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금융업)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금융의성장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사회불안과 높은 물가상승 가운데 혼란을 겪으며 출범하였다. 1950년 중앙은행법과 일반은행법의 제정 등 금융제도를 정비하면서 현대적인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금융제도가 정착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후 전쟁복구를 위해 산업은행이 설립되고, 1957년에는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거시 금융정책이라 할 수 있는 재정금융안정화계획을 수립하면서 안정적인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금융기관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으나 4·19혁명, 5·16 혁명 등 정치적 혼란으로 금융계가 전체적으로 위축되었다.
開發年代에는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동원을 위해 금융산업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1962년 6월에 제2차 "긴급통화 및 금융조치"를 단행하는 등 금융제도에 커다란 변혁이 이루어졌다. 부정축재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은행주식을 정부에 귀속하여 은행을 정부가 직접 관장하게 되었다. 농업협동조합, 중소기업은행, 국민은행 등이 설치되어 특수금융체계가 보완되었다.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정부가 금융정책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였다. 개발연대에 금융정책의 최대 관심은 초기자본축적이 빈약한 당시 상황에서 전략산업부문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금융저축은 물론 통화증발, 외자조달 등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였다. 이런 정책으로 물가상승과 외채누적이라는 반대급부를 치르기는 하였으나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산업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금융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금리규제 정책이었다.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자율을 낮은 수준에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제도권 금융의 금리를 항상 낮게 유지하였다. 이자율규제로 인해 은행금리와 시중금리 사이의 격차가 벌어져 은행자금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문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자연적으로 사금융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정부는 사금융을 양성화하는 1972년 8·3조치를 단행하여 투자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의 설립을 제도화하였다. 이들 비은행금융기관은 은행에 비하여 이자율과 대출제한 등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어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한국의 금융산업의 발전양상을 보면 1970년 이후 은행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다양한 금융기관이 출현하여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1970년 80%를 차지하던 은행권의 비중은 1989년 50%로 떨어지고, 보험, 연금, 저축기관 및 투자기관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비중이 높아졌다.
안양권 경제의 발전에 따라 안양권의 금융기관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은행수가 증가하고, 보험회사 지점과 투자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이 증가하였다. 이 글에서는 자료구득의 어려움으로 안양시를 중심으로 안양권의 금융업 발전과정을 기술하고자 한다.
안양권 금융업 발전과정
<표 III-3-1>은 안양권 금융·보험업 사업체수와 종업원수의 변화추이를 보여준다. 최초의 안양지역 금융기관은 1961년 개업한 시흥군 농협이며 다음으로 조흥은행 안양지점이 1966년에 개업하였다. 1969년 말 현재 안양권의 금융기관은 3개 점포에 64명의 종업원을 두었으며, 1970년에는 서울은행과 중소기업은행이 개업하면서 4개 사업체에 종업원수가 91명으로 증가되었다.
1981년 금융·보험업 사업체수는 62개에 종업원수 1,083명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최근 발표된 1998년 통계에 따르면 안양시 금융·보험업에는 353개 사업장에서 8,768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같은 수치는 사업체수가 5.7배 종업원수는 8.1배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를 연평균 증가율로 환산하면 사업체수는 연평균 10.2%, 종업원수는 12.3%씩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간대별로 금융산업의 변화를 살펴보면, 금융업에 대한 규제완화로 금융기관 설립이 197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워진 1980년대 초기인 1981-1986년 기간동안 연평균 사업체수 증가율이 14.8%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1980년대 후반기 0.1%로 그 성장이 정체되었던 금융기관수는 평촌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고 안양지역 경제가 활성화된 1991-1996년 기간동안 연평균 10.8%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이 기간 5년동안 200개이던 금융·보험업 종사 사업체수는 343개로 70%이상 증가하였다.
금융·보험업의 변화추이를 금융업과 보험업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업체수는 1981년 45개에서 1998년 186개로 4.1배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동안 보험업 종사 사업체수는 17개에서 140개로 증가하여 금융업사업체수 증가의 2배인 8.2배로 증가하였다. 종업원수의 연평균 증가율도 보험업이 11.3%로 금융업 종사자수의 연평균 증가율 4.4%의 2.6배에 달한다.
