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677

1959년 동네 구경꺼리 였던 안양 삼영하드보드 기공식

#안양 #삼영하드보드 #안양3동 #성원아파트 #역사 #기록 #사진/ 국가기록원 기록에 올려 있는 안양3동에 있던 (주)삼영하드보드 공장의 기공식(촬영일 1959-05-18) 사진으로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몰여와 구경을 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규모가 아주 성대했던 행사가 1959년 5월에 안양 원도심인 안양CGV사거리에서 삼덕공원을 지나 안양9동 새마을로 올라가는 길목 좌측에 있는 안양3동 774번지 성원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에서 있었다. 안양시 연표와 작고하신 변원신 어르신의 구술 등에 의하면 삼영하드보드는 해방직후인 1946년 설립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내하목재회사가 있었다. 삼영하드보드는 1980년대까지 화목과 폐목을 이용한 하드보드(천장과 바닥용)를 비롯 세미보드, 텍스 ..

1965년 대한뉴스에 방영된 삼영하드보드 안양공장

#안양 #삼영하드보드 #안양3동 #성원아파트 #역사 #기록 #영상/ 안양3동 있던 (주)삼영하드보드 안양공장에서의 하드보드 생산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1분04초)으로 제목은 외화획득, 제작연도는 1965-08-21일로 대한뉴스 제533호로 제작되어 당시 극장 등에서 상영됐다. e-영상역사관 영상보기: http://film.ktv.go.kr/page/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792&mediadtl=4034&gbn=DH&quality=W 안양시 연표와 작고하신 변원신 어르신의 구술 등에 의하면 삼영하드보드는 해방직후인 1946년 설립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내하목재회사가 있었다. 삼영하드보드는 1980년대까지 화목과 폐목을 이용한 하드보..

1977년 안양3동 삼영하드보드와 당시 신문 광고

#안양 #삼진알미늄 #한국아트제지 #수암천 #채석장 #철길 #역사 #기록 #사진/ 안양의 원도심인 안양CGV사거리에서 삼덕공원을 지나 안양9동 새마을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안양3동 수암천변에 있던 삼영하드보드(현 안양3동 우성아파트) 공장의 1977년 풍경으로 1977년 7월13일자 매일경제 1면 하단에 게제된 광고에 나오는 공장 모습이다. 삼영하드보드 공장은 안양3동 774번지 현재의 성원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내하목재회사가 있었으며 해방직후인 1946년 삼영하드보드가 설립되어 1980년대까지 화목과 폐목을 이용한 하드보드(천장과 바닥용)를 비롯 세미보드, 텍스 등을 생산하던 규모가 컸던 공장이었다. 특히 삼영하드보드의 광고(61년 6월 22일자)를 보면 삼영하드보드에서 ..

1970년대 안양 수암천과 채석장 철길 & 삼진알미늄

#안양 #삼진알미늄 #한국아트제지 #역사 #기록 #사진/ 안양의 원도심인 안양CGV사거리에서 삼덕공원을 지나 안양9동 새마을로 올라가는 길목인 안양3동 수암천변에 있던 공장 삼진알미늄 또는 한국아트제지(현 안양3동 프라자아파트, 당시 안양역 뒤 안양1동 구시장 옆에는 한국특수제지-한국제지 공장이 있었음)의 주변 풍경으로 수암천, 병목안 채석장행 철길도 보이는 1970년대 중반의 모습이다. 일부 기록에는 사진속 공장을 삼영하드보드 공장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사진 윗쪽의 산자락과 안양9동 가는 길, 수암천의 풍광을 볼때 안양예고 자리한 노적봉 산 꼭대기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아랫쪽에 보이는 기와집들이 있는 곳이 현재 한숲작은도서관과 주차장이 있는 주변이다. 그 위로 흐르는 하천이 안양천의 지천인 수암..

6.25 후 재건된 안양 금성방직 항공사진(1960년대)

#안양 #금성방직 #안양3동 #대농단지/ 6.25전쟁 당시 소실된 뒤 재건된 안양 금성방직 공장 전경(1960년대)으로 지난 2013년 6월 국민대학교 예술관 K·Art 갤러리에서 열렸던 '성곡 김성곤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사진전에서 선보였던 사진이다. (웹사이트 http://k-art.kookmin.ac.kr/theme/성곡%20김성곤%20탄신%20100주년/) 현재의 안양3동 국민은행 안양지점과 왕궁예식장 뒷편에서 박달동 우성아파트에 걸쳐있는 대농단지에 자리했던 금성방직 안양공장의 1960년대 모습입니다. 사진 좌측 하단 정문옆으로 보면 안양역으로 철길이 연결되고 화물기차가 들어올 정도로 그 규모가 컸으며, 담장 둘레만 십리라고들 했지요. 참고로 당시 안양역에서 이어진 철길 두 라인으로 하나는..

