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784

[옛사진]1977년 안양 대수해_ 한국방송공사의 침수 텔레비젼(TV) 수리

국가기록원(www.archives.go.kr/)이 2012년 7월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을 맞이하여 「이달의 기록」으로 기록으로 본 ‘초복과 여름나기’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올린 사진(1950~1970년대의 다양한 여름나기 풍경 동영상 16건, 사진 14건 등 총 30건) 준 한장으로 1977년 안양 일대에서 발생한 대홍수 당시 모습을 담은 '안양천 수해지구 이동봉사반의 모습'으로 한국방송공사(KBS) 이동봉사 차량이 안양에 내려와 침수된 TV를 수리해 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안양 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되며 안양 대수해, 안양 대홍수, 쌍칠(77)년 대홍수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1977년의 집중 호우는 7월 8일 밤부터 9일까지 단 하루만에 내린 강우량이 무려 454.5mm로 당시 기상청..

[옛사진]1946년 안양에 살며 기차 통학했던 이희호 여사

2019년 6월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께서 14일 각계 지도자와 시민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장으로 엄수된후 현충원 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으로 옮겨져 DJ옆에 묻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기 이전에 여성운동의 초석을 닦고 노인과 장애인, 빈곤층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여성 지도자였다. 이희호 여사께서 학생 시절 안양역 인근에 살며 서울로 기차 통학을 했다는 얘기를 오래전 들은 바 있어 혹시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옛 자료를 찾던 중 2015 한겨레신문에서 연재했던 [이희호 평전] ⑥ 제1부 학업시대-5회 연극배우 편에 나온 기록과 사진을 통해 안양에 살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둘째오빠가 의사로 개업을 해서 안양역 근처에 살았는데, 거기에 한동안 얹혀살면서..

[안양권지도]1910년 10월 발행 조선교통전도 속 안양권

는 일본 오사카 대판매일신보사(大阪每日新報社)에서 신문9736호의 부록으로1910년 10월 1일 발행한 것으로 1899년 개통된 경인선, 1905년 개통된 경부선, 1906년 개통된 경의선 등 한반도를 종단하는 철도를 붉은선으로 그려지고 도로와 해로 등도 표기되는 등 조선 전체의 교통망과 조선 주요도시, 항구의 시가지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1910년은 경술년이고 융희(隆熙)4년으로 이 해 8월 22일 한일 합방조약이 조인(調印)되었고, 8월 29일 공포(公布)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설치되고, 9월 29일 통감부와 이사청을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로 하는 관제(官制)가 발표되었으며, 10월 1일부터 신임 총독이 임명되면서 식민정치가 시작되었는데 이 지도는 조선을 병합한 기념으로 신..

[안양권지도]19세기 초 제작된 여지도 속 안양권

1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에 등장하는 수리산 지명 표기. 당시 안양 주변의 행정구역 명칭은 금천(衿川)과 과천(果川)이다. 금천은 조선시대 관아와 행궁이 자리했을 만큼 규모가 컷던 고을 행정의 중심이었으며 시흥현과 시흥군의 행정 명칭을 시작한 곳으로 1960-70년대 시흥이라 통칭하고(지금은 행정구역과 전혀 상관없는 시흥시가 사용함) 시흥역(금천구청역 바뀜)이 있었을 만큼 행정구역이 오래된 곳으로 안양은 고거 금천의 변방이자 때로는 과천의 변방이기도 했다. 금천은 원래 백제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고구려에 편입되어 잉벌노현(仍伐奴縣)이 되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뒤 757년(경덕왕 16) 곡양현으로 고쳐 율진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금주(衿..

[안양권지도]1951년 군사지도에 표기된 안양의 동네 옛 지명

1951년 군사지도상의 안양. 당시는 행정구역상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으로 안양역을 중심하는 하는 읍내 시가지가 빨간색으로 표기돼 있다. 장내동(안양4동), 주점리-주접리(안양6.7.8동), 후두미(안양9동), 바우골(안양9동 담배촌 공군부대입구), 능골(안양9동/새마을), 양산말-양짓말(안양3동),수풀재=임곡마을(비산동), 오산, 석수동, 충훈부, 박달리, 붓골(박달동 범고계 호현마을), 벌터=평촌(석수1동) 등 정겨운 옛 지명들이 표기돼 있다. 화창이라 표기되어야 할 곳이 벌터(평촌)라 표기되는 등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지명도 있지만 안양1.2.3..... 석수 1.2...동 등 삭막하기 짝이 없는 아라비아 숫자 동네 이름으로 바뀐 엣 지명이 담겨 있는 동네와 마을이 어디인지 살펴 볼 수 있다./ 지도..

