. 파출소의 개소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가. 중부파출소 설치(1977. 6. 18)

안양소방서 개서와 더불어 소방서 하부기관 단위로서는 최초로 중부파출소가 개소하게 되었으며 개소당시 중부파출소 인원 현황은 소방위 1명, 소방장 3명, 소방교 2명, 소방사 5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장비로서는 펌프차 7대가 고작이었지만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시흥군지역 및 안양권내 화재 진압 및 예방 업무를 전담해서 맡고 있었다. 중부 파출소는 1989년에 파출소명칭 변경으로 인하여 안양파출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나. 남부파출소 설치(1980. 6. 5)

경기도 규칙 제 1149호에 의거 동안구 호계 1동 1000-27번지에 남부파출소가 설치되었으며 개소 당시 남부파출소는 인원 11명(소방위 1명, 소방사 1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장비로서는 펌프차 2대, 관할지역은 안양권인 호계동, 관양동, 비산동, 평촌동을 비롯하여 군포, 의왕까지 관할하게 되었다. 남부파출소도 1989년 파출소 명칭 변경에 의해 호계파출소로 바뀌었다.

 

다. 의왕파출소 설치(1982. 12. 11)

1982년 12월 11일 안양소방서 의왕파출소가 개소하게 되었으며 인원 13명(소방위 1명, 소방장 2명, 소방교 4명, 소방사 6명)이고 장비는 펌프차 1대, 탱크차 1대를 보유 운용하게 되었으며 의왕읍과 군포읍 전역을 관할지역으로 하였다. 의왕파출소 개소로 남부파출소의 관할구역이 안양권내로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라. 과천파출소 설치(1983. 1. 22)

경기도 규칙에 의거 1983년 1월 22일 안양소방서 과천파출소가 개소하게 되었으며 인원 13명(소방위 1명, 소방장 2명, 소방교 4명, 소방사 6명)과 장비로서는 펌프차 1대, 탱크차 1대였으며 관할지역은 과천읍 일원이었다.

 

마. 비산파출소 설치(1985. 10. 14)

비산파출소는 경기도규칙 제 1654호에 의거 1985. 10. 14일 안양종합운동장내(동안구 비산3동 1023번지)에 설치되었다. 개소 인원은 9명(소방장 1명, 소방교 4명, 소방사 4명) 장비로서는 펌프차 2대 등이 있었으며 관할지역은 비산동, 관양동 일부와 석수동을 관할하였다.

 

바. 석수파출소 설치(1986. 12. 19)

경기도 규칙 제 1767호에 의거 1986. 12. 19일에 만안구 석수 2동 259-4번지에 설치되었으며 인원은 11명(소방위 1명, 소방장 2명, 소방교 4명, 소방사 4명), 장비로서는 펌프차 1대, 탱크차 1대 등을 보유 운용하였으며, 박달동과 석수동 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사. 구조대 발대(1991. 5. 22)

안양소방서 119구조대는 경기도 규칙 제 2193호에 의거 1991년 5얼 22일 발대되었다. 119구조대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인명구조 및 각종재난에 대처하기 위하여 전국적인 조직이 이루어 졌으나 안양은 1991년에야 비로소 발족되었으며 발족당시 인원은 11명(소방위 1명, 소방장 2명, 소방교 4명, 소방사 4명), 장비는 구조 공작차 1대, 구조장비 86종 328점으로 각종 재난현장에서 선봉적 활동을 했다.

 

아. 범계 파출소 설치(1992. 8. 29)

경기도 규칙 제 2328호에 의거 1992년 평촌 신도시 건설과 더불어 설립된 파출소로서 인원 9명(소방장 1명, 소방교 4명, 소방사 4명)과 장비 3대(펌프차 1, 탱크차 1, 경화학차 1)로 대민봉사를 시작하였다. 범계파출소는 범계동, 달안동, 부흥동, 부림동 관양 2동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자. 귀인파출소 설치(1993. 5. 12)

