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안양권 상공업 발전과정(광공업)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01/03 시민연대]안양상공회의소 자료중에서 발췌
개황
안양권 광공업의 발전은 안양권 지역의 인구증가와 맞물려 있다. 그리고 안양권 지역의 인구변화 및 광공업의 발전은 중앙정부의 경제정책, 그리고 수도권정책 등과 맞물려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전반적인 추세이지만 1970년대 국가공업화 정책 이전에는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부문에 대한 뚜렷한 신장세는 발견되지 않는다.
일제 초창기 한국에 진출한 일본자본은 주로 일본국내에서 독점에 의해 밀려난 군소자본이었다. 그러나 일본 독점자본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해외진출이 시작되었고, 특히 한국이 그 주요 대상지였다. 이런 영향으로 안양에도 최초로 1932년에 안양1동 舊 大農터에 朝鮮織物株式會社를 설립하였고, 뒤이어 석수동(현 석수주공아파트)에 朝鮮絹織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 朝鮮織物株式會社는 당시 안양의 대지주였던 일본인 高瀨政太郞이 1만평의 토지를 공장부지로 희사하여 자본금 100만원으로 창립되었다.
한편 해방후에는 일제의 철수와 함께 우리나라 전체가 산업의 공백기를 맞이하였으나 안양의 공업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는데, 1949년 관내에 있던 공장수가 14개나 되고 있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4개의 공장 가운데 광복이전에 건설된 것은 朝鮮織物株式會社와 朝鮮製圖工業合作會社, 三吉洋傘製造所 등 3개뿐이고 나머지 11개는 광복이후에 창설된 것이었다. 이들 공장은 대부분 안양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공장의 규모는 면적이 1천평 이상이 되는 공장이 8개였고, 100명 이상의 종업원을 갖고 있는 공장은 5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14개 공장을 업종별로 보면 방직이 7개로 가장 많고, 도자기와 목재가 각각 2개, 제지 고무제품, 기타가 각각 1개씩 되어있다. 전체 공장의 총면적은 4만 7,415평이고, 종업원 총수는 1,068명으로 공장 1개당 평균 3,387평에 76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종업원 가운데 여자가 486명으로 45.5%나 되어 여성취업이 매우 활발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정부수립 이후 취약한 경제기반 위에서나마 산업생산이 점차 회복되어 갈 무렵, 북한의 남침에 의한 한국전쟁은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하면서 남한의 경제 기반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렸다. 이렇게 격변을 거치는 동안에 우리나라 전체의 상황과 같이 안양도 역시 산업의 위축을 면치 못했다. 폐허된 생산시설을 복구하는데 1950년대는 다 지나갔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다져가기 시작하였다.
1962년에 발간된 시흥군 통계연보에 의하면 1961년말 안양관내의 공장은 6개에 불과하였다(<표 Ⅲ-1-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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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 현황
<표 Ⅲ-1-1>(1961년통계)
자료: ·시흥군, 통계연보, 1962.