기간대별 사업체수와 종사자수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금융업과 보험업 모두 1981-1986년도에 가장 빠른 성장속도를 보였다. 평촌신도시 주민수가 급격히 증가한 1991-1996년 기간동안 보험업 종사자수는 연평균 23.7%의 높은 상승률을 보여 보험업 종사자수가 1,450명에서 4,750명으로 3.3배로 증가하였다.
.............................안양시 금융.보험업 사업체수 및 종업원수 변화추이
<표 III-3-1>
자료: 경제기획원, 『총사업체통계조사보고서』, 1981, 1986, 1991.
경기도,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보고서』, 1996, 1998.
시흥군지편찬위원회, 『시흥군지』, 1988. p108-111.
<표 III-3-3>은 안양시 예금은행수의 변화추이를 나타낸다. 안양시에 입지해 있는 은행수는 1980년 12개에서 1995년 89개로 증가하였다. 전국적으로 비은행금융기관의 성장이 은행의 성장을 앞지른 경향과는 대조적으로 이 지역에서는 급속한 인구증가에 따른 은행의 지점이 급속도로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안양시 예금은행 변화추이
<표 III-3-3>
금융기관수는 시중은행, 지방은행, 특수은행 및 기타은행의 본점 및 지점의 수.
자료: 경기도, 「경기통계연보」, 각년도
시흥군편찬위원회, 『시흥군지』, 1988, p111.
금융동향
금융산업의 규모의 변화추이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지표는 예금액과 대출액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1975년 100억원대의 예금수준은 1998년 그 규모가 3조 250억원대로 약 300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연평균 약 25%에 달하는 예금규모로 안양지역의 금융산업이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대출규모도 271배로 증가하였다.
(1) 제1금융권
.....................................안양시
금융기관종별 예금 및 대출 현황 추이
표 III-3-4..............................................................................................................................................
(단위: 백만원)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99 안양경제현황", 67쪽
안양상공회의소, "'83 안양지역 경제현황", 55쪽
예금액을 요구불예금과 저축성예금으로 나누어 보면 저축성예금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이를 보였다. 1975년 요구불예금과 저축성예금의 비율은 42:58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1985년 25:75, 1998년 15:85로 저축성예금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금융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자금의 수익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존의 단순한 금전 예치의 기능을 넘어 적극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표 III-3-4>의 마지막 열은 예금액 대비 대출액의 비율 (이하 예대비율)을 보여준다. 1975년 예대비율 0.87로 안양시소재 은행에 예금된 102억원 가운데 87%인 89억원이 안양경제로 다시 대출되었음을 나타낸다. 예대비율은 지역자금의 유출여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지방 금융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지역자금의 역외유출 현상이 초래된다.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은 크게 금융기관의 금융활동을 통한 유출과 기업체의 산업활동을 통한 유출이 있다. 금융활동을 통한 지역자금의 유출은 금융기관들이 지방에서 받아들인 예금액에 비해 대출비중이 낮은 경우, 즉 지방에서의 預貸比率 (대출/예금)이 저조한 것으로서, 이는 주로 서울에 본사를 둔 전국형 금융기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은 해당 지역에서의 자금부족 현상을 초래하고 이는 지역에서의 부도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통상 지방기업의 어음부도율은 서울의 5∼10배에 이르는데 이는 지방경제가 중소기업위주의 취약한 경제구조를 보이는데 그 원인이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지역의 만성적인 자금난에 기인한다. 이렇듯 지방금융의 낙후는 지방경제의 만성적인 자금부족 현상을 낳고 결국 생산활동의 위축을 가져와 지역간 경제력 격차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외에도 산업활동을 통해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이 이루어진다. 그 경로를 살펴보면 첫째, 서울소재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하청구조로 인해 지방에는 임가공료와 인건비만 남고, 잔여 부가가치는 서울로 유출되는 경우, 둘째, 서울에 본사를 둔 기업이 생산활동은 지방에서 수행하고 자금운용은 서울에서 행함으로 인해 자금이 유출되는 경우, 셋째, 서울에 지사, 사무소를 둔 지방기업이 무역, 자금관련 업무를 서울에서 수행함으로써 지역자금이 유출되는 경우 등이다.