경기도 규칙 제 2407호에 의거 범계파출소와 마찬가지로 평촌 신도시 주민들을 위해 설립된 파출소로서 인원 9명(소방위 1명, 소방자 2명, 소방교 2명, 소방사 4명)과 장비 3대(펌프차 1, 탱크차 1, 고가사다리차 1)로 운영되었다. 귀인파출소는 평촌동, 평안동, 귀인동, 신촌동, 갈산동 등 5개동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차. 구조·구급과 설치(1995. 2. 21)

소방관서에서의 구급업무가 시작되면서 폭증하는 구급업무 대처와 보다 나은 구조업무 향상을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인구 50만 이상의 시에는 구조 구급과를 설치토록 함으로써 안양소방서에서도 구조·구급과 설치로 인해 소방업무가 한층 활기를 띠면서 시민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구조·구급과 증설은 소방행정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듬해 발생한 단군이래 최대 인재라고 표현하는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발생시 전국의 소방이 처음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주력으로 참여하여 사태수습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가. 초창기 인원 현황

 

1) 소방공무원 현황

1977년 개서 당시 인원은 소방공무원 76명으로 조직되었으며 직급별로는 소방총경(서장)1명, 소방경 2명, 소방위 2명, 소방장 6명, 소방교 2명, 소방사 63명, 기능직 1명이었다. 단 하나뿐인 소방파출소(중부)에 근무하는 인원은 내근직원을 제외한 56명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계속되는 조직기구 개편으로 인원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특히 구급대의 설치 및 구조대의 발대로 급격한 소방수요에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증가는 불가피 하였다.

 

2) 의용소방대원 현황

의용소방대는 대장, 부대장, 부장, 반장, 대원으로 조직되었으며, 조직기구로는 총무부(서무반, 보급반), 방호부(소화반, 구조반), 훈련부(훈련반, 예방반)를 두었다.

의용소방대원은 50명으로 조직되었고 1977년에는 안양소방서 최초로 부녀의용소방대가 조직되기도 하였는데 조직당시 부녀의소대는 지원자가 부족한 관계로 소방서 직원의 부인들로 구성하기도 하였으며 최초 인원은 38명으로 구성되었다.

 

나. 인원증가현황

1977년이후 안양소방서는 계속되는 조직의 확장과 개편으로 구조대, 구급대설치 및 6개 파출소 증설과 구조 구급과가 설치되면서 꾸준한 인원의 증가를 가져왔다. 1977년부터 1997년까지의 소방공무원 변동현황은 다음과 같다.

 

가. 초창기 장비현황

초창기 안양소방서의 장비로는 미국의 원조에 의한 차량들로서 소방서에 도입된 것으로는 미잉여 차량 스리코타 레오, 인타, G.M.C로서 6.25사변시 사용했던 미군용 차량을 이양 받아 펌프차, 물 탱크차 등으로 개조하여 사용된 것들이었다. 이후 정부의 소방장비보강 5개년 계획에 따라 안양소방서는 제 2차 소방장비 보강계획(1997-1981)의 일환으로 장비의 보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1977년 당시 펌프차 7대중 미 잉여 차량 5대와 국산 소방펌프차 2대가 함께 배치되었다.

 

가. 소방서 설치당시 관할구역

소방서 설치이전은 시흥군내 모든 지역(면단위)에 의용소방대가 결성되어 있는 관계로 별다른 관할구역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었으며 단지 연합의소대결성으로 필요시 응원출동 할 수 있는 체제로 형성되었다.

 

나. 관할구역의 변천

소방서가 설치되면서 안양은 소방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소방 사각지대인 인근지역의 화재진압 및 예방을 담당하기 위해 관할 구역으로 편입하여 관장 하였으나 이들 지역들은 각 지역별로 소방서가 설치되면서 분리 독립되었다.

 

초창기부터의 관할구역 변천현황은 다음과 같다.