6-70년대 안양 소방관의 자료(김귀연님 제공)

2017.02.18/ #안양 #소방 #견장 #버클 #뱃지/ 안양박물관의 오는 6월 시민참여박물관 기획전 '안양의힘 - 땀과 눈물의 성장기록'을 앞두고 시민들이 책꽂이, 앨범, 책장속 깊숙이 넣어둔 소장품들을 찾던중 발견한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소장한 부친이 사용하던 물건. 김귀연씨으 ㅣ부친은 1960년대 말 안양의용소방대부터 1970년대 안양소방서에서 소방대원으로 근무했던 김인섭씨로 그가 소방 근무복에 부착했던 견장과 뱃지, 마크 등 이 부착물과 빛바랜 표창장과 신분중 등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970년대 안양 중앙시장 신신다방앞 골목 풍경

1970년대 안양 중앙시장 신신다방과 보금장앞 골목 풍경 #안양 #안양4동 #중앙시장 #기록 #기억/ 안양 중앙시장의 1970년대 중반의 풍경으로 김귀연 전 안양2동주민자치위원장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으로 길 가운데 아이를 앉고 있는 옆이 김귀연씨 부친으로 당시 안양소방서에 근무했답니다. 1970년대는 경제가 비교적 좋았던 시절로 당시 중앙시장 거와 골목에는 활기가 넘쳤다 시대동(현 안양1동)에 있던 안양시장을 이곳으로 이전한 후 새시장으로 불리우던 중앙시장은 지금도 비교적 규코가 크지만 1970년대에는 군포.의왕,과천은 물론 멀리 안산과 고잔, 오이도 등에서도 장보러 오는 큰 시장이었지요. 사진에 보이는 도로는 중앙시장의 중앙통로(안양로 291번길. 현재 떡볶이 포장마차와 호이호떡 등 노점들이 있는 곳)..

1960년대 금성방직과 안양읍내 항공사진

#기록 #기억 #옛사진 #안양 #금성방직 #안양중학교#안양여중고 #양짓말 #안양천 #수암천/ 안양 도심(안양읍) 한복판에 자리했던 금성방직(현 대농단지)을 중심으로 안양천과 수암천, 북부동(안양2동)과 남부동과 구시장 및 시대동과 중앙동(안양1동), 양지동(안양3동)과 장내동(안양4동) 등 현재의 만안구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1960년대 중반의 항공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안양3동 우성아파트 상공으로 윗쪽 방향이 안양천과 비산동,안양7동 및 지금의 평촌, 왼쪽은 안양3동과 석수동, 오른쪽은 안양4동과 3동및 9동쪽, 아랫쪽은 안양3동과 박달동 방향이지요.(출처:안양시자료관) 사진 중앙 아래의 큰 건물이 금성방직입니다. 금성방직에는 당시 전국에 단 3군데 밖에 없던 잔디축구장이 이곳(사진 중간 왼쪽 ..

1970년 안양 금성방직 앞 도로 풍경

1970년 안양 금성방직 앞 도로 풍경/ #안양 #기억 #기록 #옛사진 #금성방직 #중앙로 #안양2동 #감리교회/ 1970년 4월의 금성방직 안양공장 정문앞 도로(현 안양로)의 풍경으로 예비군의날 기념 아치가 세워진 것이 이채롭습니다. 사진은 삼원극장(현 안양CGV)에서 석수동쪽을 향해 찍은 것으로 사진 좌측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 정문이 있었으며, 사진 뒤쪽에 보이는 건물이 현재의 1층에 안경점(안경박사)이 있는 4층 건물 위치이며 그 뒤로는 감리교회(현 13층 금강빌딩)가 보이네요. 금성방직은 현재의 안양3동 국민은행 안양지점과 왕궁예식장 뒷편에서 박달동 우성아파트에 걸쳐 있던 대규모 면적으로 1960-70년대 안양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곳이지요. 3천 궁녀(?)가 안양을 먹여살린다고 할 정도..

1950년대 안양에 있던 시흥군청사

1950년대 안양에 있던 시흥군청사 #안양 #옛사진 #과거 #기억 #기록 #시흥군청/ 1950년대 중반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안양 중앙동(안양1동)에 있던 시흥군청사(1946년 준공)의 모습입니다. 안양 일번가는 1940-70년대 초까지 안양읍사무소, 시흥군청,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사와 양화점, 양복점, 대서소, 다방, 식당 등이 밀집한 다운타운이었지요. 시흥군청은 현재 안양 일번가 삼원프라자호텔과 그 주변을 포함하는 넓은 면적을 차지했었지요. 건축가 최승원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시흥군청은 1946년 7월 준공됐으며 설계는 군정시 경기도청 회계과 영선담임 홍광우洪寬祐(서울 흑석동 20의4)가 했으며 일본 강점기때 일반 풍조이던 절충주의적인 면모는 일소되고 고졸한 근대여명기의 성격이 표현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