[옛그림]우매한 조선인 행동으로 비하한 원태우 지사의 돌팔매질

2019.05.02/ #기록 #역사 #원태우 #일로전쟁사진호보 #일본 #기무라고타로/ 이 그림은 일본 搏文館(박문관)에서 1904~1905년 발행한 시리즈 화보책자인 《일로전쟁화보》 제39권(1905.12.8 발행)에 실린 삽화 자료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기록물이다. 그림에는 1905년 안양에서 일어난 원태우지사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돌팔매질을 일본인 화가가 삽화와 단신 기사로 묘사하고 있는데 원 지사의 행위를 “우매한 농민이 술에 취해 무의미하게 돌을 던진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을사조약’의 억지 체결을 강요한 후 5일째가 되는 1905년 11월 22일 아침,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特派大使 伊藤博文)는 짐짓 승자의 여유를 과시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의 숙소였던 ..

[옛그림]시흥환어행렬도에 그려진 의왕 사근행궁

조선 시대 22대 왕 정조(재위 1776∼1800년)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서울 창덕궁에서 아버지의 묘가 있는 수원 화산 현릉원까지 약 60㎞.의 길로 13번의 원행길에 나섰다. 원행길에는 임금이 잠시 들러 머물던 곳 행궁(行宮·임금이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 있었는데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은 화성행궁을 비롯 노량행궁, 과천행궁, 시흥행궁, 안양행궁, 사근행궁, 안산행궁 등이 있었다. 정조는 창덕궁을 출발해 숭례문, 노량진, 용양봉저정을 거쳐 남태령을 넘고 과천행궁에 머물렀다가 군포로 진입하는 '과천길'을 이용하다가 환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원행에 나섰던 1795년을 기점으로 창덕궁에서 시흥행궁과 대박산과 만안교를 건너고 안양행궁을 거쳐 군포로 들어..

[안양권지도]1936년 영등포 지도와 시흥군 역사

#지도 #시흥군 #영등포구 #안양 #금천 #시흥/ 시흥군청이 영등포에 있을 당시인 1936년의 옛 지도로 당시 영등포의 중요시설들이 상세하게 표기돼 있다. 자료를 보면 시흥군청은 1949년까지 지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경인국도 언덕배기에 있었다. 일제 때에는 현 영등포구의 절반과 대림동 일대까지 시흥군에 속했을 정도였다. 안양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가 1795년 수원화산 능행시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인 삼성천에 만안교를 건설하는 등 시흥대로를 건설하고 안양에 안양행궁을 짓자 민가와 거주민들 늘어나게 된다. 1905년 1월에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점차 도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19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의 중심은 호계동 일대였다. 이는 삼..

[옛사진]안양초교 38회 졸업(1969년) 앨범속 얼굴들

안양초등학교 38회(1969년 졸업) 졸업앨범이다. 40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빛바랜 앨범은 표지와 속장에 이어 두번째 페이지에는 교훈, 교가, 교기와 함께 교장선생님 얼굴, 세번째 페이지에는 은사들 얼굴, 이어 다음장 페이지부터는 각 반별 사진 그리고 사진 뒷페이지에는 사진속 인물을 따라 이름 적은 별지 순으로 8반까지 한반에 평균 6-70명씩 500여명의 학생들이 한 교정에서 공부하고 뛰놀았던 얼굴들이 담겨져 있다. 안양의 오래된 모습과 사람 등 옛 사진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1977년 안양대수해로 인해 기관, 회사, 직장은 물론 각 가정의 책장 또는 장롱속에 보관하던 두툼한 앨범도 대부분 물에 젖거나 훼손, 분실, 망실되면서 과거의 수많은 기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잠깐 안양 대홍수를 ..

[옛사진]1970년대 말 안양 관악역앞 만안로 이전 공사

#옛사진 안양 #역사 #기록 #기억 #골목 #철길 #석수동 #관악역 #만안로 #신필름 #안양영화예술전문학교 #영화촬영소 #1970년대 말/ 안양시 석수2동 국철 1호선인 관악역(冠岳驛. 석수2동 241)에서 안양역(남쪽) 방향으로 본 동네 풍경이다. 사진 우측 뒷쪽으로 보이는 큰건물이 당시 신상옥 역화감독이 운영하던 영화촬영소인 신필름(현재 안양로 532번길 현대아파트)이다. 큰 건물 2동중 왼쪽옆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학교로 안양영화예술학교(현재 안양로 510번길 무림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속 풍경은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으로 수도권 전철1호선이 개통(1974년)한 이후 전철옆을 지나는 만안로(옛 국도 1호선)의 석수동 안양육교( 현 연현오거리)에서 안양유원지 입구인 안양교 사거리까지의 곡선..