안양시지편찬위원회, 『안양시지』, 1992, p.1259에서 재인용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에 힘입어 안양지역에도 공업관련 기업들이 속속 입지, 당시의 상황을 『안양시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61년 6개에 그쳤던 기업체가 1966년에는 32개로 증가하였고 1971년에는 64개가 되어 10년동안 10배 가까이 성장하였다.…(중략)… 규모면에서 볼 때 1971년에는 대기업이 11개, 중소기업이 40개, 영세기업이 13개로 기업의 규모별 구성비가 대기업은 17.2%, 중소기업은 62.5%, 영세기업이 20.3%였다."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이 발전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시흥군 안양읍이 시흥군에서 독립, 안양시로 승격된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 중심지역이 행정구역상의 변천을 겪으면서 안양권 지역으로의 인구증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이 지역에 광공업의 성장 추세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1년 소하읍이 광명시로, 1986년 과천출장소가 과천시로 각각 승격되고 그후 1989년에는 군포읍이 군포시로, 의왕읍이 의왕시로, 나머지 시흥군 지역이 시흥시로 승격, 사실상 시흥군이 모체가 되어 있던 행정구역이 거의 다 도시화되면서 시로 승격하였다. 이러한 시흥군의 해체, 그리고 시급 도시의 부상은 수도권의 인구집중 현상에 따른 서울의 비대화와 그 주변도시의 팽창으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안양권지역의 제조업 기업체의 추이를 보면 <표 Ⅲ-1-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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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 현황
<표 Ⅲ-1-2>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1983안양지역경제현황』
위 표에서 1975년도에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수는 총 397개 업체이었으나 1976년도 449개 업체, 1978년도 577개 업체, 1980년도 1,002개 업체, 1982년도에는 1,294개 업체로 증가, 한 해에 작게는 48개에서 많게는 274개의 기업이 증가하여 7년동안 평균 128개 기업이 한해에 새롭게 기업활동을 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1970년대에 안양권 지역에 공장이 많이 입주하게 된 원인은 고도의 국가경제성장이 부응한 면과 또다른 한편 서울에의 공장입지억제정책으로 서울에 인접한 안양이 교통이나 용수 등 제반 여건이 좋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 기업체의 성장추이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어 『안양시지』에 실린 내용을 요약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체의 성장 추이를 업종별로 보면 1975년까지는 화학업종의 성장이 가장 두드러졌고 1979년까지는 기계, 금속업종이 큰 폭의 성장세가 있었다. 섬유업종과 전기, 전자업종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특히 기계, 금속업종의 경우 1971년에 5개에 지나지 않던 기업체가 1979년에는 103개로 98개나 증가하였고 화학업은 1971년에 18개에서 1981년에 78개로 매년 5-6개의 기업이 안양권 지역으로 이주하였거나 창업이 이루어졌다. 섬유업종은 1971년에 8개에서 1981년에는 53개로 증가하였고, 제지업은 1971년 13개에서 1981년 334개로 무려 300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전기전자업종은 70년대 후반, 즉 1979년부터 급속도로 성장하여 1981년에 34개의 공장이 들어섰다. 식품업종도 1971년에 9개에 불과하던 것이 1979년에는 27개로 증가하였고 기타 제조업도 1971년에 24개에서 1981년에는 48개로 증가하였다."
1980년대의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 발전은 70년대와 같은 가파른 성장세는 없었으나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경제를 착근시켜 나가다가 80년대 후반기에 와서 다시 한번 급격한 발전을 보이게 된 시기였다. 80년대의 연도별 제조업체 현황을 보면 <표 Ⅲ-1-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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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 현황
<표 Ⅲ-1-3>
자료: 안양상공회의소, 『1995안양지역경제현황』
먼저 안양시의 기업체 증가추이를 보면 1981년에 409개이던 기업체가 1983년 505개, 1985년 602개, 1987년 736개, 1988년 982개로 증가하다가 1989년에는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여 945개로 되었다가 1990년에 다시 1,118개로 증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광명시 역시 비교적 고른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는 바 신설기업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1989년에 시흥군이 각 시로 분할되기 이전의 안양권 지역을 고려해 볼 때 전체기업수는 10년 전에 비해 1.6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안양시지에서는 80년대의 업종별 현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육성정책에 힘입어 전기, 전자업의 연평균 증가율이 27.0%로 가장 높았고 기계, 금속업도 연평균 13.0%의 증가율을 보였다. 또한 섬유업도 11.5%씩 매년 증가하였고 화학업은 7.9%의 증가율을 보였다. 종업원 규모면에서 보면 1981년에 34,308명, 1985년에 40,729명, 1988년에 54,829명, 1989년에는 53,713명, 1990년에 55,048명의 지역고용현황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지역고용은 1989년의 약간의 감소를 제외하고는 계속 매년 증가세를 보여 매년 2,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의 규모별로 보면 1990년말 현재 대기업이 31개, 중소기업이 1,087개로서 중소기업의 비중이 97.2%로 지난 1981년보다 더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종업원수 면에서 보면 500명 이상 기업체가 15개, 300-500명 미만이 6개 기업, 100-300명 미만은 56개 기업, 50-100명 미만은 100개 기업, 10-50명 미만은 622개로 가장 많았고 10명 미만의 영세기업은 319개나 되었다."