(2) 제2금융권
제2금융권 규모는 수신고 기준 1988년 약 2,500억원에서 1998년 약 1조 1,300억원 규모로 4.5배로 증가하였다. 이는 연평균 15.1%의 증가율로서 같은 기간동안의 은행권의 예금액 증가율 17.2%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여신액의 증가율은 연평균 14.5%에 달한다. 금융기관별 여신액의 증가비율을 비교해 보면 마을금고의 여신액 증가율이 연평균 17.8%, 상호신용금고가 16.9%, 그리고 투자금융회사가 12.1%의 증가율순위를 보이고 있다. 1998년 금융기관 유형별 수신고를 기준으로 제2금융권내 상대적 비중을 살펴보면 상호신용금고가 41.0%, 마을금고가 30.0%, 그리고 투자신탁회사가 27.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기준 제2금융권의 예대비율 (여신/수신)은 54.9%로 은행권의 같은 해 은행권의 예대비율 80.0%에 크게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제2금융권의 지역자금 유출이 일반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투자금융회사의 예대비율은 3.7%에 불과해 지역에서 높은 금리를 매개로 모집된 자금의 대부분이 금융회사의 본사가 있는 서울로 유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도별
안양시 제2금융권 여수신 현황
표 III-3-5(단위: 백만원)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99 안양경제현황", 69쪽
(3) 어음교환 및 부도현황
지방의 열악한 금융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지표가 거래에서 차지하는 어음의 높은 비중과 서울에 비해 5∼10배에 달하는 높은 어음부도율이다. 1974-1997년 기간동안 안양시 경제에서 어음교환 매수는 1만 1천여장에서 무려 3,000만장을 상회하여 2,700억배로 교환횟수가 증가하였다. 어음교환 액을 기준으로 하면, 1974년 30여억원이던 어음교환액은 1998년 2조 4천억원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37.4%로 증가하였다.
...............................................안양시 어음교환 및 부도 현황
표 III-3-5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99 안양경제현황", 68쪽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84 안양지역 경제현황", 74쪽
어음 부도비율은 매수를 기준으로 할 때 커다란 변화가 없으나 금액을 기준으로 할 때 그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이다. 어음교환금액기준으로 1974년 0.09%의 부도율을 보였으나 1998년 1.38%로 15배 이상 증가하였다. 특히 정치적 혼란기였던 1980, 1981년은 어음부도율이 각각 0.39%와 0.49%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국가경제가 81년 이후 정상을 회복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안양권의 경제는 1983년 0.38%, 1984년 0.20%, 그리고 1985년 0.25%의 높은 어음부도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경제의 회복속도가 국가전체의 경제정상화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IMF 외환위기로 국가경제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던 1998년 안양권의 부도율은 처음으로 1%를 초과하는 1.38%를 보여 국가경제의 침체가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사회불안과 높은 물가상승 가운데 혼란을 겪으며 출범하였다. 1950년 중앙은행법과 일반은행법의 제정 등 금융제도를 정비하면서 현대적인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금융제도가 정착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후 전쟁복구를 위해 산업은행이 설립되고, 1957년에는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거시 금융정책이라 할 수 있는 재정금융안정화계획을 수립하면서 안정적인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금융기관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갔으나 4·19혁명, 5·16 혁명 등 정치적 혼란으로 금융계가 전체적으로 위축되었다.
開發年代에는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동원을 위해 금융산업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1962년 6월에 제2차 "긴급통화 및 금융조치"를 단행하는 등 금융제도에 커다란 변혁이 이루어졌다. 부정축재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은행주식을 정부에 귀속하여 은행을 정부가 직접 관장하게 되었다. 농업협동조합, 중소기업은행, 국민은행 등이 설치되어 특수금융체계가 보완되었다.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정부가 금융정책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였다. 개발연대에 금융정책의 최대 관심은 초기자본축적이 빈약한 당시 상황에서 전략산업부문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금융저축은 물론 통화증발, 외자조달 등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였다. 이런 정책으로 물가상승과 외채누적이라는 반대급부를 치르기는 하였으나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산업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금융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금리규제 정책이었다.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자율을 낮은 수준에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제도권 금융의 금리를 항상 낮게 유지하였다. 이자율규제로 인해 은행금리와 시중금리 사이의 격차가 벌어져 은행자금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은행문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자연적으로 사금융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정부는 사금융을 양성화하는 1972년 8·3조치를 단행하여 투자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의 설립을 제도화하였다. 이들 비은행금융기관은 은행에 비하여 이자율과 대출제한 등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어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한국의 금융산업의 발전양상을 보면 1970년 이후 은행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다양한 금융기관이 출현하여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1970년 80%를 차지하던 은행권의 비중은 1989년 50%로 떨어지고, 보험, 연금, 저축기관 및 투자기관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비중이 높아졌다.