1977. 6. 18 안양소방서 개서 시흥군내 의용소방대 지휘·감독

1979. 7. 16 시흥군 군포읍, 소하읍이 관할구역으로 편입

1982. 4. 30 시흥군 의왕읍, 과천면 일원 관할구역으로 편입

1982. 9. 13 안양소방서 의왕파출소 설치

1983. 12. 11 광명소방서 개서로 광명시일원 관할구역 분리

1983. 1. 22 안양소방서 과천파출소 설치

1984. 11. 17 과천소방서 개서로 과천면 일원 관할구역 분리

1986. 12. 17 군포소방서 개서로 군포관할 분리

 

광명, 군포, 과천소방서가 개서되면서 안양소방서는 안양지역만을 관할하였으며 1992년 범계파출소 및 이듬해 귀인파출소의 개서와 더불어 안양지역의 관할구역은 현재의 지역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가. 초창기 화재발생

초창기 소방서 개서 당시의 주요업무는 화재를 진압 및 예방하는 것이었다. 당시 화재의 처종별 원인별로 분석해 보더라도 간이공장이나 주택, 점포화재 등으로 나타나며 원인도, 전기, 난로, 아궁이불취급부주의 등으로 인한 화재발생을 들 수 있다. 주택화재를 보더라도 초가집이나 기와집 등의 화재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공장 화재는 간이 수공업공장의 화기취급 부주의가 대부분이었다.

 

나. 화재발생통계(1978∼1996)

최근 20년간 안양소방서관내에서 발생한 화재를 통계자료를 가지고 원인별, 처종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다. 비교, 분석

앞의 도표에서의 화재발생 현황이 보여 주듯이 안양소방서 관내의 화재발생건수는 해마다 많게는 20% 이상씩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해액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원인별 화재발생 현황을 보면 예전에는 난로, 아궁이불 취급부주의등이 주된 화재발생 원인이었으나 점차 이는 감소하는 대신에 현재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전기, 가스등의 취급부즈이 등으로 인한 화재가 증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처종별 화재발생 현황을 보면 학교, 병원 등의 교육, 업무시설의 화재발생은 미약한 반면, 주택·점포·공장 등의 화재발생은 꾸준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8년 2월경에는 안양소방서가 20년을 넘게 사용한 안양 6동 현 청사에서 평촌 신도시로 이주할 예정이다. 새로 이주할 평촌 부림동 청사는 부지 1,663평, 연면적 1,215평, 지상 3층, 지하 1층의 현대식 건축물소서 50여억원의 예산으로 건축중에 있다.

새로운 청사에는 미래정보화 사회에 부응하는 한편 소방업무에 혁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첨단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출동 지령시스템 시범사업을 2개년간('96-'97) 약 24억원의 예산으로 도내에서는 최초로 설치를 추진중이며, 시범 운영하여 장차 도 전체로 확산하려고 신청사 건축과 더불어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낡고 비좁은 현 청사로부터 신 청사로 이주, 새로운 평촌 부림동 시대를 맞으면서 안양소방서는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봉사소방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설 치 년 도 조 직 변 천

1948. 3. 6 경기도 시흥군 안양의용소방대 창설 (1975. 12. 31 경기도 안양시 의용소방대로 명칭변경)

1976. 12. 31 안양소방서 설치승인(대통령령 제 8371호)

1977. 3. 7 경기도 소방서 조직 규칙공포(경기도 규칙 제 983호)

1977. 6. 18 안양소방서 개서(중부파출소 개소)

1980. 6. 5 남부파출소 개소

1982. 12. 11 의왕파출소 개소

1983. 1. 22 과천파출소 개소

1985. 10. 14 비산파출소 개소

1986. 12. 19 석수파출소 개소

1989. 1. 25 파출소 명칭변경(중부 → 안양, 남부 → 호계)

1991. 5. 22 구조대 발대(경기도 규칙 제 2193호)

1992. 8. 29 범계파출소 개소(경기도 규칙 제 2328호)

1993. 5. 12 귀인파출소 개소(경기도 규칙 제 2407호)

1995. 1. 26 안양소방서청사 이전확정(경기도 소방력보강 5개년계획)

1995. 2. 21 안양소방서 구조·구급과 신설

1996. 7. 23 신축청사부지매입

1997. 4. 7 신청사신축기공

1998. 2 안양소방서 신축청사 완공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