1990년대의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발전은 80년대의 호황국면에서 후방경사면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90년대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인 인식 확산과 정부의 정책전환과 수도권 입지의 각종 제한 조치로 인해 안양권 지역의 제조업은 하강세를 면치 못한 시기였다. 기존에 있는 제조업은 경기침체로 인해 성장률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업의 입지도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로 인해 쉽지 않았고 여기에 기존 제조업 중 공해유발업체는 안양권 밖으로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 전반적으로 침체국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 한파는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종업원의 대량 감원이 있는 바람에 지역노동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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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안양권 지역의 제조업 추이
<표 Ⅲ-1-4>
자료: 경제기획원, 통계청, 『총사업체통계조사보고서』, 1991, 1996, 1998.
<표 Ⅲ-1-4>에서 보면 안양권 전체적으로 1991년에 약 9,502개의 제조업체는 9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약 13,336개 기업으로 증가했으나 2년 후인 1998년에는 14,118개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종업원 규모면에서는 91년도에 약 23만 7천명의 지역고용현황이 5년 후인 1996년에는 약 22천명 정도 증가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2년후인 1998년에는 1991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약 236,233명의 고용에 그쳐 IMF로 인한 노동력 감축이 현저하게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
업종별로 볼 때 음·식료업의 경우 사업체는 증가했으나 종업원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바 이는 기업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전임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는 파트타임 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섬유, 의복은 이 산업의 전반적인 사양화를 반영하듯 안양권 지역에서도 사업체는 1991-1998년 사이에 약 287개 사업체가 감소되었고 종업원도 8,381명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지, 인쇄업종이나 화학, 고무, 프라스틱 업종은 사업체는 증가하였으나 종업원은 감소하여 이 업종에 있어서도 기업의 구조조정의 거친 파고를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철금속, 비금속광물업종은 사업체도 증가하고 종업원 규모도 증가한 유일한 제조업 업종이다. 기계, 조립금속 업종과 전기, 전자기기 업종은 사업체는 증가했으나 종업원 규모에 있어서는 IMF 이후 인원감축에 의한 구조조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양권 광공업의 발전은 안양권 지역의 인구증가와 맞물려 있다. 그리고 안양권 지역의 인구변화 및 광공업의 발전은 중앙정부의 경제정책, 그리고 수도권정책 등과 맞물려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전반적인 추세이지만 1970년대 국가공업화 정책 이전에는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부문에 대한 뚜렷한 신장세는 발견되지 않는다.
일제 초창기 한국에 진출한 일본자본은 주로 일본국내에서 독점에 의해 밀려난 군소자본이었다. 그러나 일본 독점자본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해외진출이 시작되었고, 특히 한국이 그 주요 대상지였다. 이런 영향으로 안양에도 최초로 1932년에 안양1동 舊 大農터에 朝鮮織物株式會社를 설립하였고, 뒤이어 석수동(현 석수주공아파트)에 朝鮮絹織株式會社를 설립하였다. 朝鮮織物株式會社는 당시 안양의 대지주였던 일본인 高瀨政太郞이 1만평의 토지를 공장부지로 희사하여 자본금 100만원으로 창립되었다.