안양권 경제의 발전에 따라 안양권의 금융기관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은행수가 증가하고, 보험회사 지점과 투자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이 증가하였다. 이 글에서는 자료구득의 어려움으로 안양시를 중심으로 안양권의 금융업 발전과정을 기술하고자 한다.
안양권 금융업 발전과정
<표 III-3-1>은 안양권 금융·보험업 사업체수와 종업원수의 변화추이를 보여준다. 최초의 안양지역 금융기관은 1961년 개업한 시흥군 농협이며 다음으로 조흥은행 안양지점이 1966년에 개업하였다. 1969년 말 현재 안양권의 금융기관은 3개 점포에 64명의 종업원을 두었으며, 1970년에는 서울은행과 중소기업은행이 개업하면서 4개 사업체에 종업원수가 91명으로 증가되었다.
1981년 금융·보험업 사업체수는 62개에 종업원수 1,083명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최근 발표된 1998년 통계에 따르면 안양시 금융·보험업에는 353개 사업장에서 8,768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같은 수치는 사업체수가 5.7배 종업원수는 8.1배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를 연평균 증가율로 환산하면 사업체수는 연평균 10.2%, 종업원수는 12.3%씩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간대별로 금융산업의 변화를 살펴보면, 금융업에 대한 규제완화로 금융기관 설립이 197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워진 1980년대 초기인 1981-1986년 기간동안 연평균 사업체수 증가율이 14.8%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1980년대 후반기 0.1%로 그 성장이 정체되었던 금융기관수는 평촌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고 안양지역 경제가 활성화된 1991-1996년 기간동안 연평균 10.8%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이 기간 5년동안 200개이던 금융·보험업 종사 사업체수는 343개로 70%이상 증가하였다.
금융·보험업의 변화추이를 금융업과 보험업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업체수는 1981년 45개에서 1998년 186개로 4.1배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동안 보험업 종사 사업체수는 17개에서 140개로 증가하여 금융업사업체수 증가의 2배인 8.2배로 증가하였다. 종업원수의 연평균 증가율도 보험업이 11.3%로 금융업 종사자수의 연평균 증가율 4.4%의 2.6배에 달한다.
기간대별 사업체수와 종사자수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금융업과 보험업 모두 1981-1986년도에 가장 빠른 성장속도를 보였다. 평촌신도시 주민수가 급격히 증가한 1991-1996년 기간동안 보험업 종사자수는 연평균 23.7%의 높은 상승률을 보여 보험업 종사자수가 1,450명에서 4,750명으로 3.3배로 증가하였다.
.............................안양시 금융.보험업 사업체수 및 종업원수 변화추이
<표 III-3-1>
구분 |
금융.보험업 | |||||||
합계 |
금융업 |
보험업 |
기타 관련서비스 |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
1969 |
003 |
00063 |
003 |
00063 |
- |
- |
- |
- |
1970 |
004 |
00091 |
004 |
00091 |
- |
- |
- |
- |
1981 |
062 |
1,083 |
045 |
00638 |
017 |
0445 |
- |
- |
1986 |
130 |
2,946 |
084 |
1,301 |
046 |
1,645 |
- |
- |
1991 |
200 |
3,933 |
116 |
2,483 |
084 |
1,450 |
- |
- |
1996 | 343 |
7,920 |
173 |
2,892 |
143 |
4,750 |
27 |
278 |
1998 | 353 | 8,768 | 186 | 2,837 | 140 | 5,011 | 27 | 920 |
경기도,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보고서』, 1996, 1998.
시흥군지편찬위원회, 『시흥군지』, 1988. p108-111.
<표 III-3-3>은 안양시 예금은행수의 변화추이를 나타낸다. 안양시에 입지해 있는 은행수는 1980년 12개에서 1995년 89개로 증가하였다. 전국적으로 비은행금융기관의 성장이 은행의 성장을 앞지른 경향과는 대조적으로 이 지역에서는 급속한 인구증가에 따른 은행의 지점이 급속도로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안양시 예금은행 변화추이
<표 III-3-3>
연도 |
1970 |
1980 |
1985 |
1990 |
1995 |
금융기관수* |
4 |
12 |
20 |
38 |
89 |
자료: 경기도, 「경기통계연보」, 각년도
시흥군편찬위원회, 『시흥군지』, 1988, p111.
