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 760

[임희택]안양 박달리지역 옛지명 더푼물과 범고개 오류(2018.04.13)

어쨌거나 봄 꽃은 개나리 진달래다. 범고개 주막거리 집을 나와서 안서국민학교까지 가는 고갯길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개나리... 지금은 쓰레기적환장 담벼락이 대신하고 있다. 이 계절이면 풋풋한 꽃내가 반겨줬었는데... 지금은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고갯길 마루에 있는 마을이 더푼물... 그런데 지금은 범고개를 호현마을이라고 왜식인지 중국식인지로 쓰고 더푼물을 범고개라고 부른댄다. 하여간 의식 없는 것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

[임희택]안양 박달리지역 옛지명 더푼물과 범고개 오류(2018.04.13)

어쨌거나 봄 꽃은 개나리 진달래다. 범고개 주막거리 집을 나와서 안서국민학교까지 가는 고갯길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개나리... 지금은 쓰레기적환장 담벼락이 대신하고 있다. 이 계절이면 풋풋한 꽃내가 반겨줬었는데... 지금은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고갯길 마루에 있는 마을이 더푼물... 그런데 지금은 범고개를 호현마을이라고 왜식인지 중국식인지로 쓰고 더푼물을 범고개라고 부른댄다. 하여간 의식 없는 것들....

[임희택]제가 사는 주변 안양2동과 박달동을 기록하며(2004.03.15)

오늘 2014년 3월 15일 제가 사는 안양2동과 바로 인근인 박달1동 일대를 자전거로 돌며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안양2동은 고2때 이사와서 50이 넘도록 살았으니 오래 살았죠. 앞으로도 주욱 더 살아갈거고... 다음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며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범고개 인근을 찾아 보려합니다. 오늘 최병렬선배가 사진 올리신거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범고개 사시는 집안 어른 더 연세 드시기 전에 우리 가문이 그곳에 자리잡게 된 경과도 들어보고 싶고요. 거기가 우리 나주임씨 집성촌이 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외지로 나가 몇분 사시지 않거든요. 倭式인지 중국식인지 한자로 된 호현마을이라고 언제부턴가 사용하던데 우린 그냥 범고개라고 하는게 더 좋습니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임희택]할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도전의 연속(2023.04.11)

할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어려서 범고개 살 때 뒷산 어찌어찌 되시는 할머니 산소에 피어 있던 것을 보고 아름답다 여겼었고 큰 아들 양구에서 군생활 할 때 면회 가느라 들린 양구야생화농장펜션에서 참 그럴듯하게 키워 놓은 것을 보고 또 감탄을 했었다. 양구시내를 돌아다니다 길가 뉘집 담 밑에 씨앗이 맺혔기에 좀 받아다 심었더니 감감 무소식. 그 뒤 봉하 노대통령님 생가 뜨락에 또 씨가 맺힌 할미꽃이 있기에 몇톨 받아다 심었는데 역시 감감 무소식. 지지난해 결국 모종 세포기를 사다 심었는데 그해 한포기 죽고 또 겨울에 죽었는지 작년 봄에 한포기만 나와서 이파리만 무성하고 꽃은 피지 않기에 내년에는 피겠지 했었는데 오늘 올라가 들쳐보니 다 썩어 있기에 홀랑 뽑아 쪽파 위에 던져 버렸다. 재작년에는 비를 맞을까 ..

[임희택]호랑이 살던 범고개 표현을 요따위로 유감(2023.06.28)

안양 서쪽 끝 박달동 범고개. 호현부락이라 하더니 호현마을로 바꿨다. 원래 동네 이름은 범고개다. 이곳은 옛날부터 범, 그것도 사나운 범의 이미지가 가득한 곳이다. 고개를 넘자면 사람들이 서넛 모여야 지나갈 수 있어서 주막거리에서 탁주 한사발 하며 기다렸다는 어르신의 말씀도 있었다. 그런데 범고개도 아니고 벌 ㅡ 갈대와 억새가 무성했던 곳. 지금의 코카콜라 자리 도로변에 이런 그림을 그려 놓았다. 난 뭐 게딱지 뱃대기인 줄 알았다. 의식과 개념이 없는 자들의 행태는 늘 이렇게 원본에서 아주 바꿔놓곤 한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