한편 해방후에는 일제의 철수와 함께 우리나라 전체가 산업의 공백기를 맞이하였으나 안양의 공업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는데, 1949년 관내에 있던 공장수가 14개나 되고 있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4개의 공장 가운데 광복이전에 건설된 것은 朝鮮織物株式會社와 朝鮮製圖工業合作會社, 三吉洋傘製造所 등 3개뿐이고 나머지 11개는 광복이후에 창설된 것이었다. 이들 공장은 대부분 안양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공장의 규모는 면적이 1천평 이상이 되는 공장이 8개였고, 100명 이상의 종업원을 갖고 있는 공장은 5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14개 공장을 업종별로 보면 방직이 7개로 가장 많고, 도자기와 목재가 각각 2개, 제지 고무제품, 기타가 각각 1개씩 되어있다. 전체 공장의 총면적은 4만 7,415평이고, 종업원 총수는 1,068명으로 공장 1개당 평균 3,387평에 76명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종업원 가운데 여자가 486명으로 45.5%나 되어 여성취업이 매우 활발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정부수립 이후 취약한 경제기반 위에서나마 산업생산이 점차 회복되어 갈 무렵, 북한의 남침에 의한 한국전쟁은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하면서 남한의 경제 기반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렸다. 이렇게 격변을 거치는 동안에 우리나라 전체의 상황과 같이 안양도 역시 산업의 위축을 면치 못했다. 폐허된 생산시설을 복구하는데 1950년대는 다 지나갔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다져가기 시작하였다.
1962년에 발간된 시흥군 통계연보에 의하면 1961년말 안양관내의 공장은 6개에 불과하였다(<표 Ⅲ-1-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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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 현황
<표 Ⅲ-1-1>(1961년통계)
기업체명 | 소재지 | 창업일 | 공장면적(평) | 생산품 | 종업원 ( 명 ) | ||
계 | 남 | 여 | |||||
금성방직 |
안양읍 안양리 |
'48.10. 5 |
16,051 |
면사포 |
2,844 |
506 |
2,358 |
태평방직 |
안양읍 안양리 |
'53.11.13 |
03,406 |
마직물 |
0328 |
084 |
0244 |
삼덕제지 |
안양읍 안양리 |
'45.11.25 |
05,817 |
모조지 선화지 |
0130 |
107 |
0023 |
한국특수제지 |
안양읍 안양리 |
..'60. 4. 1 |
12,018 |
모조지 |
0180 |
154 |
0026 |
고려석면 |
안양읍 안양리 |
'56. 4.13 |
1,635 |
석면 및 고무제품 |
0113 |
078 |
0035 |
유한산업 | ....동면 안양리 |
'41. 2.28 | 00,405 | 제약 | 0092 | 018 | 0074 |
6개 기업 |
38,332 | 3,687 | 947 | 2,740 |
안양시지편찬위원회, 『안양시지』, 1992, p.1259에서 재인용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에 힘입어 안양지역에도 공업관련 기업들이 속속 입지, 당시의 상황을 『안양시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61년 6개에 그쳤던 기업체가 1966년에는 32개로 증가하였고 1971년에는 64개가 되어 10년동안 10배 가까이 성장하였다.…(중략)… 규모면에서 볼 때 1971년에는 대기업이 11개, 중소기업이 40개, 영세기업이 13개로 기업의 규모별 구성비가 대기업은 17.2%, 중소기업은 62.5%, 영세기업이 20.3%였다."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이 발전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시흥군 안양읍이 시흥군에서 독립, 안양시로 승격된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그 중심지역이 행정구역상의 변천을 겪으면서 안양권 지역으로의 인구증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이 지역에 광공업의 성장 추세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1년 소하읍이 광명시로, 1986년 과천출장소가 과천시로 각각 승격되고 그후 1989년에는 군포읍이 군포시로, 의왕읍이 의왕시로, 나머지 시흥군 지역이 시흥시로 승격, 사실상 시흥군이 모체가 되어 있던 행정구역이 거의 다 도시화되면서 시로 승격하였다. 이러한 시흥군의 해체, 그리고 시급 도시의 부상은 수도권의 인구집중 현상에 따른 서울의 비대화와 그 주변도시의 팽창으로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안양권지역의 제조업 기업체의 추이를 보면 <표 Ⅲ-1-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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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 현황
<표 Ⅲ-1-2>
년도 |
합계 |
안양 |
시흥 |
반월공단 |
광명 |
1975 |
397 |
169 |
228 |
- |
- |
1976 |
449 |
200 |
249 |
- |
- |
1977 |
529 |
213 |
316 |
- |
- |
1978 |
577 |
274 |
303 |
- |
- |
1979 |
851 |
369 |
482 |
- |
- |
1980 |
1,002 |
393 |
512 |
97 |
- |
1981 |