금융동향
금융산업의 규모의 변화추이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지표는 예금액과 대출액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1975년 100억원대의 예금수준은 1998년 그 규모가 3조 250억원대로 약 300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연평균 약 25%에 달하는 예금규모로 안양지역의 금융산업이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대출규모도 271배로 증가하였다.
(1) 제1금융권
.....................................안양시
금융기관종별 예금 및 대출 현황 추이
표 III-3-4..............................................................................................................................................
(단위: 백만원)
구분 |
예금 ( A ) |
대출 (B) | ||
합계 |
요구불 |
저축성 |
합계 | |
1975 |
10,239 |
4,312 |
5,927 |
8,901 |
1980 |
84,474 |
24,030 |
60,444 |
67,428 |
1985 |
293,826 |
71,588 |
222,238 |
262,486 |
1990 |
874,800 |
224,300 |
650,500 |
786,600 |
1995 |
1,815,822 |
402,143 |
1,413,679 |
1,965,250 |
1998 |
3,025,260 |
442,923 |
2,582,337 |
2,416,214 |
연평균 증가율 |
24.7% | 20.1% | 26.4% | 24.4% |
안양상공회의소, "'83 안양지역 경제현황", 55쪽
예금액을 요구불예금과 저축성예금으로 나누어 보면 저축성예금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이를 보였다. 1975년 요구불예금과 저축성예금의 비율은 42:58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1985년 25:75, 1998년 15:85로 저축성예금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금융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자금의 수익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존의 단순한 금전 예치의 기능을 넘어 적극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표 III-3-4>의 마지막 열은 예금액 대비 대출액의 비율 (이하 예대비율)을 보여준다. 1975년 예대비율 0.87로 안양시소재 은행에 예금된 102억원 가운데 87%인 89억원이 안양경제로 다시 대출되었음을 나타낸다. 예대비율은 지역자금의 유출여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지방 금융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지역자금의 역외유출 현상이 초래된다.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은 크게 금융기관의 금융활동을 통한 유출과 기업체의 산업활동을 통한 유출이 있다. 금융활동을 통한 지역자금의 유출은 금융기관들이 지방에서 받아들인 예금액에 비해 대출비중이 낮은 경우, 즉 지방에서의 預貸比率 (대출/예금)이 저조한 것으로서, 이는 주로 서울에 본사를 둔 전국형 금융기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은 해당 지역에서의 자금부족 현상을 초래하고 이는 지역에서의 부도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통상 지방기업의 어음부도율은 서울의 5∼10배에 이르는데 이는 지방경제가 중소기업위주의 취약한 경제구조를 보이는데 그 원인이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지역의 만성적인 자금난에 기인한다. 이렇듯 지방금융의 낙후는 지방경제의 만성적인 자금부족 현상을 낳고 결국 생산활동의 위축을 가져와 지역간 경제력 격차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외에도 산업활동을 통해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이 이루어진다. 그 경로를 살펴보면 첫째, 서울소재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하청구조로 인해 지방에는 임가공료와 인건비만 남고, 잔여 부가가치는 서울로 유출되는 경우, 둘째, 서울에 본사를 둔 기업이 생산활동은 지방에서 수행하고 자금운용은 서울에서 행함으로 인해 자금이 유출되는 경우, 셋째, 서울에 지사, 사무소를 둔 지방기업이 무역, 자금관련 업무를 서울에서 수행함으로써 지역자금이 유출되는 경우 등이다.
