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식]안양시 시정구호의 의미(Ⅱ) 성결대학교 교수, 안양학연구소장 AD 900년 경 20대 초반의 청년 장수 왕건은 궁예의 명을 받아 복속을 약속하고도 조공을 바치지 않고 있던 광주, 충주, 청주 등 3개 주를 정벌하기 위하여 삼성산 자락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산꼭대기에서 오색 무지개가 어리는 것을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 살피게 하였더니, 구름 아래서 늙은 스님 능정(能正)을 만나게 되었고, 더불어 대화해보니 뜻이 맞아 안양사와 칠층전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전하고 있다. 이 안양사 바로 밑의 마을이 안양리이고, 이 안양리가 안양천을 넘어와 오늘날의 안양 1동까지 이르게 되어 안양천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펼쳐지게 되었던 바, 오늘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