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52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운수.통신업)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운수.통신업)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운수·창고 및 통신업 안양권의 운수·창고 및 통신업은 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 안양권 운수·창고업 종사 사업체수는 1981년 72개 사업체, 종업원 3,403명에서 1998년 6,450개에 23,315명이 종사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운수업·창고업은 72개 사업체에서 6,324개로 증가하여 연평균 27.7%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종업원수도 1981년 3,403명에서 20,560명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8.4%의 신장세를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수치는 안양권이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에 입지하고 있어 이 지역의 물류기지로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부곡 복합화물터미널등 대형 물류기지들이 입지..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금융업)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금융업)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금융의성장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사회불안과 높은 물가상승 가운데 혼란을 겪으며 출범하였다. 1950년 중앙은행법과 일반은행법의 제정 등 금융제도를 정비하면서 현대적인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금융제도가 정착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후 전쟁복구를 위해 산업은행이 설립되고, 1957년에는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거시 금융정책이라 할 수 있는 재정금융안정화계획을 수립하면서 안정적인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금융기관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으나 4·19혁명, 5·16 혁명 등 정치적 혼란으로 금융계가 전체적으로 위축되었다. 開發年代에는 경제개발을 위..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유통업)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유통업)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시장변천과정 시장이란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로서 자급자족 경제를 탈피한 경제권에서는 물건의 교환을 위해 생활의 필수적인 사회제도의 하나로 존속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물물교환의 단계를 넘어 물건의 매매가 이루어진 시장의 틀이 잡힌 것은 화폐의 보급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조선조 태종 이후로 추정된다. 당시 시장은 한양에 공랑상점인 시전과 6개의 어용상점인 육의전, 그리고 지방에는 정기시장으로 5일장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직업관은 시장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으나, 중종, 명종대에 들어서 전라, 충청, 경상 등 삼남 각지에 장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순조 때는 전국적으로 약 1,000여 개의 장이 서고 있..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광공업)

[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광공업)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개황 안양권 광공업의 발전은 안양권 지역의 인구증가와 맞물려 있다. 그리고 안양권 지역의 인구변화 및 광공업의 발전은 중앙정부의 경제정책, 그리고 수도권정책 등과 맞물려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전반적인 추세이지만 1970년대 국가공업화 정책 이전에는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부문에 대한 뚜렷한 신장세는 발견되지 않는다. 일제 초창기 한국에 진출한 일본자본은 주로 일본국내에서 독점에 의해 밀려난 군소자본이었다. 그러나 일본 독점자본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해외진출이 시작되었고, 특히 한국이 그 주요 대상지였다. 이런 영향으로 안양에도 최초로 1932년에 안양1동 舊 大農터에 朝鮮織物株式會社..

[자료]1980년대 안양지역 문화운동의 주역들

[자료]지난 80년대 안양지역 문화운동의 주역들 [12/29 시민연대]미술문화운동에서 창작 그림책 만들기 2004년 1월 3일부터 한달간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창작원화전, 그림책에서 소리난다"전의 작가 대부분이 지난 80년대 안양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펼쳤던 주역들로 구성되어 있어 시간의 흐름속에 파묻힌 흔적들을 찾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진열대에 그림책들이 가득하다. 10여년 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림책이 많다. 대부분 번역그림책들이지만 새롭고 좋은 우리그림책도 많다. ‘창작그림책’이라는 불모지에 발을 내딛고 개척해온 그림책 작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스크린 쿼터제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지키고자 한것처럼 번역그림책의 범람으로부터 창작그림책을 지켜고..

[자료]안양축구의 원류를 찾아서

이 자료는 2003년 안양시민신문과 안양시축구협회가 공동기획으로 정리한 안양축구사다. 현재 늘푸른안양21 사무국장으로 있는 권보형 사무국장이 당시 안양시민신문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지역체육계의 원로들을 만나고 인터뷰하여 10회에 걸쳐 연재를 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하는 소중한 자료다. -최병렬-  [안양시민신문]60년전에도 안양은 축구도시로 명성 높았다안양시민신문·안양시축구협회 공동기획안양 사랑하는 지역 유지들의 축구사랑 남달라 축구명문 전통속 축구 최강도시 자부심 갖게 돼 안양시축구협회는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안양시 축구역사를 정리할 필요성에 뜻을 모으고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안양지역 축구사에 대한 증언을 통해 안양시민신문사와 공동기획으로 안양지역 축구사를 정리하려 한다. 이에 지난 9일 안양..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4)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4) [12/04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실업공간 구조] 산업입지의 변화 안양지역은 전술한 바 있듯이 수도 서울과의 인접성 때문에 여러 가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기업활동 면에서 본다면 장점이 단점보다는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연코 안양지역의 입지조건이 다른 지역보다 우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특정지역의 입지조건을 판단하는 준거는 다양하다. 예컨대 지역연고에 의한 입지도 있을 수 있고, 원료 조달이 용이하기 때문에 입지할 수도 있고, 판매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입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을 다 고려하여 기업활동에 따른 필요·충분조건이 맞아서 입지할 수도 있다. 안양지역의 경우 원료조달 면에서 볼 때는 서..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3)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3) [12/04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토지이용] 공업지역 현황 안양지역의 공업발달은 수도 서울의 공업기능분산으로 인한 1970년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영향은 안양지역 각 도시의 토지이용변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양지역은 인구와 산업시설 등이 급속하게 성장함으로써 주택용지와 공장용지의 수요가 증대하는 반면 농경지는 계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안양지역의 각 도시별 공장용지 현황은〈표Ⅱ-2-1〉과 같다. 1980년 안양지역의 공장용지는 1.36㎢에서 1997년도 기준 120% 증가한 2.99㎢이다. 특히 1990년에서 1995년 사이 53.1%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안양권의 공업지역 현황 중 각 시가 차..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2)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2) [12/04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주택현황] 주거기능의 공간적 변화는 1차적으로 주택지의 지리적 분포상태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다. 이러한 확산과정은 인구 및 가구의 변화와 주택건설의 동수 및 건축면적에 비례한다. 먼저 안양지역의 주 거용 건물건축동수와 건축면적을 살펴보면 아래의〈표Ⅱ-1-5〉와 같다. 〈표Ⅱ-1-5〉는 안양지역의 주거용 건물의 건축허가가 1970년대에서 1990년까지는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지 만 1995년 이후로는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평촌 신도시 건설시기인 1985-1990년 기간에는 안양시와 의왕시의 건축허가가 급격한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과천시는 증가율이 감소 추세 를 ..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1)

타임머신 [자료]안양지역 도시의 변천과정(1) [12/04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해방이전의 안양지역의 인구현황을 살펴보면, 1914년 소위 府令 제111호에 의한 전국적인 府郡面廢合이 이루어질 무렵, 시흥군은 舊 安山郡과 舊 果川郡이 합해져서 위치와 면적ㆍ인구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그 후 1931년 4월 1일 시흥군의 군청소재지인 永登浦面이 永登浦邑으로 승격되고, 5년 후(1936)에는 永登浦邑 중의 핵심 부분인 永登浦里 등 4개 리와 북면에 속하였던 鷺梁津理 등 6개 리가 京城府에 편입되자, 시흥군의 위치는 전보다 훨씬 남쪽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1941년에는 西二面이 安養面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부터 「안양」이란 지명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시흥군하면 으레 안양을 연상하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