1,076 |
409 |
367 |
177 |
123 |
1982 |
1,294 |
472 |
401 |
237 |
184 |
위 표에서 1975년도에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수는 총 397개 업체이었으나 1976년도 449개 업체, 1978년도 577개 업체, 1980년도 1,002개 업체, 1982년도에는 1,294개 업체로 증가, 한 해에 작게는 48개에서 많게는 274개의 기업이 증가하여 7년동안 평균 128개 기업이 한해에 새롭게 기업활동을 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1970년대에 안양권 지역에 공장이 많이 입주하게 된 원인은 고도의 국가경제성장이 부응한 면과 또다른 한편 서울에의 공장입지억제정책으로 서울에 인접한 안양이 교통이나 용수 등 제반 여건이 좋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 기업체의 성장추이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어 『안양시지』에 실린 내용을 요약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체의 성장 추이를 업종별로 보면 1975년까지는 화학업종의 성장이 가장 두드러졌고 1979년까지는 기계, 금속업종이 큰 폭의 성장세가 있었다. 섬유업종과 전기, 전자업종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특히 기계, 금속업종의 경우 1971년에 5개에 지나지 않던 기업체가 1979년에는 103개로 98개나 증가하였고 화학업은 1971년에 18개에서 1981년에 78개로 매년 5-6개의 기업이 안양권 지역으로 이주하였거나 창업이 이루어졌다. 섬유업종은 1971년에 8개에서 1981년에는 53개로 증가하였고, 제지업은 1971년 13개에서 1981년 334개로 무려 300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전기전자업종은 70년대 후반, 즉 1979년부터 급속도로 성장하여 1981년에 34개의 공장이 들어섰다. 식품업종도 1971년에 9개에 불과하던 것이 1979년에는 27개로 증가하였고 기타 제조업도 1971년에 24개에서 1981년에는 48개로 증가하였다."
1980년대의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 발전은 70년대와 같은 가파른 성장세는 없었으나 비교적 안정적인 지역경제를 착근시켜 나가다가 80년대 후반기에 와서 다시 한번 급격한 발전을 보이게 된 시기였다. 80년대의 연도별 제조업체 현황을 보면 <표 Ⅲ-1-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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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안양권 지역의 기업체 현황
<표 Ⅲ-1-3>
년도 | 합계 | 안양 | 광명 | 의왕 | 과천 | 군포.시흥 |
1980 | 1,002 |
393 |
- |
- | - | - |
1981 | 1,076 |
409 |
123 |
- | - | - |
1982 | 1,057 |
472 |
184 |
- | - | 401 |
1983 | 1,163 |
505 |
221 |
- | - | 437 |
1984 | 1,277 |
526 |
296 |
- | - | 455 |
1985 | 1,402 |
602 |
300 |
- | - | 500 |
1986 | 1,383 |
662 |
288 |
- | - | 433 |
1987 | 1,611 |
736 |
272 |
- | - | 603 |
1988 | 2,116 |
982 |
288 |
- | - | 846 |
1989 | 2,029 |
945 |
238 |
216 |
15 | 615 |
1990 | 2,632 | 1,118 | 368 | 271 | 17 | 858 |
먼저 안양시의 기업체 증가추이를 보면 1981년에 409개이던 기업체가 1983년 505개, 1985년 602개, 1987년 736개, 1988년 982개로 증가하다가 1989년에는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여 945개로 되었다가 1990년에 다시 1,118개로 증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광명시 역시 비교적 고른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는 바 신설기업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1989년에 시흥군이 각 시로 분할되기 이전의 안양권 지역을 고려해 볼 때 전체기업수는 10년 전에 비해 1.6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안양시지에서는 80년대의 업종별 현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육성정책에 힘입어 전기, 전자업의 연평균 증가율이 27.0%로 가장 높았고 기계, 금속업도 연평균 13.0%의 증가율을 보였다. 또한 섬유업도 11.5%씩 매년 증가하였고 화학업은 7.9%의 증가율을 보였다. 종업원 규모면에서 보면 1981년에 34,308명, 1985년에 40,729명, 1988년에 54,829명, 1989년에는 53,713명, 1990년에 55,048명의 지역고용현황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지역고용은 1989년의 약간의 감소를 제외하고는 계속 매년 증가세를 보여 매년 2,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의 규모별로 보면 1990년말 현재 대기업이 31개, 중소기업이 1,087개로서 중소기업의 비중이 97.2%로 지난 1981년보다 더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종업원수 면에서 보면 500명 이상 기업체가 15개, 300-500명 미만이 6개 기업, 100-300명 미만은 56개 기업, 50-100명 미만은 100개 기업, 10-50명 미만은 622개로 가장 많았고 10명 미만의 영세기업은 319개나 되었다."
