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91

[20231230]안양의집(고아원) 설립자 故 사태현 장로

[복지인물사] 설원복지재단 설립자 故 사태현 장로 기자명 김경옥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입력 2023.10.20 14:50 복지타임스에 실린글( https://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53 ) 원아들의 ‘아버지’로서 살고 싶었던 복지선구자 故 사태현(1908~2003) 설원복지재단을 설립한 사태현 장로와 부인 김애월 권사 아동 양육시설 안양의집(구 안양보육원)과 안양노인전문요양원이 속한 사회복지법인 설원복지재단을 설립한 고사태현(史泰鉉)은 1908년 이천에서 출생하여 2003년 9월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08년이라는 그의 출생년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굴곡진 근현대사와 함께 걸어온 그의 일생은 경기도 이천에서 ..

[20231220]일제시대 시흥군 지명수배자 1호 유택윤목사

유택윤 [兪澤潤 1896-1977] 황해도 옹진(연백)출생 1927년 동양선교회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은산교회, 석동교회 등지에서 전도사로 시무했고, 193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아 인천교회에서 목회했다. 일제시대 안양.시흥군 지명수배자 1호(신사참배 반대)였다. 1941년 의왕 오전리교회 제3대 담임목사 부임 1941년 교회 시무중 신사 참배 반대로 수원경찰서 수감.고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45년 해방되던해 석방 1950년 사저 매각으로 안양성결교회 개척(벽돌 교회당) 건축. 1964년 의왕 오전리교회 제11대 임목사 부임 및 1965년 사임 안양성결교회 퇴임후 서울 상도동 성결3교회에 거주후 삼성동 해청아파트에서 별세(자:유병욱자택) 2018년 유택윤 목사님과 이규삼 사모 합장 (서울 불광동 은광..

[최병렬]안양.군포.의왕.과천 막걸리 이야기(2023.12.18)

2023.12.17/ #막걸리 #과천도가/ 관악산생막걸리 2023 크리스마스 에디션 6병을 구입해 이리저리 나누고 성탄절날 한잔 할것을 준비하기위해 추가구입하려 했더니 품절이다. 이런 진작 주문할것을 기회르 놓쳤다. 과천도가에서 만드는 관악산생막걸리 인기가 좋다. 군포에는 가양주작, 의왕에는 오봉막걸리가 있다. 안양에도 안양양조장이 있었다. 기록을 보면 안양양조장은 시흥군 안양리(현 안양일번가)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실업인 윤경섭씨(윤국노 전 국회의원 부친)가 세워 주조계에 이름을 떨쳤었는데 그의 둘째아들인 윤필노씨가 양조장 대표를 할 당시인 1970년대 중반 문을 닫으면서 안양에서의 막걸리 생산의 맥은 끊긴다. 이후 1990년 들어 전통문화발굴 및 관광문화개발 차원에서 전통주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최병렬]목민관 최대호, 다산의 길을 걷다(2023.11.13)

최대호 안양시장이 공직자로서 최고상인 다산목민관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마다 년말이 다가오면 금년도 다산목민대상 수상지는 어디일까 각 지자체마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각 단체장들이 이 상을 선호하는 이유는 행정자치부가 정약용 선생의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정신을 바탕으로 시민을 위한 창의 시책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주는 상으로 그 어느상보다 권위가 있으며 해당 지자체를 이끄는 단체장은 다산의 정신을 잇는 목민관으로 불려지기에 최고의 영예라 할수 있기에 전국의 각 단체장들이 임기중 꼭 받고 싶은 로망과도 같은 상이다.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다산목민대상은 풀뿌리 민주주의 확신과 지방행정 건전화에 기여한 모범이 될만한 기초지자체를 선정, 2009년부터 시상하고 있으..

[최승원]안양시 만안구는 서해 해양문화 지역(2023.05.11)

만안구 안양사 지역은 고대 미추홀의 내륙 거점지역으로 중심지로 본다. 이러한 지리에서 고대 불교와 문화의 이입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만조시는 안양천 북측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송도 마포 영등포로 연결되는 근기(近畿)로서 해상교역의 출발지 이다. 군사적으로 수리산과 박달동 말목장이 현 군용지로 보급과 지역방어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안양천 하류는 1950년 인천상륙시 공방전이 있었다. 수리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은 우수한 품질의 쌀등 재배로 왕실에 올리는 진상미였다. 또한 포도 딸기 배등이 품질이 우수하였다. 안양장석과 맑은 물은 도자기제작의 적지이며 청자장(靑瓷匠) 인간문화재인 해강 유근형(1894-1993)옹의 연구지역 이었다. 조선직물 삼덕제지등 근현대기업의 젓줄이 되었다. 근대 유토피아적 자연환경, 문..