(2) 제2금융권
제2금융권 규모는 수신고 기준 1988년 약 2,500억원에서 1998년 약 1조 1,300억원 규모로 4.5배로 증가하였다. 이는 연평균 15.1%의 증가율로서 같은 기간동안의 은행권의 예금액 증가율 17.2%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여신액의 증가율은 연평균 14.5%에 달한다. 금융기관별 여신액의 증가비율을 비교해 보면 마을금고의 여신액 증가율이 연평균 17.8%, 상호신용금고가 16.9%, 그리고 투자금융회사가 12.1%의 증가율순위를 보이고 있다. 1998년 금융기관 유형별 수신고를 기준으로 제2금융권내 상대적 비중을 살펴보면 상호신용금고가 41.0%, 마을금고가 30.0%, 그리고 투자신탁회사가 27.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기준 제2금융권의 예대비율 (여신/수신)은 54.9%로 은행권의 같은 해 은행권의 예대비율 80.0%에 크게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제2금융권의 지역자금 유출이 일반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투자금융회사의 예대비율은 3.7%에 불과해 지역에서 높은 금리를 매개로 모집된 자금의 대부분이 금융회사의 본사가 있는 서울로 유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도별
안양시 제2금융권 여수신 현황
표 III-3-5(단위: 백만원)
구분 | 수신(A) | 여신(B) | (A)/(B) | ||||||
합계 |
투자 신탁 |
상호신 용금고 |
마을 금고 |
계 | 투자 금융 |
상호신 용금고 |
마을 금고 |
||
1973 |
298 |
- |
298 |
- |
65 |
- |
665 |
- |
2.2 |
1989 |
422,456 |
158,049 |
158,049 |
83,646 |
199,832 |
24,033 |
110,952 |
64,847 |
0.47 |
1990 |
536,846 |
197,505 |
211,861 |
94,346 |
301,562 |
40,718 |
187,893 |
72,951 |
0.56 |
1992 |
798,684 |
317,440 |
316,624 |
126,434 |
469,971 |
45,465 |
317,563 |
106,943 |
0.59 |
1994 |
1,068,069 |
420,917 |
439,734 |
156,174 |
609,644 |
69,409 |
409,429 |
130,806 |
0.57 |
1996 |
1,234,942 |
420,572 |
500,703 |
249,592 |
634,508 |
19,487 |
450,980 |
164,041 |
0.51 |
1998 |
1,128,537 |
310,000 |
462,178 |
338,044 |
619,053 |
11,599 |
412,860 |
194,594 |
0.55 |
연평균 증가율 |
15.1% |
12.1% |
16.9% |
17.8% |
14.5% | -2.2% | 16.1% | 13.9% | |
상대적 비중 |
27.5% |
41.0% |
30.0% |
||||||
예대비율 | 54.9% | 3.7% | 89.3% | 57.6% |
(3) 어음교환 및 부도현황
지방의 열악한 금융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지표가 거래에서 차지하는 어음의 높은 비중과 서울에 비해 5∼10배에 달하는 높은 어음부도율이다. 1974-1997년 기간동안 안양시 경제에서 어음교환 매수는 1만 1천여장에서 무려 3,000만장을 상회하여 2,700억배로 교환횟수가 증가하였다. 어음교환 액을 기준으로 하면, 1974년 30여억원이던 어음교환액은 1998년 2조 4천억원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37.4%로 증가하였다.
...............................................안양시 어음교환 및 부도 현황
표 III-3-5
구분 | 어음교환 | 부도 |
부도율 (%) | |||
매수 (장) |
금액 (백만원) |
매수 (장) |
금액 (백만원) |
매수 |
금액 | |
1974 | 11,294 |
3,014 | 7 |
3 | 0.06 |
0.09 |
1980 |
1,265,063 |
943,689 |
1,330 |
3,716 |
0.11 |
0.39 |
1985 |
5,663,630 |
3,717,818 |
2,636 |
9,389 |
0.05 |
0.25 |
1990 |
20,480,807 |
16,657,222 |
4,601 |
14,222 |
0.02 |
0.09 |
1995 |
24,031,153 |
22,206,422 |
17,112 |
151,494 |
0.07 |
0.68 |
1998 |
- |
23,690,195 |
- | 325,873 |
- | 1.38 |
증가율 1974-1997/8 |
34.4% | 37.4% | 34.3% | 48.6% |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84 안양지역 경제현황", 74쪽
어음 부도비율은 매수를 기준으로 할 때 커다란 변화가 없으나 금액을 기준으로 할 때 그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이다. 어음교환금액기준으로 1974년 0.09%의 부도율을 보였으나 1998년 1.38%로 15배 이상 증가하였다. 특히 정치적 혼란기였던 1980, 1981년은 어음부도율이 각각 0.39%와 0.49%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국가경제가 81년 이후 정상을 회복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안양권의 경제는 1983년 0.38%, 1984년 0.20%, 그리고 1985년 0.25%의 높은 어음부도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경제의 회복속도가 국가전체의 경제정상화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IMF 외환위기로 국가경제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던 1998년 안양권의 부도율은 처음으로 1%를 초과하는 1.38%를 보여 국가경제의 침체가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2004-01-03 15: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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