1990년대의 안양권 지역의 광공업발전은 80년대의 호황국면에서 후방경사면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90년대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인 인식 확산과 정부의 정책전환과 수도권 입지의 각종 제한 조치로 인해 안양권 지역의 제조업은 하강세를 면치 못한 시기였다. 기존에 있는 제조업은 경기침체로 인해 성장률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업의 입지도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로 인해 쉽지 않았고 여기에 기존 제조업 중 공해유발업체는 안양권 밖으로 이전하는 사례가 많아 전반적으로 침체국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97년 말에 불어닥친 IMF 한파는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종업원의 대량 감원이 있는 바람에 지역노동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
90년대 안양권 지역의 제조업 추이
<표 Ⅲ-1-4>
구분 |
1991년 |
1996년 |
1998년 |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사업체수 |
종업원수 | |
계 |
9,502 |
237,771 |
13,336 |
259,315 |
14,118 |
236,233 |
.음.식료품 |
767 |
14,756 |
1,185 |
16,261 |
1,323 |
12,447 |
. 섬유.의복.가죽 |
1,718 |
35,942 |
1,555 |
30,961 |
1,421 |
27,561 |
.제지. 인쇄.출판업 |
607 |
14,630 |
885 |
13,056 |
913 |
13,001 |
.화학.고무.프라스틱 |
771 |
30,137 |
1,143 |
32,480 |
1,214 |
29,886 |
.비철금속.비금속광물 |
298 |
6,352 |
379 |
8,492 |
378 |
9,471 |
.기계.조립금속 |
2,429 |
43,183 |
4,183 |
62,582 |
4,636 |
57,790 |
.전기.전자기기 |
1,126 |
43,936 |
1,649 |
40,395 |
1,845 |
37,602 |
. 기타제조업 |
0 |
0 |
0 |
0 |
0 |
0 |
<표 Ⅲ-1-4>에서 보면 안양권 전체적으로 1991년에 약 9,502개의 제조업체는 9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약 13,336개 기업으로 증가했으나 2년 후인 1998년에는 14,118개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종업원 규모면에서는 91년도에 약 23만 7천명의 지역고용현황이 5년 후인 1996년에는 약 22천명 정도 증가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2년후인 1998년에는 1991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약 236,233명의 고용에 그쳐 IMF로 인한 노동력 감축이 현저하게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
업종별로 볼 때 음·식료업의 경우 사업체는 증가했으나 종업원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 바 이는 기업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전임근로자를 고용하기보다는 파트타임 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섬유, 의복은 이 산업의 전반적인 사양화를 반영하듯 안양권 지역에서도 사업체는 1991-1998년 사이에 약 287개 사업체가 감소되었고 종업원도 8,381명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지, 인쇄업종이나 화학, 고무, 프라스틱 업종은 사업체는 증가하였으나 종업원은 감소하여 이 업종에 있어서도 기업의 구조조정의 거친 파고를 극복하면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철금속, 비금속광물업종은 사업체도 증가하고 종업원 규모도 증가한 유일한 제조업 업종이다. 기계, 조립금속 업종과 전기, 전자기기 업종은 사업체는 증가했으나 종업원 규모에 있어서는 IMF 이후 인원감축에 의한 구조조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4-01-03 15: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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