[최승원]부곡 철도도시 계획-방사선도로(2023.08.31)

부곡 철도도시 계획과 방사선 도로 소개식 대로(大路) 계획 비행기 이착륙 가능 목장, 병원, 학교를 배치한 이상적 전원도시 일본 정부는 1941년 11월 25일자 법률 제91호로 종전까지의 방공법을 크게 보완했다. 이 개정에서는 이른바 방공공지(防空空地) 및 방공공지대(防空空地帶)의 설정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반공법의 두 번째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1943년 10월 31일 일자 법률 제100호에서 였다. 이 개정은 이른바 ”전시건물소개“라는 비상대책이 규정되었다. 반공상 필요가 있을 때 일정구역 내의 건축물의 이전-철거를 강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었다. 1943년 의왕시 삼동 192번지 일대에 경부철도주식회사 부곡철도 관사를 건설, 관사200호와 기타 일부시설 건립을 추진하였다. 일..

[20231016]소울음에서 희망을 그리던 화가 故 최진섭(1969-2019)

지체장애인 1급 전신마비 장애인 화가 최진섭, 그는 유년 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며 운동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1992년 장애인 그림공간 소울음이라는 화실을 열었고 후에 사단법인소울음아트센터 설립 대표를 지냈다. 그는 1975년 고교 2학년 때 다이빙 사고로 척수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기나긴 투병 끝에 겨우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고 이름 석 자를 쓰기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연필 대신 붓을 끼운 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92년 스승인 금영보선생과 함께한 “소울음 3인전”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고, 그의 사연을 접한 많은 사람 들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누워있는 생활만 하던 그가 오로지 부모님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사랑의 힘으로 휠체어에 ..

[20231005]채진기&안소라 두사람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2023.10.02/ #결혼 #사람 #채진기 #안소라/ 추석연휴 마지막날,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예쁜 친구 둘이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를 통해 만나 사라지는 골목 등 안양 곳곳을 함께 누빈 채진기군과 사회복지협의체, 안양여성축구, 수많은 대인 관계에서 알차고 당찬 여성 안소라양이 11월 5일 오전 11시30분 웨딩그룹 위더스 안양 9층 메리홀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고 합니다. "멋진 선남선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모바일 청첩장 : https://mcard.fromtoday.co.kr/w/TfhRw7/?597 채진기 ♥ 안소라 결혼합니다 11월 5일 오전 11시 30분 mcard.fromtoday.co.kr

[문화영]수암천 도시 재생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2023.09.09)

안양광역신문사 (aknews0511@daum.net) 기고 3편 연재 수암천 도시 재생사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① 안양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도시 연역’이 나온다. 안양시는 서기 475년(고구려 장수왕 6년) 율목군으로 속하다가 300년 후인 757년(통일 신라 경덕왕)년 곡양현이 되었다. 200년 후인 940년(고려 태조 23년) 조선 금주현 과주가 되었다. 500년 후인 1413년(조선 태종 14년) 과천현으로 되었다. (안양 부림말 남평문씨 종중자료 박물관 기증 절차중) 고증문서 그 500년 후인 1895년(조선 고종 32년) 과천군이 되었다. 그 50년 후인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서이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다. 10년 후인 1949년 8월 14일 안양면에서 안양읍으로 승격했다가 1973..

[최병렬]정조대왕 축조 만안교를 이전한 아쉬움(2023.01.27)

2023.01.27/#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만안교 #문화재 / 안양문화원이 발행한 안양문화 제3호(1984년 12월31일 발행)에 실린 만안교 옛 다리 모습이다. 사진은 현재 삼성천으로 1980년 이전 복원하기전인 1970년대 중후반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있었던 다리 사진을 보면 아래 교각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다. 광복후에 국도1호선에 포장을 실시하면서 다리위에 콜타르를 부어 이스파트길로 만들고 다리위에 큰크리트 난간도 설치돼 문화재를 훼손하면서 원형에서 변형시켰음을 보여준다. 사진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대륙석면(한국슬레트) 고무공장으로 현재의 영화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다. 사진 오른쪽으로 교통 신호등이 보이는 지점은 안양유원지 들어가던 도로와 우측으로 안양시내 방향이 만나는 교차로로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