[20230707]108명에게 새생명 건네주고 떠나간 故 권은영 님

2023.07.07/ #사람 #권은영 #근조/ 먼저 세상을 떠나간 사람을 만나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엘 다녀왔습니다. 故 권은영. 향년 53세. 안양시지속가능발젼협의회 사무국장을 비롯 안양시와 관련 이곳저곳에서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으며 최근에는 시흥시에서도 자그마한 사업도 펼쳤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일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진 후 깨어나질 못했다네요. 결국 뇌사판정을 받고 5명에게 장기 기증을, 103명에게는 신체 조직 기증을 하는 등 모두 108명애게 새생명을 주고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나갔습니다. "마지막 가는길, 멋진 삶을 살고 떠난 故 권은영님의 명복을빕니다" 2023.07.06./ #부음 #슬픈소식 #故권은영 #서울아산병원장레식장 짧은 기간이었지만..

[20230610]최병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2023.06.10./ #수상 #안양사이버과학축제 #과기부장관상/ 2023년 6월10일 안양체육관에서 개최된 제20회 안양사이버과학축제 개막식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을 받았습니다. 귀하는 대한민국의정보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제36회 정보문화의달을 기념하여 표창합니다. 2023년 6웡 10일 과학기슬정보통신부장관 이종호 이 상은 안양시사이버과학축제 추진위원으로 2002년 제1회부터 2023년 제20회까지 추진위원으로 활동해온 노고에 대한 상입니다. 컴퓨터경진대회가 주종목이었던 제1회때부터 추진위원으로 참여하다보니 지난 20년의 역사가 새록새록 스치듯 지나가네요. 참으로 재미있게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상의 주인공들은 20여년전 축제를 안양시가 직접 주최하고 청소년수련관이 주관했..

[김정대]1950년 안양9동에 살때 한국전쟁 비행기 전투의 기억

김정대 전 안양문화원장 안양 병목안의 본래 이름은 ‘후두미’ 였는데 뒷두미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공식 명칭이 ‘후두미동·안양9동’이 되었으나 모든 사람들이 병목안이라고 부른다. 병목 속에 모여 사는 동네라는 의미다. 안양9동에는 병목안, 창박골, 담배촌, 신촌말 네 동네가 있었는데 6·25동란으로 피난 나온 이북 동포들이 모여 사는 ‘새마을’이 있고 전에는 그 골짜기를 ‘심부골’이라 했다. 6·25가 발생한 며칠 뒤 북한 정찰기와 호주 비행기가 공중전을 벌였다. ‘구로망’이라는 호주 비행기는 전투기였고 북한 비행기는 정찰기였으니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북한 정찰기가 우리집 앞 산봉우리를 넘자마자 뒤쫓던 구로망으로부터 집중적인 기관총 공격을 받고 공중에서 불이 났다. 우리 집 지붕위로 떨어질 것 같았는지 아..

[최승원]안양예술공원으로 보는 지역건축에 대해서(2022.12.01)

이글은 월간 건축사지에 실린 최승원 건축사의 인터뷰 내용이다.022. 12. 1. 11:05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About the local architecture seen from Anyang Art Park _ Architect Choi, Seungwon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공예술사업으로 손꼽힌다. 낙후된 유원지와 중소 도시 도심에 예술조형물로 활력을 불어넣고, 우수한 국내외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도시의 격을 높여 시민의 자산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의 도시게릴라 프로젝트나 광주 비엔날레의 도심 조형물 설치 작업인 ‘폴리 프로젝트’가 벤츠마킹한 대상이 되기도 했다. APAP는 2005년 만안구 안양유원지를 정비해..

[20230216]안양 출신의 극작가이자 언론인 이서구(1899~1981)

2023.02.16/ #기록 #아카이브 #인물 #이서구/ 극작가이자 언론인 이서구(1899~1981) 이서구 선생은 극작가이자 연극인, 영화인,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등 다재다능한 활동과 업적으로 정부로부터 3차례나 훈장을 받았으나 사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그의 살아생전 업적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 인물이다. 이서구(李瑞求.1899.4.5∼1981.5.25)는 1899년 4월 5일(양력) 후릉참봉 이관규(李冠珪)와 모 조성녀(趙姓女)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이 ‘서울’이라는 기록도 있고, ‘안양’이라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그가 동아일보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서 서울로 왔다는 기록이나 시골집으로 돌아간다는 암시적 표현으로 볼 때, 그가 태어난 곳은 안양, 주로 활동한 곳은 서울로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